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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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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피터 S. 럭크만 저    /  편집부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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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3월 30일 개정판1쇄 출간| 153*223*20mm 신국판, 반양장 사철제본, 560g | 386 쪽 | ISBN : 9791187227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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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전도서의 저자인 솔로몬왕은 다윗 왕국의 보좌를 이어받아 세상에서 더 이상 누릴 것이 없을 정도로 온갖 복들을 향유해 보았다. 또 그는 그의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그 왕국을 갈라놓으실 정도로 온갖 죄악에도 탐닉해 보았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로부터 전무후무할 정도로 탁월한 지혜를 받은 사람이었다. 이 지혜를 가지고서 세상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일들을 알아보고 직접 목도하고 또 몸소 경험해왔던 그는 결국 “헛되고 헛되도다”라는 말씀으로 그의 설교를 온통 뒤덮고 있다(전 1:2,14; 2:1,11,15,17,19,21,23,26; 3:19; 4:4,7,8,16; 5:7,10; 6:2,4,9,11, 12; 7:6,15; 8:10,14; 9:9; 11:8,10; 12:8). 이 설교에서 솔로몬왕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망각하고 배제한 채로 몰두하고 누리고 가치를 두는 모든 일들이 헛되다는 사실, 그리고 사람들이 하나님을 제쳐두고서는 그 무엇도 제대로 알 수가 없고 아무것도 결코 해결할 수가 없다는 사실을, 수많은 실제의 사례들을 들어가면서 논증한다. 그리고 온갖 헛된 것들로 가득 차 있는 그 인생에 결국에는 죽음이 찾아옴으로써 아무런 가치도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되는 모습을 수차례 그려내고 있다(전 1:4,11; 2:14,15,16,18,19,21; 3:2,19,20; 5:15,16; 6:4,6; 8:8,10; 9:3,4,5,6,10,12; 12:3,4,5,6,7).


그러나 전도서는 일개 허무주의 철학서가 아니다. 전도서는 인류가 빠져드는 온갖 일들에 아주 정통해 있는 한 특별한 설교자의 유서와 같은 설교문인 것이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온갖 일들과 사람들의 인생을 면밀히 검토하고 난 솔로몬왕이 진정으로 전해 주고자 했던 메시지는 이 설교문의 결론부에 등장한다. 바로 그러한 헛된 인생이 끝난 후에 모든 사람에게 닥치게 될 한 가지 일을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죄인은 자기들처럼 살아보았고 자기들처럼 생각해 보았던 이 설교자의 영감받은 말씀에 귀를 기울여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자신이 살아 있는 시간의 마지막을 유념하는 것은 현명한 일이다(전 7:2,4). 수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지혜로운 줄로 알고 살아가지만, 전도서는 바로 참된 지혜를 얻을 수 있는 첫 관문이다. 이 관문을 통과하지 않고서 성경에서 말씀하는 참된 지혜를 얻을 수는 없다. 전도서의 논증 앞에서 인간의 온갖 자부심은 모두 허망한 것에 그 기반을 두고 있음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버린다. 전도서의 결론부는 참된 지혜가 시작되는 곳이다. 주를 두려워함이 바로 지혜의 시작이기 때문이다(시 111:10). 이 책을 통해 삶과 죽음, 그리고 하나님을 배제해 놓은 모든 일들에 관해 올바른 시각을 지님으로써, 해 아래서 각자에게 주님께서 주신 기회와 시간을 지혜롭게 운용하는 독자 여러분이 되시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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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럭크만 박사(Dr. Peter S. Ruckman)

