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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세례”로는 부흥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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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5년 12월호>
얼마 전, 대학교 전 총장들과 신학교 교수, 기독교학술원장, 선교사라는 이들이 모여 “성령세례, 방언의 역사 그리고 치유집회”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한 적이 있다. 직함만 보면 한국 교회 어딜 가도 목에 힘깨나 줄 법한 사람들이었는데, 그들이 뭔가를 아는 척하면서 했던 말들은 그동안 은사주의자들이 했던 주장과 다를 바 없었다. “한국 교회는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 이후 성령 중심의 신앙 체험 전통을 이어왔다.” “오늘날 다시 성령세례를 강조하는 부흥적 흐름이 필요하다.” “성령세례는 단순히 중생과 동일시될 수 없으며, 하나님 나라 확장과 선교 사명을 위한 권능의 은혜이다.” “방언은 터지는 것이며, 예수를 믿는 것과 방언의 말씀 교육·기도가 병행될 때 더 자연스럽게 나타난다.” “예수님도 복음을 전파할 때 가르치시고 치유하셨다. 성령님은 2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동일하시다. 시대마다 하나님의 능력을 받게 되면 누구나 쓰임을 받을 수 있다.” 그들은 스스로가 기독교계에서 뭐나 되는 듯하기에, 어떤 주제에 관해 아무 말이나 쏟아내도 그것이 진리가 되는 줄로 착각하고 있다. 초림 때 “유대인의 왕”(마 2:2)이신 예수님께서 “표적을 보아야만 믿는”(요 4:48) 유대인들에게 “왕국 복음”을 전파하실 때 “치유의 표적”이 동반되었다는(마 4:23,24) 사실도 모른 채 위와 같이 주절거렸다는 것은, 한국 교회가 오순절은사주의에 완전히 점령당했음을 보여 준다. 소위 “성령세례,” “방언,” “신유”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아는 척했다면, 그것은 “망언” 그 자체에 불과한 것이다.그렇다면 부흥의 원동력이라고 주장되는 “성령세례”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고대 바빌론 종교에서부터 유래하여 중세 카톨릭 수도원 등에서 풍미하던 신비주의자들이 현대 기독교 안에서 다시 발흥하게 된 것은 1819년 영국에서 일어난 에드워드 어빙(Edward Irving, 1792-1834)의 목회라고 알려져 있다.1)
어빙은 1828년 “어떤 영에 의해 초능력과 초자연적 경험을 하게” 되었고, 결국 황홀경, 환상, 방언, 감정고조 등을 기조로 하는 비성경적인 신비주의 기독교의 탄생을 예고했다.
그리고 이 신비주의 목회의 영향을 받은 오순절주의자들이 20세기 성령의 운동이라고 일컫는 오순절 운동은 찰스 폭스 파함(Charles Fox Parham, 1873-1929)이라는 인물로부터 시작되었는데, 2) 자칭 “신유”를 체험했던 파함은3) 그의 아내와 1898년 미국 캔자스주 토페카에 벧엘 치유의 집(The Bethel Healing Home)을 설립했다. 그 후 방언이 성령세례의 “일차적 증거”임을 확신하게 되어4) 1900년에 개교한 벧엘 신학교(The College of Bethel)에서 성령세례의 표적으로서의 방언 체험에 관한 성경적 가르침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해당 성구를 찾는 일을 학생들에게 촉구했다.5) 바로 이 파함이 오순절 운동의 “이론적 근거”를 제공한 것인데,6) 여기서 비롯된 “성령세례”의 망령이 아직도 교회들 안에서 돌아다니고 있는 것이다.
