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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자들이여, 옷 입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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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0년 05월호>
“만일 우리가 옷입고 있다면 벗은 채로 발견되지 아니하리라.”- 고린도후서 5:3 -
아기가 태어나면, 벌거벗은 그 아기를 포대기로 감싼다. 그뿐만 아니라 사람이 죽어도 벌거벗겨진 그 시신을 수의로 감싼다.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님께서도 이와 동일한 과정을 겪으셔야 했다(눅 2:7, 막 15:46). 이처럼 사람들은 벌거벗은 상태를 수치로 여기기 때문에, 스스로도 무언가를 입을 뿐만 아니라 아기처럼 스스로 입을 수 없는 사람에게도 무언가를 입히려고 한다. 더욱이 죽은 사람에게조차 수의를 입혀 주어서 그의 수치를 가려 주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 또한 우리는 정치인이나 회사 임원 또는 공직에 있는 높은 양반들이 “옷을 벗었다”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이 말은 정년이 되었거나 어떤 사정이 있어서 그 자리를 그만두었다는 뜻이 아니다. 숨겨진 불미스러운 일로 인해 그 자리에서 물러난 것을 두고 일컫는 말이다. 그래서 “옷 벗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사람에게 수치를 안겨다 준다. 더군다나 누군가에 의해 벌거벗겨진 것이라면 그것은 크나큰 수치요, 모욕적인 일이 된다.
오늘날의 세상 풍조는 이렇게 크나큰 수치요, 모욕적인 옷 벗는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오히려 현대의 젊은 세대는 자기들의 몸을 노출시키는 일에 있어서 점점 더 과감해지고 있다. 심지어 자연으로 돌아가자며 아예 벌거벗은 채로 자신들만의 세상을 이루려는 “누드족”이 생겨났다. 과연 이러한 행태가 어제오늘만의 일이겠는가!(전 1:9) 이에 본 글에서는 인류가 저지른 죄의 역사를 적나라하게 기록해 놓으신 성경을 통해 “인간의 벌거벗음”과 “옷 입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관해 살펴보고자 한다.
▣ 벌거벗음 : 죄의 시작
처음에는 아담과 그의 갈비뼈로 지어진 이브가 벌거벗은 상태에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선과 악의 지식의 나무에서 나는 열매를 먹기 전, 곧 인류가 죄로 타락하기 전으로서, 비록 그들이 벌거벗었지만 부끄러워하지는 않았다(창 2:25). 이것은 마치 어린아이들이 벌거벗고 돌아다녀도 별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과 동일하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금지하신 열매를 먹었을 때 그들의 눈이 열렸고 죄에 대한 수치를 알게 되었다. 『그러자 그들의 눈이 둘 다 열려, 그들은 자기들이 벌거벗은 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자기들의 치마를 만들더라』(창 3:7). 율법을 통해 죄에 대한 깨달음이 생기는 것처럼(롬 3:20), 그들은 죄로 인해 눈이 열림으로써 부끄러움도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자기들의 노력”으로 그 수치를 가리려 했던 것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친히 “가죽으로” 옷들을 만들어서 그들의 수치를 가려 주셨다(창 3:21).
하나님과 동행했고 주님의 명령에 따라 방주를 지었던 의인 노아는 어떠했는가? 아담과 동일하게 『다산하고 번성하여 땅을 다시 채우라.』(창 9:1)라는 복을 받았던 그가 포도원을 경작하고 난 뒤에 어떻게 되었는가? 노아는 포도주에 취하여 벌거벗은 상태가 되고 말았다(애 4:21, 합 2:15). 하나님과 동행했던 그가 도대체 홀로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인가? 포도주에 취한 채로 장막에서 벌거벗고 있었다. 그는 결국 그의 아들 “함”에게 죄를 짓게 만드는 빌미를 제공했고, 함의 아들 카나안이 대표성을 띠고 “종들의 종”이 되는 저주를 받게 하고 말았다. 한편 다른 두 아들 셈과 야펫은 노아의 벌거벗음을 옷으로 덮어 주었다.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였다. 출애굽기 32장에서 모세가 시내 산에서 내려오는 것이 지체되자 백성들은 아론으로 하여금 우상을 만들게 했다. 그리고 그들은 송아지 앞에서 벌거벗은 채로 먹고 마시며 춤을 췄다. 이것은 그들을 이집트에서 인도하신 하나님 앞에서 먹고 마시는 모습이 아니었다(출 24:11). 다윗처럼 기뻐서 춤을 춘 것도 아니었다(삼하 6:14). 이것은 이방 민족들이 그들의 신들을 음란하게 섬길 때 행하는 죄들로서 하나님께서 금하신 일이었다(출 34:15,16). 이스라엘이 이집트에 있었을 때 이방인들의 가증한 우상 숭배에서 배운 것이 바로 이런 것이었다. 이상 언급한 모든 일들은 결국 하나님과 함께하는 길에서 멀어지고 죄를 지음으로써 시작된 벌거벗음이었다.
