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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큐메니즘과 동정녀 마리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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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5년 02월호>
수에넨스(Suenens) 추기경은 그의 저서 <새 오순절, A New Pentecost)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에큐메니시즘은 마리아의 역할을 경시하려고 해왔으나 부흥운동은 그녀가 ´최초의 은사주의자´였음을 밝히고 있다.˝사실 부흥운동을 주도하는 ´에큐메니칼´ 교회들은 마리아라는 존재를 경시해 오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 중 상당수는 그녀가 ´최초의 은사주의자´였다고 말하며, ´오순절 사건에 있어서 특별한 역할´을 담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그녀에게 어렵지 않게 접근할 수 있었음을 들어 그녀의 겸손을 강조하고 있다. 현재 널리 퍼져있는 강한 에큐메니칼한 분위기 속에서 성경이 부여한 것 이상의 위치를 마리아에게 부여하는 것, 즉 마리아라는 여인을 매우 중요한 인물로서 재정립하는 것은 분명하고도 굳건한 프로테스탄트의 근본 신앙을 고수하려는 성도들을 혼란스럽게 하려는 것이다.
마리아에 대해 수에넨스 추기경과 동일한 확신을 갖는 ´복음주의적 교회는 아직 얼마 되지 않는데, 그는 후에 <새 오순절, A New Pentecost)에서 이렇게 회상한다. ˝1973년에 열린 국제 은사주의 대회 때 마리아의 역할을 강조하는 간결한 연설은 20,000명이 넘은 참가자들로부터 기립박수를 받았다. 그때 나는 우리가 집안에서 어머니 주위에 모인 하나의 가족이라고 느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1982년 영국을 방문해 웸블리(Wembley) 스타디움에서 영국을 일컬어 ˝마리아의 재산˝이라 했을 때도 그와 유사한 열광적인 반응을 얻었다. 이러한 교황의 소견은 존 왕 치리 때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영국에 대해 갖는 교황의 종주권에 관한 바티칸의 변함없는 입장을 보여준 것이다. 요한 바오로 2세가 영국에 도착했을 때 땅에 입 맞춘 것은 이 나라가 마리아와 성모 교회에 속한다고 하는 이제까지의 거듭된 주장의 한 표시였던 것이다. 전직 예수회 신부였으며 바티칸에서 현 교황과 밀접하게 일했던 말라키 마틴(Ma- lachi Martin) 교수는, 교황이 방문하는 나라마다 그 땅에 입 맞추는 관행은 교황이 그 나라를 자기가 섬기는 마리아에게 바친다는 뜻이라고 분명하게 말했다.
하늘의 여왕
오늘날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는 교황 피오 12세는 마리아를 ˝하늘의 여왕˝이라고 했다. 그는 1950년 11월 1일에 교황의 절대무오성이라는 교리와 함께 ˝마리아는 죽은 직후에 무덤에서부터 살아났으며 하늘로 올려져 하늘의 여왕으로 책봉된 사실˝을 선포했다.
1988년 부활절에 있었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메시지에는 ˝세계의 안전과 평화를 위해 하늘의 여왕께 드리는˝ 기도가 들어 있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하늘의 여왕´은 마리아가 아니라 카나안인들이 섬기던 이방 여신이며, 이스라엘 백성이 그 여신을 위해 향을 태우고 과자를 만들었으며 술붓는 제사를 바쳤으니, 그것이 주의 눈에 역겹고 악했다고 예레미야 7:18, 44:17-25은 기록하고 있다.
알렉산더 히슬롭은 그의 저서 <두 개의 바빌론>에서 성경에서 말하는 하늘의 여왕 숭배가 님롯의 어머니였으며 바빌론인들의 숭배 대상이었던 세미라미스 숭배와 동일함을 밝혔을 뿐 아니라 앗시리아의 여신 아스타르테, 에베소의 다이아나, 로마 제국의 동정녀 비너스, 그밖에 전 세계에 퍼져 있는 동정녀 어머니 여신 숭배와도 동일시했다.
성경에서 탐무스(겔 8:14)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세미라미스의 아들은 이집트의 오시리스와 로마의 바카스와 같은 인물로서, 처참하게 죽임을 당해 그 어머니가 애통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어머니와 아이는 인기 종교였던 바빌론 종교의 숭배 대상이었는데, 어머니의 품에 안긴 아이의 모습으로 묘사된다.
