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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말씀보존학회 - 한글킹제임스성경 및 진리의 지식을 전파합니다 &amp;gt; 바이블마스터 &amp;gt; 지식뱅크 - 이송오 목사 칼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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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테스트 버전 0.2 (2004-04-26)</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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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그날 이후로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다</title>
<link>https://biblemaster.co.kr/bb13/%EA%B7%B8%EB%82%A0-%EC%9D%B4%ED%9B%84%EB%A1%9C-%EC%95%84%EB%AC%B4%EA%B2%83%EB%8F%84-%EB%8B%AC%EB%9D%BC%EC%A7%84-%EA%B2%83%EC%9D%B4-%EC%97%86%EB%8B%A4/</link>
<description><![CDATA[지난 1995년 1월 17일 새벽 5시에 일본의 관서 지방을 강타했던, 특히 고베시를 강타했던 지진은 약 20초 동안에 그 도시를 완전히 폐허로 만들어 버렸다. 약 6,400여 명이 사망하고 4만 명 이상의 부상자가 발생했으며, 부서진 가옥은 247,000채이고, 피해 규모는 당시의 금액으로 약 10조 엔(한화 93조 3,000억 원)에 달했다. 그때 우리나라 1년 예산이 54조 원인 것을 감안한다면 그 피해가 얼마나 컸는지 대략적으로나마 가늠할 수가 있다.<br/><br/>지진과 같은 재앙은 인간의 노력으로 대책을 강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이런 문제 앞에 그야말로 속수무책이며, 이는 일본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창세기 3장에서 인류가 평화로웠던 에덴의 동산에서 쫓겨난 이후로 세상에는 늘 문제가 끊이지 않았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셔서 통치하시기 전까지 계속 그러할 것이다. 그때까지 지구는 “재난 지역”으로 계속 남아 있을 것이며, 지구에 사는 사람들은 극도의 위기 속에 살아갈 것이다.<br/><br/>타락함으로써 이처럼 불확실하고, 또 악화일로를 거듭하는 세상과 마주하게 된 우리를 하나님께서는 은혜 가운데로 부르셨다. 이는 그분의 아들의 피로 씻겨 주시고 새 생명을 주셔서 자신의 자녀로 삼고자 하심이었다. “염려 말라. 걱정하지 말라. 내가 있지 않느냐?”라고 말씀해 주실 요량이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를 맺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는 인간의 타락한 성품 때문이다.<br/><br/>사람이 하나님에 대해서 안다는 것과 하나님과 개인적인 관계를 맺었다는 것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시어 갈보리에서 죽으신 그 일로 인해 인간의 죄가 모두 다 용서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하지 않았다면 그 사람은 그분과 관계가 없는 사람이다. 자신의 의지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을 때에야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이를 거부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보호 영역 바깥에 있게 되는데, 형식적인 신앙을 가졌던 사람들은 재앙에서 보호를 받지 못한다.<br/><br/>그렇다면 하나님과의 관계 정상화를 위해 알아야 할 것들은 무엇인가? <br/><br/>우선, 인간이 “타락한 존재”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인간은 죄를 지어서 타락하는 것이 아니라 타락했기에 죄를 짓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이 타락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세상에는 딱 두 부류의 사람만 존재한다. 자신이 타락했다는 사실을 아는 죄인과 그 사실을 모르는 죄인이다.<br/>인간의 타락에 대해 증거하는 성경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는데, 진화론을 신봉하는 과학자나 심리학자 같은 사람들이 그렇다. 그들은 인간이 도덕적으로 타락하지 않았으며, “죄성”이라는 것은 없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물질세계만이 실체요, 전부라고 생각하는 유물론자들이다. 그렇기에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이다. 성경은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말씀하신다(마 19:24). 즉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물질에 집착해서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존재와 역사를 깨달을 수가 없다.<br/><br/>그와 같은 자들은 “윤리”란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라고 말하는데, 이는 물질로는 도덕에 대한 “절대적인” 기준을 세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옳은 것과 그른 것, 또 진리와 비진리를 구분하지 않고, “상황이 그러면 그럴 수도 있지.” 하고 이야기한다. 오늘날 신앙을 가장 강력하게 파괴하는 사상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 “상황 윤리”이다. “우리도 판단하지 않을 테니, 너희도 우리를 판단하지 말라. 옳다고 하는 것이라 해도 꼭 해야 하는 일은 아니고, 나쁘다고 하는 것들도 반드시 하지 말아야 할 일은 아니다. 진리면 어떻고, 비진리면 어떠냐?” 이것이 소위 장 자크 루소 이래로 행해지고 있는 “교육”이라는 것이다. 미국의 교육도, 한국의 교육도 모두 그와 같은 방식으로 행해지고 있다. 성경 없이 무언가를 가르치려고 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며, 그들에게는 가치 기준이 없다. 성경적인 규범을 인간의 교육과 철학으로 파괴하는 것이다.<br/><br/>그러나 성경은 그들이 좋아하는 “과학”으로 인류의 타락에 대해 설명한다. 창세기 3장에서 아담이 선과 악의 지식의 나무에서 나는 열매를 먹음으로 인해 죄가 세상으로 들어왔다. 그때 이런 일도 함께 있었다. 『또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네 아내의 음성에 경청한 까닭에, 내가 네게 명하여 말하기를 ‘너는 그것을 먹지 말라.’고 한 그 나무의 열매를 먹었으니, 너로 인하여 땅은 저주를 받고 너는 너의 전 생애 동안 고통 중에서 그 소산을 먹으리라. 또 땅은 네게 가시나무와 엉겅퀴를 낼 것이요 너는 들의 채소를 먹을 것이며, 네가 땅으로 돌아갈 때까지 네 얼굴에 땀을 흘려야 빵을 먹으리니, 이는 네가 땅에서 취해졌음이라. 너는 흙이니 너는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창 3:17-19). <br/>땅이 가시나무와 엉겅퀴는 저절로 내는데, 음식이 될 만한 것은 왜 인간이 노력을 기울여야만 얻을 수 있는가? 인간은 죽으면 왜 흙으로 돌아가는가? 성경은 그러한 질문에 “과학적으로” 답하고 있다. 즉 “땅이 저주를 받았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한다. 이 모든 것은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며, 그와 같은 일은 주님께서 오셔서 저주받은 땅을 회복시키셔야만 끝이 날 것이다. 그때서야 우리는 에덴의 동산에서 아담과 이브가 누렸던 것처럼, 사람이 노력하지 않아도 심는 족족 과실이 맺히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br/><br/>다음으로, 우리는 “인간이 어떻게 타락했는가”를 알아야 한다. 인간의 타락은 먹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입에 넣어서는 안 될 것을 넣은 일이 문제의 발단이었다. 사람은 생명을 유지하려면 무언가를 먹어야 한다. 사랑하는 가족이 곁에서 죽었다고 해도 사람은 여전히 먹어야만 한다. (이 법칙은 영적 생명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박해를 당해 쫓기든 죽을 위기에 처했든 간에 영이 살아난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야겠다는 욕구가 있는 것이다.) 이브가 겪었던 문제도 동일했다. 게다가 그 나무는 먹음직하고 보기에도 즐겁고 현명하게 할 만큼 탐스러웠다. 여자는 본능적인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먹고 말았다. <br/><br/>사탄은 이브가 남편과 함께 있을 때가 아니라 따로 떨어져 있을 때 그녀에게 접근했다. 이브는 홀로 불필요한 곳에 가 있었기 때문에 공격을 받은 것이었다. 사탄은 이브에게 접근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의문을 제기했고, 제멋대로 변개했다. 여기에 속은 이브는 그 열매를 먹고 말았던 것이다. 누군가가 하나님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한다고 해서 덜컥 그 사람이 무엇인가를 잘 알 것이라고 여기면 곤란하다. 영적 지식은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에 근거를 두어야만 얻을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라. 누군가가 무언가를 아는 체하더라도 반드시 하나님께서 정말로 그렇게 말씀하셨는지 확인해 보아야 하는 것이다.<br/><br/>오늘날 기독교계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종교적인 열성과 참된 믿음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열심히 하면 되는 것으로 안다. 어떤 사람들은 목사가 시키는 대로 열심히 하면 그것이 하나님께 인정받는 믿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교회에서 제직을 맡아 열심히 섬겼다고 해도 성경을 읽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영적으로 말해서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다. 심지어 성경을 읽는 일을 의무로 여기고 매일 성실하게 수행했다고 해도 “목사가 시켰기 때문에” 하는 사람은 결코 믿음이 있는 사람이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선 활동에 열을 내는데, 그것은 선한 일일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해야 할 이유를 성경에서 찾을 수 없다면 그 활동을 믿음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br/><br/>(사탄은 이브가 남편과 떨어져 홀로 있을 때 접근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의문을 제기하고 제멋대로 변개함으로써 그녀를타락시켰다. 누군가가 하나님에 대해 아는 체하며 말한다고 해서 그가 진리를 잘 알 것이라고 덜컥 믿어서는 안 된다. 참된영적 지식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할 때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누군가의 가르침을 접할 때는 반드시하나님께서 정말로 성경에 그렇게 말씀하셨는지를 스스로 확인함으로써 분별해야 한다.) <br/><br/>성경이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지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아니다. 그분을 믿으려면 성경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변개된 성경을 고수하는 사람들도 별반 다를 게 없다. 변개된 성경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에 의문을 제기하는 데서 나왔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은 거듭난 뒤에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믿고 성장하는 사람들이지, 종교 행위에 열을 올리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런 자들은 결국 이브처럼 사탄에게 속을 수밖에 없다.<br/><br/>마지막으로, 우리는 “타락의 심각성”을 알아야 한다. 타락한 존재인 우리는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다. 이것은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무조건 만사가 형통하고, 믿지 않으면 반대로 불행이 닥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인생에 보장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곳 한국이라고 해서, 앞서 이야기했던 지진이 나지 말란 법이 없고, 지진이 나면 믿는 사람이든 믿지 않는 사람이든 목숨을 잃을 수 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예측할 수 없는 위기 가운데 살게 된 것 자체가 타락의 결과라는 것이요, 이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를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br/><br/>세상에는 인류가 타락한 날 이후로 재앙이 끊이지 않고 있다. 비단 자연재해뿐 아니라 직장, 가정, 길거리 등에서도 온갖 종류의 나쁜 일이 넘쳐난다. 그런 것들은 모두 “타락”이라는 것이 인간의 도덕성, 양심, 지성, 심지어는 사랑에까지 영향을 끼쳤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즉 타락한 우리가 죄를 짓고, 또 죄를 생각하기 때문에 가족들이나 동료들과의 관계에서 여러 악한 일들이 발생하는 것이다. 타락한 인간들이 살아가는 이상, 세상은 결코 아름다울 수도, 무슨 희망이 거기에 존재할 수도 없다. 어떤 사람들은 이처럼 악한 현실 속에 살아가면서도 애써 태연자약하려 한다. 스스로의 힘으로도 괜찮게 살아갈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이 필요하다는 점을 깨닫지 못한다.<br/><br/>그러나 내가 타락했기 때문에 죄를 지을 수밖에 없다고, 말하자면 내가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죄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죄인이기에 죄를 짓는 것이라고 시인하는 사람들은 구주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그렇게 해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으면 타락으로 인해 흉측해진 몰골이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해서 깨끗해진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깨끗해진 사람을 장차 그분께서 계신 맑고 깨끗한 셋째 하늘로 받아주실 것이고, 또한 앞으로 펼쳐질 천년왕국에서 아담이 타락하기 이전에 에덴의 동산에서 누렸던 복을 누리게 해 주실 것이다. 비록 육신을 입고 사는 현재의 삶은 곤고하다고 할지라도 부활과 영생의 소망을 가지고 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br/><br/>대통령, 왕, 재벌 총수 등의 육신이라고 해도 쓰레기를 치워서 먹고 사는 사람의 육신과 별반 다를 게 없다. 네팔이나 스리랑카에서 태어난 사람이든 우리나라나 미국에서 태어난 사람이든 가지고 있는 육신은 다 똑같다. 육에서 난 것은 육일 뿐이다. 우리는 그런 것에 점수를 주지 않는다. 거듭나지 않은 사람에게는 “거듭나라”는 것밖에는 할 말이 없다. 그들의 육신이 어떻든지 간에 갑작스런 재앙 앞에서는 다른 사람들과 아무런 차이가 없게 된다.<br/><br/>사람들은 몇 초 앞에 있을 재앙도 보지 못하면서, 세상에서 놀고 빈둥거리고 즐기는 데 시간을 쓴다. 일본의 고베시에서는 피난민들이 물도 제대로 공급받지 못하고 근근이 생명을 유지하는데도, 다른 도시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에게는 그런 일이 없을 것처럼 노래방에서 노래나 부르고 있다. 그러나 갑작스런 재앙이 그들에게 임할 때 그들의 혼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죽음과 그 이후에 있을 죄에 대한 심판에 대해, 즉 지옥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그렇게 쾌락만을 좇는 자들은 참으로 어리석은 자들이다.<br/><br/>그리스도인은 어떤 사람인가?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과 정상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에게 지상에서 수행할 어떤 임무를 맡겨 주실 것이고, 그 임무를 위해 그 사람을 보호해 주신다. 이 세상에서 이룬 어떤 성취나 인간관계 따위는 갑작스런 재앙이 닥칠 때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다. 재앙의 날에 당황하지 않으려거든 타락한 인간에 불과한 자기 자신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의 계획에 동참해야 한다. BB]]></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Tue, 24 Mar 2026 17:40:04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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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인간적 방법으로 하늘나라에 갈 수 있는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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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CDATA[모슬렘들은 그들이 사용하는 폭력을 “성전”(Jihad)이라 이름 붙여 젊은이들을 세뇌시킨다. 알라를 위해 싸우다가 죽거나, 자살 폭탄 테러를 감행하면 즉시 낙원으로 가서 배꼽춤을 추는 여자들 70명과 함께 살면서 술과 산해진미를 즐길 수 있다고 꼬드기는 것이다. 그래서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레바논,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인도네시아, 영국, 미국 등 각처에서 끊이지 않고 모슬렘들에 의한 유혈사태가 발생하고 있다. 예전에 이라크에서는 50대의 한 여인이 처녀들을 강간당하게 만든 뒤, 이슬람 사회의 특성상 그러한 수치를 당하고서는 더 이상 살아가기 어렵다는 점을 이용하여 자폭에 동원되도록 만든 사건이 매스컴을 통해 알려지기도 했다. 그 처녀들도 낙원에 가서 70명의 남자들과 놀아나는가? 코란은 참으로 상식 이하의 책이다.<br/><br/>이슬람교뿐만 아니라 힌두교, 불교, 유교, 도교, 신도교, 로마카톨릭, 문선명의 통일교에 이르기까지, 종교들은 그 안에서 나름대로 정해진 규례들대로 행하면 영생복락을 누리게 된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사람이 만들어 놓은 규례를 지킨다고 해서 무슨 염원이 이루어지겠는가? 그들이 섬기는 신들은 어떤 종류이기에 그들을 추종하는 인간들이 정한 대로 그 염원을 들어준다는 말인가? 하긴 그들이 섬기는 대상들에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한 부처상으로부터 소, 염소, 원숭이, 코브라, 악어, 두꺼비, 개구리 심지어 파리까지 있으니 그들의 믿음에 “상식”을 들이대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시도일는지도 모른다.<br/><br/>사람들이 사는 곳에는 적어도 네 가지가 필연적으로 있게 된다. 종교, 쓰레기, 술, 싸움(갈등)이 그것이다. 그래서 지구상의 인류 가운데 종교가 없는 종족은 발견되지 않는다. 알래스카의 에스키모, 미 대륙의 인디언, 코디액 같은 섬들에 사는 알류트족, 아프리카 오지의 미개인들, 사하라 사막의 베두인족, 인도네시아 섬들의 종족들 등을 전부 살펴봐도 종교가 없는 종족은 없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뭔가를 숭앙해야 마음의 안정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비가 많이 내려 홍수로 집이 떠내려가고, 산불이 나서 모든 것을 태워 버리고, 가족 중 누군가가 맹수에게 잡아먹히고, 바다에 나갔다가 풍랑으로 목숨과 배를 잃고, 또 가뭄이 심해 농사를 지을 수 없을 때 인간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경으로 도움을 갈구한다. 그러다 보면 아무것도 아닌 존재들을 숭앙하게 되는 것이다.<br/><br/>모세의 때에 이집트에는 수많은 거짓 신들이 있었다. 따라서 출애굽 사건은 그러한 거짓 신들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하나님께서 이집트 전역에 내리셨던 열 가지 재앙은 물, 땅, 개구리, 파리, 소, 곤충, 대기, 태양 등의 “신들”에 대한 심판이었다. 하나님께서 본질상 신들이 아닌 것들을 섬기는 땅으로부터 그분께서 택하신 백성을 분리해 내신 목적은 제사장 국가를 건설하고자 하심이었다. 『‘너희는 내가 이집트인들에게 어떻게 하였으며, 내가 어떻게 독수리들의 날개들로 너희를 실어 내게로 데려왔는지를 보았느니라. 그러므로 이제 만일 너희가 참으로 내 음성에 복종하고 나의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백성보다 나에게 독특한 보물이 되리니, 이는 온 땅이 내 것임이라. 너희는 나에게 제사장들의 왕국이 되며 거룩한 민족이 되리라.’ 이것이 네가 이스라엘의 자손에게 고할 말이니라.” 하시니라』(출 19:4-6). 그러나 『참으로 내 음성에 복종하고 나의 언약을 지키면』이라는 조건이 문제였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음성에 복종하기를 거부함으로써 제사장 민족으로서의 지위를 상실했던 것이다. 『내 백성이 지식의 부족으로 멸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거부하였으므로 나도 또한 너를 거부하리니, 네가 나에게 제사장이 되지 못하리라.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또한 네 자녀를 잊어버리리라』(호 4:6). 그들은 배교함으로써 나라를 잃어버린 것도 모자라, 자신들의 왕으로 오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았다. 이로써 하나님께서 세우고자 하셨던, 모든 민족들에게 롤 모델이 되는 신정통치 왕국은 잠시 연기되고 말았다.<br/><br/>유대인들이 실족함으로 인하여 복음은 이방인들에게 전파되었고, 교회 시대의 경륜이 펼쳐졌다. 『도리어 그들의 실족으로 구원이 이방인들에게 이르렀으니 이는 그들로 시기하게 하려 함이니라』(롬 11:11). 말하자면 비록 유대인 출신이 아닐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거듭나면 “제사장” 직분이 맡겨지는 시대로의 전환이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러나 너희는 선택받은 세대요 왕 같은 제사장이며, 거룩한 민족이요, 독특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움에서 불러내어 그의 놀라운 빛으로 들어가게 하신 분의 덕을 너희로 선포하게 하려는 것이니라.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었으나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며, 전에는 자비를 받지 못했으나 이제는 자비를 받았느니라』(벧전 2:9,10).<br/><br/>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영영 버리신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복음에 관하여는 그들이 너희로 인하여 원수가 되었으나 선택에 있어서는 그들의 조상으로 인하여 사랑을 받는 자들이라... 이와 같이 이제 이들이 믿지 아니한 것은 너희의 자비를 통하여 그들도 자비를 얻게 하려 함이라』(롬 11:28,31).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회복시키겠다고 하신 약속은 위의 로마서 11장 외에도 이사야 49:12-23; 60:1-22, 에스겔 36:24-28, 스카랴 12:9-11, 히브리서 8:9-13 등의 수많은 구절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br/><br/>로마카톨릭과 개신교회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완전히 버리셨으며, 이스라엘에게 주어졌던 특권은 모두 자신들에게로 넘어왔다고 거짓말하면서 유대인들을 박해했다. 이것은 성경을 공부하지 않는 데서 비롯된 무지의 소치일 뿐이다.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지만, 유대인은 혈통으로 그렇게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다음과 같이 약속하신 바에 따른 것이다. 『내가 나와 너와 네 뒤에 올 네 씨 사이에 대대로 내 언약을 세우리니,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씨의 하나님이 되리라. 내가 너와 네 뒤에 올 네 씨에게 네가 타국인으로 있는 땅, 즉 카나안의 모든 땅을 주어 영원한 소유가 되게 하며,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하시니라』(창 17:7,8).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이 약속에는 어떤 조건을 위반하면 취소된다는 조항이 달려 있지 않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씨인 유대인들에게 영원히, 무조건적으로 그들의 하나님이 되어 주실 것을 약속하신 것이다. 따라서 유대인들이 회복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로마카톨릭과 개신교회들은, 스스로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신성모독을 자행하고 있는 셈이다.<br/><br/>(로마카톨릭과 개신교회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완전히 버리셨으며, 이스라엘에게 주어졌던 특권은 모두 자신들에게로 넘어왔다고 거짓말하면서 유대인들을 박해했다. 이것은 성경을 공부하지 않는 데서 비롯된 무지의 소치일 뿐이다.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지만, 유대인은 혈통으로 그렇게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바(창 17:7,8)에 따른 것이다.)<br/><br/>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을 영원히 자기 백성으로 삼으신다는 말을 오해하지 말라. 이 말은 그들 개개인의 구원이 무조건 보장된다는 말은 아니다. 소속원들이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느냐의 여부는 유대인들의 구원과 교회 시대 성도들의 구원 사이의 차이를 잘 보여 주는 요소이기도 하다. 유대인들은 민족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다(출 4:22).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낳으셨다”고까지 말씀하셨다(신 32:18). 그렇지만 유대인 한 사람이 지옥에 간다고 해서 문제될 것은 없다. 여전히 “유대인”이라는 민족은 건재하기에 하나님께서는 그분이 낳으신 아들을 지옥에 보내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반면 이 시대에 구원받은 사람들은 개개인이 성령으로 태어난 “하나님의 아들들”이다(요 1:12).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우리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단 한 사람도 지옥에 보내시지 않는다.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 아버지”라고 부르는 현 시대의 성도들은, 결코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다(롬 8장).<br/><br/>유대인과 그리스도인은 이처럼 다르다. 그럼에도 로마카톨릭은 유대인들이 받았던 할례가 이제 유아세례로 대체되었다는 이론에 따라 물뿌림을 받으면 “카톨릭 교회”에 속한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다고 1,600년 동안 가르쳐 왔다. 구약의 율법을 따라 살았던 유대인들이 구원 받는 방법을 현 시대의 구원에 적용하려다 보니, 행위를 구원과 연결시키는 비성경적인 교리를 붙들게 된 것이다. 구약 시대에는 현재와 같이 믿음만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할례를 받는 것과 같은 행위가 동반되어야 했다. 그래서 구약성경에서는 “믿음”이라는 단어가 단 두 번 나온다(신 32:20, 합 2:4). 그러나 신약성경에는 “믿음”이 200회 이상 나온다. 구약과 신약의 구원은 명백히 다른 것이다. 신약성경은 곳곳에서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너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엡 2:8,9). 『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릴 수 없나니, 만일 의가 율법으로 인하여 온 것이라면 그리스도께서는 헛되이 죽으신 것이라』(갈 2:21). 우리의 구원이 행위로부터 비롯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구원의 영원한 보장을 더욱 확신할 수 있게 해 준다. 무엇인가를 해서 구원받았다면 그것을 하지 않았을 때 잃어버릴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러나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구원받았기에, 무엇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잃어버릴 것이 없다.<br/><br/><br/>세례나 과자 부스러기나 예배나 미사로는 아무도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고, 누군가를 구원할 수도 없다. 인간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모든 죄 문제를 단번에 처리하실 수 있는 구주로서 믿고 입으로 고백해야만 구원받을 수 있다. 이렇게 하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대리자로 자처하는 교황도, 그 외 추기경, 대주교, 주교도, 또 개신교 목사와 장로, 집사, 권사도 지옥으로 떨어져 영원한 정죄를 받아야 한다.<br/><br/>사람들이 지옥행을 면치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치워 버리고 인간이 만든 제도와 규례를 따르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옳게 보이는 길이 있으나, 그 끝은 죽음의 길들이니라』(잠 14:12). 예수님께서도 초림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이 인간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 점을 힐책하셨다. 『주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또한 어찌하여 너희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느냐?... 너희 위선자들아, 이사야가 너희에 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말하기를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에게 다가오고, 또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여도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들의 계명들을 교리들로 가르치니, 그들이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라고 하였느니라.”고 하시더라』(마 15:3,7-9). 인간의 발상으로 하나님을 섬기려 하는 것만큼 불경스러운 일도 없다. 자신을 종교 지도자라고 불렀든, 설교자라고 불렀든 복음을 전하는 건 고사하고 성경에 없는 일들, 그것도 주로 세상과 연관된 일을 하면서 좋은 사람으로 세상에서 인정받았다면 그는 하나님과 무관한 사람이요, 세상에 속한 사람일 뿐이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종교 지도자들과 아무런 관계도 없으시다.<br/><br/>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하면 세상은 그를 대적하고 박해하며 거부하게 되어 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그것은 너희를 미워하기 이전에 나를 미워한 것임을 알라. 만일 너희가 세상에 속한다면 세상은 자기 사람들을 사랑할 것이라. 그러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내가 너희를 세상으로부터 선택하였느니라. 이로 인하여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종이 자기 주인보다 더 위대하지 못하다.’고 너희에게 일렀던 나의 말을 기억하라. 만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다면 너희도 박해하리라. 만일 사람들이 나의 말을 지켰다면 너희 말도 지키리라. 그러나 그들이 이 모든 일들을 내 이름으로 인하여 너희에게 행하리니, 이는 그들이 나를 보내신 분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요 15:18-21). 예수님께서는 세상을 위해서 기도조차 하지 않으셨다(요 17:9). 대통령을 위한 조찬기도회 같은 것을 준비하느라 부산한 자들은 소경이면서도 소경을 인도하려는 자들이다. 하나님의 교회는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<br/><br/>물론 우리는 국가의 법을 준수하기에 국방의 의무, 납세의 의무 등을 성실하게 다한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할 것을 명령하셨기 때문이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자들에게 복종하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오지 않은 권세는 없나니,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이라... 그러므로 모든 사람에게 의무를 다하되 국세를 낼 자에게 국세를 내고 관세를 낼 자에게 관세를 내며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고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롬 13:1,7). 그러나 하나님의 교회는 정치적인 영향력을 확보하는 것이나, 세상을 변혁하려고 애쓰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예수님께서 “카이사의 것은 카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던가? 모슬렘들이나 로마카톨릭 교황들처럼 종교적 권력을 정치적 권력으로 치환하려 드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정치권에 기웃거리는 목사나 중들도 마찬가지다. 그런 행태는 “신실함”으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의 종교심으로부터 비롯된 종교 지도자들의 인간적 권위를, 하나님께서 주신 권세자들보다 위에 놓으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자들에 의해 자행된 박해와 종교 전쟁으로 인해 수천만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던 중세 암흑시대의 역사를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br/><br/>종교 행위에 얼마나 공을 들였건 간에 복음을 믿고 구원받지 않았다면 그 종착지는 지옥이다. 세상에서 무슨 짓을 하며 살았든지 인간적인 방법으로 하늘나라에 가려 했다면 썩은 동아줄을 붙잡은 것임을 알아야 한다. 성경은 한 번 죽는 것은 사람들에게 정해진 것이고, 그 뒤에 심판이 정해져 있다고 말씀하신다(히 9:27). 그 심판이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저는 이런저런 율례들을 다 잘 지켰습니다. 저는 깨끗해요. 죄가 없단 말입니다. 오히려 제게 보상을 주셔야죠.”라고 말하는 모든 입을 다물게 하시고(롬 3:19), 그들을 영원한 불길 속으로 던지실 것이다. 스스로의 힘으로는 절대 의로워질 수 없음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우리의 죄들로 인해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하나님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은 사람만이 그 심판을 면제받고, 자신의 섬김에 대한 보상을 기대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적인 방법이 아닌 그분의 방법을 신뢰한 사람들을 이처럼 후하게 대우해 주신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BB]]></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Mon, 23 Feb 2026 18:08:09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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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너무나 많은 무신론자 목사들</title>
<link>https://biblemaster.co.kr/bb13/%EB%84%88%EB%AC%B4%EB%82%98-%EB%A7%8E%EC%9D%80-%EB%AC%B4%EC%8B%A0%EB%A1%A0%EC%9E%90-%EB%AA%A9%EC%82%AC%EB%93%A4/</link>
