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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목사 대신 “동역사,” 예장합동식 “남녀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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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4년 05월호>
한국 교회의 대부분의 교단들이 여성 사역자에게도 소위 “안수직,” 그러니까 목사나 강도사의 직분을 주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장로교만 해도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가 1977년 최초로 여자 목사를 세운 것을 필두로, 1996년과 2012년에 각각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와 대한예수교장로회(백석)가 차례로 여자에게 목사 안수를 주었다. 감리교, 성결교, 침례교 할 것 없이 대부분의 교단들이 여성 사역자를 목사로 세우는 일을 허용했기 때문에, 이제는 오히려 여성 사역자는 목사가 될 수 없다는 규정을 가지고 있는 교단이 이상하게 보일 지경이다.한국 교회에서 교세가 크게 여겨지는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는 여전히 여성 사역자에게 안수를 줄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다른 부분은 몰라도 이 점에 있어서만큼은 “성경의 문자적 해석”을 실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아직 총회에서 목소리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딤전 2:11,12, 고전 14:34,35). 애당초 지역 교회의 감독(행 20:28) 위에서 권위를 행사할 수 있는 “교단”이라는 협의체를 세우겠다는 생각 자체가 비성경적이라는 점을 떠올려 본다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고 하겠다. 예수님께서도 『감독』(벧전 2:25)에 불과하실진대, 누가 감히 “감독” 위에서 권위를 행사할 수 있다는 말인가? 지역 교회는 목자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지도를 받는 지역 교회의 목자에 의해 그 자체로 독립적으로 운영되어야 하며, “교단” 따위에게 간섭받아서는 안 된다.
교단이란 일종의 “정치 조직”에 가깝기 때문에, 예장합동총회 측에서도 “시대의 요구”를 아주 모른척하기는 어려운 모양새다. 종교적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모여든 자들이 대중의 눈치를 살펴가며 움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동일하다(마 21:46, 요 12:17-19). 실제로 지난해 국민일보에 실린 기사에 따르면, 예장합동 소속 남성 목사와 장로를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 응답자 가운데 73.6%가 여성 안수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단 내 각계각층에서도 여성 안수를 주지 않고 고집을 부리다가는 교세가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와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기존에는 여성 사역자 안수가 불가하다는 입장을 완고하게 고수하고 있던 예장합동총회 내에서도 점차 그에 대한 찬반 공방이 치열해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에 그와 관련하여 “역사적인 일”이 하나 있었다. 제108회 총회에서 여성에게도 강도권을 부여하기로 했다가 며칠 만에 철회한 것이다. 당연히 여성 사역자들로부터 거센 저항과 반발이 뒤따랐는데, 이로 인한 몸살을 꽤나 심하게 앓은 총회 측이 일종의 후속 조치로서 새로운 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기사가 CBS노컷뉴스를 통해서 보도되었다. 「여성 목사안수 안 된다는 예장합동, 이번엔 ‘목사 대신 동역사’ 제안」이라는 제하의 기사에 따르면, 총회 측은 “동역사”라는 새로운 호칭을 여성 사역자에게 부여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동역사의 처우는 목사에 준하는 수준으로 하고, 노회의 허락이 있으면 성례전(“세례”와 “성만찬”)을 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 그 골자인데, 이러한 “동역사 제도”를 운영하는 근거로는 이브가 “돕는 베필”로 지음을 받았다는 점과 “동역자”라는 명칭이 성경에 언급된다는 점을 꼽았다.
쉽게 예상할 수 있듯이, 여성 사역자들의 반응은 냉담하다.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총신신대원여동문회는 입장문을 통해 “남성 사역자가 받는 예우와 역할, 지위를 부여할 거면, 동역사가 아니라, 그냥 강도사로 부르면 된다.”라고 지적했다. 예장합동 소속의 여성 사역자들이 원하는 것은 애당초 “남녀평등”일진대, 그런 “타협안” 앞에 여성 사역자들이 쌍수를 들고 환영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너무나도 순진했던 것이다. 총신신대원여동문회가 일전에 언급했던 제108회 총회를 규탄하면서 냈던 성명서 내용의 일부를 인용하자면 이렇다. “셋째, 여학생의 총신 신대원 입학 반대 운동을 해 나갈 것이다. 언론과 홍보를 통해 개교회에 합동 교단 여성 사역자의 현실을 알리고 여학생들이 총신에 입학하는 것을 최대한 막아 후배들이 우리와 같은 고통을 겪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고 사역에 막힘이 없도록 다른 길을 제안할 것이다. 넷째, 여성 안수가 이루어지는 날까지 여성 안수를 위한 운동을 계속 이어갈 것이다. 합동 교단 내에 정의가 세워지고 남녀평등과 여성 안수가 이루어지길 희망한다.”