피터 럭크만 박사는 현재 미국 플로리다 주 펜사콜라에 있는 성경침례교회(Bible Baptist Church)의 목사이며, 펜사콜라 성경 신학원(Pensacola Bible Institute)의 설립자이자 원장으로서 40년간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럭크만 박사는 밥 존스 대학교(Bob Jones University)에서 Ph.D.를 받았지만, 그 학교의 신학 노선과는 일치하지 않는다.
저자는 존 칼빈 이래로 500여명 이상의 유명하다는 성경 주석가들이 주석서에 범해 놓은 주요 오류들을 일일이 지적하여 바로잡았으며, 창세기, 출애굽기, 욥기, 시편, 잠언, 소선지서, 마태복음, 사도행전, 히브리서, 요한계시록 등의 주석서를 저술함으로써 올바른 성경 진리를 밝히고 있다.
또한 럭크만 박사는 <킹제임스성경>이 왜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인가를 권위 있게 설명하고 증명할 수 있는 독보적인 학자이다.
특히 그의 저서 <필사본 증거>, <알렉산드리아의 이단들>, <신약 교회사>, <킹제임스성경 유일주의> 등에서 그 사실을 분명하게 밝혀 주고 있다. 그는 주석서와 성경 교리에 관한 150여 권이 넘는 책의 저자이며, 세계 전역에 있는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의 존경받는 스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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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례>


역자 서문 / 5


들어가는 말 / 8


전도서 개관 / 17


전도서  1장 / 41
전도서  2장 / 74
전도서  3장 / 107
전도서  4장 / 133
전도서  5장 / 149
전도서  6장 / 169
전도서  7장 / 190
전도서  8장 / 228
전도서  9장 / 262
전도서 10장 / 299
전도서 11장 / 334
전도서 12장 / 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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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66권 중에서 특히 현대에 적용될 만한 두 권의 책을 꼽는다면, 그 두 권은 바로 신약의 골로새서와 구약의 전도서가 될 것이다. 오늘날 거듭나지 못한 일반 대중에게는(성경적인 용어로는 『이방』이다) 솔로몬이 『해 아래서』 했던 말씀이 필요하고, 배교한 근본주의자 집단, 특히 기독교 교육자들에게는 바울이 골로새인들에게 보낸 서신에서 했던 말씀이 필요할 것이다(골로새서 주석).


거듭나지 못한 일반인들에게는 텔레비전이라는 대중매체가 물질주의와 인본주의를 조장함으로써 저주가 임했고, 그리스도를 위한 일꾼들을 훈련시키는 임무를 맡은 기독교 교육자들에게는 철학과 전통이(골 2:8) 성경의 권위 위에 올라섬으로써 저주가 임했다(<킹제임스 유일주의 대 학문 유일주의, King James Onlyism versus Scholarship Onlyism>, 1992). 보수주의와 근본주의 대학, 기독대학, 신학교들은 『모든 지혜와 지식의 보화』(골 2:3)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찾을 수 없다고 결론지어 버렸다. 그들은 그 “보화들”이 히브리어 헬라어 어휘사전 속에서 발견되는 것이라고 결정했기 때문에, 자연히 하루 24시간 내내 파괴적 성경 비평가들의 의견과 전통으로 <킹제임스성경>을 고쳐서 제거하는 일을 소명으로 삼게 되었다. 이 배교자들 대부분은 자기들 중 아무도 평생 본 적이 없는, 그러나 익살스럽게도 “원본”이라고 불리는 잃어버린 종이 뭉치에 대해서 충성을 맹세했다. 현재 살아 있는 사람이든 이미 죽은 사람이든 간에 1800년 동안 그 누구도 그것을 본 적이 없었다. 이 학교들의 교육과정은, 그 교수진이 <킹제임스성경>에서 단어나 구절을 고칠 때마다 그것은 성령님이 그들에게 “지혜와 지식의 보화를 계시”해 주신 것이라고 가르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이런 학교의 지도자와 교수들 모두는 자기의 선호 대상과 자기의 의견 가운데로 자기를 인도한 것이 성령님이셨다고 가장했다.