<description><![CDATA[만일 우리나라 개신교 목사들이 하나님의 사역자들이었다면, 우리는 그들에게서 두 종류의 좋은 열매를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첫째는 “성령의 열매”다. 사랑, 기쁨, 화평, 오래 참음, 친절, 선함, 믿음, 온유, 절제 등의 아홉 가지 성품이 여기에 해당한다. 둘째는 “구령의 열매”다. 구령은 잃어버린 혼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죄를 제거해 주시려고 십자가에서 대신 죽어 주셨음을 알게 하여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영접하게 하는 일이다. 이 일은 천사들에게조차 맡겨지지 않았고(벧전 1:10-12), 오직 그리스도인들에게만 맡겨졌다.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는 자들에게는 이 영예로운 일에 참여할 몫이 없다.<br/><br/>성품이야 그럴듯하게 꾸며댈 수 있겠지만, 구령의 열매는 그렇게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이 나라의 목사들 가운데는 구령 간증이 없는 자들이 부지기수이고, “구령” (soul winning)이라는 용어 자체를 아예 모르는 자들도 많다. 그들은 전도한다며 교회로 사람들을 끌어와서 돈 내게 할 줄은 알아도, 죄 문제를 해결하여 지옥에 가지 않게 해 주지는 못한다. 그런데도 제도화된 교회들에 출석하는 교인들은 무조건 그런 목사들에게 충성을 바친다. 교회가 무엇인지도, 목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br/><br/>열매 없는 목사들과 그 교인들이 그와 같은 무지를 감추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은 무리를 이루는 것이다. 그들은 교단, 교회협의회(NCC, WCC),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등의 단체가 지향하는 신학적 노선에 편승한다. 성경을 열어 그 신학을 입증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결국 그 단체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만다. 그들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그들의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으며 나를 향한 그들의 두려움도 사람들의 법규로 가르친 것이라』(사 29:13). 그들은 사실상 무신론자들이다. 베드로와 요한처럼 『하나님 앞에서 너희에게 경청하는 것이 하나님께 경청하는 것보다 더 옳은 일인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일들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노라.』(행 4:19,20)라고 배짱 있게 말하지 못하고, 단체에서 결정된 사안이 성경과 배치될지라도 그것을 따를 뿐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들은 손에 손을 잡고 멸망으로 인도하는 넓은 문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br/><br/>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오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니라』(롬 10:17). 따라서 목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해야 할 일은, 먼저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기록된 그대로 믿고, 그의 회중 또한 그가 믿는 성경을 믿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제아무리 뛰어난 사람들이 모였다 해도 그 교회는 마귀의 수중에 떨어지게 되어 있다. 우리가 벌이는 전쟁은 육신으로 치고받는 전쟁이 아니라 영적 전쟁이기 때문에 육신의 힘으로는 마귀의 공격을 당해 낼 수 없다(고후 10:4, 엡 6:12). 마귀를 대적하는 방법에 관해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씀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복종하라.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그가 너희로부터 도망하리라』(약 4:7). 성경을 통해 선포되는 하나님의 음성을 믿고 그대로 실행한 뒤에야 우리는 마귀를 패퇴시킬 수 있는 것이다.<br/><br/>영적 전쟁에 임할 때는 하나님의 전신갑옷으로 무장해야 한다. 이때 무기로서 갖춰야 할 것 역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며, 성경은 이것을 “성령의 칼”이라고 부른다(엡 6:17). 성경이 사람들의 눈에는 별것 아닌 책처럼 보일지라도 마귀에게는 치명적인 무기인 것이다. 그런 까닭에 마귀는 사람들이 성경을 갖지 못하게 하려고 갖은 계략을 꾸민다. 그 가운데는 개역한글판과 같은 변개된 성서들을 확산시키는 것도 있다. 그런 성서들을 가진 자들은 썩은 나무나 힘없는 플라스틱으로 만든 칼로 전쟁에 임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그 개역성경을 사용하는 자들은 좀처럼 사탄의 진영에서 하나님의 진영으로 혼들을 이겨오지 못하고(골 1:13), 사탄의 계략을 분별하지도 못한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늘 패배를 맛볼 수밖에 없기에 “이건 아닌데,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는데”를 되뇌면서 패배감에 젖어 살기 일쑤이다.<br/><br/>이 나라의 개신교 목사들은 변개된 개역성경을 사용하는 것 이상의 문제를 갖고 있다. 바로 자신들이 사용하는 그 개역성경조차 믿고 순종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성서들을 인용할지언정 거기에 쓰인 대로 믿지도, 그대로 실행하지도 않는다. 신약성경이 기록되던 당시의 유대인들이 바로 그런 자들이었다. 『이는 그들이 말만 하고 행하지 않음이라』(마 23:3).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종으로 행세하는 아이러니가 발생하는 원인은 무엇인가? “돈” 때문이다. 그들이 누구의 종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그러면 누구의 종인가? 그들은 마귀에게 정복을 당한 마귀의 종들이다. 교인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는 사랑의교회 옥한흠 목사조차 교회에서 영향력 있는(돈 내는) 교인들 때문에 소신 있는(성경적인) 설교를 하지 못했음을 참회하는 글을 남긴 바 있다.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길 수는 없는 법이다(마 6:24). 성경은 그런 자들의 해악을 지적하면서 『더러운 이익 때문에 가르쳐서는 안 될 것들을 가르쳐서 집들을 온통 뒤집어 놓는 그들의 입을 막아야 될 것』(딛 1:11)이라고 말씀하셨다. <br/><br/>그 마귀의 종들이 “가르쳐서는 안 될 것”을 돈 때문에 가르치는 것에는 무엇이 있는가? 첫째로 “교회”에 대한 오해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영접한 사람은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들어가서 그 몸의 일부가 된다.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한 몸에 지체는 많아도 모두 한 몸인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도 그러하시니라.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한 성령에 의하여 우리 모두가 한 몸 안으로 침례를 받았으며 또 모두가 한 성령 안으로 마시게 되었느니라』(고전 12:12,13). 바로 이 우주적 유기체(organism)인 몸을 성경에서는 “교회”라고 부른다.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 모든 것들을 채우시는 분의 충만이니라』(엡 1:23).<br/><br/>따라서 한 번 구원받은 성도는 구원을 잃어버릴 수 없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몸에서 눈 또는 손과 발이 잘려 나가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장애인이 되실 수는 없지 않겠는가?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그들은 영원히 멸망하지 않을 것이며, 또 아무도 나의 손에서 그들을 빼앗지 못할 것이니라』(요 10:28). 이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에 속하여 구원이 영원히 보장된 지체들이 자신의 구주께 감사하여 경배와 교제와 섬김을 위해 지상에 만든 모임(organization)이 바로 “지역 교회”(local church)인 것이다. 자, 이 진리에 입각해서 볼 때 이 나라의 교회들은 얼마나 엉망인가? 그들의 회중 가운데는 구원받은 사람이 거의 없다. 새로운 사람이 방문해도 구원받았는지를 확인하지도 않고 교적부에 이름 올리기에만 급급하다. 그들은 지역 교회가 구원받은 사람들의 모임이어야 한다는 기본적인 진리도 모르는 것이다.<br/><br/>(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에 속하여 구원이 영원히 보장된 지체들이 자신의 구주께 감사하여 경배와 교제와 섬김을 위해 지상에만든 모임(organization)이 바로 지역 교회(local church)다. 이 진리에 입각해서 볼 때 이 나라의교회들은 얼마나 엉망인가? 그들의 회중 가운데는 구원받은 사람들이 거의 없다. 새로운 사람이 방문해도 구원받았는지를확인하지도 않고 교적부에 이름 올리기에만 급급하다.)<br/><br/>게다가 그들은 구원의 영원한 보장을 믿지도 않는다.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공공연하게 이야기하는 알미니안주의자들뿐만 아니라 칼빈주의자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처음에는 구원의 영원한 보장을 말하다가도 끝에 가서는 “믿는 자는 끝까지 견디게 되어 있다.”라고 결론을 낸다(성도의 견인). 그러면 믿음이 시들해지는 순간이 올 때 “혹시 내가 구원받지 못한 것은 아닐까?” 하면서 괴로워하게 되고, 자신이 지옥에 갈지, 하늘나라에 갈지의 여부는 끝까지 가 봐야 안다고 여기게 된다. 결과적으로 “끝까지 견디는 사람만 구원을 받는다”는 알미니안주의와 대동소이해지는 것이다.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는 어느 쪽이든지 구원을 확신하지 못하게 만드는 교리인 것이다. 이 나라의 주요 교단들은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 중 하나를 채택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교단에 속한 교회들 가운데 실상 교회라고 부를 수 있는 곳은 없다 하겠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구주이신지 아닌지 확신하지도 못하는 자들이 어떻게 주 예수 그리스도께 참된 찬양을 올려드린단 말인가?(엡 1:6,7)<br/><br/>둘째로 “반(反)세대주의적 신학”이 그들이 가르쳐서는 안 됨에도 설파해 온 대표적 가르침이다. 하나님께서는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라고 명령하셨다. 우리는 이 말씀에 근거하여 시대와 대상을 나누어 성경을 공부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고 아담과 노아, 아브라함, 모세, 다윗에게 주셨던 언약과 교회 시대, 환란 시대, 천년왕국 시대, 영원 시대의 교리를 섞어 버리면 성경을 알 수 없게 되거나 성경을 믿지 않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영원히 버리셨고, 구약에서 이스라엘에게 주어졌던 모든 복들은 교회에게로 옮겨졌다.”는 주장(대체 신학)을 펴는 자들, 그리고 예수님께서 육신의 몸을 입고 오신 이후에 살았던 신약 성도들뿐 아니라, 그 이전에 살았던 구약 성도들까지도 모두 십자가를 통해 구원받았다는 주장(언약 신학)을 펴는 자들이 바로 그런 부류이다.<br/><br/>성경은 신명기,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 호세아, 요엘, 아모스, 스카랴 등에 있는 200구절 이상의 말씀들을 통해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해 증거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톨릭 교황들은 이스라엘이 스페인, 포르투갈, 모로코, 이집트, 북아프리카, 프랑스, 독일, 폴란드, 오스트리아 등지에서 박해받은 것을 보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후예들에게 약속하신 것을 취소하시고 그 복들을 교회에모두 주셨다고 주장했다. 성경으로 눈에 보이는 현실을 해석한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현실로 성경을 해석한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그들의 주장을 이렇게 일축한다. 『그렇다면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롬 11:1).<br/><br/>또한 성경은 그 어디에서도 구약 성도들이 앞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구원받았다고 말씀하시지 않는다. 일례로 히브리서 11장은 아벨, 에녹, 노아, 아브라함, 사라, 이삭, 야곱, 요셉, 모세, 라합,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사무엘을 비롯한 믿음의 사람들의 믿음에 대해 말씀하지만, 이들의 믿음은 갈보리 십자가의 대속 사역에 대한 믿음과 거리가 멀다. 『그들은 믿음을 통하여 왕국들을 정복하기도 하고 의를 이루기도 하며, 약속들을 받기도 하고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여자들은 그들의 죽은 자들을 다시 살려 받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고문을 당하면서도 굳이 면하려 하지 않았으니, 이는 그들이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함이라』(히 11:33,35). 그들에게는 하나님을 신뢰하여 이런저런 일을 실행하면 최후의 심판 때 보상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지, “때가 되어” 복음 전파를 통해 나타내신 말씀을 믿은 사람은 없었다(딛 1:3). 즉 십자가 이후에 전파된 “행함이 없어도 불경건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그분을 믿는 사람에게는 그의 믿음이 의로 여겨진다.”(롬 4:5)라는 믿음이 그때에는 명확히 계시되지 않았기에, 그런 믿음을 가질 수조차 없었던 것이다!(갈 3:23)<br/><br/>성경을 나누어 볼 줄 모르는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악한 현 세상으로부터 우리들을 데려가시려고 공중에 오신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그들은 성도들의 믿음의 핵심인 휴거, 대환란, 아마겟돈 전쟁, 그리스도의 재림, 천년왕국을 믿지 않고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 없이 지상에 그들의 왕국을 건설하려고 한다. 그들은 영원 세계의 새 예루살렘에서 펼쳐질 진정한 유토피아에 대해서는 가르치지 않으면서, 인간이 기독교를 통해 얼마나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해 떠든다. 이것이 무천년주의, 후천년주의 종말론자들의 신앙이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흰 말을 타고 재림하시어 2억 명의 UN 군대를 일시에 이스라엘 므깃도에서 살해하실 것이며, 그렇게 되면 그 피가 말고삐 높이까지 닿고, 약 280km에 걸쳐 흐를 것이라고 예언하시지 않던가?(계 9:16; 14:14-20) 그런데도 세상이 점점 더 좋아질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그들이야말로 “무신론자”가 아니겠는가?<br/><br/>지면 관계상 더 길게 쓸 수 없지만, 방언이 성령을 받은 표라고 가르치는 은사주의자들, 마리아가 죄 없이 태어나 죄 없이 살았다는 로마카톨릭, 사도행전 2:38이 구원 계획이라고 하는 그리스도의 교회, 마귀가 천년왕국에서 통치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안식교, 지옥을 무덤이라고 믿는 여호와의 증인들, 교회를 많이 세우는 것이 곧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이라는 개신교회들, 교회가 환란을 통과한다는 현대의 배교자들, 이들은 모두 성경을 믿지 않는 무신론자들이다. 그 수가 얼마나 많은가! 그야말로 우리는, 성경을 믿지 않고 교회만 다니는 종교인으로 살면서도 하나님을 섬기노라고 착각하는 수십억 명의 사람들과 함께 살고 있는 것이다.<br/><br/>그런 자들과 동류에 속하지 않으려면, 사람들의 의견이 아닌 “성경”을 배워야 한다.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하나님께서 한 자 한 자 영감으로 기록하시고 섭리로 보존하신 그 책을 가지고 그 말이 사실인지 확인해 보아야 한다(행 17:11). 그저 많은 사람이 지지하는 의견이라는 이유만으로, 혹은 사람들로부터 대단한 인정을 받는 어떤 자가 이야기했다고 해서 확인해 보지도 않고 덥석 받아들였다가는 낭패를 면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특히 이 마지막 때에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는 “조롱하는 자들”이 활동할 것이라고 성경이 경고하고 있기에(벧후 3:3,4) 우리는 더더욱 깨어 있어야 한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우리 또한 하나님의 약속을 불신하는 죄를 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br/><br/>성경에 많은 약속들이 있지만, 휴거와 재림은 성도의 믿음의 절정이다. 특히 성경의 마지막 책 마지막 장에는 『보라, 내가 속히 오리라』(계 22:7).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계 22:12). 『반드시 내가 속히 오리라.』(계 22:20)라는 약속이 세 번이나 기록되어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와 같은 재림을 확신하지 않은 채 교회만 다니고 있다면 당신은 성경을 믿지 않는 사람으로 남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무신론”이다. 당신은 성경을 믿지 않는 무신론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렇게 가르치는 “무신론자 목사들”로부터도 떠나야 한다. 성경을 믿지 않는 무신론자들에게서 진리에 관해 무엇을 배울 수 있겠는가? BB]]></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Tue, 27 Jan 2026 17:40:11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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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적그리스도”와 “적그리스도들”의 차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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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CDATA[교인이 아닌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완전히 성별된 사람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복음을 믿고 거듭남으로써 세상으로부터 성별해야 한다(요 15:19). 다음으로는 성경을 믿고 가르치며 실행하는 지역 교회를 찾아가 그곳에 소속됨으로써 “두 번째 성별”을 해야 한다. 성경대로 믿고 실행하는 지역 교회를 만나는 일은 어쩌면 마음에 꼭 드는 배우자를 만나는 것보다도 중요한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배우자를 선택하는 데는 신중하면서도 교회를 선택하는 일에는 그렇지 않다. 아무나 가까운 사람을 붙잡고 결혼하자고 하는 사람은 없지만, 아무데나 가까운 교회에 나가는 사람들은 많은 것이다. 그런 교인들의 영원은 그들의 선택만큼이나 가벼운 것이 되고 만다(고후 4:17).<br/><br/>교회를 이토록 가볍게 결정하도록 만든 것이 누구인가? 로마카톨릭이다.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한 이래로, 로마카톨릭은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문자 그대로 “무슨 짓이든” 했다. 무차별적으로 교세를 확장하는 가운데, 예수님께서 누구신지도 모르는 이교도들을 데려와서 물을 뿌려 주고는 교인으로 받아주었다. 그들은 그래서는 안 된다고 저항하는 이들을 추방하거나 죽였고, 나중에는 아예 성경을 읽거나 소지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 자신이 잘못된 영적 상태에 있다는 사실 자체를 알지 못하도록 했다. 그렇게 로마카톨릭에 속한 교회들은 모두 진리가 없는 곳으로 하향평준화했고, 어딜 가나 별 차이가 없어졌기에 교인들은 그저 자기가 속한 “교구”에 있는 교회에 나가면 그만이라고 여기게 되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교회를 가리켜 “창녀 교회”라고 부르셨다(계 17:3-7). 사도 요한도 이 “어머니 교회”라는 자들이 성도들을 죽이는 것을 보고 크게 의아해 하며 놀랐다고 적고 있다(계 17:6).<br/><br/>종교 개혁자들이 성도들에게 성경을 되돌려 줌에 따라 영적 판도가 뒤집히는가 싶었지만, 결국 그 후예들이 로마카톨릭의 누룩을 완전히 제거하는 데 실패하고 성경이 아닌 교단 교리를 따름으로써 결과적으로 개혁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루터교회, 장로교회, 회중교회, 감리교회 등의 개신교회들에서는 오직 성경만을 존중하며 성경으로 로마카톨릭의 비성경적 실행들을 바로잡겠다는 “프로테스탄트 정신”이 점차 사라져 갔고, 교단에 소속된 교회들을 더 많이 늘리겠다는 야심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복음을 전해서 혼들을 주님께 이겨오고, 그들로 하여금 진리를 깨달아 선한 일에 진력하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임의로 정한 예배 절차나 전통을 따르는 “루터교인,” “장로교인,” “회중교인,” “감리교인”을 양산하는 데만 관심을 두었던 것이다. 이에 따라 개신교회들도 로마카톨릭과 똑같은 상태로 전락했다. “제도권” 안에 있는 교회라면 어디든 좋다는 인식을 심어 줌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진리에 무관심해지게 했던 것이다.<br/><br/>하나님의 말씀이 거듭난 성도들의 영적 양식인 것을 모르는 교인은 거의 없다. 그런데도 제도화된 교회들에 출석하는 교인들은 대부분 매일 규칙적으로 성경을 읽지 않는다. 사람은 육신의 생명을 지탱하기 위해 하루 세 끼를 먹는데, 며칠씩 굶는다거나 형식적으로 음식을 먹는다면 정상적으로 생활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거듭난 후 성도가 영적 양식을 안 먹으면 말씀을 이해하고 믿는 강도가 약해져서 육신의 욕구가 영적 능력을 압도한다. 그렇게 되면 죄의 유혹과 세상을 사랑함이 더욱 강해져서 성경도 하나님도 필요 없는 사람으로 변모되어 간다. 그런 일들이 오래 지속되면 자기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했는지조차도 의심하기 시작하는데, 그런다고 구원을 잃어버리는 것은 아니지만, 영적 생활은 완전히 파탄 나고 만다. 『내 백성이 지식의 부족으로 멸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거부하였으므로 나도 또한 너를 거부하리니, 네가 나에게 제사장이 되지 못하리라.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또한 네 자녀를 잊어버리리라』(호 4:6). 교회에 다닌 연수, 학벌, 지위, 경력, 교회에서 맡은 제직, 심지어 목사, 신학교 교수의 경력 등은 신뢰할 것이 못 된다. 이 나라 설교자들 가운데 95% 이상은 성경을 읽지 않거나, 읽는다고 해도 믿지 않거나, 혹 믿는다고 해도 제 입맛에 맞는 부분만 믿는다. 특히 교단의 목사들과 교사들은 더욱 그렇다. 그들은 『하늘과 땅은 없어져도 내 말들은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 24:35)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13구절이나 “없음”이라고 표기된 성서들을 사용하는 자들이다.<br/><br/>변개된 성서들을 옹호하는 자들이 강단을 차지하고 있는 제도화된 교회에 출석하면 적그리스도의 길에 동참하게 된다. 그들 가운데 필자에게 적그리스도는 아직 오지도 않았는데 무슨 말을 하는 것이냐고 따져 묻고 싶은 이가 있을지 모르겠으나, “적그리스도”(the antichrist)와 “적그리스도들”(antichrists)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하기야 “마귀”(the Devil)와 “마귀들”(devils)조차 구별할 줄 모르는데 어떻게 그 둘을 구별할 수 있겠는가?<br/><br/>장차 올 적그리스도는 성경에서 짐승(beast)으로 묘사된다. 다니엘과 요한이 이 짐승에 대해 묘사하는 것을 종합하면(단 7:7,8, 계 13:1,2), 그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이름이 있는 일곱 머리를 가진, 또 열 개의 왕관이 있는 열 뿔을 가진 바다(지중해)에서 올라오는 짐승이며, 표범, 곰, 사자의 모습을 모두 가지고 있는 신비로운 형태로 그려진다. 성경은 이 짐승의 운명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신다. 『네가 본 그 짐승은 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고, 앞으로 끝없이 깊은 구렁으로부터 나와서 멸망으로 들어갈 자라』(계 17:8).<br/><br/>위의 짐승이 “전에 있었다”는 점과 지금은 지상에 없고 “끝없이 깊은 구렁”에 있다는 점을 보면 그 정체를 알아챌 수 있다. 그는 유다 이스카리옷이다. 구원받지 못한 죄인들은 죽으면 “끝없이 깊은 구렁”이 아니라 “지옥”으로 간다. 그러나 유다 이스카리옷은 죽어서 “그 자신의 거처”로 갔다(행 1:25). 이상하지 않은가? 그에게는 지옥이 아니라 자신에게 할당된 특별한 장소가 있었던 것이다! 바로 끝없이 깊은 구렁이다. 게다가 유다 이스카리옷이 “멸망의 아들”이라고 불리는데(요 17:12), 똑같은 표현이 적그리스도의 출현을 말씀하는 구절에서 등장한다(살후 2:3). 적그리스도의 정체는 예수님을 배반하고 자살했던 유다 이스카리옷인 것이다.<br/><br/>(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고 장차 끝없이 깊은 구렁에서 올라올 자는 유다 이스카리옷이다. 유다는 “멸망의 아들”이라고 불리는데(요 17:12), 이와 똑같은 표현이 적그리스도에게도 적용된다(살후 2:3). 적그리스도의 정체는 예수님을 배반하고 자살했던 유다 이스카리옷인 것이다. 초림 때 마귀(a devil, 요 6:70)라고 불렸던 그는 앞으로 대환란 때에 사탄(the Devil)이 육화한 존재로서 등장할 것이다.)<br/><br/>유다 이스카리옷은 신비로운 인물이었다. 그는 인간일 뿐 아니라 마귀(a devil)이기도 했고(요 6:70), 앞으로 펼쳐질 대환란 때는 사탄(the Devil)이 육화한 존재가 될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성육신, 곧 “경견의 신비”를 모방한 것으로(딤전 3:16), “불법의 신비”(살후 2:7)라고 불린다. 사탄은 최초의 반역 이래로 “내가 지극히 높으신 분같이 되리라.”라는 욕망을 단 한순간도 포기한 적이 없다(사 14:14). 그래서 그는 아버지와 말씀(아들)과 성령의 삼위일체(요일 5:7)를 흉내 내려고 한다. 『또 내가 보니, 개구리 같은 더러운 세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는데』(계 16:13). 용(아버지에 대응됨), 짐승(아들에 대응됨), 거짓 선지자(성령에 대응됨), 이것이 사탄의 삼위일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버지 하나님께로부터 권세를 위임받아(마 28:18) 그분의 일을 수행하셨듯이, 짐승이자 적그리스도인 유다 이스카리옷도 사탄으로부터 초자연적인 권세를 위임받아(계 13:2) 사탄의 일을 수행할 것이다. 말하자면 온 세상을 미혹하여 자신을 따르게 하고, 결과적으로 지옥에 떨어지게 하는 일을 수행하는 것이다.<br/><br/>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 즉 구원받은 성도들이 휴거되기까지 유다 이스카리옷은 “그 자신의 거처”에 있을 것이기에, 현재 “적그리스도”(the antichrist)는 이 땅에 없다. 그럼에도 “적그리스도들”(antichrists)이 활동 중인데, 성경은 이들의 실체를 드러낸다. 『어린 자녀들아, 이것이 마지막 때라. 적그리스도가 올 것이라고 너희가 들었던 대로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many antichrists]가 일어났으니, 이로써 우리가 마지막 때인 줄 아느니라. 그들이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만일 그들이 우리에게 속하였더라면 분명히 우리와 계속 함께하였을 것이나 그들이 나감으로 그들 모두가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함을 나타내었느니라...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 외에 누가 거짓말쟁이냐?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자가 곧 적그리스도니라』(요일 2:18,19,22).<br/><br/>사도 요한이 요한계시록을 기록했을 당시(A.D. 96), 말씀 하나님께서 처녀의 태를 통해 육신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다는 진리를 부인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애당초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그분을 대적했던 유대인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요한이 말하는 그들은 구원받은 성도들과 함께하다가 떨어져 나간 자들이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인 행세를 하면서도 경건의 신비를 믿지 않는 자들이 있었던 것이다.<br/><br/>그런데 지금도 그런 자들이 있다. 바로 『하나님께서는 육신으로 나타나셨고』(딤전 3:16)라는 경건의 신비와 관련된 말씀을 &lt;개역한글판&gt;이나 &lt;개역개정판&gt;과 같이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라고 바꿔 버린 학자들, 그리고 그런 성서를 추천하고 사용하는 목사들이 그들이다. “그가 육신으로 나타나셨다”는 것을 믿지 않는 사람을 주변에서 찾아볼 수 있는가? “인간 예수,” “역사적 예수”를 부정하는 사람이 있느냐는 말이다. 그런 내용은 성경을 읽지 않아도 다들 알지 않는가? 성경이 고작 그런 시시한 말씀을 전하려고 기록되었겠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것은 그분을 단순한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육신으로 나타나신 분”으로 믿으라는 것이다. 그래야 자신의 죄 문제를 해결받고 지옥에 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예수님께서 우리와 같은 성정에 속한 인간에 불과하셨다면, 어떻게 우리의 죄들을 용서해 주실 수 있겠는가?(마 9:2-6)<br/><br/>사도행전에는 예수님의 신성을 믿는 믿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잘 보여 주는 대목이 있다. 『그 내시가 빌립에게 대답하여 말하기를 “당신께 부탁하노니 선지자의 이 말은 누구에 관한 것이뇨? 자신이뇨, 아니면 다른 사람이뇨?” 하니 빌립이 입을 열어 이 성경에서 시작하여 그에게 예수를 전하니라. 그리하여 그들이 길을 따라가다가 물이 있는 곳에 이르자 그 내시가 말하기를 “보라, 여기 물이 있도다. 내가 침례를 받는 데 무슨 거침이 있느뇨?”라고 하니 빌립이 말하기를 “만일 당신이 마음을 다하여 믿으면 합당하니라.”고 하니 그가 대답하여 말하기를 “나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믿나이다.”라고 하더라. 그리고 나서 그가 마차를 세우라고 명한 다음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로 내려가서 빌립이 그에게 침례를 주니라』(행 8:34-38).<br/><br/>빌립은 얼마 전까지 이 땅에 계셨던 한 “인간”인 “예수”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나 그가 성경을 통해 그분을 설명했기에, 내시는 그분께서 구약성경에 예언되셨던 메시아이시며,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되었다. 그때 그의 입에서 나온 신앙고백은 『나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믿나이다.』이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표현은(하나님의 아들“들”과는 다르다) 신성을 나타내기에(요 5:18; 10:30-36), 내시의 신앙고백은 100점짜리였다. 그래서 빌립은 그에게 침례를 주는 것을 합당하게 여겼던 것이다. <br/>그런데 &lt;개역한글판&gt;과 &lt;개역개정판&gt; 같은 변개된 성서들에는 그 신앙고백이 있어야 할 37절의 자리가 “없음”으로 되어 있다. 이런 일들이 단순한 실수로부터 비롯되었겠는가?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하려는, 그리고 믿음의 고백이 없어도 물을 뿌려 줄 수 있다고 주장하고자 하는 불경한 손길이 개입한 것이겠는가? 그들의 성서들에는 심지어 삼위일체를 지지하는 가장 확실한 구절인 『이는 하늘에서 증거하시는 이가 세 분이시니,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이시요, 이 세 분은 하나이심이라.』(요일 5:7)라는 말씀도 삭제되고 없다. 그래도 계속 발뺌하려는가? <br/><br/>스스로 알든지 모르든지 사탄의 사주를 받고 있는 적그리스도들은 이미 세상에 존재한다. 그들은 사탄의 종들에 의해 변개된 성서를 사용하며, 사탄에 의해 제도화된 교단들에서 한 자리씩 꿰차고는 장차 올 적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고 있다. 그들의 배후에 있는 사탄은 “이 세상의 신”이기에(고후 4:4), 그들이 세상에서 승승장구하도록 밀어주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쓰레기같이 되기 일쑤지만(고전 4:13), 그들은 사람들로부터 크게 높임을 받는다. 『그들은 세상에 속하였으므로 세상에 관한 말을 하나니, 세상이 그들의 말을 듣느니라.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않느니라. 이로써 우리가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아느니라』(요일 4:5,6).<br/><br/>하나님의 일을 하겠다고 나선 자들이 성경을 존중하지도 않고 구원받지도 않은 대통령과 함께 조찬기도회를 갖는 이유는 무엇인가? 약자를 돕는답시고 권위를 대적하여 폭력시위를 일으키는 데모 세력을 지지하는 이유는 또 무엇인가? 왜 그들은 여야 진영의 정치판에 기웃거리고 “기독교인들”을 규합하여 정치적 영향력을 확보하려고 하는가? 그들의 신이 하나님이 아니라 이 세상의 신인 사탄이라는 것 외에 설명할 방법이 있겠는가? 그런 자들의 교회는 대부분 구원받지 못한 교인들로 구성되어 있기에 휴거되지 못하고 대환란을 통과하게 된다. 그러면 그 강단을 차지한 “적그리스도들”은 “적그리스도”에게 자신들의 교회를 고스란히 바칠 것이다. 그들이 한데 모은 “기독교인들”의 영향력은 고스란히 적그리스도의 권력이 된다. 그 교인들은 적그리스도를 지지하면서 자신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줄 알았다가,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나는 너희를 전혀 알지 못하니, 너희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마 7:23)라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씀을 듣게 될 것이다. 그때에는 후회해 봤자 소용이 없다! 왜냐하면 성경이 『주 예수께서 그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을 불길 가운데서 벌하시리니 이런 자들은 주의 임재와 그의 능력의 영광으로부터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게 될 것이라.』(살후 1:7-9)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아직 기회가 있는 지금, 그런 적그리스도들의 교회로부터 성별해야 하는 것이다! BB]]></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Tue, 23 Dec 2025 10:24:49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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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목사들과 예비 목사들이 알아야 할 일</title>
<link>https://biblemaster.co.kr/bb13/%EB%AA%A9%EC%82%AC%EB%93%A4%EA%B3%BC-%EC%98%88%EB%B9%84-%EB%AA%A9%EC%82%AC%EB%93%A4%EC%9D%B4-%EC%95%8C%EC%95%84%EC%95%BC-%ED%95%A0-%EC%9D%BC/</link>
<description><![CDATA[금년(2011년) 11월 둘째 주 모 일간 경제신문에서, 100세 된 목사가 90분씩 두 번 강연을 했다는 인터뷰 기사를 보았다. 그는 목사로 안수받은 이래 75년 동안이나 사역한 최장수 현역 설교자라 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 신문의 인터뷰 내용에는 1) 성경의 중요성이라든가 2) 복음 전파로 몇 명의 혼들을 그리스도께로 이겨왔다든가 3) 마귀와의 영적 전쟁이 얼마나 중요하다든가 4) 성도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하다든가 5) 무엇이 설교인지에 대한 언급이 빠져 아쉬웠지만, 그래도 필자가 지금까지 보고 들은 이 땅의 사역자들 중에 가장 참신한 인물로 보였다. 그중 한 가지가 “사람이 많다고 교회가 커지는 것이 아니다.”라는 그의 견해였다. 이 땅의 대부분의 사역자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사람들을 많이 모으면 “성공한 목회”라고 하는데, 그 점에 대한 그의 견해는 옳았다. <br/><br/>흔히들 사역자가 인간적 방식, 즉 신학교를 나오고 전도사를 거쳐 강도사 시험에 합격하고 목사 안수를 받으면 목사가 되는 줄로 아는데, 그렇다면 목사가 인간의 방식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인가? 아니다. 그 점이 이 땅의 목사들이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이다. 설교자는 하나님에 의해 빚어진다. 설교자는 하나님께서 부르시고(Divine Calling) 들어 쓰시는 사람이며,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적합하면 그를 사역에 넣어 목자(pastor)로 일하게 하신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보이지 않는 가운데 행해진다. 이 일을 하시는 데는 하나님의 시작하심(Divine Initiative)이 있다. 이 과정을 겪는 목사 개개인에게는 간증이 있게 된다. <br/><br/>하나님께서 그분의 종들을 부르신 경위를 보면 신비스러울 정도이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와 아브라함 같은 족장들을 부르셨고, 큰 일꾼인 모세를 부르셨다. 그뿐 아니라 사무엘, 엘리야, 엘리사,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 같은 선지자들과 베드로, 요한, 바울 같은 신약 사도들, 크리소스톰, 위클리프, 후스, 루터, 낙스, 그리고 필라델피아 교회 시대의 혁혁했던 설교자들도 부르셨다. 그들 모두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종들이었고, 거기에는 하나님의 시작하심이 있었다. <br/><br/>하나님께서 종으로 부르실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인가? “신실함”(faithfulness)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며 하나님의 신비들을 맡은 청지기로 여기게 하라. 청지기에게 요청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신실한 사람으로 발견되는 것이라』(고전 4:1,2). “신실함”이란 성경적 믿음을 변함없이 지속해 나가는 하나님의 자녀의 신앙 자세를 말한다. <br/><br/>“하나님의 부르심”에서 그 다음 단계인 “하나님의 들어 쓰심”까지 얼마만큼의 시간이 필요할까?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10년에서 15년 정도 걸린다. 이 기간 동안에 마귀가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생의 자랑으로 그를 유혹하고 실족시키며, 가치관을 바꾸도록 끈질기게 공격한다. 이 세 가지에서 승리했다 해도, 그 다음에는 마귀가 그를 미혹하여 신실함에서 끌어내리려고 발악한다. 미혹이란 속임수다. 거짓을 진실로 믿게 하려는 속임수인데, 마귀는 그 강력한 미혹으로 하나님의 종들을 공격한다. 『너희가 진리에 순종하지 못하도록 누가 너희를 미혹하더냐?』(갈 3:1) 『미혹되지 말라. 악한 사귐은 좋은 행실을 부패시키느니라』(고전 15:33). 자기가 꽤 괜찮은 하나님의 종이라고 여기면서 여러 가지 걸레 같은 의를 내세우며 미혹하는 영들과 마귀들의 교리를 실행했다면(딤전 4:1), 그는 이미 신실함을 잃은 것이다. <br/><br/>마귀의 미혹은 시험 삼아 한번 유혹해 보고 마는 것이 아니라 강력한 미혹이다. 『그 악한 자가 오는 것은 사탄의 역사에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들과 거짓 이적들과, 멸망하는 자들 안에 있는 모든 불의의 속임수로 오는 것이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아니하여 구원을 받지 못하였기 때문이라. 이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강력한 미혹을 보내시어 거짓말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살후 2:9-12). 사탄은 빌리 그래함 같은 세계적인 복음 전파자를 실족시키는 데 조금도 힘이 들지 않았다. 사탄은 빌리 그래함 같은 자를 높이 올려줬다가 바닥까지 추락시키는 일을 전문적으로 한다. 마귀의 공격이 얼마나 치열한지를 알지 못했다면, 그 사람은 곧 실족할 대기자들의 대열에 들어선 것이다.<br/><br/>사탄, 즉 마귀는 “빛의 천사”라고 불리며(고후 11:14), 또 “울부짖는 사자”(벧전 5:8)와 “공중 권세의 통치자”(엡 2:2), “흑암의 권세”(골 1:13), “세상의 통치자”(요 14:30), “이 세상의 신”(고후 4:4), “큰 용”과 “옛 뱀”(계 12:9)이라고 불린다. 사탄은 “빛의 천사”라고 불리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흉내 내고 있다. 그는 대환란 때 하나님의 그리스도가 아닌 “적그리스도”로서 나타난다. 기독교계에는 독보리와 거짓 교리를 뿌리고 있으며(마 13:25), 그리스도인들을 시험하고(눅 22:31), 사람들의 생애를 파멸시키려 한다(고전 5:5). 마귀는 사도들의 표적을 은사로 지니고 있기에(계 16:13-16) 믿지 않는 유대인들을 위한 표적(고전 14:22)인 방언도 흉내 낼 수 있다(살후 2:9). 마귀는 그의 종인 우상 목자들과 마귀의 교리, 마귀의 성경, 마귀의 추종자, 마귀의 교회들을 통해 그리스도인들을 수세기 동안 속여 왔다. 『이는 우리의 싸움이 혈과 육에 대항하는 것이 아니라 정사들과 권세들과 이 세상 어두움의 주관자들과 높은 곳들에 있는 영적 악에 대항하는 것이기 때문이니라』(엡 6:12). <br/><br/>사람은 마귀의 자녀로 태어나기에 마귀의 지배를 받으며 살아간다. 마귀의 자녀로 태어난 자가 마귀의 지배에서 빠져 나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거듭나면 된다. 첫 번째 출생은 영이 죽어 태어났기에, 설령 목사라 해도 거듭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다. 교인들이 교회를 오래 다녔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복음을 믿고 거듭나야만 성령님에 의해 하나님의 나라로 옮겨지게 된다. 『바람이 임의로 불어서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듯이 성령으로 난 사람은 모두 그와 같으니라』(요 3:8).<br/><br/>그다음으로, “들어 쓰심”에서 “사역에 넣어 주실 때”까지는 얼마나 걸리는가?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시험은 사역과 생활을 통해서 계속된다. 