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나는 이렇게 성경대로 믿는 사람이 되었다 분류

주님과의 첫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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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5년 12월호>

『하나님께서 사람의 사악함이 세상에 창대해짐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상상이 계속해서 악할 뿐임을 보시고 주께서 땅 위에 사람을 지으셨음을 후회하셨으니, 그 일이 그의 마음을 비통케 하였더라.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창조한 사람을 지면에서 멸망시키리니, 사람과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들 모두라. 이는 내가 그들을 지었음을 후회함이라.” 하시니라. 그러나 노아는 주의 눈에서 은혜를 찾았더라. 이것이 노아의 내력이라. 노아는 의인이요 그 당대에 완전한 사람이었으며 하나님과 동행하였더라』`(창 6:5-9).

나는 이야기를 좋아했다. 덕분에 책장은 소설책으로 가득했고, 직장에서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영화를 보는 것이 삶의 낙이었다. 그러나 정작 성경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고, 성경 옆에 홈이 파진 곳들에 붙은 파란 스티커와 빨간 스티커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몰랐다. 나는 아주 어렸을 때 구원을 받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구원의 확신도 잊은 채 방황하며 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우연히 영화 한 편을 보게 되면서 접한 이름 “노아.” 당대의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마음에 품는 생각의 모든 상상이 계속해서 악하기만 할 뿐일 때, 자기 홀로 믿음을 지켰던 한 사람 “노아”의 이름이 내 마음속에 깊이 들어왔다.
노아의 이야기가 궁금해진 나는 인터넷 검색창에 <한글킹제임스성경>을 검색했다. 누나가 얼핏 <한글킹제임스성경>이 올바른 성경이라고 했던 말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검색 엔진을 돌리자 최상단에 “한글킹제임스성경”과 “흠정역”이 보였다. 당시 나는 붕어빵도 팥이 들어간 붕어빵만 먹고, 식당에 가도 대표 메뉴만 먹었기 때문에 성경도 이왕이면 “오리지널” 성경을 읽고 싶었다. 흠정역이라는 말이 “원조”는 아닌 것 같아서, 다시 <한글킹제임스성경>을 찾고 찾다가 말씀보존학회의 온라인 서점을 통해 성경을 구입하고 “노아”의 이야기를 읽을 생각에 설레었던 그날 밤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 두꺼운 성경 속에서 나는, 노아라는 인물을 찾기 위해 첫 번째로 마태복음을 펼쳤다. 하지만 그곳에는 예수 그리스도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꿋꿋이 읽어 나갔지만, 여전히 노아는 찾을 수가 없었다(마태복음 24장에 노아의 이름이 언급되지만 그때는 모른 채 지나갔다). 어느새 나는 사복음서를 모두 읽었고, 로마서와 잠언까지 읽게 되었다. 궁금했던 노아의 이야기 대신, 이제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에 푹 빠져들고 있었다.

나의 일상은 점점 영화를 보는 시간보다 성경을 읽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부산성경침례교회에 출석하고 있던 누나에게 전화를 걸어 성경에 대해 이것저것을 물어 보았더니 유튜브 설교를 추천해 주었다. 그때 들은 설교가 “죄와 회개”였다. 나는 잠잠히 앉아 설교를 모두 듣고는 충격에 빠져 멍하니 한참을 있었던 것 같다. 잠시 후 곧바로 일어나 냉장고에 있던 술을 모두 꺼냈다. 맥주와 먹다 남은 와인과 아직 마개조차 따지 않고 아껴 둔 와인들을 모두 꺼내 놓고 보니 참 많기도 했다. 나는 싱크대에 술을 모조리 버리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내 생애 처음으로 “회개”라는 것을 했던 것이다.

나는 서울에서 혼자 살고 있었기에 자연스레 주일에는 부산성경침례교회의 인터넷 생방송으로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하루에 한 번씩 기도도 하고 싶었는데, 어떻게 하는지를 몰라서 예배 중에 기도하는 내용을 앵무새처럼 따라 읊었다. 그렇게 해서 나는 점점 하나님과 가까워지고 있었고, 세상과는 그만큼 멀어지고 있었다. 누나가 보내 준 전도지와 책자들 덕분에 직장에서 복음을 증거하기 시작했다. 밤에는 산책을 하며 덜덜 떨리는 손으로 전도지를 나눠 주기도 하고, 몇 명의 혼이 구원받는 것을 목도하기도 했다. 나는 또한 생전 처음 느껴 보는 기쁨으로 하나님을 찬양했다. 외로움과 공허함만 가득했던 내 혼은 어느새 생기가 감돌기 시작했으니, 그것이 바로 내가 주님께 느낀 “첫사랑”이었다.

어느 순간부턴가 교회에 나가 예배를 드리고 싶은 마음이 들던 차, 누나는 서울에서의 일을 접고 부산으로 내려오라고 조언했다. 나는 고민에 빠졌다. 그러던 중 인터넷 설교를 듣다가 마침 짐 엘리엇에 관한 예화를 듣게 되었다.
“영원한 것을 얻기 위하여 영원하지 않은 것을 버리는 사람은 결코 바보가 아니다.” - 짐 엘리엇
나는 노아를 발견했을 때와 같이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래서 곧바로 사표를 내고, 짐을 싸서 부산으로 내려갔다.

부산성경침례교회에 방문하여 맨 뒷자리에 앉아 설교를 듣게 된 첫날, 설교의 주제는 “십자가”였다. 설교를 듣던 도중, 나는 이제 다시는 반복하지 않아도 될 “마지막 영접 기도”를 드렸다. 그리하여 21년 동안 불안정하기만 했던 구원의 확신을 비로소 갖게 되었다. 이를 위해 누나가 오랫동안 눈물로 기도해 주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누나가 무릎 꿇고 드린 중보기도의 힘이 나를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의 대열에 설 수 있게 해 준 것이다!

나는 “죄인”이라는 이름에 가장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이 “죄인”이라는 단어는 마치 내 이름처럼 자연스러워 어떤 위화감도 없었다. 그러나 그 이름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져가셨고, 자신의 이름으로 삼으시더니 나에게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가장 어울리지 않는 이름을 주셨다. 그렇게 해서 나는 성경대로 믿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할 수 없다. 그저 베풀어 주신 자비와 은혜에 감사를 드릴 뿐이다. 그리고 사랑의 빚을 진 누나에게도 감사의 메시지를 보내고 싶다. 이제 <한글킹제임스성경>을 통해 얻은 모든 것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하나님께서는 살아 계신다.”

<한글킹제임스성경>은 나에게 삶의 의미를 알게 해 준 책이다.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을 때, 그 성경은 내게 한줄기 빛처럼 다가왔다. 이 한 권의 책이 없었다면 나는 비참했을 것이고, 내 인생은 매우 불행했을 것이다. 또 외롭고 공허했을 것이다.
이제 나는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 그 의미를 찾지 않아도 된다. 주님을 위해 살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오늘 또 내가 살아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귀한 선물을 당신도 받지 않겠는가! 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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