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가 작사자들의 신앙 분류
존 뉴턴, 노예 상인에서 찬송가 작사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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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0년 01월호>
존 뉴턴(John Newton)은 1725년 7월 24일 영국 런던에서 어느 선장 집안의 독자로 태어났다. 뉴턴의 어머니는 신실한 그리스도인이었는데 그가 일곱 살 되던 해에 주님 곁으로 갔다. 아버지가 재혼한 새어머니는 뉴턴을 싫어하여 스트랫퍼드 에식스에 있는 학교로 보내 거기에서 기숙하게 했다. 그는 학교에서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공부를 멀리하다가, 결국 자퇴하여 열한 살의 나이에 아버지를 따라 배를 타게 되었다. 어려서는 신실한 어머니의 영향을 받았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로 조금씩 그 영향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더니, 배를 타고 난 뒤로는 거친 뱃사람들의 나쁜 행동, 습관, 말투, 욕설 등을 배우면서 급속도로 타락의 길로 빠져들었다. 심지어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통해 세상의 오염에서 피했다가 다시 거기에 말려들고 패배하면 그 나중 결과가 처음보다 더 악화된다고 하는 베드로후서 2:20의 말씀대로 그가 악해지는 정도는 더욱 심해졌다. 얼마나 심했는가 하면, 뱃사람이 하는 욕이란 욕은 다 하면서도 그것에 만족하지 못했는지 날마다 새로운 욕을 만들어 냈고, 그중 어떤 욕은 너무 심해서 욕에 관한 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욕쟁이였던 선장의 호된 꾸지람까지 받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렇게 죄를 탐닉하는 가운데 타락한 삶을 살았던 뉴턴은 1743년에 영국 해군에 장교 후보생으로 입대했는데, 엄격한 규율을 견디지 못해 탈영했다가 붙잡혀서 감옥 생활을 하게 되었다. 15개월간의 옥살이를 마친 후에는 서아프리카의 노예 상인 밑으로 들어가 일을 시작했고 1748년에는 노예선의 선장이 되었다.그렇게 선장이 되어 항해하던 1748년의 어느 날, 죄악으로 가득 찬 뉴턴의 인생을 변화시킨 아주 중대한 사건이 일어났으니, 곧 11일 동안이나 지속된 큰 폭풍우를 만났던 것이다. 폭풍우 속에서 뉴턴은 그가 악하게 지내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욕하고 비웃었던 지난날들을 돌아보게 되었고, 이내 그와 같은 죄인은 그 어디에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절망하고 말았다. 그때 갑자기 어렸을 적에 어머니께서 읽어 주시던 성경 말씀들이 마음속에 떠오르기 시작했는데, 그 말씀들 사이에서 갈등하던 뉴턴은 이내 주님께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부르짖었다. 그 부르짖음을 들으신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하심으로 폭풍우에서 살아남은 뉴턴은 이 일을 계기로 회심하게 된다. 회심한 이후에는 존 웨슬리와 조지 휫필드의 영향을 받아 주님의 부르심과 헌신에 대해 깊이 생각하면서 모든 것을 주님께 집약시키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1764년에는 영국 버킹엄셔 주 올니에서 목회를 시작했고, 1779년에는 윌리엄 쿠퍼와 함께 <올니 찬송가, Olney Hymn>를 출간했는데, 그 안에는 그가 직접 작사한 "시온성과 같은 교회"(<영광을 주께> 553장)가 실려 있었다.
