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별 분류
“회개” REPENTANCE...2
컨텐츠 정보
- 7,734 조회
-
목록
본문
성경대로믿는사람들 <1993년 12월호>
하나님께서는 회개를 명하신다. 『실로 무지한 때에는 하나님께서 눈감아 주셨으나(하나님께서 우상 숭배를 참아주셨던 구약 시대) 이제는 어디에 살고 있는 어떤 사람에게도 회개하라고 명령하고 계시니라.』 무엇을 회개하라고 하시는가? 사도행전 17:30의 본문은 하나님의 형상이신 예수 그리스도(고후4:4) 대신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에 대한 것이다. 회개는 성경에서 100번 이상 언급된 중대한 과제이다. 회개는 우리가 전에 말했던 것처럼 침례인 요한의 주제이다. 『그 무렵에 침례인 요한이 와서 유대 광야에서 복음을 전파하여 말하기를 “너희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3:1-2).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에 제자들을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 보내셨을 때 그 분께서는 회개를 전파하도록 명하셨다. 『그러자 제자들이 나가서 사람들이 반드시 회개해야 한다고 전파 하니라』(막6:12).모두가 회개해야 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심령에 가지신 부담이다. 베드로후서 3:9에서 주님께서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다 회개에 이르게 하려 하신다.” 이 문제에 대하여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에 실패하는 것은 영원한 정죄에로 이끈다.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 13:3에서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이와 같이 멸망하리라』고 하셨다. 따라서 어떠한 의사나 변호사도 이 명령에서 피할 수 없다. 1년에 150,000달러를 번다고 해도 피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죄를 지을 때 히피족, 마약 사용자, 매춘부, 건달, 마약 밀매인 부류와 같이 취급하는 것이 아니다. 당신은 차별이 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차별이 없느니라. 이는 모든 사람이 범죄 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다가』(롬3:22-23)라고 했다. 그러므로 성경은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이와 같이 멸망하리라고 말씀하신다.
따라서 이 명령은 아주 분명한 것이다. 회개는 어디에 살고 있는 어떤 사람에게나 하나님께서 명령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면제될 수 없다. 당신은 “무엇에 대한 회개요?”라고 말할 것이다. 사악함에 대한 회개, 비열함에 대한 회개, 게으름에 대한 회개, 완고함에 대한 회개이다.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공유함”, “체험을 나눔”, “하나님의 사랑”과 같은 긍정적인 면만을 알고 있다. 그들은 결코 어디에서 돌이켜 어디로 향해야 할지 모르는 것이다. 그들은 눈멀어서 비틀거리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지 않는 게으름을 회개하라. 영혼에 대한 무관심과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이겨내어 인도하려고 나가지 않는 것을 회개하라. 지옥으로 갈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에게 말하지 못하는 나약함과 한 사람이 구원받기를 기다리는 대신 구원을 이끌어 내기 위하여 당신도 이해하지 못하고 당신에게 설교했던 사람도 이해하지 못하는 성령에 대하여 함부로 지껄이는 것을 회개하라. 회개하라! 당신의 죄들로부터 돌이켜라. 이것이 모든 민족들에게 필요한 것이다. 좋은 것을 얻고자 외부의 세력에 의지하는 것을 그만두라. 서로를 죽이도록 탄환과 무기를 팔고 뒤돌아 평화를 말하는 것을 그만두라. 회개하라!
