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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말씀보존학회 - 한글킹제임스성경 및 진리의 지식을 전파합니다 &amp;gt; 바이블마스터 &amp;gt; 지식뱅크 - 박승용 목사 칼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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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테스트 버전 0.2 (2004-04-26)</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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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소선지서 특강 : 호세아 (3) : 내 백성이 지식의 부족으로 멸망하는도다</title>
<link>https://biblemaster.co.kr/bb19/%EC%86%8C%EC%84%A0%EC%A7%80%EC%84%9C-%ED%8A%B9%EA%B0%95-%ED%98%B8%EC%84%B8%EC%95%84-3-%EB%82%B4-%EB%B0%B1%EC%84%B1%EC%9D%B4/</link>
<description><![CDATA[“이스라엘 민족”은 거룩하신 주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독특한 백성』(신 14:2)이자, 『거룩한 백성... 특별한 백성』(신 7:6), 『독특한 보물... 제사장들의 왕국... 거룩한 민족』(출 19:5,6)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살찌고... 굵어지고... 기름으로 덮이니...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을 버렸고, 자기 구원의 반석을 가볍게』 여겼다(신 32:15). 결국 그들은 우상을 숭배하며 배교하고 말았으니, “총체적으로” 배교한 것이다.<br/><br/>우선 “제사장들”이 배교했다. 『강도떼들이 사람을 기다리는 것같이 제사장들의 무리가 하나 되어 길에서 살인하나니, 그들이 추잡한 짓을 행하는도다』(호 6:9).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치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어떤 말씀들에서도 좌로나 우로나 빗나가지』(신 28:14) 않도록 솔선수범하여 백성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했어야 할 거룩한 제사장들이 오히려 살인자들과 함께 길을 걸었고 자신을 비호하는 세력들과 결탁하고 어울리면서 무죄한 피를 흘리고 추잡한 짓까지 행했던 것이다. 로마카톨릭의 “교황들”이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을 죽이기 위해 세상 왕들과 야합하여 저지른 죄가 바로 이것이었고, 초림 당시 “제사장들의 무리”가 함께 모여서 예수님을 대적하고 죽이기 위해 했던 일 역시 이것이었다. 『이에 선임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공회를 소집하고 말하기를 “이 사람[예수 그리스도]이 많은 기적을 행하니 우리가 어찌하랴? 만일 우리가 그를 이대로 두면 모든 사람이 그를 믿을 것이요, 그러면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의 처소와 민족을 다 빼앗아 가리라.”고 하더라』(요 11:47,48). 이에 그들은 『그 날부터... 주를 죽이려고 함께 모의』(요 11:53)했고, 또 “선임 제사장들”은 이 일을 성사시키기 위해 『군 지휘관들과 더불어 의논』(눅 22:4)했다. 결국 이 배교한 “제사장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하여 불법적인 재판을 했을 뿐 아니라 백성들을 선동해서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도록 “로마”에 넘겼다.<br/><br/>다음으로 “선지자들”이 배교했다. 『그러므로 네가 낮에 쓰러지겠고 선지자도 너와 더불어 밤에 쓰러지리니, 내가 네 어미를 멸하리라』(호 4:5). 『감찰의 날들이 오고 보응의 날들이 오나니 이스라엘이 그것을 알리라. 선지자는 어리석고 영적인 사람은 미쳤나니, 이는 네 죄악이 많고 증오는 크기 때문이라』(호 9:7). 오늘날 “배교한 목사들” 역시 “정상”이 아니다. 성경적 기준은 말할 것도 없고 상식적인 견지에서 보더라도 정상적으로 사역하는 목사가 그렇게 많지 않은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미국의 “텍스 마스”(Texe Marrs, 1944-2019)는 &lt;목사들과 교회들이 미쳐 날뛰고 있다!, Pastors and Churches Gone Wild!&gt;라는 책을 쓰기도 했다. 한편 “구약 시대”에는 거짓 선지자 “발라암”의 미친 짓을, 말 못하는 “나귀”가 사람의 음성으로 말하여 “막은 일”도 있었는데(벧후 2:16), 그처럼 말 못하는 나귀보다 못한 “영적인 지도자들”이 과거에도 있었지만, 오늘날에는 훨씬 더 많은 것이다.<br/><br/>또한 “치리자들”도 배교했다. 『그들의 술은 시고 그들은 끊임없이 행음하였으니, 그녀의 치리자들은 수치와 더불어 사랑하기를 “너희는 줄지니라.” 하는도다』(호 4:18). “고관들”은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경계”를 제멋대로 옮겨 버렸고(호 5:10), 자기들의 가려운 귀를 즐겁게 해 주는 “거짓말”을 기뻐했다(호 7:3). 『그들은 모두 화덕처럼 뜨거워져서 그들의 재판관들을 삼켰으며 그들의 모든 왕들은 쓰러졌으니, 그들 가운데 나를 부르는 자는 아무도 없도다』(호 7:7). 『그들의 모든 악이 길갈에 있으므로 내가 그들을 미워하였으며, 그들의 행실이 악하므로 내 집에서 그들을 쫓아낼 것이요 내가 더 이상 그들을 사랑하지 아니하리라. 그들의 모든 고관들은 반역자들이니라』(호 9:15). “배교한 왕,” “배교한 제사장,” “배교한 선지자,” 곧 백성들을 율법으로 올바르게 인도해야 할 “정치 ․ 종교 지도자들”이 모두 배교해 버렸다. 이들은 그들의 민족을 망치는 주역들이었다. 주 하나님께서는 이런 “총체적인 배교”에 대해 이렇게 경고하셨다. 『경이롭고 무서운 일이 그 땅에서 행해지는도다. 선지자들은 거짓되이 예언하고 제사장들은 그들의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렇게 하는 것을 사랑하니 그 마지막에는 너희가 어찌하려느냐?』(렘 5:30,31) 그 마지막은 “진노의 심판과 멸망”만 남아 있을 뿐이다. 『내가 그들 가운데서 한 사람을 찾으려 했으니 그 사람은 [시내 산의 “모세”처럼, 시 106:23] 장벽을 쌓아 그 땅을 위하여 내 앞에서 갈라진 틈에 서서 나로 그 성읍을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이라. 그러나 나는 아무도 찾지 못하였노라. 그러므로 내가 내 분노를 그들 위에 부어서 내 분노의 불로 그들을 소멸하여 그 행위대로 그들의 머리 위에 보응하였도다. 주 하나님이 말하노라』(겔 22:30,31).<br/><br/>한편 “호세아”는 “이스라엘 백성”의 “총체적인 배교”와 “멸망”의 근본적인 원인을 다음과 같이 진단했다. 『내 백성이 지식의 부족으로 멸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거부하였으므로 나도 또한 너를 거부하리니, 네가 나에게 제사장이 되지 못하리라.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또한 네 자녀를 잊어버리리라』(호 4:6). 율법을 잊어버린 것이다. 율법을 버린 백성은 반드시 멸망하게 되어 있다. 오늘날에도 “진리의 성경”과 “진리의 지식”을 무시하고 저버린 한 개인이나 민족 및 국가는 “타락과 멸망의 길”로 나아가게 된다. 1789년 4월 30일, 미국 뉴욕의 임시 정부 청사 “페더럴 홀”에서 미국 역사상 중대한 의식이 거행되었다. 초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조지 워싱턴”이 오른손을 성경 위에 올려놓았을 때, 뉴욕 재판소장 “로버트 리빙스턴”이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대통령 직분’을 성실하게 수행하고 ‘미국의 헌법’과 ‘국민의 권리’를 수호할 것을 맹세합니까?” “네! 