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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난 성도들 안에 계신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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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3년 02월호>
『이 신비는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라』(골 1: 27)성경에 나타난 두번째 신비는 골로새서 1:27에서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에게 이방인 가운데서 이 신비의 영광의 풍요함이 어떠한 지를 알리고자 하셨으니 이 신비는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라.』 이 구절은 구원받은 사람 안에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신비임을 말해 준다. 어떤 사람은 그것은 신비가 아니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설명할 수 없을지라도 그것은 신비이다. 이는 성경이 『이 신비는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 이 신비를 믿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해 보자. 나의 불결한 육체는 땅으로 갈 것이고 벌레가 내 육체를 먹을텐데, 이런 낡고 사악한 그릇 안에 어떻게 죄없고 완전한 구세주께서 허리를 굽히고 들어오셔서 거할 수 있겠는가? 죄 없는 분이 죄인 안에 계신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그 분이 사람 안에서 모든 사악한 것들을 참고 있어야만 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그리스도인 안에는 왕좌가 있는데, 그 왕좌에는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한 공간이 있다. 자아가 그 왕좌 위에 있을 때는 예수 그리스도는 왕좌 밑에 있고, 예수 그리스도가 왕좌 위에 있을 때는 자아가 그 왕좌 밑에 있는 것이다. 나는 어느 쪽인가? 내가 나를 지배하는가, 아니면 주님이 나를 지배하는가? 그 곳에는 두 명이 있을 공간이 없다. 내가 주님의 발 밑에 경배를 하든가, 아니면 주님이 내 발 밑에서 경배해야 할 것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내 안에 계시고, 나의 옛 육체 안에는 죄와 불복종과 완고함과 정욕과 탐욕이 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는 속에서, 즉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간음과 음행과 살인과 도둑질과 탐욕과 악의와 사기와 방탕과 악한 눈과 하나님을 모독함과 교만과 어리석음이니 이런 모든 악한 것은 속에서 나와 그 사람을 더럽히느니라』(막7:21-23)고 하셨다. 그 몸 안에는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옛 사람인 “나” 자신이 있다. 여기에 500명의 그리스도인들이 있다면 그들은 모두 그들 안에 그리스도가 있다고 맹세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500명의 각기 다른 예수 그리스도를 갖고 있는가? 우리는 이 사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성경은 단지 성령이 내 안에 있다고 말하지 않고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라고 말하였다. 나는 완전히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리스도는 내 안에 있다. 만약 예수 그리스도가 나누어지지 않았다면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 그 사람 안에, 또 그녀 안에, 그 남자 안에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밤을 지새운다 하더라도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것을 “신비”라고 부르는 것이다. 내주하시는 그리스도의 신비, 즉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 영광의 소망”인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구원받았을 때 고난은 모두 지나가 버렸다고 생각하지만, 많은 경우에 구원받았을 때 고난은 이제 시작인 것이다. 실제적으로 몇몇 사람들은 구원받을 때까지 자신의 악한 모습을 정직하게 깨닫지 못한다. 죠나단 에드워드(Jonathan Edwards)는 “내가 나의 마음을 살펴서 끝없는 사악함을 감지했을 때 그 곳은 지옥보다 더 깊은 구렁이었다.”라고 말하였다. 성공회 주교(이신론(理神論)자가 아닌)인, 진짜 구원받은 버클리 주교(Bishop Berkley)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기도할 때 나는 죄를 짓는다. 내가 설교할 때 나는 죄를 짓는다. 나의 회개까지도 회개할 것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나의 눈물 또한 그리스도의 피로 씻겨져야 한다.” 무슨 뜻인가? 내 안에는 두 사람, 즉 옛 사람과 새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한 번은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인에게 질문했다. “당신은 아직도 죄를 짓습니까?” 그는 “예, 저는 아직도 죄 때문에 괴롭습니다.”라고 했다. 그러자 그가 “나는 당신이 구원받았다고 생각하는데요”라고 하였다. 그 그리스도인은 “그렇습니다”라고 하였고, 그는 “당신은 구원받았는데 어떻게 아직도 죄를 지을 수 있습니까?”라고 묻자, 그리스도인은 “글쎄요, 사실은 내가 확실히 구원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죄를 짓는다는 것이 나를 혼란 속에 빠지게 합니다.”라고 하였다. 자, 구원받은 사람은 구원받기 전에 죄에 대하여 행위로 정당화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구원받은 후에는 행위는 작용하지 않는다. 죄를 짓고 나서 첫째날 밤에는 약간 초조해 하고 겁을 먹지만, “괜찮아, 그것은 별로 해가 되지는 않아”라고 말한다. 그 다음날 밤에는 “그래, 그러나 그것은 잘못이야, 나는 그것을 해서는 안되었었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다음날 밤에는 “글쎄, 내 양심이 왜 나를 계속 괴롭히는지 모르겠어. 어쨌든 그것은 모두 지난 일인데”라고 말한다. 넷째날 밤에는 당신은 비참해져서 얼굴을 푹 숙이고 울기 시작한다. 그리고 하나님께 죄를 지은 것에 관해 이야기 한다. 이렇게 차이가 생긴다. 사람이 구원받기 전에는 옛 성품 하나만 있었다. 그 옛 성품이 맛보고, 느끼고, 냄새 맡고, 보고, 듣고 할 수 있었다. 그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는 다섯 가지 감각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구원받고, 새 사람이 그 안에 들어왔을 때, 그는 여섯 가지 감각을 갖게 되었다. 그리하여 전혀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냄새 맡지도 못하고, 맛보지도 못하고, 만지지도 못했던 것을 사랑하기 시작한다. 그 일이 생기자 옛 사람은 괴성을 지르며 법석을 떨기 시작한다. 그는 싸우기 시작한다.
이처럼 구원받으면 두 성품을 갖게 된다. 이것이 신비이다. 이것이 바로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 영광의 소망”인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구원하시고 나에게 새로운 탄생(New Birth)을 주셨을 때 예수님께서는 나에게 위대한 일을 행하신 것이다. 그는 문명인(성령)을 데려다가 고릴라(옛사람)가 있는 우리 안에 넣으신 것이다. 문명인이 우리 안에 들어와서 그와 같이 있게 되기 전까지 그 고릴라는 이상한 행동을 하며 자신의 몸을 문지르고 벼룩을 잡아내고 바나나를 먹으면서 아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문명인이 들어온 후 그 고릴라는 흥분하기 시작하여 으르렁거리며 협박하기 시작하고 싸움을 하려고 시도한다. 그는 더 이상 행복하지 않다. 그는 더 이상 편할 수 없다. 형제여, 주님이 나를 구원했을 때, 주님은 나의 옛사람을 제거하라고 지속적으로 권면하신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