현대 사회는 텔레비전을 통해서 육신을 드높이고 물질주의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한다. 인본주의자들은 마치 이 퇴비더미에 무언가 종교적이 될 만한 것이 있는 것처럼 느끼게 만들어 주었지만, 인본주의란 무신론을 우아하게 표현한 것일 뿐이다. 자연주의는 그 두 가지 철학(물질주의와 인본주의)의 기본 토대이며, 또한 경험주의, 실용주의, 실증주의의 토대가 된다(<과학과 철학, The Christian's Handbook of Science and Philosophy>, 1985). 그것은 B.C. 800-100년 정글의 이교 신앙이 “그럴듯한 용어”로 옷 입은 것에 불과하다. 죽은 자가 실제로 부활한다는 사실을 거부한 것은 바로 아테네의 철학자들이었다(행 17:32). 옛적의 동성연애자 소크라테스도 부활을 거부했다. 그가 살았던 방식으로 판단하건대 그는 어떤 “신”에게든, 심지어 그가 자살하기 전에 수탉을 제물로 바쳤던 뱀 신에게조차도 개인적으로 해명할 의무를 느끼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아테네의 철학자들은 모두, 힌두교에서 말하는 것처럼 “혼들”이 동물이나 사람으로 윤회하는 것이 아닌 이상, 사람이 벌을 받는 것은 살아 있는 동안이지 “내세” 같은 것은 없다고 믿었다. 창조주께 죄에 대해 해명할 책임이란 것은 결코 고려해 보지 않았다. 그리스 철학자들 중에서 모든 상황을 완전히 고려했던 사람은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대학원에 이르기까지 모든 세속 교육의 배후에 깔린 기본 철학은 다음과 같다. 바로 “육체의 오감으로 감지될 수 없는 것은 실재하는 것이 아니며, 고로 거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도서는 한 “이신론자(deist, 하나님이 인간 삶의 세부사항에 관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 - 역자 주)”에 의해 기록되었는데, 그의 “삶의 방식”은 극단적 물질주의에 전적으로 자신을 내맡기는 것이었다. 이 사람은 자기가 성, 음악, 포도주, 음식, 취미, 일, 성찰, 육체적 쉼과 잠 등 육신에 속한 온갖 것들을 시험해 보는 일에 일생을 바쳤다고 실토했다. 하지만 그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전공해 본 적은 없다. 이와는 정반대로 그는 자기의 “성적 본능”을 만족시키고자 1,000명의 여인과 관계를 가짐으로써, 하나님께서 왕들에게 명하신 세 가지 명령에(신 17:16,17) 불순종하고 말았다. 그는 결국 성경에 나오는 사람들 가운데서 가장 물질주의적이고 성욕에 빠진 우상 숭배자 중 하나로 끝을 맺고 말았다(왕상 11:1-10).


솔로몬왕의 “일기장”이 유익한 이유는, 솔로몬이 바로 현대인들이 숭배하는 모든 것에 접근할 수 있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첫 번째 세 가지는 돈과 섹스와 교육이다. 솔로몬은 현대 뉴스미디어에 나오는 유명 인사들이 전혀 상대가 될 수 없을 정도로 그 세 가지 모두에 대해 엄청나게 잘 알고 있었다. 여러분이 직접적인 경험을 추구하는 사람일진대, 바람피우기, 고급 주택, 향락, 재산, 쾌락에 관한 한, 솔로몬이 “최고봉”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현대 미국 사회에서는 구리가 너무도 귀하여 동전 속에 아연을 집어넣어야 할 정도였다. 은 역시 너무도 귀하여 25센트, 50센트 화폐를 구리로 주조해야 했다. 그러나 솔로몬 당시에는 이와는 달리 금이 아주 흔해서(왕상 10:21) 은은 모으는 것조차도 귀찮아할 정도였다. 오륙백 명의 남편을 둔 리즈 테일러 같은 일부 상당한 사람들도 솔로몬의 책 속에서는 비전문가로 기록될 것이다. 솔로몬은 수많은 여인들을 매년 자기 마음대로 상대했다. 다른 그 누구도 그 여인들에게 접근할 수 없었고, 그들을 농락한 것으로 인해 아무도 그를 고소할 수 없었으며, 그들 중 아무도 그를 떠나 다른 사람에게로 갈 수 없었고, 그는 산아제한이나 성병에 대해서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현대의 풋내기들은 솔로몬과 동등한 범주 속에 들 수가 없다. 현대의 백만장자로서 “유행의 첨단을 걷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솔로몬과 비길 수는 없다.


