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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물보다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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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4년 12월호>
『그러자 사무엘이 말하기를 "주께서 번제와 희생제를 주의 음성에 복종하는 것만큼 크게 기뻐하시나이까? 보소서, 복종하는 것이 희생제물보다 낫고, 경청하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낫나이다. 이는 거역함은 마법하는 죄와 같고 완고함은 행악과 우상 숭배와 같음이니이다. 왕이 주의 말씀을 거역하였기에, 주께서도 왕을 거절하여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더라』(삼상 15:22,23).그리스도인들에게 이 말씀은 사무엘이 사울왕에게 했던 말들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말씀으로 기억되고 있다. 사무엘이 이 쓰디쓴 말을 사울에게 하기까지의 과정은 다음과 같다. 사무엘은 사무엘상 15:2,3에서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주 하나님의 말씀을 사울에게 전달했다. 즉 『만군의 주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나는 아말렉이 이스라엘에게 행한 일, 즉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올라올 때, 그가 길에서 매복하던 일을 기억하노라. 이제 가서 아말렉을 치되, 그들이 소유한 모든 것을 완전히 멸하여 그들을 남겨 두지 말지니, 남자와 여자, 아기와 젖먹이, 소와 양, 낙타와 나귀를 다 죽이라.』는 명령을 전달한 것이다. 이에 사울은 보병 이십만과 유다 사람 일만을 데리고 아말렉 성읍으로 가서 골짜기에 매복했다(4,5절). 그러나 이집트에서 올라오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친절을 베푼 켄인들에게는 호의를 베풀어 아말렉인들 가운데서 떠나게 했다. 그 뒤 하윌라에서 이집트 건너편 술에 이르기까지 아말렉인들을 쳤는데, 그때 그는 아말렉인들의 왕 아각을 사로잡고 모든 백성을 칼날로 완전히 멸하였다(6-8절). 말하자면 사울은 사무엘을 통해 주신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아각을 살려 둠은 물론, 양들과 소들과 기름진 것들과 어린양들과 모든 좋은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남겨 두고 완전히 멸하기를 원치 아니하였으며, 천하고 쓸모없는 것들만 완전히 멸하는 어리석은 죄를 범한 것이다(9절). 『어리석은 자의 행위가 자신의 눈에는 옳으나, 조언에 경청하는 자는 현명하니라』(잠 12:15). 이 말씀 그대로이다. 사울은 "자신의 눈에 옳게 보이는 대로" 행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의 모든 행위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고 계셨다. 모든 행위가 자신의 눈에는 깨끗했으나, 주께서 그 영을 달아보셨더니 함량미달이었다(잠 16:2). 사울의 불순종을 지켜보신 주님께서는 『내가 사울을 세워 왕으로 삼은 것을 후회하노니, 이는 그가 나를 따르는 것에서 돌이켜 내 계명들을 이행하지 아니하였음이라.』(삼상 15:11)고 사무엘에게 말씀하셨다. 사무엘은 그날 밤새도록 주께 부르짖었다.
다음 날 사무엘은 아침 일찍 사울을 만나기 위해 길갈로 떠났다. 사무엘이 도착하자 사울은 사무엘에게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당신은 주의 복을 받으소서. 내가 주의 계명을 이행하였나이다』(삼상 15:13). 우리는 사울의 이 말이 얼마나 위선적인 거짓말인가를 사무엘의 질문을 통해서 알고 있다. 『그렇다면 내 귀에 들리는 이 양들의 울음 소리와 내가 듣고 있는 소들의 울음 소리는 어찌된 것이니이까?』(14절) 사울은 슬며시 뒤로 빠지면서 "무리"와 "백성"이라는 표현으로 사울 자신 외에 다른 누군가에게 애매한 탓을 돌린다. 『무리가 그것들을 아말렉인들에게서 끌고 왔으니, 이는 백성이 주 당신의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려고 양들과 소들 중 가장 좋은 것으로 남겨 둔 것이며, 나머지는 우리가 완전히 멸하였나이다』(15절). 그러나 성경은 "사울과 백성"이 아각을 살려 두었고, 모든 좋은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은 남겨 두고 완전히 멸하기를 원치 아니하였다고 말씀한다(9절). 사울은 자신이 한 일이 들키자 "현장검증"에서 뒤로 빠지려 했지만 사무엘은 그 죄를 전적으로 "사울"에게 돌린다. 『주께서 왕을 떠나 보내시면서 말씀하시기를 '가서 죄인들인 아말렉인들을 완전히 멸하고, 그들이 진멸될 때까지 그들과 싸우라.' 하셨는데 어찌하여 왕은 주의 음성에 복종하지 아니하고 탈취물에만 달려들어 주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였나이까?』(18,19절) 그럼에도 사울은 자신의 죄를 시인하지 않고 자신은 주의 음성에 복종하였으며 백성이 죄를 지은 것이라고 끝까지 버티며 항변했다. 『정녕 내가 주의 음성에 복종하여 주께서 나를 보내신 길로 갔으며 아말렉 왕 아각을 끌어왔고 아말렉인들을 완전히 멸하였나이다. 그러나 백성이 완전히 멸했어야만 했던 탈취물 중에서 주 당신의 하나님께 길갈에서 제사를 드리기 위하여 가장 좋은 것으로 양들과 소들을 취하였나이다』(20,21절). 아각은 "아말렉인"이 아니란 말인가? 사울은 아말렉인을 완전히 멸하지 않은 것이다. 뿐만 아니라 가장 좋은 양들과 소들을 취한 죄를 자기 백성에게 고스란히 떠넘기고 있다. 설령 백성이 죄를 지었다 해도 그들의 죄를 자신의 죄로 여기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는 것이 왕의 도리가 아닌가? 백성과 함께 죄를 지어 놓고서도 백성에게 모든 탓을 돌리는 사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삯꾼의 전형이다. 『삯꾼이 도망치는 것은 그가 삯꾼이기 때문이며, 따라서 양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느니라』(요 10:13).
