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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계명들을 교리로 가르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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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7년 02월호>
저자가 이 글에서 인용한 책은 <카톨릭 교리문답, 1994>입니다.1. 화해의 교리
카톨릭 교회는 카톨릭 교도가 하나님과 화해했다면 그와 동시에 카톨릭 교회와도 화해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죄들의 용서는 하나님과의 화해를 가져올 뿐만 아니라 교회와의 화해도 가져온다.”(367쪽, 1462항)
<카톨릭 교리문답, 1994>는 다시 성경과 대치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과 화해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그와 동시에 교회와 화해해야 한다고는 가르치지 않기 때문이다.
『그의 십자가의 보혈을 통하여 화평을 이루고, 땅에 있는 것이나, 하늘에 있는 것이나, 그에 의하여 모든 것이 자신과 화해하는 것이라』(골 1:20).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며, 그분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스스로 우리와 화해하셨고, 화해의 직분을 우리에게 주셨으니』(고후 5:18).
사도 바울은 사람들이 하나님과 화해하기를 기도했지만 교회와 화해하는 것에 대해서는 기도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를 대신한 대사들로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신 것같이, 우리도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너희에게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해하라』(고후 5:20).
『그가 십자가를 통하여 둘을 한 몸으로 만들어 하나님과 화해하도록 함이며, 그 십자가로 원수 된 것을 죽이려 함이니라』(엡 2:16).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피로 우리가 하나님과 화해했다고 하며, 이것을 복음의 핵심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것은 구약에도 예표로 암시되어 있고, 신약에서는 강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믿음의 핵심은 죄인인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 거룩하신 하나님과 화해하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과 화해하는 것은 성경적이지만 카톨릭 교회와 화해하는 것은 사람들의 전통일 뿐이다.
그들은 사람들이 카톨릭 교회와 화해하지 않으면 하늘나라에 갈 수 없다고 협박한다. 만일 우리의 영원한 운명이 교회와의 화해에 달렸다면 그처럼 중요한 문제를 하나님께서 왜 성경에 기록하지 않으셨겠는가? 하나님과 이미 화해했다면 카톨릭 교회와 화해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 성경에도 없는 그런 교리를 날조해 낼 권세를 그들은 어디서 얻었단 말인가? 결국 이것은 사람들을 카톨릭의 속박에 묶어 두기 위해 고안된, 인간이 만든 또 다른 교리일 뿐이다.
여러분은 누구와 화해하기 원하는가? 우리의 영원한 운명은 우리가 하나님과 화해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달려 있다고 성경이 선언함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수백만의 카톨릭 교도들은 카톨릭 교회와 화해하지 않고 죽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러면서도 하나님과 화해하지 않고 죽는 것에 대해서는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2. 사제들의 독신 생활
독신 생활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종들에게 요구하시는 희생인가, 아니면 또 다른 사람들의 전통인가? 성경은 선언하기를 『혼인은 모든 면에서 귀한 것이니...』라고 한다(히 13:4). 종교지도자들이 사제나 수녀처럼 독신으로 살아야 한다는 명령은 성경 어디에도 없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은 결혼하는 것이 교회를 다스리는 사람들의 자격 요건임을 명시하고 있다. 『그러므로 감독은 비난받을 일이 없어야 하고, 한 아내의 남편이어야 하며...』(딤전 3:2).
하나님은 집사에게도 이와 같은 자격을 요구하신다. 『집사들은 한 아내의 남편으로서 자신의 자녀와 집안을 잘 다스려야 할지니라』(딤전 3:12).
남자들이 아내를 갖는 것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계획이었다. 첫 사람인 아담을 지으신 후 곧바로 하나님께서는 『남자가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자를 지으리라』고 하셨다(창 2:18).
하나님은 결혼을 승인하실 뿐만 아니라, 다음과 같이 강력하게 경고하신다.
“영구 집사를 제외한 라틴 교회의 모든 서품된 사역자들은 독신 생활을 하고, ‘천국을 위하여’ 독신으로 남아 있고자 하는 신실한 사람들 가운데서 정상적으로 선택된 자들이다. 독신생활은 교회의 사역자로 임명된 사람이 그 사역을 수행하기 위해서 하는 것으로, 이러한 새로운 삶의 표식이며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여져야 하고, 하나님의 통치를 선포하는 것이다.”(395쪽, 1579항)
『이제 성령께서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마지막 때에 어떤 자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들과 마귀들의 교리들을 따르리라.” 하셨으니, 그들 자신의 양심이 화인으로 마비되어, 위선으로 거짓을 말하리라. 혼인을 금하고, 음식을 삼가라고 명하리니, 이 음식은 하나님께서 진리를 믿고 아는 사람들이 감사함으로 받도록 지으신 것이라』(딤전 4:1-3).
독신 생활은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교리가 아닐 뿐만 아니라, 그것은 마귀들의 교리이다. 성경은 이런 교리를 가르치는 사람들을 ‘위선으로 거짓을 말하며 마귀들의 교리를 따르는 자들’이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필자의 말이 아니라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이다.
