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목회자 칼럼 분류
성경에서 가장 오래된 책 욥기 (II)
컨텐츠 정보
- 1,748 조회
-
목록
본문
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0년 06월호>
1. 하나님께서는 욥에 관해 말씀하실 때 『이 사람은 동방의 모든 사람 가운데서 가장 큰 자더라.』(욥 1:3)라고 하셨다. 솔로몬을 말씀하실 때도 『솔로몬의 지혜가 동방 나라의 모든 자손의 지혜와 이집트의 모든 지혜보다 뛰어나더라.』(왕상 4:30)라고 하셨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깨닫게 해 주신 첫 번째 교훈이 무엇이었는가?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였다(전 1:2).솔로몬은 잠언 3천 편을 말하였고, 그의 노래는 1,005곡이나 되었다(왕상 4:32). 그는 식물학 박사였는데, 레바논에 있는 백향목으로부터 담에서 피어나는 우슬초에 이르기까지 모르는 것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짐승과 새와 기어 다니는 것과 물고기에 관해서도 박사였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솔로몬에게 인생이 헛되고 헛되다는 점을 가르쳐 주시려고 그를 욥기로 인도하셨다는데, 이 부분에서 우리는 또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심지어 노래하는 자들을 위하여 악기들도 만들었으니 하프와 솔터리였다. 당시에 악기를 만들 만한 공구와 자재와 기술이 잘 갖추어져 있었겠는가?
솔로몬이 쓴 책 중에 전도서는 한 인간이 자기 인생을 살면서 터득했던 철학과 이치로 가득 차 있다. 인간들은 살아 있는 동안에 성적인 쾌락을 향유하길 원하는데, 솔로몬은 왕후가 육십 명이요 후궁이 팔십 명이었으며 처녀들은 셀 수도 없었다(솔 6:8). 한편 성경은 『나의 비둘기, 나의 더럽혀지지 않은 자는 오직 하나요, 그녀는 그 어머니의 외동딸이며 그녀를 낳은 어머니의 귀한 사람이라. 딸들이 그녀를 보고 그녀를 축복하니, 정녕, 왕후들과 후궁들과 그들이 그녀를 칭찬하는도다.』(솔 6:9)라고 말씀한다.
그가 쓴 성경의 두루마리들은 잠언, 전도서, 솔로몬의 노래 등 세 권이었는데, 그중 전도서에는 그가 살았던 인생의 결론이 이렇게 피력되어 있다. 『너는 이제 너의 젊은 날에 곧 재앙의 날이 이르지 않고 “나에게는 즐거움이 없다.”고 말할 해가 가까워 오기 전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전 12:1). 『전체 일의 결론을 들을지니,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키라. 이것이 사람의 모든 의무니, 이는 하나님께서 선이든 악이든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것들을 심판하실 것임이라』(전 12:13,14).
솔로몬은 “다윗의 아들”로 태어나 다윗을 이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원하는 권세, 재물, 쾌락, 여인들을 헤아릴 수 없이 향유하였으며, 또한 연구할 가치가 있는 자연과 말 등을 다루었기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동방의 모든 사람 가운데서 가장 지혜 있는 자라고 명명하셨다. 실로 그의 지혜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던 것이다.
2. 여기 또 한 사람이 성경에 등장한다.
『인자야, 그 땅이 심하게 범법함으로써 나를 거슬러 죄를 지으면 내가 내 손을 그 땅 위에 펴서 식량봉을 꺾을 것이요, 기근을 그 위에 보낼 것이며 사람과 짐승을 그 땅으로부터 끊으리라. 비록 노아, 다니엘, 욥, 이 세 사람이 그 땅에 있다 할지라도 그들은 그들의 의로 말미암아 자신들의 혼들만을 구해 낼 뿐이라. 주 하나님이 말하노라』(겔 14:13,14). 구약 전체를 통관하는 “믿음과 행위 체계”에 유의하라. 이 “세 사람”의 의는 하나님께로부터 전가된 의가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노아와 욥은 율법 이전 시대에 은혜 아래 있었다.
