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입력시각 : 2016-11-22
오늘날 믿음이라는 성경적인 용어가 마귀의 자녀들이 그것을 비성경적인 추태에 남발하다 보니 하찮은 종교 용어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러나 믿음은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존재하심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게 하려고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다.
믿음이란 말이 넘쳐나고 있지만 정작 그것을 말하는 곳에서 『성령을 거슬러 욕심을 부리』는(갈 5:17) 육신의 일들이 넘쳐나는 때가 바로 이 라오디케아 교회 시대이다. 믿음을 공언하면서도 성령의 인도하심을(롬 8:14) 받지 못하는 마귀의 자녀들이 교회들을 채우고 있기에, 세상 죄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어야 한다고 말하면, 그들은 성경적인 복음 전파자들을 배교한 제도권 교회들의 교인들로 여기고서 거부하기 일쑤이다. 참된 복음 전파자들을 부패한 교회들에서 내보낸 종교인들로 여기고서 “당신이나 믿으라.”고 하는 것이다.



“믿음,” 그것은 참으로 고귀하고 구원을 위한 필수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죄인들에게 천시를 받고 있다. 아니, 교회들에서 천시되고 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믿음이라는 성경적인 용어를 마귀의 자녀들이 비성경적인 추태에 남발하다 보니 하찮은 종교 용어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저주와 독설로 가득 찬 종교인들의 입으로 인해(롬 3:14) 비록 그 이미지가 실추되었다 해도, 믿음의 본질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온전히 보존되어 있다. 『이제 믿음은 바라는 것들에 대한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증거니』(히 11:1). 하나님의 말씀에 기록된 보이지 않는 것들을 눈에 보이는 실체로서 붙잡고 증거하는 것이 믿음인 것이다.



믿음의 기원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최근 믿음의 출처가 어디인가를 다룬 학술 발표회가 있었다. 한국신약학회가 10월 10일 서울 신촌성결교회에서 제19회 콜로키움을 개최한 것인데, 발표자 중 한 명인 감신대 김충연 교수가 에베소서 2:8,9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 것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그러나 Caird와 같은 학자들은 믿음 또한 하나님의 선물로 설명하려 한다. 그렇다면 믿음이 없어 구원받지 못한 자들은 하나님의 이 선물을 받지 못한 것인가? 믿음이 선물이라면, 누구는 주고, 누구는 안 주는 그러한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시는”(딤전 2:4) 하나님과 배치되지 않는가?」



김 교수의 말에는 한 가지 맹점이 있다. 맹점(盲點, blind spot)이란 원래 눈의 망막에서 시세포가 없기에 물체의 상이 맺히지 않는 부분을 일컫는 의학 용어인데, 그의 말에는 영적 시세포가 없기에 볼 수 없는 신학적 맹점이 들어 있다. 바로 “믿음이 없어 구원받지 못한 자들”이라는 표현이다. 그는 어떤 사람이 구원을 받지 못한 것이 그에게 문자 그대로 믿음이 없어서(不在)인지, 아니면 자신에게 주어진 믿음을 사용(使用)하지 않아서 그런 것인지를 모르고 있다. 쉽게 말해, “자기 안에 믿음이란 것이 아예 존재하지 않기에 구원받지 못한 ‘억울한’ 사람의 운명”과 그에 대한 하나님의 책임의 문제, 또 그것이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시는”(딤전 2:4) 하나님의 뜻과 배치되는 문제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엄밀히 말해서, 사람은 믿음이 없어서 구원받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있는 믿음을 “사용”하지 않아서 구원받지 못한다. 김 교수는 이 점을 볼 수 있는 영적 시세포가 없기에 “믿음이 선물이라면, 누구는 주고, 누구는 안 주는 그러한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시는’(딤전 2:4) 하나님과 배치되지 않는가?”라는 사뭇 궤변적인 질문을 던진 것이다. 믿음이란 것을 아예 받은 적도 없는데 믿지 않는다고 지옥에 보내는 하나님이라면, 그 누가 보더라도 그런 억지스런 신을 믿고 섬긴다는 것이 참으로 우스운 일이 될 것이다.



그가 학술 발표의 근거로 삼은 에베소서 2:8,9은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너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엡 2:8,9). 이 구절은 행위가 아닌 은혜로 받는 구원을 이야기하고 있다. 로마서 11:6에 따르면 행위는 은혜가 아니고 은혜는 행위가 아니다. 『은혜로 된 것이면 더 이상 행위가 아니니 그렇지 아니하면 은혜가 더 이상 은혜가 아니니라. 그러나 행위로 된 것이면 그것은 더 이상 은혜가 아니니 그렇지 아니하면 행위는 더 이상 행위가 아니니라.』 행위가 아닌 은혜로 받는 구원이라면 행위가 끼어들 수 없다. 따라서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값없는 선물』이다(롬 5:15,16). 이 선물은 많은 사람들을 의롭다 하는 『의의 선물』(롬 5:17)이라고 불리며, 『하나님의 은혜와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롬 5:15)이라고도 불린다. 오로지 은혜로만 주어지는, 그야말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선물”(고후 9:15)인 것이다.