그러므로 자신의 믿음이 확고한가를 스스로 시험하고 입증해 보여야 한다(고후 13:5).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데서 벗어나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 했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종이 될 수 없다(갈 1:10, 살전 2:4). <br/><br/>마귀가 싫어하는 것들을 보면 하나님의 일과 마귀의 일을 확연히 알 수가 있다. 마귀는 “바른 성경”을 혐오한다. 마귀는 “복음 전파”를 증오하고 방해한다. 오늘날 이루어지는 해외 선교 중 98%에 복음 전파나 구령이 없다. 우리나라 교회들의 98%가 복음을 형식적으로 전하거나, 아예 전하지 않는다. <br/>그러나 복음을 열심히 전하는 성도가 불같은 믿음의 시련들로 단련되면(벧전 1:6,7), 주님께서는 주님의 종으로서의 신실함을 일차적으로 인정해 주신다. 그때부터 그에게는 은사들이 불일듯 일어나고(딤후 1:6), 믿음에 있어 다른 사람들의 본이 되며(딤전 4:12), 성경적 교리를 가르치고 실행하는 데 출중하게 된다(딤전 4:16). 정욕에 쓰려고 하지 않았다면, 그의 기도는 조금씩 응답받는다. 그때부터 주님께서는 그에게 주님의 사역들을 하나씩 위탁하시고, 필요한 손길도 붙여 주신다. 그뿐 아니라 주님을 사랑하고 진리의 지식을 깨닫기 원하는 성도들을 모임에 넣어 주시고, 그 사역들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물질을 주님의 방법으로 채워 주신다. 그러면 잃어버린 혼들이 그 사역들을 통해 구원받고, 그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진리의 지식을 가르치면 영적으로 성장하게 되는데, 바로 이것이 신약 교회의 참 모습이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더 이상 나그네도 타국인도 아니요, 오히려 성도들과 같은 시민이며 하나님의 가족이니라.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졌으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귀중한 모퉁잇돌이 되셨고 그분 안에서 건물 전체가 함께 알맞게 맞추어져 주 안에서 거룩한 성전으로 자라 가며 또한 그분 안에서 너희도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의 거처로 함께 지어져 가고 있는 것이니라』(엡 2:19-22).<br/><br/>복음을 열심히 전하는 성도가 불같은 믿음의 시련들로 단련되면, 그는 주님의 종으로서 신실함을 인정받는다. 그때부터 그의 은사들이 불일듯 일어나고, 믿음에 있어서 다른 사람들의 본이 되며, 성경적인 교리를 가르치고 실행하는 데 출중하게 된다. 정욕에 쓰려고 하지 않을 때 기도가 조금씩 응답되는데, 주님께서는 그때부터 그에게 사역들을 하나씩 위탁하시고, 필요한 손길도 붙여 주신다.<br/><br/><br/>적어도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작심한 사람이라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는 알아야 되지 않겠는가? 그분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이 하나님께서는 우주 만물을 말씀으로 엿새 동안에 지으시고 인간도 지으셨을 뿐만 아니라, 모세가 하나님의 이름을 묻는 자들에게 무엇이라고 대답해야 되는가를 여쭈었을 때 『나는 곧 나니라[I AM THAT I AM]』(출 3:14)라고 가르쳐 주신 분이시다.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하나님이 없느니라』(사 44:6). 『나는 주니 그것이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양을 새긴 형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보라, 이전 일들이 이루어졌으며, 내가 새 일들을 선포하나니 그 일들이 시작되기 전에 내가 그 일들을 너희에게 말하노라』(사 42:8,9). <br/><br/>우리 하나님께서는 다른 무능력한 우상들처럼 인간의 도움을 받아 신이 되지 않으셨다. 세상에서 신들이라고 불리는 것들은 모두 다 인간의 손으로 만들었으며, 인간이 바친 재물로 땅을 사고 집을 지어 그 안에 형상들로 갖추어 놓은 것들이다. 그런 신들을 인간이 만들어 놓고는, 인간이 거기에다 절한다. 하지만 인간이 이름 지은 신들이란 것들은 그것을 만든 인간들이 도움을 청할 때 대답할 수도 없고, 도울 수 있는 손길도 없다. 왜 그런가? 그것들은 생명이 없는 신들, 즉 가짜 신들이기 때문이다. 부수면 부서지고, 불로 태우면 타 버리는 신들이다. 그들 안에 진리가 있겠는가? 그것들을 섬기는 인간은 죽지만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런 우상 숭배자들의 혼은 지옥으로 직행하여 영원히 고통당한다. 그 우상들은 인간이 아무리 잘 섬겼다 해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처럼 지옥과 사망의 열쇠들이(계 1:18) 없기에 인간을 결코 구원시켜 줄 수가 없다. <br/><br/>이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자는, 자기가 섬기고자 하는 하나님을 성경에서 찾지 못했으면서도 섬기겠다고 하는 자이다. 성경에 무지한 자는 하나님을 찾을 수도 없고 알 수도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거듭나지 못한 자는 하나님을 알 수가 없고 하나님을 만날 수도 없다. 그런 자는 어떤 성경이 옳은지도 모른다. 성경이 그에게 최종권위가 못 되면 그가 공부하고 실행한 교리 역시 인정받을 수 없다. 그렇기에 진리를 모르는 자가 하는 설교는 모두 거짓말이다. <br/><br/>오늘날 부패한 교회들이 어떻게 생겨났는가 보라! 그 교회들은 부패한 성경에서 비롯된 것이다. 썩어 빠진 이 나라 교회들은 온갖 수작과 미혹으로 끌어모은 사람들에게서 돈을 걷어 건물을 크게 지어 놓고서 그것을 성전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일찍이 사람들의 손으로 만든 성전에는 거하지 않으신다고 가르쳐 주셨다. 즉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분은 사람의 손으로 만든 성전들에는 거하지 아니하시나니』(행 7:48), 『세상과 그 안에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은 하늘과 땅의 주시니 그분은 사람의 손으로 만든 성전들에는 계시지 아니하시며』(행 17:24), 『또한 무슨 필요한 것이 있는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아야 되는 것도 아니시』(행 17:25)라고 말씀하셨다.<br/><br/>이 교회 시대에는 거듭난 성도의 몸이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성전이다(고전 3:16; 6:19,20).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이 점을 몰랐다. 한국 교회의 교인들도 이 점을 모르며, 그런 교회의 목사가 된 자들도 대부분 이 점을 모르면서 목사가 되었고, 또 되려고 한다. <br/>성경은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사람으로 여기되 특별히 말씀과 교리에 수고하는 이들에게 그리할지니라.』(딤전 5:17)라고 가르쳐 주신다. 여기서 장로는 목사이다(벧전 5:1, 요이 1:1, 요삼 1:1). 이 점이 목사들과 예비 목사들이 알아야 할 필수 지식이다. 다시 말해 사역자라면 당연히 회중들에게 말씀과 교리를 가르치고 선한 일에 진력하는 법을 알려 주어, 회중 가운데 그 누구도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해야 한다(딛 3:14). 거듭난 성도들은 구령의 열매와 성령의 열매를 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목사가 성경을 공부하여 성경을 잘 가르칠 수 있어야 함이 마땅한 것이다. 『이런 것들이 너희 안에 있어 풍성해지면 그것들이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에 관한 한 게으르거나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할 것이라』(벧후 1:8). 목사들과 예비 목사들은 자신이 성경을 잘 알고 가르치는 사람이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BB]]></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Tue, 25 Nov 2025 00:59:48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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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침례인 요한이 엘리야인가 아닌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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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CDATA[성경 속의 하나님의 종들 가운데 위대하지 않은 사람이 있는가? 모세, 여호수아, 사무엘, 다윗,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 호세아를 비롯한 구약 선지자들은 어떤가? 또한 신약 사도들, 즉 베드로, 야고보, 요한 등 열두 사도들은 어떠하며, 신약성경을 14권이나 기록한 사도 바울은 어떤가? 주님께서는 그를 통하여 신약 교회를 계시하셨다(엡 3:5-8).<br/><br/>위에 나열했던 위대한 하나님의 종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는데, 그들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의 기록이나 보존에 기여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하나님의 종 엘리야는 그렇지 않았으니, 그의 위대함은 다른 데 있었다. 엘리야에게는 말씀에 관한 임무 대신 다른 것이 맡겨졌는데, 바로 이스라엘의 가장 사악한 왕 중의 하나인 아합과, 바알을 섬겼던 그의 아내 이세벨을 대항하는 것이었다. 그는 칼멜 산에서 바알의 선지자 450명을 살해하고 승리했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기도하면 비를 내리게도 하시고 멈추게도 하시면서 도우셨다.<br/><br/>엘리야는 B.C. 895년의 어느 날 요단 강변에서 엘리사와 선지자들의 아들들, 곧 “신학생” 50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회오리바람을 타고서 하늘로 올라갔다(왕하 2:11). 이런 휴거는 B.C. 2865년경 365세가 된 에녹이 들림받은 후(창 5:24) 두 번째로 일어난 것이었다.<br/><br/>엘리야가 다시 나타난 것은 A.D. 29년 변형산에서였다. 그때 그는 모세와 함께 변형산에 내려와서 예수님과 담소했으며, 베드로, 야고보, 요한이 그 광경을 목격했다. 『그들 앞에서 변형되시니 그의 얼굴은 해처럼 빛나고 그의 옷은 빛처럼 희어지더라. 그런데, 보라, 모세와 엘리야가 그들에게 나타나서 주와 함께 이야기하더라』(마 17:2,3). 이때 주님께서 모세, 엘리야와 함께 나누셨던 대화의 주제는 주님의 죽으심에 관한 것이었다(눅 9:31). 그것은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백성들에게 보여 주시는 최후의 표적이기도 했다(마 12:39,40).<br/><br/>요한계시록 11장에는 “두 증인”이 등장하는데, 이들의 정체는 마태복음 17장의 변형산에서 나타나 주님과 함께 있었던 모세와 엘리야이다.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그러면 그들이 굵은 베옷을 입고 일천이백육십 일을 예언하리라.”고 하더라. 이들은 땅의 하나님 앞에 서 있는 두 올리브 나무이며 두 촛대니라. 누구든지 그들을 해치려고 하면 그들의 입에서 불이 나와 그들의 원수를 삼키리니 누구든지 그들을 해치려고 하면 반드시 이와 같이 죽게 되리라. 이들에게는 하늘을 닫는 권세가 있어서 그들이 예언하는 날 동안 비를 오지 못하게 하고, 물을 피로 변하게 하는 권세도 있어 원하는 때면 언제든지 온갖 재앙으로 땅을 치리로다』(계 11:3-6).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는 3년 6개월 동안 “하늘을 닫는 권세”를(약 5:17), 모세에게는 “물을 피로 변하게 하는 권세”를 주신 적이 있었다는(출 7:20) 점을 떠올려 보라. 두 증인은 바로 모세와 엘리야이다.<br/><br/>변형산에 나타난 모세와 엘리야의 공통점은 둘 다 지상에 몸이 없다는 것이었다. 엘리야는 휴거되었으니 그렇다 하겠지만, 모세의 몸이 그러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이를 위해서는 모세의 묘를 아는 자가 아무도 없었다는 말씀을 보라(신 34:5,6). B.C. 1450년경 모세는 모압 땅에서 죽고 벧프올 맞은편 골짜기에 장사되었다. 그런데 약 2백만 명의 백성들을 이끌었고 여수룬의 왕이라고 불리기도 했던 그의 무덤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이는 모세가 죽었지만 무덤에 머물러 있지 않고 부활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성경은 이때 “모세의 몸”을 두고 천사장 미카엘과 마귀가 논쟁을 벌였다는 추가적인 정보도 제시하고 있다(유 1:9).<br/><br/>성경에 의하면 모세와 엘리야는 대환란 기간에 땅에 내려와 1,260일을 예언한다. 이 기간은 다니엘이 말했던 삼 년 반의 기간(한 때와 두 때와 반 때)과 일치하며(단 7:25), 칠 년(한 주)의 중간에 적그리스도가 돌변할 것이라고 했던 예언에도 부합한다(단 9:27). 요한계시록 11:3-11에는 이 두 선지자가 목 베임을 당한 후 예루살렘 시내에 3일간 방치되었다가 성령님께서 생명을 불어넣으시니 살아나서 승천할 것이라는 상세한 예언이 기록되어 있다. 덧붙이자면 그날은 크리스마스일 것이며(계 11:10), 그때의 예루살렘은 소돔과 이집트라고 불릴 것이다(계 11:8).<br/><br/>엘리야는 성경을 기록하지는 못했지만, 그 대신 구약의 마지막 책 마지막 장을 장식했다. 『보라, 내가 주의 크고 무서운 날이 오기 전에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비들의 마음을 자식들에게로, 자식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들에게로 돌이켜, 내가 와서 땅을 저주로 치지 않게 하리라』(말 4:5,6). 이 말씀은 엘리야가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시기 전에 선두주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는 뜻이며, 누가복음 1:17에서 약간 변형되어 인용된다. 『그는 엘리야의 영과 능력을 가지고 주 앞에 앞서 가서 아비들의 마음을 자식들에게로, 불순종한 자들을 의인들의 지혜로 돌아오게 하며, 주를 위하여 마련해 놓은 백성을 예비시키리라.”고 하더라.』 이 말은 천사 가브리엘이 침례인 요한의 탄생을 예고하면서 요한의 아버지 사카랴에게 전해 준 것이었다. <br/><br/>말라키 4장 말씀보다 한 장 앞에 있는 말라키 3:1에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예비하리라.』라는 말씀이 있다. 마가는 이 말씀을 이사야 40:3의 내용과 함께 인용하여 『선지서들에 기록된 바와 같으니 “보라, 내가 네 면전에 나의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네 앞서 네 길을 예비하리라.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음성이 있어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고 그의 길들을 곧게 하라.’고 하는도다.” 하였더라.』(막 1:2,3)라고 기록했다. 그러고 나서 마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기에 앞서 사역을 시작했던 침례인 요한을 소개했다(막 1:4-9). 개역한글판과 개역개정판에는 이 부분이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로 잘못 번역되어 있다. 주님께서 오시기 전에 보내실 사자에 대한 내용이 이사야서에는 없는데도 그렇게 번역한 것이다. 개역한글판과 개역개정판은 무려 36,000군데가 넘게 틀린 엉터리 성경인데, 이 나라의 목사들은 그런 가짜 성경을 가지고 교인들에게 거짓되이 가르치고 설교하고 있는 것이다.<br/><br/>(주님께서 오시기 전에 보내실 사자에 대한 예언은 말라키 3:1에 나온다. 하지만 개역한글판과 개역개정판은 그 예언이 마치 이사야서에 있는 것처럼 마가복음 1:2을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로 잘못 번역했다. 개역한글판과 개역개정판은 무려 36,000군데가 넘게 틀린 엉터리 성경인데도, 이 나라의 목사들은 그런 것을 가지고 교인들에게 거짓되이 가르치며 설교하고 있다.)<br/><br/>침례인 요한은 예수님보다 6개월 앞서 태어나서, 낙타털로 만든 옷을 입고 가죽 허리띠를 맨 채 꿀과 메뚜기를 먹으며 광야에서 지냈다. 이스라엘의 제사장들과 서기관들, 율법사들, 바리새인들, 사두개인들은 이 수수께끼 같은 인물에 관해 몹시 궁금해했다. 그들은 메시아와, 그 앞서 등장할 엘리야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이 요한에게 정체를 물었을 때 요한은 자신이 엘리야라고 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그리스도도 엘리야도 아니며, 다만 자신은 선지자 이사야가 말한 것처럼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음성이라고 대답했다(요 1:19-23).<br/><br/>요한의 대답과는 다르게 주님께서는 그가 엘리야라고 말씀하셨다. 『주의 제자들이 주께 물어 말씀드리기를 “어찌하여 서기관들은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말하나이까?”라고 하니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말씀하시기를 “과연 엘리야가 먼저 와서 모든 것을 회복할 것이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엘리야가 이미 왔으나 사람들이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그들 마음대로 대하였도다. 이와 같이 인자도 그들에게 고난을 받으리라.”고 하시더라. 그때서야 제자들은 주께서 자기들에게 침례인 요한에 관하여 말씀하신 것임을 깨닫더라』(마 17:10-13). <br/><br/>그렇다면 침례인 요한은 자신의 정체에 대해 거짓말을 한 것이었는가? 그렇지 않다. 주님께서 하신 이 말씀을 들어 보라. 『침례인 요한의 때로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폭력을 겪고, 폭력을 쓰는 자들이 힘으로 그것을 차지하느니라. 모든 선지서와 율법은 요한까지 예언한 것이라. 만일 너희가 그것을 받을 의향만 있다면, 오기로 되어 있는 엘리야가 바로 그 사람이니라』(마 11:12-14). 요한은 엘리야로서 왔으나, 유대인들이 “받을 의향”이 없었기 때문에 문제가 생겼던 것이다.<br/><br/>침례인 요한이 전파했던 메시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지와 같았다. 즉 천국이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라는 것이었다(마 3:2; 4:17).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자기들이 그처럼 고대했던 그 왕국을 가져오실 메시아를 알아보지 못하고 거부했다. 그들은 “그를 십자가에 못박으소서.”라고 소리 질렀고, “그의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리라.”라고까지 말하면서 우격다짐으로 빌라도에게 자신들의 왕이신 예수님을 죽이도록 했다. 그리하여 천국은 도래하지 못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왕위에 앉아 보지도 못한 채 죽으셨다가 살아나셨으며,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승천하셨다. 누가복음에서 주어진 이 예언을 성취하지 못하신 채로 말이다. 『보라, 네가 너의 태 안에 임신하여 한 아들을 낳으리니 그의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는 위대하게 될 것이며, 가장 높으신 분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요, 또 주 하나님께서 그에게 그의 조상 다윗의 보좌를 주실 것이며 그는 야곱의 집안을 영원히 통치할 것이요 그의 왕국은 무궁하리라.”고 하니라』(눅 1:31-33).<br/><br/>그렇게 천국을 가져오시려는 주님의 계획은 일시적이지만 무산되었고,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라는 왕국복음도 사라졌다. 그 대신 교회 시대가 도래하여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이 전파되었던 것이다. 이 시대에 복음을 믿고 구원받은 성도들은 “천국”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간다. 이 나라는 천국처럼 물리적인 왕국이 아니라 영적인 나라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다만 성령 안에서 의와 화평과 기쁨이라』(롬 14:17). 이스라엘이 왕을 거부했기에 이제 물리적인 왕국은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래서 침례인 요한도 엘리야가 될 수 없었다. 그가 수행했던 왕의 선두주자, 곧 엘리야로서의 사역은 불완전하게 끝났기에, 그것에 대한 주님의 약속은 미래를 기약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br/><br/>그러나 천국은 영영 사라져 버린 것이 아니다. 주님께서 다윗의 보좌에 앉아 통치하셔야 한다는 성경의 예언은 반드시 성취되어야 한다. 이스라엘이 왕을 거부함에 따라 잠시 유예되었지만, 주님께서는 반드시 이 땅에 다시 오셔서 왕국을 세우시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일이 있기 직전에, 왕의 선두주자인 엘리야도 올 것이다. 엘리야가 대환란 때 두 증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나타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br/><br/>하나님께서는 구원받지 않은 유대인들을 바보로 만들기 위해 신약성경을 기록하셨으며, 구원받지 않은 이방인들을 바보로 만들기 위해 구약성경을 기록하셨다. 성경이 아무리 위대하다고 해도 그것을 믿고 실행하지 않는 사람은 바보가 된다. 성경을 읽고 인용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가 않다.<br/><br/>유대교에서는 완고하게 신약성경을 거부하면서, 메시아는 아직 오지 않았고 미래에 올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신약성경에 기록된 모든 진리가, 예수님께서 구약의 예언에 꼭 들어맞는 바로 그 메시아이심을 빈틈없이 입증하는데도 말이다. 유대인들은 성경을 상고하지도 믿지도 않으며(요 5:39,46), 오히려 자신들의 전통을 앞세워 폐기하기에 예수님의 명백한 메시아로서의 행적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그들은 예나 지금이나 성경에 없는 것들을 제멋대로 지키고, 반대로 성경에 있는 것은 제대로 행하지 않는다(마 15:1-9). 그러면서도 유대교를 자랑스러워하면서 메시아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들은 왕국에 합당한 영적 상태, 곧 하나님의 나라(마 6:33)를 거부하면서도 지상의 왕국만을 구한다. 그 결과 그들은 적그리스도를 메시아로 착각한 채 따름으로써 큰 화를 당하게 될 것이다. 『내가 나의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나 너희가 나를 영접하지 아니하는도다. 만일 다른 자가 자기 이름으로 오면 너희는 그를 영접하리라』(요 5:43).<br/><br/>반대로 로마카톨릭과 개신교에서는 구약성경을 거부한다. 그들은 선지서들에 기록된 이스라엘 관련 예언들을 결코 문자적으로 믿지 않는다. 아브라함의 “물리적인” 씨에게 주어졌던 왕국에 관한 모든 약속이 아브라함의 “영적” 씨인 자신들에게로 모두 옮겨졌다고 믿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구약성경이 말씀하시는 대환란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초자연적으로 부양하시는 일과 이방 민족들을 멸망시키시는 일, 이스라엘을 영적으로 회복시키시고 그들을 중심으로 물리적인 왕국을 세우시는 일 등을 모두 사실 그대로 믿지 않고 비유적으로 해석해 버린다. 그리고는 자신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면서 교세를 확장해 나가는 것이 곧 이 땅에서 왕국을 확장시키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br/><br/>그러나 “다윗의 보좌,” 곧 유대인들에게 주신 물리적 왕국에 대한 약속은 철회된 적이 없다. 유대인들은 반드시 회복될 것이라고 로마서 11장에서 말씀하시지 않던가? 『그렇다면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 기록된 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와서 야곱에게서 경건치 아니한 것을 제거하리라. 이는 내가 그들의 죄들을 없앨 때 그들에 대한 나의 언약이 이것임이니라.” 함과 같으니라... 이는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가 없으심이니라』(롬 11:1,26,27,29).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주신 약속을 제멋대로 탈취하려는 자들은 거짓말쟁이들이다(계 2:9; 3:9 참조).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모독을 가만두지 않으실 것이다.<br/><br/>초림과 재림은 분명 서로 다른 사건이다. 그러나 성경을 거부하는 유대교, 로마카톨릭, 개신교 등은 이 둘을 구분하지 못하기에 헛소리를 하면서 그들의 무지를 드러낸다. 그런 바보들은 침례인 요한이 엘리야인지 아닌지를 묻는 물음에 제대로 된 답을 할 수도 없다. 그들은 초림 때 물리적 왕국인 천국이 소개되고, 거부되고, 결국 연기되었지만, 마침내 재림 때 세워질 것임에 대해 말씀하시는 성경의 내용을 보고도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를 못한다.<br/><br/>성경은 그것을 올바로 나누지 못하면 바르게 믿을 수가 없는 책이다. 나누지 못하면 마치 여기서는 이 말을, 저기서는 저 말을 하는 모순적인 책처럼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성경을 그저 무슨 교훈을 담고 있는 교양서적처럼 취급하거나, 제멋대로 취사선택해서 믿는다. 하나님께서 그런 자들을 인정하시겠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주제는 왕국이요, 그 주인공은 왕국에서 통치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시다. 따라서 왕국에 관해서도, 예수님의 통치에 관해서도 까막눈인 그들을 하나님께서 들어 쓰실 리가 없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일꾼이 되고 싶은가? 그렇다면 성경을 올바로 나누어 공부하도록 하라!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BB]]></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Thu, 23 Oct 2025 15:52:06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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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대각성과 부흥운동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title>
<link>https://biblemaster.co.kr/bb13/%EB%8C%80%EA%B0%81%EC%84%B1%EA%B3%BC-%EB%B6%80%ED%9D%A5%EC%9A%B4%EB%8F%99%EC%9D%B4-%EC%9D%BC%EC%96%B4%EB%82%98%EC%A7%80-%EC%95%8A%EB%8A%94-%EC%9D%B4%EC%9C%A0/</link>
<description><![CDATA[모든 영적인 일들은 성령님께서 주도하신다. 그렇다면 그 일들이 성령님에 의해서 주관되고 인도되는지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어떤 일이 성경대로 행해지고 이루어진다면 그 일은 성령님께서 주도하시는 일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말하면서 성경에 근거하지 않았거나, 성경적 교리가 아닌 것을 하나님의 일로 둔갑시키는 것은 성령이 아니라 마귀의 사주를 받은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악령의 능력을 성령의 능력으로 오해한 자들이 나와서 자기들만이 특별한 은사를 받았다고 자랑하고, 사도행전의 이적들을 흉내 내며 방언하고, 병 고치고 귀신 쫓는다고 속여 기독교 신앙을 부패시키고 있다. 이들은 막 싹트려고 하는 어린 믿음들까지도 깡그리 황폐화시켜 버리면서 그들에게서 돈을 갈취하여 교회 건물들을 크게 짓고 그것을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복이라고 사기 친다. 더욱이 어설픈 교단 교회들이 분별없이 그런 추악한 일들을 부러워하며 그들을 흉내 내려고 애썼고, 지금도 그 기운과 풍조가 소위 교단 교회라는 곳들에 팽배해 있다. <br/><br/>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가? 성경에 무지하여 사도행전을 교리서로 여겼기 때문이다. 사도행전은 글자 그대로 사도들의 행적이었을 뿐이요, 율법 시대와 교회 시대 사이를 잇는 전환기적인 책이지 결코 신약 교회의 교리서가 아니다. 신약 교회의 교리는 사도 바울에 의해 정립되었다. 『이런 까닭에 나 바울은 너희 이방인들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죄수가 되었으니, 과연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경륜을 너희가 들었을진대 이것은 그분이 계시로 내게 신비를 알게 하신 것이며 (내가 전에 간략하게 쓴 것과 같으니 너희가 읽을 때 거기서 그리스도의 신비 안에 있는 나의 지식을 이해하게 되리라.) 그것이 성령으로 그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지금 계시된 것처럼 다른 시대들에서는 사람들의 아들들에게 알려지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을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공동 상속자가 되고 한 몸이 되며 그의 약속에 동참자가 된다는 것이니라』(엡 3:1-6). 사도 바울이 쓴 서신들은 로마서,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전후서, 디모데전후서, 디도서, 빌레몬서, 히브리서이다. 이 중 히브리서를 제외한 13개의 서신서는 신약 교회의 교리서지만, 히브리서는 교회 시대와 환란 시대 사이를 잇는 전환기적인 책이다. <br/><br/>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사람을 불러서 들어 쓰시지 않는다. 이 점은 2천 년 교회사에서 드러난 사실이다. 왜냐하면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성령의 인도를 받지 못하여 하나님의 일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육신의 일들을 성령의 역사라며 거짓말하는 자들은 모두 마귀의 하수인들인 것을 알아야 한다. 또한 거듭났다 해도 자신의 몸을 주님께 드리지(롬 12:1,2) 않았다면, 즉 헌신하지 않았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도 들어 쓰실 수가 없다.<br/><br/>그러므로 하나님의 사역들을 감당하기 원하는 사람은 자기의 몸, 의지, 소유, 삶의 우선권을 주님께 내드리고, 성령님께서 주관하시게 해야 한다. 이런저런 것들에 실패한 백수가 되어 어떤 교회에 얼쩡거리다가 목사가 된 자들이 있는데, 그들이 한 가지 모르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실업자를 쓰시지 않는다”는 원칙이다. 우리나라도 장로교 합동에서 육신적 싸움으로 쪼개진 교단들 때문에 목사 안수가 싸구려 경매같이 되어 대거 목사라 불리는 자들이 나왔듯이, 미국, 캐나다, 브라질, 필리핀 등의 한인 교회들에서도 무자격자들이 목사와 선교사 행세를 하며 목회와 선교를 생계의 방편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마귀의 하수인들이다. 하나님께서 부르시지도 않고 들어 쓰시지도 않는 사람들이 영적인 일들을 하려 하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는가? 누군가는 그것을 기관차를 자기 힘으로 미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기관차를 가게 하려면 기관사가 레버를 전진으로 놓으면 되는데, 내려서 민다고 생각해 보라. 위로부터 오는 지혜가 없는 자들, 하나님께서 종으로 부르시지 않은 자들이 먹고살려고 그런 짓을 하면서 자신을 하나님의 종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br/><br/>그러나 거듭난 사람 안에는 성령님께서 내주하시기 때문에, 그가 주님께 헌신하고 성령님께 뜻을 구하고 순종하며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게 해 주시라고 기도하면 주님께서 능력을 주신다. 『내게 능력 주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 말하자면 성도가 성령으로 충만해야만 세상을 향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된다(행 1:8). 성령으로 충만한 복음 전파자들이나 설교자들은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지 방언 같은 것을 말하지 않았다. 방언하는 자들이여! 그런 방언으로 복음을 전해 보라. 그것을 듣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자들이 있겠는가?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고 방언이나 하는 자들이 승리의 삶을 살 수 있겠는가? 성령님께서 성도들 안에 어떻게 역사하시는가 보라. 『그러나 진리의 영이신 그분이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로 인도하시리라. 그분은 자신에 관하여 말씀하지 아니하시며, 무엇이나 들은 것을 말씀하실 것이요, 또 너희에게 다가올 일들을 알려 주시리라. 그분이 나를 영화롭게 하시리니, 이는 그분이 내 것을 받아서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임이라』(요 16:13,14). 지난날 성령님께서 자기 사람들을 들어 쓰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셨을 때 대각성 운동이 일어났고 복음의 불길이 타올랐다.<br/><br/>그렇다면 지금 이 시대에는 왜 필라델피아 교회 시대와 같은 대각성 운동과 복음의 불길이 일어나지 않는 것일까? 주님께서 쉬고 계시는가, 아니면 고개를 돌리고 계시는가? 그것도 아니면 아예 무관심하신가? 결코 그러실 리가 없다. 지금 대각성 운동이 일어나지 않는 까닭은 교회의 부패가 극에 달했고, 재물을 신으로 삼은 세상에서의 술, 음행, 마약, 거짓말, 도둑질, 도덕적 타락 등이 그 끝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또 이것을 알라. 마지막 날들에 아주 어려운 때가 오리라.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고 교만하며, 하나님을 모독하고 부모에게 불순종하며, 감사하지 아니하고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고, 화해하지 아니하며, 모함하고 절제하지 못하며, 사납고,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반하고 분별이 없으며, 자만하고 쾌락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리니, 이런 자들에게서 돌아서라』(딤후 3:1-5). 지금 이 시대는 마치 중한 병에 걸려서 숨을 헐떡거리는 환자가 그의 눈동자에 초점을 잃은 채 삶의 마지막 몇 초를 남겨 두고 있는 것과 같다. 세상이 망해 가고 있는 것이다.<br/><br/>대각성 운동은 1727년에 보헤미아(지금의 체코)에서 시작되었다. 로마카톨릭의 무자비한 박해와 살인 행위는 한때 개신교도들로 하여금 자위책으로 무장을 하도록 만들었다. 실제로 로마카톨릭은 보헤미아의 존 후스(John Huss, 1369-1415)가 존 위클리프의 책들을 모국어로 번역하여 배포했다고 하여 그를 이단으로 분류했었는데, 후스는 그런 것에 개의치 않고 설교하고 책을 썼다. 그는 성당이 아닌 곳에서도 언제든지 설교했으며, 교황의 무오성을 부인했고, 참 교회는 베드로가 아니라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 위에 세워졌다고 설교했다(고전 10:4, 벧전 2:8, 신 32:4). 한때 보헤미아의 전 국민이 이와 같은 후스를 따랐으며, 로마카톨릭은 결국 그를 1415년에 화형에 처했다. <br/><br/>복음과 진리의 씨앗은 생명을 낳기에 발아의 시기를 기다리고 있다. 보헤미아에서 존 후스의 영향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카톨릭의 탄압을 피해 1722년 독일 드레스덴의 진젠도르프 백작의 영지로 이주했는데, 그 수가 백여 명에 이르렀다. 그들이 바로 “모라비안”(Moravian)이라고 불리는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이다. 생명의 씨앗은 결코 죽은 채로 있지 않는다. 콘크리트의 갈라진 틈에서 비집고 나온 새싹들을 보라. 소금 사막에 자라난 꽃나무를 보라. 복음의 불길을 안은 가슴이 뜨거워서 입 밖으로 나오는 것이 바로 복음 전파이다. 이 일은 결코 죽은 보수주의자들, 배교한 근본주의자들, 거짓 복음주의자들에게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오직 바른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듣고, 읽고, 믿고, 공부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서만 드러나는 열매이다.<br/><br/>좋은 설교를 통해 영적 양식을 먹고 복음 전파의 중요성을 알게 된 성도들은 그 말씀으로 힘을 얻어 성경과 복음 전도지를 가지고 세상으로 나아간다. 사람이 죽는 것은 아담에게서 전가된 죄 때문이기에,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영접하면 죄 사함을 받고 영생을 얻는다고 전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자기 교회로 사람들을 불러들이려는 얄팍한 야바위 짓과 판이하게 다른 영적 충동이다. 『그러므로 내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 곧 그가 나타나실 때와 그의 왕국에서 산 자들과 죽은 자들을 심판하실 분 앞에서 네게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대비하라. 모든 오래 참음과 교리로 견책하고 책망하며 권고하라.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이 건전한 교리를 견디지 못하고, 그들 자신의 정욕에 따라 가려운 귀를 즐겁게 해줄 선생들을 많이 두리라. 또한 그들이 그들의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꾸며 낸 이야기로 돌리리라.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정신을 차리고, 고난을 견디며, 전도자의 일을 하고 네 직무를 완수하라』(딤후 4:1-5).<br/><br/>설교자의 임무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들의 삶을 진리를 위해 쓰도록 권면하는 것이다. 많은 교인들이 주일에 교회에 출석하고, 헌금하고, 십일조를 내는 것으로 자기의 의무를 다했다고 여기는데, 이 점이 바로 교회를 죽이는 요인이다. 주님께서는 그런 종교적 의식이 아닌 “헌신”을 요구하신다.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신 것은 산 자들이 이제부터는 더 이상 자신들을 위하여 살지 않고 자기들을 위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그분을 위하여 살게 하려는 것이라』(고후 5:15).<br/><br/>순교자들이 가장 많았던 영국, 보헤미아, 스위스 등을 포함하여 현재 유럽 전역은 기독교 신앙이 장사된 지 오래되었다. 성적 타락을 넘어 동성연애자들의 천국이 되었으며, 일부는 이슬람 세력들의 근거지가 되었다. 그런 데서 어떻게 대각성이나 부흥의 불쏘시개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반면에 진젠도르프 백작 영지의 모라비안들은 그 수가 300명으로 늘었고, 복음 전파에서 소외된 나라들에 선교사를 파송하는 운동을 벌여서 영국, 독일, 미국을 넘어 그린란드, 라플란드, 러시아, 그루지아, 남미의 수리남, 남아프리카, 알제리와 세인트 토마스 섬까지 선교사를 보냈다. 이것은 성령님께서 그들 안에 깊숙이 개입하셨다는 증거이다. 그뿐 아니라 요한 웨슬리, 조지 휫필드, 조나단 에드워즈, 윌리엄 캐리, 뉴저지에 화란 개혁교회를 세운 목사 프릴링하이젠(Frelinghuysen), 펜실베이니아의 장로교 목사 길버트 테넌트, 영국의 복음 전파자 클래팜(Clapham), 스웨덴의 복음 전파자 샤르타우(Schartau) 교수, 찰스 피니, 셰이커스(Shakers), 플리머스 형제단의 존 넬슨 다비, D.L. 무디, 윌리엄 브라이언트(William Bryant) 등은 대서양을 넘나들며 미국과 영국을 복음으로 휘저어 놓았고, 수백만 명이 구원을 받았다. 웨슬리는 40만km 이상을 말을 타고 다니며 설교했고, 웨슬리와 휫필드의 사역은 감옥에 갇힌 것을 제외하고는 사도 바울의 사역에 필적할 정도였다. 그들이 설교하는 곳에서는 폭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웨슬리는 50년간 일주일에 20번 이상 설교했으며, 18,000명 이상의 사람들에게 20,000번의 설교를 했다. 휫필드는 목에서 피가 나올 때까지 설교했으며, 더블린에서는 카톨릭교도들의 돌에 맞아 몸에서 피가 흐르고 거의 실신하기까지 했다. 