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   구약은 신약의 그림자이다
입력시각 : 2017-01-26
구약은 신약의 그림자이다. “그림자”든 “실제”든 신구약 전체의 주인공은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그 영원하신 주님의 그림자는 결코 사라지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필자는 우연한 기회에 기독연구원 느헤미야의 김근주 교수라는 이의 인터뷰 기사를 읽게 되었다. 어느 인터넷 신문에서, “지금까지 교회는 다양한 방식으로 구약을 오해해 왔다. 가령 구약은 그림자이고 신약은 실제라거나, 구약은 모형이고 신약이 실체라는 설명은 성경을 심각하게 왜곡한다. 만약 구약이 그림자에 불과하다면 절대로 읽을 필요가 없다. 해가 지면 사라지는 것이 그림자인데 실제를 앞에 두고 무엇 때문에 그림자에 시간을 낭비하나?”라고 주장했던 것이다. 그는 나름대로 구약의 중요성을 역설하려 한 듯하지만, “그림자”든 “실제”든 신구약 전체의 주인공은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그 영원하신 주님의 그림자는 결코 사라지지 않음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오 주여, 주의 말씀은 영원히 하늘에 세워졌나이다』(시 119:89).



제대로 “성경을 읽지 않는” 김 교수에게 성경의 저자이신 성령님께서는 구약이 신약의 그림자라는 사실을 보여 주시는데, 그 첫째가 “히브리서 10:1”이다. 이 구절은 “다가올 선한 것들의 그림자”에 관해서 말씀하고 있다. 『율법에는 다가올 선한 것들의 그림자는 있으나, 그것들의 형상 자체는 없으므로 그들이 해마다 계속해서 바치는 희생제물들로는 그곳으로 나아오는 자들을 결코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 이 구절은 성막에서 수행된 “구약의 제사”를 신약의 그림자로 제시하고 있다. 구약의 제사는 불완전했는데,『이는 황소들과 염소들의 피로는 죄들을 제거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히 10:4). 그러나 구약의 불완전한 제사를 신약의 예수님께서 그분의 제사장직을 통하여 온전케 하셨다는 것이 히브리서 10장의 논지이다.『그 뜻에 따라 한 번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드리심으로 우리가 거룩하게 된 것이라.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똑같은 제사를 자주 드리지만 이것으로써는 결코 죄들을 제거할 수 없으나 이분은 한 번의 속죄제를 영원히 드린 후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으셔서... 한 번의 제사로써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기 때문이라』(히 10:10-12,14). 율법은 죄짓고 또 죽을 수밖에 없는 연약한 사람들을 대제사장들로 세웠지만, 율법 이후에 하신 맹세의 말씀, 곧『너는 멜키세덱의 계열에 따른 영원한 제사장이라.』(히 7:21)는 말씀은 하나님의 아들을 제사장으로 세웠으며, 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영원히 드려지셨던 것이다(히 7:28). 그런 면에서 구약은 신약의 그림자가 된다.



말하자면 율법은『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우리의 지도교사』이며, 우리를 인도하는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으로 우리를 의롭게 하기 위함이다(갈 3:24). 그림자를 보고 따라가서 실체이신 그리스도께 이르게 하는 것이 율법의 역할인 것이다. 사도 바울은 구약의 율법이 신약의 복음과 무관한 것이 아니라, 복음에 따른 건전한 교리에 역행하는 것들을 밝혀내는 데 필요하다고 역설한다.『그러나 사람이 율법을 합법적으로만 사용하면 율법이 선한 것인 줄 아노라. 알 것은 이것이니, 율법은 의로운 사람을 위하여 제정된 것이 아니라, 불법자들과... 그 밖에 건전한 교리에 역행하는 것들을 위함이니 이는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복음에 따른 것이며...』(딤전 1:8-11). 이곳의『건전한 교리』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복음에 따른 건전한 교리”를 뜻한다. 즉 율법은 이 “복음에 따른 건전한 교리에 역행하는 것들”을 밝혀내는 데 아주 유용한 검증 도구라는 것이다. 누군가가 바울에게 계시된 “신약의 은혜의 복음”에 역행하는 주장을 한다면(이후에 살펴보겠지만 가령 “행위 구원” 같은 것들), 우리는 구약의 율법으로 달려가 그 “신약의 그림자”로 검증해 보면 되는 것이다.