바벨탑 사건 이후에도 세계 도처의 수많은 나라와 부족들에게서 같은 모습을 볼 수 있으니, 이집트에는 이시스와 오시리스가 있고, 인도에는 오늘날까지 이시와 이스와라가 있으며, 로마 제국에는 비너스 혹은 포르투나와 쥬피터가 있다. 심지어 예수회 선교사들이 티벳이나 중국, 일본에 갔을 때도 자기들이 열렬하게 숭앙하는 마리아와 그녀의 아이와 똑같은 대상을 그들도 숭배하는 것을 발견하고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한다. 중국의 거룩한 어머니 ´싱무´(聖母)가 품에 아이를 안은 채 영광으로 둘러싸인 모습은 마치 카톨릭의 조각가들이 그 형상을 만든 것으로 착각할 정도였다(알렉산더 히슬롭 저 <두 개의 바빌론>, Loizeaux Bros., Neptune, New Jersey).
교황 피오 9세가 카톨릭을 위해 남긴 공헌은 그에 대한 현 교황의 칭송으로 요약될 수 있는데, 피오 9세는 ˝하나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께서는 온 세상의 모든 이단들을 멸절시키셨으며 모든 이의 간구를 들어 주시고, 또 모든 이에게 가장 자비로우신 분이시며, 많은 장식으로 덮인 황금 옷을 입고서 그녀의 독생자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오른편에 앉아 계시어 지극히 풍성한 애정으로 우리들을 돌봐주신다.˝라고 말했다(회칙서, 1864년 12월).
그러나 교황의 이 같은 발언을 언급하고 있는 성경 구절은 분명 신약보다는 예레미야의 예언 쪽이다.
현 교황이 동정녀 마리아의 동상이나 그림 앞에서 기도하고 있는 수많은 사진들을 지면에서 볼 수 있다. 그러한 사진 중 하나는 ´데일리 텔레그래프´(Daily Telegraph)에 실린 것으로 ˝교황이 이태리 북서부에 위치한 체티프(Chetif) 산 정상에 있는 동정녀 마리아 상 앞에서 기도하고 산을 내려오는 사진˝이었다. (1986년 9월 데일리 텔레그래프 紙)
전 하원의원인 지오프리 쿠퍼(Geoffrey Cooper)는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하신 말씀으로 그 오류를 지적했다. 『너희가 이 산에서나 예루살렘에서도 아버지께 경배하지 않을 그 때가 오리라...그러나 참된 경배자들이 아버지께 영과 진리로 경배드릴 때가 오나니 바로 지금이라. 이는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경배 드리는 그런 자들을 찾으심이니라』(요4:21, 23). 산에서도 아니고, 예루살렘에서도 아니고, 루어드(Lourdes, 마리아 출현의 기적이 있었다고 하는 프랑스 서남부의 도시 - 역자주)에서도 아니고, 월싱햄(Walsingham)에서도 아니다. 거룩한 장소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특별한 사당(shrines)이 필요한 것도 아니며, 성수도, 성스런 유물도, 성체성사를 통한 주님의 ´실제적 임재´(real presence)도 필요 없다. 하나님께서는 무소부재하시며 모든 성도 안에 성령을 통해서 임재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적으로 성경적인 쿠퍼의 응답과, 점점 커가고 있는 성지 순례 및 마리아 숭배에 대한 우려는 아직까지 이 자유로운 나라에서 제 목소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마리아의 독생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독생자이시다. 또한 마리아는 하나님의 어머니도 아니다. 더욱이 그녀는 ˝창조주의 어머니˝도, ˝동정녀들의 여왕˝도, ˝거룩함의 극치˝도, ˝지식의 보좌˝, ˝우리의 기쁨의 원천˝, ˝평화의 여왕˝, ˝하늘의 장미˝, ˝천국으로 가는 문˝, ˝빛나는 성막˝, ˝다윗의 반석˝, ˝황금˝, ˝새벽별˝, ˝죄인들의 천국˝, ˝고통당하는 자들의 위안˝, ˝천사들의 여왕˝, ˝사도들의 여왕˝, ˝순교자들의 여왕˝, ˝낙원의 여왕˝도, 그리고 문자적 의미의 ˝하늘의 여왕˝도 아닌 것이다(Ricordi Religiosi, Turin 1968).
물론 마리아는 영광스럽고 뛰어난 지위를 가졌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모든 세대가 그녀를 복되다 칭하리라.˝ 그러나 그녀가 그리스도의 위치를 점유하기까지 높여질 수는 절대로 없는 노릇이다. 그녀는 겸손했고 하나님께 순종했으며 모든 인류와 마찬가지로 구주가 필요했던 하나의 인간에 불과했다(눅1:47). 주님께서는 명백한 답을 제시하고 계신다.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그 사람이 나의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마12:50). 마리아는 그 분의 뜻을 행했던 여인이었다.
