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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카톨릭의 신조, 사도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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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년 월호>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도신경에 대한 해설을 할 때, 교회사가이며 성경 변개자인 필립 샤프와 같이 사도신경을 ‘기독교 교리의 요약’이나 ‘교회의 믿음에 대한 요약’으로 기술하는데, 그 이유는 사도신경을 사도들로부터 유래한 “사도의 전통’이나 ‘믿음의 규율’이라고 잘못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며, 또 성경적 신약교회에 대해 전혀 무지하기 때문이다.또한 사도신경의 기원에 대한 논의에서 늘 제시되는 설명은, 침례를 받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교리문답 교육과 그들의 공개적인 고백을 위해서 믿는 바를 요약한 것에서 생겨났으며, 이것이 점차 정형화된 신조의 형태를 취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렇게 믿음의 요약을 필요로 했던 사람들은 누구인가? 어떤 이유에서 침례에 앞서 교리문답을 위한 모범답안이 필요했겠는가?
신약교회사에 따르면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은 마음의 변화 없이 입술로만 고백할 수 있게 하는 신조나 교리문답서를 작성하지 않았다. 그들은 형식적 종교행위를 위해 어떤 교리 교육도 받지 않고, 또 요약된 신조를 참고하지도 않고 단지 내주하시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자신들의 믿음을 간증하거나 성령님께서 드러나게 하심으로써(행 8:37; 10:47-48; 16:30-33) 침례받았으며, 신약 지역교회의 회원이 되었다. 그러나 공중의 새들이 와서 거처로 삼는 거짓 교회(마 13:32)가 생성되면서(A.D.325년 이후) 입술로만 고백하는 이교도들과 거짓 신자들이 거짓 교회로 유입되었는데, 이때 그들은 소위 ‘신앙고백’의 내용을 그대로 답변하거나 반복함으로써 침례를 받고 그 거짓 교회의 일원이 되었다. 이것이 로마카톨릭이라는 거대한 창녀 교회(계 17:1-18)가 형성된 배경이다. 사탄은 극심한 박해를 통해 복음의 확산을 막고 교회의 순수성을 파괴하는 방법을 포기하고 유화적인 방법으로 교회를 오염시켰는데, 그것은 이교도들과 믿음 없는 사람들을 소위 기독교인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 도구 중 하나가 바로 로마카톨릭의 신조인 사도신경이다. 이것을 신상고백으로 시인하게 하고 침례를 받게함으로써 형식적인 카톨릭 교인을 만든 것이다.
로마카톨릭이 만든 신조
물론 초기 교부들 가운데 일부가 좋은 의도를 가지고 믿음의 진수를 간명하게 제시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결국 배교를 가져오는 한 도구가 되었다. 현재와 같은 사도신경이 형성되기 이전에 비슷한 내용의 신조들을 제시한 사람들이 여러 명 있었다. 이레내우스(180), 씨프리안(250), 노바티안(250), 오리겐(250), 그레고리 타우마투구스(270), 루시안(300), 싸이릴(350), 에피파니우스(374), 루피누스(390) 등이다. 그러나 이들의 신조들은 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형태와 내용에 있어서 차이점들이 많았다. 그 지역에 따라 동방과 서방의 두 가지 형태로 구분된다.
첫째는 동방의 신조들로, 이것은 서방의 신조들과 비교하면 일반적으로 길었으며, 서로 다른 내용이 다양하게 나타나며, 많은 교리적 용어들을 담고 있었다. 이 동방 신조들은 결국 니케아 신조(325년, 381년, 451년)로 대체되었다. 둘째, 북아프리카와 고대 프랑스, 이탈리아 등의 지역에 있었던 서방 신조들은 동방 신조들에 비해 짧고 단순하며 형태가 덜 다양하여 비교적 통일된 하나의 형태를 지니고 있었다. 니케아 신조를 포함해서 이 신조들은 모두 로마신조(the Roman Symbol)와 혼합되었으며, 이 로마신조가 로마카톨릭의 근본적인 신조가 되었다. 이 로마신조가 소위 “사도신경”(Apostles’ Creed)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신조이다. 특히 오늘날 로마신조를 “사도신경”이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거짓된 기원을 전제로 한 것이기 때문에 명칭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어떤 사도도 이러한 로마신조의 기원을 형성하고 있지 않았다. 이는 로마카톨릭이 자신들의 신조에 권위를 부여하고 확산시키기 위한 술책에 불과하다. 그런데 소위 개신교인들이 여기에 동참하여 거짓된 로마신조를 자신들의 신앙고백으로 반복하여 암송하고 있는 것이다.
