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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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로 씨를 뿌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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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1년 07월호>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들은 기쁨으로 거두리로다』(시 126:5).


지난 20세기 동안 그리스도인들은 어디에서나 복음을 전하는 데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딤전 2:4)을 성취하는 것이기 때문이며, 단 한 사람이라도 지옥에 가서는 안 된다는 절박함 때문이었다. 또한 지옥은 결코 사람이 가서는 안 되는 곳이기 때문이다(마 25:41).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 이 순간에 너무나도 많은 죄인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거절하고 농담거리로 여기며 조소하고 비방하고 있다. 이렇게 거부당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은 지금도 어디에선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고 있는 것이다. 『파송되지 아니하였는데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와 같이 “화평의 복음을 전하며 좋은 일들의 기쁜 소식을 가져오는 자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라고 하였느니라』(롬 10:15).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을 향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세상을 복음 증거의 대상으로 바라본다면, 우리 그리스도인은 구령(soul winning)에 대해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하겠는가?
첫째, 복음을 누가 전하느냐 하는 것이다. 두말할 것 없이 그리스도인이 전해야 한다. 오늘날 거듭나지 않은 채 종교 행위에만 몰두하고 있는 종교인들은 구령(soul winning)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또한 관심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전도”라는 미명 하에 교회에 사람들을 끌어다 앉혀 놓으면, 그것이 곧 복음을 전해 구원으로 인도하는 것인 양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소위 “전도왕 간증 집회”에 참석해 보면 성경적인 복음을 전해서 죄인이 거듭나게 되는 것은 없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자신이 속해 있는 교회에 얼마나 많은 사람을 데려갔느냐 하는 것을 간증이라고 떠벌리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복음 전파는 반드시 복음으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 전해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의 구원 간증이 곧, 좋은 복음의 메시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신은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인가? 그렇다면 당신은 입을 열어 복음을 전해야 한다.

둘째, 언제 전하느냐 하는 것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복음을 전하는 시기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대비하라』(딤후 4:2). 그리스도인은 복음을 전할 준비를 항상 하고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전장의 군인은 항상 싸울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전쟁에 임하는 자는 아무도 이생의 일들에 얽매이지 아니하나니 이는 자기를 군사로 뽑은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딤후 2:4).
초대 교회로부터 지금까지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을 전하는 시기가 특별히 정해져 있지 않았다. 항상 준비되어 있었고, 궂은 환경 속에서도 그리스도인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던 것이다(롬 1:16). 당신은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인가? 그렇다면 지금 복음을 전하는 데 무슨 문제가 있는가?
셋째, 어디서 전하느냐 하는 것이다. 바울 사도는 복음 전파자의 최고의 표본이다. 바울 사도는 어디에서나 복음을 전파했던 그리스도인이었다. 그것이 비록 감옥이었다 해도 바울 사도는 자신에게 맡겨진 경륜을 잊지 않았고 신실하게 전파했던 것이다.
아프리카 오지에 복음을 들고 갔던 리빙스턴이나 중국을 향해 전진했던 허드슨 테일러나 미얀마에 복음을 전파했던 아도니람 저드슨 등이 바로 어디에서나 복음을 전하기 위해 나아갔던 그리스도인들의 표본인 것이다. 또한 현대에는 포보프나, 범블란트 등이 좋은 예다. 당신은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인가? 그렇다면 당신이 있는 바로 그 자리가 복음을 전할 장소인 것이다.

넷째, 무엇을 전해야 하는가? 두말할 것 없이 복음이다. 그러나 주목해야 할 것은 성경은 다른 복음(고후 11:4, 갈 1:6-9)이 있음을 상기시켜 주고 있다. 왜냐하면 사탄은 단 한 사람이라도 더 마귀의 자식으로 붙들려고 하기 때문이다(고후 4:4). 그래서 성경에서 제시하는 복음(고전 15:1-4)을 가리고, 복음 비슷한 것을 제시하고 있으며 더 그럴듯한 것들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들 중에서 “복음”이란 말을 사용하지 않는 교회가 있던가? 그런데 왜 교인들에게 “구원받았습니까?”라고 물으면 엉뚱한 대답들을 하는 것인가? 그것은 바로 다른 복음이 전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당신은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인가? 그렇다면 당신을 구원으로 인도한 복음을 전파하라.

