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나는 이렇게 성경대로 믿는 사람이 되었다 분류

"(없음)"으로 인해 구원받고 성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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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16년 01월호>

『너희는 주의 책에서 찾아 읽으라. 이것들 중에는 하나도 부족한 것이 없고, 하나도 자기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바로 나의 입이 명령하였고, 바로 그의 영이 그것들을 모으셨음이라』(사 34:16).

펜을 드는 것은 언제나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이번만큼은 더욱 그러하다. 구원과 성별(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의 대열에 합류한 일)에 대한 간증문을 쓰는 것은 나뿐만 아니라 모든 지체들에게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한 사람의 인생을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에 비유한다면, '구원'과 '성별'은 성경에 전혀 무지한 사람들도 아는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 과 '출애굽' 정도에 비견될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큰일을 도대체 어느 시점에서부터 설명해야 하며, 또 어떻게 써 내려가야 할지 막막하다. 그렇기에 '구원'과 '성별'이라는,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사건이 있기 전의 일들에 대해서는 사실 위주로 간단히 설명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나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였다. "하나님은 없고, 있다고 하더라도 [도덕적인]신은 아니며, 그렇기에 만약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믿기 싫다. 만약 하나님이 존재한다면 나는 불복하고 지옥에 가겠다." 이것이 하나님에 대한 나의 생각이자, 누군가가 소위 '전도'를 할 때 내놓는 나의 주장과 태도였다. 그러나 누가 처음부터 이렇게 완악했겠는가? 그러나 세상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나를 완악한 죄인으로 만들었다.

첫째로, 내게 이러한 태도를 만든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교회"였다. 물론 그곳은 교회라는 간판을 내걸은 제도권 교회이다. 초등학생 시절에 어머니의 손을 잡고 다녔던 그곳은 결코 '하나님이 존재한다.'라는 생각이 들지 않게 하는 곳이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구원에 대해 정확히 가르치지도 않는 곳이었다. 당시의 어린 나로서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그곳의 그 누구도 하나님의 말씀에 갈급해서 교회에 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곳 사람들은 사교 모임에 참석하듯 교회에 들락거렸다. 어머니를 포함한 어른들이 예배가 끝나고 하는 일은 아파트 시세, 자녀의 학원 문제 같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뿐이었고, 내가 참여했던 초중등부 활동도 하나님과 전혀 무관한 일이었다(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확실한 것은, 예배 시간에는 주보로 비행기 접는 일이 주요 활동이었고, 예배 후의 모임에서는 과자를 먹는 일이 주요 활동이었다). 또한 그곳의 아이들 사이에서도 세상의 왕따와 같은 악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나에게 하나님은 점차 자신의 자녀들의 고통조차 내버려두는 나쁜 아버지와 같은 존재가 되어 갔고, 내 인생의 일들에 있어서도 기도응답이란 것을 전혀 경험할 수 없자 '하나님은 사람이 만들어 낸 기원의 대상일 뿐이지 않을까?' 하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둘째로, 소위 "기독교 모임"이라고 하는 것들이 행하는 일들을 신문과 TV, 또 주변 사람들을 통해 접하면서 '하나님이 있다면 왜 저런 목사들을 내버려 두시는가? 그들로 인해 사람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될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목도한 "기독교"는 너무나 가증한 것이었다. 아이들을 모으기 위해 연예인들을 교회로 부르는 교회도 있었고, 소위 "전도"를 해서 친구를 데려오면 문화상품권을 주었으며,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기는 하지만 선한 것과는 전혀 거리가 먼 사람들의 모임이었다. 또한 '하나님이라는 분이 있다면 왜 선악과를 애초에 에덴의 동산에 두어 죄의 여지를 마련하였으며, 광신도들이 등장하여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목사가 여자 성도들을 추행하는데도 심판하지 않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 점에 대해 당시에 성경공부를 열심히 하시던 어머니, 교회의 초중등부 교사 등에게 물어봤지만 그 누구도 명확한 해답을 주지 못했다. 그때부터 나는 '하나님이 존재하더라도 불복하겠다.'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셋째로, 나는 철학과 수학을 어린 시절부터 좋아했는데, 이 두 가지를 단순히 교과목으로 공부한 것이 아니라 취미와 꿈까지도 수학에 관한 것이었고, 자신의 "세계관"을 수학과 철학으로 무장하기까지 했다. 철학으로는 철학사를 강의할 수 있을 정도로 철학에 대한 기본 지식이 있었고, 수학으로는 국가에서 운영하는 영재교육기관에서 4년 이상 수학했었다. 점차 "완벽하게 논리적"이라고 생각되는 세계관이 잡혀 갔으며, "하나님"이란 머릿속에 논리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이들의 허무맹랑한 주장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성경(개역성경)에만 해도 서로 모순되는 구절들이 수백 군데 등장하는 것을 알게 되었고, 특히나 카톨릭의 모순(이집트와 바빌론 종교에서의 차용)과 일루미나티, 프리메이슨과 같은 것을 알게 되면서, 더욱 하나님은 인간이 만든 신일 뿐이라는 확신이 강해졌다. 내가 아는 신실하다고 하는 그 어떤 사람도 이러한 모순들을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으면서 그저 '하나님이 존재한다.'라고 말하니 마냥 우스꽝스럽기만 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셜록 홈즈의 유명한 말을 가르쳐 주곤 했다. "불가능을 제외한 후 남은 것 - 그것이 믿기 힘든 것일지라도 - 그것이 진실이다."

