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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나지 않은 성경교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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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4년 05월호>
이 말씀은 성경을 가르치고 배우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기본적으로 알고 항상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하며, 사탄의 나라에 속한 사람을 하나님의 나라로 옮겨올 때에도(구령할 때) 반드시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한 사람을 구령할 때, 상대방이 많은 이야기를 하고 질문을 해 올 때 그 질문에 일일이 답해 줄 수도 없고, 설령 그에게 답해 준다고 해도 그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영의 일들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믿음으로 다가서지 않고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지 않는 사람에게 할 수 있는 이야기란 그 사람이 자신이 죄인인 것을 인정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받아들이고 거듭나라는 이야기 밖에 없다. 『하나님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 안에 있지 아니하고 성령 안에 있나니, 이제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니라』(롬8:9).거듭나지 않은 사람을 성경에서는 자연인이라 하는데, 이것은 그가 모태에서 한 번 태어났을 뿐 새로운 탄생, 즉 영적인 탄생을 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죄인은 개수가 불가능하기에 사람은 누구나 반드시 다시 태어나야 한다(요3:3). 자연인에게 성경을 이야기 한다는 것은 참으로 무모한 일이어서 수익을 기대하지 않고 하는 투자와 같다. 그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역사적인 어떠한 사건에 대한 표면적인 지식뿐이다. 그에게는 성경이 세상의 다른 책들 가운데 한 가지일뿐 절대적인 가치기준을 제시해 주는 하나님의 절대무오한 말씀이라고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하나님을 아는 데에는 육신을 가진 인간의 사고로써 불가능하기에 우리가 거듭나야 하고 성령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죽은 우리 영을 살려 주셔야 하는 것도 필연적이다. 그리고 그 사람만이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들림받을 수 있다. 첫 사람 아담이 타락해서 상실하게 된 것은 하나님과의 교제인데 그가 선과 악의 지식의 나무의 열매를 먹은 그 날에 죽은 것은 그의 영이다(창2:17). 그러므로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 보시기에 죽은 것이다(엡2:1). 사람들이 자신이 보는 것 이상을 스스로는 알 수 없고 믿을 수 없는 것은 “영”이신 하나님을 영적으로 죽은 사람이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고린도전서 2:13-14의 말씀은 바로 하나님의 영으로 거듭나지 않은 사람이 하나님의 영의 일들을 알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려는 사람은 반드시 거듭나야 하며, 거듭나지 않고는 성경을 100번 읽는다 해도 하나님의 깊은 것을 알 수 없다(변개된 성경을 읽는다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세상에 만연한 하나님에 대한 비뚤어진 생각들과 그리스도인의 신앙인 기독교가 마치 세상에 단지 화평만을 내세우는 하나의 종교인양 묘사되는 것도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이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버리고, 거듭나지 않은 자신들의 생각으로 아는 것이 성경의 전부인양 생각하기 때문이다. 성경을 변개하는 것에는 그 말씀 자체(글자 그 자체)를 첨가하거나 삭제시키는 것 이외에도 그 말씀을 자의대로 해석하는 것도 해당된다(딤후2:18). 성경의 변개는 사람의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고, 자신의 마음에 안들고, 자신이 하나님보다 더 영리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을 통해서 시작된 것이다.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이 경계하는 대상들은 노골적으로 성경을 믿지 않는 무신론자들이 아니라, 오히려 성경을 믿는다 하면서 거듭나지도 않는 상태에서 자신들의 생각대로 성경을 읽고, 또 알지도 못하면서 가르치는 위치에 있는 성경교사들이다.
어떠한 사람이 경건한 생활을 한다고 모든 면에서 점수를 주는 것이 아니라(그러한 것으로는 얼마든지 사람의 눈을 속일 수 있다), 그가 참으로 말씀으로 거듭나고 성령께서 일깨워 주시는대로 조명을 받고 하나님의 일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는 사람인가에 비중을 두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일을 한다고 자처하는 사람이 다 그리스도의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사탄의 일꾼도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필자는 대학을 다니며 선교단체에서 4년간 성경공부를 하였다. 그 때 필자는 창세기, 출애굽기, 다니엘,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사도행전, 로마서, 베드로전서 등 성경의 많은 부분들을 배웠는데, 특히 사복음서를 중심으로 배웠다. 그 때 필자에게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을 수 없다고 가르쳐 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나에게 “거듭나야한다”는 주제로 성경을 가르쳐 주면서도 어떻게 하면 거듭나는 것인지, 어떻게 하면 구원받는지 속시원하게 말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거듭나고 싶어도 니코네모가 질문했던 수준 이상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필자는 그러한 것에 대해 크게 문제를 가지고 생각해 보지도 못했었다. 성경 교사가 가르쳐 주는 대로 배우고, 거기에 의문을 갖거나 반박하지 않고 그대로 믿고 따르면 된다고 배웠다. 그리고 그 성경교사들은 나에게 많은 그럴듯한 이야기와 예화들과, 여러 사람들의 견해들을 이야기했다. 이제 보니 그도 소경이었고 나도 소경이었다. 그 성경교사들이 가르쳐 주는 것은 언제나 똑같은 말이다. 창세기를 배워도 같았고, 출애굽기를 배워도, 마태복음을 배워도 항상 동일한 것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의 깊은 부면들을 다룰 수 없었고, 단지 더 큰 물음과 이해할 수 없는 것들만 부딪힐 뿐이었다. “믿음, 믿음” “회개, 회개” “절대 순종, 절대 순종” “주의 종에게 순종” “헌신, 헌신”... 뿐이었다. 골로새서에 있는 대로 “손 대지 말라, 맛보지 말라, 만지지 말라”하며 유치한 이야기만을 할 뿐이었다. 고상한 인격만을 내세우며, 몰라도 순종을 해야한다고 강요할 뿐이었다. 물론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순수한 열정들이 있었고, 열심들이 있었다. 그러나 어찌 배우지 않았는데 알 수 있겠는가? 제자는 스승의 길을 갈 수 밖에 없다. 그것이 잘못된 길이라도 말이다.