그들은 &lt;킹제임스성경&gt;으로 설교했으며, 두 사람 모두 거리설교자요 순회설교자였다. <br/><br/>웨슬리를 뒤이어 샘 존스, 찰스 피니, 피터 카트라이트, 채프만, 밥 존스 시니어 등 필라델피아 교회 시대의 위대한 설교자들이 나왔다. 웨슬리의 청중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는 구원받은 죄인들이었던 반면, 현대의 교인들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믿지 않는 교인들에 불과하다. 오늘날 이 나라의 강단에 선 설교자들은 자신도 믿지 않는 성경을 가지고서, 역시나 성경을 믿지 않는 회중에게 설교 아닌 설교를 하기에, 거기서 부흥은커녕 숨소리 같은 반응도 나오지 않는 것이다.<br/><br/>스코틀랜드의 설교자 머레이 맥체인(Murray McCheyne) 목사는 이런 말을 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장면은 거듭나지 않은 설교자가 죽어 있는 죄인들에게 살아 계신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을 설교하는 것이다.” 이것은 너무나 정확한 표현이다. 죽은 시체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또 구원을 받아야 믿음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 수 있는데, 믿음 없는 사람들이 교회에 앉아 복 받기만을 바라고 있기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br/><br/>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부흥이 없는 더 큰 원인은 교회가 세상 풍조를 따르는 데 있다. 교회에 사람들이 모이지 않아서가 아니라, 믿음 없는 쭉정이들이 모여 세상 방식으로 믿음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오해한 데 있는 것이다. 현대의 교인들은 TV 드라마, 코미디, 폭력, 음란, 범죄 영화, 인터넷을 통한 불륜, 동성연애, 혼전 성교 등이 그들 안에 보편화되어 성경이 필요 없는 교인들로 변모되어 있다. 연예인이나 운동선수들이 받는 대우가 일류 기업 근로자들의 수입을 능가하기 때문에, 그러한 탐욕이 교회 안으로 들어와 진리에 대한 욕구를 무력화시켰다. 그뿐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가정에서조차 기도의 제단이 사라졌고, 어린아이들은 성경을 배울 기회를 놓치고 세상 학교 등에서 세상 풍조에 길들여져 진리와 무관한 이야기들에 익숙해져 있는 것이다. <br/><br/>재력이 있고, 군대가 강하고, 땅이 넓고, 과학자가 많으면 이 세상이 건재하게 되는가? 그러한 노력으로는 세상이 건재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이 세상의 형체가 사라져 가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이는 이 세상의 형체가 사라져 감이라』(고전 7:31). 왜 인간이 하나님을 찾아 만나야 하고, 또 그분을 믿어야 하는가? 종교적 갈등과 대결, 전쟁, 자연재해, 기근, 치명적 질병, 범죄, 죽음 등 인간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하나님을 찾지 않고 믿지 않는 악인과 민족들은 지옥에 던져지게 됨을 알아야 한다(시 9:17). <br/><br/>바른 성경을 외면하고 복음과 진리의 지식을 무시하는 교회는 교회가 아니다. 그런 교회들은 아무리 많다 해도 하나님과 무관하다. 자신의 구원은 자신이 선택해야 한다. 이 점을 이루지 못했다면 인생을 헛되이 산 것이다. 『땅 끝들에 있는 모든 자들아, 나를 쳐다보고 구원을 받으라. 이는 내가 하나님이요, 다른 이가 없음이니라』(사 45:22). 이것은 십자가에서 당신의 구원을 위해 피흘려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권면이다. 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역사의 주인공이시자 달력의 주인공이심을 잊지 말아야 한다. BB]]></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Wed, 24 Sep 2025 11:36:18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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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왜 유대인들은 신약성경을 거부하는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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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CDATA[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배격하는 이유는 신약성경을 배격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만을 “선택받은 민족”으로 알고 살아 왔는데, 신약성경은 그들의 위상과 가치관을 송두리째 와해시킨다. 쉽게 이야기하면 신약성경은 유대인들을 식상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구약의 역사와 그들의 전통과 교리까지도 흔들어 버리는 것이다. 그들은 모세의 율법을 지킴으로써 인간이 의롭게 될 수 있다고 배웠는데, 이 율법은 십계명(출 20:1-26)과 유대인들의 생활을 규제하는 명령들(출 21:1-23:33)과 이스라엘의 종교적인 삶을 규제하는 율례들(출 24:12)로 되어 있기에, 출애굽 이래로 이 세 가지를 잘 준수만 하면 의롭다고 여기며 살아 왔던 것이다. <br/><br/>하지만 신약성경은 『하나님 앞에서 율법으로 의롭게 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하였음이니라.』(갈 3:11)라고 가르친다. 이것은 『너희는 나의 명령들을 행하고 나의 율례들을 지켜 그대로 행하라. 나는 주 너희 하나님이니라. 그러므로 너희는 나의 규례들과 나의 명령들을 지키라. 어떤 사람이 그것들을 행하면 그는 그것들 안에서 살리라. 나는 주니라.』(레 18:4,5)라는 구약의 말씀과 상충하기에 유대인들은 신약성경을 거부한다. 이뿐 아니라 이스라엘의 계명과 명령과 율례를 폄하하는 것처럼 보이는 신약의 구절들이 한두 곳이 아니다. 『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릴 수 없나니, 만일 의가 율법으로 인하여 온 것이라면 그리스도께서는 헛되이 죽으신 것이라』(갈 2:21).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니라. 그러나 “그것들을 행하는 사람은 그것들 안에서 살리라.”고 하였느니라』(갈 3:12).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로마서 1:17, 갈라디아서 3:11, 히브리서 10:38에서 세 번이나 말씀하고 구약의 하박국 2:4에도 나오지만, 거기서는 “의인은 자기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되어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이전에는 율법을 지킨 사람만이 자기 믿음으로 살 수 있었지만, 십자가 이후에는 “죄들을 사함받은 것으로 인하여”(마 26:28, 막 1:4, 눅 1:77; 3:3; 24:47, 행 2:38)라는 말씀을 근거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사람이 의롭게 된다. <br/><br/>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하나님의 피를 흘려 주셔야만 속죄가 완성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를 위한 화목제물이 되셨다. 『그는 우리의 죄들을 위한 화목제물이시니, 우리뿐만 아니라 온 세상의 죄들을 위한 것이니라』(요일 2:2).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다가올 선한 것들의 대제사장으로 오셔서,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러한 건물이 아닌 더 크고 더 온전한 성막을 통하여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신의 피로 한 번 성소에 들어가셔서 우리를 위하여 영원한 구속을 이루셨느니라』(히 9:11,12). 『그때에 말씀하시기를 “오 하나님이여, 보소서, 주의 뜻을 행하려고 내가 왔나이다.” 하셨으니 첫 번째 것을 폐하심은 두 번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라. 그 뜻에 따라 한 번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드리심으로 우리가 거룩하게 된 것이라.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똑같은 제사를 자주 드리지만 이것으로써는 결코 죄들을 제거할 수 없으나 이분은 한 번의 속죄제를 영원히 드린 후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으셔서 그후로는 그의 원수들을 자기 발판으로 삼으실 때까지 기다리시느니라』(히 10:9-13). <br/><br/>인류를 위한 구원 계획은 유대인에게서 나왔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유대인이셨고,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독특한 보물이라고 불렸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그분의 왕국인 천국(Kingdom of Heaven)을 세우시려고 유대인들을 왕국 백성으로 부르셨으며, 그들을 부르신 그 목적은 실현되어도 그만 안 되어도 그만이 아닌, 반드시 실현되어야 할 일이었다. 그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하고 있었을 때 그들을 이집트에서 데리고 나오시면서 뭐라고 말씀하셨는가? 『‘너희는 내가 이집트인들에게 어떻게 하였으며, 내가 어떻게 독수리들의 날개들로 너희를 실어 내게로 데려왔는지를 보았느니라. 그러므로 이제 만일 너희가 참으로 내 음성에 복종하고 나의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백성보다 나에게 독특한 보물이 되리니, 이는 온 땅이 내 것임이라. 너희는 나에게 제사장들의 왕국이 되며 거룩한 민족이 되리라.’ 이것이 네가 이스라엘의 자손에게 고할 말이니라』(출 19:4-6). <br/><br/>유대인들이 이 땅에 천국을 수립하려고 초림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선언을 믿지 않고 거부함으로써 그분을 십자가에 처형했을 때 그들은 저주를 받아 버림받게 되었다. 스카랴 11:10-14에는 그때 주님을 은 삼십 개로 팔았던 일과 그 일의 결과가 예언되어 있다. 『내가 내 막대기, 곧 아름다움을 들고 둘로 꺾었으니, 이는 내가 온 백성과 더불어 세웠던 내 언약을 폐기하려 함이라. 그 날에 그것이 폐기되었으므로 양떼 중에 나를 열망하던 불쌍한 자들은 그것이 주의 말씀이었음을 알았느니라. 내가 그들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좋게 생각한다면 내 값을 내게 쳐주고, 그렇지 아니하거든 그만두라.” 하였더니, 그들이 내 값으로 은 삼십 개를 달았느니라.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기를 “그것을 토기장이에게 던지라. 그들이 나를 매긴 좋은 값이라.” 하시기에 내가 은 삼십 개를 취하여 주의 집에 있는 토기장이에게 던졌더라. 그리고 나서 내가 나의 다른 막대기, 곧 결합을 둘로 꺾었으니, 이는 내가 유다와 이스라엘 사이의 형제애를 끊으려 함이었더라.』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과 맺으셨던 언약(『아름다움』)을 폐기하셨고, 유다와 이스라엘 사이의 형제애(『결합』) 또한 끊어 버리셨다. 예수 그리스도를 은 삼십 개에 팔아서 십자가에 처형해 버린 이스라엘의 현 상태가 바로 그것이다. <br/><br/>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이 변질되어 등을 돌릴 것을 모르셨는가? 모르시면서 성경을 기록하셨겠는가?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위반함으로써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로 인하여 이방인들 가운데서 모독을 당하는도다』(롬 2:23,24).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체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요, 할례는 마음의 할례이니 영에 있고 법문에 있지 않은 것이라. 그들의 찬사는 사람들에게서가 아니라 하나님에게서니라』(롬 2:28,29). <br/><br/>유대인들이 하나님께 등을 돌렸을 때 주님께서도 등을 돌려 그분의 의를 가지고 이방인들에게로 향하셨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는 그분 앞에 의롭게 될 육체가 없나니 이는 율법을 통해서는 죄의 깨달음이 있음이니라. 그러나 이제는 율법 없이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서들을 통해 증거된 것이니라. 곧 하나님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한 것으로 모든 자와 믿는 모든 자에게 미치나니 차별이 없느니라』(롬 3:20-22).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이 율법의 행위들이 없이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단정하노라. 하나님은 유대인들만의 하나님이시고 이방인들의 하나님은 아니시냐? 물론 이방인들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 정녕 할례자도 믿음으로 인하여 의롭게 하고 무할례자도 믿음으로 의롭게 하실 분은 하나님 한 분이시니라』(롬 3:28-30).<br/><br/>유대인들이 그와 같은 말씀을 읽었다면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라 신약성경을 믿기는커녕 짓밟고, 불태우며,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미친 듯이 날뛰었을 것이다. 그런 유대인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율법의 완전 무효화나 폐기를 이루신 것이 아니라 한 가닥 위로를 주셨다. 『그렇다면 우리가 믿음으로 율법을 폐하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오히려 우리가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롬 3:31). <br/><br/>유대인은 육체로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지만, 이방인인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완성하신 구원 계획을 믿음으로써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엡 3:5,6). 그러므로 유대인들에게는 믿음이 필요 없었지만 이방인이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믿음이 필요불가결한 요소가 되었다. 구약성경에는 “믿음”이란 단어가 딱 두 번 나오는데(신 32:20, 합 2:4), 이때도 믿음 없는 유대인들을 비뚤어진 세대라고 꾸짖었으며, 하박국 2:4에서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신약적 요구보다는 “자기의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하셨다. 신약성경에는 “믿음”이란 단어가 248회나 나온다. 반면 구약 시대에는 계명과 율법과 규례를 신뢰하면 되었다. <br/><br/>의의 법을 따르려 했던 유대인들이 의의 법에 이르지 못한 것은, 그들이 믿음으로 의를 구하지 아니하고 율법의 행위로 되는 것처럼 구했기 때문이다(롬 9:31,32).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와 같은 유대인들에게 걸려 넘어지게 하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 되었지만,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께서는 오히려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셨다(시 118:22, 사 28:16). 그뿐 아니라 누구든지 믿는 자는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부끄럼을 당하지 않게 된다(롬 9:32,33). 이와 같이 새로운 경륜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다룸에 있어서 차이가 없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누구나 『그를 창조하신 분의 형상을 따라 지식 안에서 새롭게 된 새 사람을 입』게 된다(골 3:10). 이 은혜는 일찍이 침례인 요한이 증거했었다. 『율법은 모세를 통하여 받았지만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온 것이라』(요 1:17).<br/><br/>유대인들이 자신들의 구약적 위상만을 자랑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기를 거부한다면 그들은 지옥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굳은 목을 가지고 선지자를 알아보지 못하고 메시아를 메시아로, 왕을 왕으로 알아보지 못한 결과는 참혹하다. 신약성경을 거부하면 성경 전체를 믿지 못하는 우를 범하게 되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들은 신구약성경을 거부하고 탈무드를 최종권위로 삼고 있다. 반면에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출애굽기 19:5,6에서 약속하신 “독특한 백성”이라는 특권을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사함받은 신약 성도들에게 부여하셨다. 『그러나 너희는 선택받은 세대요 왕 같은 제사장이며, 거룩한 민족이요, 독특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움에서 불러내어 그의 놀라운 빛으로 들어가게 하신 분의 덕을 너희로 선포하게 하려는 것이니라.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었으나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며, 전에는 자비를 받지 못했으나 이제는 자비를 받았느니라』(벧전 2:9,10).<br/><br/>이 나라의 교회들은 성경을 나누어서 공부하지(딤후 2:15) 않기에 세대적 진리를 거부한다. 세대적 진리를 거부하면 성경에 대해 깜깜하게 된다. 그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은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하셨던 약속을 취소하고 그것을 교회에게 주셨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교회에게 주셨는가? 에큐메니컬 교회에게? 그런 말은 성경을 공부하지 않음으로 인해 생긴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 연유로 그들은 성경을 올바로 해석할 수 없게 되자 영적으로 해석하거나 은유적으로 해석해 버린다. 이렇게 해석하면 틀린 해석일 뿐만 아니라 십인십색, 백인백색이 되어 누가 옳게 해석하는지 모르게 된다. 그러면 사람들을 많이 모은 교회의 목사가 가르치는 것이 우세하다는 착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br/><br/>그런 일이 성경 해석에 가당하겠는가! 그들은 성경을 공부하지도 않으면서 영적으로, 은유적으로 해석하기에 해석 못할 구절이 없다. 세례로 죄를 씻는다고도 하고, 모태 신앙을 가르치기도 하며, 그리스도의 천 년 통치를 믿지도 않고, 이 땅에 천 년간 평화가 유지된 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것이라는 잠꼬대 같은 소리를 하기도 한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뿐만 아니라, 누룩을 복음이라고까지 가르친다. 그들은 성경의 구절들이 상호 연계됨으로써 깨닫게 되는 교리들을 알지 못하기에, 성경 어디서든지 한 구절, 심지어 한 단어를 가져와서는 자신들이 하려고 하는 일에 적용하여 부적처럼 써먹고 있다. 이와 같이 한심한 작태는 유대인들이 신약성경을 거부함으로써 무지해져 버린 것과 같은데, 소위 목사라는 자들과 그들의 추종자인 교인들은 성경과 진리의 지식이 필요 없는 사람들로 전락해 버렸다. <br/><br/>그렇기에 우리는 거듭나지도 않은 사람들이 교회에 다니고, 그것을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이라고 이름 붙이고 있는 한심한 광경을 목도하고 있는 것이다. 『내 백성이 지식의 부족으로 멸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거부하였으므로 나도 또한 너를 거부하리니, 네가 나에게 제사장이 되지 못하리라.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또한 네 자녀를 잊어버리리라』(호 4:6). 분명히 말하지만, 이와 같은 자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지 못한다. 성경을 무시하고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지옥의 심판만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BB]]></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Mon, 25 Aug 2025 17:18:35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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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판단받으실 때 이기려 하심이라</title>
<link>https://biblemaster.co.kr/bb13/%ED%8C%90%EB%8B%A8%EB%B0%9B%EC%9C%BC%EC%8B%A4-%EB%95%8C-%EC%9D%B4%EA%B8%B0%EB%A0%A4-%ED%95%98%EC%8B%AC%EC%9D%B4%EB%9D%BC/</link>
<description><![CDATA[지난 2011년 3월 11일(금요일) 오후 2시 40분에 규모 8.8의 강진이 일본 동북 해안에서 발생하자 뒤따라 10m 높이의 쓰나미가 휩쓸면서 한순간에 댐이 무너지고, 열차와 선박들과 자동차들이 마치 블록버스터(Blockbuster) 영화를 보듯이 쓸려 갔다. 나토리시 곳곳에서 불길이 치솟고, 사람들은 망연자실해 했다. 시간이 갈수록 사망자 수가 계속 늘어났다. 정권, 군대, 재력, 기술, 학문, 지혜, 예술, 운동 경기, 경제, 생산, 교육 등의 무기력함이 드러났다. 뒤따라 후쿠시마 원전 두 기가 폭발했고, 그 사고로 수만 명이 피난길에 나섰다.<br/><br/>그들은 성경의 예언을 얼마나 무시했던가? 일본에서 발생한 규모 8.8의 지진을 보고 놀랐는가? 이를 겪어 본 사람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대환란 끝에 있을 지진은 그것과 비교도 안 될 만큼 강력하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 엄청난 지진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언한다. 『만군의 주가 이같이 말하노니, 조금 있으면 하늘들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내가 또 한 번 흔들 것이요, 또 내가 모든 민족들을 진동시키리니 모든 민족들의 열망이 이르리라. 그러면 내가 이 집을 영광으로 채우리라.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학 2:6,7). 『오 땅의 거민아, 두려움과 함정과 올무가 네게 임하였도다. 두려움의 소리로부터 도망친 자는 함정에 빠질 것이며, 또 함정 가운데에서 올라온 자는 올무에 걸리리니 이는 높이 있는 창문들이 열리고 땅의 기초들이 흔들림이라. 땅이 완전히 헐리고 땅이 깨끗이 해체되며 땅이 심하게 움직였도다. 땅이 술 취한 사람같이 비틀거리며 오두막같이 흔들거리고 그곳의 죄악이 그 위에 무겁게 되리니 그것이 떨어져서 다시 일어나지 못하리라』(사 24:17-20). 『일곱째 천사가 자기 호리병을 공중에 쏟으니 하늘의 성전에서 큰 음성이 보좌로부터 나와 말하기를 “다 이루었다.”고 하니 음성들과 천둥들과 번개들이 있었고 또 큰 지진이 일어났는데, 그 지진이 너무도 엄청나서 사람이 땅에 거주한 이래로 그처럼 강력하고 큰 지진은 일찍이 없었더라』(계 16:17,18).<br/><br/>하나님께서는 노아의 홍수를 끝내시면서 “다시는 모든 육체가 홍수로 인한 물들로 멸망당하지 않을 것이며, 또 땅을 멸망시킬 홍수가 다시는 있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시고 모든 생물 사이에 영속하는 세대들을 위해 체결하는 언약의 표로 무지개를 보여 주셨다(창 9:12,13).<br/>하나님께서는 창조주요 구속주요 심판주시다. 주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에게는 수천 대까지 자비를 베푸시지만(출 20:6, 신 5:10), 주님을 사랑하지 않고 계명을 지키지도 않는 자는 그 죄악을 자손들의 삼사 대까지 미치게 하신다(출 34:7).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때 주로 쓰시는 것은 전쟁, 역병, 기근, 자연재해 등이다. 이와 같은 징계의 방법과 시기는 그분께서 정하신다. 사람들은 그러한 재앙들을 나름대로 평가하거나 판단하는데, 그들은 근거도 없이 신들을 붙들고, 그것을 자기 종교로 삼아 자기가 믿고 싶은 것을 골라 믿는다. 마치 종교 시장에 나가서 자기 입맛에 맞는 신을 하나 골라잡고 매달리는 것과 같다. 그들은 왜 그러는 것인가? 자신에게는 예언할 능력도 없고, 진리를 아는 것도 아니고, 위기에 대처할 능력도 없고, 자신과 자신의 가족 그리고 자신의 밥줄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보장도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신에게 무슨 병이 있는지도 모르며, 5분 후에 무슨 일이 닥칠지도 모르면서 살고 있다. 사람은 생명을 부지하고 사는 동안 쓸데없는 일들에 매달리다가 대책도 없이 죽어 간다. <br/><br/>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무엇인가? 전쟁, 기아, 죽음, 치명적 질병, 자연재해, 범죄, 종교적 갈등과 대립 등이다. 사람 자신이 해결할 수 없는 이러한 문제들 때문에 사람은 결국 절대자를 찾는 것이다. 그런데 본인의 무지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절대자를 잘못 짚고 따라나서면 그의 운명은 엉뚱하게 판가름 나게 된다. 즉 창조주와 구속주와 심판주를 잘못 선정함으로써 멸망당하는 것이다. <br/><br/>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우선 육신의 숨이 끊어지면 곧 부패가 시작되고, 얼마 안 있으면 한 줌 흙으로 돌아간다(창 3:19). 혼은 지옥으로 가게 되며, 영은 그것이 거듭났든 거듭나지 않았든 하나님의 호흡이기에 하나님께로 돌아간다(전 3:21; 12:7). 사람의 혼은 썩지도 않고, 불에 타지도 않는 비물질이기 때문에 영원히 산다. 이러한 진리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진리의 성경』(단 10:21)에 쓰여 있기에 알 수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한 영이시기에 인간을 영과 진리로 다루신다. 성경을 배격한 사람들은 이 점을 모르기에 교과서도 아니고, 선생님도 아닌 데서 그 해답을 찾으려 하지만, 처음부터 『그 문』(요 10:9), 곧 예수 그리스도를 찾지 못해 방황하다가 인생을 끝내 버리게 된다.<br/><br/>사람이 죽으면 그것으로 끝나 버리는가, 즉 사후의 생이 어떻게 전개되는가에 대한 설명은 사람이 꾸며낸 종교로는 불확실하다. 철학이라는 학문도 신뢰할 수 없다. 진리의 성경에는 『한 번 죽는 것은 사람들에게 정해진 것이고 그 뒤에 심판이 정해진 것같이』(히 9:27)라고 기록되어 있다. 왜 사람이 죽는가에 대해서도 답을 제시하셨다. 『이런 연유로 한 사람[아담]에 의하여 죄가 세상으로 들어오고 그 죄에 의하여 사망이 왔으니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전달되었느니라』(롬 5:12). <br/><br/>인간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첫째 사람 아담이 지은 죄, 즉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죄 때문에 그의 후손인 인간들이 지옥의 심판을 받게 됨을 불쌍히 여기시어 인간에 대한 구원 계획을 마련하시고, 하나뿐인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시어 십자가의 질고를 겪게 하셨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그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이는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선물은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말미암은 영원한 생명이기 때문이라』(롬 6:23). <br/><br/>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해 마련하신 구원 계획을 모른다. 모르기에 종교를 가지려 하고, 그것도 자기 식성에 맞는 종교를 고르려 한다. 이러한 사람들에는 다음과 같은 유형이 있다. <br/><br/>첫째, 어떤 사람은 정신 수양으로 영생을 얻으려고 부처나 브라마를 따른다. 정신 수양은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에 정욕과 탐욕과 지은 죄들에 대한 가책 때문에 하는 것이며, 결국은 그도 죽어서 지옥에 떨어진다.<br/><br/>둘째, 어떤 사람은 카톨릭이 만든 수도원이나 수녀원에 몸을 맡기는데 그곳도 절간이나 다를 바가 없다. 마리아를 숭배하는 일이나 부처를 숭배하는 일이 그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이다.<br/><br/>셋째, 조상의 뼈를 소중히 여겨 명당에 묘를 쓰고, 묘를 더 크게 만들고, 남근을 힘의 상징으로 여겨 할머니나 어머니 묘 옆에 세우기도 하지만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사람이 죽으면 땅에 묻기도 하지만 요즘은 90% 이상이 화장해 버린다. 추운 지방에서는 시체를 독수리에게 줘서 먹게 하는 조장(鳥葬)을 한다.<br/>넷째, 이슬람을 만든 마호메트는 아홉 살 난 소녀를 포함해 14명의 아내를 두었고, 그 외에 11명의 노예 처녀들도 두었다. 그는 자신과 며칠 밤을 보내기 원하는 남편 없는 여인들(수라 33:50)을 아내로 두었고, 임시 혼인이라며 삼 일 밤을 함께 보내기도 했다. 마호메트는 자기 며느리도 아내로 삼았는데, 이런 자가 성경의 위로자는 성령님이 아닌 자신이라고 거짓말했다. 그리고 이슬람교의 남자들은 아내를 네 명까지 데리고 살라고 가르쳤다.<br/><br/>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죄로 멸망당할 수밖에 없는 인간을 구원하시려고 하나뿐인 아들을 제물로 드림으로써 구원 계획을 완성하신 구원주이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주님 자신을 믿는 사람들의 죄를 제거하고 영생을 주시는 마지막 아담이 되셨다. 『죽은 자들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겨서 썩지 아니하는 것으로 일으켜지며 수치로 심겨서 영광된 것으로 일으켜지며 약한 것으로 심겨서 능력 있는 것으로 일으켜지며, 육신의 타고난 몸으로 심겨서 영적인 몸으로 일으켜지느니라. 육신의 타고난 몸이 있고 또 영적인 몸이 있느니라. 따라서 이와 같이 기록되었으니 “첫 사람 아담은 살아 있는 혼이 되었느니라.”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느니라. 그러나 영적인 몸이 먼저가 아니요, 타고난 몸이며 그 다음이 영적인 몸이라. 첫째 사람은 땅에서 나서 흙으로 만들어졌으나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신 주시니라. 무릇 흙으로 만들어진 사람은 흙으로 지음받은 것들과 같고 무릇 하늘에서 나신 분은 하늘에 있는 것들과 같으니 우리가 흙으로 만들어진 자의 형상을 입은 것같이 하늘에 속한 분의 형상도 입으리라』(고전 15:42-49).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은혜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은 진리의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믿는 믿음뿐이다. 아담의 불순종으로 저주받아 죽어 버린 영을 믿음으로 살림받아야 하는데, 영이 죽은 사람은 살아 있어도 하나님께는 죽은 사람으로 간주된다. 이 사람의 혼은 마귀가 소유하고 있다. “허물과 죄들로 죽어 있는” 인간은 이 세상의 풍조를 따르고 공중 권세의 통치자인 마귀의 영을 따라 행하며 사는 진노의 자녀이다(엡 2:1-3).<br/><br/>마귀의 자녀로 태어난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지 않은 채 교회에 몇 십 년간 다녔다고 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니다. 이 종교 시장에는 마귀가 하나님의 교회를 흉내 내어 만든 가짜 교회들이 있고, 그 안에서 가짜 성경, 가짜 목사, 가짜 교리, 가짜 구원이 판을 치고 있다. <br/><br/>하나님께서는 그런 몰지각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며 다른 복음을 따르는 자들을 왜 참고 계시는가? 이는 그분께서 판단받으실 때 이기려 하심이라고 진리의 성경이 답변해 주고 있다. 『어떤 자들이 믿지 아니하였다면 어찌하겠느냐? 그들의 믿지 아니함이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무효화시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실로, 하나님은 참되시나 사람은 모두 거짓말쟁이라. 기록된 바 “이는 주께서 주의 말씀에 의롭다 함을 얻으시고 판단받으실 때에 이기려 하심이라.”고 함과 같으니라』(롬 3:3,4). 이 말씀이 무슨 뜻인가? 다윗왕이 자기의 충신 우리야의 아내와 간통하고, 우리야를 전장에서 적의 손에 죽게 하는 죄를 짓고서 참회의 시를 쓴 것이 시편 51편이다. 다윗왕은 주님으로부터 “확실한 자비”를 받은 유일한 인물이었다. 그는 자기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께서 떠나실까 봐 노심초사했는데, 이때 그가 기록한 말씀이 『주, 주만을 거역하여 내가 죄를 지었으며 주의 목전에서 이 악한 행실을 행하였으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롭게 되시고 주께서 판단하실 때에 순전하시리이다.』(4절)였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보고 계시는 데서 악을 행했기 때문에 그런 일을 행했는지 안 했는지에 관해서는 심판 때 의혹의 여지가 없을 것이라는 뜻이다. 말하자면 성경에 복음이 기록되어 있음에도 다른 복음을 따르는 자들은 심판 때 변명의 여지가 없게 된다.<br/><br/>주님께서는 심판주이시다. 하나님을 진리의 성경대로 창조주로서 알지 못했고 구속주로도 믿지 않았다면 그의 심판은 필연적으로 지옥에서의 심판이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들에게 정해진 것이고 그 뒤에 심판이 정해진 것같이』(히 9:27). 『나를 거절하고 내 말들을 받아들이지 아니하는 자는 그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내가 말한 그 말이 그를 마지막 날에 심판하리라』(요 12:48). 『이는 하나님께서 선이든 악이든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것들을 심판하실 것임이라』(전 12:14).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거절하고, 종교 시장에서 종교 하나를 골라잡고, 시간, 노력, 돈을 낭비하며 살다 죽어서 그의 혼이 지옥 불구덩이의 언저리에 다다랐는데, 그 광경을 보니 너무 무서워서 그 순간 심판주이신 하나님께 자기는 이런 형벌을 받아야 할 이유가 없다고 항변할 것이다. 벌레 같은 인간이 전지하신 창조주 앞에서 헛소리하며 이유를 댈 때, 즉 그에게 판단받으실 때 이기려 하신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지옥에 떨어진 자들이 하나님께 항변하는 것이 무엇일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이기신다. <br/><br/>복음으로 거듭나지 못한 채 교회에 다니면 기독교나 천주교라는 종교인으로 살게 되는데, 진리와 무관한 종교는 그 어떤 것이라도 쓰레기일 뿐이다. 성경은 새 생명을 낳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이다. 이 말씀을 무시하고 짓밟으면 반드시 죄에 대한 형벌과 지옥의 심판을 받게 된다. 『누구든지 생명의 책에 기록되지 않은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계 20:15). BB]]></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Mon, 28 Jul 2025 14:45:00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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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세상에서 인정받는 목사들</title>
<link>https://biblemaster.co.kr/bb13/%EC%84%B8%EC%83%81%EC%97%90%EC%84%9C-%EC%9D%B8%EC%A0%95%EB%B0%9B%EB%8A%94-%EB%AA%A9%EC%82%AC%EB%93%A4/</link>