엄숙히 맹세합니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은 각기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최소한 “성경 말씀”을 존중했고, 또 귀히 여길 줄은 알았다. “성경이 아니면 세계를 다스릴 수 없다”(조지 워싱턴). “미국은 성경을 반석으로 삼고 그 위에 서 있는 나라다”(토마스 제퍼슨). “어떤 분야에서 일하고 있든지, 자신의 인생을 참되게 가꾸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에게 성경을 묵상하라고 권하고 싶다”(시어도어 루스벨트). 그러나 오늘날 “미국”이 “성경”을 버리자, “하나님”께서도 “미국”을 버리기 시작하셨다.<br/><br/>이처럼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율법”을 버렸다. 심지어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이상한 것”으로 여겨졌다. 『내가 그를 위하여 내 율법의 많은 것들을 기록하였으나 그것들이 이상한 것[strange thing]으로 여겨졌도다』(호 8:12). “하나님의 말씀”이 낯설고 어색하며 불편해진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상한 것”으로 여겨지는 민족이나 국가는 주님으로부터 “어떤 보호”도 받지 못하고, 결국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이것이 바로 “호세아” 당시의 “이스라엘의 영적 상황”이었다. 『그 땅에는 진리도 자비도 없고 하나님에 대한 지식도 없음이라』(호 4:1). 『주의 말씀들을 듣지 못하는』(암 8:11) “극심한 영적 기근”이 “이스라엘 백성”을 삼켜 버린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신다. BB]]></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Tue, 24 Mar 2026 18:02:47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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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책”인가, “두루마리”인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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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CDATA[사탄의 주된 공격 대상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이 기록된 이래로 사탄은 그 기록된 말씀을 훼손하기 위해 집요하게 시도해 왔다. 특히 성경에서 하나님의 “말씀들”과 그 말씀이 기록된 “책”을 제거하고, 성경의 “권위”를 실추시키려는 사탄의 공격은 더욱 강력해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훼손의 시도는 &lt;개역한글판&gt;에 이어 &lt;개역개정판&gt;에서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br/><br/>&lt;한글킹제임스성경&gt;<br/><br/>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이라. 흙 도가니에서 단련되어 일곱 번 정화된 은 같도다. 오 주여, 주께서 이말씀들(them)을 간수하시리니 주께서 이 세대로부터 영원토록 그것들(them)을 보존하시리이다. (시 12:6,7)<br/><br/>&lt;개역개정판&gt;<br/>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 같도다 여호와여 그들을 지키사 이 세대로부터 영원토록 보존하시리이다<br/><br/>성경에서 기록된 말씀의 “보존”에 관해 가장 강력하게 선언하는 구절은 “시편 12:6,7”이다. 이 구절을 훼손하기 위해, 사탄은 『말씀들』(words)을 「말씀」으로 바꾸고, 『이 말씀들을 간수하시리니』를 「그들을 지키사」로 변개했다. &lt;한글킹제임스성경&gt;은 『주의 말씀들』을 받는 영어 “them”이 의미하는 바를 정확히 하기 위해 “그것들을 간수하시리니”처럼 대명사로 번역하지 않고, 실제 명사를 그대로 받아 『이 말씀들을 간수하시리니』로 번역하였다. 이러한 “them”(『말씀들』)을 이어받는 두 번째 “them”(『그것들』)을 &lt;개역개정판&gt;처럼 「그들」로 번역하면, 이 “them”은 6절의 『주의 말씀들』이 아닌 5절의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 같은 “유대인들”을 받는 대명사로 보이게 된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말씀 보존”에 관해 약속하신 말씀이 “유대인 보존”에 관한 말씀으로 바뀌게 되는데, 바로 여기에 사탄의 속임수가 있다. 성경에는 “유대인 보존”에 관한 말씀이 여러 군데 있어서(렘 31:35-37, 말 3:6, 롬 11:25,26 등) 더 이상의 계시가 불필요할 정도다. 그러나 “말씀 보존”(『그것들을 보존하시리이다.』)에 관한 구절은 “시편 12:6,7”이 가장 직설적이기에(cf. 마 24:35), 이 선명한 구절을 없애면 어떤 그리스도인도 “보존된” 말씀을 소유할 수 없다는 원문비평학자들의 주장에 손을 들어주게 된다. “시편 12:6,7”은 사탄이 제거하고 싶어 할 수밖에 없는 매우 중요한 구절이다. <br/><br/>&lt;한글킹제임스성경&gt;<br/><br/>이는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들을 듣는 각 사람에게 증거함이니 누구든지 이것들에 더하면 하나님께서 이 책에 기록된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계 22:18)<br/><br/>&lt;개역개정판&gt;<br/>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br/><br/>&lt;개역개정판&gt;은 『책[book]』으로 동일하게 번역되었어야 할 헬라어 “비블로스”(bi;blov)와 “비블리온”(bibli;on)을 “요한계시록”에서 아무런 근거도 없이 “비블로스”(계 20:15)는 “책”으로, “비블리온”(계 22:18)은 “두루마리”로 번역하였다. 이것은 성경이 지닌 『책』으로서의 권위를 훼손하려는 사탄의 교묘한 전략이다.<br/>고대의 책들이 “두루마리” 형태였다는 점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두루마리”와 “책”은 동의어가 될 수 없다. 종이, 옷감, 가죽 등을 “말아 놓은” 것이 “두루마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lt;개역한글판&gt;에서도 「책」으로 번역되어 있던 “비블리온”을 &lt;개역개정판&gt;에서 “두루마리”로 변개한 의도는 무엇인가?<br/><br/>본문 요한계시록 22:18에서 사용된 『책』이라는 단어는 “요한계시록” 자체를 의미하고, 더 나아가 “성경” 전체를 의미한다. 그런데 여기에 「두루마리」라는 표현을 쓰면, 요한계시록이 아닌 “별도의” 예언 두루마리가 있었던 것처럼 보이게 되어 예언의 권위를 분리시키고, “성경”에 포함되지 않은 “다른 권위 있는 예언서”가 있는 듯한 느낌을 주게 된다. 사탄은 「두루마리」라는 단어를 &lt;개역개정판&gt;에 새로이 도입함으로써 모종의 「두루마리」를 “또 다른 권위”로 제시하고 성경의 권위를 상대적으로 실추시키려 한 것이다. <br/>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와 같은 계략을 미리 아시고, 『생명의 책』이라는 동일한 표현에 대해 요한계시록 20:12에서는 “비블리온”을 사용하시고, 15절에서는 “비블로스”를 사용하셨다. &lt;개역개정판&gt; 번역자들도 15절의 『생명의 책』 때문에 12절의 『생명의 책』을 “생명의 두루마리”로 변개시키지는 못했다. 결국 그들 스스로가 “비블로스”와 “비블리온”이 동일하게 『책』이라는 뜻임을 자인한 것이며, 요한계시록 22:18의 “비블리온”을 굳이 “두루마리”로 번역한 것은 한 권의 “완성된 책”으로서의 성경의 권위를 훼손하려는 의도적인 변개임을 스스로 입증한 것이다.