이것은 미국의 어떤 젊은이가 자신이 다니는 교회에서 그의 믿음을 “점검”받을 때 했던 말과 같다. “구원은 그 일부분을 하나님께서 일하셨고, 그 나머지는 내가 했습니다. 나는 할 수 있는 한 그분께 저항했고, 그분께서 그 나머지를 하신 것입니다.” 그들이 이 젊은이의 말을 이해했는지 모르지만, 그는 자신의 구원을 위해 스스로 한 일이 하나님께 저항한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음을 강조한 것이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며, 자신은 하나님께서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를 믿음으로써 그 구원의 선물을 받아들였을 뿐이라는 얘기인 것이다.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문제는 에베소서 본문에서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을 때 『이것』이 “은혜로 받는 구원” 외에도 『믿음』을 가리킬 수 있느냐는 것이다. 『믿음』 역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값없이 주시는 그분의 선물이 될 수 있느냐는 것인데, 두말하면 잔소리이다. 믿음 또한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주시는 선물이라는 것은 로마서 12:3에서 분명히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게 주신 은혜로 인하여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자신에 대하여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다만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에 따라 건전하게 생각하라』(롬 12:3).



따라서 『너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는 말씀은 이중적인 해석이 가능하다. 즉 “구원”도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고, “믿음” 또한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다. 구원뿐 아니라 믿음 역시 하나님께서 나누어 주신 선물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존재하심을 믿을 수 있는 충분한 믿음을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는 충분한 믿음 또한 주셨다. 만일 어떤 사람이 하나님께서 존재하신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다면, 그는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안에 있게 하신 믿음을 걷어차 버린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그분의 말씀을 믿을 수 있는 믿음을 주셨고,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죗값을 대신 치러 주신 구주로 영접할 수 있는 믿음도 주셨건만, 만일 그가 자신의 “의지”를 잘못 사용하여 복음을 거절한다면, 그는 구원의 선물을 거절한 것이기에 가야 할 곳은 지옥밖에 없는 것이다. 『아들을 믿는 사람은 정죄를 받지 아니하나 믿지 않는 사람은 이미 정죄를 받은 것이라. 이는 그 사람이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라』(요 3:18).



믿음의 출처가 어디인가를 알기 위해서는, “믿음 없음”이라는 말의 이중성이 지니는 혼란에서 벗어나야 한다. 사람 자신의 믿음이 부족함을 말하려는 것인지(막 9:24), 아니면 김 교수처럼 사람 안에 아예 믿음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음에 관해 얘기하려는 것인지를 파악해야 한다. 후자와 같은 궤변의 본질을 파악하고 거기서 탈피하면, 그래서 바른 말씀이 그 문맥에서, 또 참조 구절들을 통해서 무엇을 말씀하는가를 알아낸다면, 우리는 결국 구원뿐 아니라 믿음 또한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주시는 그분의 선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며, 그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존재하심을 믿을 수 있게 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게 하여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임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의 지식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성령님께서 성경을 가르치시는 방법은 영적인 말씀들을 서로 비교하여 알게 하는 것이다(고전 2:13). 성경을 가르치려면 가르치는 자가 먼저 말씀들을 비교하여 진리를 깨달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 인간의 논리로 가르치는 것은 육신적인 생각에서 나오는 것이며, 진리를 가르치는 사람들을 흉내 내는 것이다. 마귀는 모방의 귀재이다. 진리를 흉내 내는 데에만 급급한 한국 교회에게 필요한 것은 바른 말씀과 그것을 통해 주어지는 바른 진리이다.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려면 진리를 정확히 알아야 하는 것이다.


2016년 11월 22일
한승용 / 킹제임스성경신학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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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김창희
16-11-23 01:15  
하나님께서 믿음을 먼저 주시는 것은 가만히 잘 생각해 보면 상식수준에서 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회사에서 직원에게 일을 시킬때 아무것도 주지않고 일을 시키지 않습니다
일을 할수 있는 도구나 장비를 주고서 일을 시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주 예수님을 구세주로서 믿고 영접을 할 수 있는 믿음은 사람에게 먼저 주시고 믿느냐 마느냐 의 선택의 기회를 주시는 겁니다
 
애당초 존재하지도 않는 믿음을 가지고 어거지로 믿는 것은 진화론 믿을때나 쓰이는 겁니다.
▲   그리스도의 단번 속죄를 부정하는 거짓 신학자 
▼   무천년설과 전천년설에 관한 쓸모없는 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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