사울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 위하여"라고 변명했지만, 그에 대한 하나님의 판단은 그가 "주의 음성에 복종하지 아니하고 탈취물에만 달려들어 주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였다"는 것이었다(삼상 15:19). 사울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 위하여"라고 "긍정적인 변명"을 했을 때 사무엘은 오늘의 유명한 말을 했던 것이다.
『주께서 번제와 희생제를 주의 음성에 복종하는 것만큼 크게 기뻐하시나이까? 보소서, 복종하는 것이 희생제물보다 낫고, 경청하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낫나이다.』 사무엘의 이 말은 결코 희생제물의 가치를 무시하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제물을 드리는 사람의 마음의 상태가 그 제물의 가치를 결정짓는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주님께서는 제물보다는 마음의 진실을 더 원하신다. 우리는 이 점을 다윗의 기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주께서는 희생제를 원치 아니하시나이다. 그렇지 아니하였으면 내가 그것을 드렸으리이다. 주께서는 번제도 기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하나님의 희생제들은 상한 영이니 오 하나님이여, 주께서는 상하고 참회하는 마음을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시 51:16,17). 이 기도는 다윗이 밧세바와 간음하고 그녀의 남편 우리야를 살해한 뒤 드린 기도이다. 다윗의 간음과 살인은 어떠한 희생제로도 용서가 안 되는 죄였다(민 35:31, 레 20:10, cf. 출 29:37, 왕상 2:28-34). 다윗은 자신의 죄에 대해 희생제가 소용없음을 알고서 자신의 "상하고 참회하는 마음"을 주님께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주님께서 제물이 아닌 "마음"을 보고서 그를 용서하셨다면, 바른 마음으로 드리는 제물은 얼마나 기뻐하시겠는가? 다윗의 이 참회 기도의 마지막 절을 보라. 『그때 주께서는 의의 희생제들과 번제와 온전한 번제를 기뻐하시리니 그때 그들이 주의 제단에 수송아지들을 드리리이다』(시 51:19). 이는 분명 다윗의 앞선 기도와 대조되는 내용으로,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놓인 성도의 제물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는 것을 보여 준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전한 쓰디쓴 진리는 자신의 몸을 주님께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는 명령을 듣는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쓰디쓴 교훈이 된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에게 권고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것이 너희가 드릴 합당한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상과 일치하지 말고 너희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써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입증하도록 하라』(롬 12:1,2). 말하자면 우리의 몸을 주님께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려면 마음의 변화가 수반되어야 한다. 마음의 변화 없이 몸만 주님께 쓰시도록 내어 드린다는 것은 성도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사울과 그의 사람들은 다윗을 죽이려는 악한 마음을 가졌으나 성령님께서 그들에게 임하시자 선지자처럼 예언을 하게 되었다(삼상 19:18-24). 불의의 삯을 사랑했던 발라암도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 임하시자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설교를 하게 되었고(민 24:2-9) 또 재림에 관한 위대한 예언을 하게 되었다(민 24:15-19). 마귀인 유다 이스카리옷도 그의 몸이 주님의 제자들과 함께 왕국 복음을 전파하고 기적을 행하는 데 사용되었다(마 10:1).
이 모든 일들이 주는 교훈은, 하나님께서는 "죄인의 몸"을 얼마든지 그분의 목적을 위해 사용하실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요 성도요 종인 그리스도인은 그래서는 안 된다. 마음의 변화 없이 몸을 드렸는데 주님께서 그 몸을 들어쓰셨다면 그에게 남는 것이 무엇인가? 주님께 자신의 몸을 드릴 때 마음의 변화 없이 기계적으로 드리지 말라. 그것은 스스로를 "1회용"으로 전락시키는 일밖에 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한 번 쓰시고 버리는 인생이라면 그 역시 헛되고 헛된 것이다. "제물을 드리는 사람의 마음의 상태가 그 제물의 가치를 결정짓는다." 주님께 자기 몸을 제물로 드린 모든 그리스도인은 이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