구약에 드리워진 신약의 그림자를 흔히 “모형”이라고 하는데, 율법을『다가올 선한 것들의 그림자』로 계시하는 히브리서에는 구약이 신약의 그림자임을 보여 주는 두 번째 구절이 담겨 있다. 바로 “히브리서 9:8-12”이다.『성령께서 이것을 통해 보여 주시는 것은 첫째 성막이 서 있는 동안에도 지성소로 들어가는 길이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라. 그것은 현재를 위한 모형이었으니, 그에 따라 예물들과 희생제물들을 드려도 양심에 관해서는 섬긴 자를 온전케 할 수 없었도다. 이 예배는 오직 먹는 것과 마시는 것, 여러 가지 씻는 것과 육신의 율례들에 근거한 것으로 이것들은 개혁의 때까지만 부과된 것이로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다가올 선한 것들의 대제사장으로 오셔서,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러한 건물이 아닌 더 크고 더 온전한 성막을 통하여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신의 피로 한 번 성소에 들어가셔서 우리를 위하여 영원한 구속을 이루셨느니라.』 분명히 이 구절들은 구약의 “성막”을 “신약의 그림자”로, 곧『현재를 위한 모형』으로 제시하고 있다. 성막의 율례에 속한『먹는 것마시는 것, 여러 가지 씻는 것육신의 율례들』은『개혁의 때까지만 부과된 것이』었다고 말씀한다(히 9:10).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초림하심으로써 성막의 율례를 “개혁”할 때가 이른 것인데, 주님께서는 다가올 선한 것들의 대제사장으로 오셔서, 손으로 지은 건물이 아닌 더 크고 더 온전한 성막을 통하여 구약의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신의 피로 한 번 성소에 들어가셔서 우리를 위하여 영원한 구속을 이루셨던 것이다. 그러니까 초림하신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제물로 바쳐지심으로써, 곧 이 개혁된 새 제사로 인하여 다시는 죄를 위한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구약의 성막에 드리워진 “신약의 그림자”를 살펴본다면 이를 이해하는 데 더욱 도움이 될 것이다.



일례로 성막의 “번제단”은 “십자가의 그림자”이다. 성막에 들어선 죄인은 하나님께서 임재해 계시는 “지성소”로 가는 길의 첫 들목에 놓인 번제단을 보게 되는데, 불로 희생제를 드리는 번제단은(출 38:1) “놋”으로 되어 있으며(출 38:30), 그 치수가 사방 모두 “5큐빗”이다. “5”는 성경에서 죽음을 나타내는데(창 5:5, 행 5:5), 매일 아침과 저녁마다 거기서 “불타는 어린양”을 볼 수 있었다. 즉 “놋”(심판을 상징)으로 만든 번제단에 “어린양”이 죄인 대신 불타고 있는 것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묘사하는 것이다. 그곳에서 불타는 어린양이 지옥에서 불타야 할 죄인을 대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모습 자체에는 “대속”만 있을 뿐 “행위”가 없다. 우리는 구약의 이 번제단에서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그 심판을 죄인을 대신해서 받으신『하나님의 어린양』(요 1:29)만을 읽게 된다!



십자가에서 인류를 대신해 희생제물로 드려지신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인해(계 5:12) 죄인들이 죄 문제를 해결하고 셋째 하늘 “지성소”에 계신 하나님께 이를 수 있게 되었다. 즉 성막 안뜰로 들어간 뒤 제일 먼저 보게 되는 “번제단의 심판의 불”은 이 세상 종교들이 틀린 이유를 보여 준다. 그들은 “죄 문제”를 잘못 다루고 있는 것이다! 인류의 죄 문제는 “행위”로 해결되지 않는다. 하나님의 심판을 대신 받으심으로 죄를 제거해 주신『하나님의 어린양』을 통해서만, 곧 그분을 “믿음”으로써만 해결되는 것이다(롬 3:28, 갈 2:16).



이처럼 죄인이 지성소에 계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은, 그리스도께서 죽으셨을 때 성소와 지성소를 가로막고 있던 “휘장”이 찢어졌기 때문이다.『그때에 예수께서 큰 음성으로 소리지르신 후 숨을 거두시니 성전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둘로 찢어지더라』(막 15:37,38). 찢어진 휘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찢어진 몸을 상징한다(히 10:20). 성소와 지성소를 가로막던 휘장이 찢어져 지성소로 가는 길이 열렸듯이, 우리를 위해 찢기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통해 우리가 셋째 하늘 지성소에 계신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로 인하여 담대하게 지성소에 들어가나니, 그가 우리를 위해 바치신 새롭고 살아 있는 길로 휘장, 곧 그의 육체를 통하여 들어가느니라』(히 10:19,20). 이 단순하고도 명쾌한 “그림자”(모형)를 부인하고 성경의 저자이신 성령님을 거슬러 쓸데없는 것을 가르치는 자들을 “거짓 교사”라고 부른다면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벧후 2:1)



김 교수는 인터뷰에서 “구약이 옛 약속이고 신약이 새 약속이라는 말도 이상하긴 마찬가지다.”라고 했다. 세상에 이런 몰상식한 소리가 어디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새 언약의 피니라.』(막 14:24)고 말씀하셨다. 사도 바울은 구약을『옛 언약』(고후 3:14)이라고 했다. 자기가 말하는 것이나 주장하는 것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헛소리를 지껄이는 자가 누구인가?(딤전 1:5-7) 하나님께서는『지식이 없는 말로 이치를 어둡게 하는 이 자가 누구냐?』(욥 38:2)라고 물으신다. 성경은 그런 자들에게서 속히 빠져나오라고 거듭 명령하고 있다!(롬 16:17, 딤전 6:3-5)


2017년 01월 26일
한승용 / 킹제임스성경신학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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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도의 단번 속죄를 부정하는 거짓 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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