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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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에 무지한 에큐메니칼주의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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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7년 05월호>

지난 4월, 모 일간지에서 <기독교사상> 700호 발행을 기념하는 광고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담당 기자는 그 잡지를 "초교파 신학 사상지로서 가장 오래된 월간지"라고 소개했다. 또한 <기독교사상>의 지나온 발자취를 소개하면서, 1950-1960년대에는 "한국 지성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고, 60년대에는 "토착화 신학 논쟁"을 이끌었으며, 70년대에는 "민중 신학," 80년대에는 "평화 통일 논의"를 주도했다고 한껏 치켜세웠다. 뿐만 아니라 그 잡지를 "에큐메니칼(교회의 일치와 연합) 운동을 주도해 온 신학 사상지"라고 평가했다. 700호 권두언에 실린 발행인의 말도 있었는데, 그는 편집인들의 기본 생각이 "신앙의 과제와 사회적 과제가 분리되지 않는다는 믿음"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의 최종권위인 성경에 비추어 볼 때, 이 잡지가 얼마나 비성경적인가는 분명하게 드러난다.

거짓 복음을 전파하는 매체

오늘날 한국 교회는 140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그러나 단순한 종교로서의 기독교가 들어온 지 오래되었을지는 몰라도 그동안 순수한 복음이 제대로 전파되어 온 것은 아니었다. 당시 선교사들은 가난하고 미개한 우리 민족을 위해 학교와 병원을 세우고 신문을 발간했지만 정작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자체를 순수하게 전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이 민족의 복음화를 위해 복음 자체만이라도 올바로 전파하며 하나님의 사역을 펼쳐 나가는 교회들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그러면 한국 교회의 신학 사상을 주도해 왔다는 <기독교사상>은 어떠한가? 다른 것은 차치하고 복음만이라도 올바로 전달해 온 것인가? <기독교사상>을 읽어 보면, 그들은 한국 사회를 기독교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그런 사상으로서의 복음만을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은혜의 복음을 통한 혼의 구원이 목적이 아니라, 사회 구원과 기독교적인 사회 변혁을 추구하는 사회 복음을 전파했던 것이다. 그러나 죄인들이 모여서 그들의 노력과 사회 참여를 통해 이상적인 사회를 가져올 수 있다면, 왜 굳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셔야 했겠는가? 더 나아가 <기독교사상>의 집필진과 같은 종교인들이 모여서 참다운 복지 사회나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가져올 수 있다면, 왜 예수님께서는 현 교회 시대가 배교와 타락으로 끝날 것이라고 말씀하셨으며, 또 친히 반드시 속히 오실 것이라고 약속하셨겠는가?

하나님께서는 세상에 대해 『이 악한 현 세상』이라고 말씀하셨다(갈 1:4). 또한 이 세상의 신은 사탄이라 하셨고(고후 4:4) 세상과 친구가 되면 하나님의 원수가 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약 4:4), <기독교사상>은 역사적 예수와 사회 참여를 운운하면서 이 세상을 개혁하려 하고 있다. 즉 <기독교사상>이 700호까지 출간되어 한국 교회들에 유통되는 동안, 그들이 시종일관 전파해 온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혼의 구원과 거듭남이 아니었던 것이다. 소위 기독교인들이 모여 사회 참여를 통해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임하게 할 수 있다는 무천년주의적인 사회 복음을 전파했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저주하신 또 하나의 다른 복음이다.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너희를 교란시키는 어떤 사람들이 있어서 그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개시키려는 것이라. 그러나 우리뿐만 아니라 하늘에서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것 외에 어떤 다른 복음을 전한다면 그는 저주를 받으리라』(갈 1:7,8).