다섯째, 어떻게 전하느냐 하는 것이다. 필자가 강조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복음을 전파하는 일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 말씀에 기록된 대로 눈물로 씨를 뿌려야 하기 때문이다.
바울 사도는 이 말씀에 가장 부합하는 생을 살았다. 바울 사도는 구원받은 후, 복음 전파에만 전 생애를 바쳤던 사람이다. 그가 복음 전파를 하며 겪었던 많은 눈물의 흔적은 성경 여기저기에 배어 있다(고후 4:8-10; 11:23, 딤후 3:11).
피흘림의 발자취인 신약 교회사를 알고 있는가? (팍스의 순교사, 피터 럭크만 박사의 신약교회사, E.H. 브로우드밴트의 순례하는 교회 등과 같은 책들을 읽어 본 적이 있는가?) 순교자들은 자신들의 주이시며, 왕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다가 아침의 이슬처럼 사라져갔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그들의 열매들로서 믿음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복음은 지속적으로 전해져야 하고 인내로 전해져야 한다. 한번 전했더니 거절한다고 해서 뒤돌아 선다면 어리석은 것이다(물론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과 알고 지내는 사람을 구령하는 방법은 달라야 한다 -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들을 대하셨던 예를 상기하자).
죠지 뮬러는 자신의 친한 친구들의 구원을 위해 수십 년을 기도했다. 그러나 친구들은 죠지 뮬러가 죽는 순간까지도 구원받지 못했다. 그러나 죠지 뮬러의 기도는 결국 그의 장례식장에서 결실을 맺게 되었다. 그의 친구들은 죠지 뮬러의 장례식장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구원받게 되었던 것이다.
당신은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인가? 그렇다면 눈물로 씨를 뿌려야 한다. 복음 전파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왜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을 전해야 하는가? 그것은 바로 아버지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의 지식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아버지의 뜻 가운데서 죄인들을 향해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또 다른 한 가지는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영원한 형벌의 장소인 지옥에 가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나 개인의 주장이나 이론이 아니다. 성경이 분명히 말씀하고 있는 사실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복음은 전해져야 하며 단 한 사람이라도 더 영원한 지옥의 형벌로부터 구원받아야 하는 것이다. 당신은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인가?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향해 복음을 전하고 소리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주의 약속은 어떤 사람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우리에 대하여 오래 참으시어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다 회개에 이르게 하려 하심이라』(벧후 3:9). 주님께서 승천하신 후 다시 오시겠다고 말씀하신 지도 어언 2000년이 지나고 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왜 주님께서 오시지 않느냐고 반문하기도 하고 비웃기도 하고 조롱하기도 한다. 더욱이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조차 재림에 대해 반신반의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성경은 너무나도 분명하게 주님의 재림을 기록하고 있고, 그 시기는 하나님만이 아신다고 말씀하고 있다. 주님께서 오시면 더 전하고 싶어도 할 수 없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이야기할 시간도 없다. 더 이상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것이다.
2001년 주님의 재림이 더 가까운 이 시점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을 향해 복음의 씨를 뿌려야 한다. 그것이 비록 눈물과 함께 뿌려야 할 어렵고 힘든 일이라 해도 말이다. 그 누군가가 나를 위해 눈물로 뿌린 씨의 복음이 현재 나에게 그 열매로 있듯이, 나 자신의 눈물의 씨로 인해 누군가가 열매로 드러난다면, 그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일 것이다.
<20세기 순회설교자의 회고록>(피터 럭크만, 말씀보존학회 간)을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온다.
“이 시점에 이르러서 하나 분명해진 것이 있다면 20세기 순회 전도자로서의 나의 사역은 중국에서 생산되는 모든 차(tea)와도 바꿀 수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나에게 이 사역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는 것이다. 이 세상 열 개를 준다 해도 바꾸지 않을 것이다.
나의 사역 기간 중 한국 전쟁, 페르시아 만의 전쟁, 이란 인질 사태, 베를린 장벽 붕괴 등이 일어났지만 수십억의 사람들은 이런 사건과 아무런 관계도 없이 살아 가고 있었다. 인간이 달에 착륙한 사건마저도 죄인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풍성한 삶(요 10:10)이란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 있는 삶이다. 그리스도인들로서의 완전한 보람과 만족은(마 16:25) 그리스도를 위해 생명을 버릴 때만이 얻어진다(마 10:39). 나는 해 아래 그 어떤 것도 추수의 주님이신(마 9:37)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일하기 위해(마 9:38) 밭으로 나가는 것(요 5:35,36)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은 없다고 확신한다.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은 절대로 없다.
내가 살아온 70년 동안 닉슨, 맥아더, 고르바초프, 시나트라, 간디, 케네디, 피카소, 교황들, 처칠, 스탈린, 레닌, 포크너, 아인슈타인, 헤밍웨이 등이 살다 갔지만 그들의 삶은 지루한 삶이었고 열매 없는 삶이었다. 참된 인생은 성경과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이기 때문이다. 이 삶은 환경, 정부,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고 사람들을 변화시킨다. 이러한 인생의 핵심은 다름아닌 개인 구령인 것이다. 그 어떤 교황도, 주교도, 추기경도, 총리도, 대통령도, 언론인도, 국왕도, 대사들도, 휴머니스트들도, 승려도, 그 누구도 이 진실을 모르고 사
는 것이다. 복음으로 생명을 낳는 것을 모르고 살아가는 가련한 인생들이 너무도 많다.”

비록 복음 전파에 따른 박해와 시련과 고난이 있다 해도, 그것은 오히려 면류관으로 그리스도인들에게 돌아올 것이다.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기쁨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가 오실 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앞에 있을 너희가 아니겠느냐?』(살전 2:19) 세상은 악하고 사탄의 통치 하에 있다. 세상은 하나님을 거역하여 멸망할 것이다. 그 세상을 향해 복음을 전해야 한다. 더욱이 연민과 사랑을 가지고 전해야 한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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