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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죄를 사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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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6년 12월호>
* 저자가 이 글에서 인용한 책은<카톨릭 교회 교리문답, 1994>입니다.
1. 견 진 성 사
구원에 필수적인 성사들 중의 하나라는 것을 제외하고도 견진성사(堅振聖事)는 카톨릭 신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준다고 카톨릭 교리문답은 말한다.
“견진성사는 세례의 은혜를 완성한다. 견진성사는 우리를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 더욱 깊이 뿌리 내리게 하고, 그리스도와 더 확고하게 연합하며, 교회와 우리의 연대를 더 강화시켜주기 위해 우리에게 성령을 준다...”(333쪽, 1316항)
견진성사가 과연 카톨릭 신자들을 그리스도와 더 확고하게 연합시켜 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분명한 것은 성경은 그러한 교리를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면 모든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 있든지 그렇지 않든지 둘 중 하나이다. 그리스도와 “더 확고하게 연합하는 것”은 결코 성경이 가르치는 바가 아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옛 것들은 지나갔으니, 보라, 모든 것이 새롭게 되었도다』(고후 5:17).
일단 하나님의 가족으로 태어나면 그 누구도, 그 어떤 것도 거기서 떼어낼 수 없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정사나 권세나 현재 일이나 다가올 일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어떤 다른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떼어 놓을 수 없으리라』(롬 8:38-39).
하나님의 자녀는 그리스도와 “더 확고하게 연합”될 필요가 없다. 단지 성령을 따라 행할 뿐이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그들은 육신을 따라 행하지 아니하고 성령을 따라 행하느니라』(롬 8:1).
『그러나 한 때 멀리 있었던 너희가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엡 2:13).
견진례가 주는 또 다른 유익이라고 그들이 말하는 것은 소위 “영적인 흔적”이다.
“세례와 마찬가지로 견진례는 그리스도인의 영혼에 지워지지 않는 영적 표시를 남겨 놓는다...”(333쪽, 1317항)
하지만 성경을 아무리 찾아 봐도 그리스도인의 혼에 “영적인 흔적”을 남긴다는 말은 없다. 카톨릭 교리문답은 견진례의 기원을 이렇게 말한다.
“카톨릭 전통은 안수를 견진성사의 기원으로 인정한다...”(326쪽, 1288항)
견진례는 사람들의 전통이므로 성경에는 없다. 카톨릭 신자가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계속해서 수행해야만 하는 전통 중 하나인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죽음의 위험에 처해 있을 때 사제는 그에게 안수례를 해야 한다. 참으로 교회는 교회의 자녀 중 어느 누구도 심지어 가장 어린 자라 할지라도 그리스도의 풍성함의 선물과 더불어 성령에 의해 완전하게 되지 않고서는 이 세상을 떠나게 되지 않기를 바란다.”(332쪽, 1314항)
하지만 이 의식의 실제적인 목적은 사람들로 하여금 카톨릭 교회에 더 깊이 예속되게 하는 것이다. 놀랍게도 교리문답은 이를 인정한다.
“안수례의 성사로 [ 세례를 받은 사람은 ] 더 완벽하게 교회에 예속된다...”(326쪽, 1285항)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을 자유롭게 해주기 위해 오셨는데 카톨릭 교회의 규칙들에 얽매여야 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그러므로 만일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참으로 너희가 자유롭게 되리라』(요 8:36).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케 하셨으니 자유 안에 굳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 5:1).
2. 고 해 성 사
죄들의 용서에 관해서는 두 가지 중요한 교리를 살펴봐야 하는데, 첫째는 모든 죄들을 사제에게 고백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과 교회와 화해하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양심을 정직하게 살펴본 후 고백하지 않은 모든 중대한 죄들을 기억나는 대로 사제에게 고백해야 한다.”(374쪽, 1493항)
“사제에게 고백하는 것은 고해성사에서 필수적인 부분이다.”(365쪽, 1456항)
“이것은 고해성사라고 불린다. 왜냐하면 사제에게 죄들을 폭로하고 고백하는 것이 이 성사의 필수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357쪽, 1424항)
카톨릭은 사람에게 죄를 고백하라고 명령하지만, 성경은 하나님의 가족으로 태어난 사람은 죄를 용서받으려면 하나님의 보좌로 직접 나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내가 내 죄를 주께 시인하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나이다. 내가 말하기를 “내가 내 죄과들을 주께 자백하리이다.” 하였더니 주께서 내 죄의 악을 용서하셨나이다. 셀라』(시 32:5).
