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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에게서 종의 자세를 배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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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7년 11월호>
"명령한 대로 그가 행하였다고 해서 그 종에게 고맙다고 하겠느냐?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아니하노라. 그러므로 너희도 그와 같이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일을 하고 나서는 '우리는 무익한 종들이라.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이라.'고 말하라." 누가복음 17:9,10성경의 진리 중에서,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현대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이해하기 힘들어 하는 부분 중 하나가 "종의 자세"이다. 불과 1,2세기 전만 해도 주종 관계는 전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관념이었다. 즉 주인은 명령했고 종은 복종해야 했던 것이다. 종의 모든 소유는 주인의 것이었고, 그에 대한 모든 권한은 주인에게 있었다. 종의 섬김은 당연한 일이었을 뿐, 주인이 감사해야 할 일도 아니었다. 성경은 종(servant)에 대해 약 921회나 언급하면서 주종 관계를 당연시할 뿐 아니라, 종이 마땅히 주인에게 복종해야 한다고 여러 차례 말씀하고 있다(엡 6:5-8, 골 3:22-25, 벧전 2:18-20 등). 심지어 주종 관계를 부인하는 사람들은 교만하여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는 자들이라고 말씀한다(딤전 6:1-5). 이는 주종 관계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성경적 진리로서 땅이 아니라 하늘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인간이 창조되기 훨씬 전부터 하늘의 천사들은 종들로서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섬겨 왔다(욥 4:18). 이것은 하나님의 대표적인 이름이 『주』(LORD, 렘 16:21)이신 것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주종 관계는 영원에서도 지속되는데, 다시는 사망이나 슬픔이나 고통이나 저주가 없는 영원 시대에서도 "주의 종들"은 하나님을 섬길 것이다. 그들의 이마 위에 주님의 이름이 있다는 것을 드러냄으로써 자신이 주님의 소유임을 공개적으로 나타내며 섬기는 것이다(계 22:3,4).
하지만 마지막 때로 접어들면서 하나님의 질서를 무너뜨리려는 교만한 자들이 곳곳에서 일어나 "인간의 권리"를 부르짖기 시작했다. 성경적 주종 관계의 기본 정신은 주인이 종에게 의와 공평을 베풀고 위협하지 않는 것이지만(골 4:1, 엡 6:9), 세상 풍조를 따라가는 언론과 교육은 주종 관계가 마치 주인이 노예를 채찍질하고 착취하는 비인간적인 관계인 것처럼 극단적으로 왜곡하여 사람들을 세뇌시켰다. 결과적으로 주종 관계 자체가 잘못된 것인 양 호도되었고, 19세기 중반 유럽과 미국이 노예 제도를 폐지하면서부터는 더 이상 주종 관계를 쉽게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이것은 분명 마귀의 노림수였다. 주님은 혼란의 창시자가 아니라 질서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고전 14:33,40) 국가의 권위(롬 13:1-7, 벧전 2:13-15), 남편의 권위(엡 5:22-24, 벧전 3:1-6), 주인의 권위 등을 중요하게 여기시는 데 반해, 사탄의 계략은 늘 이런 권위를 무너뜨려 혼란을 야기하는 데 있는 것이다. 결국 한 번 흔들리기 시작한 권위는 남녀평등, 인권신장, 시민불복종과 같은 각종 인본주의적인 이념들에 의해 우르르 무너졌다. 기업주들 위에 군림하는 강성노조들이라든지, 반정부 시위를 밥 먹듯 하다시피 하는 데모꾼들, 학생들에게 체벌은커녕 함부로 훈계도 못하게 하는 전교조 등의 실상은 인권으로 성경적 권위를 무시하고 있는 라오디케아인들 교회 시대의 현실이다. 이처럼 마지막 때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들인 그리스도인들이 참된 종의 자세를 배우기가 매우 어렵다. "성경"이 아니고서는 그 어디에서도 올바른 섬김을 배우기가 불가능해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런 때일수록 더욱더 성경으로 돌아가 주님을 제대로 섬길 수 있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우선 종은 낮은 자세로 섬겨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종이 그 주인보다 높지 못하니라.』(마 10:24)라고 말씀하셨다. 당연한 말씀임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를 간과하고 있다. 예수님을 "예수"라고 하면서 함부로 부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명령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어기는 경우가 허다한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967만여 명의 교인들 중에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 16:15)라고 하신 예수님의 명령을 "주인"의 지엄한 명령으로 받들면서 두려움으로 복종하는 종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복종은커녕 오히려 "자기가 매주 교회에 나가 주고, 돈도 내고 있으니까, 하나님께서 자기 말을 잘 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교인들이 더 많은 것이다. 