이런 배경을 가진 채 고등학생 시절을 보내다가, 도저히 견딜 수 없을 만큼 힘든 일들이 연이어 일어났다. 집안, 사람, 꿈, 학교 등등의 문제들이 각자 더 이상 곪을 수 없을 정도로 곪아 버렸고, 이 문제에 대해 그 어떤 친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이해한다."라고 입으로는 말할 수 있을지언정 절대로 완벽하게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없던 나에게는 매우 고통스러운 시간들이었다. 그리하여 나의 생각은 극단으로 몰리게 되었다. 어느 날, 그날 아주 늦은 밤에 그동안 생각만 하고 있었던 "극단적인 일"을 실행하려고 마음먹게 되었다.

그런데 그런 심정을 아실 리 없던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그날 처음으로 찾아갔던 과외방에서 뜻밖의 일을 겪게 되었다. 그곳에 과외선생님으로 있던 어떤 형제님을 만난 것이다. 그분은 먼저 간단한 자기소개와 앞으로의 과정들을 나에게 말해 주었고, 나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더니 불현듯 하나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질문하는 것이었다. 질문의 의도를 간파하고 생각을 완악하게 한 나는, 왜 하나님이 있다면 당시에 이슈가 되었던 "땅 밟기 운동"(기독교 신자들이 무단으로 단체로 절에 가서 절 소유의 땅을 밟고 주님의 승리라고 주장하는 것) 같은 짓을 하는 광신도들을 내버려 두느냐고 역으로 질문했다. 그러나 선생님은 표정하나 바뀌지 않고 성경 구절을 인용하면서 그자들이 어떤 자들인지, 왜 하나님께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자들을 내버려 두시는지를 이해가 가게끔 나에게 설명해 주셨다. 그들은 "원수가 뿌려 놓은 독보리들"이라는 것이었다(마 13:24-30).

그런 대답은 "처음" 들어보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생각을 가다듬고 다음 질문으로 공격했는데, 성경에서 상충하는 구절들 같은 경우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하겠느냐고 질문했다. 그러자 선생님은 <한글킹제임스성경>을 언급하면서 "만약 네가 가지고 있는 성경이 하나님께서 보존하신 바른 성경이라면, 당연히 그 성경에는 오류도 없고, 올바르게 공부한다면 상충하는 것도 존재하지 않게 되지만, 네가 가진 성경이 올바른 성경이 아니라면 오류가 있을 수밖에 없다."라고 답변하시는 것이었다. 바로 이때쯤 과외가 끝날 시간이 되었다. 선생님은 "집에 가서 네가 보던 성경에 마태복음 23:14이 있다면, 혹은 집에 있는 어떤 성경에라도 그것이 있다면 내가 다음 시간에 어떠한 상이든 줄 테니 한 번 찾아봐라."고 도전하며 나를 집에 보내 주셨다.

