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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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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2년 04월호>
하나님의 진리가 표현하는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면 그것은 이미 진리가 될 수 없다. 성경 계시에 대한 조명은 주님의 재림이 임박할수록 더욱 분명하게 드러나며, 점진적이고 향상된다.우리가 예언의 말씀에 대한 성경적 고찰을 하는데 있어서 먼저 성경의 영감성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예언의 말씀에 대해 성경이 말하는 그 본래의 의미를 상실하거나 잘못 이해하게 된다. 예언의 말씀에 대해서는 다른 무엇보다도 성경이 가장 잘 가르쳐 주고 있으며, 우리의 올바른 믿음 또한 이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역설하는 예언의 말씀 가운데 대부분이 어떤 특정한 사람이 임의로 전개하거나 아니면 특정한 모임을 중심으로 교리나 체계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들은 학문을 하거나 선동하는 사람이지 성경을 기록된 대로 믿고 성경이 가르쳐 주는 대로 부지런히 성경을 대조, 비교하며 공부했다고는 할 수 없다. 하나님의 진리가 표현하는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면 그것은 이미 진리가 될 수 없다. 성경 계시에 대한 조명은 주님의 재림이 임박할수록 더욱 분명하게 드러나며, 점진적이고, 향상된다. 이 말은 후천년주의자들처럼 세상이 갈수록 나아진다는 진화론적 입장을 취한다는 뜻이 아니다. 루터보다는 칼빈이, 칼빈보다는 요한 웨슬리가, 요한 웨슬리보다는 라킨(Larkin)이, 라킨보다는 럭크만(Ruckman)이 성경을 보다 정확하고 더 깊이 있게 조명을 받았으며, 이전 시대에 알지 못하던 말씀의 깊이와 높이와 길이를 우리에게 제시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철저하게 성경을 중심으로 시대에 따른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을 공부해 나갈 것이며, 그리고 이것을 고찰할 때 먼저 성경의 영감성에 대해 살펴보도록 할 것이다.
I. 예언의 말씀
성경은 신학, 도덕, 역사, 과학 또는 어떤 다른 주제에 관한 체계적인 논문이 아니라 하나님, 인간의 타락, 구원의 방법, 그리고 “각 시대에 따른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을 보여주는 “계시의 책”이다. 성경이 다루고 있는 것은 다음과 같다.
1. 네 가지 인격 : 아버지 하나님, 아들 하나님, 성령 하나님 그리고 사탄
2. 세 가지 장소 : 하늘, 땅 그리고 지옥
3. 세 부류의 백성 : 유대인, 이방인 그리고 하나님의 교회
성경은 “여러 시대와 다양한 방법”으로 조금씩, 점차적으로 인간에게 주어졌다.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들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약 B.C.1600년경부터 A.D.100년에 걸쳐서 약 1700년간 말씀을 기록했다. 성경은 66권으로 된 각 권의 책들로, 즉 구약 39권과 신약 27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성경을 기록한 사람들은 약 42명으로 다윗, 솔로몬과 같은 왕이나 정치가인 다니엘, 느헤미야, 제사장 에스라, 이집트에서 지식을 겸비한 모세, 유대 율법에 정통한 바울, 목자인 아모스, 세리 마태, 어부인 베드로, 야고보 그리고 요한 등은 ‘배우지 못한 무지한 자들’이었으며, 누가는 의사였고, 이사야, 에스겔, 스카랴 같은 능력있는 선지자들도 있었다. 또 성경은 여러 지역과 다양한 곳에서 기록되었다.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성경은 고대 역사, 신화, 전설, 교리와 미신을 “여러 가지 뒤범벅” 해 놓은 책이 아니다. 성경은 계시와 교리에 있어서 진전이 있다. 재판관들은 족장들보다, 선지자들은 재판관들보다, 사도들은 선지자보다도 더 많은 것을 알았다. 구약과 신약은 분리된 별개의 책이 아니다. 신약은 구약 속에 “포용되어져” 있고, 구약은 신약 속에서 “표명된다.” 그래서 레위기는 히브리서를 다니엘서는 요한계시록을 그리고 유월절이나 이사야서 53장은 사복음서가 없이는 이해할 수 없다. 성경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계시이지만 그것은 초인간적이거나 천상(천국)의 언어로 기록되지는 않았다. 만일 그런 식으로 기록되었다면 우리는 그 계시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반면에 성경의 초자연적인 기원은 어느 나라 말로 번역되든지 그 언어의 순수한 형태를 전혀 손상시키지 않으면서도 말씀의 활력이나 능력을 주는 영적 생명력을 잃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이다. 성경의 언어는 세 종류가 있다. 즉 비유적이고 상징적이며, 문자적이다. “네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라.”, “죽은 자들로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지내게 하라.”는 비유적이므로 전후 문맥을 통해 그 뜻을 분명히 파악할 수 있다. 느부캇넷살의 ‘신상’, 다니엘의 ‘네 짐승’ 혹은 ‘일곱 촛대’ 가운데 계신 그리스도에 관해 묘사한 상징적인 표현은 성경의 동일한 장이나 그 외의 곳에 추가로 설명되어 있다. 성경의 문자적 표현은 일반 문법과 수사법에 따라 해석되어야 한다. 즉 성경 말씀을 은유적으로나 영적으로 풀이하는 대신 다른 책들을 볼 때와 같이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성경을 은유적으로, 영적으로 그릇되게 해석한 결과 수많은 교파들이 지금까지 난립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다룰 때 반드시 피해야 할 세 가지는
1. 성경에 대한 그릇된 해석
2. 성경에 대한 그릇된 적용
3. 성경의 위치 바꿈
등이다.