▣ 벌거벗김 : 죄에 대한 심판
아담과 노아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 살펴본 것처럼 벌거벗음은 분명 “죄”와 관련이 있다. 뿐만 아니라 성경은 “죄에 대한 심판”으로서 “벌거벗김”을 말씀하고 계신다. 남왕국 유다 왕 아하스는 하나님의 전의 기명들을 산산조각 내었으며, 주의 전의 문들을 닫아 버렸고, 예루살렘의 모든 모퉁이마다 그를 위한 제단들을 만들었다. 그뿐만 아니라 유다의 각 성읍에 다른 신들에게 분향할 산당들을 만들어 그의 조상의 주 하나님을 분노케 했다(대하 28:24,25). 이처럼 이스라엘의 주 하나님을 거슬러 크게 죄를 범한 아하스로 인해 하나님께서는 유다를 벌거벗기셨다(대하 28:19).
이스라엘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 또한 죄인들에 의해 벌거벗겨지셨다. 그들은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고 속옷을 제비 뽑아 나눴다(요 19:23,24). 죄 없으신 주님께서는 우리의 죄들을 위해 십자가에서 공개적으로 벌거벗겨진 채로 우리의 수치를 짊어지셨다. 주님의 벌거벗겨지심은 그분의 죄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었고, 이 땅의 모든 죄인들에게 내려질 형벌을 대신 감당하신 결과였다. 우리의 죄에 대한 징계가 주님께 대신 내려졌으며 그로 인해 우리가 낫게 되었다(사 53:5). 어린양을 죽이시고 얻은 그 가죽으로 벌거벗은 아담을 옷 입히셨던 것처럼, 죄로 벌거벗은 우리들이 하나님의 의로 옷 입게 된 것이다. 초림 당시 눈먼 사람들의 안내자로서 이스라엘의 흩어진 양들을 제대로 이끌었어야 할 종교지도자들은 긴 옷을 입고 다니기를 좋아했다(눅 20:46). 종교적 위선과 화려한 장식으로 옷을 입고 경건한 척했지만 이들은 모두 “벌거벗은 임금들”이었다. 그들은 죄 없으신 주님을 풀어 주려는 빌라도에게 『그의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리라.』(마 27:25)라고 외쳤다. 결국 메시아로 오신 유대인의 왕 예수 그리스도를 못박은 그 파렴치한 죄인들이 받은 심판은 어떠했는가? 상당수의 유대인들이 히틀러에 의해서 모두 벌거벗겨진 채 가스실로 향해야 했다. 이스라엘에 내려진 이러한 심판은 대환란 때 절정에 달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그날에는 만물이 그분의 눈앞에 벌거벗은 채로 명백히 드러나게 된다(히 4:13). 가려진 것과 숨겨진 것이 모두 드러나게 될 것이다(눅 12:2). 수많은 사람들을 미혹해 온 그 큰 창녀 로마카톨릭도 공개적으로 벌거벗겨지고 불로 태워질 것이다(계 17:16). 뿐만 아니라 하늘과 땅이 불타 없어지고 모든 심판이 끝나는 날에 사망과 지옥도 벌거벗겨지고 말 것이다(욥 26:6, 계 20:13,14).