"복음의 전제"에 대해 무지한 자들

복음은 죄인이 스스로 구원받을 수 없음을 전제로 하고 있다. 아무리 열심히 개인적인 노력을 경주한다 해도 죄인은 자신의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즉 종교적인 열심, 사상과 이념 추구, 사회 참여, 봉사, 인권 운동, 여성 운동, 민주화 투쟁, 정치 참여, 평화 운동 등으로는 죄인들이 구원받을 수 없는 것이다. 밥 한 끼도 제대로 못 먹는 사람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것보다는 그 사람을 구제하는 것이 기독교인의 의무라고 여기는 자들이 바로 사회 복음을 전파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숙고해 보라! 그리스도인의 사명이, 영원을 불못에서 보내야 할 죄인에게 따뜻한 밥 한 끼 주는 것이겠는가, 아니면 그로 하여금 지옥에서 벗어나 완전한 속죄와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것이겠는가? 죄인이 사는 세상을 조금 기독교적으로 바꿔 놓을 수 있다손 치더라도 그것이 죽어서 지옥에 가야 할 죄인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사형 제도가 합법적인 미국 대부분의 주들에서는, 사형수에게 사형 집행 직전 마지막 식사를 그가 원하는 것으로 제공해 주는 관행이 있다. 하지만 그 사형수가 마지막 식사로 맛있는 것을 잘 먹든, 먹지 못하든 무슨 차이가 있는가?

이 땅에 살고 있는 죄인들 위에는 지금 하나님의 진노가 머물러 있다. 죄인들은 사형 집행 날짜를 모르며 사는 사형수들과 같고, 하나님의 심판은 당장이라도 그들을 내리칠 수 있는 상황이다.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그 아들을 믿지 않는 자는 생명을 보지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진노가 그 사람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요 3:36). 『한 번 죽는 것은 사람들에게 정해진 것이고 그 뒤에 심판이 정해진 것같이』(히 9:27).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사망이 찾아오면, 자신의 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죄인의 혼은 지옥의 불 속에서 영원히 울부짖으며 고통받게 된다! 『너희 저주받은 자들아, 내게서 떠나 마귀와 그의 천사들을 위하여 준비한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마 25:41). 이렇듯 영원한 지옥의 화염을 마주하고 있는 죄인들에게 그들처럼 "소수"의 권리나 "민주화 투쟁," "민중 신학" 등을 운운하면서 그들을 도와주는 척하고만 있다면 그것은 얼마나 가증스러운 농간인가!

구원받지도 못한 자들

그러면 왜 <기독교사상>은 그들이야말로 한국 기독교의 양심이며 정의의 선봉에 선 것인 양 행동하는 것인가? 왜 그들은 복음도 전하지 않으면서 뭔가 된 자들인 양 자축하며 광고하는 것인가? 답은 간단한데, 이는 그들이 "복음의 찬란한 빛"을 보지 못한 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들 가운데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않는 자들의 마음을 어둡게 하여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복음의 광채가 그들에게 비치지 못하게 하느니라』(고후 4:4). 그들 스스로가 지옥에 가야 할 죄인인 것을 절감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적으로 믿고 영접함으로 구원받지 못했기 때문에, 또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도 모르기 때문에(눅 19:10), 사회 참여를 통해 사회 구원을 추구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인 양 여기고 있는 것이다. 마귀의 기만으로 눈이 멀어 버린 영적 소경들이 어떻게 참 빛을 전파할 수 있겠는가? <기독교사상>의 깃대 아래 모인 자들은 스스로를 저주하는 "다른 복음"을 전파하고 있으며, 진리를 버리고 배교한 기독교계를 심판하실 하나님의 진노를 보지 못한 채 "에큐메니칼 연합"이나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마 13:30, 살후 1:8,9). <기독교사상>의 발행인인 서진한 목사는 자신의 잡지가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잡지의 내용들은, 인본주의적인 신학 사상들로 각색한 "역사적 예수"와 "사회 복음"을 만들어 내기 위해 성경의 『영광의 주』(고전 2:8)와 『복음의 진리』(갈 2:5)를 포기하고 멸망의 넓은 길을 가는 에큐메니칼주의자들의 요란한 객설에 불과하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이는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넓고 그 길이 광대하여 그리로 들어가는 사람이 많으나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그 길이 협소하여 그것을 찾는 자가 적음이니라』(마 7:13,14).