시온 성과 같은 교회
오, 하나님의 도성 시온아
너에 관하여 영광스러운 것들이 이야기되는도다
주의 말씀은 폐기될 수 없나니
자신의 처소를 위해 시온을 세우셨도다
영원한 반석 위에 세워진 견고한 안식처, 그 누가 흔들 수 있으리오
구원의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으니 적들을 비웃으리로다
생수의 강이 영원한 사랑에서 흘러나와
주의 아들들과 딸들이 마시니 아무런 부족함이 없도다
언제나 이런 강이 흘러나와 목마름을 적시니 그 누가 다시 갈하랴
주께서 주시는 은혜 영원무궁토록 시들지 않으리로다
구주의 은혜로 시온의 백성 되었으니
세상 사람 비방하고 조롱해도 주의 이름 찬송하겠네
세상의 모든 쾌락과 헛된 영광 사라져 버려도
시온의 자녀들이 누릴 기쁨 끝이 없고
주의 자녀들이 받을 보화 영원히 지속되리로다
존 뉴턴은 시온 성을 향한 성도의 여정에 관해 작사하면서, "1절"에서는 시편 87:3, 요한복음 10:35, 시편 76:2; 27:5; 132:14, 이사야 60:18; 26:1을, "2절"에서는 요한복음 7:38, 시편 46:4, 요한계시록 22:1, 고린도전서 13:8을, "3절"에서는 이사야 4:5; 33:20, 출애굽기 13:21, 시편 20:5; 105:39, 신명기 1:33, 요한계시록 22:5, 마태복음 6:11을 "순서대로" 직접 인용하거나 참조 구절로 사용했다. 이는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찬양의 제물』(히 13:15)을 드리기 위해서는 성경 말씀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인데, 사실 우리가 잘 인식하지 못해서 그렇지 뉴턴의 많은 찬송들은 이와 같은 방법으로 작사되었다. 이외에도 그를 구원해 주신 주님의 은혜를 찬송한 "나 같은 죄인 살리신"(Amazing Grace, <영광을 주께> 398장)을 비롯하여, 죄인들을 구원으로 초청하는 "죄인들아, 구주의 부르심을 들으라"(Sinners, hear the Saviour's call), 고난 속에서 얻는 평안을 찬양한 "오 은혜로운 그 말씀 다시 들려주시오"(O speak that gracious word again), 그리스도인이 누리는 참된 행복을 찬송한 "나의 마음과 눈을 주님께 고정시키나이다"(Fix my heart and eyes on Thine) 등과 같은 뉴턴의 "자서전적인 찬송들"이 <올니 찬송가>에 많이 실려 있어서 당시 그가 입었던 주님의 사랑과 자비와 은혜가 얼마나 컸는지를 가늠하게 해 준다.
노예선의 선장이었던 극악한 죄인이 구원을 받아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고 설교하며 찬송가 작사자가 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요인은 어렸을 적 그의 곁에서 "기도하던 신실한 어머니"였다. 존 뉴턴의 생애를 다룬 글들을 보면 어떤 글이든지 그의 친모 이야기는 그저 스쳐 지나가듯이 잠깐 언급될 뿐이지만, 나쁜 친구들 속에서, 또 거친 뱃사람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타락하고 사악한 젊은 시절을 보냈던 뉴턴의 생애를 변화시킨 강력한 힘은, 말씀을 읽고 기도하는 본을 보여 주며 성경을 가르쳐 준 신실한 어머니에게서 나온 것이었다. 밀란 윌리엄스 목사 역시 "나의 사랑하는 책"(<영광을 주께> 141장)이란 제목의 찬송을 어린 시절 성경을 읽어 주시고 기도해 주시던 그의 신실한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작사했다. 모세는 파라오의 딸의 아들이 되기 전까지 그의 어머니 밑에서 양육을 받았는데, 그때 받은 어머니의 영향은 모세가 성장해서도 히브리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도록 만들어 주었다(출 2:1-15). 선지자 에스겔은 『어미가 그러면 그 딸도 그러하도다.』(겔 16:44)라고 말하면서 어머니가 미치는 영향력에 대해 이야기했다. 바울의 동역자 디모데의 어머니 유니케도 디모데에게 믿음에 관한 한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신실한 어머니였다(딤후 1:5). 이처럼 "어머니"는 어려서부터 아이의 마음에 말씀의 씨앗들을 심어 주어 일생에 걸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강력한 존재"이다. 그렇기에 그리스도인 어머니들은 더 늦기 전에 아이가 자신의 인생에서 하나님의 말씀만을 의지하는 법을 배우고 그 말씀의 빛의 인도함을 받아 이 험난한 인생의 길을 온전히 걸어갈 수 있도록 가르쳐 주어야 하는 것이다.
존 뉴턴은 1807년 12월 21일에 주님 곁으로 갔다. 그의 묘비에는 "존 뉴턴 목사, 한때 믿음 없이 방탕했던 자, 곧 아프리카에서 노예들을 나르던 노예선 선장이 우리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충만하신 은혜로 용서받고 보호받아, 오랫동안 그가 파괴하려 했던 그 믿음을 전파하고 설교하도록 임명을 받았다."라고 쓰여 있다. 그리고 그는 죽기 전에 이런 말을 남겼다. "나는 내 기억력을 많이 상실했지만 두 가지 사실만은 결코 잊을 수 없다. 하나는 내가 크나큰 죄인이라는 사실이고, 또 다른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나같이 크나큰 죄인도 능히 구원하실 수 있는 더 크신 구세주라는 사실이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자비와 은혜는 그의 전 생애를 관통하고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은 그 어떤 죄라도 깨끗하게 제거할 수 있고, 심지어 우리의 더러운 양심까지도 정결케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엡 1:7, 골 1:20, 히 9:14; 10:22). 우리가 그 보혈의 능력을 힘입는 순간, 존 뉴턴의 생애를 관통했던 그 위대한 사랑과 자비와 은혜를 우리도 동일하게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