그런가 하면 아브라함은 칼데아 우르에서 살았던 우상 숭배자였는데, 그가 모리야 산에서 자기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제단에 드렸을 때 행함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었고, 창세기 15:6에서 그가 전가 받았던 의가 그 행위를 통해 온전하게 되었다. 믿음이 그 행함과 더불어 작용하였으며, 믿음이 행함으로 온전케 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교회 시대의 믿음과 다르다. 교회 시대에 우리의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는 순간 온전해진다. 이 믿음을 온전케 함에 있어서 어떠한 행위도 필요하지 않다. 왜 행위가 필요 없는가? 이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 이루었다.』(요 19:30)라고 소리 지르시면서 완성하신 사역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바울 서신에 따르면 온전해질 필요가 있는 대상은 “당신의 믿음”이 아니라 “당신 자신”이라고 했다(엡 4:12,13).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는 순간 그 죄인은 “성령님의 수술대” 위에 오른 것과 같다. 그 순간 그의 “혼”은 “죄의 몸”에서 분리되는데, 그때부터 그의 혼은 영의 지도를 받을 수 있게 되어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삶을 살게 된다. 『또한 너희가 그의 안에서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그리스도의 할례로 육신의 죄들의 몸을 벗어 버린 것이라』(골 2:11). 이 영적인 수술은 오직 성령님만이 하실 수 있다. 이 수술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은 어떤 종교적 행위나 열성이 아니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믿고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이 의미와 가치와 교리를 모르는 사람은 자신의 거듭남을 꼭 확인하고 믿음의 생활을 해야 한다. 만일 구원받지 않고 새벽 기도부터 하려고 했다면 지옥의 자식이 되는 것이다.
로마서 7:1-3에서는 이러한 영적 수술을 다음과 같은 예로 설명하고 있다. 『형제들아, (내가 율법을 아는 자들에게 말하노니) 율법은 그가 살아 있는 동안에만 그 사람을 주관하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남편이 있는 여인은 그 남편이 살아 있는 한 그에게 법으로 매여 있으나 남편이 죽으면 그녀는 그 남편의 법에서벗어나느니라. 그러므로 남편이 살아 있는 동안에 다른 남자와 혼인하면 간음한 여인이라 불리지만 그녀의 남편이 죽으면 그 법에서해방되므로 다른 남자와 혼인하더라도 간음한 여인이 아니니라.』 이것이 바로 죄인이 그리스도인이 되는 원리이다.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성경을 믿는 믿음과 영의 거듭남이 필수이다. 이 세상에 태어난 인간은 그가 사는 동안 무엇을 했든지 간에 그의 죄상들이 심판주께로 넘겨진다. 이 세상의 삶은 거기까지다. 숨이 끊어진 몸은 땅속에 들어가기 전에 부패하기 시작하며 벌레들의 밥이 된다. 뿐만 아니라 고약한 냄새도 풍긴다. 살아 있는 동안 함께 추던 블루스도, 잔잔한 눈빛도, 매혹적인 미소도 바람처럼 사라져 버린다. 사람이 죽으면 구원받은 혼은 그의 영과 함께 창조주께로 가지만, 생전에 구원받지 않은 혼은 지옥의 불길 속으로 던져진다.
3. 욥기 29:1-13의 내용은 회상할 수 있는 추억이 될 수 있는지는 몰라도, 그 사람으로 하여금 단 몇 초라도 음미할 여유를 주지 않고, 달리는 열차의 창밖으로 보이는 광경보다 훨씬 더 빠르게 지워지고 만다. 욥의 바람은 『오, 내가 지난 달들같이 하나님께서 나를 보존하시던 날들과 같이 되었으면!』(2절)에 있었다.