<description><![CDATA[세상으로부터 성별된 사람들의 모임이 하나님의 교회인데, 현대 교회들은 하나님께로 성별되지 않았다. 이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하나님의 뜻으로 세워진 교회가 아니라 인간의 뜻, 즉 사람의 계획으로 만들어졌기에 세상 속으로 파고들어 세상과 호흡하며 세상 풍조를 따르는 세상 교회들이 된 것이며 그 교회들 안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다. <br/><br/>말하자면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들만이 하나님의 자녀이다. 인간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뉘는데, “교회에 다니는 사람과 다른 종교에 심취한 사람”이 아닌,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과 거듭나지 않은 사람”으로 나뉜다. 거듭난 사람들은 자기가 언제 어디서 어떤 계기로 거듭났는지에 대한 “구원 간증”이 있지만, 거듭나지 않은 교인들에게는 그런 간증이 없다. 거듭남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으로 역사하실 때 일어나기 때문이다.<br/><br/>전 문화공보부장관을 지낸 이어령 씨가 지성, 영성 어쩌고 하는 책을 썼다고 신문에 크게 광고를 했었는데, 그가 어떻게 거듭났다는 간증은 없고 기독교라는 종교에 대한 그의 사적인 신념 비슷한 것뿐이었다.<br/><br/>하나님의 존재를 시인했다고 해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아니다. 죽을병에 걸리고, 사고가 나서 피범벅이 되고, 회사가 부도가 날 위기에 처하고, 가정이 박살날 지경에 이르렀을 때면 그 누구라도 본능적으로 하나님을 찾을 수 있다. 프랑스의 무신론 사상가 볼테르만 그런 것이 아니라 누구라도 그럴 수 있다. <br/><br/>사람이 거듭나는 것이 어려운 일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성경은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롬 10:13)라고 말씀한다. 그런데 주의 이름을 불렀다고 해서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이 역사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거듭나려면 먼저 자신이 사형선고를 받고 태어난 죄인임을 알아야 하며, 죽어 지옥에 가지 않으려면 자기를 죄의 형벌과 지옥의 심판으로부터 구원해 줄 구세주가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알아야 한다. 그 뒤 그분을 자신의 구주로서 믿고 영접해야 하는데,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해야 한다. 『네가 네 입으로 주 예수를 시인하고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이는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에 이르기 때문이라』(롬 10:9,10).<br/><br/>사람 개개인이 구원받기까지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마귀의 자식으로 태어나서 살았고, 마귀의 자식이었기에 복음을 거절했던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절간이나 성당에 가기 싫으면 교회에 다닌다. 하지만 그런 곳들에 다니기 싫어 교회에 다닌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다.<br/><br/>영이 죽어 태어난 사람은 그의 영이 살림받기까지는 하나님을 알 수도 없고 믿을 수도 없다. 죄인의 상태로 교회에 다니는 일을 한번 상상해 보라! 거듭났다는 간증도 없이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그들이 이 나라를 가짜 그리스도의 공화국으로 만들었다. 전 세계 50대 교회의 절반이 넘는 숫자가 한국에 있다는 사실이 그 점을 증명한다. 거듭난 사람에겐 간증이 있다. 교회에 다니는 친구에게 언제, 어디서, 어떻게 거듭났느냐고 물어 보라! 담임목사나 부목사에게 물어 보라. 간증이 없다면 그들도 가짜이다.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라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영원히 거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벧전 1:23). 『우리가 행한 의로운 행위에 의하지 않고 그의 자비하심에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으니 이 성령을 예수 그리스도 우리 구주를 통하여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 주셨느니라』(딛 3:5,6).<br/><br/>하나님께서 세상에 교회를 허락하신 것은, 첫째,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들을 교회에 모아서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려는 데 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본성을 받은 사람이 할 수 있다. 이 일은 전파된 복음을 받아들임으로써 이루어지는데,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의인들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들을 불러 회개에 이르게 하려고 왔노라』(눅 5:32). 회개 없이는 구원이 있을 수 없다. 누군가의 강권에 의하여 어떤 교회에 가서 교적부에 이름을 적고 교인이 되었다고 해서 거듭난 것이 아니다. 목사가 하나님을 믿느냐고 물으니 믿는다고 대답하고 교회에 출석했다고 해서 거듭나는 것도 아니다. 회개란 자신이 죄인으로 태어난 것을 알고(롬 5:8,12), 자기가 왕이 되어 인생을 결정하고 살아온 것이 죄의 삶이란 점을 깨달아 성경적 기준의 삶으로 돌이키는 것을 말한다. 이 회개가 온전히 이루어지지 않은 채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신념을 거듭난 것으로 착각했다면 그에겐 기독교라는 종교를 받아들인 것 외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이다. 그런 사람은 교회에 다녀도 마귀의 자식으로 살다가 죽어 지옥으로 가게 된다. <br/><br/>왜 현대 교회들은 복음을 전하지 않는가? 영이 죽은 사람은 생명을 낼 수 없기 때문이다. 영을 거듭나게 하는 씨는 하나님의 말씀인데(벧전 1:23), 그들은 변개된 죽은 말씀으로 믿음도 없이 생명을 낳은 척한 것이다. 믿음은 말씀을 전하는 사람과 그 말씀을 받아들이는 사람 사이에서 작용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믿는다고 여기면서도 “마음으로 믿는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는 모른다. 복음을 처음으로 접한 사람은 죄사함, 구원, 거듭남, 속죄와 같은 격식을 차린 용어를 알 수가 없고, 다만 자신이 죄인이기에 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서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고백했더니 하나님께서 그를 의롭다고 선언해 주신 것이다(롬 4:5). 이와 달리 교리문답이나 “결신자는 손드세요.”와 같은 방법으로는 거듭날 수 없다. 심지어 마귀조차도 예수님의 존재와 주님의 역사를 믿고 떨기까지 한다(약 2:19). 그런 마귀가 구원받았는가? 거듭난 생명은 자라야 정상이며, 자라려면 영의 양식을 먹어야 한다. 영의 양식인 말씀을 먹고 성장해야만 구원에 관해서 헛소리를 하지 않게 된다.<br/><br/>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의 목자는 구원받은 양무리를 말씀으로 잘 먹여서 세상에 복음을 전파하는 그리스도의 군사가 되게 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죄인들이 죄사함을 받고 영생을 얻는 일에 참여할 뿐만 아니라, 마귀를 대적하는 영적 전쟁을 싸울 수 있게 된다. 거듭나지 않은 자들로 채워진 교회는 이 일을 할 수 없기에 죽은 교회이다. 라오디케아 교회라고 불리는 1900년대의 교회가 바로 그러한 교회들로 채워져 있는데, 주님께서는 그 배교한 교회들 안에 계실 수 없어서 교회 밖에 서 계신다. 라오디케아 교회의 특징은 자신의 부를 자랑하는 것인데(계 3:17),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는 『너는 비참하고, 가련하며, 가난하고, 눈멀고, 헐벗은』 것임에도 그들은 그 점을 알지 못한다. 그런 교회의 목자들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일꾼들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목자들은 모두 거듭났다. 거듭난 목사들은 절대로 양무리들을 돈 내는 도구로 만들어서 돈을 벌어들이지 않는다. <br/><br/>명성교회 김삼환 목사가 세계경제포럼(WEF)이 주최한 다보스포럼에 초대받았다며 세상 신문이 알렸다. 신문은 그가 기독교, 천주교, 이슬람교 지도자 20명과 각종 종교 세션에 패널리스트로 참가했으며, 에디오피아에 1천만 달러를 들여 최고 수준의 병원을 지어 주고, 르완다에도 병원과 교육 시설을 세워 주었다고 소개했다. 소망교회 곽선희 목사는 북한에 평양과학기술대학교를 세워 주었고, 조용기 목사 역시 북한에 조용기어린이심장병원을 설립했다. 그런 일은 국가가 해서도 안 되는 일인데,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밥 퍼 주는 일”을 수십 년간 해 온 밥퍼 공동체의 최일도 목사는 당초 그런 일은 공무원들이 해야 할 일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도 한때는 바르게 안 것 같다. 그런 일은 공무원들이 할 일이지 하나님의 종이 할 일이 아니다. 그 일뿐 아니라 다보스포럼에 참가하는 일, 북한에다 학교와 병원을 지어 주고 김정일에게서 칭찬받는 일은 하나님께서 시키신 일이 아니다. 그들이 지은 죄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교인들에게서 모은 돈을 카이사를 위해 쓴 것이다. 그런 일은 선이 아니라 죄이다. 만일 그들이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이라면 그런 일은 절대로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와 같은 일을 한 그들 네 사람의 입에서는 예수 그리스도, 복음, 죄사함, 거듭남, 영생, 부활과 같은 말이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그들은 세상을 위해서 일하고 세상으로부터 그들의 공과를 인정받는 세상 사람들일 뿐이다.<br/><br/>세상의 모든 제도는 마귀가 만들어서 마귀의 지혜와 마귀의 사람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세상도, 세상에 있는 것들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를 사랑함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생의 자랑이요, 아버지께 속한 것이 아니라 세상에 속한 것이기 때문이라. 세상도, 세상의 정욕도 사라지지만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 2:15-17)라고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세상과 친구가 되고자 하는 자는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고 하셨으며(약 4:4), 이런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들로 행하고 있다고 하셨다(빌 3:18).<br/><br/>그렇다면 그들은 왜 그런 일을 행했는가? 그들이 알고 있는 성경 지식인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마 22:39, 막 12:31, 눅 10:27)는 말씀을 실행하려는 데 있었다. 하지만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은 국가가 벌여야 할 캠페인이다. 한 해에 300조 원이 넘는 각종 세금을 걷어서 그중 0.1%만 써도 독거노인들, 일본군 강제위안부 할머니들의 애환과 고충을 덜어 줄 수 있다. 하루에 3.5명에 달하는 노인 자살자들을 줄일 수도 있다. 문제는 교회들이 하나님의 돈으로 하는 이웃 돕기가 둘째 계명에 해당한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첫째 계명이 무엇인가? 그것은 『네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막 12:30)라는 것이다. 첫째 계명을 무시하고 둘째 계명을 행했다고 교회가 할 일을 다 한 것처럼 세상에 얼굴을 들이밀고 있는가? 세상을 위한 일을 하면서 하나님의 교회들이 해야 할 일인 것처럼 떠벌리는가?<br/><br/>말하자면 그들은 자신들이 거듭나지 않았음을 증명하고 있을 뿐이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종들은 하나님의 일을 하고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행한다. 예수님께서도 『이것이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뜻이니, 즉 그분께서 내게 주신 모든 사람을 하나도 잃지 않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것이라. 또 이것이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이니, 아들을 보고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생을 얻게 하는 것이라. 그리고 내가 그를 마지막 날에 살리리라.』(요 6:39,40)라고 하심으로써 주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데 있음을 천명하시지 않았던가? 주님과 무관한 배교한 교회들은 영적 소경인데 어떻게 자기 교인들을 죄의 형벌과 지옥의 심판으로부터 구해 낼 수 있겠는가? 그들은 사기꾼들이요, 협잡꾼들이다. 목사들이 그리스도인들을 투옥시키고 고문하고 강제 노역을 시키고 죽이는 공산주의자들의 비위를 맞춰야 한다고 성경 어디에 기록되어 있던가? 일하지 않고 밥이나 축내는 자들에게 언제까지 밥이나 퍼 주고 있을 것인가? 그것은 공무원들이 할 일이다. 하나님의 종이라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여 죄인들의 영이 거듭나고 혼이 구원을 받게 해야 한다. 당신은 복음을 전할 줄 아는가? 영접기도를 할 줄 아는가?<br/><br/>하나님께서는 마지막 때에 그와 같은 배교자들이 나와서 그분의 이름을 들먹거리며 그런 짓을 할 것이라고 A.D. 66년경 사도 바울을 통해 적시해 놓으셨으며(딤후 3:1-5), 그 마지막 구절에서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리니, 이런 자들에게서 돌아서라.』(딤후 3:5)라고 명령하셨다. 바로 이 구절에 유의하라! 그런 자들은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할 것이므로,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런 자들에게서 돌아서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권고하노니 너희가 배운 교리에 역행하여 분열을 일으키고 공박하는 자들을 주의하고 그들에게서 떠나라. 그러한 자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배를 섬기는 것이니 정중한 말과 그럴듯한 언변으로 순진한 사람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롬 16:17,18). 그런 자들은 자기들의 “배”가 신이기에 절대로 하나님을 섬길 수 없다! 『속지 말라, 하나님은 우롱당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이는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둘 것이기 때문이라』(갈 6:7).<br/><br/>하나님의 종은 성령의 칼인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반면, 그들은 말씀을 믿지 않는 것이 그 특징이다. 그들의 손에 들려 있는 성경을 보라. 개역성경이나 개역개정판일 텐데 그것들은 카톨릭성경에서 나왔다(림즈-듀웨이성경, 1582). 마귀가 그들을 속여 자기 종으로 삼아 데리고 놀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 인정받지 못한 채 세상에서 인정받고 있다면 그들은 가짜 교회들임이 분명하다. BB]]></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Fri, 27 Jun 2025 09:49:30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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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교단의 저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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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CDATA[하나님의 사역은 세상 지혜나 인간의 발상이 아닌 위로부터 오는 지혜와 영력으로 이루어진다. 육신적인 발상은 하나님의 법에 복종할 수 없고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육신적인 생각 자체가 하나님과 원수가 되기에(롬 8:7) 하나님으로부터 지혜와 영력을 받지 않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일을 할 수가 없다. 예수님 당시의 서기관들과 율법사들, 심지어 제사장들까지도 이 점을 알지 못했고, 암흑시대의 카톨릭 교황을 비롯한 성직자들도 몰랐으며, 종교 개혁 이후의 소위 개신교 신학자들과 목사들도 알지 못했다. 그들은 신학교와 목사 안수 같은 인간이 만든 과정과 제도를 통과하면 자동적으로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br/><br/>솔로몬은 하나님께 지혜를 구해서 받았다(왕상 3:28; 4:29,30). 다니엘이 느부캇넷살왕이 꿈꾸었다가 잊어버렸던 꿈을 찾아 해석해 주었던 것도 “하나님의 지혜”를 받았기에 가능했다. 위로부터 오는 지혜를 받지 못한 자들에겐 영력도 없다. 그런 육신적인 자들이 하나님의 일을 하면 이 세상 지혜인 육신적인 머리 굴림이 하나님의 지혜를 흉내 내게 된다. 이는 악령의 역사를 성령의 역사로 둔갑시켜 사람들을 속이는 은사주의자들의 행위와 같다. 초림 당시 예수님께서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고 인간의 전통과 인간이 만든 계명과 교리를 백성들에게 가르쳐 그것이 하나님의 일인 양 가장했기에, 그들이 하나님을 헛되이 경배한다고 힐책하셨다(마 15:3,8,9). <br/><br/>교회가 시작되고 나서 하나님께서 부르시지도 않고 들어쓰시지도 않는 자들이 사역자로 나서면서 복음이 변질되고 진리가 훼손되어 배교를 조장해 왔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고 섬긴다고 말하면서도 어떤 성경이 옳은지도 모른다. 참으로 한심한 자들이 아닐 수 없는데, 열매를 보면 그 나무를 알 수 있는 것이다.<br/><br/>교단은 어떻게 생겨난 것인가? 교단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지혜인가, 단순한 인간의 발상인가? 만일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되었다면 그 용어 자체가 성경에서 나왔어야 한다. 그렇기에 성경에 없는 용어라면 인간이 만들어 낸 용어임이 분명하다. 그런 용어가 하나님의 지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면 인간의 지혜로 만들어 낸 것이 확실하다. 인간의 지혜를 따른다면 사람들의 전통과 계명들로 하나님의 계명을 어긴 것이기에 그들의 경배는 헛된 것, 즉 하나님께 영과 진리로 드리는 경배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헛된 것일 뿐이다. <br/><br/>교단은 언제부터 어떤 경위로 생겨났는가? A.D. 313년 로마의 황제 콘스탄틴이 밀라노 칙령을 내렸는데, 그때 로마 제국이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가했던 박해를 풀어 주자 이교도들이 그리스도인 행세를 하면서 이교도들의 신전들이 교회란 이름으로 바뀌었다. 밀라노 칙령은 겉으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박해를 가하지 못하게 하는 것같이 보였지만, 콘스탄틴 아래에서 조직화된 국가교회가 로마 제국 내의 모든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사형 선고를 내린 것과 같았다. 그들은 정해진 명령에 따르지 않는 성도들을 이교도와 동일하게 다뤘기 때문이다. 국가교회는 성경에 없는 제도를 만들어 강요하기에 이르렀는데, 이것이 교단의 시발점이었다. 그들의 마귀적인 악행은 마틴 루터라는 사제에 의해 저항을 받게 되었는데, 마틴 루터, 존 낙스 등의 종교 개혁 주역들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기에 여기서는 언급하지 않으려 한다. 그들의 용기 있는 행위는 갑작스럽게 우연히 이뤄진 것이 아니라, 로마카톨릭의 마귀적인 비성경적 전통들이 마치 성경에 근거라도 있는 것처럼 가르쳐져서 성경적 신앙이 이교도들의 우상 숭배처럼 변질되는 것을 견딜 수 없었기에 일어난 것이었다. 당시 수많은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 교황의 이름으로 자행된 투옥과 고문, 회유, 죽임을 당했지만, 유럽 전역에서는 개혁의 불길이 꺼지지 않았다. 당시 로마카톨릭은 해괴한 것들을 내놓으며 계속해서 악행을 저질렀는데, 그중 몇 가지 중요한 것들만 적으면 다음과 같다. 1 A.D. 280년경부터 십자가의 표식에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고, 2 A.D. 320년에 예배에서 “촛불”을 사용했으며, 3 A.D. 375년에 “천사들”을 경외하기 시작했다. 4 A.D. 394년에는 “미사”를 경배라고 했으며. 5 A.D. 431년에 “마리아 숭배”를 교리화하고, 6 A.D. 450년에 “유아세례”를 도입했으며, 7 A.D. 593년에 “연옥”을 만들어 냈고, 8 A.D. 787년에 “형상 숭배”를 강요하기 시작했다. 9 A.D. 857년에는 “교황무오설”을 지어냈고, 10 A.D. 1184년에는 “속죄권”을 판매했으며, 11 A.D. 1229년에 평신도들에게 성경을 금지시켰다. 12 A.D. 1439년에는 “일곱 성사”를 교회의 전통으로 집어넣었으며, 13 A.D. 1546년에 “외경”을 성경에 삽입시켰다. <br/><br/>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은 이탈리아 북부와 프랑스 남부에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그들은 성경을 깊이 있게 알 수는 없었어도, 하나님의 아들께서 인류의 죄를 위해 이 땅에 인간으로 태어나시어 33세에 성경대로 십자가의 질고를 지시고 하나님의 피를 흘려주심으로써 온 인류가 구원받을 길을 마련해 놓으셨음을 알았다. 또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영접하면 영이 거듭나고 마귀에게 속한 혼이 구원을 받아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는 것과, 그렇게 되면 죽어도 다시 살아나고, 살아 있는 동안에 주님께서 오시면 휴거되어 주님과 영원히 함께 살 수 있음도 알았다(살전 4:13-18). 그들은 주님께서 지상에 재림하실 때 자신들이 함께 내려올 것이며, 그때 주님께서 아마겟돈 전쟁을 치르시고 이스라엘을 구해 주신 후 천년왕국을 수립하여 통치하실 것을 또한 믿었던 것이다. 이러한 믿음을 소유한 성도들을 몬타니스트, 도나티스트, 알비겐스, 불가리안, 롤라드, 카타리, 폴리시안, 왈덴시안, 후스파, 아놀디스트, 페트로브루시안, 메노나이트 등으로 불렀다. 그들은 어떤 교단을 만든 것이 아니라 외부 사람들이 그들의 인도자의 이름을 따서 그렇게 불렀던 것이다. 그들은 당대에 주님께서 남겨 놓으신 “남은 자들”이었는데, 이런 사실이 카톨릭 교회사에 기록될 리 없기에 아무리 교회를 오래 다니고 교단 신학을 많이 공부했어도 알 길이 없다. 그들 가운데는 브레시아의 아놀드(Arnold of Bresia, 1110-1155), 종교 개혁의 새벽별이라고 불린, 옥스퍼드의 수재 존 위클리프(John Wycliffe, 1320-1384), 보헤미아(지금의 체코슬로바키아)의 전 국민이 따랐던 존 후스(John Huss of Bohemia, 1369-1415)는 물론, 지 롤라모 사보나롤라(Girolamo Savonarola, 1452-1498)와 로잔의 헨리(Henry of Lau- sanne, 1452-1493) 등이 있었으며, 이들은 로마카톨릭의 엉터리 교리에 항거하여 거리에서 진리를 외치며 설교하다가 파리처럼 죽어 갔다.<br/>반면 A.D. 869년에 그리스정교와 로마카톨릭은 분열을 일으키면서 나뉘었고, 1517년에 일어난 루터의 종교 개혁 이후로 루터파(1530), 영국성공회(1531), 장로교회(1541), 회중교회(1602), 감리교회(1785), 제자회(1812) 등의 교단들이 생겨났다. <br/><br/>그러나 침례교는 전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예루살렘 교회 이전부터 침례는 기독 신앙의 원칙이요 기반이었다. 영국의 성공회와 로마카톨릭의 국가교회가 저지르는 비성경적인 실행을 견딜 수 없었던 성도들이 아메리카 신대륙을 피난처로 삼았는데, 이로써 미국은 세례가 아닌 침례를 실행하는 이주자들로 인해서 “침례교”로 시작되었다. 그 후 다른 교단 교회들이 유입되었으나 미국의 교인들은 침례를 받아야 함을 알았고, 세례는 카톨릭이나 성공회의 전통이라며 폄하했다. 심지어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일지라도 침례가 교회의 의식이라는 것쯤은 지금까지도 상식화되어 있다. 미국은 처음부터 “침례교”가 주류를 이루었지만, 이후 교회들은 쇠락하기 시작했으며,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되고 섭리로 보존된 &lt;킹제임스성경&gt;(1611)을 버리고 RSV(1946), ASV(1901), NASV(1960), NIV(1976), NRSV(1989)를 채택한 신학교와 교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미국에 교파와 교단들이 들어섰는데, 미국 교회의 주류를 이뤘던 침례교회가 남침례교회(SBC)라는 이름을 달고 미국 전역에서 교회 행세를 했지만 그들이 성경대로 실행하지 않자 그들에게서 성별한 독립침례교회들이 세워져 오늘에까지 이르렀다. 그 독립침례교회들에서 또다시 성별한 것이 바로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Bible Believers)이다.<br/><br/>우리나라의 교단들은 주로 구원받지 않은 선교사들이 학교와 병원을 지어 주는 사회복음을 가지고 오면서 생겨났다. 그들은 어떤 성경이 바른 성경인지도 몰랐기에 &lt;킹제임스성경&gt; 대신 약 4만여 군데가 변개된 RSV를 택했고, 자기들 입맛대로 한국 지역을 장로교, 감리교로 나누었으며, 후에 성결교, 나사렛, 루터교 등이 선교라는 미명하에 둥지를 틀었다. 남침례교, 성서침례교 등도 생겨났지만 그들의 교리는 별 볼 일 없는 교단 교리에 머물고 말았다. 그 틈새를 비집고 거짓 은사를 자랑하는 순복음 푼수들이 등장했는데, 이들은 병 고치고 귀신 쫓는 쇼를 했을 뿐만 아니라, 방언을 해야 성령을 받은 것이라는 거짓 교리를 퍼트려서 돈을 벌어들이며 교계를 황폐화시켰다. 교단의 저주는 여러 가지로 지적될 수 있지만 중요한 몇 가지만을 들면 다음과 같다. <br/><br/>첫째, 성경 전체 31,173절에서 어떤 자가 자기도 잘 모르는 성경 구절을 골라내 어 그것으로 이단 교리를 정립시켜 교단을 만들었다. 칼빈주의 5대 강령의 장로교는 아무 근거 없이 장로교회 다니고 세례받으면 택함받았다고 거짓말하고, 감리교와 성결교는 끝까지 견뎌야 구원받는다고(마 24:13, 막 13:13) 거짓말한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베드로가 당시 유대인들에게 말한 사도행전 2:38에다 교리를 정립시켰고, 은사주의는 사도행전 2장과 고린도전서 14장에, 여호와의 증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피조된 신이라고 하며, 144,000명(계 7:4-8)을 자신들이라고 해석한다. 안식교는 안식일이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표적임을 알지 못하고(출 31:13,17, 겔 20:12,20) 자신들을 유대인이라고 여긴다. 참으로 무지하고 한심한 영적 소경들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은 변개된 성경을 쓰는 자들이라서 영적 분별력이 없다. 교단들은 교단 세력의 확장을 위해 교단 교리에 부합되는 성경 구절만을 선택하고, 교단 교리와 상충되는 구절들은 배격해 버려 성경의 80% 이상을 믿지 않는다.<br/><br/>둘째, 위와 같은 이유로 교단들 대부분은 침례를 무시하고 세례를 줌으로써 카톨릭의 전통을 교리로 실행한다. 이로써 자연스럽게 세대적 진리를 배격하며 무천년주의나 후천년주의 종말론을 채택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무시하고,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지 않으면서 교회만 다닌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버리고 이스라엘에게 주셨던 약속들과 복들을 교회에게 주셨다고 거짓말하고 있다(이스라엘의 회복은 하나님의 약속이다. 로마서 11장을 읽어 보라). <br/><br/>셋째, 교단 교회들은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로 채워져 있으며, 성경의 80%를 믿지 않기에 진리의 지식을 모른다. 진리의 지식을 모르면 마귀의 공격을 막아낼 수 없게 되어 영적으로 피폐해지고, 현실적으로도 기도 응답을 받지 못해 곤고한 삶을 살게 된다(약 4:5, 벧전 5:8). 그들 안에 마귀를 대적해서 싸울 수 있는 그리스도의 역군들이 있는가 보라!<br/><br/>넷째, 교단 교인들은 자신들이 구원받지 않았기에 세상 사람들을 만나도 구령할 줄 모르며 구령의 열정도 없다. 무엇이 성별이고, 심지어 교회가 무엇인지도 성경으로 규명하지 못한다. <br/><br/>다섯째, 바른 성경이 최종권위가 될 수 없기에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판단할 수 없다. 성도의 첫째 계명(마 22:37,38)이 무엇이고, 지혜를 얻으려면 가장 먼저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알지 못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들이 복인지 저주인지도 모르고, 바른 성경을 찾지도 않고 필요성도 느끼지 못한다.<br/><br/>교단에서 나서 교단에서 자랐기에 교단 사람으로 산 사람은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교단의 종으로 사는 것이다. 진리의 지식을 배운 적도 없기에 진리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교단의 울타리 안에서 살면 성별할 수 없기에 주님과의 교제가 없게 되고, 성경대로 헌신할 줄도 모르기에 자기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알지 못한 채 살다가 죽는데, 그러면 비록 지옥에 가지는 않는다 해도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받을 상이 없게 된다. 그들이 쓴 책들이 간혹 나오지만 진리의 지식을 설명해 놓은 것이 아니라 교단 교리에 근거한 것이라서 교단 안에서만 통할 뿐이다. 과연 그런 것들이 하나님의 일이 될 수 있겠는가?<br/><br/>교단은 성경을 잘 모르는 인간들끼리 편을 짜서 자기들이 만든 교리와 전통을 실행하느라 성경을 버려 버린 자들의 모임이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그들의 교회 밖으로 밀어내고 주님 없이 교회를 운영하면서도 스스로를 교회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지금도 주님께서는 그들의 교회 문 밖에 서 계신다. ]]></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Thu, 29 May 2025 09:52:14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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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나는 왜 성경을 모르는가?</title>
<link>https://biblemaster.co.kr/bb13/%EB%82%98%EB%8A%94-%EC%99%9C-%EC%84%B1%EA%B2%BD%EC%9D%84-%EB%AA%A8%EB%A5%B4%EB%8A%94%EA%B0%80-1/</link>
<description><![CDATA[우리나라 학생들은 고등학교 3학년이 되면 대학입시에 좋은 성적을 내야만 원하는 대학교에 들어갈 수 있기에 안쓰러울 정도로 공부한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한다고 해서 다 좋은 점수를 얻는 것도 아니다. 입시 문제의 범위나 깊이가 교과서 밖이나 엉뚱한 데서 나오는 것도 아니고, 학교에서 가르쳤고, 예상 문제집에서도 밝혔고, 전년도 아니면 그 전전년도에서 출제되었던 문제였을 것이나, 막상 성적이 발표되고 나면 결과는 천차만별이다. 당장 재수를 결심한 학생도 있고, 실의에 찬 학생도 있고, 심지어 자포자기한 학생들도 있다. 그 다음에는 자기 성적으로 들어갈 대학을 맞추느라 또 한 번 경쟁 아닌 경쟁을 치르는 광경을 매년 보게 된다. 신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은 연령 제한이 없는 것이 특징인데, 그들도 대입 수험생들만큼이나 열심히 공부하는가?<br/><br/>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성경을 쓰신 목적을 제시하셨다. 『다만 이것들을 기록한 것은 너희로 예수가 그리스도, 곧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하려는 것이요, 또 믿음으로써 그의 이름을 통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라』(요 20:31).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런 것들을 씀은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며, 또한 너희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도록 하려 함이라』(요일 5:13). 또한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알기 원하면 공부하라 하셨고, 어떻게 공부하는지도 가르쳐 주셨다. 『성경을 상고하라. 이는 너희가 성경에 영생이 있다고 생각함이니, 그 성경은 나에 관하여 증거하고 있음이라』(요 5:39).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이 점만 보아도 성경 공부는 세상의 대입시험이나 사법고시를 비롯한 각종 고시와는 그 차원과 수준과 질이 다름을 알 수 있다. 세상의 학문이 아무리 좋게 보이고 그럴듯하게 활용될지라도, 세상을 겨냥한 가치관은 시대와 환경에 따라 변하기 때문에 영원할 수 없다. 그뿐 아니라 세상 자체도 그 형체가 사라져 가고 있다(고전 7:31).<br/><br/>하나님의 지혜는 세상 사람들의 안목으로 볼 때 어리석게 보인다. 성경을 온전히 알고 믿고 진리대로 실행하며 사는 사람들의 행보가 세상 사람들의 안목으로 보면 뭔가 좀 부족하고 덜 여문 것처럼 보일지 모르나, 거듭난 그리스도인의 안목으로 보면 세상 사람들은 연료가 바닥난 차에 타고 있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그러나 자연인은 하나님의 영의 일들을 받아들이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일들이 그 사람에게는 어리석게 여겨지기 때문이요, 또 알 수도 없나니 이는 그 일들이 영적으로만이 분별되기 때문이니라』(고전 2:14).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학자가 어디 있느냐? 이 세상의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어리석게 만드신 것이 아니냐?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세상이 그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기에 하나님께서 복음 전파의 어리석음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느니라』(고전 1:20,21).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라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영원히 거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이는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사람의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며, 풀은 마르고 꽃은 져도 주의 말씀은 영원토록 남아 있음이라. 이것이 너희에게 복음으로 전해진 말씀이니라』(벧전 1:23-25). <br/><br/>교회를 수년 혹은 수십 년 다녔는데도 진리의 지식을 깨우치지 못한 교인들이 너무나 많다. 그들이 성경의 진리를 알고 성경대로 주님을 섬겼더라면 본인의 믿음이 강성해지는 것은 물론이요, 자기 가족과 주위의 다른 사람들에게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여 구령하였을 것이며, 성경에 관하여 질문한 다른 사람들에게 옳은 답을 해 주었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오늘날 같은 우스꽝스런 교회들도 줄어들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더 멀리까지 확산되며, 가정이 바로 서고, 사회가 정화되며, 정치인들이 국정을 내팽개치지 않았을 것이다. <br/><br/>목사들이 성경의 진리를 알았더라면 은혜의 복음이 선포되어 거듭난 사람들이 늘어났을 것이다. 거듭난 사람들에게 진리의 지식을 가르쳤더라면 그들이 강성한 그리스도의 군사들이 되어 말씀을 수호하고 진리를 증거했을 것이고, 지역 교회들은 마귀의 세력이 공격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튼튼한 요새가 되었을 것이다. <br/><br/>우리나라에는 줄잡아 8만 개의 교회가 있다고 한다. 교인 수만 해도, 정확한 수인지는 모르지만 8백7십만 명이라고 한다. 이렇게 많은 교인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었다면, 그래서 적어도 한 사람이 한 달에 한 명의 혼이라도 마귀의 수중으로부터 이겨왔다면, 우리 민족은 6개월도 안 되어서 모두 거듭났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나라의 교인들은 복음 전파의 열정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교회에 다니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도달하게 되는데, 분명 그와 반대이다. 그렇다면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 것일까?<br/><br/>매우 단순한 이유 같지만, 원인은 성경을 모르는 데 있다. 그리스도인이 성경을 모르는 것, 이것이 바로 마귀의 방해요 공격이다. 훈련받지 않은 군인이 전투에 투입되면 살아남을 확률이 낮듯이, 영적 조건을 갖추지 않은 그리스도인이 영적 전쟁터에 투입되면 마귀를 대항해서 싸울 수 없어서 무익한 존재가 된다. <br/><br/>“나는 왜 성경을 모르는가?” <br/><br/>첫째, 거듭나지 않고 교회 다니고 있다면 성경을 알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의 지식에 이르기를 원하신다(딤전 2:4). 거듭나지 않았거나, 게을러서 성경을 공부하지 않거나, 성경을 기록된 그대로 믿지 않으면서 읽으면 성경을 알 수가 없다. 제자훈련 같은 것을 받고, 신학교를 졸업했다 해도 마찬가지이다. 필자는 개역성경을 100독 했다는 사람들을 여러 명 만났고, 개역성경을 여러 번 필사했다는 사람들도 몇 명 만나 보았지만 그들은 쓸데없는 짓을 했을 뿐, 그런 방법으로는 절대로 성경을 알 수가 없다.<br/><br/>둘째, 바른 성경이 아니면 성경의 저자이신 성령님께 어떤 조명도 받지 못한다(갈 4:6, 롬 8:16,17, 요 14:26; 15:26; 16:13을 잘 읽어 보라!). 한글개역성경으로 공부한 사람들이 썼다는 책들을 보라! 그런 책들의 지식으로 사람의 혼과 영을 갈라놓을 수 있겠는가?(히 4:12) 몸에 붙어 있는 혼을 영적 할례로 분리시킬 수 있겠는가?(골 2:11) 그들은 자기 교단을 예수 그리스도보다 더 사랑하며 교단 교리들을 성경의 진리보다 더 우위에 두고 권위를 행사하고 있는 자들인데 주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시겠는가? 그들이 주님을 잘 믿는다는 증거가 무엇인가?<br/>주님을 두려워하여 바른 성경을 택하고 주님을 첫째로 사랑하며 섬기는 성도와 그렇지 않은 성도 중 누구에게 주님께서 진리의 지식을 아는 조명을 더 많이 주시며, 누구의 기도에 더 잘 응답하시겠는가? <br/><br/>셋째, 성경을 공부하지 않는 사람은 게으른 사람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무지할 수밖에 없다. 주님께서는 무지에 대해서는 어떤 점수도 주지 않으시고 연민도 느끼지 않으신다. 『그러나 누구든지 무지하다면 무지하게 내버려 두라』(고전 14:38). <br/><br/>전적 타락을 주장하며 인간은 스스로 의지를 행사할 수 없다고 말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오직 선택받은 사람들에게만 해당된다고 가르치는 칼빈주의 5대 강령을 믿는 자들은 성경을 전혀 모른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그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그를 믿으면”이라고 말씀하셨지, “선택받은 사람들만”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구약성경에서 선택받은 사람들은 유대인들이요, 신약에서 선택받은 사람들은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을 말한다. 신약성경에는 선택받은 사람들만 구원받는다는 말씀이 없다. 남침례교와 장로교의 목사와 신학자들 중에 진리의 조명을 받아 책을 쓴 사람이 있는가 보라!<br/><br/>어떤 침례교도들은 그리스도인의 성장이나 향상된 계시는 외면한 채 구원의 보장만을 외친다. 따라서 그들의 설교는 그 경지를 벗어나지 못한다. 성경적 지식 없이 오직 은사만을 부르짖는 은사주의자들은 어떤가? 그들은 진리의 지식을 찾는 일을 처음부터 하지 않았기에 성경에 무지하다. <br/><br/>하나님께서는 바른 성경을 거부한 사람들과 성경을 공부하는 데 게으른 사람들, 다른 사람들을 구령하고 또 구원받은 사람들을 양육하려는 열정이 없이 오직 먹고살기 위해 사역을 붙드는 사람들에게는 진리의 조명을 비춰 주지 않으신다. <br/><br/>배교한 개신교도들이 존경하는 플라토(B.C. 427-347), 알렉산드리아의 필로(B.C. 20-A.D. 50), 판테누스(A.D. 145-200), 클레멘트(A.D. 150-215), 오리겐(A.D. 184-254), 어거스틴(A.D. 354-430) 같은 사람들이 성경의 진리에 대해 무엇을 알았으며, 그들 당대에나 후대에 무슨 지식을 남겼는가? 그들 가운데는 유아에게 세례를 준 자들도 있다. 어린아이가 물을 뿌렸는지, 비를 뿌렸는지, 술을 뿌렸는지 무엇을 알겠는가?<br/><br/>마틴 루터는 종교개혁을 일으켰다. 루터는 카톨릭의 불의에 대항한 참으로 위대하고 용감한 주의 종이었다. 존 칼빈은 당대의 개혁주의자였다. 그러나 그들 역시나 유아세례를 줬고, 카톨릭의 전통을 벗지 못했으며, 신약 교회의 운영을 바울 서신대로 하지 않았다. 그들은 말씀을 기록된 그대로 실행하지 않았던 것이다.<br/><br/>예수님의 열두 제자들 중에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핵심 멤버였고, 요한은 주님의 사랑받는 종이었다. 이들은 다른 제자들보다 많은 열매를 맺는 사람들이었다. 『또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을 두고 하는 말이니, 즉 말씀을 듣고 받아서 어떤 사람은 삼십 배로, 어떤 사람은 육십 배로, 어떤 사람은 일백 배로 열매를 맺는 자들이니라』(막 4:20). 같은 말씀을 받았어도 어떤 사람은 30배, 어떤 사람은 60배, 어떤 사람은 100배의 열매를 맺는 차이가 있는 것이다. 바른 성경을 존중하고 진리의 지식을 공부하려고 노력하며, 주님을 두려워하고 첫째로 사랑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주님께 동일한 취급을 받는다고 생각하는가?<br/><br/>하나님께 쓰임받는 종들은 증거를 낸다. 그것이 열매이다. 우리 교회는 킹제임스성경신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이라고 해서 목사 안수를 주지 않는다. 단, 일차적으로 그들이 복음으로 많은 혼들을 이겨오고, 성경을 잘 가르치는 은사가 있고, 사역에 대한 열정이 있다는 증거가 보이고, 본인이 어떤 지역에서 교회를 개척하기를 원하면 “인증서”를 준다. 이 인증서를 가지고서 교회를 개척하고 설교하고 성경을 가르칠 수 있는데, 주님께서 그를 사역에 부르셨다는 증거가 보일 때 그의 소명을 점검하여 그렇게 하도록 허락한다. 그리하여 주님께서 그를 들어쓰셨다는 증거들이 수년 안에 드러나서 누구나 알 수 있게 되면, 주님께서 그를 사역에 넣어 주셔서 설교하고 가르치고 글을 쓰고 운영하고 상담하는 일을 하게 하실 것이다. <br/><br/>&lt;킹제임스성경&gt;을 가지고 허튼짓이나 은사주의에 빠진 자들은 없다. 윌리엄 캐리, 아도니람 저드슨, 허드슨 테일러, 존 페이튼, 헨리 마틴, 데이비드 브레이너드, 포클랜드 섬 주민들을 위해 선교하러 갔다가 카리브해 픽튼섬에서 굶어 죽은 가드너에 이르기까지 모두 &lt;킹제임스성경&gt;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들뿐 아니라 필라델피아 교회 시대의 위대한 설교자들인 샘 존스, 빌리 선데이, J. 프랭크 노리스, 찰스 피니, 피터 카트라이트, R.A. 토레이, 찰스 스펄전, 집시 스미스, 존 낙스, 요한 웨슬리, 조지 휫필드, 윌리엄 부스 장군, 디한 박사, 밥 존스 1세 등도 모두 &lt;킹제임스성경&gt;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변개된 성경을 붙들어서 성령님께 조명을 받지 못한 자들은 지금까지도 1) 세례를 줘서 교인으로 삼고 있다. 2) 그들은 세대적 진리를 거부하는데(딤후 2:15), 이 진리를 거부하면 어둠 속에서 헤매게 된다. 3) 그들은 지역 교회가 어떻게 세워지는지, 즉 지역 교회의 의미와 가치도 모른다(엡 1:22,23; 2:20-22; 5:21-33). 