필자가 구원의 복음에 대하여 정확하게 들었을 때, 그 메세지는 이전에 나에게 성경을 가르쳐 주었던 사람들이 인용하였던 그 구절이었지만 그것은 근본적으로 달랐다. 이전에 나에게 성경을 가르쳐 주었던 사람들은 자신이 알지도 못하는 것들을 다만 입으로 내놓았을 뿐이었다. 문제는 거듭나지도 않은 사람들이 나에게 성경을 가르친다고 하였고(물론 모든 사람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거듭나야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할 수 있다는 평범한 성경적 사실을 무시한 채, 나에게 거듭나야 할 필요성을 이야기 하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성경을 가르쳤던 것이다(거듭나는 것은 단지 의식을 개혁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한 번 생각해 볼 문제가 있다. 그것은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일이다. 앞에서 인도하는 자나 뒤에서 따라가는 사람 둘 다 자신이 어디로 가는 줄 모르고 또 자신이 잘못 가는 줄 모르고 결국 마지막 순간에 나타난 결과들을 보고야 자신들이 길을 잘못 들어섰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나무는 열매를 보고서 알 수 있다. 과연 그들이 맺은 열매는 무엇이었던가? 많은 사람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해서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나게 한 후, 장성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용사가 되게 하였던가? 그렇지 않다. 어떠한 단체에 속하여 그곳에만 헌신하는 “무슨무슨-man”으로 만드는 것이다. 또 참으로 그들이 세상과 성별된 사람들이었는가? 아니다. 단지 그들은 세상에서 떠나 자신들이 원하는 또 하나의 세상을 만들어서 그곳에서 만족할 따름이다(성경에서 유일하게 인정하는 기구는 “지역교회”지만 그들은 스스로를 그렇게 칭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를 깨끗케 하여서 세상과 분리되게 한다. 자신들의 생각에 기초해서 세상을 떠나 수도원같은 곳을 만드는 것은 결코 성별이 아니다. 어떤 특정한 교단을 표방하지 않는 것만이 초교파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미 그들은 자신들 나름대로의 교리를 정립하고 그것에 따라 행동하고 있는 것이다.
나에게 성경을 가르쳐 주었던 그 사람들이 잘못 가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확실한 증거가 있다면, 그들이 성경을 가르치는데에 사복음서를 중심으로 하였다는 것이다. 이 사실은 그들의 성경에 대한 무지와 복음에 대한 무지를 드러낸다. 어떤 성경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만 빨간색으로 표시했듯이, 그들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말씀하시고 그 분이 몸소 행하신 행적이 나타난 사복음서만이 하나님의 말씀이고, 바울이나 베드로나 요한이 쓴 성경들은 무시해도 되고 참고로만 해도된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우리가 처음 이 글에서 보았던 말씀인 고린도전서 2장 말씀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거듭남과 구원에 대한 기본적인 진리들(물론 사복음서를 통해서도 어느 정도 알 수 있지만), 곧 하나님께서 이 시대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신 것은 사도 바울을 통해서이다. 사도 바울에게만 하나님께서 교회에 대한 신비를 알게 하셨다. 육신으로 예수님을 알고 있던 열한 사도들 보다 오히려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더 온전히 알고 있었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대속적인 죽음을 나타내는 것은 분명 사복음서이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면 예수님께서 할례의 일꾼으로 자신의 백성 이스라엘을 위해서 이스라엘에게 자신을 나타내신 것이 사복음서이다(롬15:8). 구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신약을 이해해야 하고, 신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복음서가 아니라 바울의 서신서를 이해해야 한다. 컴퓨터에서도 정작 중요한 부분은 컴퓨터 안의 겉으로 보이지 않은 작은 부분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러나 성경의 모든 부분이 다 같은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아니다(물론 어떠한 성경이 그 가치가 낮다는 것은 아니다).
