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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하나님(1) 하나님의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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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2년 04월호>
[서론]성경의 교리를 공부하려면 우선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우리는 항상 무신론자나 회의론자, 조롱하는 자들로부터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증명해보라는 도전을 받아 왔다. 자연인(natural man, 영으로 거듭나지 않은 사람)에게는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고 느낄 수도 없는 그 무엇을 믿는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다(고전 2:14)
그러나 믿는 성도들에게 이 문제는 성경의 맨 첫 구절로써 해결된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느니라” (창 1:1). 성경은 하나님의 존재를 입증해 보이기 위한 교과서는 아니다. 오히려 성경은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기정사실에 바탕을 두고 전개 된다. 성경의 저자 중 그 어느 누구에게라도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해 보이라는 지시가 내려진 적은 없다. 성경에서는 단지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否認)하는 자는 미련한 자라고만 잘라서 말하고 있을 뿐이다. 시편 14:1에 “어리석은 자는 자기 마음에 말하기를 하나님은 없다 하였도다”라는 말이 있다. 어떤 형태의 지성을 가진 사람이라도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분명한 사실만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성경적인 근거는 접어두고 서라도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가장 위대한 증거는, 바로 우리가 매일 기도로써 그분과 교제하고 있다는 그 사실이다. 나는 오늘도 그 분과 대화를 나누었다. 그 분께서는 내가 다만 조용히 속삭였을지라도 내 마음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셨다.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어찌 부인할 수 있겠는가!
1. 성경적 증명
시편 19:1에 “하늘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창공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하늘의 아름다움과 영광이 큰 소리로 부르짖는다. “하나님은 존재하신다”라고. 로마서 1:20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창조에 나타나 있는 하나님의 영원한 능력에 관하여 이제라도 배워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 “세상의 창조 때부터 그 분에 속한 보이지 않는 것들이 분명히 보여졌고 심지어는 그분의 영원한 능력과 신격까지도 만들어진 것들에 의해 알려졌으므로 그들이 변명하지 못하느니라.”고 했다. 성경을 인정하는 사람이라면 이미 하나님의 존재를 시인한다. 이제 우리는 대단한 확신을 주는 것은 아닐지라도 강력한 변증이 되는 조금 색다른 측면들을 함께 고려해 보기로 하자.
2. 과학적 증명
인간에게는 태어날 때부터 어떤 절대자에 대한 보편적 신앙(Universal belief)이 내재되어 있다. 지구상에서 이러한 신앙이 결여되어 있는 종족은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창조하며 주관하는 어떤 존재가 있음을 사람들은 인식하고 있다. 로마서 2:15에서는 “그들의 양심도 증거하고 그들의 이성이 송사하거나 서로 변명하여 그들의 마음에 기록된 율법의 행위를 보여 주느니라”고 했다. 하나님의 존재는 인간의 양심에 기록되어 있다. 사도행전 17:23에서도 “지나다니다가 너희가 섬기는 대상을 보았는데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겨 놓은 제단도 있었노라”고 했다. 그들의 양심은 비록 그들이 하나님을 개인적으로는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 만큼은 일러준다. 혹 어떤 무신론자들은 자신들의 양심이 하나님에 대해 말해주지 않는다고 주장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진짜 무신론자가 자신의 그 떠들썩한 소리를 들을 줄 안다고 한다면 그것은 의심할 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비록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하늘에 있는 태양의 광채를 인정하지는 않더라도 태양이 존재하며 매일같이 뜨고 진다는 사실 만큼은 부인하지 못한다. 보기를 싫어해서 눈멀고자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정직한 사람이라면 마음속 저 깊은 곳에서 “하나님은 계시고 오늘도 여전히 살아 계신다”는 끊임없는 속삭임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은 하나님을 찾을 수 없어서가 아니라, 죽은 뒤에 하나님께 설명해야만 되는 책임을 지기가 두렵기 때문이다. 무신론이란 인간을 구원받지 못한 채 잠들어 버리게 만드는 악령이 쓰는 도구의 일종이다.
만일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아무에게도 책임질 필요가 없으며 나는 기분 내키는 대로 살 수도 있고 죽을 수도 있다. 그러나 더 깊은 반성의 순간에 젖어들면 모든 인간의 양심은 “하나님이 계신다”고 속삭인다. 오직 어리석은 자들만이 그것을 부인할 뿐이다. 나는 비행기를 쳐다보고서 조종사가 보이지 않으니 조종사 없이 비행기 스스로 날고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하늘을 쳐다보며 단순히 하나님을 볼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실로 가소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자기 자신의 뇌를 보지 않고서도 우리 몸의 중앙통제장치로서의 뇌의 존재를 믿고 있다.
