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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통과 이단에 대한 성경적 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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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4년 09월호>
지난 6월 말부터 교계는 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이하, 예장연)가 출간한 <정통과 이단 종합연구서>라는 책으로 인해 “정통과 이단”에 대한 논쟁을 계속하고 있다. 그동안 한국 교계는 몇몇 개인들이 이단전문가를 자처하여 활동해 왔으며, 그중 일부는 교단이나 연합단체에 소속되어 있다. 그런데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이하, 한기총)에서 이단으로 규정한 개인과 단체들을 예장연의 연구서에서 이단이 아니라고 판정함은 물론, 한기총의 이단사이비문제상담소장과 그동안 이단감별사로 알려진 개인들을 이단으로 규정함으로써, 한기총을 비롯한 여러 단체들과 예장연 사이에 일종의 교권 싸움이 벌어진 양상이다. 여기에 교계 신문들도 이해관계에 따라 양분되어 혼탁한 논쟁을 계속하고 있다. 따라서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은 신학과 교리의 교통정리자로서 본 학회와 관련된 논의를 포함하여 성경적 의미의 정통과 이단은 무엇이며, 현재 진행되는 논쟁의 문제점들이 무엇인가를 고찰하여 바로잡고자 한다.1. 성경에 나타난 이단 규정에서 배우는 교훈
성경에 기록된 이단 규정에 관한 첫 번째 사례를 통해서 배우는 교훈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이단 규정이 전혀 비성경적으로 행해져 왔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비성경적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람들을 오히려 이단으로 규정한 것이 성경에 기록된 첫 번째 이단 규정의 사례였고, 교회사를 통해서도 이런 일들이 지금까지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1) “이단”이라는 말의 성경 용례
성경에는 “이단”(heresy)이라는 단어가 명사로 4회(행 24:14, 고전 11:19, 갈 5:20, 벧후 2:1), 형용사로 1회(딛 3:10) 나온다. 이 가운데 누군가를 이단으로 부른 첫 번째 경우가 사도행전 24:14이다. 『그러나 이것을 당신께 고백하오니 즉 그들이 이단이라고 하는 그 도를 따라서 내가 내 조상들의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선지서들에 기록된 모든 것을 믿으며』 그런데 이 구절에서 이단으로 규정된 대상은 다름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을 가장 잘 따랐던 사도 바울이었다. 당시 종교적 위선자들이었던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을 증거한 사도 바울을 이단이라고 불렀던 것이다(행 24:5 참고). 그러나 유대인들은 바울을 고소하는 이유에 대해 증거도 댈 수 없었던 반면(행 24:13), 바울의 믿음과 실행은 그의 고백처럼 전적으로 성경적이었다(행 24:14-16).
그런데 왜 유대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한 바울을 이단으로 규정하며,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은 것처럼 바울도 이단이라며 고소했겠는가? 그 이유는 자신들의 종교적 입지와 이익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예수님 당시 사람들이 유대 종교지도자들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권위 있게 믿고 따르게 되자 자기들이 가지고 있던 종교적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 예수님을 죽이고자 모의하고 결국 십자가에 못박은 것이다.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이 유대 종교지도자들에게서 박해받았던 이유도 그들이 주님께서 보이셨던 표적들을 그대로 행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한 것을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자신들의 종교적 입지를 위협하는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행 4,5장). 또한 그들 가운데 있던 바울도 회심하여 주님을 증거함으로써 율법으로 의로워지고자 하는 유대교의 교리와 실행이 잘못된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리를 선포하고 실행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이단으로 규정함으로써 무지한 대중들이 자신들을 따르게 하고 자신들의 교권을 지키고자 했던 것이다. 이것을 위해 종교적인 위선자들은 눈에 보이는 진리와 명백한 증거들에 대해 소경이 되어야 했고, 없는 증거들을 조작해야 했으며, 왜곡된 것들을 말해야만 했다.