『내가 그들의 길을 택하였고 우두머리로 앉아서 군대 가운데 있는 왕처럼 거하였으며 애곡하는 자들을 위로하는 자와 같았도다』(욥 29:25). 다윗과 주 예수 그리스도는 둘 다 욥기 29장의 이 마지막 구절을 놀랍도록 잘 수행했다. 『다윗이 말하기를 “사울의 집에 아직 남아 있는 자가 있느냐? 내가 요나단을 인하여 그에게 친절을 베풀리라.” 하니라』(삼하 9:1). 다윗은, 사울의 손자요 요나단의 아들인 므피보셋을 찾아 그를 다윗의 식탁에서 먹게 하였다.
도망자들은 “흙보다도 천한 자들”로 언급된다. 『그러나 이제는 나보다 더 젊은 자들이 나를 조롱하니, 그들의 아비는 내 양떼를 지키는 개들과 함께 세울 가치조차 없다고 내가 생각하노라. 정녕, 그들의 손의 힘이 내게 무슨 유익이 되랴? 그들의 노년은 사라져 버렸도다. 그들은 궁핍과 기근으로 처량하더니 예전에 황량하고 황폐하던 광야로 도피하여 덤불들 곁에서 당아욱을 꺾었으며 향나무 뿌리를꺾어 음식으로 삼았도다. (사람들이 그들을 향해 도둑을 쫓듯 소리쳤으니) 그들이 사람들 가운데서 쫓겨나서 골짜기 비탈과 땅굴과 바위 사이에서 살았도다. 덤불들 사이에서 당나귀처럼 부르짖으며 쐐기풀 아래에 함께 모였도다. 그들은 어리석은 자의 자식이요, 정녕, 비천한 자의 자식이라. 그들은 흙보다도 천한 자들이었노라』(욥 30:1-8).
욥의 복락이 구름처럼 사라진다. 『그런데 이제 내가 그들의 노래가 되며 정녕 내가 그들의 조롱거리가 되었도다. 그들은 나를 혐오하여 내게서 멀리 도피하고 내 얼굴에 침 뱉기를 주저하지 않는도다. 그분이 내 줄을 느슨하게 하셔서 나를 고통받게 하시므로 그들도 내 앞에서 굴레를 벗었도다. 내 오른편에서는 젊은이들이 일어나서 내 발을 밀어뜨리며 그들은 나를 대적하여 그들의 멸망의 길을 일으키는도다. 그들은 내 길을 훼손시키고 내 재앙을 재촉하며 그들에게는 돕는 자가 없도다. 그들은 큰 물살을 가르는 것처럼 내게로 오나니 폐허 속에서 내게로 굴러오는도다. 공포가 내게로 몰려들며 그들이 바람처럼 내 혼을 쫓으니 나의 복락이 구름처럼 사라지는구나』(욥 30:9-15).
이처럼 짧은 지상 삶의 흔적은 이 세상을 하직한 사람에게는 홍수에 쓸려 가는 헌 가구 같은 것이다. 주인이 없는 그 빛나는 보석 상자까지도...
4. 욥을 위로하러 왔던 욥의 세 친구들은 “엘리파스”(욥 4,5장), “빌닷”(욥 8장), “소팔”(욥 11장)이었다. 진정한 친구라면, 욥이 빠진 함정에다 무엇을 첨가해야 친구라는 가치를 견지할 수 있겠는가?
