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총론 분류
절대 진리의 기반이 무너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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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4년 04월호>
『만일 누가 말하려거든 하나님의 말씀처럼 말하고, 또 누가 섬기려거든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능력으로 하는 것처럼 하라. 이는 모든 일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분께 찬양과 권세가 영원 무궁토록 있느니라. 아멘』(벧전 4:11).교회나 성당이나 어떤 종류의 종교단체에 소속된 성직자라도 그들을 따르는 무리 앞에 공개적으로 설 때, 그는 하나님을 대신해 말한다고 주장하는 셈이 된다. 혹자가 스스로 하나님을 대신하여 전파한다는 확신이 없다면,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체해서는 안 된다. 『나의 형제들아, 너희는 많은 선생들이 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더 큰 정죄를 받을 줄 앎이니라』(약 3:1). 야고보가 “우리”라고 말하는 것을 주목하라! 그러므로 자신을 “선생”으로 제시하는 자는 누구나 야고보 사도와 동등한 위치를 주장하는 격이 된다. 사도 야고보는 성경의 정경 중의 한 권을 기록한 하나님의 사람이다. 자기 혼자만 거짓 교리에 현혹된 자보다 타인에게 거짓 교리를 가르치는 자는 응당 더 큰 정죄를 당할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대신하여 말씀을 전파할 때 우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항상 무오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 각자가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말씀을 전하기 앞서 먼저 지금 전하려 하는 바가 참으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인지 확신할 수 있어야 하며, 최소한 전파하는 그 말씀에 살고 죽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
주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신 창조주이실 뿐만 아니라 또한 완전한 인격체이시다. 그분의 성품에는 흠이 없고 비뚤어진 부분이나 균형을 잃은 부분이 없다. 하나님께서는 스스로를 인식하시며,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아신다. 그분은 우리에 대한 모든 것을 아시며, 우리 각자가 계획하는 모든 것에 대해서 분명한 뜻을 가지고 계신다.
인간이 타락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네가 어디 있느냐?”』(창 3:9)고 부르시며 그를 찾으셨고, 그에게 짐승을 죽여 가죽옷을 입히셨으며, 이스라엘이 타락했을 때 주께서는 『이제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사 1:18) 말씀하시며 그들의 죄를 『눈』과 같이, 또한 『양털』같이 되리라고 약속하셨다.
즉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인간에게 그분 자신을 알리시고 그분의 계획 안에 인간을 데려오시려고 다양한 방법으로 역사해 오셨다. 오늘날에는 과거의 선지자들과 사도들과 하나님의 사람들에 의해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죄인인 우리에게 생명의 길을 보이시고, 날마다 하나님과의 교제와 하나님의 계획을 깨닫고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을 위해 살게 하신다.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열 때, 성령께서는 우리 지성의 방에 불을 켜시고, 우리의 식탁에 빵과 우유와 맛난 음식을 차려주시며, 우리의 전쟁터에서 우리를 승리로 이끄시고, 우리 여행길에서 곤고하여 쓰러지지 않게 힘과 위로를 주시며, 또한 이 성경을 열 때 우리는 사랑하는 구주와 주이시며 우리의 신랑이신 그분을 말씀의 동산에서 만나 그분과 교제한다. 이와 같이 성경은 우리의 영적인 삶의 기반이 된다. 『기초들이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할 수 있으랴?』(시 11:3)
■ 현대인의 신학적 타락
밥 존스 시니어는 “성경이 무엇이라 말씀하시든, 그것은 그런 것이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바로 성경으로 모든 문제를 확정할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이제는 성경이 그렇게 말하니까 그대로 믿고 그대로 실행하겠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을 만나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보다 더 어렵게 되었다.
신학교는 갈 곳 없는 낙오자들이 가는 삼류 직업학교가 되었다. 기존 교회들은 영과 진리로 하나님께 경배드리고 하나님의 자녀들을 양육하며 죄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그들을 하나님의 나라로 이겨오는 하나님의 집이 아니라, 종교적인 죄인들에게서 돈을 받고 그들의 종교심을 달래주는 안식처가 되었을 뿐이다. 솔직히 말해서 더 이상 누구도 “진리”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신학의 정의는 더 이상 진리를 탐구하는 학문이 아니다. 이 세대는 하나님을 알려 하지도 않고 그분께 대한 두려워함도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광활한 우주에 진실하신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다는 것을 믿지 않으며, 또한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감찰하시고 판단하시며, 하늘 나라와 지옥, 의와 불의, 선과 악, 진리와 거짓을 나누시고, 장차 온 우주를 불로 심판하실 것이라는 것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심판을 유보하신다는 그분의 자애가 오히려 죄인들에게는 진리에 대한 거부와 불신과 안일을 위한 계기가 되어 버린 것이다. 『악한 일에 대한 징벌이 속히 집행되지 않으므로 사람들의 아들들의 마음이 그들 안에서 악을 행하기로 완전히 정해졌도다』(전 8:11).