소위 정통의 자리에 있었던 유대교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스테판을 죽이기 위해서 은밀히 사람들을 매수하여 거짓 증언을 하게 했고(행 6:11), 바울을 고소하기 위해 사람들은 선동하여 성소를 더럽혔다고 거짓 증거를 했다(행 21:28). 이 두 경우 대제사장을 비롯한 위선적인 종교지도자들로 이루어진 공회가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행 6:12; 23:1). 이것은 마치 로마카톨릭의 공회와 개신교의 교단 총회가 그 역할을 한 것과 일치한다. 신약성경을 살펴보면(마 26: 59, 막 13:9) 공회나 종교회의라는 것은 오히려 진리를 대적하는 일을 하며(행 5:40) “한 마음”으로 뭉쳐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려는 진짜 이단들의 모임이었다(행 23:6). 그들에게는 진리란 단지 명분이며 그들의 이익이 최우선이었다. 마찬가지로 이 땅에서의 명성과 교권을 추구하는 한국 교단들은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람들을 이단이라고 하는 자신들이 바로 이단임을 깨달아야 한다.
(2) 신약 교회사에 나타난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
성경에 나타난 잘못된 이단 규정의 사례들은 신약 교회사를 통해서도 계속되었다. 주님과 제자들, 바울을 따르는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은 때로는 노바티안으로, 때로는 도나티스트로, 때로는 폴리시안, 보고마일, 불가리안으로 불렸으며, 혹은 다른 이름들로 불리기도 했고, 항상 “이단”으로 취급되었다. 그러므로 신약교회사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이단”이란 A.D. 60년부터(행 24:14) 지금까지 “당대에 교권을 잡은 위선적인 종교세력”이 “진리를 선포하고 지킨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을 비방하기 위해 붙였던 이름이었다는 사실이다. 성경대로 믿는 그 어떤 그룹도 이 비난을 면해 본 적이 없다. 따라서 현대의 배교한 시대에, 한국식 기독교에서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은 “이단”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정통 교회를 자처한 로마카톨릭이 남긴 “이단 사냥”의 나쁜 전통은 개혁 교회 국가들에게도 전수되었다(성공회, 개혁 교회, 루터 교회 등). 결국 종교개혁 이후에도 유아세례를 믿지 않으면 모두 “이단”으로 취급되었다. 따라서 신약성경에 명백히 어긋나는 유아세례를 믿는 자들은 소위 정통이 되었고, 반면 소위 “이단”으로 낙인찍힌 사람들은 유아세례를 거부하였다. 이들은 왈덴스, 알비겐스, 파테린, 보도파, 위그노, 재침례교도, 도나티스트, 보고마일, 불가리안, 페트로브루시안, 헨리시안, 폴리시안 등이다. 피터 럭크만, 신약교회사, (말씀보존학회, 1997), p.207.
비록 한국 교회에도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목회자들과 그리스도인들이 있지만, 소위 제도화된 교단의 교권을 유지하기 위한 정치적인 목사들이 ‘한국식 기독교’의 기득권을 가지고 이단을 판단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 교단들이 본 학회의 모체인 성경침례교회와 같은 성경대로 믿는 신약교회의 믿음과 실행으로 인해 자신들이 틀렸다는 것이 드러나는 것을 수용할 수 없기 때문에 본 학회를 이단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한 가지 주의할 사실은 성경과 교회사의 증거에서 보여진 비성경적인 이단 규정의 사례가 이 땅에서 활동하는 널리 알려진 이단들, 즉 예장연에서 이단이 아니라고 해제해 준 이단들이 이단이 아니라는 논리로 사용될 수는 없다는 점이다. 그들은 한국식 기독교의 수준에서도 그 정체가 드러나는 거짓 교리들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한국 교회가 그들을 성경적으로 비판하거나 바로잡지 못하는 것이다.
2. 이단들과 인정받는 사람들
성경적으로 “이단”이라는 말을 바르게 적용하는 예를 고린도전서 11:19에서 확인할 수 있다. 『너희 가운데는 이단들도 있어야만 하리니 그래야만이 너희 가운데 인정받는 사람들이 나타나게 되리라.』 이 말씀은 지역 교회들 안에 이단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 주는 것이다(갈 5:20, 벧후 2:1).