문제는 사람들이 성경 말씀이 계시하시고자 하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한 이유는 주로 사람들의 전통, 환경, 편견, 혹은 성경을 구미에 맞는 교리에 갖다 붙여서 가르치고자 하는 욕구 때문이다.
II. 성경의 영감성
『모든 성경은 하나님께서 영감을 불어 넣으신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훈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 3:16)
가. “하나님께서 영감”을 불어 넣으셨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그 분 자신이 택한 사람들을 명하여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하는 메세지, 율법, 교리 혹은 그 분 자신의 뜻을 기록하게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말씀도 하시고, 또 쓰시기도 하시며(출 31:18; 32:16, 단 5:5,24-28, 마 3:17; 17:5, 요 12:27-30). 또 모세에게도 친히 말씀하신다(출애굽기, 레위기, 신명기). 또한 하나님께서 성육신하셔서 말씀하신다(딤전 3:16, 요 1:5-14). 마태복음과 요한복음은 총 49장에 1950절수가 들어있는데, 그 중 3/5 즉 1140절이 예수님의 말씀이다.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그 분을 보내신 하나님께서 그 분의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다(요 12:49-50). 따라서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시고 글로 쓰실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명하여 대신 말씀하시고 글을 쓰게 하실 수도 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나. 성경 전체가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기록되었는가?
성경의 영감성을 믿는 데에는 크게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1) 정통주의 :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라고 주장하는 주의
(2) 신정통주의 : ‘성경에는 하나님의 말씀도 포함되어 있다.’라고 주장하는 주의
(3) 현대주의 : ‘성경은 하나님에 관한 학문을 인간이 기록한 책이다.’라고 주장하는 주의
성경의 원문에 대한 영감성과 무오무흠성을 부인하는 것은 이미 성경을 믿지 않는 것이며 그것은 학문을 하는 것일 뿐 이미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으며, 시편에서도 『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이라. 흙 도가니에서 단련되어 일곱 번 정화된 은 같도다. 오 주여, 주께서 이 말씀들을 간수하시리니, 주께서 이 세대로부터 영원토록 그것들을 보존하시리이다.』(시 12:6-7), 『는 주께서 주의 말씀을 주의 모든 이름 위에 크게 하셨음이니이다.』(시 138:2)고 말씀하고 계신다. 그 외에도 신명기 4:2, 잠언 30:6, 요한복음 10:35, 누가복음 16:17, 마가복음 13:31, 계시록 22:19 등에서 그 영감성과 중요성을 거듭 강조하고 계신다. 일점일획이란 히브리어에 사용하는 가장 작은 점과 가장 작은 획을 가르키는데, 그것까지 영감을 받아 기록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절대 필요하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특이한 사항은 성경의 영감은 그 기록뿐만 아니라 66권의 정경으로 완성되는 것과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로 그 원문을 그대로 계승하는 것까지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 성경의 기자들은 어떻게 영감을 받았는가?
성경 기자들은 단순히 일종의 ‘마력’이나 ‘황홀경’에 빠져서 마음에 떠오르는 대로 기록했는가? 아니면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그들에게 사용해야 할 정확한 단어들을 지시하셨는가?