전도서의 저자에 대한 주석가들의 반론은(본 서문 다음에 나오는 “개관” 부분 참조) “육신”에서 비롯된 것이다. 현대의 백만장자 그 누구도 하지 못한 온갖 일을 했고 또 월마트, 엑손, 제너럴 모터즈, AT&T 등의 초대형 기업 경영진들보다도 세 배는 부유했던 진짜 왕이 실제로 3,000년 전에 살았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믿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는 육신적인 비평가의 그 육신적인 본성 말이다. 그러나 솔로몬은 실제로 그랬고 또 그런 일을 했다.


여러분이 진화론자라면 B.C. 100년 이후로 교통과 통신에 있어서 진전이 있었다는 것을 믿는 데서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현대인들이 성과 육신에 관해서도 솔로몬이 알지 못했던 무언가 “새로운” 것을 정말로 알고 있다고 믿어야만 한다. 그 진화론 종교가 요구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그러나 또다시 틀렸다. 콜럼버스가 버뮤다 삼각 해역을 향해 출발하기 2,000년도 더 이전에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그리고 바다의 섬들로부터(왕상 11:1) 일천 명의 아내, 즉 왕비들과 후궁들을 취한(전 7:28) 솔로몬이 알지 못했으나 여러분은 알고 있는 그런 육신적 쾌락은 아무것도, 정말이지 결코 아무것도 없다. 문제가 되는 것은 솔로몬이 이 모든 일들을 경험한 후에 “잘못된 결론”에 도달했다는 사실 때문이다. 최소한 모든 무신론자들과 인본주의자들을 포함하여 모든 물질주의자들의 눈에는 “잘못된” 것이다. 여러분이 알듯이, 사회 고위층 인사들로부터 빈민가의 마약 중독자들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영화와 텔레비전 산업에 종사하는 자들도 포함하여) 모든 쾌락주의자들에 따르면 솔로몬은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 옳았다(그러나 그는 그러지 않았다).


“전체 일의 결론을 들을지니, 사람이 죽을 때는 개처럼 죽고(전 9:5) 그 뒤에 아무것도 없으므로(전 9:6)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라(전 8:15). 멋대로 행동하라. ‘활기 넘치는’ 인생에는 ‘운을 걸고 해보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라!”


그러나 솔로몬은 그들의 기대를 완전히 무시한 채, 여러분이 아무도 모르게 어둠 속에서 행한 일로 인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심판하실 것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키라... 이는 하나님께서 선이든 악이든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것들을 심판하실 것임이라(전 12:13,14).


“잘못된” 결론이다. 유치원에서 대학원에 이르기까지 소비에트식 학교제도에 속한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죽은 후 전능하신 하나님께 개인적으로 해명할 책임이 있음을 말해 주어서는 안 되도록 되어 있다. 교사들은 그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암시조차 주어서는 안 된다. 교사들은 혼이 소멸하여 의식이 없어지거나 영원한 물질 속에 화학적으로 흡수된다는 이야기가 아닌 이상, 학생들에게 무덤 이후의 삶에 대해 아무것도 말해주어서는 안 된다. 이것은 물질주의다.