우리는 이런 예를 사도행전 15장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 사도 바울의 사역에 모체가 된 시리안 안티옥 교회에 이단들이 나타났던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은혜의 복음 이외에 율법의 행위가 있어야 한다는 거짓 교리를 가르치며, 오히려 바울이 틀렸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었다(갈라디아 교회들에 나타난 자들과 같이 율법의 행위로 의로워지고자 하는 이단들이었다). 결국 이 일을 계기로 사도 바울이 전파한 복음이 성경적이라는 사실이 확인됨으로써 유대와 이방 지역의 교회들에 복음의 진리가 굳건하게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다. 거짓 교리를 주장하는 이단들이나옴으로써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람들”이 드러나게 된 것이다. 사도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을 비롯한 고린도전서 11장에서 말하는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람들, 즉 바른 성경을 최종권위로 믿고 실행하는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이 이단에 대한 바른 판단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단이란 성경을 믿는다고 말은 하면서도 진리가 아닌 무엇인가를 주장하는 자들에 적용되는 말이다. 아예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이교도이지 이단이라고 말하지 않는 것은 이단이라는 말이 믿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단”이란 말은 지역 교회 안에서 “거짓 교리를 가르치는 사람”을 뜻하는 것이다(벧후 2:1). 우리는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삼위일체를 왜곡한 이단(요일 2,5장), 그분의 대속적 죽음을 통해 믿음으로 의로워지는 복음을 왜곡한 이단(행 15장, 갈 1,2,5장, 벧후 2장),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왜곡한 이단(살후 2장)에 대한 경고의 말씀들을 발견하게 된다. 이와 같이 “이단”이란 성경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과 양립할 수 없거나 일치하지 않는 그 무엇을 가르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시키거나, 변개시키거나, 잘못 해석하거나, 잘못 적용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럭크만, Ibid., p.194.
그러므로 “이단적 가르침”이나 “이단적 주장”이라고 할 때는 성경 말씀에 더하거나 뺌으로써 생겨났거나, 문맥을 무시하고 특정 성경 구절만 뽑아내어 만들어 낸 “거짓 교리”를 뜻한다.
3. 한기총과 예장연의 문제점 바로잡기
예장연의 <정통과 이단 종합연구서>가 문제된 이후 한기총은 기득권을 유지하려고 소위 이단사이비 규정의 기준과 용어를 정리한다는 모임을 가졌고 그 결과를 다음과 같이 발표했다. [이단 사이비 규정 기준 : 이단 사이비의 규정과 기준은 신구약 성경이다. 그리고 사도 신조(신경)과 니케아 신조(A.D. 325)와 콘스탄티노플 신조(A.D.381)와 칼세돈 신조(A.D. 451)와 종교 개혁 전통과 각 교단의 신조이다.] [이단 : 이단이란 본질적으로 교리적인 문제로서, 성경과 역사적 정통교회가 믿는 교리를 변질시키고 바꾼 ‘다른 복음’을 말한다.] 침례신문, 04.7.30, 2면; 순복음신문, 04.7.25, 5면; 기독교연합신문, 04.7.25, 2면.
이러한 한기총의 주장에 나타난 문제점은 무엇인가?
첫째, 예장연은 물론이고 한기총은 이단을 판단할 수 있는 성경이 없다. <개역성경>을 비롯해서 변개된 한글 성경들을 가지고는 성락교회 김기동 목사의 귀신론를 비롯해서 여러 이단들의 거짓 교리들을 틀린 것이라고 입증할 수 없다. 바른 성경이 없는 자들이 성경으로 판단한다는 말을 하고 있으니 허무한 외침일 뿐이다. <개역성경>과 같이 변개된 성경은 오히려 이단 교리들을 양산해 내는 역할을 한다. 김기동 목사를 비롯해서 한국의 여러 이단들은 <개역성경>의 변개된 단어들과 오역된 단어들에 근거해서 성경을 해석했기 때문에 이단 교리를 만들게 된 것이며, 많은 이단들의 유치한 성경 해석도 <개역성경>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둘째, 사도 신조부터 칼세돈 신조까지 거명된 네 개의 신조들은 로마카톨릭의 신조일 뿐만 아니라, 성경의 주요 교리들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들을 전혀 다루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 땅에 널이 알려진 이단들이 주장하는 거짓 교리들을 판단하는 데 실제로 도움이 안 된다. 그런데 이것이 이단을 판별할 수 있는 것처럼 제시하고 있는 것은 한기총과 각 교단 인사들의 식견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게 한다.
셋째, 종교 개혁 전통과 각 교단의 신조에는 일관된 전통이나 교리가 전혀 없기 때문에 기준이 될 수 없다. 심지어 종교 개혁의 전통에는 ‘교회 국가’나 ‘유아세례’와 같은 비성경적인 전통들이 있는데 그것들이 기준이 된다는 말인가! 더구나 각 교단의 신조는 서로 정반대의 교리들이 많은데, 각 교단의 신조를 성경적인 것으로 인정한다면 반대되는 교단은 이단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런 명분만 쌓는 모순되는 규정을 내놓는 일이 소위 한국 교회를 대표한다는 한기총의 열매이다.
