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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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하나님(3) 하나님, 균형을 이루시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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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2년 06월호>

하나님께서는 거룩하시고 사랑이 많으시며, 자비로우시고 신실하시며, 또 공정하시고 의로우시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너무 강조하다가 그분이 공의로우시며 동시에 거룩하시다는 사실을 망각하는 경우도 있다. 하나님의 사랑은 회개하는 죄인에게 죄를 사해 주시고 자비를 베푸신다. 하나님의 경건과 정의는 죄가 율법으로 철저하게 다스림을 받아야 한다고 요구한다. 그 이유는 『죄의 삯은 사망이요』(롬 6:23)라고 했기 때문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인간이셨다면 이와 같은 성품 사이에 상존하는 갈등 속에서 두 가지 상반되는 감정과 소망으로 인하여 완전히 좌절하고 말았을 것이다. 다행히 하나님은 인간이 아니시기에 이러한 두 가지 상반된 감정의 완전한 조화 속에서 역사를 이루고 계신 것이다. “그분께서 무력한 인간을 영원한 지옥에 보낼 수 있을 것인가?”라고 질문하면서 그럴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공정하지 못한 견해이다. 지옥의 공포인 갈보리의 고난을 이해한다는 것은 바로 경건치 못함과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의 가혹함에 대하여 깊이 이해한다는 것과 같은 것이다(고후 5:11).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우리도 거룩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하나님의 법이 천명하는 것은 죄 짓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공의의 기초 위에서 영원한 저주가 내린다는 것이다. 인간 세대에서 가장 위대한 신비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의 경건과 하나님의 사랑, 이 두 가지를 충족시킬 수 있는 구원의 길이 마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이 방법은 율법의 요구를 충족시켰으며, 피조물인 인간에게 구원이나 저주(지옥에 떨어짐), 즉 천국과 지옥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 의지를 여전히 주고 있다.

1. 하나님은 거룩하시다.

하나님은 완전히 거룩하신 분이라고만 상상할 수 있다. 거룩하다는 것은 모든 더러움으로부터 벗어나서 정결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은 철저하게 정결하시다. 『주께서는 정결한 눈을 가지셨기에 악을 차마 보지 못하시며 죄악을 볼 수도 없나이다』(합 1:13). 하나님께서는 아들이 갈보리에서 죽어가고 있음에도 그것을 외면하셨다. 출애굽기 15:11에서는 『오 주여, 신들 가운데 누가 주와 같으리이까? 누가 주와 같이 거룩함이 영화로우며 찬양받을 만큼 두려우며 이적들을 행하리이까?』라고 말하며, 또 『주와 같이 거룩하신 분은 없나니, 이는 주밖에 다른 이가 없고 우리 하나님과 같은 어떤 반석도 없음이니이다』(삼상 2:2). 『서로 소리쳐 말하기를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만군의 주여, 온 땅이 그의 영광으로 충만하도다.”』(사 6:3). 또 베드로전서 1:15,16에는 『오히려 너희를 부르신 그분께서 거룩하신 것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하라. 이는 기록되기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하시기 때문이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자신과 타락한 인간 사이를 갈라 놓으셨다. 『그러나 한때 멀리 있었던 너희가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엡 2:13). 인간이 이렇게 거룩하신 하나님께로 접근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은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해서만이 가능하다. 하나님은 거룩하시며 죄를 미워하신다. 하나님의 경건한 진노는 죄를 응징하신다. 이사야 53:6 말씀은 아버지가 독생자를 저버리고 갈보리에서 벌주셨을 때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화염 같은 진노가 빛 가운데 나타날 때에야 비로소 죄인들은 자신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경건은 죄를 벌하라고 명하셨다. 이 명령은 구세주께서 친히 십자가 위에서 받으셨으며 하나도 남김없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렸다.