본 논의에서 다루고자 하는 사도신경의 기원은 다름 아니라 로마카톨릭 안에서 믿고 있는 로마신조이다. 이 로마신조의 유래에 대해서 로마 카톨릭은 “열두 사도들이 예루살렘을 떠나기 전에 그들의 가르침을 요약한 것”이 사도신경인데, “사도들이 보다 높은 영감을 받아 열두 항목을 각각 쓴 것”이라고 오랫 동안 믿어 왔으며,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믿고 있다. 이러한 견해는 암브로스와 루피아누스에 의해 처음 주장되었고, 카톨릭백과사전의 집필자인 펫 마이어스(Pet Meyers) 둥에 의해 여전히 옹호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거짓된 기원에 대한 설명은 니케아 신조 이전에 다양한 종류의 신조들이 있었다는 사실과 소위 사도신경이 수세기를 거쳐 문구들이 첨가되면서 형성되었다는 역사적 사실 앞에 거짓임이 분명히 드러난다. B.C.250년 경에 알렉산드리아에서 칠십 명의 유대인들이 번역했다고 주장되는 칠십인역이 역사적으로 존재하지 않았고, 실제로는 A.D.240년 경에 오리겐이 변개시켜 번역한 헬라어 구약성경이 소위 ‘칠십인역’이듯이, 사도신경 역시 사도들이 영감을 받아 쓴 것이 아니라 로마카톨릭이 문구의 첨가를 반복하여 만든 “로마카톨릭의 신조”이다.
여기서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초기 로마신조의 짧은 형태는 마르셀루스(Marcellus, A.D. 340)가 교황 율리우스 1세에게 보내는 그의 편지에 기록한 헬라어 신조에서 찾아 볼 수 있으며(헬라어는 3세기까지 로마 교회의 지배적인 언어였다), 로마신조의 보다 긴 형태, 즉 현재의 “로마카톨릭 신조”(개신교의 사도신경)는 7세기에 와서야 비로소 열두 가지 문구 모두를 갖춘 완성된 형태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다. 샤프는 7세기에 완성된 사도신경의 역사적 기원에 대해서 반박하지는 못하고, “사도신경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이 신조는 의심의 여지없이 점진적으로 확대된 것”이라고 고백하면서도 사도신경을 옹호하기 위해 “현재 형태의 사도신경은 사도들 이후에 만들어진 것이지만, 사도신경의 내용과 정신은 진정 사도적인 것이다.”라고 궁색하게 변명한다. 그러나 사도신경은 전혀 사도적이지 않고, 성경적이지도 않다.
피티 럭크만 박사는 사도신경의 기원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샤프는 니케아공회 당시에 주도적이었던 아타나시우스의 어깨에서 반성경적 오류의 짐을 덜어주고 싶어서인지 아타나시우스 신경의 기원은 ‘신비의 베일’에 가려져 있으며 ‘누구 한 사람의 작품이기보다는 당시 교회 정신의 산물’이라고 주장한다. 샤프가 말한 그대로 소위 사도신경이라 불리우는 것은 성경을 거부하는 음녀(계 17:1-8)의 생산품이었던 것이다.”
첨가된 문구들
다음에 제시되는 사도신경의 본문 중에서 [ ] 안에 진하게 쓴 것이 후대에 첨가된 문구이다. ① - 는 항목 구분을 위해 붙인 것이다.
①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Maker of heaven and earth)]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②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③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conceived)]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④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suffered),] ⑤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dead),] ⑥ [지옥에 내려가셨다가(He descended into hell) - 이 문구는 한글 사도신경에서 삭제되었다.]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Almighty)]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⑦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⑧ 성령을 [믿사오며(I believe),] ⑨ 거룩한 [공회(Catholic)]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the communion of saints),]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니다. 아멘(I believe... and the life everlasting. Amen.)]