만일 엘리파스가 아무런 준비도 없이 욥을 위로한답시고 찾아와서 자기의 평온과 욥의 현재의 불행에 대해 뭔가를 언급함으로써욥을 실망시켰다면, 그는 더 이상 욥의 친구가 못 되었을 것이다. 서로 간의 처지와 경험의 차이가 너무 크기 때문에, 엘리파스가 현재 욥이 겪고 있는 고뇌를 어루만지려 하는 것은 두 사람 모두에게 어떤 보탬도 되지 않는다. 엘리파스의 위로는 어떤 형태로든지 욥의 상실감에 전혀 도움이 안 되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리파스는 이렇게 강론했다. 『죽을 인간이 하나님보다 더 의롭겠느냐? 사람이 자기의 창조주보다 더 순결하겠느냐? 보라, 하나님은 자기 종들에게도 신뢰를 두지 아니하시며 그의 천사들도 우둔하다 책망하셨나니 좀 앞에서도 부서져 버리는 먼지에기초를 둔 진흙집에 사는 자들은 얼마나 덜 신뢰하시겠느냐? 그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멸망하고 아무도 생각해 주는 이 없이 영원히 멸망하느니라. 그들 안에 있는 그들의 탁월함이 사라지지 아니하겠느냐? 그들은 지혜도 없이 죽는도다』(욥 4:17-21).
여기서 보듯이 그래도 엘리파스는 현대의 TV 방송국 패널들처럼 자기도 무슨 뜻인지 모르는 말로 조언하지는 않았다.
엘리파스의 말에 욥은 이렇게 답변했다. 『오, 내 슬픔을 전부 달아보고 내 재앙을 다 저울에 놓아 보았으면! 지금 그것은 바다의 모래보다도 더 무거우므로 내 말들이 삼켜졌느니라. 전능하신 분의 화살이 내 안에 있으며 내 영이 그 독을 마셨나니 하나님의 공포가 나를 치려고 진열하도다. 들나귀가 풀이 있는데 울겠느냐? 또한 소가 꼴 위에서 울겠느냐? 소금 없이 싱거운 것을 먹을 수 있겠느냐? 또한 달걀의 흰자위가 무슨 맛이 있겠느냐? 내 혼이 만지기를 싫어하는 것들은 마치 내 슬픈 음식 같도다. 오 내가 구하는 것을 갖는다면 내가 바라는 것을 하나님께서 내게 허락하신다면! 나를 멸하시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린다면 그것마저 바라리라. 그가 그의 손을 풀어 나를 끊으시기를! 그러면 내가 위로를 받을 것이며 정녕 슬픔 가운데서도 마음을 모질게 먹으리니 그분께서 사정없이 그리하시기를 바라노라. 이는 내가 거룩하신 분의 말씀들을 숨기지 아니하였음이라』(욥 6:2-10).
욥이 엘리파스에게 말하고자 했던 요지는 『내가 바라는 것을 하나님께서 내게 허락하신다면!』(8절)이 전부였다. 오, 인간들이여, 숙고하라. 이 지상 생명은 끝나게 되어 있다. 정치하는 자들은 목에 힘주지 말라! 당신의 인생도 곧 끝날 것임을 알라!(약 4:13-17)
<피터 럭크만의 주석서 욥기>에는 『내가 바라는 것을 하나님께서 내게 허락하신다면!』(8절)과 관련하여 “다이아몬드” 같은 설명이 나온다. 이 설명은 성경을 모르는 어떤 작가가 죽을 때까지 머리를 짜낸다 해도 찾아낼 수 없는 “금과옥조”이다.
