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칼럼   |   베드로가 책망받은 이유
입력시각 : 2017-02-27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일을 막아서는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이 되는도다. 이는 네가 하나님의 일들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들을 생각함이라.”고 책망하셨다( 마 16:23).
인본주의(Humanism)란, 하나님 없이 인간이 모든 것의 중심이 되어 인간의 권위와 가치와 능력을 주장하고, 인권을 강조하며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판단과 결정을 하게 만드는 사상이다. 이것은 오늘날 언론, 교육, 종교, 문화, 인터넷, 음악, 영화 등 갖은 형태로 사람들에게 깊숙이 침투되어 있다. 현 세상에 만연해 있는 인본주의는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만들어 하나님을 배제한 삶을 살게 한다. 그 결과 디모데후서 3:1-7에 예언된 대로 마지막 날들에 아주 어려운 때에 있을 일들이 현재 일어나고 있다. 비단 이것은 세상에서만 벌어지는 일들이 아닌데, 이 마귀적인 인본주의는 세상뿐 아니라 “교회들” 안에도 깊숙이 침투되어 있어 성도들의 믿음을 파괴시키고 있는 것이다. 교회들에 침투한 인본주의로 인해 성도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돈과 쾌락과 “자기 자신”을 더 사랑하게 되었고(딤후 3:2-4) 급기야 예수 그리스도를 교회 밖으로 내몰게 되었다(계 3:20).





교회 시대는 라오디케아 교회를 끝으로(계 1:11) 막을 내리게 되는데, 휴거가 임박해 있는 현 시대의 교회가 바로 마지막 라오디케아 교회인 것이다. 라오디케아는 “시민의 권리, 사람들의 권리”(인권, human right)라는 뜻으로서, 이 시대의 교회에는 하나님의 권리는 없고 사람들이 권리를 갖는다는 점을 그 이름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성경은 현 시대와 같이 “인간”의 권리가 하나님보다 더 높아진 시대가 도래할 것을 미리 예견하여 유독 라오디케아 교회를 향해서만 라오디케아“인”들의 교회(계 3:14)라고 부르고 있다. 피터 럭크만 목사는, “인본주의는 현재 교회 안에 들어온 가장 큰 대적(adversary)이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어째서 교회들이 “사탄적인 인본주의 교회들”로 전락해 버린 것인가? 이에 대한 원인을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향해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마 16:23)라고 책망하신 말씀에서 고찰해 보도록 하자.





1. 복에 관한 메시지만 들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당시 올바르게 신앙 고백을 했던 베드로는,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마 16:17)라는 주님의 말씀을 들었다. 이때 베드로는 말없이 잠잠히 있었다. 하지만 주님께서 고난과 죽음, 즉 “십자가의 말씀”을 전하셨을 때에는(마 16:21) 즉시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이런 일이 결코 주께 있어서는 아니되옵니다.』(마 16:22)라고 말하며 주님을 대적하는 위치에 섰고, 그로 인해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라는 책망을 듣게 되었다.





베드로의 경우를 현 시대에 적용해 보면, 세상 교회들 안에는 “복”에 관한 메시지들로 넘쳐 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대표적으로 조엘 오스틴, 로버트 슐러, 조용기처럼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건강과 부를 얻게 되고 만사형통한다고 가르치는 번영 신학자들과 은사주의자들이 그러하다. 이들은 “적극적인 사고방식”과 “긍정의 힘”을 내세워서, 하나님의 뜻은 현 생애에서 건강하고 복을 받으며 성공하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그들은 영원에 대해 관심조차 없기 때문에 오직 이생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래서 구원받지 않은 수많은 사람들이 이들의 메시지에 열광하며 그들의 교회들로 몰려든 것이다. 마르크스와 레닌이 했던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민중이 원하는 것”을 그들에게 준 것이다. 예수님 믿으면 잘 되고 복 받을 수 있다고 하는데 누가 싫어하겠는가! 이 지옥의 대기자들은 자기들의 유익을 위해 소위 “복된” 메시지가 전파되는 곳으로 모여들었을 뿐이다.