<br/><br/>&lt;한글킹제임스성경&gt;<br/><br/>모든 성경(scripture)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어진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훈육하기에 유익하니 (딤후3:16)<br/><br/>&lt;킹제임스흠정역&gt;<br/>모든 성경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주어진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br/><br/>하나님의 말씀과 그 말씀을 기록한 “책”의 권위를 훼손시키는 일은 비단 “변개된 원문”에서 번역된 &lt;개역한글판&gt;이나 &lt;개역개정판&gt; 같은 책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보존된 성경인 영어 &lt;킹제임스성경&gt;을 번역했다고 하는 &lt;킹제임스흠정역&gt;도 “성경”이라는 단어를 “성경”에서 없애 버림으로써 그들 마음대로 성경의 권위를 실추시키고 있다.<br/>“성경”이라는 단어의 용례를 논의하기 전에 먼저 “책”이라는 단어를 살펴보도록 하자. 우리말에서 “책을 가져왔다”고 표현할 때는 “책의 내용”을 가져왔다는 뜻이 아니라 “책이라는 물건”을 가져왔다는 뜻이다. 또한 “책을 읽었다”고 표현한다면 “책의 내용”을 읽었다는 뜻이 된다. 이것은 말하는 사람이 어떤 동사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책”이라는 단어가 “책” 자체를 의미하기도 하고, “책의 내용”을 의미하기도 함을 보여 준다. “책”의 용례와 마찬가지로, 우리말에서 “성경”은 “성경책” 자체를 의미하기도 하고, “성경의 내용”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책을 가져와서 성경의 내용을 읽었다”고 표현하지 않고, “성경을 가져와서 성경을 읽었다”고 표현한다. 그런데 이에 무지한 &lt;킹제임스흠정역&gt; 번역자는 “성경”에서 “성경”을 지칭하는 단어인 “scripture”를 모두 “성경기록”으로 번역함으로써, 그의 책에 “성경”은 없고 “성경기록”만 있게 되었다. 웹스터 사전(1828)에서는 “scripture”를 “구약과 신약의 책들; 성경”(the books of the Old and New Testament; the Bible)으로 정의하기에, 그는 우리말 용례뿐만 아니라, 그가 좋아하는 “영어 사전”의 용례마저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을 믿는다”는 것은 “성경의 기록된 말씀”을 믿는다는 것이다. “성경”(聖經)에는 “글 경”(經)이라는 한자가 포함되어 있기에 굳이 “기록”이라는 사족(蛇足) 같은 번역을 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께서 한글을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경은 영어 &lt;킹제임스성경&gt;을 올바로 번역한 &lt;한글킹제임스성경&gt;뿐이다. 이 성경만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권위를 온전히 드높여 드리는, 한 권의 완성된 “책”(the Bible)임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BB]]></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Tue, 24 Mar 2026 17:54:29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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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금식” 없이도 마귀들을 쫓아낼 수 있는가?</title>
<link>https://biblemaster.co.kr/bb19/%EA%B8%88%EC%8B%9D-%EC%97%86%EC%9D%B4%EB%8F%84-%EB%A7%88%EA%B7%80%EB%93%A4%EC%9D%84-%EC%AB%93%EC%95%84%EB%82%BC-%EC%88%98-%EC%9E%88%EB%8A%94%EA%B0%80/</link>
<description><![CDATA[“금식”(fasting)은 “구약 시대”부터 “사도들의 시대”(교회 시대 초기)에 이르기까지 줄곧 행해져 왔다. “모세”가 금식했고(출 34:28), “다윗”이 금식했으며(삼하 12:16), “에스라”(스 8:21), “느헤미야”(느 1:4), “에스더”와 “모르드캐”(에 4:16), “다니엘”(단 9:3) 등이 금식했고, 심지어 북왕국 이스라엘의 가장 사악한 왕이었던 “아합”도 금식했다. 『아합이 이 말들을 듣고 나서 그의 옷을 찢고 그의 몸에 굵은 베를 두르며 금식하고 굵은 베에 누우며 걸음을 조심스럽게 하더라』(왕상 21:27). 또한 “인자”(Son of man)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금식하셨으며(마 4:2), “아셀 지파”의 여선지자 “안나”가 금식했고(눅 2:37), “코넬료”(행 10:30), “바울”(고후 6:5) 등이 금식을 했다. 오늘날 현 교회 시대에 “금식하는 것이 성경적으로 옳지 못하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없다. 물론 이러한 금식을 오용하여 “사순절”(“태양신,” 곧 “이집트”의 “오시리스”를 기리기 위해 40일 동안 금식하는 절기)을 지키고, “극단적인 방법”으로 금식하는 사람들과 교회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구원받은 성도들의 금식”을 비성경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br/><br/>기본적으로 “금식”은 “기도의 응답”(마 17:21)과 “육신을 부인하는 것”과 연관이 있다. 또한 “금식”은 신구약 어느 곳에서도 반드시 지켜야 할 “계명”으로 제시된 적이 없으며, 오히려 어떤 시험과 고난에 직면한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자발적으로 행한 행위”였다. 때때로 하나님께서는 “금식”에 대해 책망하신 적이 있는데, 이는 그것이 “하나님을 위한 금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말하기를 “우리가 금식하였는데도 어찌하여 주께서는 보지 않으시나이까? 우리가 우리의 혼을 괴롭게 하는데도 어찌하여 주께서는 알지 못하시나이까?” 하느니라. 보라, 너희의 금식하는 날에 너희는 기쁨을 찾으며 모든 너희의 일꾼들을 억압하는도다. 보라, 너희가 투쟁과 논쟁을 위하여 금식하며 사악한 주먹으로 치니 너희는 오늘 한 것처럼 너희의 목소리가 높은 곳에 들리도록 금식하지 못할 것이라. 내가 택한 것이 그러한 금식이겠느냐? 그것이 사람이 자기 혼을 괴롭게 하는 날이겠느냐? 이것이 자기 머리를 갈대처럼 숙이고 자기 밑에다 베옷과 재를 펴는 것이겠느냐? 너는 이것을 금식이라고 부르며 주께 받아들여질 만한 날이라 하겠느냐? 내가 택한 금식은 이것이 아니겠느냐? 사악한 결박을 풀어 주고 무거운 짐을 벗겨 주며 억압받는 자들을 놓아주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냐? 굶주린 자에게<br/><br/>네 양식을 나눠 주며 방랑하는 가난한 자를 네 집에 데려오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한 벗은 자를 보면 입히고 네 골육으로부터 자신을 숨기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사 58:3-7) 『그 땅의 모든 백성과 제사장들에게 일러 말하라. 너희가 그 칠십 년 동안 다섯째 달과 일곱째 달에 금식하고 애통하였을 때, 너희가 나를 위하여 금식하였더냐, 정녕 나를 위한 것이었느냐? 또 너희가 먹고 너희가 마실 때에, 너희 자신을 위하여 먹고 너희 자신을 위하여 마신 것이 아니냐?』(슼 7:5,6)<br/><br/>교회 시대의 성도들에게도 “금식”은 필요하다. 시리아의 “안티옥 교회”에서는 『금식하고 기도한 후에』 “성령 하나님”의 말씀대로 “바나바”와 “바울”을 “제1차 선교 여행”을 위해 따로 구별했고(행 13:2,3), 『내가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처럼, 너희는 나를 따르는 자가 되라.』(고전 11:1)라고 권면했던 “바울”은 “금식”을 통해 자신이 “하나님의 일꾼”임을 입증했고(고후 6:4,5), 또 자주 “금식”했다(고후 11:27). 물론 “하나님을 위한 금식”이어야 하고(슼 7:5), “진실한 금식”이어야 한다.