요한 바오로 2세와 마리아
요한 바오로 2세는 ˝토투스 투우스˝(완전히 당신의 것입니다)라는 개인적인 모토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그것은 예수님께 하는 말이 아니라 마리아에게 하는 말이다. 그는 즉위식 때 실제적으로 ˝...내가 가진 모든 것은 당신의 것이니이다, 나의 여왕이요 나의 어머니여.˝라고 외쳤다. 타임 紙는 ˝그것은 하나님을 쏜 것과 다름 없었다˝라는 제목의 기사로 1981년에 있었던 교황 저격 사건을 다루면서, 병원으로 이송되는 동안 ˝그는 폴란드어로 ´마돈나여, 마돈나여´라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고 보도했다(1981년 5월 25일자 타임 紙). 암살 음모가 있은 지 1년 후에 교황은 포르투갈에 있는 마리아 사당인 파티마에 가서 자신의 생명을 구해준 데 대해 마리아에게 감사를 드렸다. 교황은 파티마의 성녀(마리아를 말함 - 역자주)가 그의 생명을 구하는 데 더욱 구체적인 역할을 했다고 믿었으며, 이 장의 뒷부분에서 우리는 그녀가 그의 생애 속에서 계속해서 그러할 것임을 살펴볼 것이다.
1987년 4월에 교황은 전 세계의 150억 인구가 지켜보는 TV 프로그램을 통해서 ˝마리아의 해˝를 선포했다. 그리고 2개월 후 폴란드의 로즈(Lorz)에서 있었던 수만 명이 모인 미사에서 그는 동정녀 마리아에게 온 세계의 종교적 자유를 위해 기도했다. 1988년 5월에는 리마에 있는 한 성당에서 다가올 ´복음화를 위한 10년´을 내다보면서 ´복음의 성녀´께 페루를 바쳤다. 1988년 8월 로마에서 열린, 마리아의 해를 마감하는 의식에서 교황은 이렇게 선언했다. ˝이것은 서기 2000년을 향해 나아가는 마리아의 발걸음을 시작할 수 있는 기회이다. 우리는 마리아와 함께 나아가야 한다.˝ (Famiglia Cristiana Magazine : Piedmont, Italy) ˝복음화를 위한 10년˝을 추진하기 위해 바티칸에서 톰 포레스트가 발행한 국제적인 잡지 <새 복음화 2000년>은 1991년 11월 특집호 ˝복음화를 위한 10년이 시작되다˝의 표지 사진으로 아이를 안고 있는 마리아의 모습을 실었다. 1988년 10월 23일 ´선교 주일´에 교황이 드렸던 삼종절의 기도 내용은 이렇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삶 속에서 헌신적으로 선교하기 위해 마리아님을 모범으로 삼게 하소서. 마리아님께서 아들과 함께, 교회가 새 오순절을 맞이하도록, 즉 기쁨의 해 2000년을 향한 새로운 선교적 진보와 기독교 신앙의 세 번째 천년기간의 시작을 맞이하게 해 주소서.˝
미국에서는 교황의 방문과 그로 인해 고조된 엄청난 대중적 관심 때문에 마리아가 차지하는 ´특별한 위치´에 대한 주장, 다시 말하면 그녀가 인류의 중보자라는 것과, 아들과 동일하게 신성을 가졌다는 주장이 한층 큰 목소리를 갖게 되었다. 우리는 유럽에서도 그와 유사한 광경을 목도하고 있다. 언론의 대대적인 광고와 TV 방영을 통해 루어드(Lourdes), 파티마(Fatima), 노크(Knock), 멧쥬고르예(Medjugorje), 월싱햄(Walshing- ham) 등의 마리아와 관련된 유적지들로 수백만 명의 숭배자들이 전 세계에서 몰려들었다.
검은 성녀(Black Madonna)가 나타났던 것으로 유명한 ´체스토호바(Czestochowa)의 성녀´ 사당은 지난 몇 년 간 인터내셔널 紙가 보도한 폴란드에서 일어난 대형 사건들 중에서도 매우 큰 인상을 남겼다. 레크 웰리사(Lech Walesa)가 찍은 사진의 영상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배포되었으며 교황은 거주지인 크라코우(Cracow)에서 200km 이상 떨어진 그 사당을 두 번이나 방문했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