높은 곳으로부터 오는 능력을 얻기 위해 받아야 한다고 주장되는 성령세례는 본래 “성령침례”가 바른 표현으로, 이것은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는 순간 그 사람을 성령께서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넣으시는 특별한 역사이다(고전 12:13). 이 고린도전서 12:13의 침례는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할 때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할 것 없이 한 성령에 의하여 “한 몸 안으로,” 즉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받는 침례를 말하며, 에베소서 4:5에서는 이것을 “한 침례”라고 말씀한다. 이것은 구원받은 후 방언을 받는 “제2의 체험”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들어가는 영적 침례이다. 또한 은사주의자들이 “성령세례의 일차적 증거”라고 주장하는 “방언”은 “신유”와 함께 사도들의 시대 이후로 그친 “사도의 표적들”(고후 12:12) 가운데 하나로, 믿지 않는 “유대인들”을 위한 표적이었고(고전 1:22; 14:22), “이방인들”을 다루는 “교회 시대”에는 중단된 은사이다. ㅋ
오순절은사주의는 파함이 발단이 된 20세기 성령의 운동의 본격적인 시작 연도를 1906년으로 잡고 있는데, 이 시기에 일어난 성령의 운동을 흔히 “아주사(Azusa) 거리의 부흥”이라고 한다. 그랜트 웨커(Grant Wacker)는 그 해에 있었던 성령의 운동의 태동에 대해 “기이한 교리와 광적인 흥분?”이라는 제하의 글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1906년 4월 어느 안개 낀 저녁, 몇몇 흑인 성도들이 성령세례를 받기 위해 L.A.의 한 작은 집에 모였다. 저녁 무렵, 한 밤이 되기 전에 그들은 노래하며 이상한 말로 외치고 있었다. 며칠 후 그들은 그 도시의 낡은 지역에 있는 아주사 거리의 한 버려진 창고로 옮겨갔다. 얼마 못 가서 L.A. 타임지 기자의 눈에 띄게 되었다. 그 기자는 다음과 같은 기사를 썼다. “예배자들의 울부짖는 소리에 밤은 무서워지고... 기이한 교리의 신봉자들이 극도로 광적인 의식을 행하고 있었으며... 지극히 황당무계한 이론들을 설파하면서 자신들을 광적인 흥분 상태로 몰아갔다.”」 7)
웨커는 이처럼 오순절주의가 그다지 고상한 출발을 보이지는 못했지만, 20세기에 이르러 가장 큰 기독교 운동으로 급속한 성장을 보였다고 말한다. 8)
윌리엄 W. 멘지스(William W. Menzies)는 1906년 4월 이 집회를 최초로 인도했던 흑인 윌리엄 J. 시무어(William Joseph Seymour, 1870-1922)에 관해 “그 집회가 소란과 일종의 열광주의 및 불분명한 가르침에 휩싸이게 되자, 시무어는 도움을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그는 1906년 가을, 부흥회를 진정시킬 목적으로 파함을 초청했다.”라고 기술했으며, 또한 그 집회가 20세기 오순절 은사주의의 이론적 근거를 제공했던
찰스 파함이 보기에도 “혼란과 소동과 심령술사의 영향으로밖에는 안 비치는 것들”로 가득했다고 기록했다.9) 이는 하나님은 “혼란의 창시자”가 아니시라는 고린도전서 14:33에 절대적으로 위배되는 부분이다. 출발이 “그다지 고상하지 못했던” 그 기괴한 집회에서는 “오늘날의 은사주의 집회처럼” 울고, 춤추고, 황홀경에 빠지고, 방언하고, 노래하고, 통역하는 일이 벌어졌는데, 앞서 인용한
그뿐 아니라 그들은 도덕적인 면에서도 매우 심각한 문제를 일으켰는데, 알마 화이트(Alma White)는 아주사 집회를 “자유연애의 뜨거운 침대”라고 비판했고, 많은 사람들이 이 집회에서 남녀가 어울려 키스하는 것이 다반사라고 비판했다.12)
D.L. 무디와 함께 복음 전파에 열심을 내었고, 무디성경신학원의 원장을 역임했던 R.A. 토레이(R.A. Torrey, 1856-1928)는 오순절 집회의 무질서와 그 운동을 둘러싸고 있던 스캔들에 실망했으며, 1910년에 오순절 운동은 근대 교회에 나타난 운동 가운데 가장 부도덕한 운동이라고 비판했다.13)
“광적인 흥분”이라고 묘사된 극도의 혼란과 함께 아주사 거리에서 시작된 오순절 성령의 운동에는 “신유”라고 주장되는 병 고침 현상이 동반되었으며14), 신유뿐 아니라 방언과 방언 통역, 예언, 축사(逐邪) 등도 실행되었다.15)
아주사 성령의 운동은 “질병 치유”가 주요 특징 중 하나였고, 오늘날까지도 그 기세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그간의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일반 개신 교회들의 “양적 성장”(소위 “부흥”)을 도모하는 실행으로 받아들여졌으며, “오늘날의 교회의 영적인 무기력과 침체에 대해 초대 교회의 부흥을 재현시키고자 하는 영적인 대각성 운동16)으로까지 여겨지고 있는 것이다.