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금식이 되어서는 안 되며(마 6:16-18), 반드시 “올바른 행실”이 수반되어야 한다(사 58:3-7).<br/><br/>그러나 변개된 “한글 성서들”은 하나같이 “금식”을 삭제했다. 우선 『그러나 이런 종류는 기도와 금식에 의하지 않고는 나가지 아니하느니라.”고 하시더라.』(마 17:21)라는 말씀을 통째로 없애 버렸고, 『코넬료가 말하기를 “나흘 전 이 시간까지 내가 금식하고 제구시에 내 집에서 기도하고 있었는데...』(행 10:30)에서 『금식하고』라는 말씀을 자기 멋대로 제거했으며, 『너희는 서로 권리를 빼앗지 말라. 다만 금식과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고전 7:5)에서도 『금식과』라는 말씀을 삭제했다. 특히 “마귀들을 쫓아내는 사건”에서 “금식”을 삭제했다. 『예수께서 무리가 함께 달려오는 것을 보시고, 그 더러운 영을 꾸짖으시며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벙어리이며 귀먹은 영아, 내가 너에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와 다시는 들어가지 말라.”고 하시자 그 영이 소리지르고 그에게 심한 경련을 일으키며 나오더라. 그때 그가 죽은 자같이 되었으므로 많은 사람이 말하기를 “그가 죽었다.”고 하니라. 그러나 예수께서 그의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그가 일어나더라. 그후 주께서 그 집에 들어가시니 제자들이 은밀히 주께 묻기를 “어찌하여 우리는 그 영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라고 하니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이런 종류는 기도와 금식에 의하지 않고는 아무것으로도 내보낼 수 없느니라.”고 하시더라』(막 9:25-29). 이 본문에서 “변개된 성서들”은 모두 『금식』(29절)이란 단어를 삭제했다.<br/><br/>특히 『이런 종류[This kind]는 기도와 금식에 의하지 않고는 아무것으로도 내보낼 수 없느니라.』(29절)라는 주님의 답변을 통해 다음 “두 가지 사실”을 알 수 있다. 첫째, 마귀들은 “한 종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종류”이고, 그 “사악함의 정도”가 마귀들마다 다르다. 『그러자 그가 가서 자기보다 더 악한 다른 일곱 영을 데리고[데려와서] 들어가 거기서 사니, 그 사람의 나중 상태가 처음보다 더 악화되었더라』(마 12:45, 눅 11:26). “능력”과 “권세”도 마귀들마다 차이가 있다(엡 6:12). 둘째, 어떤 마귀들은 단순히 『기도』(29절)하는 것, 곧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는 쫓아낼 수 없는데, 우리 자신에게서 “무언가를 금하는 행위,” 곧 음식을 금하는 『금식』(29절)이 필요한 경우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탄”은 이런 사실을 감추기 위해 『금식』이란 어휘를 제거했고, 또 그렇게 함으로써 “마귀 들린” 누군가에게서 “마귀들”을 쫓아낼 수 있는 “강력한 무기”와 그 사람을 “더러운 영들”에게서 해방시킬 수 있는 “중요한 도구”를 없애 버렸다. 말하자면 “마귀들과의 전쟁”에서 “기도”를 더욱 능력 있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금식”이 “변개된 한글 성서들”에서 자취를 감춰 버린 것이다.<br/><br/>그럼에도 불구하고 변개된 성서들을 쓰는 “은사주의 목사들”은 이 구절을 붙들고, 소위 “축사”를 한다며 “기도와 금식”을 강조한다. 하지만 그들의 성서들에는 “금식”이 삭제되어 있으니, “어떤 능력”도 발휘하지 못한다. 오히려 그들 스스로 “마귀 들린 사람”이 되고 마는데, 성경은 이 나라 “대한민국”의 소위 “귀신을 쫓아낸다고 떠들어 대는 가짜 목사들”(조용기, 김기동, 이초석, 박혁 등)을 향해 이렇게 경고한다. 『그 악령이 대답하여 말하기를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지만 너희는 누구냐?”라고 하더라. 그리고 그 악령들린 사람이 그들 위에 뛰어올라 그들을 짓누르니 그들보다 힘이 센지라, 그들이 상처를 입고 벌거벗은 채로 그 집에서 도망치더라』(행 19:15,16). 속는 자만 “손해”를 보는 것이다! BB]]></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Tue, 24 Mar 2026 17:48:49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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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역사의 중심 “이스라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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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CDATA[성경의 “주제”는 “구속”이 아니고 “왕국”(Kingdom)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물리적 왕국”인 “천국”(Kingdom of Heaven)과 “영적 왕국”인 “하나님의 나라”(Kingdom of God)가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인 것이다. 특히 이 “왕국”은 『복되시고 유일하신 통치자시요,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딤전 6:15)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시는 “메시아 왕국”이다. 왕국에는 백성들이 있기 마련인데, “인류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이 왕국을 구성하는 “핵심 국가”이자, “핵심적인 백성”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선택하셨고, 그것도 “무조건적으로” 선정하셔서 “우뚝” 세우셨다. 『내가 바위들의 꼭대기에서 그를 보며 작은 산들에서 그를 보니, 보라, 이 백성이 홀로 거할 것이요, 민족들 가운데 있는 것으로 여겨지지 아니하리라』(민 23:9). 반면에 “다른 민족들”은 하나로 묶어 “헛것보다 못한 것”으로 취급하신다. 『보라, 민족들은 통 속의 한 방울 물 같고, 또 저울의 작은 티끌같이 여겨지느니라. 보라, 그는 섬들을 아주 작은 것으로 여기는도다... 그분 앞에 모든 민족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고, 그 민족들이 그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것, 곧 헛것보다 못하게 여겨지느니라』(사 40:15,17).<br/><br/>『주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는데 “너는 네 고향과 네 친족과 네 아비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할 것이며 네게 복을 주고 네 이름을 위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되리라. 너를 축복하는 자들에게 내가 복을 주고 너를 저주하는 자를 저주하리라. 네 안에서 땅의 모든 족속들이 복을 받을 것이라.” 하셨더라』(창 12:1-3, “무조건적으로” 약속하신 “아브라함의 언약”). 하나님께서 궁극적으로 세우시고자 하는 왕국의 질서는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하는 질서이다. 위대한 민족인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받게 되는 질서가 주님께서 의도하신 세계 질서이며, 그러한 “국제 질서”로 재편될 “천년왕국”에서 “이스라엘 민족”은 숲속 짐승들의 왕 “사자”처럼 “우두머리 국가”가 될 것이다. 그날에 이방 민족들은 이스라엘 앞에서 두려워 떨게 될 것이다. 『야곱의 남은 자는 많은 백성들 중 이방인들 가운데 있으리니 숲속의 짐승들 가운데 사자 같고 양떼 가운데 젊은 사자 같아서 그가 지나가면서 밟고 조각조각 찢으리니 구해 낼 자가 없으리라』(미 5:8). 