미국의 경우, 모든 학교 구내에서는 그런 내용을 인쇄하거나 게시하는 것조차도 허락되지 않는다. 그런 것들을 가르친다면 “현대인들” 사이에 엄청난 감정적 혼란을 불러일으킬 것이고 교실 안에는 큰 소동이 벌어질 것이다. 그리하여 그런 내용들은 물러나 버렸고, 대신에 문자 그대로 록 음악과 마약, 콘돔, 낙태, 강간, 방탄조끼가 들어서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모든 남녀 학생들을 그들이 손과 발, 눈과 입, 생각과 시간을 가지고 했던 일들로 인해 심판하실 것이라는, 모질고 “남의 기분을 모르는” 가르침은 절대로 고려되어서는 안 되었다. 기원전 아테네인들 중 아무도 그 가르침을 믿지 않았고(행 17:31,32), 현대 교육제도는 이 기원전의 수준에(B.C. 500-100) 머물러 있는 것이다. 이 원시 이교적 신앙은 과학적 진보나 “인간 본성에 관한 지식의 거대한 진전,” 또는 “성격 이해에 관한 돌파구”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순전히 현대인들의 감정적 대혼란에 기인한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사람이 행동하고 말하고 생각하는 것을 알지 못하신다고 가정한다. 사람은 오직 자기 자신에게만 해명할 의무를 가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생각들을 『일일이 아신다고 말씀한다(겔 11:5). 솔로몬은 이 『은밀한 것들이 심판받게 될 것이라고 하며, 바울은 그 은밀한 것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심판받을 것이라고 한다(롬 2:16). 이것은 철학박사 학위를 얻기 위한 철학 논문의 관점에서는 잘못된 결론이다. 최소한 처세술이 능한 현대의 인도주의자에게는 그렇다. 솔로몬은 뉴스미디어와 국제연합과는 한패가 되지 못할 것이다. 그는 개인의 죄들을 다루는 개인에 대한 심판 자리에서 사람이 개인적으로 하나님께 해명할 의무가 있음을, 그리고 그 일이 죽은 후에 벌어질 것임을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전도서는 진정으로 진리를 추구하지만 거듭나지는 않은 현대인이 특히 공부해야 할 책이다. 『주를 두려워함이 지혜의 시작』이므로(시 111:10) 지혜는 전도서의 끝에서(전 12:13) 시작될 것이다. 그 다음 계속해서 진리를 추구한다면 결국 신약에서 『모든 지혜와 지식의 보화』(골 2:3)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 보화들은 백과사전이나 대학 교과과정, 과학 잡지, 또 심지어 1,200만 권이 넘는 책들을 소장한 미국 의회도서관에서도 발견되지 않으며, 오직 “한 사람” 안에서 발견된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가 이 모든 일에서 빠져나올 것임이라』(전 7:18).


솔로몬왕은 말 그대로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모를 정도로” 많은 돈을 가졌다. 그는 아를린 홀튼(펜사콜라 기독대학)과 마찬가지로 그 돈을 혼들을 이겨오는 데는 사용하지 않았고, 그저 빈둥거리면서 돈을 없애 버릴 묘수나 생각해 내야 했다.


현대인들은 섹스를 숭배한다. 솔로몬은 이성적으로는 남자들 백 명이라도 취할 수 없을 정도의 많은 아내를 두었다(백 명일 경우에도 각각 열 명씩이 된다). 그는 2년 반이 넘는 기간 동안 아침마다 새로운 아내를 얻었고, 그의 아내들은 아무도 그를 배반할 수 없었다. 그들 중 누군가가 임신했다면 그들이 낳은 아이는 분명히 다른 사람의 아이가 아닌 솔로몬의 아이였다.