“현상”(現象)을 중시하는 오순절은사주의를 그들의 “현상”으로 판단해 보았을 때, 그것은 처음부터 성령께서 일으키신 일이 아니었다. 마귀도 얼마든지 초자연적 현상을 일으킬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출 7:11,22; 8:7, 계 13:13,15). 성령세례와 방언, 신유를 강조하는 은사주의 운동은 1906년에 미국 L.A.의 아주사 거리에서 발흥했고, 유럽의 노르웨이와 스웨덴에서는 각각 1906년과 1907년에, 남미의 칠레와 브라질에서는 1909년과 1910년에, 아시아 지역인 인도와 “한국”에서는 각각 1906년과 “1907년”(속칭 ‘평양대부흥’의 해)에 일어났으며, 아프리카도 같은 시기에 있었으니, 이는 20세기 초에 전 세계적으로 움직인 동시다발적 현상이었던 것이다.17)
왜 그랬을까? 그 시기의 교회들이 <킹제임스성경>을 버리고 “변개된 성경”을 택했기 때문이다. 그때도 그것을 “부흥”이라고 하더니, 100년도 더 지난 지금 역시 “부흥”을 위해 그 마귀 짓을 추구해야 한다며, “변개된 성경”을 쓰는 학자, 목사, 선교사가 망발을 지껄였다. “광대”는 서커스에만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BB
각주
1) 이송오 외 5인, 『마지막 때의 미혹 은사주의』 (서울: 말씀보존학회, 1996), p.11.
어빙은 1828년 “어떤 영에 의해 초능력과 초자연적 경험을 하게” 되었고, 결국 황홀경, 환상, 방언, 감정
고조 등을 기조로 하는 비성경적인 신비주의 기독교의 탄생을 예고했다.
2) 헤롤드 스미스, 『오순절 운동의 기원과 전망』, 박정렬 역 (군포: 순신대학교 출판부, 1994), p.27.
3) 박명수, “근대 오순절 운동의 기원,” 『오순절 신학 논단』 제1호 (군포: 한세대 오순절 신학 연구소, 1998), p.21.
4) 헤롤드 스미스, 『오순절 운동의 기원과 전망』, p.44.
5) 위의 책, p.27.
6) 박명수, “근대 오순절 운동의 기원,” p.19.
7) 위의 책, p.15.
8) 위의 책.
9) 위의 책, p.29.
10) 국제 신학 연구원 편, 『하나님의 성회 교회사』, p.114.
11) 위의 책.
12) Alma White, Demon and Tongues (Bound Brook, NJ: Pentecostal Union, 1910);
Stanley, “Alma White,” p.118, 박명수, “근대 오순절 운동의 기원,” p.34에서 재인용.
13) 박명수, “근대 오순절 운동의 기원,” p.39.
14) 이재범, 『성령운동의 역사』 (서울: 보이스사, 1993), p.118.
15) Robert M. Anderson, Vision of the Disinherited (Peabody: Hendrickson Publishers, 1992), p.28, 이영훈, “오순절 운동이 한국교회에 미친 영향”, 『오순절 신학 논단』 제1호 (군포: 한세대 오순절 신학 연구소, 1998), p.95에서 재인용.
16) 국제 신학 연구원 편, 『하나님의 성회 교회사』, p.13.
17) 이영훈, “오순절 운동이 한국교회에 미친 영향,” p.8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