3. 원인을 통한 논증(우주론적 견지에서 본)
이 세계는 실재한다. 그것은 어딘가로부터 왔음이 분명하다. 어떠한 사람이나 사물이라도 그 언젠가 그것을 존재하게 만든 원인이 있음에 틀림없다. 여기 한 권의 책이 있다. 이 책은 누군가가 썼음이 분명하다. 아무리 첨단 전자 장치를 갖춘 인쇄기라 할지라도 인쇄기 스스로 책을 만들어 낼 수는 없다. 우뚝 솟은 건물은 (저절로 서 있는 것이 아니고) 누군가가 지은 것이다. 수목은 (저절로 있는 것이 아니고) 누군가가 심어서 기른 것이다. 우주는 (저절로 운행되는 것이 아니고) 누군가의 주관에 의해 운행되는 것이다. 만일 시계의 모든 부속품을 통에 넣어서 백 만년 동아 가볍게 흔들어 놓는다 해도 그것들이 우연히 조립되어져서 시계바늘이 저절로 돌아가게 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세계의 실재에 대한 의문에 대해 줄 수 있는 단 한 가지 현명한 답변은 우리가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전지전능하신 분이 존재하고 계시다는 그 사실일 것이다.
4. 설계를 통한 논증(목적론적 견지에서 본)
시계는 그저 있었던 것이 아니고 그것을 만들어 낸 설계자가 있다. 그것은 특별한 목적이 있어서 고안되었다. 시계는 그 안에 모기를 기르려고는 설계되지 않았다. 그것은 시간을 정확하게 알게 할 목적으로 예리한 지성에 의하여 고안되었다.
세상의 크고 작은 사물의 측정은 인간 생활의 특수한 목적을 위하여 그 하나하나가 한 지성에 의하여 고안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새들의 색깔이나 동물들의 보호수단 등은 우연한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창조주의 탁월한 창조계획의 결과이다.
5. 도덕을 통한 논증(인류학적인 견지에서 본)
인간이 지적이고 도덕적인 성품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창조주가 단순히 생명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생명력이 있으며 또 지적이며 도덕적인 존재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창세기 1:26에 보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우리의 형상대로 우리의 모습을 따라 사람을 만들자. 그리하여 그들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가축과 모든 땅과 땅 위를 기어다니는 모든 기는 것을 다스리게 하자."라고 했고 27절에는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으니,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그를 창조하셨으며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느니라."라고 했다. 또 시편 94:9에는 "귀를 심으신 분이 듣지 아니하시겠느냐? 눈을 만드신 분이 보지 아니하시겠느냐?"고 되어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귀와 눈과 지식과 지혜를 주셨고 소유하신 것들에게 활력을 주신다.
양심은 인간에게 의와 불의, 또 선과 악을 가르친다. 창조주께서는 거룩하신 도덕적 존재이시며 의는 사랑하셔도 악은 아주 싫어하시기 때문이다.
6. 생명을 통한 논증
생명은 생명에서 연유된다. 그러므로 본래의 생명은 육신적인 생명이 창조되기 이전에 존재했던 생명 즉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분으로부터 연유된 것이다. 그러한 생명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그것은 영생을 소유하신 하나님 안에서만 찾을 수 있다. 시편 36:9에는 "이는 생명의 원천이 주와 함께 있으며 주의 빛 가운데서 우리가 빛을 볼 것임이니이다."라고 했다.
사과나무는 그 생명을 모목(母木)에서 취하며 새끼양은 어미양에게서 얻는다. 그러나 인간은 그 생명을 어디에서 얻는가? 우리는 최초의 창조로 돌아간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1:25에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 생명이니" 또 14:6에서는 "나는 ... 생명이라."라고 하셨고 10:28에서는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라고 하셨다.
모든 생명은 하나님에게서 생겨난다. 자발적(自發的)인 진화론은 오류임이 증명되었고 권위있는 과학으로도 도저히 용납될 수 없음을 증명했다. 생명은 시작이 있어야 한다. 유일한 논리적인 답변은 그 시작은 하나님과 함께 되었다는 것이다.
7. 조화를 통한 논증
무신론에 대한 이론은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해결되지 못한 신비를 증가시킬 뿐이다. 세상의 창조주로서 하나님의 존재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성경계시와 지식과 또는 과학적인 제반 사실에 꼭 들어맞는 마술열쇠와 같은 것이다. 이런 반박 할 수 없는 논리는 확신의 안위(安慰) 속에서 생사(生死)를 불사했던 수많은 성도들에 의하여 강력하게 지지되어 왔다.
[결론]
무신론은 다만 거대한 의혹일 뿐이며 불신은 그것을 용납하는 자에게 암흑과 절망으로 인도할 뿐이다. 창세기 1장 1절에 "태초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느니라"의 시인은 간절히 구하는 자를 하나님 자신의 더 충만한 계시의 정로(程路)로 인도해 준다. 히브리서 11:6에서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존재하시는 것을 믿어야 한다고 했다. 성경과 자연의 계시에 의거하여 단순히 믿음 안에 있는 어린아이처럼 그분을 온전히 믿고 의뢰하자.
[질문 복습]
1.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교재로써 성경을 기록했는가? 설명하라.
2. 주님의 눈에는 무신론자는 무엇으로 보이는가?
3.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두 개의 성경 구절은 무엇인가?
4. 사도행전 17:23에 왜 아덴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신들에게 제단을 만들었는가?
5.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무신론자의 목적은 무엇인가?
6.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는 원인을 통한 논증은 무엇인가?
7.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는 설계를 통한 논증은 무엇인가?
8. 하나님은 생명력이 없는 분이 아니시라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9.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는 생명을 통한 논증은 무엇인가?
10.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믿음을 위해서 필요한 조건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