▣ 옷 입음 : 거룩함의 시작
아담과 이브는 무화과나무 잎으로 치마를 만들어서 자신들의 벌거벗음을 가리려고 했다. 포도주에 취하여 벌거벗은 노아를 그의 두 아들 셈과 야펫이 옷으로 덮으려고 애썼다. 우상 앞에서 벌거벗은 채로 죄악의 춤을 추던 이스라엘을 향해 모세가 했던 일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돌판을 깨뜨리는 것뿐이었다(출 32:19). 다윗은 어떠했는가? 밧세바를 품에 안은 자신의 죄악을 가리기 위해 그녀의 남편 힛인 우리야를 전쟁터로 내몰아 죽게 했다(삼하 11:15). 하지만 그 어떤 수단으로도 이 모든 죄들을 온전히 가릴 수 없었다. 죄인들에게는 그렇게 할 수 있는 올바른 방법이나 능력이 없다! 우리 모두는 불결한 것 같고 우리의 모든 의는 더러운 걸레와 같기 때문이다(사 64:6). 따라서 죄악으로 인해 벌거벗겨진 죄인들을 위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형벌과 함께 벌거벗겨지셔야 했던 것이다. 바로 죄로 말미암아 벌거벗은 우리를 옷 입게 하시려고 말이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접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인해 의로 옷 입게 되었고, 영적 할례를 통해 죄들의 몸을 벗어 버리게 되었다(골 2:11).
그렇다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거듭난 자녀들에게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은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깨끗해진 옷을 입은 자녀들이 다시는 이전의 수치를 뒤집어쓰지 않는 것이다(벧후 2:20-22). 곧 어두움의 행위를 벗어 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는 것이다(롬 13:12). 뿐만 아니라 기만의 욕망에 따라 썩어진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하나님을 따라 의와 참된 거룩함 안에서 창조된 새 사람을 입기를 바라신다(엡 4:22-24). 항상 우리 곁에는 “무거운 것과 쉽게 에워싸는 죄들”이 도사리고 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을 벗어 버려야만 믿음의 경주에서 승리할 수 있다(히 12:1). 경주자에게 무거운 짐이나 거추장스런 옷은 경주에 방해만 될 뿐이다.
아담과 이브는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함으로써 죄를 지었지만, 최소한 벌거벗음으로 인한 수치를 깨닫고서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나무들 사이에 숨기라도 했다(창 3:10). 그런데 그로부터 2천 년이 훨씬 지난 시점에서 시내 산으로 올라간 모세를 끝까지 기다리지 못했던 광야의 이스라엘은 어떠했는가? 이집트에서 자기들을 구속하신 하나님을 잊어버린 그들은 금송아지 앞에서 벌거벗고서도 전혀 수치를 느끼지 못했다. 이처럼 인간은 세월이 갈수록 진화하기는커녕 더욱더 악해질 뿐이다. 오히려 『창녀의 이마』(렘 3:3)를 가지고서도 부끄러운 줄 모른 채 살아가는 것이 죄로 가득한 이 세상의 현실이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들에게 정해져 있고, 그 뒤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정해져 있다(히 9:27). 또한 하나님께서는 주님의 손으로 만드신 땅의 기초와 하늘들도 낡은 옷처럼 말아 버리실 것이다(히 1:11,12). 거듭나지 못한 죄인들은 지옥에서 그들의 벌레로 영원히 뒤덮이게 될 것이다(사 14:11). 하지만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들은 육신의 장막을 벗고, 영광스러운 옷을 입고서 주님을 만날 것이다(벧후 1:14, 고후 3:18; 5:1). 우리는 이 땅에 태어날 때 아무것도 가져온 것이 없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우리를 사랑과 은혜 속에서 값없는 선물과 영원한 것들로 풍성히 채워 주셨고, 주님을 위한 섬김의 정도에 따라 각자에게 상급과 유업도 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모든 인간에게 주시는 명령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으라”는 것이다(갈 3:27, 롬 13:14). 주님께서 오실 그날에 “벌거벗은 자들”은 모두 영원한 수치를 당하게 될 것임을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