만약 이 시대에 바울이 살아 있었다면, "종들"이 아니라 "왕들"처럼 거드름 피우는 그 거만한 자들을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했듯이(고전 4:8-21) 호되게 책망했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친구들이라고 부르신 것은(요 15:15), 인자하신 주님께서 종을 친구처럼 대해 주신 것뿐이지 그들의 종으로서의 신분 자체가 폐기된 것이 아니었다(요 15:20). 더군다나 사도들 중에 어느 누구도 자신을 소개하면서 "나는 하나님의 친구요!"라고 말한 적이 없으며, 오히려 서신서들을 기록할 때마다 하나같이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소개했다. 하나님께서 친구라고 부르시며 선대하셨던 아브라함은 철저하게 종의 자세를 유지했던 사람으로 이 마지막 때의 성도들을 위한 훌륭한 본이 된다. 그는 자신이 티끌과 재같이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보소서, 이제 티끌과 재 같은 내가 주께 감히 말씀드리나이다』(창 18:27). 그는 날이 더워 장막 문 그늘에서 쉬고 있다가도 주님께서 오시자 뛰쳐나가 몸을 땅에 굽혀 절하며 주님을 맞이했다(창 18:1,2). 그리고 지나가시는 주님을 붙잡으면서 조금이라도 섬길 수 있는 기회를 주시라고 간청했고, 승낙을 받은 후에는 여기저기 뛰어다니면서 최고의 것으로 준비하여 주님을 섬겼다(창 18:3-8). 주님께 최고급 송아지 요리와 버터와 우유 등의 음식을 차려 드린 후에는 마치 "웨이터"처럼 무언가 더 시키실 것은 없는지 예의 주시하면서 주님 곁에 서서 기다렸다(창 18:8). 이때가 아브라함의 나이 "99세"였다(창 17:1).
그리스도인은 본래 구원받기 전에 마귀의 종으로 살았던 비참한 존재였다. 잔인하고 악랄한 마귀 밑에서 종노릇하고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우리를 사 주셨다. 게다가 우리의 새 주인은 은혜와 자비로 인자하게 대해 주시는 최고의 주인이시다. 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이며, 또한 주님을 섬기는 것 자체가 얼마나 큰 특권인가? 어떻게든 주님을 섬기고 싶어 했던 아브라함은 바로 이 점을 몸소 보여 주었던 것이다.
"또한 종은 주인의 말에 복종해야 한다."
종의 기본적인 자세는 복종이다. 주인이 어떤 명령을 하든지 그대로 복종해야 하는 것이다. 백부장이 큰 믿음을 가졌다고 예수님께 칭찬받은 이유는 말씀의 권위에 대한 복종 때문이었다. 권위 아래에 있는 병사들이 "가라." 하면 가고 "오라." 하면 오는 것처럼, 예수님께서 굳이 직접 오실 필요가 없으시고 "한 말씀만" 하셔도 충분하다는 믿음이 있었던 것이다(눅 7:1-10). 한마디의 말만 해도 복종하는 것, 그것이 바로 종의 합당한 자세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네가 사랑하는 네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창 22:2)라는 "한 말씀만" 하신 적이 있었다. 어떤 부가적인 설명도 없이 사랑하는 아들을 바치라는 이 명령을 이성적으로 수긍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지만, 아브라함은 그에 대해 묻지도 핑계를 대지도 토를 달지도 않고 그대로 복종했다. 아브라함이 아들을 바치기 위해 산을 올랐을 때의 나이는 이미 116세쯤 되었기 때문에, 16세 정도의 이삭이 반항을 했더라면 그를 강제로 붙잡아 죽이지는 못했을 것이다.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어떻게 설명했을지 상상해 보라. "얘야, 내 말을 들어라. 나는 이 일을 해야만 한단다. 하나님께서 내게 이 일을 시키셨기 때문이란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모른다. 그 이유를 설명할 순 없어도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니 나는 이 일을 꼭 해야만 한단다." 아브라함은 걷잡을 수 없이 쏟아지는 눈물을 삼키면서 이삭의 심장을 향해 칼을 들었다. 만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멈추게 하시지 않았다면 틀림없이 칼은 심장에 꽂혔을 것이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나는 이제 네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줄을 아노라.』(창 22:12)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이야말로 종이 주인의 명령에 두려움으로 복종하는 모습이다.
우리는 종의 자세에 대해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다. 우리의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이요 주님께서 우리에게 위탁하신 것일진대, 과연 우리는 아브라함처럼 가장 사랑하는 것까지도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드리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께서 위탁하신 것들(몸, 시간, 가족, 돈 등)을 마치 자기 것인 양 쓰면서 주인으로 행세하고 있지는 않은가? 이 마지막 배교한 교회 시대의 모습을 믿음의 생활의 척도로 삼아서는 안 된다. 성경에 나오는 신실한 종들과 죽기까지 신실했던 믿음의 선진들을 본으로 삼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종의 형체를 입으시고 십자가의 죽음에까지 순종하셨던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본을 잊지 말라(빌 2:5-8). 그래야만 이 마지막 때에 하나님 앞에서 신실한 종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