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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성경을 갖고 있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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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7년 06월호>
지하철에서 있었던 일이다. 내 앞에 앉은 어떤 아주머니가 불경을 꺼내 읽고 있었다. 한자(漢字)로 크게 쓰여 있었고, 그 옆에는 다시 한글로 쓰여 있었다. 그 아주머니는 자신의 목적지까지 열심히 읽으며 갔다. 그 반대편에서는 다른 아주머니가 쪽성경을 읽고 있었다. 슬쩍 보니 소선지서 부분이었다. “대단하다. 내가 개역성경을 읽을 때는 소선지서 부분은 거의 뜻도 모르고 읽기에 급급했고, 장 수를 채우기에 바빴었는데...” 이때 내 관심은 성경과 불경을 읽고 있는 두 아주머니가 과연 그 뜻을 이해하며 읽고 있느냐는 것이었다.사도행전 8장에 보면 에디오피아 여왕의 내시가 나온다. 그는 천년왕국 때의 이방인의 예표인데, 그 당시에 그는 여호와 하나님을 알았고, 예루살렘에 경배드리러 왔었다. 그는 이 시대의 거의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의 존재를 믿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구원받지 못했었다.) 그러나 그는 창세기 20장의 아비멜렉처럼 양심의 법을 지켰고(롬 2:15), 하나님을 두려워 했기에 이방인 백부장 코넬료(행 10)와 이방인 여인 루디아(행 16:14)처럼 복음의 문(고전 16:9, 고후 2:12)이 열린 사람들 중 하나였다. 그는 빌립에게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듣기 전에는 아직 거듭나지 못한 죄인이었다. 단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경건한 내시였을 뿐이었다. 그는 마치 지하철의 두 아주머니들처럼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마차에서 열심히 성경을 읽고 있었다. 이 세 사람의 공통점은 깨우쳐 주는 사람이 없이는 자신이 읽고 있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글은 무용지물이다. 단지 까만 것은 글이고, 하얀 것은 종이일 뿐이다. 아무리 좋은 박사 논문일지라도 5살짜리 꼬마에게는 딱지를 접는 종이에 불과한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사람이 아무리 부인한다 해도 성경은 스스로를 입증하며 변호한다. 성경을 세상의 기준으로 판단할 수 없는 이유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세상의 어떤 책이 스스로를 변호하겠는가? 불경, 코란, 사서삼경, 논어 등은 그의 제자들마저도 이해하지 못하는 책이 되어버렸다. 지금도 그의 제자들은 그 책들에 기록을 더하거나 빼고 있다. (아니 이럴수가! 현대의 기독교계도 이렇지 않은가? 언제부터인가 세상의 종교와 기독교는 같은 위치에 놓이게 되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성경을 가지고 있다. 비록 변개된 “성서”들일지라도 사람들은 그것을 손에 들고 있다. 필자도 어렸을 때부터 성경(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주신 그 성경인 줄 알고)을 읽었었고, 또 배웠다. 그러나 그 성경(“개역성서”)은 나를 순수한 젖(벧전 2:2)으로 성장시키지 못했다. 나는 훌륭한 장로교인으로는 성장했지만, 정작 성경을 바로 알지는 못했던 것이다.
내가 이해할 수 있었던 구약의 몇몇 책들과 신약의 몇몇 책들을 제외하고는 선지서나 예언서, 특히 다니엘과 요한계시록은 도대체 무슨 뜻인지 몰랐고, 대부분의 목사들과 교수들의 말처럼 잘못될 수도 있는 위험한 책이라서 꺼리게 되었다.
성경 66권 중에서 약 40여 권 정도는 뜻도 모르고 읽거나, 거의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 때는 성경이니까 그냥 읽어야 한다는 정도였을 뿐이었다. 때문에 나에게 있어서 성경은 참으로 어려운 책이 되어갔다. 그렇다고 안 읽을 수도 없었다. 아마 나와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이 대부분이리라.
성경을 백 번, 이백 번 읽었다고 자랑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불경을 천 번 읽으면 무엇하겠는가? 많이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과연 알고 읽었냐는 것이다. 불경에는 영생이 없지만, 성경은 영생을 주시는 생명의 말씀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사실인가. 우리는 하나님께서 성경을 주신 이유와 우리가 성경을 갖고 있는 분명한 이유를 알아야 한다. 그것은 진리의 지식(딤전 2:4)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의 약 70-75만 단어를 주신 이유는 성도들에게 진리의 지식을 주시기 위함이었다. 진리의 지식은 하나님께서 온전하게 보존하신(시 12:6-7) 바른 성경으로만 제시할 수 있다.
어떤 중은 금가루로 불경을 몇 년에 걸쳐 썼다고 한다. 그리스도인의 시각으로는 미친 짓이다. 그런데 요즘 기독교계에서도 성경 필사가 유행한다고 한다. 성경을 필사하는 것 자체를 탓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변개된 성경을 필사하는 것이 그에게 무슨 유익을 줄 것인가?
당신은 개역성서를 쓰다가 <없음>이라고 되어 있는 곳에서 “아멘.”하고 넘어가겠는가? 요한복음 1:18을 ‘독생하신 하나님’이라고 쓰면 옆에 있던 여호와 증인도 “아멘.”할 것이다. 말라키 4:2을 ‘치료하는 광선’이라고 쓰면 옆에 있던 은사주의자들이 “아멘, 아멘, 아멘.”하고 “삼박자 아멘”을 외칠 것이다. 또한 야고보서 5:16을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라고 쓸 때 로마 카톨릭 신부는 “아멘.”하면서 성호를 그을 것이다.
당신은 그리스도인인가? 그렇다면 성경을 갖고 있는 이유를 알아야 한다. 성경은 당신에게 생명을 준다(요 14:6). 또한 진리의 길로 인도하며(요 16:13), 지식으로 가르치고(딤전 2:4), 자유함을 주며(고후 3:17), 거듭난 그리스도인을 무장시키고(히 4:12, 엡 6:13,17), 세상의 마지막과 천년왕국, 새 예루살렘, 새 하늘, 새 땅(계 20,21,22)을 제시한다. 이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당신이 아무리 ‘그 책’을 오래 가지고 있고, 수십 번, 수백 번을 읽는다 해도, 그것을 믿지 못하거나 이해하지 못한다면 당신은 지하철의 두 아주머니와 사도행전 8장의 내시와 같은 수준의 무지한 자(고전 14:38)가 되고 말 것이다.
당신은 분명히 성경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상고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 속에 영생이 있기 때문이다(요 5:39). 당신은 분명히 성경을 믿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말씀을 주의 모든 이름 위에 크게 하셨기 때문이다(시 138:2).
‘성경’을 성경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리스도인만이 할 수 있는 것이며, 성경을 믿는 것도 그리스도인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성경을 상고하고, 묵상하고, 공부하고, 사용하는 것 또한 그리스도인만이 할 수 있다. 당신이 그리스도인이라면 “개역성경도 성경이다.”라는 거짓말에 속지 말고, 성경에 약속된 하나님의 말씀(마 4:4; 5:17-18; 24:35, 눅 16:17; 21:33, 요 10:35; 12:47,48 등)을 믿어야 할 것이다. 성경이 당신에게 단지 기독교인의 표시요, 상징이 될 뿐이라면, 그 책은 당신에게 육법전서와 의학서적들처럼 전문가들이나 보는 어려운 책이 되고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