『우리가 우리 죄들을 자백하면 그는 신실하시고 의로우셔서 우리 죄들을 용서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느니라』(요일 1:9).
다윗은 기도할 때 자신의 죄들을 “하나님께” 고백했다.
『나의 죄악으로부터 나를 철저히 씻으시고, 나의 죄로부터 나를 깨끗하게 하소서. 내가 내 죄과들을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시 51:2-3).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보좌로 나아갈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에게는 예수의 피로 인하여 지성소에 들어갈 담력이 있나니』(히 10:19).
죄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혈을 흘려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보좌로 곧바로 나아가 죄 사함을 받을 권세를 갖게 된 것이다.
카톨릭이 “최초의 교황”이라고 주장하는 베드로는 과연 어떻게 했는가? 사도행전에서 시몬이라는 이름의 한 남자가 베드로에게 와서 성령의 능력을 돈으로 사려고 했다. 이 죄에 대해서 베드로는 어떻게 반응했는가? 자기에게 죄를 고백하라고 했는가? 그렇지 않다. 베드로는 “하나님께” 자신의 죄들을 자백하고 회개하고, “하나님께” 용서해 주실 것을 간구하라고 했다(행 8:18-22 참조).
이 교리에서 두 번째로 살펴볼 부분은 사제들에게 죄들을 용서할 권세가 있다는 것이다.
“교회의 권위로부터 죄들을 용서할 허락을 받은 사제들만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죄들을 용서할 수 있다.”(374쪽, 1495항)
카톨릭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는 “사제”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성경은 단 한 분의 중보자만을 인정할 뿐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시라』(딤전 2:5).
다시 한번 카톨릭 교리문답은 이것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교리가 아니라 사람들의 전통임을 인정한다.
“교부들은 이 성사를 구원의 두 번째 강령으로 제시한다...”(363쪽, 1446항)
더 많은 예속
“교회의 명령에 따르면, 분별력을 갖게 된 이후 신실한 성도들은 최소한 일년에 한 번은 중한 죄들을 고백해야 한다는 속박에 묶여 있다.”(365쪽, 1457항)
“속박”이라는 단어가 다시 나온다. 교부들은 사람들을 카톨릭 교회의 속박에 묶어둘 또 다른 전통을 만들어 냈다. 이것은 카톨릭 교도들에게 사용할 강력한 무기가 되는 것이다. 이 교리에 따르면 카톨릭 교회를 떠나면 죄들을 용서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 말은 하늘나라에 가지 못하게 된다는 뜻이다.
이 교리들 중 그 어느 것도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이 결코 아니다. 이것들은 모두 사람이 만든 협박에 지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이 글을 읽는 카톨릭 신자들의 영적 눈을 열어 주시고 명철을 주셔서 이 거짓 종교가 얼마나 강력한 “속박”으로 여러분을 옭아매는지를 볼 수 있게 되기를 원한다. 더 이상 이 거짓 종교의 포로로 머물러 있을 필요가 없음을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기를 원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여러분이 자유롭게 되기를 원하신다.
여러분은 죄들을 용서받기 위해 누구에게 갈 것인가? 사람들이 만든 전통인 카톨릭 교리를 따라 죄인인 사제에게 가겠는가? 아니면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전능하신 하나님께 직접 가겠는가?
『오 주여, 내가 깊은 곳들에서 주께 부르짖었나이다. 주여, 내 음성을 들으시고 내 간구하는 음성에 귀를 기울이소서. 주여, 주께서 죄악들을 지켜보신다면, 오 주여, 누가 서리이까? 그러나 용서하심이 주께 있으니, 주께서는 두려워함을 받으시리이다』(시 13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