20세기의 알렉산드리아 이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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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에서는 알렉산드리아 이단의 대표적인 다섯 명의 구성원들, 즉 오리겐, 어거스틴, 교황들, 웨스트코트와 홀트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이번 호에서는 마지막으로 이들의 뒤를 이은 현대의 알렉산드리아 이단들을 살펴볼 것이다. 이들은 주로 기독교 대학을 점령하여 최종권위를 파괴하고 학자들의 권위로 하나님의 말씀을 누르며, 성도들을 오도하는 자들이다. - 편집자 주







알렉산드리아 이단은 미국의 교육제도를 조종하고 있다. 일반 교육제도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탈레스, 아낙시만드로스, 소크라테스, 피타고라스 등으로부터 나왔다면(이 사람들은 물질의 영속성을 믿는 진화론적 유물론자들이다), 기독교 교육제도는 오리겐, 유세비우스, 제롬, 어거스틴, 그리고 콘스탄틴에게서 나왔다.

필라델피아 교회시대(1500-1880)동안 이 교육제도는 중단 상태에 있었고 이 기간에 몇몇 학교(하버드, 예일, 콜롬비아, 다트마우스 등)가 비알렉산드리아적인 교육제도위에 설립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곧 변질되고 말았다.



세상 교육의 가르침들은 이런 식이다.







1. 다윈의 진화론은 정당하다. 이 학설에 따르면 우리는 아메바에서 진화되었다.

2. 다윈의 학설은 틀리다. 동물의 연결고리 가운데 30,000개가 빠져 있다.

3. 다윈의 학설은 정당하다. 이 학설에 따르면 우리는 고등동물로 진화하기 위해 우주의 “도움”을 받아야만 한다.

4. 다윈의 학설은 틀리다. 시간과 거리가 상대적이듯 진화의 발전과정도 상대적이다. 따라서 우리는 고등동물로 발전할 수도 있고 다시 하등동물로 퇴보할 수도 있다.

5. 어느 누구도 어떤 사람의 주장이 “옳다” 또는 “그르다”라고 확실히 말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옳다”, “그르다”라는 단어는 사람의 “생활 양식”(알렉산드리아 이단의 용어로는 “가치 기준”)이 다르듯이 여러 민족들에게 다양한 “의미”를 주는 상대적인 단어이기 때문이다.



보는 바와 같이 어떤 사실에 대해서 절대적인 옳고 그름이 없다. 상황에 따라서 옳을 수도 그를 수도 있는 것, 이것이 바로 세상 교육제도이다. 윌리엄 제임스는 이에 관해 다음과 같이 최종적인 변론을 한다. “더 이상 밝히거나 진술해야 할 말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유일한 것은 우리가 확신할 만한 것이 없다는 사실이다. 더 이상 충고할 말도 없다.”

세속적인 교육은 절대 권위에 관해서 최대한의 의심만 심어 준다. 세속적인 교육제도에는 최종 권위가 없다. 학교는 우리를 최종 권위로부터 “해방”시킨다.

그러면 미국의 주요 대학에서 행해지고 있는 “기독교 교육”은 어떤가? 물론 이 대학들의 모든 교수들은 “영감받은 성경”의 존재를 믿는다고 고백한다.



1. <킹제임스성경>의 번역자들은 옳다. 이사야 7:14은 “젊은 여자”(young woman)가 아니라 “처녀”(virgin)라고 한 것이 맞다.

2. <킹제임스성경>의 번역자들은 틀리다. 사도행전 12:4은 “이스터”(Easter)가 아니라 “유월절”(Passover)이라고 했어야 한다.

3. <킹제임스성경>의 번역자들은 옳다. 로마서 9:5은 “영원히 송축받으실 하나님이시라”(God blessed for ever)로 옳게 번역되어 있다.

4. <킹제임스성경>의 번역자들은 틀리다. 예수님은 “육신으로 나타나신 하나님”이 아니다(딤전 3:16).

5. 웨스트코트와 홀트는 옳다. 누가복음 24:51,52에 승천과 경배에 대한 내용은 없어야 한다.

6. 웨스트코트와 홀트는 틀리다. 마가복음 16장 끝부분은 <킹제임스성경>이 옳다.