생각은 말로 표현될 수 있으며 따라서 그 말은 말하는 사람이나 기록하는 사람의 생각을 정확히 표현해야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생각도 불확실하게 전달된다. 그러므로 성경 기자는 단순히 받아쓰는 일만 옳게 하면 실수를 범하지 않는다.
베드로후서 1:20에 이같은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성경의 어떤 예언도 사사로운 해석이 되어서는 안 되나니』, 즉 어느 누구의 자의로 성경 해석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성경은 성경으로(verse by verse & Scripture by Scripture) 해석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베드로전서 1:10-12은 구약시대 선지자 자신들이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기록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들은 그 당시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했을 뿐 해석은 하지 못했다. 기록자 중에는 영적이지도, 거룩하지도 않은 발람(민 22:38; 23:24), 벧엘의 예언자(왕상 13:7-10; 20:22,26), 사울 왕(삼상 10:10-12; 19:20-24), 카야파(요 11:49-52)도 있음을 볼 때 그들은 단지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는 도구로 쓰여 진 것임을 알 수 있다. 구약 성경의 기자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부어 주신 말씀을 정확히 말하고 기록했다.
모세는 주께서 그에게 다음과 같이 일러 주셨다고 선포한다.
『그러므로 이제 가라. 그리하면 내가 너의 입과 함께할 것이요, 네가 말할 것을 가르쳐 주리라.』(출 4:10-12).
예레미야 선지자도 다음과 같이 선포하고 있다.
『그리고 나서 주께서 그의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기를 “보라, 내가 내 말들을 네 입에 두었노라.』(렘 1:9).
에스겔과 다니엘 및 그 밖의 선지자도 마찬가지이다.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주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니라...』
이같은 표현은 모세오경에 560회, 역사서와 예언서에 300회, 선지서에 1200회(말라키에만도 24회나 된다)로 구약 전체로 볼 때 2000회가 훨씬 넘는다. 이로써 “성령의 영감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이라는 베드로의 말이 그대로 입증된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성경 기자들의 문체가 서로 다른 점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즉 이사야의 문체는 에스겔이나 다니엘과 다르며 베드로서는 요한의 서신이나 바울의 서신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는 쉽게 알 수 있고 설명될 수 있다. 우리가 법률적인 문서를 원할 경우 의례히 법률가를 찾고, 시적인 글을 쓰려면 시인을 택하듯이 하나님께서도 비유로 말씀하실 때에는 에스겔이나 다니엘이나 요한을 택하였고 시적으로 표현하고자 할 때에는 다윗을 택하셨다.
한편 성경의 영감과 소위 오늘날의 시인, 설교가, 웅변가 또는 작가들의 영감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라는 문제가 대두된다. 이를 위해서는 영감과 계시와 조명 사이를 구별지어야 한다. 우리가 앞에서 보았듯이 성경의 영감은 시인, 작가 그리고 대중 연설가의 영감과는 완전히 다르고 독특한 차이가 있다.
성경에서 말하는 영감이란 하나님의 말씀이 성경을 통해 성경 기자나 선지자에게 정확히 전달되는 것을 뜻한다. 성경의 영감이란 인간의 지혜로는 도저히 알아낼 수 없는 것들을 인간에게 보여주시는 것이다. 즉 ‘각 시대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으로 하나님의 섭리적인 뜻 가운데 감춰져 있는 것들을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발표하신 것이다.
성경의 영감은 요한계시록에서 끝났다. 그 이후로는 하나님의 새로운 계시가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오늘날 사람들이 어떤 새로운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한다면 그들은 사기꾼임에 틀림없다.
영적인 깨달음은 성경의 영감이나 계시와는 다르다. 단지 성령께서 믿는 자에게 역사함으로써 성경을 이해할 수 있는 영의 눈이 뜨이는 것이다(요16:12,15). 자연인은 성령의 일을 받아들일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과 영적으로 단절되어 있기 때문이다(고전2:11-14).
그러므로 오늘날 성령께서 하시는 일은 인간들에게 새로운 계시를 전하거나 그들에게 영감을 주셔서 옛 선지자들이나 사도들처럼 말씀을 기록하거나 선포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의 영의 눈을 밝혀 성경을 이해하며 그들이 성경을 깊이 상고할 때 그들의 마음을 뜨겁게 하고, 또한 성경에 기록된 대로 각 시대에 따른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을 그들에게 조명하시는 것이다.
다음 호에는 전천년설의 여러 가지 견해들을 역사적 배경을 중심으로 대조해보도록 하겠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