그 길로 곧바로 귀가해 집에 있는 모든 성경을 다 뒤져 보았지만 마태복음 23:14(『위선자인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아, 너희에게 화 있으리라! 이는 너희들이 과부들의 집을 삼키며 남들에게 보이고자 길게 기도하기 때문이라. 그러므로 너희는 더 큰 심판을 받으리라』)에 모두 "(없음)"이라고 기록되어 있었다. 헛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없음)"이 있는 성경을 펴내다니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고, 성경에 무언가 빠진 부분이 있다는 것은 상식선에서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며칠 뒤 다시 찾아간 과외방에서 선생님께서 나에게 질문하기 전에 먼저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성경에 마태복음 23:14이 "(없음)"이라고 되어 있다고 고백했고, 이것이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를 질문했다. 성경은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되었고 섭리로 보존되었다며(마 24:35, 막 13:31, 눅 21:33) 성경을 인용하면서 운을 뗀 선생님은 그 후로 카톨릭을 필두로 한 세상 기독교의 잘못을 가르쳐 주셨고, "너는 기독교의 잘못을 하나님의 잘못으로 돌리고 있다."라고 질책했으며, 최종적으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제시하신 구원 계획에 대해서 들려 주셨다. 순간 내가 하나님께 대해 가지고 있던 모든 의심이 해소되었고, 이렇게 하나님을 모독하며 살아 온 나를 위해서도 예수님께서 피를 흘리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무도 내가 가진 삶의 무게를 덜어 주지 못했지만, 선생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순간, 너에게 세상 그 누구보다 든든한 '빽'이 생기고, 만일 세상 문제가 잘 해결되지 않는다고 해도, 그래서 네가 죽는다고 해도 너에게 주어지는 것은 하늘나라가 되는 것이다."라며 놀라운 사실을 알려 주셨다. 사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구원"이라는 단어를 일상적인 종교 용어로 생각하지만, 나는 정말로 그날 "구원"을 받게 된 것이다. 한걸음만 더 나아갔더라면 마귀에게 속아서 지옥에 갔을 나를 주님께서는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그리스도인 선생님에게로 인도하셨다는 사실을 알고서 집에 돌아가는 길에 본, 별들이 총총했던 하늘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기만 하다. 그날 밤 하늘을 쳐다보며, 어떻게 하는 것이 잘하는 기도인지도 몰랐지만 일단 기도를 드리고 싶다는 마음만으로 했던 그날의 기도. 그것은 구원해 주신 주님께 감사를 드리면서, 성경을 올바르게 공부하고, 또 이 진리의 지식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게 해주시라는 기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후 나는 오히려 성경에 대한 질문거리들을 잔뜩 만들어 가지고 가서 선생님을 귀찮게(?) 해 드렸고, 선생님은 모든 질문에 열성을 가지고 답변하시며 나를 양육해 주셨다.

그 이후 긴 수험생활(재수)이 끝나고는 너무도 당연하게 선생님께 전화를 걸어 성경대로 믿는 지역 교회의 위치를 물었고, 선생님은 1년간이나 못 보던 제자가 전화해서 성경대로 믿는 교회를 찾는다는 것에 기뻐하며 위치를 알려 주셨다. 그 이후 나는 성경침례교회의 회원이 되었고, 재주 없는 솜씨이지만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이 사실에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려 드린다.

글의 말미에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이 구원과 성별의 간증을 통해, 이 글을 읽는 성도들이 주님과의 첫사랑의 때를 다시금 기억했으면 하는 것이다. 모든 그리스도인에게는 구원 간증이 있다. 구원받았을 때의 기쁨과 감격은 그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을 지옥을 향해 가고 있는 죄인들도 느낄 수 있도록 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여 그들도 영생의 소망 가운데 살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육신적인 논리와 불신으로 무장되어 있던 한 죄인을 완전히 무장해제시키셔서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 성별된 그리스도인으로 살게 해주신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과 찬양을 돌려 드린다.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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