세상의 수많은 사제들과 수녀들이 그들의 희생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고 믿으면서 자신들의 삶을 배우자와 나누는 기쁨을 포기하고 살지만, 정작 그것이 마귀의 강력한 계략에 빠진 것이니 얼마나 비극적인 일인가!
“최초의” 교황이라고 카톨릭이 주장하는 베드로도 결혼한 사람이었다. 『예수께서 베드로의 집에 오셔서, 그의 아내의 모친이 열병으로 누워 있는 것을 보시고』(마 8:14). 그렇다면 베드로는 “결혼한 교황”이 되는 셈인데, 이는 카톨릭 교도들에게 얼마나 충격적인 사실인가?
우리가 살펴 본 교리들과 마찬가지로 이 교리 또한 하나님의 말씀에 직접적으로 위배된다. 왜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에 위배되는 명령을 주시겠는가?
『네 샘으로 복을 받게 하고, 네 젊은 날의 아내와 더불어 기뻐하라』(잠 5:18).
3. 최후의 의식
많은 카톨릭 교도들은 최후의 의식(임종의 성찬)을 행한다.
“그리스도의 유월절의 성사로서 성체성사는 항상 지상 삶의 마지막 성사가 되어야 한다. 이것은 영원한 삶으로 ‘넘어가는’ 임종의 성찬이다.”(379쪽, 1517항)
이 의식에는 죽어가는 사람에게 기름붓는 것이 포함된다.
“병자에게 기름 붓는 성사가 모든 심각한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과 병자들에게 행해지면,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생을 떠나는 사람들에게 행해지면, 병자에게 기름붓는 것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우리의 일치를 완성시켜 준다. 이것은 세례가 그것을 시작하게 한 것과 같다.”
그러나 이 기름부음이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우리가 일치되는 것을 완성시켜 준다”는 믿음은 성경에는 전혀 언급이 없는, 또 다른 사람들의 전통이다.
이 의식은 사제나 카톨릭 교회 지도자에 의해서만 행해질 수 있기 때문에 이 교리는 마지막 임종의 순간까지 사람들을 카톨릭 교회에 예속되게 만든다.
“사제들, 그리고 주교들과 감독들만이 병자에게 기름 붓는 사역을 할 수 있다.”(379쪽, 1516항)
카톨릭 교리문답은 또 이 최후의 의식들이 “영원한 생명의 씨”라고 가르친다.
“병자에게 기름붓는 것에 더해서 교회는 이생을 막 떠나려는 사람들에게 임종의 확인으로서 성체를 제공해 준다. 그리스도의 몸과 피 속에 있는 교제는 아버지께 ‘건너가는’ 이 순간에 받아들여지며 특별한 중요성을 지닌다. 이것은 영원한 생명의 씨이며 부활의 능력이다...”(381쪽, 1524항)
그러나 성경은 이 의식이 “영원한 생명의 씨”도 “부활의 능력”도 아님을 선포하면서 이에 반대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시작하지도 않으셨고, 승인하지도 않으신, 인간이 만든 또 다른 전통이다. 이것은 성경이 무익하다고 선언한 지상에서의 마지막 선행에 지나지 않는다.
『실로 모든 것을 손실로 여김은 그리스도 예수 나의 주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며,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그것들을 오히려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기 위함이요, 또 그 안에서 발견되고자 함이니, 나의 의는 율법에서 나온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나온 것이니, 곧 믿음에 의해서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의라』(빌 3:8-9).
이 의식에 다음과 같은 인간의 규칙들이 첨가된다. 이러한 규칙들은 어디에서도 그 근거를 찾아볼 수 없는 것들이다.
“이 기름부음을 받은 병자가 건강을 회복하면 다른 큰 병에 걸렸을 때에도 이 성사를 다시 받을 수 있다. 같은 병에 걸린 사람의 상태가 더 심각해지면 성사를 되풀이할 수 있다. 심각한 수술 바로 전에 기름부음을 받는 것이 적합하다. 이것은 병약함이 심한 나이든 사람들에게도 유효하다.”(379쪽, 1515항)
많은 규칙들 위에 또 다른 규칙들을 첨가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것들 중 어떤 것도 명령하지 않으셨음을 명심해야 한다. 사람들이 이 모든 것을 만들어 냈다.
이 의식은 결코 성경이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바울을 포함한 성경의 모든 인물 중 이 “최후의 의식”을 받은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바울은 오히려 『내가 이미 제물로 드려질 준비가 되어있고, 떠날 때가 이르렀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라고 말한다(딤후 4:6-7). 성경의 그 어떤 인물도 이 최후의 의식을 행하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말해, 카톨릭의 교리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위배되는, 사람들의 명령들로 가득 차 있다. 여러분은 사람이 만든 규칙들과 계명들을 믿고 따르겠는가,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겠는가? 예수님께서 경고하신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사람의 계명들을 교리들로 가르치니, 그들이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마 1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