『그 날에 내가 유다의 총독들로 나무 가운데 불화로 같게, 곡식단 가운데 횃불 같게 하리니, 그들이 오른편과 왼편에 에워싼 모든 백성들을 삼킬 것이라. 그리고 예루살렘은 그 본래의 자리, 곧 예루살렘에 다시 거하게 되리라』(슼 12:6).<br/><br/>인류의 “역사”는 “메시아 왕국”을 향해 나아가는 역사이다. 전체 기간은 “7천 년”인데, 이것은 “재창조 주간 7일”(창 1:3-2:3)에 근거하고 있다. 당시 하나님께서는 『현재 있는 하늘들과 땅』(벧후 3:7)을 창조하셨을 때, 6일 동안 창조하셨고 마지막 “일곱째 날”에는 쉬셨다. 이 “7일간의 창조”는 인류의 역사가 “7천 년 동안” 이 땅에 존속하게 된다는 점을 보여 주는데, “인류의 역사” 6천 년이 지나고 나면 “마지막 일곱 번째 천 년의 기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것이고 이 땅은 “안식”하게 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성경은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벧후 3:8)라고 말씀한다. 최초의 인간인 “아담”(B.C. 4004) 이래로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 때”까지 약 “4천 년”의 시간이 흘러왔고, “초림” 이후로는 지금까지(2026년) “2천 년” 정도의 시간이 지나왔다. 산술적인 계산만 고려하면, 이미 “6천 년”이 넘은 상황이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어떻게 된 것인가? 우리의 “성경 지식”이 잘못된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이와 관련하여 “피터 럭크만” 목사가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나는 이런 사실을 지난 62년 동안(2012년 기준) 가르쳐 왔다. 2000년이 왔다가 갔을 때 나는 내가 가르쳐 왔던 내용을 바꾸지 않았다. 혹자는 ‘럭크만, 뭐가 잘못된 거죠? 주님께서 2000년도에 돌아오실 것이라고 당신이 말한 것 같은데요!’라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아무런 조건도 달지 않고 날짜를 확정한 적이 없다. 우선 한 가지는 우리가 사용하는 달력이 맞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한 가지는 주님께서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어떤 해들이나 날들을 계산하시지 않았던 것처럼(왕상 6:1, 욥 3:6) 계산에 넣지 않으시는 해들과 날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달력’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돌아오실 때의 연도는 우리의 달력과 상관없이 ‘2000년’일 것이라는 사실이다.”<br/><br/>세계인이 쓰는 “달력의 주인공”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인류 역사의 “마지막 천 년의 기간”에 반드시 “왕국”을 세우실 것이다. 인류 역사의 지향점이 바로 이 “왕국”에 있다. 그래서 “왕국”은 “성경의 주제”일 뿐 아니라 “역사의 주제”이기도 하다. [성경은 단순한 “종교 서적”이 아니라 인류를 위한 “역사책”임을 기억하라!] 이런 이유로 “왕국”의 중심인 “이스라엘”은 “역사의 중심”이 된다. 더 나아가서는 “예언의 중심”도 되는데, “예언”이 미리 기록된 “역사”이기 때문이다. 특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영원히 주겠다고 약속하신 “땅”은 온 세상의 “지리적인 중심”이다. 이 땅은 “세 개의 대륙”(세 인종), 곧 “유럽”(코카서스 인종 - 백인)과 “아시아”(몽골 인종 - 황인)와 “아프리카”(니그로 인종 - 흑인)가 만나는 곳이며, 그 옛날 “에덴”이 위치해 있던 자리이기도 하다(창 2:10-14). 이런 “지정학적인 중요성” 때문에 “정치적 ․ 종교적 ․ 문화적 ․ 군사적 측면”에서 언제나 “세상의 이목”이 그 땅에 집중되어 왔다. 그러다 보니 “종교 분쟁국들”의 주요 “전쟁터”가 될 수밖에 없었다.<br/><br/>이렇듯 “이스라엘”은 “역사의 중심”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역사책”인 “성경”을 기록하실 때 “유대인들”을 사용하셨다. 『그렇다면 유대인의 나은 점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냐? 모든 면에서 많으니 무엇보다도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들이 맡겨졌음이니라』(롬 3:1,2). 성경의 모든 책은 “유대인들,” 곧 『성령으로 감동을』 받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들』(벧후 1:21)인 “유대인들”이 기록했다. 예외적으로 “욥기”가 “모세오경”이 기록되기 한참 전에(B.C. 1800-1780), 『람의 친족 부스인[Buzite] 바라켈의 아들 엘리후』(욥 32:2)에 의해 기록되기는 했지만(욥 32:16), “엘리후”는 “나홀”의 아들 “부스”(Buz, 창 22:20,21)의 후손이기에 “유대인들”과 전혀 관계가 없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나홀”은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의 형제였고(창 22:20) “부스”는 “아브라함”의 “조카”였기 때문이다. 이렇듯 “하나님의 말씀”은 유대인들에 의해 기록되었다. 기록되었을 뿐 아니라, 보존도 되었는데, “구약성경”은 유대인들, 특히 “레위 지파”의 “제사장들”에 의해 보존되었고, “신약성경” 역시 “교회 시대 초기”에는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보존되었다.<br/><br/>또한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구원할 “구주”를 이 땅에 보내실 때 역사의 중심인 “이스라엘 민족”을 통해 보내 주셨다. 『그들은 이스라엘인들이라. 그들에게는 양자 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주심과 하나님을 섬김과 약속들이 있고 조상들도 그들의 조상이며 육신으로는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서 나셨으니 그는 만물 위에 계셔서 영원히 송축받으실 하나님이시라. 아멘』(롬 9:4,5). 『너희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것을 경배하고, 우리는 우리가 경배하는 것을 아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나오기 때문이라』(요 4:22). 온 인류가 마땅히 경배드려야 할 대상은 “하나님” 한 분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민족은 오직 “유대인”뿐이었다. 유대인 외에 그 어떤 민족도 “하나님만이 인간의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한 유일하신 분”이라는 점을 알지 못했다.<br/><br/>사실 “유일신 사상”은 “유대인”에게서 나왔다. 오늘날 세상에는 “많은 종교”가 있지만, “유일신 사상을 가진 종교”는 “유대교” 또는 “유대교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종교들”밖에 없다. 그 외의 종교들은 모두 “다신교”이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주만이 땅의 모든 왕국들의 하나님이시며... 하늘과 땅을』(사 37:16) 지으신 『참 하나님이시며... 살아 계신 하나님이요, 영원한 왕』(렘 10:10)이시라는 사실을 “유대인들”을 통해 보여 주셨다.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께서 친히 다스리시고 그분의 백성들이 주님을 온전히 두려워하고 사랑하며 섬기는 ‘완벽한 신정 통치 국가’가 어떤 나라이고, 또 얼마나 풍성한 복을 받고 있는지”를 “온 세상”에 보여 주심으로써 이방 민족들도 이스라엘을 본받아 하나님 한 분만을 섬기는 민족들이 되게 하려고 하셨다. 