4) 그들은 성경적 교리보다 교단 교리를 우위에 두고 있으며, 5) 무천년주의와 후천년주의 종말론을 가르쳐서 교인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지도 믿지도 않게 한다. 6) 그들은 사람 수로 하나님의 권위를 깔아뭉갤 뿐만 아니라, 7) 성별하지 않고 통합함으로써 적그리스도의 도래를 준비하고 있다(WCC, KNCC, 한기총 각 교단들).<br/><br/>위와 같은 한국 교회는 무지의 구정물을 뒤집어쓴 채 머리가 텅 비어 있기에 마귀가 데리고 놀기에 더없이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그들 중엔 “향상된 계시”(Advanced Revelations)를 아는 사람이 없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 어떤 자에게도 진리의 지식을 가르쳐 주시기를 싫어하신다는 증거이다. 하나님께서는 “향상된 계시”를 존 다비(John N. Darby, 1800-1882), 스코필드(C.I. Scofield, 1843-1921), 펨버(G.H. Pember, 1837-1910), 클라렌스 라킨(Clarence Larkin, 1850-1924), 피터 럭크만(Peter S. Ruckman, 1921-2016)에게 가르쳐 주셨으며, 그들이 정금 같은 책들을 써서 바른 성경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그 계시들을 전수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의 지식에 이르기를 원하신다. 이 점을 숙고하고 실행함으로써 믿음이 인정받는 성도가 되도록 하라. BB]]></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Wed, 30 Apr 2025 15:31:59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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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종교와 신앙의 구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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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CDATA[종교(religion)란 숭배자가 자의건 타의건 선택한 절대자나, 알지도 못하는 신에게 자신을 위탁하고 심신을 바쳐 충성하는, 혼을 통한 행위를 말한다. 그들이 숭앙하는 대상은 대개 무생물이요, 사람이라 할지라도 죽은 사람이기에 그 실체를 규명할 수 없다. 신이라고 섬기는 대상 역시 숭앙하는 자가 그의 상상으로 그것이 무엇일 것이라는 정도로 여길 뿐이지 규명할 수는 없다. 그래서 숭앙자가 생각나는 대로 숭앙하는 대상의 감정과 의지를 정한다. “이렇게 하면 좋아할 것이다. 비린내 나는 생선은 싫어할 것이다. 돼지머리 삶은 것을 좋아할 것이다. 양지바른 곳에 묘를 쓰면 좋아할 것이다. 돈을 많이 내면 좋아할 것이다. 새벽녘에 찬송가 부르고, 기도하면 응답을 잘 해 줄 것이다. 무릎으로 기어 성당까지 가면 마리아가 알아 줄 것이다. 소가 상점을 들이받으면 상점을 더 크게 늘리라는 신호이다. 악어에게 고기를 던져 주면 악어 신이 자식들을 더 늘려 줄 것이다. 성령님이 나에게 교회 건물을 더 크게 지으라고 하셨다. 집사와 장로는 수입이 없어도 십일조를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내야 한다.”<br/><br/>길게 쓸 것도 없이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 즉 정성이 지극하면 하늘도 알아준다는 추측이 종교이다. <br/>이쯤 되고 보면 종교 없는 사람은 거의 없다. 불교, 힌두교, 천주교, 유교, 이슬람, 도교, 신도교, 통일교, 김일성 주체사상, 유대교, 몰몬교, 대순진리교, 무신론자, 진화론자, 우상 숭배자, 잡신을 섬기는 자들까지도 그들만의 종교가 있고, 그 종교를 숭앙한다고 말한다. 그뿐 아니라 바위, 산, 호수, 강, 바다, 무덤, 하마, 소, 호랑이, 사자, 악어, 뱀, 독수리 등을 숭앙하기도 한다.<br/><br/>혼적 달관(達觀)은 사람이 겪을 수 있고 사람에게 닥칠 수 있는 근심, 걱정, 위험, 위기 이런 것들을 의식적으로 망각하거나 체념하고 그런 일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만이 설정해 놓은 가치관과 의미를 부여하여 그것을 진리인 양 붙들고 사는 삶의 한 방편이요 자세를 말한다. 대개 이런 사람에겐 가족이나 가정이 없기에 먹고사는 일, 성취, 베풂, 욕망이 있을 수 없다. 세상 속에서 오직 자신만이 유아독존 한다. 삶의 목적도 없고 목표도 없다. 이것이 석가모니나 크리슈나가 택한 삶의 방편이었는데, 이런 사람들의 수가 많아지면 티베트나 네팔, 스리랑카, 부탄같이 된다. 이런 혼적 달관을 철학(philosophy)이라고 이름 붙인 다음 대학에서 학문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여 배우는 학생들로 하여금 인생에 대한 해답도 없이 미궁 속에서 헤매게 하는데, 이것 역시 또 다른 헛짓이다. 성경에서는 이런 철학을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유치한 원리를 따른 헛된 속임수”이니 노략질당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하셨다(골 2:8).<br/><br/>그렇다면 철학을 포함한 종교는 도대체 어디서 유래한 것이며, 누가 만들어 주관하는 것일까? 우주에서 두 번째로 세력을 가진 마귀이다. “정사들, 권세들, 이 세상의 어두움의 주관자들, 높은 곳들에 있는 영적 악”이 그들의 권세로 수많은 인간의 혼들을 정복하여 거짓된 종교를 지배 수단으로 쓰고 있다.<br/>불교, 힌두교는 폐쇄적이지만 천주교, 모슬렘, 공산주의, 주체사상 등은 강압적이다. 우상 숭배자들은 세상을 등지고 더럽게 산다. 마귀에게 정복을 당하면 정복한 자의 종이 된다(벧후 2:19). “죄를 짓는 자는 누구나 죄의 종이 된다”(요 8:34).<br/><br/>사람들이 종교를 숭앙하면 어떻게 되는가? 개선이 없게 되는데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숭앙자가 이름 붙이는 대로 되는 기분만 갖게 된다. “내가 부처에게 절을 몇 번 했더니 웃는 것 같더라. 시주를 많이 했더니... 절을 크게 지어 줬더니... 돈 많은 새 신도들을 데리고 갔더니...” 평생 동안 마귀를 좇고 이런 헛소리하는 지도층이 하라는 대로 하면 어떻게 되는가? 생이 파멸된다. 마귀는 인류에게 빛과 소망을 주는 것이 아니라 파멸시킨다. 그의 이름은 히브리어로 “아바돈”이요, 헬라어로는 “아폴루온”으로 “멸망”을 의미한다. 『사람에게 옳게 보이는 길이 있으나 그 끝은 죽음의 길들이니라』(잠 16:25). 그런 사람은 죄의 형벌과 지옥의 심판을 받게 된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목적은 그와 같은 마귀를 멸망시키고 마귀에게 사로잡혀 있는 거짓 종교 신봉자들을 구출하시려는 데 있었다. 『자녀들이 피와 살에 참여하는 자인 것같이 그 역시 같은 모양으로 동일한 것에 참여하신 것은 자신의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가진 자, 곧 마귀를 멸망시키시며 또 죽음을 두려워하므로 평생을 노예로 속박되어 있는 자들을 놓아주시려 함이니라』(히 2:14,15).<br/><br/>신앙(faith)은 『이제 믿음은 바라는 것들에 대한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증거』(히 11:1)라는 말씀에서 알 수 있다. 신앙을 지닌 사람은 믿을 대상이 있는데, 바로 창조주 하나님이시며, 삼위일체의 하나님이시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고, 그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그 말씀은 하나님이셨느니라. 그 말씀이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느니라. 만물은 그에 의하여 지은 바 되었으며, 이미 지음받은 것 가운데 그가 없이 지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더라.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요 1:1-4). 신앙은 거듭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려면 거듭나야만 한다. 아담의 범죄로 인해 죄를 전가받고 태어난 인간은 모두 영이 죽어서 태어났기에 영을 살려 받아야만 한다. 『바람이 임의로 불어서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듯이 성령으로 난 사람은 모두 그와 같으니라.”고 하시더라』(요 3:8). 영이 죽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을 받아들일 수 없다. 영이 거듭나지 않으면, 죄인은 혼이 마귀에게 속해 있기에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도 없고, 들어갈 수도 없다(요 3:3,5). <br/><br/>교회는 거듭난 사람들의 모임이다. 기독교라는 종교를 신봉하는 교회들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가 아니다. 교회가 세상 사람들을 모아 복음을 전할 수도 있지만, 교회는 거듭난 사람들에게 성경으로 진리의 지식을 가르쳐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되게 하고, 하나님의 다른 사역들(선교, 아이들 교육 등)을 감당할 수 있는 그리스도의 역군들을 길러내야 한다. <br/><br/>많은 교인들이 종교와 신앙을 구별하지 못한 채 종교가 신앙인 줄로 오해하고 생활하는 것을 볼 때 매우 실망스럽고 개탄스럽기까지 하다. 종교심은 그 사람의 기분을 상황에 따라 오르내리게 할 수는 있어도 실제로 그 사람의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는 없다. 왜 그런가? 종교심에는 거듭남이 없기 때문이다. 종교는 사람을 회개시킬 수 없다. 그를 주관하는 것이 마귀의 일시적인 세력은 될 수 있어도, 지속적으로 주관하는 인격은 아니기 때문이다. 죄인이 회개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면 죄인 됨을 자백하는 대상인 하나님 앞에서 해야 하는데, 죄인이 그 하나님께 인격적으로 다가서지 못한 채 자신의 기분으로 다가서서 눈물, 콧물 흘리며 울고불고했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받아주시고, 경청해 주시고, 승인하시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많은 교인들이 어떤 집회에 가서 감정에 복받쳐 울고불고했던 것을 회개라고 여기며 거듭난 것으로 간주하려 하지만, 그보다 더한 종교심이라 해도 종교심 자체는 그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없다. 반면에 자신이 죄인인 것을 인지하고 예수님께서 내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삼 일 만에 부활하신 사실을 성경대로 알고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믿고 영접했다면 울고불고 눈물, 콧물 흘리지 않았어도 그 순간에 거듭남(regeneration)이 이루어진 것이며 무려 38가지나 달라진 것을 차차 알게 된다. 그 사람에게서 나타난 처음 현상이 무엇인지 아는가? 영적 배고픔이다. 아무나 바른 성경을 찾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해서 거듭난 사람의 생활에는 변혁이 있지만, 종교심에는 변혁이 없다. 카톨릭, 공산주의, 주체사상, 불교, 힌두교, 유대교, 몰몬교, 안식교, 여호와의 증인들, 통일교, 구원받지 않은 개신교까지도 인생에 변혁이 없다. 그들은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 그들의 종교들을 부인하고 버릴 수도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소유한 성도들은 신앙을 목숨과 바꿀 수 있고 실제로 수많은 순교자들을 내었다. <br/><br/>종교심으로는 그 사람의 나쁜 습관들을 버릴 수 없다. 로마카톨릭 사제들은 담배를 피우고, 거의 습관적으로 술을 마신다. 카톨릭의 종교심으로는 그런 나쁜 습관조차도 단절할 수 없기에 차라리 수용해 버린 것이다. 개신 교회들은 담배와 술보다 더 나쁜 습관들을 공공연히 행하면서 하나님의 교회라고 한다. 즉 그들은 교회통합운동(Ecumenical Movement)을 공공연히 실행하고 있다. 또한 그들이 주장하는 교단 교리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은 그 교단 교리를 지킨다고 해서 또 안 지킨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br/><br/>어거스틴과 펠라기우스는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니 없니 하며 서로 적대시했을 뿐이다. 존 칼빈과 알미니우스도 서로 대립각을 세울 필요가 없었는데 적대시했을 뿐이다. 그들의 후예들은 지금 교회통합운동에 동참해 있다. 세계교회협의회(WCC)와 한국기독교총연합회가 손에 손잡고 폼 잡고 앉아서 정치에 개입하고 세상에서 인정받으려 애를 쓰고 있지 않는가! 그들은 그들의 종교 집단을 강화하고 확장하는 데 주력할 뿐 막상 하나님의 교회가 해야 할 거듭남의 재생산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지 오래되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영적 열매, 즉 구령의 열매와 성령의 열매이지 종교적 깜부기가 아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준수하고 실행할 의지가 없다. <br/><br/>영계의 법칙은 성령 하나님께서 거듭난 사람의 영에 역사하시고, 그 영은 혼에게, 그 혼은 몸의 행동을 요구하는 보이지 않는 명령 계통을 이루지만 종교에는 그런 체계가 없기에 무서워서 따르는 체하거나(공산주의, 김일성 주체사상), 억지로 따르는 체하거나(카톨릭, 이슬람), 무지해서 따르는 체한다(불교, 힌두교, 유교, 도교, 신도교). 개신교는 몸과 영혼이라는 이분법을 신봉하기에 성경적 교리가 그들 안에 뿌리내릴 수 없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들은 혼이 달관하는 것을 가르칠 수는 있어도 영이 거듭나는 것을 가르치거나 실행할 수가 없기에 세례로 물을 뿌리고, 주기도문과 사도신경을 암송하면 교회 명부에 이름을 올려 구원받은 성도로 간주하고 있다. 오! 그들이 죽으면 어디로 가는가? 틀림없이 지옥으로 간다. 성경은 인류가 존재하면서 내놓은 책들 가운데 유일하게 살아 있는 책인데(히 4:12, 요 6:63) 그들은 그 책을 죽은 책으로 만들어 죽을 사람들에게 거짓되고 무용한 것들을 교단 교리로 가르친 극악한 죄를 지은 자들이 되었다. 성경을 믿지 못하는 자들이 먹고살기 위해 성경을 말하고, 가르치고, 설교했다면 이 세상에서 인간이 지을 수 있는 가장 가증한 죄를 지은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들은 성경적 믿음을 전하는 신약 사도들이 아니라 기독교란 종교를 전하는 종교쟁이들이다. 카인의 종교와 아벨의 신앙도 구분할 줄 모르는 종교쟁이들이다. 그 결과 그들에겐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퉁이의 머릿돌이 아니라 걸려 넘어지는 돌이 되셨던 것이다(벧전 2:7,8).<br/>성경적 믿음이 없이 종교를 따라가면 지옥문에 다다르게 됨을 알아야 한다. 이것이 진리임을 잊지 말라. BB]]></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Thu, 27 Mar 2025 09:46:41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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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세례받으면 거듭나는가?</title>
<link>https://biblemaster.co.kr/bb13/%EC%84%B8%EB%A1%80%EB%B0%9B%EC%9C%BC%EB%A9%B4-%EA%B1%B0%EB%93%AD%EB%82%98%EB%8A%94%EA%B0%80/</link>
<description><![CDATA[몇 년 전(2010년 기준) 도쿄의 한 호텔에서 자기 딸의 권유로 온누리 교회 하용조 목사에게 세례를 받은 이어령 교수가 마치 거듭나기라도 한 것처럼 자랑삼아 이야기도 하고 &lt;지성에서 영성으로&gt;인가 하는 책도 쓴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그는 거듭났는가? 세례나 침례로는 자기 죄를 씻을 수 없다. 인간의 방법과 노력으로는 자기 죄를 씻을 수 없다. 죄를 씻는 능력은 그리스도의 피뿐이다. 세례를 받거나 침례를 받으면 자기의 죽은 영이 살아난 줄 알고, 자기가 원하는 교회에 다니고, 새벽기도회에 다니고, 찬송가를 부르고, 예배에 참석하여 설교를 듣고, 십일조와 연보를 내고, 십계명을 지키고, 제자훈련을 받고, 집사, 권사, 장로 직분을 수행하며 뭔가 하나님과 관계를 갖고 있다고 여기며 살았다면 살아서뿐만 아니라 죽어서도 비참한 고통을 받아야 한다. 그런 사람의 생애에서는 약간의 자의적 종교심 외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게 되며, 한 영이신 하나님과는 더더구나 아무런 관계도 형성되지 않게 된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것은 마법하는 죄와 같고 사람의 완고함은 행악과 우상 숭배와 같다고 말씀한다(삼상 15:23). 이 두 가지 죄를 지으면 사형에 처해져야 하는 것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법이다.<br/><br/>많은 사람들이 영이 거듭나지 않은 채 교회에 다니고 있는데 이것은 그야말로 무익한 짓이다. 그 이유는 이 세상 신인 마귀가 자기의 자녀들을 완고하게 만들어 그들로 진리의 빛을 보지 못하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려졌다면 그것은 구원받지 못한 자들에게 가려진 것이라. 그들 가운데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않는 자들의 마음을 어둡게 하여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복음의 광채가 그들에게 비치지 못하게 하느니라』(고후 4:3,4). 왜 이런 사람들이 생겨났을까? 거듭나지 못한 사람이 가르치는 위치에 서는 것이 그 첫 번째 이유이다. 거듭나는 것이 어려운 일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왜 신학교를 나오고 목사 안수를 받았어도 거듭나지 못했는가? 성경을 믿는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일수록 세례나 침례를 받은 일을 거듭난 것으로 짐짓 여기며 기독교란 종교 생활을 하려 한다.<br/><br/>교회란 거듭난 성도들로 구성된 모임으로서, 세상으로부터 성별된 하나님의 기구이다. 따라서 교회의 구성원은 사회 단체나 국가와 다르다. 또한 선교 단체는 교회가 아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선교 단체에서 일을 할 수는 있어도, 거듭나지 않은 선교 단체 회원이 교회로 자동 유입될 수는 없다. 선교 단체에서 일하며 그곳 채플(Chapel)에서 예배를 드리면서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다면, 그는 교회 회원으로서의 자격도 없고, 성도의 의무인 출석과 십일조도 하지 않게 된다. 주님께서 지상에 허락하신 기구는 교회 하나뿐이며, 선교 단체나 신학교 등은 모두 지역 교회 사역의 일환이 되어야 한다.<br/><br/>거듭남이 어려운 일이어서 거듭나지 않고 교회에만 다니며 세례나 침례받는 것을 거듭남으로 아는 것일까? 거듭난 사람은 누구나 구원의 간증이 있다.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도 없고, 거기에 들어갈 수도 없다(요 3:3,5). 사람은 두 번 태어나야 하는데, 한 번은 물로, 한 번은 성령으로 태어나야 한다. 즉 사람은 누구나 물로 태어나며(『육신으로 난 것은 육이요』), 그 다음에 복음을 믿고서 태어나면 영이 살아나게 된다. 『또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라』(요 3:6). 예수님께서 니코데모에게 이처럼 거듭남에 관해 설명해 주셨더니 니코데모는 사람이 자기 어머니 태에 두 번째 들어갔다가 태어나는 것인가라고 물었다. 이에 주님께서는 『내가 너에게 ‘너희는 거듭나야만 한다.’고 말한 것을 이상히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의로 불어서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듯이 성령으로 난 사람은 모두 그와 같으니라.』(요 3:7,8)라고 말씀하셨다. 거듭나야 하는 것은 영이다. 영이 거듭나게 되면 혼이 구원을 받게 된다. 이 두 가지는 동시에 일어나며 성경에는 거듭남보다는 구원받는다는 용어가 더 많이 사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롬 10:13)라는 말씀이 있다. 그 어떤 죄인이라도 자신이 죄인인 것을 인지하고 구원받기 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죄를 제거하시려고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사실을 믿으면 된다. 다만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하는 일이 필수적인데(롬 10:9,10), 이때 간과해선 안 되는 일이 회개이다. 회개란 지난날 육신의 주관하에 행해졌던 삶의 방식을 뉘우치고 성경 중심으로 바꾸는 자의적인 대혁명을 이룩하는 일이다. 이것이 없이 믿는다는 고백만으로는 영이 거듭날 수도, 혼이 구원받을 수도 없다. 그런데 하나님의 대적인 마귀가 이 일을 가만히 쳐다만 보고 있을 것 같은가? 마귀는 앞서 고린도후서 4:3에서처럼 복음에 연막을 쳐서 흐려 놓는 일을 하는데, 첫 단계에서부터 걸려들면 그 사람은 자기가 구원받은 것으로 착각하며 교회에 다니게 된다.<br/><br/>이 나라 개신 교회들은 이분법을 선호한다. 사람이 몸, 혼, 영으로 되어 있는 것(살전 5:23)을 무시하고, 몸과 영혼으로 되어 있다고 여기기에 첫 단추부터 성경을 무시하고 시작한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믿어야 영이 거듭나고 혼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데, 그들은 첫 단계에서 연막을 치고 혼란을 야기한 마귀의 덫에 걸려들어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br/>그 다음 단계가 세례와 침례이다. 세례는 성경에 없다. 세례와 침례로는 인간의 타고난 원죄를 씻을 수 없다. 다만 죄의 삯은 사망임을 알아야 한다(롬 6:23).<br/><br/>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믿지 않고 거듭나지도 않은 목사라는 자들이 누군가에게 교리문답이나 물어보고, 물을 뿌리거나 물에 집어넣은 것을 구원받은 것으로 간주했다고 해서 그것이 믿음이 될 수 있겠는가? 성경은 이 점에 대해서 분명히 지적하고 있다. 『행함이 없어도 불경건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그분을 믿는 사람에게는 그의 믿음이 의로 여겨지느니라』(롬 4:5). 『그러나 누구든지 그를 영접한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즉 그의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니라』(요 1:12).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옛 것들은 지나갔으니, 보라, 모든 것이 새롭게 되었도다』(고후 5:17).<br/>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공언하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거절하고, 세례를 구원받는 수단으로 받아들이고 실행하는 것은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성경을 믿기 싫어하는 사람들이 교회에 다니며 구원받은 사람으로 행세하려 할 때 거기에는 온갖 이단 교리들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거듭나면 예수님께서 영으로 그 사람 안에 들어가 계시기에 성령님께서 구원받은 확신을 일깨워 주시므로 자신이 구원받은 사실을 알 수 있다.<br/><br/>로마카톨릭은 지역을 관장하는 수단으로써 갓난아기가 태어나면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들에게 세례를 주고, 교회에 속하면 하나님의 자녀인 것처럼 인정했다. 아이가 자라면서 자기는 카톨릭 교회에서 유아세례를 받았기에 거듭난 것으로 알고 살았고, 특히 그 아이가 여자아이라면 혼인을 해서 아이를 낳았을 경우 자기 아이도 유아세례를 받게 하여, 그때부터 어머니의 신앙을 유전받은 것으로 알아 공공연하게 모태신앙이란 용어를 쓰며 자신을 자랑한다. 그러나 그 아이나 어머니나, 어머니의 어머니에게도 아무런 영적인 일이 일어나지 않았고, 그들은 마귀의 자식들로 살았기에 죽으면 지옥에 가는 것이다. 유아세례야말로 속임수 중의 가장 큰 속임수이며 여기서부터 복음이 무력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br/><br/>아우렐리우스 어거스틴(Aurelius Augustine, A.D. 354-430)은 유아세례를 거부하는 사람들을 저주하려고 A.D. 415년에 누미디아 공회(Council of Numi- dia)를 소집했다. 하나님의 은혜로 복음을 믿고 거듭난 사람들은 자기가 받은 유아세례가 성경적으로 이단 행위였음을 알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다시 침례를 받았는데, 이를 “재침례”라고 부른다. 재침례를 받은 이들은 카톨릭이 행한 유아세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시인하고 선포하는 것이기에 카톨릭은 그때부터 재침례받은 사람들을 이단이라고 주장하며 박해하기 시작했다.<br/><br/>A.D. 335년 콘스탄틴이 로마 제국에서 박해받은 그리스도인들을 풀어 주면서 자신을 그리스도인 황제로 드러내기 위해 처음 시작한 일은 무자비하고 피에 취한 자신의 군인들에게 물을 뿌려 주고 그들을 교회에 집어넣는 것이었다. 실로 그는 기독교 신앙을 그야말로 가장 잔인하게 파괴한 자였다. 그들 이교도 군인들이 세례로 소위 그리스도인이 되어 교회 안으로 유입되자 교회 안의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견딜 수 없었기에 교회를 떠나 버렸다. 그때부터 카톨릭 교회가 기독교 신학의 탈을 쓰고서 등장했는데, 이때 마귀는 세 가지 목적을 달성했다. 즉 그것은 가짜 성경, 가짜 교회, 가짜 신(교황)이었다. 그때 이래로 마귀가 세운 교회들은 장로교, 감리교, 성공회, 루터교 할 것 없이 모두 사람들에게 물을 뿌려 주어 자칭 거듭난 성도로 만들어 주는 인간의 전통을 실행해 오고 있다. <br/><br/>그러면 침례는 어떤가? 침례 구원론은 사도행전 2:38을 잘못 해석한 데서 비롯되었다. 『회개하라. 그리고 죄들을 사함받은 것으로 인하여 너희 각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라.』 이 구절은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에 사도 베드로가 유대인들에게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은 이 예수가 메시아이시다.”라고 설교했을 때 유대인들이 가슴을 쓸어내리며 『형제 여러분, 우리가 어찌하여야 하리이까?』(행 2:37)라고 물었던 데에 대한 답변이었다. 그때는 아직 제대로 된 신약 교회도 없었고, 신약성경이 없었기에 신약적 교리도 없었다. 사도 베드로의 답변인 사도행전 2:38은 결코 신약 교회 시대의 구원 교리가 될 수 없는 것이다. <br/><br/>위에 인용된 유대인들의 질문은 빌립보 감옥에서 자결하려던 간수가 바울과 실라에게 『선생님들이여, 내가 구원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이까?』(행 16:30)라고 물었던 것과 다르다. 바울이 간수에게 했던 대답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안이 구원을 받으리라.』(행 16:31)였다. 하지만 사도행전 2장에서 베드로의 답변은 『회개하라. 그리고 죄들을 사함받은 것으로 인하여 너희 각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라.』(행 2:38)였다.<br/>여기서 주의할 점은 첫째, 베드로가 말했던 대상은 율법과 십계명을 지키고, 안식일을 지키며, 돼지고기도 먹지 않고, 수염도 자르지 않은 유대인들이었다는 것이다. 둘째, “죄들을 사함받은 것으로 인하여”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죄를 이미 용서하셨음을 의미한다. 셋째, 사도행전은 교리서가 아니다. 로마서에서 빌레몬서까지, 즉 바울 서신들이 신약 교회가 따라야 할 교리서이다. 사도행전을 교리의 근거로 보고서 실행하려는 자들은 모두 이단이 되었다. 넷째, 그날 이후 베드로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는다고 바꾸어서 설교했다(행 10:43; 11:17; 15:11).<br/><br/>소위 그리스도의 교회는 사도행전 2:38 때문에 아직도 미몽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침례를 받으면 거듭나는 줄로 알고 행하는 이단이 되었다. 그러나 침례는 죄인이 구원받는 것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침례는 죄인이 구원받는 모형일 뿐이다.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인하여 이제 우리를 구원하는 모형이니, 곧 침례라. (이것은 육체의 더러움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응답이라.)』(벧전 3:21). <br/>어떤 이단들은 자기들은 세례를 주지 않고 침례를 주기 때문에 침례받으면 거듭난 것이라고 믿는다. 썩은 씨앗을 심었는데 싹이 나고 꽃이 피며 열매가 맺히겠는가? 태어나지 않은 생명이라면 성장 자체가 없을 것 아닌가! <br/><br/>교회에 다니는 것이 그리도 소중한가? 왜 소중한 것인가? 죄의 형벌과 지옥의 심판에서 구원받기 위함이 아닌가? 그렇다면 먼저 거듭나고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며 섬겨야 한다. 지상에 사는 동안 주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기대하고 살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군사로서 마귀의 계략에 대항하며, 복음을 전파하여 구원받지 못한 마귀의 자녀들을 그리스도께로 이겨오는 일을 해야 한다. 전도라는 미명으로 사람들을 교회에 데려오는 일이 아니라 복음으로 그들의 혼을 이겨와야 한다. 인간이 만든 교리는 헛짓에 불과할 뿐, 거룩하신 하나님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너희는 너희가 전수한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기하느니라. 또 이와 같은 많은 일을 자행하고 있도다』(막 7:13). BB]]></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Thu, 27 Feb 2025 17:09:24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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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라오디케아 교회 시대는 얼마나 오래갈 것인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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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CDATA[예수님께서 태어나신 연도가 B.C. 4년이었다면 주님께서 승천하신 해는 A.D. 30년으로 여겨진다. A.D. 30년부터 1999년 현재까지 무려 1969년 동안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의 말씀의 약속을 붙든 사람들은 한결같이 휴거의 순간을 고대하며 살아왔던 것이다. 그야말로 모두가 주를 앙망하는 자들로서 주님을 위하여 주님 안에서 주님을 기다리다가 주님 곁으로 간 사람들이다.<br/><br/>신약성경이 완성된 뒤로 데살로니가전서 4:13-18; 5:1-11, 디도서 2:13 등의 약속을 붙든 사람들은 그들의 생애가 그리스도 안에서 마감되면서도 자기의 당대에 휴거되지 못했음을 아쉬워했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휴거되지 못하고 셋째 하늘로 간 사람들에게 어떤 실망도 주지 않으셨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 것이며[예수님께서 공중으로 재림하시면 혼은 다시 몸과 결합되며] 또 살아서 믿는 자는 누구나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살아 있는 동안에 휴거되면 죽음을 맛보지 않게 된다].』(요 11:25,26)라고 말씀하셨다. 한 가지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우리의 변화 받을 몸이 현재의 몸이 아니라는 점이다. 현재의 몸인 혈과 육은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을 수 없다. 이 몸은 썩을 몸이기에 썩지 않는 것을 상속받을 수 없는 것이다.<br/><br/>A.D. 30년부터 1999년 현재까지 성경은 일곱 가지 교회를 들어 말씀하고 있다. 이 일곱 교회들은 역사적으로는 A.D. 90년 사도 요한의 때에 소아시아에 있었던 일곱 개의 교회들을 말한다. 하지만 성경에서 이들 일곱 교회의 의미가 단순히 당시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라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br/>사도 요한은 이 일곱 교회를 교리적으로 설명하였다. 즉 대환란 때의 일곱 교회로 적용시켰다. 그렇기 때문에 요한계시록 4장에서 19장까지는 교회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보다도 훨씬 더 의미심장한 것은 영적으로 볼 때 이들 교회들이 “사도행전에서 시작되어 휴거될 때까지” 일곱 유형의 지역 교회를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br/><br/>1. 에베소 교회(A.D. 33-100) : 이 교회는 강한 정통성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면서 수고하였다. 그러나 점점 의식적이고 형식적으로 변모되어 감으로써 처음 사랑을 저버린 교회가 되었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들의 잘못을 회개하고 첫사랑을 회복해야 하는 것이었는데, 결국 첫사랑을 회복하는 데 실패했다.<br/><br/>2. 스머나 교회(A.D. 100-325) : 로마제국은 사탄의 사주를 받아 이 지상에서 그리스도인들을 진멸시키려 했다. 한편 교회의 지도자들은 교회가 이스라엘을 대신하고 그리스도인이 유대인을 대신하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신 약속을 받았다고 가르쳤다. 이때부터 무천년주의와 후천년주의 종말론이 생겨나게 되었고, 사람들은 성경을 제멋대로 해석하기 시작했다. 실제적인 유대인을 무시하고 자칭 영적 유대인들이 등장한 것이다. 그들은 자칭 유대인들이 아니라 오히려 사탄의 회당이 되었다(계 2:9). 그리스도인들을 말살시키고 진리를 훼손하는 가운데 목숨을 걸고 진리를 지키려 함으로 인해 많은 순교자들이 생겨났다. &lt;폭스의 순교사&gt;는 이 시대의 순교자들을 많이 다루고 있다. 그리스도의 증인들(순교자)이 많은 이 교회를 주님께서는 오히려 부요한 자라고 칭찬하셨다. <br/><br/>3. 퍼가모 교회(A.D. 325-500) : 주님께서는 이 시대의 교회에는 사탄이 거한다고 하셨다(계 2:13). 퍼가모 교회 시대의 교회는 세상과 짝짜꿍함으로써 종교라는 껍질만 있었을 뿐 신앙은 없는 사탄의 회당으로 변모해 버렸다. 제사장 직분, 십자가, 크리스마스, 부활절 등 온갖 종교 쓰레기가 등장하여 예배라기보다는 의식과 형식으로 가득 찼고, 교회 건물이 하나님의 권위를 대신했던 시대였다. <br/>이 시대의 온갖 형식주의가 그대로 암흑시대(A.D. 500-1500)를 거쳐 오늘날 제도화된 교회들의 전통이 되어 실행되고 있다. 이런 형식적인 교회가 교인들에게 성경을 읽지 못하게 함으로써 진리의 불빛을 꺼 버린 것은 필연적인 일이었다. <br/><br/>4. 두아티라 교회(A.D. 500-1000) : 이 교회가 존재했던 시기는 문자 그대로 “암흑시대”였다. 로마카톨릭 교회가 정치에 관여하게 되자 거기에는 십자군 원정 등 끝없는 전쟁의 소용돌이뿐이었다. 복음을 전파하고 진리를 가르치는 것은 완전히 배제된 채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뿐만 아니라 그분 자신을 완전히 버리는 교회였다. 바른 성경 없이 진리를 깨닫는다는 것은 불가능함을 보여 준 것이다.<br/><br/>5. 사데 교회(A.D. 1000-1500) : 사데 교회는 암흑시대 안에 있으면서 교회라는 불빛이 완전히 꺼져 버린 기간이었다. 이 교회는 말만 교회였지 교회의 구실을 전혀 할 수 없었다.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할 수 없는 교회가 오늘날에도 얼마나 많은가!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권위를 하나님의 피로 사신 하나님의 교회에 맡기신다. 하나님께서 자격 있다고 판단하실 때 맡기신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맡기시지도 않았는데 인간이 그것을 취해 버리면, 본질은 물론, 방향, 내용, 순수성, 책임감, 성과 등 모든 것이 잘못되어 버린다는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br/>오늘날도 자칭 목사, 자칭 부흥사, 자칭 선교사, 자칭 성경교사에 의하여 성경적 교리는 심하게 훼손되어 복구가 불가능하게 되어 버렸다. 이런 자들이 설친 곳에 남는 것은 배교뿐이다. <br/>육신적인 인간들의 발상으로 영적인 일을 수행하려 할 때 거기에는 은사도 열매도 능력도 드러나질 않게 된다. 그래서 그들은 교회 건물만 웅장하게 지으려 하는 것이다. 이것은 복음을 전파하고 진리를 가르쳐야 할 교회가 그 역할을 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br/><br/>6. 필라델피아 교회(A.D. 1500-1900) : “필라델피아”는 A.D. 1500-1900년을 대표하는 교회의 이름이다. 이 교회는 앞선 다섯 교회 유형에서 꺼져 버렸던 복음의 불씨를 살려내어 활활 타오르게 하였던 기간이었다. 마틴 루터가 로마카톨릭의 사탄적 교리에 항거하여 종교 개혁을 일으켰으며, 그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의 손에 비로소 성경이 들려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바른 성경 없이 믿음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은 여기서도 증명된다. <br/>루터가 맨 먼저 착수한 것은 교회를 짓는 일이 아니라 “성경”을 번역하는 일이었다. 루터의 독일어 성경은 &lt;한글킹제임스성경&gt;과 맥을 같이하는 종교 개혁 성경이었던 것이다. 종교 개혁 성경을 버리면서도 종교 개혁의 후예라고 떠드는 자들은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필라델피아 교회만이 주님께로부터 회개하라는 말을 듣지 않았다. 이 교회야말로 참된 그리스도의 몸이었음을 말해 준다.<br/><br/><br/>7. 라오디케아 교회(A.D. 1900-현재) : 라오디케아 교회는 1900년부터 시작하여 현재까지 마지막에 이르고 있다. 이 교회의 특징은 “배교”이다. 그들의 주장은 정통이라지만 이것은 말뿐이요 친카톨릭 교회들이며 카톨릭의 전통과 사회참여, 그리고 종교통합운동을 거쳐 하나님을 부인하고 인간을 신격화하는 뉴에이지 운동으로 적그리스도가 활동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고 있다. <br/>이 교회는 덥지도 차지도 않아 주님께서 그분의 입에서 토해내겠다고 하셨다. 이 교회를 이름하여 “민권 교회”라 한다. 신권(Divine Authority)은 사라져 버리고 민권(Human Authority)이 신권을 대신하고 있다.<br/><br/>그리스도인들이 학수고대하는 순간은 우리 몸이 구속을 받는 휴거의 순간이다. 주님께서 공중에 재림하시어 우리를 부르시면 우리 몸은 눈 깜짝할 순간에 빛보다 빠르게 솟구쳐 올라갈 것이다. 휴거에는 어떤 다툼도 자랑도 증명도 필요 없게 된다. 거짓말하실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과 그 약속을 믿은 사람들의 희열(Rapture)만이 있을 뿐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사실 이 순간을 위하여 고난과 박해 속에서도 헌신과 섬김을 통해 주님을 따랐던 것이다. 자, 이제 우리의 관심사는 이 라오디케아 교회 시대가 얼마나 오래갈 것인가이다.<br/><br/>교회 시대의 끝을 지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기대는 분명히 A.D. 325년에 살았던 그리스도인들의 기대와는 다르다. 또 A.D. 500-1000년에 살았던 그리스도인들과도 다르며, 필라델피아 교회 시대인 A.D. 1500-1900년에 살았던 이들과도 다르다. 복음이 꽃피었던 그 시기는 분명 마지막 때라고 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라오디케아 교회의 마지막을 성경은 이렇게 밝혀 주고 있다. 『이제 성령께서 분명히 말씀하시나니, 마지막 때에 어떤 자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들과 마귀들의 교리들을 따르리라』(딤전 4:1). 『또 이것을 알라. 마지막 날들에 아주 어려운 때가 오리라.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고 교만하며, 하나님을 모독하고 부모에게 불순종하며, 감사하지 아니하고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고, 화해하지 아니하며, 모함하고 절제하지 못하며, 사납고,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반하고 분별이 없으며, 자만하고 쾌락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리니, 이런 자들에게서 돌아서라』(딤후 3:1-5).<br/><br/>성경은 적그리스도가 칠 년간 이 세상을 통치하기에 앞서 “미혹”과 “배교”가 만연할 것임을 지적해 주고 있다. 『아무도 어떤 모양으로든지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이는 먼저 배교하는 일이 이르지 않고, 또 그 죄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지 않고서는 그 날이 오지 아니함이라』(살후 2:3). 여기서 “미혹”이란 거짓을 참된 것으로 믿게 하는 마귀가 쓰는 무기이며, “배교”란 성도들이 성경과 믿음을 버리고 제멋대로 믿는다고 나서는 현상을 말한다.<br/>이 라오디케아 교회 시대를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지난 여섯 개 유형의 교회 시대를 살았던 그리스도인들과 다르다. 우리가 부르는 찬송가는 그 대부분의 가사를 필라델피아 교회 시대에 살았던 신실한 주의 종들이 썼다. 주님의 재림을 사모하는 감동과 영감이 서린 가사요 곡조들이다. 그러나 그 시대는 미혹과 배교의 시대가 아니라 복음의 불길과 선교의 불길이 세계 도처에서 타오른 시기였다.<br/><br/>그러나 지금 우리가 지나고 있는 교회 시대의 끝은 다르다. 미혹과 배교가 만연하여 무슨 대책을 강구할 수 없는 부패의 절정에 다다랐다. 교회는 많은데 막상 가야 할 교회가 없고, 교인은 많은데 구원받아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행하려 하는 그리스도인은 드물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그런 현상은 알곡은 몇 안 되고 거의가 쭉정이인 것이다. 알곡은 창고로 들이고 쭉정이는 불태워야 하는데 창고에 들일 알곡이 적다.<br/><br/>라오디케아 교회 시대는 얼마나 오래갈 것인가? 아무리 성경을 뒤져 봐도 그리 오래갈 것 같지 않다. 그 이유는 첫째, 라오디케아 교회 이후에는 다른 교회가 없다. 둘째, 현재 기독교계, 로마카톨릭 교계, 다른 이방 교계, UN에서 추진되거나 실행되고 있는 일들은 적그리스도가 와서 활동하기에 알맞은 무대와 풍토를 조성해 주고 있다. 셋째, 석유 자원의 고갈, 물의 오염, 대기 오염, 자연재해(산불, 지진, 가뭄, 홍수, 태풍), 동식물의 유전자 조작, 하나님께 도전하는 우주개발, 도덕의 타락, 구원 없는 학교 교육의 무력함, 술과 마약의 증가, 이름 모를 병원균과 에이즈 등의 질병과 그에 대한 무대책, 농약으로 오염된 식물, 대지의 황폐화 등은 세상이 끝에 다다랐음을 보여 주고 있다.<br/><br/>당신은 하나님 없이 인생을 설계하고 있는가? 당신이 어떤 방식으로 인생을 살아 갈 것인가를 준비한다면 당신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이제 당신은 어떤 형태로 죽을 것인가를 생각해 봐야 한다.<br/>세상이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인간에게 보여 주는 것은 절망뿐이다. 어느 한 가지도 붙들 것이 없다. 당신이 당신의 뜻대로 인생을 설계하는 것은 자유이다. 그러나 돈이 당신을 죽음에서 구해 줄 수 없다는 것을 아는가? 권세와 명예가 당신을 죽음에서 구해 줄 수 없다는 것도 아는가? 당신을 죽음에서 구해 줄 수 있는 분은 지옥과 사망의 열쇠를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다(계 1:18). 『그 아들이 있는 자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는 생명이 없느니라.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런 것들을 씀은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며, 또한 너희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도록 하려 함이라』(요일 5:12,13).<br/><br/>이 시대를 살아가는 당신에게 창조주시며 구속주이신 하나님께서 다정하게 권면하신다.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의 말씀이 있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어두운 곳에서 빛나는 빛에 주의하듯 이 예언의 말씀에 주의하는 것이 잘하는 것이니라』(벧후 1:19). 이는 라오디케아 교회 시대가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BB]]></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Fri, 31 Jan 2025 17:53:12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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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만일 성경이 없었더라면</title>