바야흐로 신학은 여가 시간이 있는 종교인들이 지적인 재미를 얻는 수단이 되어 버렸다. 기껏해야 목회에서 성공하기 위해 거쳐가야 하는 하나의 관문이나 여러 가지 취미 생활 중 하나 정도로 인식되고 있다. 어떤 이들은 바둑이나 장기를 좋아하고, 낚시나 등산을 좋아하는 이들도 있으며, 축구나 농구나 여러 가지 운동경기나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다. 믿음이나 교리나 신학의 영역은 사람들이 밥을 다 먹고 일을 다 끝내 놓고 집안을 정리하고 다른 모든 삶의 우선 순위들을 다 이루고 난 뒤 생각해 봄직한 꺼리다. 그리고 사람들의 첫 번째 우선 순위들, 그러니까 돈을 모으고 가족들을 부양하고 재산 관리를 하고 나서, 이 세상 사람들의 칭송을 얻는 것을 다 성취하고 나서도 시간이 남으면 뒤돌아보는 것이 신학이다(요 12:42,43). 이런 이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니 믿음이니 교리니 신학이라고 하는 것들이 삶의 본질적인 문제들에서는 전혀 힘을 발휘할 수 없다.
『율법과 증거에게라. 만일 그들이 이 말씀에 따라 말하지 아니하면 이는 그들 안에 빛이 없기 때문이라』(사 8:20). 현대인들에게 성경 구절을 인용하여 얼마나 그들을 설득시킬 수 있을까? 『율법』과 『증거』나 『말씀』이나 『빛』이란 용어의 정의 또한 자신의 생각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고 그들은 믿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현대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것이 “해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자신이 싫어하는 어떤 현실이나 사실도 그것을 무시하고 외면하면 그 본질까지도 없애 버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수백 개의 성경 구절들을 인용한다고 해도 전혀 개의치 않는다. 교부들이나 개혁자들 심지어 자신이 선호하는 작가의 글을 인용한다고 해도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왜냐하면 현대인은 스스로 자신만의 우주를 구상하고, 또한 그것을 자신의 편리에 맞게 바꿀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의 욕구에 맞는 신들을 고안해 내고, 그 신들은 각 개인의 기호와 사상을 철저히 반영하여 빚어졌다. 그러나 이 위대한 신들을 한데 모아 놓으면, 절대적인 진리를 제시하여 서로를 제지하거나 압도할 수도 없는 헛것들이다(사 44:9-20). 이것이 왜 현대인들이 “한 분 하나님,” “한 분 하나님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 “하나의 구원의 방법,” “하나의 진리,” “하나의 성경”에 대해서 토론하거나 수용하기를 싫어하는 이유다.
■ 성경에 대한 공격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바로 이것이다. “절대 진리의 기반이 무너지고 있다!” 더 오래 더 열심히 살펴보면 볼수록, 모든 것이 더 희미해진다. 믿음의 영역에 있어서는 이러한 현상이 성경의 역사로 나타난다. 약 1500년 동안 전 기독교계는 별 이론없이 <표준원문>(Textus Receptus)이라고 불리는 신약성경의 원문을 권위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 왔고, 이 원문에서 번역된 성경들 또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겨왔다. 성도들은 성경으로 살고 또한 성경을 위하여 목숨을 바쳐왔다. 이 원문과 전통적인 히브리어 <맛소라 원문>에서 A.D. 1611년 권위역 <킹제임스성경>이 번역되었다. 그후 약 300년 동안 별 문제 없이 모든 프로테스탄트 집단이 이를 자연스럽게 믿고 사용해 왔다. 1611년에서 1769년까지 약 13회 정도의 수정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수정은 당시 인쇄 시설의 낙후로 인한 인쇄상의 오류와 영어 철자 변화에 따른 것이지, 현대 성경 역본들처럼 원문의 변경이라든지 본문 내용 자체가 괄목할 만한 차이를 가져온 것은 없었다. <킹제임스성경>이 처음 출간되었을 때 구약과 신약 사이에 외경이 삽입되어 있었지만 이것은 단순한 주석이나 참고 자료 정도로 존재했을 뿐이다.
영어권 나라들은 확실하고 확고하고 신뢰할 수 있는 성경을 소유하고 누려왔던 것이다. 이 성경이 모든 교리와 실행의 문제에 있어서 진리를 확정하는 권위가 되어 왔고, 이에 모든 프로테스탄트들은 복종했다. <킹제임스성경>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절대 진리를 위한 기반이 되었고, 곧 믿음과 도덕과 윤리와 교리의 제반 모든 문제에 있어서 탄핵할 여지가 없는 권위가 되어 왔다. 당시 성도들은 오직 하나의 구원의 진리가 있으며 그것이 성경에 분명하게 계시되어 있다는 기본적인 믿음을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믿음에 축복을 아끼지 않으셨고, 그 결과로 가장 위대한 선교 활동과 개인 경건과 더불어 2000년 교회 사상 가장 위대한 부흥들을 가져왔으며,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성경을 실제로 신뢰했고 그것이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임을 알았었다.