현대인들은 지성적인 지혜를 숭배한다. 그들은 문자 그대로 교육 “광신자들”이다(<반지성 선언, The Anti-Intellectual Manifesto>, 1992). 솔로몬은 이제껏 살았던 사람들 중 가장 현명한 사람이었고, 아인슈타인, 클라렌스 다로우, 조지 버나드 쇼, 어니스트 헤밍웨이, 벤 프랭클린, 버트런드 러셀, 폴 틸리히를 합쳐 놓은 것보다 더 많은 “격언들”과 심오한 잠언들을 기록했다. 그것도 그냥 독서나 명상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 직접적인 경험으로 얻어 기록한 것이다. 거기에다 또 그는 합창단들, 특이한 악기들, 미술 작품들, 병거와 말들, 정치, 사육, 원예, 조경, 경작, 철학을 모두 향유했다. 무엇보다도 그는 그 이전이나 이후로 아무도 점유하지 못한 지위에 있었다. 그는 성경을 믿는 백성을 통치하는 백만장자 군주였다.


전도서는 인본주의자, 물질주의자, 또 “인간이 만물의 척도”라든지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우둔한 모든 현대인들을 위해 기록된 책이다. 전도서는 또 “성공이란 현금과 채권을 쌓아 두거나 인기 영화배우들과 직업 모델들을 많이 두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부자들을 위해 기록된 책이다. 내가 알기로, 성경 66권 중 전도서만큼 현대인들이 숭배하는 것들을 대적하여 큰 소리로 분명하게(그리고 강력하고 끈질기게) 거리낌 없이 이야기하는 책은 없다. 이 책은, 거듭나지 못한 죄인의 본성 안에 들어 있는 온갖 육신적, 정신적 충동에 자신을 내맡김으로써 “자연인”이 해보고 싶어 하는 모든 일을 해보았던 한 사람의 경험을 기록한 것이다. 그는 그 후 최종 결론에 도달했는데 그 결론은 바로, 하나님을 제쳐놓고서는 인생을 이해할 수 없고, 초자연적인 계시를 제쳐 놓고서는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해 알 수 없으며, 자연적인 추리로는 수고와 고통으로부터 무언가를 배울 수 없고, 무덤 이편에서는 모든 해답을 찾아낼 수 없다는 것이다.


이제껏 살았던 사람들 중 가장 현명한 사람인 솔로몬은, 그가 논의를 끝낸 뒤인 B.C. 600년에서 A.D.1990년까지(2590년간!) 오십 명의 철학자들이 다루고자 애썼던 분야를 미리 완전히 다루고서는 결국 “반지성주의자”로서 끝을 맺는다. 전도서 12:12을 보라. 그 전도자의 설교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1. 진리의 말씀들을 찾으라(요 17:17).
2. 많은 책들로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골 2:3).
3. 사람이나 주위 환경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라(마 10:28).
4. “갑자기 떠나간” 후에 하나님께 해명할(개인적으로 그렇게 하게 될 것이다 - 롬 14:12) 준비
    를 하라.


여러분이 “해 아래” 삶에 대한 이 공부를 즐겁게 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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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 헛되고 헛되도다. 전도자가 말하노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9 더군다나 전도자가 현명하므로 백성들에게 여전히 지식을 가르쳤으니, 곧 그가 주의를 
      기울이고 탐구하여 많은 잠언을 정리하였도다.
  10 전도자가 합당한 말들을 찾아내려 애썼으니 여기 기록된 것이요, 정직하며 진리의 
      말씀들이라.
  11 현명한 자의 말들은 찌르는 막대기들 같고, 집회의 선생들에 의해 박힌 못들 같으니, 한
      목자에게서 받은 것이라.
  12 내 아들아, 이것들로 더욱 각성하라. 많은 책을 만드는 것은 끝이 없고, 많은 공부는 몸을
      피곤케 하느니라.


바로 여기 설교 끝 부분에 그 전도자가 최초에 했던 증언이 등장한다(전 1:2).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밤에라도 사람의 영을 거두어 가실 수 있다. 이 땅 위에 사는 모든 사람은 오늘밤에 죽을 수가 있다. 그러면 사람이 아닌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게 된다. 재는 재로, 흙은 흙으로 돌아가며, 아무도 그를 그리워하지 않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 사람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바로 사람에게 하나님이 필요한 것이다. 인간은 아무것의 척도도 아니다. 만물의 척도는 바로 하나님이시다.