진정한 “역사의 중심”으로 “이스라엘”을 높이 세우려 하셨던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마귀들과 우상들”을 섬기는 “이방 왕국들”을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이 따라가고 말았다. 결국 이스라엘은 그들에게서 나신 “그리스도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기까지 했고, 종국에는 “역사의 중심”에서 저 멀리 밀려나고 말았다. <br/><br/>역사의 중심인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다음과 같은 “조건적인 약속”이 주어져 있었다. 『내가 오늘 네게 지켜 행하라고 명령하는 주 너의 하나님의 계명들에 네가 경청하면, 주께서는 너를 머리가 되게 하시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너로 위에만 있게 하시고 너로 아래에는 있지 않게 하시리라』(신 28:13). “이스라엘”은 “역사의 중심”에 우뚝 서서 온 세상을 “도덕적인 타락”에서 구하고 “이 땅의 부패”를 방지하는 『세상의 빛』(마 5:14)과 『땅의 소금』(마 5:13)의 역할을 온전히 감당했어야 했다. 만일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고 주님을 올바르게 섬겼다면, 그들 자신뿐 아니라 그들이 거하는 “약속의 땅”도 복을 받고 번성했을 것이다. “이스라엘 땅”만 번성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 “이방 민족들”도 평화롭게 된다. 실제로 이스라엘 역사상 “다윗”에서 “솔로몬”으로 이어지는 “황금시대”에는, “고대 근동 지역,” 곧 오늘날의 “중동 지역”이 별 큰 싸움 없이 평화로웠다.<br/><br/>그러나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 숭배로 나아가 이방 민족들보다 더 타락하기 시작했을 때, “땅”은 더욱 부패하고 버림받았으며 그 주변 나라들 역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약육강식의 세상”이 되고 말았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작금에 일어난 “이스라엘 - 하마스 전쟁”이나 “이스라엘 ․ 미국 - 이란 전쟁”이 그런 현실을 잘 반영해 주고 있다. 하지만 이제 그 모든 전쟁을 끝내실 “메시아 왕”께서 돌아오실 것이고, 그날에 “이스라엘 백성”은 다시 “역사의 중심”에 우뚝 서게 될 것이다. 『네가 주 너의 하나님의 음성에 열심히 경청하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분의 모든 계명들을 지켜 행하면, 주 너의 하나님께서 너를 땅의 모든 민족들보다 높게 세우시리라』(신 28:1). BB]]></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Tue, 24 Mar 2026 17:41:36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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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칼빈주의 예정론 vs. 성경적 예정론</title>
<link>https://biblemaster.co.kr/bb19/%EC%B9%BC%EB%B9%88%EC%A3%BC%EC%9D%98-%EC%98%88%EC%A0%95%EB%A1%A0-vs-%EC%84%B1%EA%B2%BD%EC%A0%81-%EC%98%88%EC%A0%95%EB%A1%A0/</link>
<description><![CDATA[캐나다 출신의 “생리학자”이자, “인류학자”요, “신학자”였던 “아서 커스턴스”(Arthur C. Custance, 1910-1985)는 “칼빈주의 신학”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하나님의 주권과 예정론”을 옹호하는 저작을 남겼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소위 “칼빈주의 5대 강령”(TULIP)은 “존 칼빈”(1509-1564)이 주장하기 1,100여 년 전에 이미 “어거스틴”(354-430)에 의해 확립되었다. 실제로 “어거스틴”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의심할 여지없이 하나님께서는 멸망하게 될 것을 예지하신[미리 아신] 사람들도 창조하셨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려고 하셨기[미리 정하셨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그러나 왜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려고 했는지는[미리 정하셨는지는] 우리가 물어보아야 할 사안이 아니다[말하자면 ‘어거스틴’ 자신도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면서 주장한 것임]. 이는 우리로서는 그것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br/><br/>“어거스틴”은 인간의 “자유 의지”(free will)를 부인했고 성경적인 개념의 “전적 타락”이 아닌 비성경적이고 비상식적인 “전적 무능력”을 믿었다[제1강령 : “전적 타락”(Total Depravity)]. 이에 그는 “만일 당신이 믿지 않는다면, 그 이유는 당신이 이미 하나님께서 정하신 파멸의 상태에 처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면서 “무조건적인 선택”을 가르쳤다[제2강령 : “무조건적 선택”(Unconditional Election)]. 또한 무조건적으로 선택받은 소수의 사람에게만 “구속의 목적을 제한시켰고”[제3강령 : “제한된 속죄”(Limited Atonement)], 사람이 회개하고 믿기 전에 먼저 “거듭나야 한다”고 가르치면서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가까이 부르실 때는 사람들의 뜻에 따라 부르시는데, 그 뜻은 하나님께서 친히 주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제4강령 : “저항할 수 없는 은혜”(Irresistible Grace)]. 마지막으로 ‘구원받은 사람이라도 구원을 견인하지 못하면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생각했으나(“구원의 영원한 보장”을 부인함), 또 다른 한편으로는 ‘선택받은 사람이 거듭나지 않은 상태로 죽는 경우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구원받은 사람이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으나, 언제든지 죽기 전에 구원을 다시 받을 수 있다는 해괴한 논리가 된다[제5강령 : “성도의 견인”(Perseverance of the Saints)].<br/><br/>한편 “예정론”은 앞서 언급한 “무조건적인 선택”이라는 거짓 교리에 기초하고 있는데,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구원받을 사람”과 “멸망받을 사람”을 세상이 창조되기 이전에 그분의 주권적이고 영원한 판결에 의해 미리 정하셨다는 것이다. 이런 거짓 교리와 관련하여 “칼빈주의자들”은 다음과 같은 주장을 내놓는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영원한 선택’으로 ‘하늘나라의 후사’를 정하시고, 말씀의 씨를 뿌리시고, 뿌리를 내리게 하시며, 열매를 맺게 하신다. 그러나 ‘버림받은 자들’은 진리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깨닫지도 못하며 멸망받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셨는가? 거기에는 오직 ‘하나님의 비밀스러운 뜻’만 있을 뿐이다. 우리의 생각은 미천하고 어리석어 하나님의 생각과 하나님의 행하심을 따라갈 수 없다(사 55:8,9). ‘선택과 예정’은 ‘하나님의 주권의 영역’에 속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절대 주권의 자비하심을 생각하고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이 최상의 삶의 자세이다”(존 칼빈). “선택이란, 인류 가운데 얼마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인류 가운데 일부만을 구원하기로 목적하셨다는 말은, 그 나머지는 자연스럽게 구원하시지 않기로 목적하셨다는 것을 보여 준다”(루이스 벌코프).