「욥은 친구들에게 질문을 한다(그들은 그의 질문에 결코 답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가련한 남자는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하늘을 향해 들고 외친다. 『내가 바라는 것을 하나님께서 내게 허락하신다면!』(8절) 스펀지에서 식초를 비틀어 짜는 것처럼 이 말들은 마음을 쥐어짰을 때 나올 수 있는 말이다.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이런 외침은 수백 년 동안 있어 왔다. 전쟁터, 광산, 교대 근무, 감옥, 시궁창, 병원, 묘지, 정신병동, 교회, 구명 뗏목 그리고 심지어 가정에서도 이런 외침이 얼마나 많이 터져 나왔는지는 하나님만이 아신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마음속에 두신 성취되지 않은 소망은(롬 8:20) 수천 가지 형태가 있는데, 이것들은 모두 인류에게 한 가지 위대한 진리를 인식시켜 준다. 그러나 인류는 처음부터 그 진리를 거부해 왔다. 성취되지 않은 소망(시 41:1; 43:5)이 존재하는 이유는, 감각으로 인지될 수 있는 물질인 이 세상과 현 생애는 인생의 최종 목표가 아니며 인간이 가진 문제를 해결해 줄 수도없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증거하시기 위해서이다. 마지막으로 분석해 보자면, 진정한 “실재”는 하나님의 임재 안에 있는 하늘나라뿐이며, 모택동, 카스트로, 록펠러, 케네디가(家) 사람들, NAACP, RCC, SDA, CFR, HEW, UN, 국가 연합, 공산주의 인민위원회, 국제교육협회 같은 미혹된 죄인들이 “민중의 유익”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큰소리로 외치는 “미래에 지상에 있을 어떤 좋은 것”은 모두 대중들의 신뢰를 얻으려 하는 피리 부는 사나이의 속임수일 뿐이다. 마귀에게 사로잡혀 선행을 강조하는 자들은 모두 죄에 대한 양심의 가책을 동료 인간들을 “도움”으로써 무마시키려고 애를 쓴다. 그것도 다른 사람을 희생시켜 가면서까지 도우려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타락한 자들은 “그럼 좋아, 우리가 너를 죽이면 너는 너의 하늘나라로 갈 거야. 그렇지만 우리는 여기 남아서 세상을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 거다.”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지난 6천 년 동안 서로를 죽여 왔을 뿐만 아니라, 어떻게 해서든지 사람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증거인 성경을 계속해서 폐기시키려 하고 있고, 카인이 아벨을 죽이기 전부터 없어져 버린 “유토피아”를 계속해서 찾고 있다.」
엘리파스에 이어서 빌닷(욥 8장)과 소팔(욥 11장)이 욥을 위로한답시고 강론을 늘어놓았지만 욥의 염장을 지르기만 했다. 특히 욥기 11장 전체가 그러했는데, 머리가 텅 빈(성경에 무지한) 거듭나지 않은 인간들은 입이 있으니까 말을 꺼내 보지만 자신의 무지만 드러낼 뿐이다. 그들의 강론을 들은 욥은 엘리파스에게는 욥기 6,7장으로, 빌닷에게는 9,10장으로, 소팔에게는 12-14장으로 조언해 주었다. 하지만 그들의 영적 수준을 간파한 욥은 더 이상 그들에게 해 줄 조언이 없었다. 『보라, 그가 물들을 거두시니 물이 마르고 그가 또 물들을 보내시어 땅을 뒤집는도다. 능력과 지혜가 그에게 있으며 속는 자와 속이는 자가 그의 것이라. 그는 의논자들이 약탈당하도록 이끄시며 재판관들도 어리석은 자가 되게 하시는도다. 그는 왕들의 속박을 풀어서 끈으로 그들의 허리를 묶으시는도다. 그는 통치자들이 약탈당하도록 이끄시며 권세자를 무너뜨리시는도다』(욥 12:15-19).
5. 하나님을 만나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성경을 믿는다고 자부하는 사람이 이 세상을 살면서 자기의 운명을 창조주요, 구속주요, 심판주이신 주님께 온전히 맡기지 못하고, 그분과 교제하는 가운데 성경에서 인생의 답을 얻지 못하고 나름대로 답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살고 있다면, 지금 당장 원점으로 되돌아가서 다시 하나님과 동행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
나로 하여금 피터 럭크만 목사님을 만나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셨다. 백 번을 곱십어 봐도 그런 확신이 든다. 나는 후회 없는 인생을 살았다. 얼마나 감사하고 또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시간을 내서 그분의 장서들을 읽으며 인생의 석양을 바라보라! 나처럼 후회 없는 생을 살게 될 것이고, 생의 마지막을 의미 있게 장식한 뒤에 눈을 떴을 때는 저 셋째 하늘에 가 있을 것이다. BB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