넷째, 역사적 정통 교회가 믿는 교리를 변질시키는 것을 이단이라고 했는데, 역사적 정통 교회는 유대교와 로마카톨릭이었으며, 또 종교개혁 이후에는 개혁 교회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그러나 ‘역사적 정통 교회’가 실제로는 이단이었다는 진실에 무지한 한국 교회는 자신들도 예외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한기총과 예장연은 자신들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임을 깨달아야 한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은 교리적으로 일치할 수 없는 대립적인 집단이었다. 그러나 자신들의 종교적 입지와 이익을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고, 제자들과 사도 바울을 이단이라고 박해하는 일에는 협력했다. 교권을 위한 타협을 선택했던 것이다. 이 땅의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침례교 등 각 교단들은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교리들이 있다. 장로교라 할지라도 보수와 진보에 따라 옳고 그름의 기준이 하늘과 땅만큼 다르다. 그런데도 자신들의 교권을 차지하고 보장받는 한 협력한다. 그리고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이 일어나서 한기총과 예장연 및 한국식 기독교의 거짓 교리들과 실행을 비평하자 공동으로 대처하고 있다. 한국 교계에 타협하면 이단 규정을 하지 않거나 보류하고, 자신들의 문제를 지적하면 이단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또는 자기 교단 소속 교회나 교인들이 옮겨가는 특정 교회나 단체도 이단 규정의 주요 대상이 되는 것이다. 한기총과 예장연은 모두 자신들의 영적 상태를 직시할 수 있는 영적 안목이 결여되어 있으며, 성경과 교회사를 통해서 배워야 할 교훈에서 자신들의 모습들 보지 못하고 있다.
4. 예장연의 평가가 뒤바뀐 이유
이와 같은 한국식 기독교의 풍토에서 본 학회는 예장연의 질의서를 받고 답변에 응했다. 한기총은 물론 예장연도 이 나라의 제도화된 교단들로 구성된 단체이며 본 학회와는 출발부터 다른 신학과 교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객관적인 잣대를 만든다 할지라도 결국 ‘한국식 장로교’의 잣대로 성경대로 믿는 독립침례교회를 판단하는 것이며 성경적 결론에는 도달할 수 없음을 알지만, 최소한 본 학회에 대한 왜곡된 내용이 아니라 진실을 밝히는 계기로 삼았다.
답변에 대한 결과로 지난 5월 말에 예장연이 ‘초판발행일 6월 10일’자로 출간한 <정통과 이단 종합연구서>(교정 인쇄본)가 본 학회에 전달되었다. 우리가 답변한 여덟 가지 교리적 입장과 이단 시비 관련 내용에 대한 답변이 그대로 게재되었다. 그러나 전체 연구서는 엄청난 오류를 범하고 있었다. 잘 알려진 이단들이 거의 대부분 이단이 아닌 정통으로 결론 내려진 것이다. 예장연의 검증이나 연구를 전혀 신뢰할 수 없는 것으로 판단하게 하는 결과였으며, 또한 무지한 자들을 미혹하는 내용이었다.
따라서 본 학회는 5월 말에 출간된 본 학회지 <성경대로믿는사람들> 6월호에 “그들이 정통이면 우리가 이단이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예장연의 <정통과 이단 종합연구서>에 대한 비평을 다음과 같이 실었다. [순복음 은사주의자들이 정통이라면 우리는 기꺼이 이단이 될 것이다. 귀신 쫓는 베뢰아 신학의 성락교회가 정통이라면 우리는 기꺼이 이단이 될 것이다. 구원을 우려먹은 박옥수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구원받기로 예정된 사람들에게만 해당된다고 믿는 자들이 정통이라면 우리는 기꺼이 이단이 될 것이다. 김계화, 구원파, 이재록, 최삼경, 안식교 등이 정통이라면 우리는 기꺼이 이단이 될 것이다. 이런 진짜 이단들을 판단할 권위도 기준도 지혜도 없는 자들은 재판석에서 속히 내려와야 한다. 그래야 그리스도인의 신앙이 더 이상 코미디가 되지 않을 것이다.] 이와 같은 내용은 최근 예장연에 관한 논쟁이 촉발된 7월보다 한 달 이상 앞서 예장연의 연구서에 대한 강력한 비평을 가한 것이었다.