7. 모든 번역에는 번역자들의 주관이 개입되어 있으므로 어떤 번역본도 정확하다고 말할 수 없지만 모든 번역본들은 다 믿을 수 있는 것이기에 어느 누구도 <킹제임스성경>이나 웨스트코트와 홀트가 옳다거나 틀리다고 확실하게 말할 수 없다. 결국 동정녀 탄생(눅 2:33), 육체적 부활(행 1:3), 그리스도의 신성(딤전 3:16), 승천(눅 24:51,52), 성경공부의 올바른 방법(딤후 2:15), 피의 속죄(골 1:14) 등의 구절이 손상당한 번역본들도 신뢰할 만하다.



결국 기독교 교육에 있어서도 최종 권위는 사라져버렸다. 학교는 학생들을 성경의 권위에서 “해방”시켰다. 학교는 학생들의 생각에 이단 사상을 주입하고 그것을 믿게 만들어, 학생들로 하여금 자신이 최종권위가 될 수 있게 한 것이다.

교육제도는, 기독교적이든 비기독교적이든, 학생들에게 최종 권위에 대해 최대한의 의심을 심어 주기 위해 설계되고 계획되었다. 그리고 이 교육제도가 학생들의 “하나님”이 된다. 이것이 바로 알렉산드리아의 이단이 제시한 길이다.



때때로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이 최종권위라고 한다. 그러나 그들은 많은 성경 역본들 중 어떤 역본이 참된 하나님의 말씀인지는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기독교 대학의 대표적인 학교인 밥 존스 대학의 경우를 보자.

“우리는 <킹제임스성경>을 비난했던 사람은 우리 학교에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것은 밥 존스 대학의 학장인 밥 존스 3세가 한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학교의 대표적인 교수들이 이와는 다른 말을 하는 것을 듣는다.

“우리는 웨스트코트와 홀트가 사용한 사본이 대체적으로 에라스무스의 사본보다 우수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희랍어 사본에 충실하지 않은 어떤 역본도 지지하지 않는다.”(커스터와 닐, 밥 존스 대학의 교수들).

이 학교는 학장과 교수들 간의 의견일치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실 밥 존스 3세도 커스터와 닐과 같은 견해를 갖고 있음이 다음의 말로써 증명된다.

“<킹제임스성경>은 여전히 가장 아름답고 가장 서정적인 글이다. 오늘날 모든 예배 의식에서 이 성경이 사용된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성경을 더 좋게 개정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ASV(1901)도 신뢰할 수 있는 번역본이다. 밥 존스 대학의 성서학과 교수들은 이 번역본이 <킹제임스성경>보다 원문에 더 충실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성경을 원문 그대로 보존해 오셨다고 믿는다. <킹제임스성경>만이 유일하게 가치있는 성경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전적으로 이치에 어긋난다. 우리는 믿음을 위해 싸워 온 것이지 자기가 선호하는 것을 위해 싸운 것은 아니다.” 결국 이 학교에는 절대적이고 최종적인 권위는 없는 셈이다.

밥 존스 3세는 1978년 3월의 한 광고문에서 이 학교 지원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밥 존스 대학은 <킹제임스성경>에 의해 평가받기 원한다.” 그러나 그가 이런 말을 한 것은 <킹제임스성경>이 유일한 성경이라고 믿기 때문이 아니라, 이 성경이 근본주의자들에 의해 선호되기 때문이다. 이 대학은 입학생들을 모으기 위해 <킹제임스성경>을 사용한다. 그리고 이 대학 설립자와 교수들이 <킹제임스성경>을 읽음으로써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이 성경으로 설교했기 때문에 이것을 선택했다. 이 성경으로 가르치고 전도함으로 인해 교회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신앙 부흥기(1611-1910년)를 가져왔다는 사실이 분명하기에 밥 존스 대학은 <킹제임스성경>을 “믿을 만한” 성경으로 보급시켰을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밥 존스 대학이 두 가지 견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나는 신입생(또는 성경을 배우기 위해 교회나 성경 세미나에 참석하는 신학생 가족들)을 위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강의를 듣는 신학생들을 위한 것이다.