그러나 지금 기독교계는 “번역본들”과 “개정판들”과 “의역성경” 등으로 넘쳐나고 있으며, 이것들은 <킹제임스성경>과 표현과 형식 면에서뿐만 아니라 내용의 면에 있어서도 철저히 다르다. 오늘날의 학자들과 교수님들은 우리가 가진 <한글킹제임스성경>과 그 저본인 영어 <킹제임스성경>이 신뢰할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이런 역본들은 과거에 진리의 좁은 길 중간중간에 놓인 시원한 샘들과 같았던 구절들을 수십 개씩 삭제하고 왜곡하고 변개해 놓았다. 거의 매 페이지마다 독자가 자신이 읽고 있는 것을 절대적으로 신뢰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의 각주들이 달려 있다. 결국 현대의 기독교 학문과 그 학자들은 성경의 내용에 의심과 의문을 품게 하는 것 외에 기여한 바가 없다.
이러한 시대의 조류에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성경을 종류별로 몇 권을 가지고 있다. 그러면서도 항상 “더 나은 성경”을 바란다. 그러나 그가 은연중에 스스로에게 무엇을 세뇌시키고 있는지 아는가? 바로 어떤 성경도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그가 섬기는 하나님은 분명하게 옳고 그름이나 좋고 싫음을 표현하시고 의와 진리만을 받으시는 하나님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이것이 처음부터 사탄이 원했던 것이다. “학자들”은 <킹제임스성경>에 도전하고 근거 없이 이 성경을 불신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칭찬하는 “새롭고 향상된” 역본들에게도 의심하고 비평할 수 있는 여지를 늘 남겨둔다. 그럼으로써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은 분명하게 기록된 “책”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고명하신 학자님들의 입술에 달려 있게 되는 것이다.
■ 성경 변개의 결과
그러면 가만히 생각해 보자. 누가 오류들로 가득 차고 차후에 변경될지도 모르는 성경의 권고와 명령에 따라, 자신의 돈과 경력과 건강과 가정과 자신의 생명을 맡기는 모험을 하겠는가 말이다. 독자라면 그렇게 하겠는가?
만약 필자가 “성경이 이렇게 말합니다.”라고 말하면, 그들은 “그게 아니라 그 구절은 10세기에 추가된 것이기 때문에 권위가 없지요.”라고 말한다. 또한 “성경이 그것을 말하오!”라고 말하면, 그들은 “내가 쓰는 성경 역본은 그렇게 말하지 않거든요!”라고 말할 것이다.
이와 같이 가장 실제적이고 강력해야 할 성경의 진리가 상대적으로 변했기 때문에 이 악한 현 세상의 유동적이고 일시적인 가치들이 “현대 그리스도인들”의 삶 속에서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 것이다. 성경과 재물? 성경과 쾌락? 성경과 명예? 성경과 안락? 성경과 권력? 사람들은 모두 각각의 상황에서 후자를 선택한다. 왜냐하면 사탄이 여러 가지 변개된 성경으로 성경에 대한 성도의 믿음을 헐렁하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현실적인 문제들에 있어서도 성경이 말하는 바를 100% 신뢰하지 못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가족들과 친척들, 친구들과 동료들, 심지어 사는 나라, 도시, 동네와 이웃에 급작스런 변화가 생기면 불안해 하고 안절부절하지 못하게 된다. 왜냐하면 이러한 것들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형성된 자신의 기반이 조금씩 흔들리기 때문이다. 어떤 인간이든 가능하면 확고하고 안정된 환경에서 삶을 향유하길 원할 것이다.
성경을 변개하고 다수의 성경 역본들을 만들어내며 성경으로 장사하고 성경의 권위를 상대적으로 만드는 이 세대는 무엇과 같은가? 이 세대는 마치 자신의 눈을 가리고 자기가 딛고 서 있는 기반을 곡괭이로 깨부수면서 자신의 입지가 불안하고 혼란스럽다고 불평하는 바보와 같다. 기반을 깨면 깰수록 더욱 아래로 내려가고 더욱 위태로울 뿐이다.
우리가 참으로 현명하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자신을 지옥으로 던져 버릴 수 있는 자신의 죄 문제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므로 먼저 해결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전능하신 주 하나님을 자신의 아버지로 모시고, 그분께서 주신 바른 성경을 찾을 것이다. 또한 매일 다른 잡다한 것에 소망을 두지 않고 다시 오실 주 예수 그리스도만 고대하며, 그 성경에 기록된 모든 사실들을 믿으며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순종하며 살 것이다. 죄인이었던 우리를 위해서 죽으셨던 주 예수 그리스도 앞에 우리 모두 설 것이다. 만약 우리의 삶이 변개된 성경에 따른 삶이었다면, 주님의 인정이나 칭찬은 얻을 수 없을 것이며, 오히려 땅에서의 수고로움과 고생과 종교적인 열심이 모두 순식간에 불에 다 태워져 버릴 것이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