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영광을 나타내시기 위해 어떤 사람들과 천사들은 하나님의 판결에 의해 ‘영원한 생명’으로 예정하셨고, 나머지는 ‘영원한 죽음’으로 예정하셨다”(R.L. 대브니).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은 자들’과 ‘구원받지 못한 자들’을 주권적으로 예정하셨다”(헤르만 혹세마). “바울 서신은 예정의 위대한 교리를 반복해서 가르친다. 사실 ‘바울’이 가르친 모든 것은 예정에 관한 교리의 기초를 형성한다”(J. 그레샴 메이첸). “선택의 교리를 ‘바울’보다 더 쉽고 강력한 언어로 말한 사람이 있겠는가?”(로레인 뵈트너)<br/><br/>이보다 더 “비성경적이고 마귀적인 가르침”이 있겠는가? 결코 “바울”과 “바울 서신”은 “칼빈주의 예정론”을 가르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거부한다! 만일 그런 거짓 교리를 가르쳤다면 다음과 같은 말씀들은 성경에 기록되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약한 사람들에게 약한 사람같이 된 것은 약한 사람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이 된 것은 어떻게 해서든지 몇 사람을 구원하고자 함이라』(고전 9:22). 창세전에 이미 “구원받을 사람”이 정해져 있다면, 죄인들을 이겨오기 위해 그토록 애쓸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이는 너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명의 스승을 가졌을지라도 아비들은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을 통하여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고전 4:15). “존 칼빈”의 주장대로, 하나님께서 “하늘나라의 후사들”을 이미 정해 놓으셨다면, “복음을 통해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낳았다”고 발언하는 “바울의 고백”은 매우 불경스러운 것이 된다.<br/><br/>심지어 “바울”은 죄인들이 구원받을 수 있게 하려고 진리의 말씀으로 그들을 애써 “설득하기까지” 했다. 『그가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변론하며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을 설득시키니라』(행 18:4). 『바울이 회당으로 들어가서 담대하게 말씀을 전하니 석 달 동안이나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일들을 변론하고 설득시키더라』(행 19:8). 『그대들이 보고 들은 바와 같이 이 바울이 에베소뿐만 아니라 아시아 온 지역에서 손으로 만든 것은 신들이 아니라고 많은 사람을 설득하여 돌아서게 하였으므로』(행 19:26). 『그러자 아그립파가 바울에게 말하기를 “네가 나를 설득시켜 거의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라고 하니』(행 26:28). 『그후 그들이 그와 날을 정하여 많은 사람이 그의 숙소로 찾아오니 그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증거하고 또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로써 예수에 관하여 그들을 설득시키더라』(행 28:23). 하나님의 “주권적이고 영원한 판결”에 의해, 어떤 사람들은 “영원한 생명”으로, 또 어떤 사람들은 “영원한 죽음”으로 예정되어 있다면, 왜 굳이 “바울”은 죄인들을 이겨오기 위해 애를 쓴 것인가?<br/><br/>심지어 그 일을 위해 “목숨”을 걸었어야 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그러나 나의 달려갈 길을 기쁨으로 끝마치고 내가 주 예수로부터 받은 사역,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서라면 이런 일을 전혀 개의치 아니할 뿐 아니라 나의 생명을 조금도 아끼지 아니하노라』(행 20:24). 도대체 왜 “바울”은 『많은 인내와 환난과 궁핍과 곤란과 매맞음과 갇힘과 소요와 수고와 깨어 있음과 금식』(고후 6:4,5) 등을 감수하면서까지 애써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려 했던 것인가? “칼빈주의 예정론”으로 “바울”을 조명해 보면, “바울”은 무척 “불쌍하고 처량한 사람”이 된다. 쓸데없는 노력으로 인생을 낭비한 사람이 되고 마는 것이다! “칼빈주의 예정론”을 맹목적으로 믿고 따르는 어리석은 군상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 보라. “칼빈주의 예정론대로라면, 창세전에 이미 ‘구원받기로 선택된 사람’은 어차피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실 사람이니, 지금 당장 긴급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아도 걱정할 게 없고, 또 술 마시고 간음하고 도둑질하고 살인을 저질러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느끼는 반면, ‘지옥에 가기로 예정된 사람’은 구원받기 위해서 아무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겠다고 아우성치고 발버둥 쳐도 어차피 지옥에 가야 하기에 아무 소용도 없다고 느끼게 된다는 결론을 도출할 수밖에 없는데, 이에 대해 해명할 수 있겠는가?” 또한 “오늘 이 자리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다 한들, 나중에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주님께서 ‘나는 네가 하늘나라에 가도록 선택한 적이 없노라.’라고 말씀하신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br/><br/>“성경적 예정론”은 “칼빈주의 예정론”과 확연하게 다르다. 우선 “칼빈주의자들”이 “예정”과 관련하여 자주 오용하는 두 본문이 있다. 『그분께서는 미리 아신 자들을 자기 아들의 형상과 일치하게 하시려고 또한 예정하셨으니 이는 그를 많은 형제 가운데서 첫태생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리하여 예정하신 이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이들을 또한 의롭게 하시고 의롭게 하신 이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롬 8:29,30). 『하나님의 기쁘신 뜻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자신의 자녀로 입양할 것을 예정하셨으니... 모든 것을 그 자신이 의도한 대로 행하시는 이의 목적을 따라 우리가 예정되어 그분 안에서 유업을 받았으니』(엡 1:5,11).<br/><br/>그런데 “칼빈주의자들”이 그토록 애지중지하는 위 본문들 중 그 어디에도 “어떤 사람이 창세전에 구원받기로 예정되어 있다는 내용”은 나오지 않는다. 다만 “이미 ‘구원받은 성도들’을 위한 예정,”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이미 ‘지옥으로부터 구원받은 성도들’이 ‘입양될 것’이라는 예정”만 언급된다. 물론 우리는 성령으로 거듭난 순간에 『양자 되는 영』(롬 8:15)을 받음으로써 “양자로서의 자격”을 이미 갖추었다. 그래서 우리가 “주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롬 8:15)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양자가 되는 시기”는 이제 곧 일어날 “휴거 때”이다. 왜냐하면 아직 우리의 “몸”이 “구속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은 거듭나고, “혼”은 구원받았어도, 우리의 『죄의 몸』(롬 6:6)은 여전히 구속받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속으로 신음하며 양자 되는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고』(롬 8:23) 있다. 