8절에서 『전도자』라는 단어를 주목하라. 9절에도 나오고(『전도자가 현명하므로』) 10절에 또다시 나온다(『전도자가 합당한 말들을 찾아내려 애썼으니』). 10절에서 그 전도자는 사도 바울이 젊은 “전도자”에게 주었던 디모데후서 1:13의 명령에 순종하고 있다. 10절의 “전도자”가 바로 11절에 나오는 『현명한 자』이다. 왜냐하면 9절에서 『더군다나 전도자가 현명하므로』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 “전도자”가 11절에 나오는 『집회의 선생들』 중의 하나임을 의미한다. (교회는 “불러냄을 받은 집회”이다.) 어떤 집회를 주관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주의를 얻고, 그 상태를 지속하고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말씀을 전하는 자는 그렇게 하면서 회중을 교화시키고 책망하고 바로잡고 훈계하고 위로하고 또 회중에게 동기를 부여해야 한다(딤후 4:2). 신구약 모두에서 “설교”는 바로 그런 것이다(딤후 4:2 주석 참조). 그런 일을 하는 “학자”나 “교사”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학자는 “연구하고” 교사는 “가르친다.” 단지 가르치는 것이나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것으로는 아무것도 못을 박듯이 박히게 할 수 없다. 진리가 박히게 하려면 “설교”를 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고 싶어 했던 이유가 바로 설교 때문이었음을 주목하라. 그들은 “설교”를 듣기 위해 회중들이 모인 것을 두고(막 11:5, 막 2:2, 눅 4:44) 질투했다. 침례인 요한이 설교를 했던 것과 똑같이(막 1:7, 눅 3:18) 예수님께서도 “설교”를 하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설교” 사이의 차이점을 보고 싶다면 마태복음 13장과 마태복음 23장을, 혹은 요한복음 15장과 요한복음 7:28,38; 12:44을 비교해 보라. “설교”는 교화시킬 뿐만 아니라, 격분시키고(행 7장) 분노케 하며(눅 6:11) 유죄를 선언하고(행 2장) 행동을 유발시키는 강제력이 있다(행 26:24).


“설교”에 관한 한, 현대 히브리어 헬라어 학자들은 아무도 “강력한 일격”을 가할 줄 모른다. 미국에서 인정받고 있는 주요한 기독대학, 종합대학, 신학교의 현대 성경 교사들 중 『현명한 자의 말들』(전 12:11)을 “설교함”에 있어서 쇠망치로 나비 날개라도 부서뜨릴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교회사 전체에서 볼 때 교사들 중에서 정말로 설교를 할 수 있던 사람은 아주 적다. 마틴 루터와 아노 게벨라인이 그러했던 두 사람이고, R.A. 토레이와 J. 프랭크 노리스, 이 두 사람 정도를 더 추가할 수 있겠다. 클라렌스 라킨과 C.I. 스코필드는 설교를 하지 못했고, 드와이트 펜티코스트와 제인 하지스도 마찬가지였다. 척 스윈돌과 존 맥아더가 강단에서 “설교하는” 모습도 전혀 신통치 못하다. J. 버논 맥기도 설교로 새둥지를 교란시키기에는 불충분했다. 웨버, 커반, 린세이는 평생에 하루도 결코 설교해 본 적이 없다. 스윈돌, 스탠리, 맥아더 등과 같이 그들도 그저 빌리 그래함 같은 사람들의 말씨와 말투를 배워서, 자기들이 가르치는 데에 그 복음전파자적 스타일을 모방했을 뿐이다.