이와 같은 첨가된 문구들은 여러 세기를 거치면서 12가지 항목으로 형성되었다. 항목 ①의 “천지를 만드신 분”이라는 문구는 이것과 비슷한 표현이 있기는 하지만 650년에 골지방에서 처음 나타났다. 항목 ⑥의 “지옥에 내려가시고”(He descended into hell)는 아리안 신조(360년)와 아퀼레야 신조(390년), 베나티누스 폴투나투스의 신조(590년), 골지방 전례서(650년) 등에서 발견되며, 현재의 사도신경과 같은 최종적인 문구로 나타난 것은 750년이다. 예수님께서 지옥에 내려가셔서 인간의 죄들을 처리하고 부활하셨다는 사실은 성경이 가르치는 교리인데(엡 4:9,10, 행 2:31), 한국 교계는 이것을 바로 알지 못한 채 삭제하였다. 이 나라 교계는 변개된 성경뿐만 아니라 오역되고 삭제된 신조를 가지고 자신들의 정통을 부르짖는 수준의 영적 상태에 있는 것이다. 항목 ⑨의 “공회”는 한글 사도신경에서 오역된 부분이다. 마르셀루스의 최초 본문은 단지 “하기안 에클레시안”, 즉 “거룩한 교회”(holy church)였고, 씨프리안과 루피누스, 어거스틴 등도 “거룩한 교회”(sanctam eccleciam)라고만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거룩한 카톨릭 교회”(sanctam eccleciam catholicam)를 믿는다는 문구는 650년의 골지방 전례서에서 등장하여 로마카톨릭 신조인 사도신경에 공식적인 문구가 되었다. 항목 ⑨의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the communion of saints)은 650년 이후에야 나타난다. 이러한 일련의 첨가는 4세기부터 7세기까지 지속되었다. 이와 같이 사도신경의 기원은 전혀 사도들이 아니며, 로마카톨릭이 그들의 거짓 교리들을 세우면서 형성된 것일 뿐이다.
사도신경을 암송하는 이단, 로마카톨릭과 그 아류들
사도신경을 암송하면서 중요한 교리들을 왜곡하여 거짓으로 사람들을 속이는 가장 큰 이단을 말한다면 로마카톨릭이다. 그들이 믿는 바는 무엇인가? 사도신경은 로마카톨릭의 신조이기 때문에 그들의 교리로 문구 하나하나를 이해해야 본래의 의미를 정확히 알 수 있다. 반면 개신교의 교리로 이해하여 해석하면 본래의 문구가 말하는 바가 왜곡되는 것이다. 사실이 이런데도 불구하고 절대다수의 개신교 학자들과 목사들, 그리고 교인들은 자신들의 기준으로 해석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이것은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하지 않고 철학적 용어나 개념을 사용해서 왜곡하는 것과 마찬가지 오류이다.)
사도신경에서 말하는 “교회”는 어떤 교회이며, 구원의 방법은 무엇이고, 성도의 교제는 무엇인가? <카톨릭 교회 교리문답, 1994>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사도신경의 “거룩한 카톨릭 교회”에 관하여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유일한 교회로 사도신경에서 우리는 이 교회가 거룩하고 보편적이며 사도적인 유일한 교회임을 고백한다.”(제811항) “먼저, 그 교회는 카톨릭이다. 왜냐하면 그곳에 그리스도께서 임재하시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신 곳에 카톨릭 교회가 있다.”(제830항) 개신교도들이 생각하는 교회의 개념이 아니다. 사도신경이 처음 작성될 때부터 거룩한 교회는 카톨릭 교회였다. 이런 점에서 우리말 사도신경에서 오역한 “공회”에 대한 나채운 교수의 주장은 전혀 재고의 가치 없이 틀린 것이다. “거룩한 카톨릭 교회”를 믿는다는 사도신경의 본래 의미를 “보편적 교회”나 “공교회”로 억지로 해석하는 것은 개신교회가 비성경적인 사도신경을 암송하는 이단인 로마카톨릭의 아류임을 자처하는 것에 불과하다.