바로 이것이 <킹제임스성경>을 “선호”하는 대부분의 근본주의 대학교에서 진행되고 있는 알렉산드리아 이단의 공작이다. 학생들은 처음에는 <킹제임스성경>에 대한 믿음을 갖고 그 학교에 입학한다. 그러나 학교에서 그들은 다른 역본들이 <킹제임스성경>과 동일한 권위로 추천되고, 심지어 더 큰 권위로 추천되고 있는 것을 본다.



다음은 테네시 템플 대학 교수들의 말이다(이 학교도 역시 근본주의 신학교이다).

“테네시 템플에서는 성경에 관한 강의시간에는 성경 연구를 위한 기본 교재로 <킹제임스성경>을 사용한다. 그러나 희랍어 수업시간에는 네슬 사본을 교재로 사용한다... 네슬 사본은 3,4세기에 쓰여진 필사본으로 만든 것이다.”(클리프 로빈슨, 성서학과 학장, 1964.1.3)

“나는 ASV와 NASV를 출판한 사람들이 <킹제임스성경>을 출판한 사람들과 동일한 믿음과 학식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 <킹제임스성경> 이외의 다른 번역본을 참고로 사용하는 사람들을 모두 비난한다면, 나는 오히려 그들이 이단적인 단체가 되리라고 예상한다. 그들의 행동은 성령을 슬프게 할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무오한 말씀을 믿는 신자들을 불필요하게 분열시키고 있다.”(프레드 아프만, 테네시 템플 교수, 1976.11.18)

로빈슨의 말로 우리는 이 학교가 두 개의 권위를 동시에 추천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 아프만의 말은 지금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상황과 얼마나 정확히 일치하는가! 지금은 절대권위를 내세우는 사람이 “이단”이 되어 버린 상황이다. <킹제임스성경>을 유일한 권위로 믿고 있는 사람들은 “성경 숭배자”로 낙인찍혀 버린다. 알렉산드리아 이단에 속한 사람들은 “성경숭배자”들을 미워한다. 왜냐하면 “성경숭배자”들은 최종적이고 절대적인 권위를 주장하고, 서로 다른 권위들을 동시에 주장하는 자신들의 견해를 인정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성경 숭배자”라는 말은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이 받을 수 있는 영예로운 호칭이다. 그들은 비록 이 말을 경멸하기 위해 사용하였으나 “그리스도인”이라는 말도 초대교회 시절에는 경멸하는 말이었음을 기억하라. 알렉산드리아 이단들은 사람들이 자기들의 말 대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을 두려워한다. 이들은 이단자들이다. 이들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살전 2:13, 히 4:12,13)을 세상의 타락한 제도(또는 사람)로 대체하였다.



다음은 달라스 신학교의 교수인 존 F. 발포어트의 글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1901년에 출판된 ASV를 더 선호한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는 학자들에 의해 ASV의 개정판이 만들어졌고 많은 복음주의자들이 NASV를 선택한다. 그러나 나는 RSV와 최근에 나온 몇몇 번역본들이 성경의 원문을 정확하게 번역한 역본들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발포어트는 <킹제임스성경>이 아니라 ASV를 선호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그는 <킹제임스성경>뿐 아니라 다른 역본들도 선호하지 않는다. 결국 그는 자신의 학문적 지식으로 역본들을 평가하고 자신이 최종 권위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는 “선호한다”라는 말을 사용해, 그 어떤 것도 무오한 최종 권위는 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지금까지 수 회에 걸쳐서 설명한 알렉산드리아 이단들의 기본 입장이다. 즉 “어떤 것도 절대적인 것은 없고, 결국 선호도에 달렸다. 그 중에서 좀 더 나은 역본은 공부를 많이 한 학자들이 판단할 일이다.”라는 것이다.

로티스 문(Lottice Moon)도 이 문제를 똑같이 말한다.

“성경을 문자 그대로 가장 정확하게 번역한 영어 번역본은 ASV이다. 이 성서를 다른 현대 번역본들과 대조해 보는 것이 이 사실을 확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물론 ASV도 완벽한 번역본은 아니다. - 이 세상에 완벽한 번역본이란 없다.”