복음의 진리가 부재한 한국 교회의 현실

그런데 복음을 정확하게 제시하지 못하는 것이 어디 <기독교사상>뿐이겠는가? 소위 유명하다는 목사들이 각종 기독교 방송과 채널에 나와서 설교한다고 하지만 순수한 성경적인 복음을 들을 수 없다. 서점에 쌓여 있는 각종 기독교 잡지 및 묵상집, 유명 기독교 작가들이나 목사들의 베스트셀러가 많은 독자들의 이목을 끌고 있지만, 정작 "복음"에 관해서 성경적으로 무엇을 믿어야 하고 또 구원받은 사람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그리고 구원의 목적은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하는 책들은 없다. 더 나아가 순진한 자들을 속이는 거짓 복음들에 대해 성경적으로 비평하면서 복음의 진리를 수호하는 서적들도 없다. 너도나도 소위 "문서 선교"를 한다고 하지만, 어떻게 하면 세상과 조화롭게 살면서 기독교 문화나 즐길 수 있을까에 대해 말하는 잡지들뿐이다. 『십자가의 거침』(갈 5:11)을 임의로 제거해 버린 책들만 즐비하게 깔려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영적 갈증만을 가중시키는 그런 쓰레기 같은 인쇄물들을 내려놓고, 복음과 진리의 말씀의 순전한 샘물로 나아와야 한다. 『어찌하여 너희는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돈을 쓰며 배부르지 않는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열심히 경청하고 좋은 것을 먹으라. 그리하여 너희 혼이 풍요함 속에서 스스로 기뻐하게 하라』(사 55:2).

그렇다면 "성경적인 복음"이란 무엇인가? 우선 모든 사람은 죄인으로 태어나서 죄를 짓고 살다가 죄 때문에 죽어서 영원한 지옥에 던져질 수밖에 없다(시 9:17). 그러나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경대로 우리의 죄들 때문에 죽으시고 장사되셨다가 성경대로 부활하심으로 우리의 죄들을 깨끗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완성하셨다(고전 15:3,4). 이것이 바로 복음이다. 소위 모태 신앙이라든지, 목사, 집사, 장로, 권사 등의 직분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다. 또한 교황, 추기경, 주교, 신부, 수녀 등이 아무리 마리아와 죽은 성인들을 부르며 종교적인 의식들을 반복해도 지옥에 갈 수밖에 없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만이 우리를 모든 죄들에서 깨끗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롬 3:25, 요일 1:7).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믿는 자는 하나님의 은혜로 영원한 생명을 선물로 받게 된다(요 3:16, 롬 6:23).

"복음의 가치"는 무엇인가? 복음은 하나님의 구원에 굶주린 죄인들에게 영원한 생명의 빵을 주는 것이고(요 6:35), 세상의 종교들과 사상들로 해소할 수 없는 갈증을 느끼는 죄인들에게 영원한 생명으로 솟아오르는 샘물을 소개하는 것이며(요 4:14), 온 세상을 가졌어도 혼을 잃어버린 가난한 죄인들을 영생과 셋째 하늘의 영적인 복들로 부요하게 하는 것이다(고후 8:9). 그것은 외롭고 고달픈 죄인들에게 모든 기쁨과 행복이 보장된 영원한 도성과 영원한 집을 선사하는 것이며(요 14:2,3), 독생자를 주심으로써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창조주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그 아버지의 사랑 안에서 쉬게 하는 것이다(요일 4:9,10). 이것이 하나님의 복음의 가치이며, 이것이 바로 오늘날 하나님의 자녀들이 세상 죄인들에게 목소리를 높여서 외쳐야 하는 생명의 말씀인 것이다! 다른 복음들과 온갖 거짓 교리의 풍조를 유포하는 <기독교사상>과 같은 책들을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 불태워 버리고(행 19:19,20), 하나님께서 지켜 주신 살아 있는 진리의 말씀들을 회복하여 복음의 진리를 가감 없이 선포할 때 이 땅에는 참된 부흥이 일어날 수 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일이니, 즉 그분이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라』(요 6:29).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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