한편 성경을 “가르치는 일”에 관한 한, 커티스 헛슨, 존 R. 라이스, 밥 존스 시니어, 해럴드 사이틀러, 바비 어틀리, 빌리 켈리, 팀 그린, 잭 하일스, 레스터 롤로프 같은 사람들은 아주 어설픈 성경 교사들이었다. 존 R. 라이스는 “사회의 비극”이었고, 커티스 헛슨은 도무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눌” 줄을 몰랐다. 반대로 다비, 코넬리우스 스탬, 에델버트 벌링거, A.T. 로버트슨 같은 사람들은 평생 시원한 그늘 속 강단에서도 전혀 설교해 본 일이 없다.


이런 사항들을 살펴본 것은 바로 커티스 헛슨, 해럴드 오켄가, 엘머 타운즈, A.V. 헨더슨, 제임스 프라이스, 트루먼 달라 등이 <뉴킹제임스성경>을 만들면서 전도서 12:11에 해놓은 짓 때문이다. <뉴킹제임스성경>은 11절에다가 “학자들”이란 단어를 집어넣음으로써, 예수 그리스도께서 기독교 학자들에게 『현명한 자의 말들』을 주시며, 집회를 주관하는 설교자들이 그 말씀들을 얻기 위해서는 학자들에게로 가야 하고, 그래야 비로소 무슨 말씀을 전해야 하는지 알게 되는 것처럼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이런 거짓되고 사적인 해석을 “박힌 못”처럼 단단히 박아두기 위해서 <뉴킹제임스성경>을 만든 배교자들은 『목자』도 “Shepherd”라고 첫 글자를 대문자로 표기하여 목자이신 주님이 되게 함으로써 설교자를 없애 버렸다. 이것은 바라던 결과를 가져다준다. “‘학자들’의 말들은 ~같으니.”


저자의 <히브리서 주석서>나 <시편 주석서>를 한 번만이라도 읽어 본다면 “학자들의 말들”은 마치, 마루 위의 양탄자나 지붕 위의 판자 하나조차 단 2년 동안도 고정시킬 수 없는 녹슨 압정이나 꼬여 버린 못과 같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기독교 학자들은 목자이신 주님께서 그분의 설교자들에게 주신 “말씀들”을 - 오순절에 베드로는 “가르친” 것이 아니라 “설교”를 했다(요 14:23, 막 6:12) - 그분의 입으로부터 흠씬 날려서 해치워 버렸다. 요한복음 1:18, 누가복음 2:33, 마태복음 6:13, 요한복음 3:13, 누가복음 4:4, 마태복음 23:14 그리고 최소한 이외의 스무 군데에서 그랬다. “언제” 그랬느냐고, “어디가” 그러냐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ASV 한 권을 사서 살펴보라. 그래도 잘 모르겠으면 NIV도 한 번 보라. 그래도 분명히 모르겠다면 NKJV와 RSV, NRSV, NEB, NASV, <리빙 바이블>도 살펴보라. 주님이 기록하신 말씀들을 그분의 설교자들의 입으로부터 해치워 버린 곳은 디모데전서 6:5,9,10,20, 디모데후서 2:15, 고린도후서 2:17, 로마서 1:18,25과 이외에도 최소한 100군데가 더 있다.


이 가증한 학문과 흉악한 역본들은 1880년부터 1990년까지 소위 “구원받은” 보수주의, 근본주의 학자들의 작품이다. 그리고 현재(<뉴킹제임스성경>) 그들은 말씀들을 오역하고 변개하고 잘못 해석하고 삭제한 후에 자기들이 성경에 나오는 “말씀들”을 보존하는 자들이라고 인정받고 싶어 한다. 그들은 가능한 한 많은 말씀들을 제거하는 일에 100년 동안(1880-1990) 몰두하고 나서는 『진리의 말씀』(10절)을 보존하는 일을 자기들의 공로로 돌린다. 그것이 바로 기독대학, 신학대학, 성서대학이라는 곳들이다. 엄청난 위선인 것이다(pp.359-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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