회개가 의미하는 것을 알겠는가? 당신의 사악함에서 돌아서는 것을 의미한다. 당신은 아내를 구타하는가? 그것을 끊으라. 자녀들을 멸시하는가? 그들을 돌보라. 집에서 기도하지 않는가? 집에서 기도하라. 아멘. 아멘. 아멘. 전도지를 꺼내지 못할 만큼 겁쟁이인가? 사람들에게 전도지를 주라. 회개가 의미하는 것을 아는가? 회개는 부정적이다. “끊는 것”이다. “그것을 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독재자와 같이 말씀하시며 당신의 부패하고 잔인하고 타락한 성품 때문에 불쾌하게 여긴다. 회개하라. 술을 끊고, 저주하지 말고 폐를 암으로 망치지 말고, 빚을 갚으며 더러운 농담을 그만두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지성에 관련되어서 회개는 당신의 마음을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 마태복음 21: 29에서 작은 아들은 “아니 하겠나이다”라고 하더니 “나중에 뉘우치고 갔다.” 회개는 당신의 자세를 혁신하는 것이다. 회개하라. 회개는 그리스도인이 죄를 미워하고 하나님의 진리를 사랑하도록 가르쳐 준다. 탕자는 회개했다. 그는 먼 나라에서 사는 것에서 그의 마음을 바꾸어 그의 아버지의 집에 종으로 돌아가고자 마음먹었다. 오순절에 베드로가 유대 민족에게 회개를 촉구했을 때 그가 원했던 것은 메시아를 거절한 것에서 그들의 마음을 바꾸는 것이었다. 그것이 곧 예수를 단순히 하나님을 모독하며 사람들을 선동하는 사람으로 생각하던 것에서 그 분을 메시아로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그들의 기름 부음 받은 지도자로 인식하라는 것이다.
감정에 관련되어서 회개는 구원에 이르도록 슬퍼하는 것이다. 즉 경건한 회개이다. 매우 번번이 감정은 회개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회개는 격렬한 전투다. 이제까지 몇 장에 걸쳐 내가 썼던 내용이 쉬운 것이라고 말하지는 않겠다. 그렇다. 온 밤을 지새워 뉴욕, 헐리우드, 시카고를 지켜보는 사람에게 집에서 유치한 TV를 버린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것은 쉽지 않다. 당신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마귀에 의해 인도되기 때문에 그들과 교제를 그만두는 것은 당신에게 쉬운 것이 아니다. 그것은 쉽지 않다. 당신이 성장했던 교회가 현대주의나 자유주의나 배교한 사람들을 지지하고 아프리카에서 서로를 죽이도록 혁명군을 지원하는 이유로 그 교회를 떠나는 것은 쉽지 않다. 그것은 쉽지 않다. 하나님은 결코 옳게 행하는 것, 옳게 생각하고 옳게 행동하는 것, 옳게 말하는 것이 쉽다고 하지 않으셨다. 당신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는 한 옳게 하는 것이 쉽다고 학교에서 배워 왔다.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이러한 것이 그들의 머리를 고정시키도록 배웠다. 결코 옳게 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수입을 옳게 쓰는 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 당신도 알고 있다시피 당신은 이것을 이해할 것이다. 그러한 문제에서 우리는 기본적인 지식을 생각해볼 수 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근원이니』(딤전6:10). 당신은 무엇인가 값의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내가 한번 말해 보겠다. 그리스도께서는 『누구라도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눅9:23)고 하셨다. 이것이 쉽게 생각되는가?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따르고자 하는 사람에게 스스로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라고 하신다. 당신은 십자가에 달리는 것이 쉽다고 생각하는가? 아! 우리에게는 많은 일단의 그리스도인들이 있다. 우리는 예쁜 옷을 입고, 아주 예쁜 자동차를 가진 사람들이 자신들의 생활에 들어오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경험을 나누는 것들을 안다. 그러나 그 채찍과 그 못들은 무엇인가? 그것들에 대하여 아는가? 그 피와 땀과 그 눈물과 그 분의 얼굴에 흐르는 침은 무엇인가? 당신은 이러한 것들과 가까이 있었는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이 간 곳이 그곳인가? 당신 중 누군가는 잘못된 그리스도를 따르고 있는 것일 것이다(막13:22). 당신은 당신 생에 찾아 왔다고 말하는 그리스도를 만들어내야 한다.