그후 예장연으로부터 보통 5천 권씩 주문을 받는데 몇 권이나 사겠느냐고 본 학회로 문의가 왔다. 그때 우리는 그들이 책장사를 하려는 목적이 있다고 판단했으며, 필요 없는 책이라고 밝혔다. 또한 예장연의 연구서가 오류를 범한 것이라고 우리의 입장을 밝혔다. 그런데 이 책이 논쟁의 대상이 된 후에 보니 이단에서 해제된 널리 알려진 이단들은 대대적인 홍보와 함께 그 책을 팔고 있었다. 예장연과 이들 이단들은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 수 있도록 나쁜 열매를 드러내고 있었다.
본 학회를 비롯한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은 세상이나 제도화된 ‘한국식 기독교’에 속한 개인과 단체가 우리를 이단이라고 하든지, 아니면 이단이 아니라고 해제하는 일에 대해서는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그들이 우리를 바르게 알고 판단할 수 없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단지 우리는 하나님께 인정받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관심이 있을 뿐이다. 신약 교회사를 통해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은 소위 ‘역사적 정통 교회’(진짜 이단인 거대 종교집단)으로부터 늘 이단이라는 비방을 받아왔으며, 진리를 지키는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은 이것을 기꺼이 감수해 왔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
예장연의 나쁜 열매는 이단들을 자의적으로 해제해 준 것 외에 또 하나가 있다. 예장연이 초판으로 출간하여 현재 판매되고 있는 <정통과 이단 종합연구서>(발행일자 6월 20일)에는 본 학회에 대한 평가가 처음 출간된 연구서와 다르게 바뀌어 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예장연의 연구서에 대한 본 학회의 입장이 전달되고 비평적인 기사가 나간 이후에 예장연은 며칠도 안 되어 그들이 자랑하는 소위 1년 동안의 연구결과를 뒤바꾼 것이다. ‘발행일 6월 10일’자 연구서에는 [이들(본 학회)의 주장은 바른 성경으로 하나님의 뜻을 좀더 정확히 알고 믿고, 지키자는 의도일 뿐 오히려 성경적인 주장들이 설득력이 있다. 이런 문제를 가지고 이단운운은 타당치 않은 것으로 사료된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현재 보급되는 ‘발행일 6월 20일’자 연구서에는 본 학회에 대하여 매우 위험한 신학사상을 갖고 있으며, 1998년 예장합동 제83회 총회에서 이단으로 규정했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자신들의 판단을 제대로 밝히지도 못하고 예장 합동에 의존해서 이단이라고 하는 그들의 자격 없는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또한 성경적 교리를 제시한 본 학회의 여덟 가지 답변은 아예 삭제해 버렸다.
따라서 이와 같은 예장연의 행보를 근거로 판단해 볼 때, 그들의 선전과는 다르게 이권과 정치적인 이유로 이단을 규정했던 기존의 이단감별사나, 교단들이나 한기총과 똑같은 일을 예장연도 반복한 것이며, 예장연이 모종의 이익을 취하려고 객관적 잣대로 이단 판별을 했다고 가장했음이 드러난 것이다. 이들은 『악인을 정당화시키는 자와 의인을 저주하는 자들은 둘 다 주께 가증하니라』(잠 17:15)는 말씀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5. 결론
성경에 보면, 유대 종교지도자들 가운데서 바른 믿음을 고백한 니코데모가 나왔고, 유대교에서 열성적이었으나 회심하여 하나님께 쓰임 받은 바울이 나왔으며, 잘못된 성경 지식을 버리고 진리의 지식을 배움으로써 훌륭하게 쓰임 받았던 아폴로가 있었다. 또 역사적으로 보면, 실제로는 이단이지만 교권을 잡은 거대한 집단이였기에 정통의 자리에 있었던 로마카톨릭 안에도 위클리프, 에라스무스, 루터, 칼빈 등이 있었던 것처럼 현재 로마카톨릭과 같이 정통이라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거대한 이단인 “제도화된 교단들” 안에도 과거와 같은 개혁자들이 있다고 확신한다. 하나님께서는 어느 시대나 그분의 사람들을 들어 쓰셨기 때문에 가짜들이 진짜처럼 활보하는 배교한 한국 교계에도 하나님의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당연하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소위 ‘역사적 정통 교회’의 거짓 교리와 실행에서 성별하여 나와야 한다(롬 16:17). 그리고 진리의 편에 서서 하나님 앞에 “인정받는 사람들”로 드러나야 할 것이다(고전 11:19).
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