참으로 우리가 이 시대에 알아야 할 복음이 무엇인가? 복음서에서 다루고 있는 “예수님의 탄생인가?”(그래서 크리스마스를 기념하고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사역인가?”(그래서 새벽기도가 중요한가?) “사도들이 행한 행적인가?”(그래서 신유를 한다고 떠들어 대는가?). 우리에게 알려진 구원의 복음은 바울이 말하고 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이제 너희로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았고 그 안에 선 것이라. 만일 너희가 내가 전한 복음을 굳게 잡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다면, 복음을 통하여 너희도 구원받은 것이라.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달하였나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들로 인하여 죽으시고 장사되셨다가 성경대로 셋째 날에 다시 살아나셔서』(고전15:1-4).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구원의 복음이다. 물론 복음서에서 이 내용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사복음서만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은 육체로 계셨던 인간 예수님만을 생각하고 붙잡고 있는 것이다. 『너희가 그를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며, 지금도 그를 보지 못하나 믿고 있으며, 또 말할 수 없이 영광으로 가득찬 기쁨으로 즐거워하나니』(벧전1: 8).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아무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육신을 따라 그리스도를 알았다 해도 이제는 더이상 그 분을 그렇게 알지 아니하노라』(고후5:16). 우리가 아는 예수님은 사복음서에 나오시는 분으로만 한정되지 않는다. 오히려 예수님께서는 장차 이 세상에 왕으로 오실 위엄을 지니신 하나님이시다. 사복음서만을 보면 예수님을 그렇게 알 수 있겠는가? 사복음서를 우위에 두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되심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이전에는 어떠한 사람도 거듭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아는가?(그래서 사복음서가 그들에게 매력이 있었던 것인가?). 예수 그리스도를 눈으로 보았던 사도들보다, 보지 않고 하나님께서 계시하여 주신 그 분의 말씀으로 구원받은 우리가 더욱 복되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요20:29)
거듭나지 않은 성경 교사들은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들이 아니다. 또 사복음서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만을 고집하는 사람들도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오히려 저주 아래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우리뿐만 아니라 하늘에서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것 외에 어떤 다른 복음을 전한다면 그는 저주를 받으리라. 우리가 전에도 말한 것같이 지금도 내가 다시 말하노니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어떤 다른 복음을 전한다면 그는 저주를 받으리라』(갈1:8,9). 단지 이 말씀을 바울 개인의 의견으로 생각한다면 그는 바로 하나님을 무시하고 있는 사람이고 영적인 사람이 아니다. 『사람들에게서 나지도 않았고 또한 사람에 의해서 되지도 아니하였으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죽은 자들로부터 그 분을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에 의하여 사도된 바울』(갈1:1)을 당신이 만약 무시한다면 그것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무시하는 것이다. 『만일 누구든지 자기를 선지자나 영적인 사람으로 생각한다면, 내가 너희에게 쓰는 글들이 주의 명령들임을 인식해야 할 것이라. 그러나 누구든지 무지하다면, 무지하게 내버려 두라』(고전14:37, 38). 바울이 주님의 명령으로 편지를 썼다는 사실을 아는가?
필자가 이 글을 쓴 목적은 단지 그들을 헐뜯고 욕하려는 것이 아니다. 필자는 누구보다도 내게 성경을 가르쳐 주었던 사람들을 사랑한다. 그러기에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것이다. 그러나 성경을 알지 못하면서 성경을 가르치려는 선생들은 조심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을 더욱더 엄히 문책하실 것이기 때문이다(약3:1).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운 일꾼이 되지 말고,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2:15). 모르면 모른다고 하라. 모른다고 시인하는 것이 아는체 하다가 사람들을 지옥에 보내는 소경된 성경 교사보다 낫지 않은가? 만약 당신이 거듭나지 않았다면 이 순간 거듭나야 한다.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에게 말하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3: 3).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라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영원히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벧전1:23). 『네가 네 입으로 주 예수를 고백하고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롬10:9). 당신의 모든 죄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그 대속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사해졌다는 사실을 마음으로 믿으라(롬3:23,24; 롬10:9). 그러면 당신의 혼은 그 순간 구원을 받고 당신의 영은 거듭나는 것이다(엡2:5; 1:13,14). 명심하라. 당신 자신의 의를 신뢰하는 것은 당신을 조금도 변화시킬 수 없고 구원할 수 없다(롬3:20,26).
만일 구원받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마음으로 믿으며 이 기도를 하기 바란다. “하나님, 저는 제가 죄인임을 압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 저의 죄를 대속하신 것을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저를 위하여 피를 흘리시고 죽으셨으며, 장사지낸 바 되었다가 부활하신 것을 믿습니다. 저는 지금 예수님을 저의 구주로 받아들입니다. 주님의 자비로운 은혜로 저의 죄를 용서하시고 구원과 영생을 선물로 주심을 감사합니다. 에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아멘.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