그러나 인생은 풀의 꽃과 같이 곧 시들어 버릴 것이기에 영원을 대비하는 삶을 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죄인들에게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필요하고, 구원받은 성도들에게는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며 영광스러운 영원을 준비하게 할 수 있는 말씀이 필요하다. 하지만 인간은 이러한 “십자가의 말씀”을 좋아하지 않는다. 거기에는 자기 부인과 고난, 희생이 수반되기에 동참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이런 민중의 필요를 잘 알고 있는 거짓 목사들은 자신들의 배를 위해 사람들을 끌어다 모아서는, 성경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는커녕 그들의 귀를 즐겁게 해 줄 말들만 골라서(딤후 4:3) 그럴듯한 언변으로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다(롬 16:18). 많은 교인들이 그들을 “주의 종들”로 착각하고 있지만 그들의 실체는 의의 종으로 가장한 『사탄의 종들』(고후 11:15)이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마 4:4)을 들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고 자신에게 이익이 될 만한 말씀만 듣고자 한다면 베드로처럼 사탄의 편에 서게 될 수밖에 없고, 소위 “복되고 좋은 것”만 들으려 한다면 거짓말하는 영에게 속아 멸망했던 아합처럼 될 수밖에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왕상 22:1-40).





2. 하나님의 일들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베드로를 책망하신 것은 그가 하나님의 일들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네가 하나님의 일들을 생각하지 않고』(마 16:23). 하나님의 일들은 죄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성도들을 양육하는 것인데, 여기 문맥에서는 복음(고전 15:2-4)과 관련하여 『예수께서... 고난을 받아야 될 것과 죽임을 당할 것과, 셋째 날에 다시 일으켜질 것』(마 16:21)을 말씀하고 있다.





교회가 해야 할 “하나님의 일”은 당연히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많은 교회들이 자기들도 복음을 전한답시고 떠들어 대지만,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예수님을 당신의 삶에 모시세요... 예수 믿으면 만사형통합니다.”와 같은 말들을 주절대면서 마치 그런 말들이 복음인 양 착각하고 있다. 그들이 전하는 메시지에는 “십자가”가 없다. 그들은 그리스도인들이 따라야 할 대상인(고전 11:1) 사도 바울이 전했던 것처럼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고전 1:23)를 전파하지 않는다. 이에 사람들은 그들의 십자가 없는 “복음”과 십자가 없는 “예수”를 매우 잘 받아들인다. 이처럼 성경에서도 『또 다른 예수... 또 다른 영... 또 다른 복음을 전파하면... 잘 용납』했던 교회가 있었으니 바로 고린도 교회였다(고후 11:4). 이들은 너무도 육신적이어서 하나님으로 가장한 마귀가 던져 준 미끼, 곧 성경과는 전혀 “다른 것”을 분별없이 덥석 물어 버린 것이다.





이 마지막 교회 시대의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너무 육신적이고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기에 성경대로 복음을 전하면, 즉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를 전하면 반감을 갖고 거부하며 어리석은 짓으로 취급해 버린다. 그래서 세상 교회들은 사람들에게 어리석게 안 보이려고(고전 1:18) 슬며시 십자가를 숨긴 채, 인간의 지혜로 고안해 낸 갖가지 방법으로 인본주의적인, 사역 아닌 사역을 하고 있는 것이다. 교회들 안에 성경적 복음이 온데간데없고, 건강, 지압, 경락, 웰빙, 사영리 등으로 치장된 『다른 복음』(갈 1:7)만 남아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결국 그들은 십자가를 전파하면 겪게 될 박해나 모멸감을 피하려고 십자가를 숨긴 채 『육신에 좋은 모양』만 내면서 타협하고 있는 것이다(갈 6:12). 하지만 사람들이 거부한다 해서 그들이 듣기에 좋은 내용들만 전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 사탄의 일을 하는 것이다!