죄사함에 관한 로마카톨릭의 교리는 카톨릭을 통해서만 구원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구원의 완전한 수단을 얻는 길은... 그리스도의 카톨릭 교회를 통해서만 가능하다”(제816항). “카톨릭 교회가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에 의해서 필수불가결한 것으로 세워졌음을 알고서도 그곳에 속하기를 거절하는 사람은 구원받을 수 없다”(제846항). “구원받기 위해서는 다양한 성사와(제129항), 많은 부가적인 행위들과 더불어 세례와 같은 행위를 수행해야 한다”(제257항). “그리스도의 뜻에 의해, 교회는 세례받은 자들의 죄들을 용서할 권세를 가지고 있다”(제986항). “성직자의 성사로 주교들과 사제들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모든 죄들을 용서할 권세를 갖는다”(제1461항). 이러한 구원관을 가지고 있는 집단이 이단이 아니면 누가 이단인가? 이것이 사도신경에서 말하는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의 의미이다.
성도의 교제는 무슨 뜻인가? “교회는 성체를 통해 죽은 자와의 효과적인 교제를 하게 된다”(제1689항). “우리의 동료 순례자들과의 교제로 우리가 그리스도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것처럼 성자들과의 교제로 우리는 그리스도께 합류하게 된다”(제957항). “몇몇 신실한 자들을 공인함으로써, 즉 그들이 영웅적인 덕을 실천했으며 하나님의 은혜에 신실했음을 공포함으로써, 교회는 그들을 믿는 자들에게 본보기와 중보자인 성자들로 제시함으로써 교회 내에 있는 거룩의 영의 힘을 인지하고 성도들의 희망을 유지시켜 준다”(제828항). 여기서 말하는 로마카톨릭의 “성자”(saints)란 살아 있을 때 행한 선행으로 사후에 성자로 선언된 소수의 선택된 자들이다. 로마카톨릭의 교리문답에 따르면 성체성사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은 “성도의 교제”를 믿는 것이 아니다. 카톨릭의 교리문답은 또한 회원들에게, 교회가 “성자”(성도들, saints)로 선언한 사람들에게 기도하라고 권고한다. “우리보다 앞서 왕국에 들어간 증인들, 특히 그리스도께서 성자로 인정한 사람들은 그들의 모범적인 삶으로 살아 있는 기도의 전통에 참여하게 된다... 그들은 하나님을 숙고하고, 그분을 찬양하며, 지상에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진다. 그들의 중보는 하나님의 계획에서 그들이 차지하는 가장 고귀한 섬김이다. 우리는 그들에게 우리와 전 세상을 위해 중보해 줄 것을 간청할 수 있으며, 또한 간청해야 한다”(제2683항). 이것이 사도신경이 말하는 성도의 교제이다. [사도신경각 항목의 신학적, 교리적 오류들에 대해서는 이번호 특집의 두 번째 글로 게재된 윤혁택 목사의 글을 참고하시오.]
이와 같이 로마카톨릭은 성경을 가지고 종교 행위를 하는 가장 거대한 이단이며, 그들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이 바로 사도신경이다. 로마카톨릭의 신조에 나오는 문구는 그들의 비성경적인 교리를 기반으로 형성된 것이다. 개신교회들이 사도신경을 자신들의 구미에 맞게 해석하는 것은 본래의 의미를 왜곡하는 것이다. 자신들이 로마카톨릭으로부터 항거하여 개신교회가 되었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로마카톨릭의 거짓 교리와 실행을 그대로 답습했다. 카톨릭이 그들의 신조, 즉 사도신경을 암송하는 것으로 이교도들과 믿음없는 사람들을 끌어들여 성경과 상관없는 이상한 종교집단을 만들었고, 사도신경을 잣대로 사용하여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을 악의적으로 이단이라고 정죄했다. 이와 똑같이 비성경적인 로마카톨릭의 신조를 가지고 개신교회들이 동일하게 이단시비를 하는 것은 그들 역시 사도신경을 암송하는 이단인 로마카톨릭의 아류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