<link>https://biblemaster.co.kr/bb13/%EB%A7%8C%EC%9D%BC-%EC%84%B1%EA%B2%BD%EC%9D%B4-%EC%97%86%EC%97%88%EB%8D%94%EB%9D%BC%EB%A9%B4-1/</link>
<description><![CDATA[만일 성경이 인류에게 주어지지 않았더라면 세상은 어떻게 되었을까? 두말할 것도 없이 인간은 어둠 속에서 허우적거리면서 죽어 갔을 것이다. 역사의 시작도 없었고, 문명도 없었으며, 도덕과 질서도 없이 오직 생명을 영위하기 위해 적자생존이 생활방식이 되어 정글의 짐승들처럼 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전쟁은 일상이 되었을 것이고, 전쟁으로 인한 살인, 복수, 정복, 약탈과 죄악이 지금보다 몇십 배 더했을 것이다. <br/><br/>그 무엇보다도 심각한 문제는 무엇이 진리이고 거짓인지, 무엇이 선이고 악인지, 그 구분이 모호하게 되어 인간의 잣대로 그것을 규정함으로 인해 세상은 요지경이 되었을 것이다. 현대 종교처럼 사람들이 많이 추종하는 종교, 사람들이 많이 모인 교회와 종파들이 인정을 받았을 것이며, 현대 교육처럼 사람은 원숭이에서 진화되었고 인간은 병들고 늙고 죽어 가면서도 진화되어 간다고 헛소리를 했을 것이다. 대학들에서는 그런 얼간이들이 교수가 되어 진화론 추종자들을 계속 양산해서 창조의 영역을 잠식하고, 국가고시부터 각종 기관과 회사의 취직 시험에도 진화론 문제를 출제하여 인재를 모집하는 기준으로 삼아 온 세계가 비진리로 하나 되었을 것이다. 정신병원은 지금보다 몇 배가 많아지고, 사람들은 지금보다 더 맥없어져서 삶의 목표와 방향을 상실한 채,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을 지상의 과업으로 삼아 될 대로 되라는 방식으로 살다가 끝장을 내고 지옥으로 가게 되었을 것이다.<br/><br/>하나님께서 재창조를 시작하시고 가장 먼저 하셨던 일은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더라.』(창 1:3)였다. 하지만 이 빛은 우리가 매일 받고 있는 햇빛이 아니다. 어떻게 그걸 알 수 있는가? 시편 74:16의 『낮도 주의 것이요 밤도 주의 것이니 주께서는 빛과 해를 예비하셨으며』로 알 수 있다. 창세기 1:5에서 『낮』을 고딕체로 표기했다(영어 &lt;킹제임스성경&gt;에서도 Day의 첫 자를 대문자로 표기했다). 이 『낮[Day]』은 성경에서 24시간을 말하기도 하고, 1,000년을 가리킬 수도 있다.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벧후 3:8). 그뿐 아니라 낮(Day)은 하나님께서 누군가를 다루시는 한 경륜(dispensation)의 기간을 의미할 수도 있다. 『(말씀하시기를 “기뻐 받아들여진 때에 내가 네 말을 들었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도다.” 하였으니, 보라, 지금이 기뻐 받아들여진 때요, 보라, 지금이 구원의 날이라.)』(고후 6:2). <br/><br/>태양계의 해와 달과 별들은 창세기 1:14-16에 나온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낮을 밤에서 나누기 위하여 하늘의 창공에 광명들이 있으라. 그것들로 하여금 징조들과 계절들과 날들과 연도들을 위해 있게 하라. 그리고 광명들은 하늘의 창공에 빛이 되어 땅 위에 빛을 주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께서 두 가지 큰 광명을 만드사, 큰 광명은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은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별들도 만드시니라.』 하나님께서는 24시간 안에 해와 달뿐만 아니라 별들도 만드시고 그것들의 이름들도 다 지으셨다. 『그가 별들의 수를 헤아리시고 그들을 모두 그들의 이름으로 부르시는도다』(시 147:4).<br/><br/>태양과 달의 중요한 기능은 어두움으로부터 빛을 나누는 것이다(창 1:4,18).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고 영접하여 거듭난 성도라면, 자신이 어느 편에 서 있는지를 확실하게 알고 믿어야 한다. 어떤 교회가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인가, 어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가를 구별하지 못한 채 교회통합이나 종교통합에 휩쓸리고 있다면 그는 하수처리장보다 더 더러운 오물을 뒤집어쓰게 되어, 영적 저능아나 노숙자로 전락하게 됨을 알아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태양이시고, 달은 태양빛을 반사하는 그분의 교회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없는 교회는 빛을 반사할 수 없어 그분의 교회가 될 수 없다. 따라서 어두움에서 분리되어서 어두움을 밝히지 못하는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이 아닌 셈이다(엡 5:7-17, 골 1:13, 살전 5:1-6). 예수 그리스도는 신랑이요, 교회는 그분의 신부이다. 『내가 너희를 한 남편에게 정혼시켰나니 이는 한 순결한 처녀로 너희를 그리스도께 바치려는 것이라』(고후 11:2).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그분께 존귀를 돌리세. 이는 어린양의 혼인식이 다가왔고 그의 아내도 자신을 예비하였음이라』(계 19:7). <br/><br/>성경은 왜 이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책인가? 성경은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들이 기록된 것을 믿음으로 받는 책이기에, 거듭나지 않고 믿음도 없는 어두움의 자식들이 펼쳐 보고, 읽는 체하고, 신학교 다니고, 박사학위 받고, 목사 한다며 설교하고, 무슨 책을 쓴다고 설쳐도 성령님과는 무관한 일이기에, 그들은 알 수 없고 조명을 받을 수도 없다. 그들이 아는 것이라곤 사실적인 것들뿐이다. 예를 들면, ‘노아가 방주를 지었다.’ ‘모세가 홍해를 건넜다.’ ‘여호수아가 요단 강을 건넜다.’ ‘다윗이 밧세바와 놀아났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처형되셨을 때 마지막에 뭐라고 외쳤던가!’ ‘베드로가 주님을 세 번 부인했다.’ ‘바울이 빌립보 감옥에서 지진이 났을 때 그곳 간수를 구령했다.’ 등등이다. <br/><br/>그들에게는 성령님께서 주시는 영적 조명이 없기에 성경이 어려운 책이 된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거듭난 성도들에게 성경을 상고하고(요 5:39) 성경을 공부하라고 명령하셨다.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성경을 체계적으로 공부하지 않은 사람은 성도라 할지라도 성경을 알 수 없다. <br/><br/>생각해 보라! 성경을 체계적으로 공부하지 않은 사람도 성경을 알 수 있다면 그가 아는 지식을 가지고 나가서 무슨 짓을 하겠는가? 조용기, 김삼환, 장경동 목사 같은 사람들이 진리의 지식을 알았다면 현 위치에서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요일 2:15-17),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다”(딤전 6:10),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결코 없어지지 아니할 것이다”(마 5:18),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라”고 외칠 수 있겠는가? 만일 그들이 이런 주제로 설교했다면 그들의 회중들이 뭐라고 하겠는가? 돌았다고 할 것이다. 인생은 부정적이다. 성경은 부정적이다. 그러므로 긍정적인 사고방식은 잘못된 것이다. 구원받지 않고 죽으면 누구나 지옥에 간다. 성경대로 섬기지 않으면 상이 없다. 성령 하나님께서는 목사라고 나선 사람이면 아무나 하나님의 종이라 여기지 않으시고 조명의 문을 닫아 버리신다. 그래서 그들은 어떤 영적 각성이나 깨달음도 받지 못한 채, 심지어 바른 성경의 필요성도 모른 채 사역한다고 하고 있다. <br/><br/>성경은 아무나 아는 책이 아니다. 성경을 기록된 대로 믿지 않는 자들은 진화론자들과 다를 바 없다. 진화론 같은 과학이나 철학을 배우는 것이 세상 교육이다. 세상 사람들은 이것들을 배우느라고 어린 나이에서부터 30세가 될 때까지 세상 책과 씨름해야 하는데, 그들은 그 책들이 아무것도 기여할 수 없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시간, 노력, 돈을 낭비하고 있다. 세상 책이 기여할 수 없는 일 중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1 가족을 옳게 양육할 수 없다. 2 죄로부터 멀리하는 일을 실행할 수 없다. 3 사고를 예방하지 못한다. 4 삶을 바르게 영위하지 못한다. 5 이웃을 선하게 돕는 일을 하지 못한다. 6 건강을 제대로 유지하지 못한다. 7 절대자로부터 응답받지 못한다. 8 복음을 전하여 새 생명을 태어나게 하지 못한다. 9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 사후의 생에 관하여 알지 못한다. 10 그리스도의 심판석과 큰 백보좌 심판 때, 어떤 사람이 누구 앞에 서야 하는지 모른다.<br/><br/>성경은 철학을 헛된 속임수라고 말씀한다(골 2:8). 그래서 소위 학자라는 자들은 철학이란 학문으로 노략질하는 자니 주의하라고 하셨다. 약 30세까지 세상에서 공부한다고 하는 자들은 모두 철학이란 학문으로 노략질당했던 것이다. 세상 학문을 연구하려는 자들은 살림을 털어 바치게 된다. 부모의 허리가 굽고, 살림살이는 거덜나고, 배운 것은 쓸모가 없고, 원하는 일은 하지 못하고... 과학은 어떤가? 비속하고 허황된 말장난이며, 거짓되이 일컬어지는 것이라고 단정한다(딤전 6:20). 세상 종교는 어떤가? 세상 종교는 인간의 행위이다. 진정한 종교는 자신을 세상과 격리시키는 것인데, 오히려 세상을 닮아 가고 흉내 내려 하며, 세상일에 관여하고 흥미를 가지며, 세상으로부터 인정을 받으려 한다. <br/><br/>고타마 붓다(Gotama Buddha, B.C. 563-483)는 나름대로 자신의 깨달음을 말했다. 카르마(Karma), 즉 업보는 회개한 의식을 통해 죗값을 치를 수 있다고 여겼다. 피흘림이 없이는 죄사함이 없다는 성경적 진리를 몰랐었다. 그는 인간의 마음이 공(空)에 다다르면 무한에 도달할 수 있고, 최상에 도달할 수 있으며 우주와 하나 될 수 있다고 여겼다. 그래서 네 자신을 믿고 네 마음과 의지를 쓰라고 했고, 마귀는 없다고 했다. 붓다의 추종자들이 이것을 종교화해서 우상을 만들기 시작했다. 성경은 불교, 힌두교, 기타 우상을 섬기는 자들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들의 우상들은 은과 금이며 사람의 수공물이라. 그것들은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코가 있어도 냄새 맡지 못하고 손이 있어도 만지지 못하며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하고 목구멍을 통하여 말하지도 못하는도다. 그것들을 만드는 자들은 그것들과 같으며 그것들을 신뢰하는 모든 자들도 그러하도다』(시 115:4-8).<br/><br/>성령으로 거듭나지 않고 말씀으로 양육받지 못한 사람들은 성경을 종교적인 경전으로 치부한다. 기독교 서적, 교회 다니는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책, 예배 때에 필요한 책 등으로 말한다. 하지만 성경은 인류의 역사책이다. 성경이 없었다면 인류 역사의 시작과 그 연대를 모르게 되어 있다. 우주가 어떻게 생성되었고, 최초의 인류가 어떻게 지음 받았는지, 어디서 그 일이 시작되었는지, 누구에 의해서 만들어졌는지 모르게 되어 있다. <br/><br/>이 지상의 인류는 교육, 종교, 인종, 국가와 언어, 노벨상, 기네스북과 관계없이 동일한 달력을 쓰고 있다. 이 달력은 한 분의 탄생을 기점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아무도 거부하지 못한 채 사용하고 있다. 제국들이 그들의 연호를 따라 달력을 만들기도 하지만, 전지전능하신 창조주시요, 우주의 운영주시요, 인간을 다스리시는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딤전 6:15)이신 분께서 허락하지 않으셨던 것이다. 그분이 성경을 기록하신 분이시다. 성경은 그 안에 무엇이 기록되어 있는지를 이미 선언해 놓으셨다. 이 책은 완전한 진리이다. 왜 진리인가? 인간의 죄와 죽음, 의, 도덕, 사후 세계에 대한 진리를 담고 있으며, 과거에 일어났던 일, 미래에 일어날 일에 관해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br/><br/>성경의 정확도는 믿음과 불신의 문제이지 학문적 연구와 철학적 고찰의 문제가 아니다. 성경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한 일은 반드시 역사 속에서 일어나게 되어 있다. 사람들은 핵을 무서워하지만, 성경은 핵을 무서워하는 사람들을 지옥으로 날려 보낼 수 있는 책이다. 성경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자녀들이 피와 살에 참여하는 자인 것같이 그 역시 같은 모양으로 동일한 것에 참여하신 것은 자신의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가진 자, 곧 마귀를 멸망시키시며 또 죽음을 두려워하므로 평생을 노예로 속박되어 있는 자들을 놓아주시려 함이니라』(히 2:14,15). <br/><br/>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죄를 제거하시려고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셨다. 이 말씀을 순수한 마음으로 믿고, 그분을 영접하면, 죄를 씻고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아무 교회나 다니게 하려고 죽으신 것이 아니라, 영이 거듭나고 혼이 구원받게 하시기 위해 죽으셨다. 영원히 죽고 사는 것은 당신의 믿음에 달려 있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기록하신 목적은 어둠 속에 있는 자들을 빛으로 데려오시기 위함임을 알라. 『그러나 너희는 선택받은 세대요 왕 같은 제사장이며, 거룩한 민족이요, 독특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움에서 불러내어 그의 놀라운 빛으로 들어가게 하신 분의 덕을 너희로 선포하게 하려는 것이니라』(벧전 2:9). BB]]></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Fri, 03 Jan 2025 08:16:15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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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당신의 크리스마스는 경건한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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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CDATA[요셉과 주의 모친이 그 아기에 관한 것을 듣고 이상히 여기더라』(눅 2:33). 헬라어 표준원문(Textus Receptus)과 다수 필사본(Majority Text)이라 불리는 전통 원문들(Traditional Texts)은 모두 이 구절이 “요셉과 주의 모친”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웨스트코트와 홀트(Westcott and Hort)의 변개된 카톨릭 필사본에는 “그 부모”라고 되어 있다. 이 말은 예수님이 요셉의 아들이란 뜻이다. 당신이 이런 개역성경/개정판을 성경으로 여기며 교회에 다니면서 크리스마스를 지키려고 캐럴을 불렀다면, 당신은 교인도 아니고 거듭난 그리스도인도 아니며 위선자요, 하나님의 아들을 모독하는 벨리알의 자식인 것을 알아야 한다.<br/><br/>예수님 당시에 유대인들, 특히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을 요셉의 아들이라고 짐짓 여겼던 것을 알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br/><br/>1 『너희가 아브라함의 씨인 것을 내가 아노라. 그러나 너희가 나를 죽이려고 하는 것은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을 곳이 없기 때문이라』(요 8:37).<br/>2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었다면 아브라함의 일을 행하였으리라』(39절).<br/>3 『이제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들은 진리를 너희에게 말한 사람인 나를 죽이려고 하는도다』(40절).<br/>4 『나는 나의 아버지와 함께 본 것을 말하되 너희는 너희 아비와 함께 본 것을 행하는도다』(38절). <br/><br/>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의도는 그들이 거짓되이 하나님을 섬기는 마귀의 자식들임을 지적하신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벨리알의 자식들이었다. 벨리알의 자식이란 무가치하고 분별이 없으며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말씀을 거부하며, 무법자요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다. 이런 자들이 교회 안에 있으면 교회가 퇴폐해지며, 이런 자가 목자라면 그 교회는 마귀들의 소굴이 된다.<br/><br/>예수님께서 그들을 향해 『너희는 너희 아비[마귀]의 일들을 행하는도다.』라고 말씀하셨더니 그들의 반응은 『우리는 음행을 통하여 나지 아니하였으며, 우리에게는 한 분 아버지가 계시니, 곧 하나님이시라.』(41절)였다. 그 유대인들의 마음에 내재했던 의식은 예수님의 탄생은 요셉과 마리아가 불륜으로 잉태하여 태어났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들이 간음했단 말인가?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이러하니라. 그의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였으나 동침하기 이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그녀에게 나타났더라. 그녀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녀를 공개적인 본으로 삼기를 원치 않고 은밀히 버리려고 작정하더라. 그러나 그가 이 일들을 생각하고 있을 때에, 보라, 주의 천사가 꿈에 그에게 나타나 말하기를 “너 다윗의 아들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를 네게 데려오는 것을 두려워 말라. 그녀에게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그녀가 한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의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들에서 구원할 것이기 때문이니라.”고 하니라. 이제 이 모든 일이 일어난 것은 선지자를 통하여 주에 관해 말씀하신 것을 이루려 함이라. 말씀하시기를 “보라, 한 처녀가 잉태하여 한 아들을 낳으리니,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해석하면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이라. 그후 요셉이 잠에서 깨어 일어나 주의 천사가 그에게 분부한 대로 행하여 자기 아내를 데려왔고 그녀가 첫아들을 낳기까지 그녀를 알지 아니하였다가 낳으니 그가 그의 이름을 예수라 하더라』(마 1:18-25). &lt;한글킹제임스성경&gt;은 “요셉과 주의 모친”이라고 분명하게 밝힌 반면, 카톨릭 성경은 “그의 부모”라고 고쳐 버렸다.<br/><br/>예수님께서 요한복음 안에 말씀하신 것을 듣고 믿지 못하여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바른 동기가 없는 위선자이다. 『다만 이것들을 기록한 것은 너희로 예수가 그리스도, 곧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하려는 것이요, 또 믿음으로써 그의 이름을 통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라』(요 20:31). 『예수께서 대답하여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에게 말하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고 하시더라... 예수께서 대답하시기를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에게 말하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 3:3,5). 『그러나 누구든지 그를 영접한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즉 그의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니라』(요 1:12).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그 아들을 믿지 않는 자는 생명을 보지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진노가 그 사람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고 하더라』(요 3:36).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전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한 말들은 영이요, 생명이라』(요 6:63). 거듭나지 않은 채 교회 다니고, 새벽기도회에 다니고, 철야 금식하며, 성경을 건성으로 몇 번씩 읽고, 그것도 부족하여 필사를 몇 번씩 하고, 돈을 얼마나 교회에 갖다 줬다 해도, 말씀을 믿지 않으면 눈멀고, 무지하고, 교만해서 지옥으로 가는 죄인의 행렬 속에 끼어 있음을 알아야 한다. <br/><br/>예수 그리스도께서 처녀에게 성령으로 잉태되어 태어나신 것을 성경으로 믿을 수 없다면 그의 신앙 체계는 와르르 무너진 건물의 잔해와 같다. 그는 영적 노숙자로 습관적으로 교회에 들락거릴 뿐 주님과는 어떤 교제도 할 수 없는 벨리알의 자식인 것이다. 성경이 한 사람에게 인생의 진리를 제시하는 데 실패했다면, 그 사람은 성경을 안다거나 믿는다고 말해선 안 된다.<br/><br/>하나님께서는 인간들 누구나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을 기록해 놓으시고 억지로 믿어야 하고 준행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다. 그저 한 권의 책을 그 사람 앞에 던져 놓으시고 그가 어떻게 하는지 보시려고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셨다. 그때의 하나님은 사랑이 아니시다. 그것은 하나님의 함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아무도 어떤 모양으로든지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이는 먼저 배교하는 일이 이르지 않고, 또 그 죄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지 않고서는 그 날이 오지 아니함이라... 그 악한 자가 오는 것은 사탄의 역사에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들과 거짓 이적들과, 멸망하는 자들 안에 있는 모든 불의의 속임수로 오는 것이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아니하여 구원을 받지 못하였기 때문이라. 이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강력한 미혹을 보내시어 거짓말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살후 2:3,9-12).<br/><br/>당시 유대인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나와 나의 아버지는 하나니라』(요 10:30), 『내가 그분으로부터 왔고, 또 그분께서 나를 보내셨음이라』(요 7:29), 『만일 너희가 나를 알았다면 나의 아버지도 알았으리라』(요 8:19), 『나를 믿는 사람은 나를 믿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것이라』(요 12:44), 『만일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나의 아버지도 알았으리라. 이제는 너희가 그분을 알고 또 보았느니라.』(요 14:7) 등을 들었을 때 견딜 수가 없었다. 예수님께서 이런 일들을 말씀하셨을 때 그들은 예수님께서 거짓말을 하신 줄 알고 죽이려 했고, 결국 십자가에 처형하도록 로마 군인들에게 넘겨주었다.<br/><br/>지금도 거듭나지 않은 교인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지 않는다. 날 때부터 소경이었던 청년이 눈을 뜬 후 예수님께서 그에게 물으셨다. 『너는 하나님의 아들을 믿느냐?』(요 9:35) 개역성경은 여기서도 “하나님의 아들”을 “인자”로 바꿔 버렸다. 에디오피아 내시가 예루살렘으로 경배드리러 왔다가 돌아가는데 가자 사막 길을 가고 있었을 때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빌립이 그를 따라잡고 그에게 복음을 전했다. 그 내시가 길가에 물이 있는 것을 보고 『보라, 여기 물이 있도다. 내가 침례를 받는 데 무슨 거침이 있느뇨?』(행 8:36)라고 하자 『빌립이 말하기를 “만일 당신이 마음을 다하여 믿으면 합당하니라.”고 하니 그가 대답하여 말하기를 “나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믿나이다.”라고 하더라』(행 8:37). 개역성경은 37절 전체를 삭제시켜 버렸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시인하기가 싫었던 것이다. 이는 그들이 벨리알의 자식들이라는 증거이다. <br/><br/>예수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은 신비 중 신비이다. 『경건의 신비는 논쟁의 여지없이 위대하도다. 하나님께서는 육신으로 나타나셨고 성령으로 의롭게 되셨으며, 천사들에게 보이셨고 이방인들에게 전파되셨으며, 세상에서 믿은 바 되셨고 영광 가운데로 들려 올라가셨음이라』(딤전 3:16). 개역성경은 『하나님께서는 육신으로 나타나셨고』라는 구절을 견딜 수 없어서 “하나님”을 “그는”이라고 바꿔 버렸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을 수 없는 사람은 거듭난 사람이 아니라 벨리알의 자식이다. 벨리알의 자식들은 삼위일체를 부인하면서도 믿는다고 거짓말한다. 개역성경은 성경에서 삼위일체를 가장 잘 증거해 주는 요한일서 5:7, 즉 『이는 하늘에서 증거하시는 이가 세 분이시니,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이시요, 이 세 분은 하나이심이라.』를 삭제해 버렸다. 그런 성경을 쓰면서도 삼위일체를 믿는다고 거짓말한다.<br/><br/>독자 여러분은 개역성경을 가진 자들이 강단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무오하다며 떠들어대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자칭 하나님의 종이라는 자들이 그들 회중을 향하여 거짓말을 하고 있다. 그는 하나님의 종이 아니라 거짓말의 왕초인 마귀의 종이다. 마귀의 종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3만 6천 군데 이상 변개시켜 놓은 그 카톨릭 성서를 가지고 그런 거짓말을 해 오고 있다. 그동안 아무도 그들에게 태클을 걸지 않았기에 그들은 그런 성서들을 교인들에게 들려주고 계속해서 거짓말해 온 것이다. 성경에 대해 자연인들이 갖는 일반적인 견해는 문학적 걸작품 또는 누구에게선가 얻어들은 대로 하나님께서 주신 초자연적인 무오한 계시라고 한다.<br/><br/>그렇다면 정신과 의사들, 대학 교수들, 인본주의자들, 신문사 논설 주간들, 문인들은 뭐라고 하는가? 그들은 “성경은 편협하고 종교적이고, 인종 차별적인 무식한 자들이 쓴 이교도 문서이다.”라고 하면서, 성경을 무신론자들이 받아들이기에 가장 위험하고 기만적이며 신뢰할 수 없는 책으로 여기고서 아예 거리를 둬 버린다. 무신론자가 그 누구이건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이 그들과 나눌 대화는 없다. 그들은 금년에도 크리스마스가 되면 캐럴을 부르고 술이나 마시며 춤추고 즐거워할 것이다. 한 해가 또 저무는데 달력의 주인공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떤 분이신지도 모르면서 말이다.<br/><br/>주님께서 하신 말씀에 유의하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건강한 사람들에게는 의사가 필요 없지만 병든 사람들에게는 필요하니라. 나는 의인들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들을 불러 회개에 이르게 하려고 왔노라』(눅 5:31,32).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버림을 받게 되면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눅 9:25) 『내가 너에게 ‘너희는 거듭나야만 한다.’고 말한 것을 이상히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의로 불어서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듯이 성령으로 난 사람은 모두 그와 같으니라.”고 하시더라』(요 3:7,8).<br/><br/>크리스마스(Christmas)란 “그리스도의 미사”라는 카톨릭 축제를 소위 프로테스탄트들이 그들의 교회로 유입시켜 분별없이 축제로 기념하고 있으나 그날이 되면 온갖 범죄, 특히 성범죄가 전 세계적으로 저질러진다. 성경이 중요한가, 크리스마스가 중요한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셨을 때 들에서 묵으며 양떼를 치던 목자들은 천사의 임재를 보았다(눅 2:8-12). 그때 하늘의 수많은 군사들이 그 천사와 함께 있어 하나님을 찬양하여 말하기를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 위에는 화평이요, 사람들에게는 호의로다.』(눅 2:14)라고 했다. 이것이 “기쁘다 구주 오셨네”의 근간이다. 그런데 개역성경에는 “사람들에게는 호의로다.”가 삭제되었다. 그들의 캐럴은 의미가 없다. 구주의 오심만을 강조하고 땅 위에 화평을 가져오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가리기 때문이다.BB]]></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Mon, 02 Dec 2024 11:20:58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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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엉터리 개역성경의 또 다른 수치</title>
<link>https://biblemaster.co.kr/bb13/%EC%97%89%ED%84%B0%EB%A6%AC-%EA%B0%9C%EC%97%AD%EC%84%B1%EA%B2%BD%EC%9D%98-%EB%98%90-%EB%8B%A4%EB%A5%B8-%EC%88%98%EC%B9%98/</link>
<description><![CDATA[『그분 안에는 신격의 모든 충만함이 몸의 형태로 거하시나니 너희도 모든 정사와 권세의 머리이신 그의 안에서 온전하게 되느니라』(골 2:9,10).<br/><br/>필자는 독자 제위들 중에 &lt;한글킹제임스성경&gt;의 본문을 읽고서 그 의미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자부한다. 반면 개역성경의 골로새서 2:9,10을 &lt;한글킹제임스성경&gt;과 비교해 보고 개역성경이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권면하는지 솔직히 말해 보라! 개역성경은 『그분 안에는 신격의 모든 충만함이 몸의 형태로 거하시나니』를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라 했다. 이 말이 무슨 뜻인가? 또 보라. 『너희도 모든 정사와 권세의 머리이신 그의 안에서 온전하게 되느니라.』를 개역성경은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정사와 권세의 머리시라」고 했는데 이는 말씀의 본래 의미를 전달할 수 없도록 변개시켜 버렸다. <br/><br/>하나님께서 성경을 인류에게 주신 목적은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어 죄를 용서받고 영생을 얻어 하나님께서 곧 지상에 수립하여 통치하실 천년왕국(Millennial Kingdom)에서 천 년간 살다가 새 예루살렘(New Jeru- salem)이라고 불리는 셋째 하늘에서 내려온 한 위성에서 영원히 함께 사시는 전 과정을 알게 하시려는 데 있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런 것들을 씀은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며, 또한 너희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도록 하려 함이라』(요일 5:13). 인간의 지상 생명 기간은 시편 기자의 표현대로 손 너비 정도이다(시 39:5). 인간의 지상 생명이 짧다는 사실은 우리의 눈으로 매일같이 보고 있어 성경의 표현이 전혀 과장이 아님을 누구나 시인할 수 있다. 다윗은 일찍이 이 사실을 알고서 시편을 썼을 것이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어도 그 연수의 힘은 수고와 슬픔이니, 그것이 곧 끊어지면 우리가 멀리 날아가나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우리의 날들을 세도록 가르치시어 우리의 마음이 지혜에 이르게 하소서』(시 90:10,12).<br/><br/>일전에 공군 훈련기가 전신주에 걸려 추락해서 조종사 두 명이 순직했는데, 그들이 죽는 데 걸린 시간은 단 몇 초에 불과했다. 매일같이 고속도로에서 발생하는 교통사고로 죽은 사람들, 공사현장에서 추락하여 죽은 사람들은 얼마나 걸렸겠는가? 병상에서 고생고생하며 견디다가 숨을 거둔 사람들은 죽는 데 얼마나 걸렸는가?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얼마나 더 오래 이 땅에 머물 것 같은가? 어디 기댈 데라도 있는 것인가? 『이는 주께서 그들의 힘의 영광이시기 때문이니이다. 주의 은총 가운데서 우리의 뿔이 높아지리이다. 주는 우리의 방패시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은 우리의 왕이시니이다』(시 89:17,18). 인간에게 주어진 지상 생명이 천 년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밤의 한 경점 같다고 말씀하셨다.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단지 지나간 어제 같고 밤의 한 경점 같나이다. 주께서 그들을 홍수로 쓸어 가시나니, 그들은 잠자는 것 같고, 아침에 그들은 자라나는 풀처럼 되나이다. 풀은 아침에 피어나 자라다가 저녁에는 꺾이고 마르나니』(시 90:4-6). 하나님께서는 지금의 이라크 보스라 항구 북쪽에 에덴을 만드시고 아담과 이브를 지으시어 그곳에서 영원히 살 수 있게 하셨는데 그들이 마귀의 시험에 빠져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지 않고 오히려 마귀의 말을 신뢰함으로써 죄가 인간 안으로 들어와 죽음의 저주를 받게 된 것이다. 『이런 연유로 한 사람에 의하여 죄가 세상으로 들어오고 그 죄에 의하여 사망이 왔으니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전달되었느니라』(롬 5:12). 이와 같이 우리가 죄의 종이었던 때와 관련하여 성경은 다음과 같이 가르쳐 주신다. 『너희가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너희가 순종하는 자의 종이 되어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든지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는 줄 알지 못하느냐?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것은 너희가 죄의 종이었으나 너희에게 전하여 준 교리의 본을 마음으로부터 순종하여 죄에서 해방되어 의의 종이 되었음이라』(롬 6:16-18).<br/><br/>하나님께서는 죄성을 지니고 태어난 아담의 후예들을 모두 지옥에 보내는 결정을 내리셨으나 그분의 자애하심으로 인해 인간을 구원하려는 계획을 만드셨다. 즉 그분의 아들을 성령으로 여자에게 잉태케 하시고 태어나게 하심으로써 합당한 제물이 되게 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그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이 일은 몇몇 사람들만 누려서는 안 되기에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 16:15),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가르치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며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 28:19,20)라고 명령하셨다. 그것도 “땅 끝까지”(행 1:8) 가서 전파하라 하셨다. 그런데 하나님의 종이라고 자처한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복음을 가감 없이 성경대로 전했는가? 어떤 자들은 복음에 무관심했고, 어떤 자들은 성경에 없는 세례를 주고 있다.