회개는 쉽지 않다. 누가복음 10:13에서 예수님께서는 투로와 시돈에 대하여 말씀 하셨다. 그들이 회개했더라면 그들은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서 회개했을 것이다. 누가복음 7:44에서 회개를 보여준 여인은 예수님의 발을 그녀의 눈물로 씻었다. 누가복음 18:13의 세리는 그의 가슴을 치며 마음의 고통을 나타냈다. 시편 38:18에서 다윗은 말하기를 『내가 나의 죄악을 고하고 내가 나의 죄에 대하여 슬퍼하나이다』라고 했다. 회개가 항상 눈물과 비참함을 포함하지는 않지만 많은 경우 그렇다.
의지에 관련해서 보자. 히브리어에서 회개에 해당되는 뜻은 “어떤 것에서 돌아섬”이다. 탕자는 “내가 일어나서 내 아버지께로 가리라.”하며 그는 일어섰다. 어떤 사람의 말로는 “회개는 얼핏 볼 때에는 변화된 마음이 수반되는 변화의 순간이다. 바울은 회개에 대해 말할 때 그것을 한 번의 행동이라기보다는 어떠한 경험으로 보았다. 회개는 이중적이다(행20: 21). 하나는 죄에서 돌아서는 것이고 둘째는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다.
죄라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떠난 것이다. 탕자와 같다. 하나님께로 돌아서는 것이 없이 죄로부터 돌아선 것은 단순한 개혁이다. 그것은 중생이 아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서는 것 없이 당신이 죄로 돌아선다면 그것은 당신이 단지 결국 떨어질 도끼 앞에서 정해지지 않은 임시 상태에 있는 것이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에서 그의 회심에 대해서 말했다. 『너희가 어떻게 우상으로부터 하나님께로 돌아서서 살아 계시며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며』(살전1:9). 사도행전 26:18에서 그의 사명이 사람들을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서게』하는 것이라 하였다. 회개는 하나님께로 돌아서지 않는다면 소용없다. 어떻게 회개가 이루어지는가? 그것은 기본적으로 성령님이 주시는 죄에 대해, 의에 대해, 심판에 대해 주시는 찔림으로 이루어진다(요16:8). 이 점에서 하나님은 그것을 기쁘게 받으신다(행11:12). 왜냐하면 그것이 성령님의 일이기 때문이다.
디모데후서 2:25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회개하는 마음을 주셔서 진리를 깨닫도록 하실까 함이요』라고 하셨다. 사람들이 복음의 내용을 들을 때 성령님께서는 그들에게 죄에 대하여 찔림을 주시고 그들이 회개하여 그들의 죄들에서 돌아서서 그리스도께로 돌이킬 마음도 주신다. 요나는 니느웨에 회개를 전파했다. 그래서 그들은 그 말을 믿고 하나님께 돌이켰다. 성경은 말하기를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회개하도록 인도하심을』(롬2:4)라고 했다. 주님께서는 『내가 사랑하는 자마다 책망하고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열심을 내고 회개하라』(계3:19)고 하셨다.
회개의 결과는 확실하다. 모든 하늘이 즐거워한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와 같이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아흔아홉 명의 의인들보다 회개하는 한 사람의 죄인을 더 기뻐하리라』(눅15:7). 그것은 죄의 면책과 용서를 가져온다(사55:7). 회개는 사람을 용서받도록 하지는 않는다. 회개는 용서받을 수 있는 조건이며, 용서는 갈보리 십자가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신 사역에 의해 주어진다. 성령님은 회개한 사람의 몸에 들어오셔서 그의 죄가 용서되었고 그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며 그가 중생했고 그가 새로 태어났다는 것에 대한 확신을 주신다. 성경의 모든 축복은 하나님을 향해 참되게 믿는 사람들의 최초의 회개에 따른다. 구속된 죄인은 회개한 죄인이 되는 것임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때마다 그의 생활을 점검하여서 개인적인 죄들에서 돌아서서 그것을 자백하고 그것에 대하여 심판하고 하나님과의 교제에 머무르기 위해서 하나님께로 돌아서야 한다. 왜냐하면 『그러나 그 분이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교제가 있게 되고,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라』(요일1:7).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