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목회자 칼럼 분류
지옥, 가장 끔찍한 진리
컨텐츠 정보
- 104 조회
- 목록
본문
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25년 12월호>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그는 자색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매일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더라. 또 나사로라고 하는 어떤 거지가 있었는데 온몸에 헌데가 난 채 그 부자의 문전에 누워서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진 부스러기로 배를 채우기를 바라니,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의 헌데를 핥더라. 그러다가 그 거지가 죽었는데 천사들이 그를 아브라함의 품으로 옮겼고 그 부자도 죽어서 장사되었더라』(눅 16:19-22).거지로 살다가 거지로 죽은 나사로의 장례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 필경 그의 시체 또한 아무렇게나 처리되었을 것이다. 반면 부자의 죽음은 많은 조문객을 불러들이고, 많은 치장과 치례를 통해 그의 높은 명예와 부를 장례식이 진행되는 동안에 마음껏 드러냈을 것이다. 무덤은 분명 크고 화려했을 것이며, 큰 비석도 세워졌을 것이다.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은 여기까지이다. 그 다음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가장 끔찍한 진리”는 “지옥”에 관한 진리이다. 가장 치명적인 마귀의 거짓말은 지옥에 관한 것이다. 지옥의 진리는 가장 끔찍한 진리이기에, 마귀와 마귀의 하수인들은 성경에서 지옥의 실체를 없애려고 최선을 다한다. 지옥이라는 말을 번역하기를 거부하여 “스올”이라 하고, 지옥은 다름 아닌 “무덤”이라고 주장하기도 하며, 아예 성경에서 지옥에 관한 구절을 제거하기도 한다. 그리고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를 “비유”라고 거짓말한다. 그러고는 자기들의 사사로운 해석과 생각을 내세운다. “영원한 형벌이 있음을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죄를 지은 사람을 지옥 불로 벌준다는 생각은 너무 잔인한 생각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버트런트 러셀). “지옥은 죽을 인간이 만들어 낸 오류이다”(크리스찬 사이언스). “악인은 멸절되어 없어져 버린다”(여호와의 증인). “모든 사람은 결국에 가서는 모두 구원받는다. 영원한 형벌로 고통당하지 않는다”(몰몬교). “하나님께서는 어느 날 모든 죄들과 죄인들을 다 없애실 것이다. 그리고 다시 한번 깨끗한 우주를 세우실 것이다”(안식교).
지옥은 실제 장소이다. 지옥은 어디에 있는가? 지옥은 지하 세계에 있다. 예루살렘 외곽 지역에 있던 “힌놈의 골짜기”는 쓰레기 소각 장소로, 심한 악취와 연기가 끝없이 올라가는 곳이었는데, 거기서는 쓰레기뿐 아니라 성전에서 나오는 온갖 짐승의 털과 배설물 등을 태웠다. 바로 이 골짜기가 “지옥”을 설명해 주는 비유의 장소였다. 현재 실제의 지옥은 지하 세계에 있는 고통의 장소이다. 천년왕국 때에는 에돔 지역이 실제로 불타는 지옥이 된다. 그리고 천년왕국 이후 영원에서는 불못이 영원토록 존재한다. 지옥은 실재하는 장소이며, 실재하는 죄인들로 채워진다. 지옥에 간 부자는 누군가의 아들이었고, 누군가의 남편이었으며, 누군가의 아버지였다. 그에게 다섯 형제가 있었듯이, 지옥을 채우는 사람들 가운데는 당신이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지옥은 고통의 형벌이 있는 고통의 장소이다. 지옥에는 꺼지지 않는 불이 있으며(막 9:43, 눅 16:24), 그것은 하나님의 진노의 불이다. 지옥에 있게 되면, 지옥도 실재하고 “하늘나라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비참한 좌절감에 빠진다(눅 16:26). 지옥에는 이전의 생애에 관한 기억과 회한이 있다. 지옥은 기억이 살아 있는 곳이다. 지옥에는 공소 시효가 없다. 사람들 편에서는 긴 시간이 흘러 기억에서 가물가물 사라질 경우 범죄 사실이 자연스레 없어졌다고 할지 모르나, 하나님께는 공소시효와 소멸시효가 없다. 지금부터 6천 년 전에 살았던 카인이 아벨을 죽인 인류 최초의 살인 사건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2천 년 전에 있었던, 죄인이 하나님을 죽인 살인 사건 역시 공소시효가 없다. 하나님에 관한 한, 한번 지은 죄는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지은 죄 자체가 그 사람을 찾아낼 것이라고 말씀하신다(민 32:23, 눅 12:2).