2.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요한일서 4:8에는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랑하신다’(동사)는 것을 말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사랑(명사)이시다’라는 것도 나타낸다. 내가 거듭남으로써 하나님께서 내 마음 속에 거하시면 내가 사랑 안에 거하기에 나도 사랑을 행해야 할 것이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이는 사랑이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이라.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났으며 또 하나님을 아느니라』(요일 4:7). 사랑은 무엇인가? 사랑은 받는 사람의 행복 속에 깃든 주는 사람의 바람과 기쁨이다. 참된 사랑은 죄인과 원수까지라도 사랑하는 것이다(마 5:44,45).
하나님의 사랑은 아들과 특히 그 아들을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나타나셨다. 요한복음 16:27에는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심이니 이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였고 또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을 믿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셨다(요 3:16). 그로 인하여 인간에게 진노와 저주에서 피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는 구원 계획을 세우셨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을 징계하심으로 그의 사랑을 나타내 보이시는 것이다(히 12:6).

3. 하나님은 신실하시다.

『너희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의 교제 안으로 부르신 하나님께서는 신실하시도다』(고전 1:9). 『그러므로 주 너의 하나님을 알라. 그분은 하나님이시니, 그를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들에게 언약과 자비를 일천 대까지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며』(신 7:9). 신실하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마음놓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을 말하며,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을 뜻한다. 하나님은 신실하시다. 그분은 정직하시고 변치 않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얼마나 위대한가? 그것은 하늘에까지 달한다. 시편 36:5에서 『오 주여, 주의 자비가 하늘들에 있으며 주의 신실하심이 구름까지 닿았나이다.』라고 말씀하고 있다. 또한 하나님의 모든 행사는 신실하심 속에서 이루어진다. 『주의 말씀은 옳으며 그의 모든 역사는 진리 가운데서 이루어지는도다』(시 33:4).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그가 약속하신 것을 지키시며 또 하셨던 말씀을 전부 이행하시는 데서 증명된다. 하나님께는 변함이 없으시고 거짓도 없으시며, 또 후회도 없으시다.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들을 필요한 데로 보호하시고 도우시며, 인도하시기 위하여 모든 약속을 준수하신다. 디모데후서 2:13에는 『우리가 믿지 아니하여도 그는 항상 신실하시니, 그는 스스로를 부인하실 수 없음이라.』라고 했으며, 고린도전서 10:13에서는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시험 외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하나님께서는 신실하셔서 너희가 감당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시험을 당하지 않게 하시고 시험을 당하면 피할 길도 마련하셔서 너희로 능히 감당케 하시느니라.』고 했다.

4. 하나님은 자비로우시다.

『주는 자비로우시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자비가 풍성하시도다』(시 103:8). 또 『(주 너의 하나님은 자비로우신 하나님이시니,) 주께서 너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너를 멸하지 아니하시며, 주께서 네 조상에게 맹세하신 네 조상의 언약을 잊지 않으시리라.』(신 4:31)고 말씀하고 있다. 주님은 자비로우셔서 우리에게 죄에 대한 형벌로 고통과 죽음을 주는 대신 건강과 위로를 주시며 구원받은 사람이나 잃어버린 영혼들에게도 즐거움을 향유할 수 있는 동일한 축복을 주신다.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태양을 악인과 선인 위에 떠오르게 하시며,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 위에 비를 내리심이라』(마 5:45). 하나님은 주권자이시며 긍휼히 여기시고자 하는 자를 택하신다(롬 9:15,18). 하나님의 자비는 대중에게 베풀어진다. 출애굽기 20:6에는 『나를 사랑하고 나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들에게는 수천 대까지 자비를 베푸느니라.』고 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얼마나 위대한가? 『나를 사랑하고 나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들에게는 수천 대까지 자비를 베푸느니라...그러나 주의 자비는 그를 두려워하는 자들 위에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며 그의 의는 자자손손에까지 미치나니』(시 103:11,17)라고 했으며, 주님은 또한 그를 신뢰하는 자들에게 자비를 베푸신다. 시편 32:10에서는 『악인에게는 많은 슬픔이 있으나 주를 신뢰하는 자는 자비가 그를 두르리라.』고 했다. 회개하는 죄인이 용서를 구하러 예수님께 나아왔을 때 예수님께서는 자기 입장을 주장하지 않으시고 도리어 긍휼을 베푸셨다. 시편 51:1에서 시편 기자는 『오 하나님이여, 주의 자애하심을 따라 나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주의 온유한 자비들의 풍성함을 따라 내 죄과들을 지워 버리소서.』라고 기도했다.