알렉산드리아의 이단들은 상대적 권위를 내세우고 <킹제임스성경>의 권위를 무너뜨리기 위해 성경에 있는 여러 난해구절들을 제시하기도 하고, 빌리 그래함 같은 “위대한”(?) 복음증거자들도 다른 역본들을 인정한다고 말하며 자기편 만들기 작업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의 가장 기본적인 입장은 “절대권위는 없다.”라는 것이다. 사탄은 이 거짓 명제를 위해 창세기 3장에서부터 이브에게 “다른 권위”를 제시했고, 오리겐과 어거스틴과 콘스탄틴과 웨스트코트와 홀트를 사용해 이 “다른 권위”를 보급했다. 사탄은 다윈을 통해서 절대권위에 대해 정식으로 도전하였고, 아인슈타인을 통해 “상대적 진리”라는 것을 모든 사람의 생각에 심어 주었다. 세상 교육을 장악한 사탄은 기독교 교육에서도 동일한 방법을 사용하여 학자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을 절대 권위로부터 멀어지도록 가르치게 했다.



그들의 강령은 다음 몇 가지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1. 하나님만이 최종적인 절대권위일 뿐 눈으로 보거나 읽고, 듣고, 만지고, 공부할 수 있는 최종권위란 없다.

2. 하나님은 영이시고 모든 책은 물질이기에, 이 세상에 무엇이 옳고 그른지, 무엇이 진리이고 비진리인지에 관해 최종적이고 절대적인 권위를 가진 책이란 없다.

4. 처음에 기록되었을 때 진리와 비진리를 판단하는 최종적이고 무오한 권위가 되었을 일련의 기록물들(최초의 원본)이 존재했던 적은 있었다.

5. 그러나 이 기록들은 분실되었고, 이 글에 영감을 주신 하나님이라 할지라도 최초로 성경 교사가 있었고(행 13:1), 최초로 전도여행이 시작되었고(행 16:1-6),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이 최초로 사용된(행 11:26) 안티옥의 그리스도인들을 통해서는 그 내용을 보존하실 수 없었다.

6. 그래서 하나님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영지주의자들과 철학자들을 통해 그 기록을 거의 대부분 보존하도록 하셨다.

7. 성경에는 몇 개의 계열이 있다. 그 중 가장 정확한 것은(물론 진리와 비진리를 결정하는 절대적인 최종권위는 없고, 그것은 ‘선호도’의 문제일 뿐이지만)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나온 이집트 번역본이다. 이것은 완전하지는 않으나 원본과 거의 일치한다.

8. 가장 부정확한 번역본들은 독일의 종교개혁(루터, 쯔빙글리, 찐젠돌프 등)을 통하여 나온 번역본, 선데이, 토레이, 무디, 피니, 스펄젼, 휫필드, 웨슬리 등이 사용한 번역본이다.

9. 그러나 우리는 그 번역본을 믿는 사람들이 우리를 인정할 경우 우리도 이 번역본을 “인정”할 수 있다. 왜냐하면 누구나가 읽고, 가르치고, 설교하고, 공부할 수 있는 절대적인 최종 권위는 없으며, 모든 것은 “선택”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선택한 번역본을 선호할 수 있고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서로 사아좋게 지내자. 그리고 우리가 모든 일에 의견을 같이할 수 없다면 다음의 한 가지 사실, 즉 “이 세상에는 기록된 하나님의 절대적인 최종권위란 없다.”라는 사실 만이라도 우리 모두 동의하자.



알렉산드리아 이단의 궁극적인 목표는 하나님께서 보존하신 바로 그 성경 <킹제임스성경>(헬라어 <표준원문>, <한글킹제임스성경>)을 파괴하는 것이다. 이 목표를 위해 그들은 끊임없이 노력할 것이다. 이 일을 수행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바로 상대적 권위를 내세우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권위이고 최종권위이기에 “<킹제임스성경>만이 유일한 성경이다.”라는 생각만 사람들의 마음에서 사라지게 되면 사람들의 선호도에 따라서 한두 명 더 <킹제임스성경>을 보는 것은 그리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아무리 교묘한 방법으로 이 성경을 무너뜨리려 해도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말씀을 지키실 것이고, 그 말씀은 여전히 우리의 믿음과 실행에 있어서 최종적이고 절대적인 권위로 남을 것이다. BB



「알렉산드리아의 이단들」은 이번 호로 종료됩니다.
출처 : 월간 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6년 6월호  (통권 51호 호)   page :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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