누가복음의 부자는 이생이 전부인 줄 알고 그렇게 살아왔다. 그렇기에 지옥이 있다는 사실은 그에게 가장 끔찍한 진리가 되었다. 그런 자들 외에 누가 지옥에 가는가? 회개하지 않은 채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다(마 7:21-23). 초림 때에는 열심히 종교 생활을 했지만 구원받지 못하고 지옥에 간 바리새인들이 있었다. 곡식 가운데 독보리가 있듯이, 좋은 물고기가 있고 또 나쁜 물고기가 있듯이,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과 구원받지 못한 채 교회만 다니는 교인들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인생의 가장 중요한 문제는 “영원을 ‘어디에서’ 보낼 것인가?”이다.
가장 끔찍한 진리는 “지옥에 관한 진리”이다. 지옥에 가면, 구원받기에 너무 늦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럼에도 지옥에서는 영원토록 기도한다. 지옥에는 처절한 고통의 부르짖음이 있다. 지옥에 간 사람치고 그곳에서 구해 달라고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지옥에서의 부르짖음은 응답되지 않는다. 지옥에서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기에는 너무 늦었지만, 그럼에도 영원히 하나님의 자비를 구한다. 그러나 지옥에는 하나님의 자비가 없다. 지옥의 두려움을 알게 하는 것 가운데 하나는, 다시는 빠져 나갈 수 없는 감옥에 영원히 갇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지옥의 진짜 두려움은 하나님을 영원히 만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죽기 전까지는 마음만 먹으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일단 죽고 난 후에는 더 이상 구원의 하나님을 만날 기회가 없다. 이 세상을 떠난 뒤에는 결코 구원의 소망이 없다.
지옥에서는 영원토록 전파한다. 지옥에서 복음을 전파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너만큼은 이 고통의 장소에 오지 말라!” 말하자면 지옥에서는 형제 사랑이 있다. 장례식장의 분위기는 숙연하고, 먼저 간 고인의 뜻을 받드는 것은 남겨진 사람들의 몫인데, 과연 먼저 간 사람의 진정한 뜻이 무엇이겠는가? 자손들이 공평하게 재산을 상속받는 것이겠는가? 아니면 자신의 시신을 양지바른 곳에 잘 묻어 주는 것이겠는가? 구령하다 보면 “내 어머니가 지옥에 갔기에 나도 가련다.”라고 하는 사람들을 가끔 만나는데, 그런 사람은 어머니의 마지막 유지, 즉 그 간절한 소원도 무참히 꺾어 버리는 천하의 불효자이다. 지옥에서 모자가 상봉한다면 서로를 향해 저주할 것이다.
지옥에서는 영원토록 성경을 믿는다. 지옥에 간 부자는 이제야 잃어버린 혼에 대한 부담으로, 만일 누군가가 죽은 자들로부터 자신의 가족들에게 가면 그들이 회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비록 성경을 믿지 않는 형제들이지만,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 “지옥은 반드시 있다.”라고 말해 준다면 회개할 것이라고 믿은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기적을 보면 믿을 수 있겠다고 말하지만, 성경은 표적, 이적, 기적을 통해서는 구원받을 수 없다고 분명히 말씀한다. 요한복음 12장에서 죽은 나사로를 예수님께서 살려 주셨을 때, 그 부활한 나사로를 보고서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었는가? 아니다. 오히려 부활한 나사로를 죽이려 하지 않았던가? 성경을 믿어야만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이다(롬 10:17, 딤후 3:15, 벧전 1:23, 요 5:39). 가장 끔찍한 진리인 지옥이 사실이 아니라면, 교회도 필요 없고, 성경도, 사역도 필요 없게 된다. 지옥이 없다면, 하늘나라도 없고, 구주도 없게 된다. 왜냐하면 지옥이 없을 시에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거짓말하신 것이 되며, 구주로서의 자격도 없으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만이 지옥을 말씀하실 수 있다. 지옥의 열쇠를 가지셨기에, 그분께서 열면 닫을 수 없고 닫으면 열 수 없다. 지옥에 간 부자가 소유했던 재물과 지위와 권세가 그에게 좋은 생애를 보장했지만 영원한 생명을 보장하진 못했다. 매일 먹고 마시며 잔치로 세월을 보내면서도 죽음은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지옥이 가장 끔찍한 진리가 되지 않으려면, 지옥에 관한 예수님의 경고를 받아들이라!(막 9:43-48, 마 10:28; 18:9; 23:33) 『그곳에는 그들의 벌레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막 9:44,46,48).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여 구원받았다면,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가 그리스도인이라면,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지옥의 진리를 전파할 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BB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