5.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다.

『그분은 반석이시며 그분의 역사는 완벽하나니, 이는 그분의 모든 길이 공의이심이라. 그분은 진실하시고 악이 없으신 하나님이시며, 의로우시고 정직하시도다』(신 32:4). 또 『주를 두려워함은 순결하여 영원히 지속되고 주의 명령들은 모두 참되고 의로우니』(시 19:9). 우리의 주님은 공평하시고 의로우시며 각인에게 공정한 판단을 하신다. 『너희는 고하여 그들을 가까이 데려오라. 그들로 서로 상의하게 하라. 옛날부터 이것을 선포한 자가 누구냐? 그때부터 그것을 말한 자가 누구냐? 나 주가 아니냐? 나 외에 다른 하나님이 없나니 공의로운 하나님과 구주가 나 외에는 없느니라.』(사 45:21)고 하셨다. 공평하시고 의로우시며 거룩하신 하나님은 공의롭고 깨끗하고 올바른 자세로 행하신다. 사무엘상 2:3에 보면 『그처럼 심히 교만하게 말하지 말고 너희 입에서 오만이 나오지 못하게 할지니, 이는 주께서 지식의 하나님이시며 행동들이 그분에 의하여 저울질되기 때문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창세기 18:25 말씀에는 『이런 방식을 따라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는 것을 주께서 멀리하시며, 의인을 악인과 같이 여기는 것도 주께서 멀리하옵소서. 온 땅의 심판자께서 의를 행치 않으시려나이까?』라고 했다. 그분은 분명히 공의로 심판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품성과 인격은 어느 때나 의로운 일을 하시도록 인도하신다. 공의로운 분으로서 하나님은 만물에 대한 최후의 심판자가 되실 것이다(왕상 8:32).

☑ 결 론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인간을 사랑하심과 동시에 그들이 경건하게 행해야 할 것들을 명하실 수가 있는가?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죄인에게 자비를 베푸시며 동시에 의롭게 하실 수가 있는가? 그 대답은 오직 갈보리에서만 찾을 수 있다. 갈보리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와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자비를 모두 다 나타낸 것이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그러나 죄까지도 사랑하시는 일종의 감상적인 사랑은 아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거룩하고 공정하다. 하나님과 그분의 실재, 또 인격과 성품을 이해하려면 갈보리를 배우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죄를 미워하셨으며 동시에 죄인을 얼마나 사랑하셨는가를 알게 될 것이다. 갈보리는 율법의 모든 욕구를 충족시키심으로 하나님의 경건과 정의를 만족케 하였고 죄인이 정정당당하게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허락하였다. 완전하신 분인 하나님 앞에 참된 경배를 드리기 위하여 엎드리자.

☑ 질문 복습

21. 하나님의 도덕적 성품 5가지를 들라.
22. 하나님께서는 외형적으로는 모순인 것 같은 성품으로부터 어떻게 무관하실 수 있는가?
23.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사실이 지옥의 교리를 지워버릴 수 있는가? 지워버릴 수 있다면 어떻게 할 수 있는가?
24. 거룩하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25. 베드로전서 1:15,16에 따르면 이 가르침의 실제적인 적용은 무엇인가?
26. 하나님께서 그분의 사랑을 주셨던 세 부류의 사람을 열거하라.
27.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얼마나 위대한가?
28. 왜 하나님의 자비하심이 모든 사람을 하늘로 이끌지 못하는가?
29. 우리가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다’고 말하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30. 하나님의 자비와 공의 사이에 있는 균형을 우리는 어디에서 발견할 수 있는지 설명하라.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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