그렇다면 “남녀가 평등한” 목사 안수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아무런 성경적 근거도 없이 일방적으로 떼를 쓰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먼저 「여성 안수 않는 교단 3곳 “필요성엔 공감”」이라는 제하의 국민일보 기사에는 이러한 내용이 실렸다. “박보경 장신대 교수는 ‘여성 안수 반대에 대한 성경적 근거는 가부장적 관점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오류’라며 ‘구약 시대 드보라와 같은 여성 사사가 있었고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도 마리아 등 여성들이 있었다. 여성에게 잠잠하라고 한 본문(고전 14:34)은 당시 고린도 교회의 독특한 상황에서 나온 것’이라고 지적했다.” 예장합동의 제105회 총회에서는 이국진 목사가 “딤전 2:11-15이나 고전 14:34,35 등을 문자적으로 해석한다면 여자 선교사에게 성례권을 인정한 것 등등을 포함하여 우리 교단이 이러한 원칙에 반하여 시행했던 모든 것들을 폐지해야 한다.”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앞서 언급했던 제108회 총회를 규탄하는 총신신대원여동문회는 한술 더 떠서 심지어 “여자 사도(?)” 유니아(롬 16:7)의 존재까지 들먹이며 왜 여자가 남자를 가르칠 수 없느냐고 반대편의 사람들에게 따져 물었다.
성경에 “여자 사도”란 없다. 로마서의 본문은 유니아가 사도들 가운데에서 이름이 잘 알려져 있었다고만 말씀할 뿐, 그녀가 사도라는 언급은 없다. 게다가 백 번 양보해서 유니아가 정말로 사도였다고 해도, 사도와 목사는 엄연히 다른 직분이므로 여자 목사를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어쨌든 여자 사도 같은 것은 없으며, 유니아는 결코 사도가 아니었다. 물론 성경에 드보라와 같은 다른 종류의 여성 사역자들이 등장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여성 사역자의 존재는 매우 이례적이다. 남자들이 제 구실을 못하니까 하나님께서 여자들을 들어쓰셨을 뿐이다. 말하자면 그런 예외들을 토대로 영적 권위가 남성에게 주어져야 한다는 규칙 자체를 전복하려고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사실 그런 사람들은 자신들의 주장이 성경의 문자적인 내용과 배치될 때에만 “상황 윤리”를 주장하는 기회주의자들이다. 예컨대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의 말을 들어주지 않으신다는 것이 성경의 일반적인 원칙이다(사 59:2, 요 9:31). 그러나 예외도 존재한다. 예컨대 거짓 선지자 발라암이 그렇다(민 22:9-12,20). 하나님께서는 그분께 반항심을 품고 있던 요나의 말에도 자상하게 응답해 주셨다(욘 4:9-11). 그렇다면 그들은 이번에도 그런 예외를 가지고 “하나님께 죄를 짓더라도 기도 응답을 받는 데는 지장이 없다.”라고 가르칠 것인가? 그렇지는 못할 것이다. 이런 대목에서 그들의 위선이 드러나는 것이다.
여자의 머리는 남자이고,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시라는 것(고전 11:3), 그리고 목사의 직분이란 한 아내의 남편인 사람만 맡을 수 있다는 것(딤전 3:2, 딛 1:6)이 하나님께서 지역 교회에 세우신 영적 권위의 원칙이다. 구약의 여선지자의 경우나 여자 선교사가 사역지에서 남자 선교사 없이 목회를 해야 하는 경우처럼 일부 예외적인 상황에서 여자에게 영적 권위를 행사하는 일이 허용될 수는 있더라도, 그것이 원칙이 될 수 있는 것처럼 가르쳐서는 안 된다. 이것이 성경이 설정해 놓은 “옛 지계표”(잠 22:28)요, “옛 길”(렘 6:16)이다. 성경은 이러한 원칙이 깨지고 여자들이 (남자들을 포함한) 사람들 위에서 권위를 행사하는 상황을 매우 부정적으로 묘사하신다. 『내 백성으로 말한다면 아이들이 압제자가 되며, 여자들이 그들을 지배하는도다. 오 내 백성아, 너를 인도하는 그들이 너로 탈선하게 하여 너의 진로를 멸망시키는도다』(사 3:12). 『나는 여자가 가르치는 것이나 남자에게 권위를 행사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노니 다만 조용할지니라』(딤전 2:12).
예장합동총회는 위와 같은 성경적 반박을 할 줄 몰라서 “동역사”라는 절충안을 내놓았던 것일까? 필자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들은 “남녀평등”이라는 “시대적 요구”에 맞추기는 해야겠고, 성경의 문자적인 해석은 포기할 수 없으니 궁여지책으로 “처우는 같되, 명칭은 다르게” 하는 방법을 도출했을 뿐이다. 그러나 성경에 “남녀평등” 따위는 없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평등하게 짓지 않으셨고, 평등하게 대우하시지도 않는다. 특정 민족(롬 9:13) 또는 인종(창 9:25)을 차별대우하시는 인종차별주의자이시며, 여자는 남편을 “주”라고 불렀던 사라처럼 살아야 한다고 하시는(벧전 3:6) 성차별주의자이시다.
예장합동총회는 위와 같은 성경적 진리를 사실 그대로 다룰 용기가 없다. 한껏 “여권이 신장된” 현대 사회로부터, 여성 사역자들로부터 지탄을 두려워할 뿐이다. 그런 자들이 모여 백 번 총회를 해 봐야 여성 사역자의 “평등권”에 대해 가타부타 똑 부러지게 말하지 못하고 “우리가 말할 수 없노라.”(막 11:29-33)라는 식의 결론만 날 것이 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만이 진리를 수호하고 선포할 능력을 갖게 되기에(요 5:44, 행 4:19,20), 그런 모임에서는 진리가 그 빛을 바랠 수밖에 없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