<br/><br/>마틴 루터가 종교 개혁을 일으킨(1517년) 후부터 1930년경까지는 그런대로 여러 명의 복음 전파자들이 대서양을 오가며 복음 전파에 열을 올렸고, 많은 선교사들, 즉 아프리카의 데이비드 리빙스턴(David Livingston), 아시아의 윌리엄 캐리(William Carey), 허드슨 테일러(Hudson Taylor), 아도니람 저드슨(Adoniram Judson), 존 고포드(John Goforth), 중동의 헨리 마틴(Henry Martin), 뉴헤브리디스의 존 페이튼(John Paton), 미국의 D.L. 무디(D.L. Moody), 샘 존스(Sam Jones), 찰스 피니(Charles Finney) 등, 영국의 존 웨슬리(John Wesley), 조지 휫필드(George Whitefield), 윌리엄 부스(William Booth) 장군 등이 복음을 전하여 수만 명, 수십만 명, 수백만 명을 구원받게 했다. 그리스도인들의 복음 전파 열정은 미국과 영국, 네덜란드와 스코틀랜드에 머물지 않았고, 그 선교의 열정으로 중국, 인도, 아프리카 국가들과 남미의 카톨릭 국가들에도 선교사들을 보내어 복음의 열기를 더해 갔다. <br/><br/>그런 복음의 열기가 언제부터 식어 갔는가? 1881년에 웨스트코트(Westcott)와 홀트(Hort)가 알렉산드리아 원문에서 헬라어 신약성경을 만들었는데 거기서 영국성서공회가 영어 개역성경, 즉 RV(Revised Version)를 번역하고서 &lt;킹제임스성경&gt;을 개정한 것이라고 거짓 소문을 냈다. 이것은 마귀의 계략이 대단히 성공한 사건이 되었는데, 그때 영국 해외선교회가 &lt;킹제임스성경&gt;을 버리고 영어 개역성경(RV)을 채택하면서부터 선교의 열기가 식어 가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미국은 어떠했는가? 영국 사람들이 RV를 만들어 냈으니 우리도 성경을 만들어야 되지 않겠느냐고 하면서 미국성서공회가 1901년에 ASV(American Standard Ver- sion)를 펴냈다. 그때부터 미국에서도 부흥의 열기와 해외 선교의 열기가 식어 가기 시작했다. 그 후 1952년에 RSV(Revised Standard Version)를 만들어 냈고, 1978년에는 NIV(New International Version)를 펴냈다. 1961년부터 미국 교계는 여자 목사를 허용하고 게이들도 목사가 되어 강단에 섰던 것이다. 1974년경부터 미국 공립학교에서는 기도를 금했고 십계명을 게시하지 못하게 했으며, 이윽고 교내에서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말하지 못하게 했다. 종교의 자유를 들고 나와 불교, 힌두교, 이슬람이 파고들었고, 1906년에 미국에서는 캔자스주 토페카에서 발원한 일단의 은사주의자들이 로스앤젤레스 아주사(Azusa) 거리에서 방언하며, 병 고치고, 귀신 쫓는다며 소란을 피우자 이에 현혹된 사람들이 몰려들었는데 그들은 그 몰려든 사람들에게서 돈을 갈취하기 시작했다. 그런 짓은 그 후로 세계 전역에서 일어났고, 특히 이 대한민국이 그 중심에 서서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라고 자랑하기에 이르렀다. 이 모든 것들이 성경이 변개되어 교인들의 믿음과 실행의 최종권위가 되지 못했던 결과였다. <br/><br/>미국은 &lt;킹제임스성경&gt;을 가지고 들어온 청교도들에 의해 세워진 나라인데, 미국민이 하나님을 버리자 하나님께서도 미국을 버리셨다. 제1,2차 세계대전에서 승승장구했던 미국이 1953년 6ㆍ25전쟁에서 패배했고, 1973년 베트남에서 패배했던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모슬렘 테러분자들이 민간 여객기를 납치하여 미국의 군사 요새인 펜타곤을 자살 공격하고, 부의 상징인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을 자살 공격하여 그 빌딩을 주저앉히고, 5천여 명의 무고한 시민을 죽였다. 그에 대한 보복으로 이라크전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개시하여 천문학적인 전비를 썼고, 5천 명 이상의 미군 사상자를 냈다. 미국 내에서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로 인해 미국 경제가 붕괴되고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으로 세계 경제에 큰 타격을 주었으며 세계 경제의 기축 통화인 달러가 흔들리게 만들었다. 그 외에도 뉴올리언스를 덮친 초대형 허리케인 카트리나, 그리고 토네이도들과 대형 산불들과 미시시피 강의 범람으로 인한 피해가 높은 실업률과 더불어 미국 경제를 추락시키고 있다.<br/><br/>한국은 어떠한가? 교회 수는 8만 개가 넘고, 교인 수가 1,000만 명이나 된다고 자랑하나 복음을 전파하거나 구령하는 교회들은 몇 개 되지 않고 대형화를 이루어 교인들로부터 돈을 갈취하는 기업형 교회들이 생겨났다. 교회 강단이 상식에도 못 미치는 것들을 설교라 하며 내놓고, 예수 믿으면 복 받고 잘 산다는 “다른 복음”이 교계를 지배해 버렸다. 한국에서 지금 시행되고 있는 기복신앙, 새벽기도, 기도만 하면 만사형통, 만병통치라고 가르치는 풍조는 모두 성경에 없는 것들인데 소위 교회라는 곳들에서 행해지고 있다. 건전한 상식이 있는 사람들은 그런 야바위 짓에 속지 않고 교회 밖에 잠적해 버렸다. 그 결과 교인 수가 다른 우상 숭배자들의 수보다 적게 되었다. 세계 대형 교회 중 50% 이상이 한국에 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해 주는가? 그것은 성경적 기독교가 아니라 한국식 기독교이다. 사람들이 먹고살기 위해 목사를 하고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다.<br/><br/>또한 서로 다른 신학과 교리를 가진 교파와 교단들이 한국교회협의회와 한국기독교총연합회에 가입함으로써 로마카톨릭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그들은 로마카톨릭과 합세하여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들의 이단 교리를 비평하지 못하게 하려고 단결한 것이다. 이것이 마귀가 계획한 작전이다. 그것은 개역성경이 1938년 이래 만들어 낸 작품이다. 그들의 특징은 성경의 중요성, 바른 성경의 필요성을 전혀 모른다는 데 있다. 그들이 그리스도인이라면 왜 모를까? 그들이 성령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는 증거가 바로 그것이다. 성경은 생명의 빵이요 양날 가진 칼인데 그들은 그 영의 양식을 먹지 않고도 살 수 있고, 마귀가 공격해도 싸울 수 없는 가짜 그리스도의 군사들이다. 그들은 죄인들을 그리스도께로 이겨올 역량 있는 군사들이 되지 못한다. <br/><br/>성령님께서는 A.D. 66년경 사도 바울을 통해 배교의 무리들이 일어나 교인들을 오도하여 헛된 짓을 하게 만들 것이라고 이미 예언하셨다. 그대로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이제 성령께서 분명히 말씀하시나니, 마지막 때에 어떤 자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들과 마귀들의 교리들을 따르리라』(딤전 4:1).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이 건전한 교리를 견디지 못하고, 그들 자신의 정욕에 따라 가려운 귀를 즐겁게 해줄 선생들을 많이 두리라. 또한 그들이 그들의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꾸며 낸 이야기로 돌리리라』(딤후 4:3,4).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모든 이름보다 높이셨다(시 138:2). 하나님께서는 성경 변개자들을 치셔서 그들로 자신의 목소리를 잃게 만드셨는데, 웨스트코트(Westcott)의 전기 작가에 의하면 그는 1858년에는 웨스트코트의 음성을 알아들을 수 있었으나 1870년에는 그의 음성을 듣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불과 몇 명 되지 않았다고 했다. 또한 ASV 편집장 필립 샤프(Philip Schaff)는 1893년에 목소리를 완전히 잃었으며, 1972년 6월판 &lt;타임&gt;지는 &lt;리빙 바이블&gt;을 만든 케네스 테일러(Kenneth Taylor) 또한 목소리를 완전히 잃었다고 알렸다. <br/><br/>『악한 일에 대한 징벌이 속히 집행되지 않으므로 사람들의 아들들의 마음이 그들 안에서 악을 행하기로 완전히 정해졌도다』(전 8:11). 징벌이 아직 내려지지 않은 기간은 죄인들이 회개할 수 있는 유예기간이다. 징벌이 집행되면 그것이 끝이고, 그가 눈을 떴을 때는 지옥 불 속에 있을 것임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무단히 성경에 경고의 말씀을 기록하시지 않았음을 알라. 성경을 멋대로 뜯어고치거나 돈을 벌려고 그런 짓을 하는 것은 저주받을 죄악임을 명심해야 한다. BB]]></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Mon, 30 Sep 2024 16:43:35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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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그 일을 속히 행하실 것임이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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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CDATA[하나님께서 성경을 기록하신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하려는 것이요,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영생을 얻을 수 있음을 알게 하려는 것이다. 『다만 이것들을 기록한 것은 너희로 예수가 그리스도, 곧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하려는 것이요, 또 믿음으로써 그의 이름을 통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라』(요 20:31).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런 것들을 씀은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며, 또한 너희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도록 하려 함이라』(요일 5:13).<br/><br/>그렇다면 사람들이 이 점을 세상 그 어디에서 배울 수 있겠는가? 주님께서 세우신 교회에서 배울 수 있다. 교회를 통해 성경을 배우지 못한다면 사람들은 성경을 알 수가 없다. 교회에서 성경을 가르쳐야 할 책임을 진 사람이 틀린 성경으로 가르치려 했거나, 성경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았으면 바르게 가르쳐 줄 수가 없다. 주님께서는 궁극적으로 성경을 공부하는 것은 그 사람 자신의 책임임을 명시하셨다. 『성경을 상고하라. 이는 너희가 성경에 영생이 있다고 생각함이니, 그 성경은 나에 관하여 증거하고 있음이라. 너희는 생명을 얻으려고 내게 오기를 원치 아니하는도다』(요 5:39,40).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br/><br/>로마서 9:27,28을 &lt;한글킹제임스성경&gt;과 개역성경/개정판으로 비교해 보면 “그 일을 속히 행하실 것임이라”를 개역성경은 “...필하시고 끝내시리라 하셨느니라”로 얼버무려 놓았다. 도대체 그런 성경으로 무엇을 공부하여 무엇을 알겠는가? 가르치는 자가 자신도 알지 못한 것을 가르치려 한다면 그의 목적이 무엇인가? 목사로서 부적격한 자들이 자기가 목사인 체 내보이고 싶은 것뿐이다. 자기 교인들에게 거짓을 가르치고 밥을 먹는 자가 목자인가, 삯꾼인가? 삯꾼이다. 삯꾼은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도둑이요 강도이다(요 10:8-10). 삯꾼의 특징은 양이 괴롭힘을 당하고 병들든지 잘못되든지 심지어 죽든지 간에 유의하지 않고 오직 목자 행세만 하는 것이다. 이것이 이 배교의 시대에 나온 목자들의 특징이다. 그들은 “양들의 문을 통해 들어온 목자”가 아니라 “다른 통로로 들어온 자”이다. 즉 비정상적으로 목자가 된 자들이다. 이는 말씀이신 주님께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뜻을 세우기 위함이다.<br/><br/>삯꾼의 특징은 말씀을 중요하게 생각지 않는 데 있다. 탐심은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는 데 방해가 되는 첫째 요인이다. 어떤 사람들이 가짜 성경을 가지고 양무리들에게 진리의 지식 대신 썩은 음식을 먹이면서 양무리들에게서 각종 헌금을 받아 탐욕을 채워 왔는가? 두말할 것도 없이 하나님께서 부르시지 않은 자들이다. 하나님께서 부르시지 않은 자들은 삯꾼이라고 불린다. 탐심 없이 양무리들에게 바른 성경으로 진리의 지식을 가르쳤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께서 부르신 종이다. 하지만 가짜 성경으로 가르치는 체하고 탐심을 부렸다면 부름받은 종이 못 된다. 탐심은 우상 숭배이다(골 3:5). 그렇기에 탐심을 지닌 사람에게서는 하나님을 볼 수가 없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낸 서신에서 “어느 때이든 아첨의 말이나 탐심의 구실을 가지고 일하지 않았다.”(살전 2:5)라고 말했다. 성경에 유의하면 해서는 안 되는 일에 대한 교훈들, 권면들, 명령들, 경고 등이 보인다.<br/><br/>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백성이다. 유대인은 태어나면서부터 천국(The Kingdom of Heaven) 백성이다. 『그러므로 이제 만일 너희가 참으로 내 음성에 복종하고 나의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백성보다 나에게 독특한 보물이 되리니, 이는 온 땅이 내 것임이라』(출 19:5). 『이는 네가 주 너의 하나님께 거룩한 백성이요, 주께서 지상의 모든 민족들 가운데서 너를 택하여 자신에게 속한 독특한 백성이 되게 하셨음이라』(신 14:2). 하지만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배교함으로 인해 마치 올리브 나뭇가지가 꺾이듯이 꺾였다. 『옳도다. 그들은 믿지 아니함으로 꺾여졌고 너는 믿음으로 섰느니라. 높아지려는 생각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롬 11:20). <br/><br/>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은 집체적으로 다루시지만, 이방인들은 개인적으로 다루신다. 유대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믿지 않았기에 꺾였고, 이방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기에 접붙임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났다. 이스라엘은 복음을 거절함으로써 복음의 반대편에 서게 되었고, 어떤 이방인들은 복음을 받아들임으로써 복음 안에 있게 되었기에 서로 원수가 된 것이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않고 자신들의 의를 내세움으로써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다. 『복음에 관하여는 그들이 너희로 인하여 원수가 되었으나 선택에 있어서는 그들의 조상으로 인하여 사랑을 받는 자들이라』(롬 11:28).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분이 행하신 일에 후회가 없으시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이는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가 없으심이니라』(롬 11:29).<br/><br/>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완전히 버리셨다는 주장은 로마카톨릭에서 나왔다. 로마카톨릭은 성경을 오해하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한 약속들을 다 폐기하시고 그 약속들을 카톨릭 교회에게 주셨다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그것은 허무맹랑한 거짓말이다. 하나님께서는 카나안 땅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씨에게 주시겠다는 약속을 취소하신 적이 없다(창 12:1-3, 시 105:6-13). <br/><br/>로마카톨릭은 폭력과 기만으로 하나님의 권위를 찬탈하여 지금까지 후천년주의 종말론을 퍼뜨렸다. 『침례인 요한의 때로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폭력을 겪고, 폭력을 쓰는 자들이 힘으로 그것을 차지하느니라』(마 11:12). 만일 카톨릭의 주장대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하신 약속을 파기하고 로마카톨릭 교황에게 천국을 주셨다면 성경은 진리가 될 수 없다.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는 체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이 신비를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이방인들의 충만함이 차기까지는 이스라엘의 일부가 완고하게 된 것이라.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 기록된 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와서 야곱에게서 경건치 아니한 것을 제거하리라. 이는 내가 그들의 죄들을 없앨 때 그들에 대한 나의 언약이 이것임이니라.” 함과 같으니라.』(롬 11:25-27)라고 하셨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롬 11:1)라고 강력히 말하고 있다. 성경은 현재의 그리스도인들이 유대인들에게 약속하신 것들을 지금 상속받는다고 가르치지 않았다. 성경은 이스라엘의 아합왕 때 이세벨의 폭정으로 바알을 위해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의 씨를 말리려 했지만 그때에도 7천 명을 남겨 두었다고 말씀하면서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의 선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다고 했다(롬 11:3-5).<br/><br/>대환란은 하나님의 선택받은 민족인 이스라엘의 배교에 대한 심판이다. 대환란 기간 동안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이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께로 돌아올 것이다. 이스라엘이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십자가에 내어 준 죄로 인해 꺾였지만 이스라엘의 회복은 하나님의 약속이다. 교회가 휴거된 뒤에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은 그리스도께로 돌아올 것이며, 그들은 대환란 기간에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들이 될 것이다. 그 144,000명은 절대로 여호와의 증인들이 아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이라는 말은 성경에 없다. 144,000명은 이스라엘 12지파인데 한 지파에서 12,000명씩 뽑힌 유대인 동정들이다(계 7:4-8).<br/><br/>이스라엘의 배교는 예견된 것이었다. 사도 바울은 호세아 2:23을 인용하며 하나님께서 유대인들로부터 돌아서서 이방인들을 그분의 백성이라고 부르시며 이방인들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자녀들이라고 불릴 것이라고 선언했다(롬 9:25,26). 또한 이사야 10:22,23을 인용하여 말하기를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받으리라.』(롬 9:27)라고 했을 뿐만 아니라 『주께서 땅 위에서 그 일을 속히 행하실 것임이라.” 하였느니라.』(롬 9:28)라고 했다. 이것은 모두 구약성경의 구절들을 인용하여 기록한 말씀들이다.<br/><br/>그런데 개역성경은 “그 일을 속히 행하실 것임이라”를 “필하시고 끝내시리라 하셨느니라”고 번역했다. 개역성경으로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가 없다. 만일 개역성경으로 이 부분을 설교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거짓말을 해야 하며 회중은 영적인 지식이 아닌 쓰레기를 먹어야 한다. 성경을 오해하는 자들은 종교적인 열성을 성경적인 믿음이라고 여긴다. 교회에 다니는 무수한 사람들이 그들이 듣는 설교가 상식적으로도 말이 안 되는 것까지는 아는데 “진리의 지식”을 알지 못함으로 인해 그런 오류들을 꼬집어 낼 수가 없는 것이다.<br/><br/>『너희 위선자들아, 이사야가 너희에 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말하기를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에게 다가오고, 또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여도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들의 계명들을 교리들로 가르치니, 그들이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라고 하였느니라』(마 15:7-9). 그들은 위선자들이다. 사람이 만든 계명과 전통으로 하나님을 섬기려는 자들은 종교인들이다. 그들의 믿음은 진리에 뿌리 내린 것이 아니라 종교적인 열성일 뿐이다. 불교, 힌두교, 이슬람, 유교, 도교, 천주교 등의 열성을 지닌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 중에는 교단 교회의 장로가 된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종교인들 앞에서 늘 입버릇처럼 말한 것이 “다른 사람의 종교도 존중해 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기독교를 신봉하는 또 하나의 종교인들이었다.<br/><br/>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께서 심지 않으신 모든 초목은 뽑힐 것이라』(마 15:13). 영이 거듭나는 종교, 혼이 구원받는 종교가 신약 교회 시대의 기독 신앙 외에 또 있는가 보라! 하나님의 생명을 나눠 받은 것을 믿지 못하면 종교인으로 살다가 지옥으로 떨어져 영원히 고통을 받게 되지만, 구원받고 살다가 죽으면 다시 자기 몸으로 부활하며, 그렇게 구원받은 성도는 이 땅에 대환란이 시작되기 전에 하늘로 들림 받게 된다. 『형제들아, 잠든 자들에 관해서는 너희가 모르게 되는 것을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가 소망이 없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는 것이라. 예수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것을 우리가 믿는다면 그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예수 안에서 잠든 자들도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오실 때까지 살아남아 있는 우리가 잠들어 있는 자들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음성과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하늘로부터 친히 내려오시리니 그러면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리고 나서 살아남아 있는 우리도 공중에서 주와 만나기 위하여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려 올라가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영원히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살전 4:13-18).<br/><br/>유대인들은 태어나면서부터 하나님의 자녀요 그분의 유업이었다(출 4:22, 신 9:29). 그들이 온갖 특혜를 누리면서도 하나님을 버리자 하나님께서도 예언하신 대로 그들을 여러 번에 걸쳐 벌주셨다. 그 벌이 아직 한 번 더 남았는데 성경에 의하면 “유사 이래 전무후무한 것이 되며, 세계 인구의 1/3이 죽게 되고, UN 평화유지군 2억 명이 이스라엘 므깃도 평원에서 죽게 되며 그 피가 말고삐까지 차서 250km 이상 흐르게 된다.” 이것이 아마겟돈 전쟁이다. 그리스도인들이 구원받았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주님 안으로 들어가 주님의 몸을 이루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분의 몸 된 교회가 되었고 주님께서는 교회의 머리가 되셨다(엡 1:13; 2:19,20; 3:5,6; 5:23). 그때 주님께서도 영으로 우리 각자의 몸 안으로 들어오시어 우리를 성전 삼아 주셨다(고전 3:16; 6:19,20). 말하자면 새 생명을 받고 태어난 그리스도인만이 영원히 살 수 있다. 하지만 교인들은 그럴 수 없다. 세상 사람들과 세상 교회들에 다니는 교인들은 성경을 믿을 수 없기에 이 점을 알 수 없다. 성경을 삭제, 첨가, 변개시키는 자들 또한 이 대열에 참여할 수가 없다. 『이는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들을 듣는 각 사람에게 증거함이니 누구든지 이것들에 더하면 하나님께서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또 누구든지 이 예언의 책의 말씀들에서 삭제하면 하나님께서 생명의 책과 거룩한 도성과 이 책에 기록된 것들에서 그의 부분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계 22:18,19). BB]]></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Fri, 30 Aug 2024 15:38:16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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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이 세상에 공의와 진리가 있던가?</title>
<link>https://biblemaster.co.kr/bb13/%EC%9D%B4-%EC%84%B8%EC%83%81%EC%97%90-%EA%B3%B5%EC%9D%98%EC%99%80-%EC%A7%84%EB%A6%AC%EA%B0%80-%EC%9E%88%EB%8D%98%EA%B0%80/</link>
<description><![CDATA[학교 강단에서나 세계 유명인사들이 벌이는 “특강” 같은 데서 “정의”나 “진리”에 관해 떠드는 것을 신뢰할 수 있는가? 그런 것들을 신뢰한답시고 경청하고 메모하는 일은 그 사람의 자유일는지 모르나 성경을 배제하고 정의와 진리를 말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성립이 안 된다. 미국 하버드대 마이클 샌델 교수는 &lt;정의란 무엇인가?&gt;라는 책을 저술했지만 정작 “정의”의 저자조차도 정의가 무엇인지 그 정수를 알지 못했다.<br/><br/>정의(justice)란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 할 법을 말한다. 그런데 그 사람이 정의를 잘 지켰다는 판단을 누가 하는가? 사람이 무엇으로 다른 사람이 의롭고 정직하게 행했다는 판단을 해야만 그 사건에 대한 원인, 과정, 결과에 대한 옳은 평가를 내릴 수 있겠는가? 전관예우를 해 주는 나라의 사법부에서 정의가 있을 수 있겠는가? 로펌이 수임한 사건의 70%가 승리하는 나라에서 정의가 있을 수 있겠는가? 판사가 퇴임 후에 변호사 개업을 하여 자신이 재판하던 동일한 사건을 수임 받는 상황에서 정의가 있을 수 있겠는가? 판ㆍ검사와 변호사들은 자기들이 어떤 시대 환경에서 살고 있는지 안다. 인간이 만든 최상의 법도 이현령비현령일 수밖에 없다. 해석하고 판단하는 사람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기에 정의란 있을 수 없다. <br/><br/>성경에는 하나님이 직접 돌판에 기록하신 십계명이 있다(출 20:1-17). 그 외에도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에 인간이 지을 수 있는 죄들을 열거해 놓고 있으며, 『범죄하는 혼은 죽으리라.』(겔 18:4),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선물은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말미암은 영원한 생명이기 때문이라.』(롬 6:2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너희 죄들 가운데서 죽으리라.’고 하였으니, 이는 너희가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는 너희 죄들 가운데서 죽을 것이기 때문이라.』(요 8:24)라고 하셨다. 성경을 배제하고서 사람이 재판관이 되어 선과 악을 판단하는 것은 정의가 될 수 없다. 인간이 제정한 법은 정의를 판가름할 수 없다. 그러므로 성경은 “왕의 법”(royal law)을 말씀하고 있다. 그것이 무엇인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약 2:8)는 법이다. <br/><br/>성경은 인간의 가장 더러운 것은 “마음”(heart)이라고 말씀하신다. 『마음은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악하니 누가 그것을 알 수 있으리요?』(렘 17:9) 인간은 가장 거짓되고 악한 마음으로 사랑도 하고, 가정도 이루며, 부모도 공경하고, 스승도 존경하며, 자식도 기른다. 재판관들은 그런 마음으로 재판한다.<br/><br/>이전 대법원장도 신년 인사에서 “국민의 고통과 아픔을 치료하고 어루만져 줄 수 있는 재판다운 재판을 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 했고, 헌법재판소장 역시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 보장,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보호, 권력 분립과 법치주의 확립에 힘써... 국민으로부터 신뢰와 사랑을 받고 세계적인 선진 헌법 재판 기관으로 도약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가짜뉴스와 선전, 선동으로 속이고 댓글 조작이니 뭐니 하는 수작들과 그에 놀아나서 진실을 왜곡하고 호도하는 수많은 판결들은 아예 떠올리기도 싫다. 그런 그들의 마음은 만물보다 참되고 심히 선한가?<br/><br/>하나님께서 아담과 이브를 지으시고 그들에게 금하신 것은 “선과 악”의 지식을 분별하는 것이었다. 『주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데려다가 에덴의 동산에 두시고 그것을 관리하고 지키게 하시더라. 주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명령하여 말씀하시기를 “동산의 모든 나무에서 나는 것을 네가 마음대로 먹을 수 있으나 선과 악의 지식의 나무에서 나는 것은 먹지 말라. 네가 거기서 나는 것을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창 2:15-17). 왜 하나님께서는 이 문제를 가장 우선적으로 다루셨는가? 아담과 이브는 완전하게 지음 받은 존재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비록 그들이 순수하고, 무죄하고, 천진난만했을지라도 아직 아무도 그들에게 하나님 외의 존재를 허락해서는 안 되었고 그들은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없었기에 자신들을 악으로부터 지킬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간교한 사탄에게 속아 그들의 창조주께서 금하셨던 그 열매를 먹자 눈이 열렸던 것이다. 불완전한 인간은 하나님의 도움 없이 온전한 삶을 살 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을 찾는 데 잘못된 길에 들어선 사람들이 많다. 하나님께서는 불완전한 인간들이 하나님의 계명대로 순종하며 살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셨기에 매 시대마다 족장들, 선지자와 제사장들 아니면 재판관들을 부르시고 들어 쓰셨지만 모든 시대는 불행하게도 배교로 끝나고 말았다.<br/><br/>많은 성경 학도들이 아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칼데아 우르에 살았던 아브람을 부르셨고, 율법과 할례를 통해 이스라엘이란 민족으로 태어나게 하셨다. 하나님께서 무엇이 부족하여 사람의 수에 의존하시겠는가?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선정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주께서 그분의 사랑을 너희 위에 두시고 너희를 택하신 것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가 많음이 아니라 너희가 모든 민족 중에서 가장 적기 때문이니라』(신 7:7). 오늘날 쭉정이들을 모아 자랑하는 자들을 보라. 이 나라에서 가장 큰 교회,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를 자랑하는데 그 쭉정이들은 거듭나지도 않았고 성경을 모르며 구령할 줄도 모른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도 믿지 않고 교회만 다닌다. 어떤 자는 목사가 아니라 병 고치는 무당이 되어 복음을 빙자한 사기를 쳐서 교회 재벌이 되었다. <br/><br/>하나님께서 직접 통치를 하셔야 “정의와 진리”를 실현하실 수 있다. “너는 어디까지나 공의만 따르라.” 이것이 하나님을 대신하여 재판할 재판관들에게 주셨던 주의사항이다(신 16:18-20). 출애굽한 지 65년 되던 해에 여호수아가 카나안 땅에 와서 죽자 이스라엘 백성은 신정(theocracy)의 개념을 상실하고 모두 자기가 좋을 대로 하고 살았다. 지금도 하나님을 잃어버린 인간은 모두 그렇게 산다. 하나님께서는 그 유대인들을 이방 나라들에 노예로 파시고 그들이 부르짖으면 그때마다 지도자를 선임하시어 지배 세력을 물리치고 해방시켜 주셨지만 그들은 다시 배교의 길을 걸었다. 그때 선임했던 지도자들이 바로 “재판관”들이었다. 그 뒤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이라는 신실한 종을 태어나게 하시어 그를 세워 신정 통치를 하게 하셨다. 그러나 사무엘이 하나님께로부터 위임받은 권위로 신정 통치를 한 지 20년이 지나자 백성들이 신정 통치를 거부하고 인간 왕을 원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왕정을 허락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주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시기를 “백성이 네게 말하는 모든 일에 있어서 그들의 음성에 경청하라. 그들이 너를 거역함이 아니요, 나를 거역하여 나로 그들을 다스리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라. 내가 그들을 이집트에서 인도하여 낸 그 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행한 모든 일, 즉 그들이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던 것대로 네게도 그렇게 행하는도다. 그러므로 이제 그들의 음성에 경청하라. 그러나 아직은 그들에게 엄숙히 경고하고, 그들을 치리할 왕의 제도를 그들로 알게 하라.”고 하시니라』(삼상 8:7-9).<br/><br/>왕정으로나 모슬렘이나 공산주의의 독재 체제는 물론이요 인간이 만든 입법, 사법, 행정의 삼권 분립이라 할지라도 인간이 다른 인간들을 다스리는 환경에서는 공의와 진리가 실행될 수 없다. “공의와 진리”를 실행하겠다고 선거에 출마한 자들은 모두 거짓말쟁이들이다. 표를 얻기 위해 신의와 지조를 팔고 당선되기 위하여 국민의 고통과 아픔을 못 본 체하며, 심지어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해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엉터리인가에 대해서도 개념이 없다. 그런 자들이기에 국회는 국회대로 지방자치단체는 그들대로 매일 으르렁거리며 싸우고, 다른 당의 제안에는 무조건 반대 입장을 고수하기에 국회는 공전되고 민생을 외면하여 정작 유권자들인 국민은 고통을 당한다. 우리나라의 의회 정치를 보면서 인간 통치가 얼마나 문제점이 많고 악인의 쟁기질인가를 알 수 있어야 한다. 보고, 경험하고서도 모르겠는가? 무조건 교회만 다니려 하지 말고 거듭나서 영적 눈을 떠야만 진리가 보이게 되어 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의 지식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개역성경/개정판에는 “진리의 지식”이 없다).<br/><br/>지금 이스라엘 땅은 그야말로 “죽음의 재 같은 땅”이지만 그 땅은 세계의 중심에 위치해 있다.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의 중심이다. 유대인은 셈(동양인), 야펫(유럽인), 함(아프리카인)이 혼합을 이룬 가장 중심적인 인간상이다. 그 땅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면 세계가 주목한다. 왜 그런가? 하나님께서 선정하신 민족이기 때문이다. 한 번은 그 하나님의 선민들이 하나님을 거절한 죄 때문에 자기 나라 땅에서 쫓겨나 민족 전체가 B.C. 606년에 바빌론으로 포로 되어 갔고, 성전과 도성이 불태워졌다. 또 한 번은 그들을 구하려 오신 메시아, 즉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박해하였고, 끝내는 십자가에 처형하라고 이방인인 로마 군대에 내주어 죽이게 했다. 그 죄로 인해 A.D. 70년 예루살렘은 그 성전까지 불살라졌고 예루살렘 외곽에는 500명이 넘는 유대인들이 십자가에 달렸으며, 나머지 유대인들은 그 땅에서 쫓겨나 세계 도처에 흩어져 갖은 고난과 박해를 받았다. 그들은 인간 대접을 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히틀러에게 600만 명이나 죽음의 재가 된 끔찍한 홀로코스트를 겪었다. 그러한 일은 그 이전 역사에서는 일어난 적이 없다.<br/><br/>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직접 통치하시는 왕국을 세우시기 위해 하나뿐인 아들을 인간으로 태어나게 하셨다. 전에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이 실패했던 왕국을 지상에 수립하기 위해서 예언하신 대로 아들을 보내셨는데, 그분이 유대인의 왕 되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들이 기다렸던 메시아를 거부하고, 박해했으며 끝내 십자가에 매달도록 로마 군인들에게 내어 주었다. 그리하여 천국(Kingdom of Heaven)은 실현되지 못했고 그 대신 하나님의 나라(Kingdom of God)가 전파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구원받은 성도들을 그분의 백성으로 삼아 주셨다. 바로 이 일을 위해 지상에 교회가 세워진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교회의 머리가 되셨다. 교회를 통해 전파되는 하나님의 나라에 관해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다만 성령 안에서 의와 화평과 기쁨이라』(롬 14:17). 자신들을 신약 교회라고 하는 자들이 물리적인 천국과 영적인 하나님의 나라가 같다고 믿기에 성경을 알지 못한 채 기독교란 종교를 만든 것이다.<br/><br/>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통해서 난 유대인들과 더불어 제사장의 왕국, 즉 하나님께서 신정 통치하시는 왕국을 세울 계획이셨으나 유대인들이 배교함으로 인해 그 왕국은 뒤로 연기되고 그 사이에 교회 시대가 있게 하셨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왕국을 포기하신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2,000년 전에 지상에 실현하시려고 했던 왕국을 유대인들의 방해로 실현하지 못하셨기에 이제 곧 다시 오시어 이 땅에 천년왕국으로 실현하실 것이다. 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에는 공의도 없고 진리도 없다. 『주를 거역하여 범죄하고 거짓말하며 우리의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떠나 억압과 반역을 말하고 마음으로부터 거짓된 말들을 품으며 또 말함이니이다. 공의가 뒤로 돌아서고 정의가 멀리 섰나니 이는 진리가 길에 쓰러졌고 공평이 들어가지 못함이라』(사 59:13,14). <br/><br/>예수 그리스도 없이 이 땅에 “공의와 진리”를 말하는 자들이나 평화를 말하는 자들은 모두 쓸데없는 짓을 하고 있다. 바티칸, UN, 개신교, 무천년주의자, 후천년주의자들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 없이 왕국(Kingdom)을 건설하려는 자들이다. 세상을 신뢰하거나 근거 없는 유토피아를 희구하는 자들은 모두 망한 자들이다. 성경은 인류에게 소망을 주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기록하신 책이다. 성경을 믿는다면 위를 쳐다보고 구원을 받으라! 성경의 마지막 장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신다는 약속이 세 번이나 기록되어 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라. 이 책의 예언의 말씀들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하더라』(계 22:7).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행위에 따라 주리라』(계 22:12). 『이런 일들을 증거하신 분이 말씀하시기를 “반드시 내가 속히 오리라.” 하시니라. 아멘. 그러하옵니다.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 22:20). BB]]></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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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date>Tue, 06 Aug 2024 10:34:17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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