3. 사람의 일들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가 하나님의 일들을 생각하지 않은 것은 『사람의 일들을 생각』하고 있기(마 16:23)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다. 교회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으면 필연적으로 사람의 일을 생각하게 되어 있다. 사람의 일을 생각하게 되면 반드시 하나님의 일을 그르치게 되어 있는데 육신과 성령은 절대 함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육신은 성령을 거슬러 욕심을 부리며 성령은 육신을 거스르나니 이들은 서로 반목하여서 너희가 하고자 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느니라』(갈 5:17). 뿐만 아니라 육신을 따라 사람의 일들을 생각하면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만다(롬 8:7). 하나님의 원수는 사탄이다. 따라서 사람의 일을 생각했던 베드로가 “사탄아!”라는 책망을 들은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것이 “사탄적”이라는 점은, 주님께서 “마귀”라고 말씀하신 유다 이스카리옷이(요 6:70) 마리아에게 했던 말에서도 엿볼 수 있다. 『어찌하여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요 12:5) 그의 마음은 주님보다도 “사람들”에게 맞춰져 있었다. 유다 이스카리옷처럼 마귀에게 속게 되면 하나님을 대적하는 편에 서서 사람의 일들을 하게 된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서 시작한 미국은, 아브라함 링컨이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를 외치며 하나님의 권리를 쓰레기통에 던져 버리기 시작하면서 인본주의가 급속도로 확산되었고 더 이상 하나님의 보호하심 아래 있지 못하게 되었다.





어디 미국뿐이겠는가! 인본주의는 전 세계의 수많은 교회들 안에도 급속도로 확산되어 마땅히 하나님을 섬겨야 할 교회들이 “사람의 일들”에 전념함으로써 하나님을 대적하게 만들고 있다. 하나님과는 전혀 무관한 일들을 교회 안으로 가져와 그런 쓰레기들을 뒤집어쓰면서까지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는 양 열심을 내고 있는 것이다. 갖가지 명목으로 헌금을 걷고, 제직들을 팔아먹으며, 이에 “세상은 넓고 돈도 많은데 할 일이 없자”(사실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모름) 정부나 지자체가 할 일을 손수 나서서 하고 있는 것이다. “가난한 이웃돕기”를 교회 사역인 양 착각하는 것은 물론, 교회 건물과는 별도로 “교육 문화관”을 지어 세상 사람들에게 다양한 취미 활동 공간을 제공해 주고 갖가지 인문학강좌를 개설하면서 이를 “지역공동체”라 부르며 세상과 친구가 되어 버렸는데, 결국 하나님과는 원수가 된 것이다(약 4:4). 그들에게 “교회가 왜 그런 일을 하느냐?”라고 물으면 “전도”가 목적이라고 대답하는데, 이는 “십자가” 없이 전도하겠다는 심산이며 결국 구령(혼을 이겨오는 것)이 아니라 교단을 확장시키고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것이 목적인 것이다. 이로써 그들은 스스로가 사탄의 편에 서 있는 가증한 인본주의 교회임을 시인한 셈이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인본주의 교회들은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호감을 사고 그들을 기쁘게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함으로써 스스로 그리스도가 아닌 사탄에게 속한 자들임을 드러내고 있다(갈 1:10). 성경은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은 그 육신을 욕정과 정욕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갈 5:24)고 말씀한다. 이런 십자가가 없는 육신적인 교회들은 자기들의 배를 위해 성령께 거역하고 대적하며 복종하지 않는다. 그러나 죄와 세상과 육신에 대해 십자가에 못박힌 교회들은 사람을 위해 일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기 위해 하나님의 일들만을 행한다. 그러므로 이 시대에 인본주의 누룩에 취해 있는 교회들은 다음과 같은 바울의 고백을 가슴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나니 그로 인하여 세상이 나에게 십자가에 못박히고 나도 세상에게 그러하니라』(갈 6:14). 이러한 고백이 이 시대에 간절히 요청되는 이유는 오직 십자가만이 인본주의 교회가 되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2017년 02월 27일
김인섭 / 광주성경침례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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