그날이 올 때, 우리는 『몸의 구속』을 받아 영원토록 『썩지 아니할 몸』과 『죽지 아니할 몸』을 입게 되고(고전 15:53), 『하나님의 상속자들이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공동 상속자들』(롬 8:17)로서, 곧 “양자”로서 “상속의 권리”를 누리게 된다.<br/><br/>그래서 “에베소서 1:5”에서는 “이미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을 바로 “이와 같은 방식”으로 『입양할 것을』 “예정했다”고 말씀하는 것이고, 또 “로마서 8:29”에서는 그러한 “입양”을 위해 “이미 구원받은 성도들”을 『자기 아들의 형상과 일치하게』 하는 일, 곧 『몸의 구속』(롬 8:23)을 “예정했다”고 말씀하는 것이다. 특히 “로마서 8:29,30”에서는 “구원과 연관된 일련의 사건들의 순서”를 보여 주고 있다. 우선 어떤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아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오게 될지에 관한 “하나님의 미리 아심”이 있다(벧전 1:2, 엡 1:4). 다음으로 “미리 아심”에 따라 구원받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형상”과 일치될 것이 “예정”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그리스도 안에서』(엡 1:4) 선택받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입양』(엡 1:5)될 것이 “예정된 사람들”을 『부르시고... 의롭게 하시고... 영화롭게』(롬 8:30) 하신다. 이것이 바로 “성경적 예정론”이다. 지금 당장 “칼빈주의 예정론”을 쓰레기통으로 던져 버리고 “성경적 예정론”을 믿기 바란다. BB]]></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Tue, 24 Mar 2026 17:36:53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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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소선지서 특강 : 호세아 (2) 배교한 이스라엘의 영적인 황폐함</title>
<link>https://biblemaster.co.kr/bb19/%EC%86%8C%EC%84%A0%EC%A7%80%EC%84%9C-%ED%8A%B9%EA%B0%95-%ED%98%B8%EC%84%B8%EC%95%84-2-%EB%B0%B0%EA%B5%90%ED%95%9C-%EC%9D%B4%EC%8A%A4%EB%9D%BC%EC%97%98%EC%9D%98-%EC%98%81%EC%A0%81%EC%9D%B8/</link>
<description><![CDATA[타락한 “북왕국 이스라엘”은, “솔로몬” 이후 왕국이 처음 남북으로 갈라진 때부터 “우상 숭배”로 시작된 나라였다. 북왕국의 초대 왕 “여로보암”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백성들로 “우상 숭배의 죄”에 빠지게 했던 것이다. 특히 북왕국의 가장 사악한 왕이었던 “아합”은 “금송아지 숭배”에 더럽고 가증스러운 죄 한 가지를 더 보탰으니, 그것이 바로 “바알 숭배”였다. 이러한 “우상 숭배”는, 성경에서 “영적인 음행과 간음”으로 취급되는데, 이는 “여호와 하나님”의 『아내』(사 54:6)요, 『신부』(사 62:5)인 “이스라엘 민족”이 그들의 『남편』(사 54:5)이자, 『신랑』(사 62:5)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남편,” 곧 “이방 신들”을 따라 우상들을 더 사랑하고 섬기며 숭배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가증한 행위를 『창녀짓』(호 2:5; 3:3; 4:15)으로 규정하셨다(겔 23장). 이러한 영적인 음행과 간음을 지워버리지 않는 한 “이스라엘”은 “아내로서의 지위”를 온전히 회복할 수 없다.<br/><br/>한편 영적인 음행인 우상 숭배는 육체적인 음행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들이 산들의 정상에서 희생제를 드리며, 작은 산들 위에서와 상수리나무, 버드나무, 느릅나무 아래서 분향하니[“우상 숭배”인 “영적 음행”], 이는 그 그늘이 아름답기 때문이라. 그러므로 너희 딸들은 행음할 것이며[“육체적인 음행”], 너희 아내들은 간음하리로다[“육체적인 간음”]. 너희 딸들이 행음하거나 너희 아내들이 간음해도[“육체적인 음행과 간음”] 내가 그들을 벌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 자신이 음녀들과 함께 분류되며 창녀들과 함께 희생제를 드림이라[“영적인 음행”]. 그러므로 깨닫지 못하는 백성은 패망하리라』(호 4:13,14). “영적인 우상 숭배”가 “실제적인 우상 숭배”와 동일하게 취급되듯, “영적인 간음” 역시 “육체적인 간음”과 동일한 것으로 취급된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똑같은 『음행의 영』(호 4:12; 5:4)이 “영적인 간음”과 “육체적인 간음,” 이상 두 가지 죄를 모두 주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br/><br/>그래서 “페니키아”의 바알 숭배자들이나 “그리스”의 다이아나 여신 숭배자들은 그들의 “신전” 안에 “창녀들”을 두었고, “인도”의 “힌두교”는 그들의 교리 자체에 “음란한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다. 심지어 신전 안에 “미동들”을 둔 곳도 있었다. 말하자면 “종교”라는 미명하에 이런 창녀들과 미동들과의 음행이 공공연하게 행해졌던 것이다. 이런 더러운 죄들이 “그리스”나 “로마”와 같은 “다신교 사회”에서는 훨씬 더 많았다. “바알 숭배”도 마찬가지였다. 이스라엘 주변의 모압, 암몬, 시리아, 에돔 같은 나라들에서도 이런 죄들이 전혀 “거리낌없이” 행해졌고, 심지어 “고대 사회”에서는 “문화의 일부”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그들의 추악한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그런 죄들에 오염되고 말았다. 결국 이러한 우상 숭배로 인해 북왕국 이스라엘은 영적으로 완전히 황폐하게 된다. 그런 영적인 황폐함에 대해 “호세아”에서는 다음 “다섯 가지 모습”으로 설명하고 있다.<br/><br/>1) 『오 에프라임아, 내가 네게 무엇을 하랴?... 이는 너희의 선함이 아침 구름 같고, 이른 이슬 같이 사라짐이라』(호 6:4). 이 구절에서는 “배교한 이스라엘의 패역한 모습”을 금세 사라져 버리는 『아침 구름』과 『이른 이슬』에 비유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아침 구름과 같고 사라지는 이른 이슬 같으며, 타작마당에서 회오리바람에 날리는 쭉정이 같고 굴뚝에서 나는 연기 같으리라』(호 13:3). 이러한 모습은, 이른 아침 “태양”이 떠오르기 전에 “안개”가 증발하듯이, 또는 “아침 해”가 중천에 뜨기 전에 땅 위의 “이슬”이 사라지듯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선함”이 “금방 사라지는 것”을 보여 준다. 그만큼 오래 지속되지 못하는 것인데, 이는 그들의 선함이 “헛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를 영적으로 적용해 보면, 언제나 그렇듯이 “성령님”이 아닌, “육신”에 따른 “선함”은 오래가지 못하는 법이다.<br/><br/>2)『에프라임, 그는 백성 가운데서 스스로를 혼합시켰으니, 에프라임은 뒤집지 않은 과자로다』(호 7:8). 『뒤집지 않은 과자』는, 한쪽은 설익고 다른 한쪽은 바싹 타서 먹지 못하는 상태를 보여 준다. “이스라엘 백성”이 그렇게 된 이유는, “음행과 간음”으로 마음이 불타올랐던 그들이 스스로를 이방인들과 혼합시켰기 때문이다. 『달구어진 화덕』(호 7:4)처럼 정욕이 불탔던 그들은 무절제하게 이방인들과 섞였던 것인데, 그러면서 동성연애, 수간, 근친상간, 게으름, 거짓말, 절도, 사탄 숭배 등, 이방인들의 온갖 더럽고 가증스러운 행위들을 따라 행한 것이다. 특히 이런 죄들이 “통치자들”에게서 나타났으니, 결국 “음행과 간음”으로 『달구어진 화덕』이 “재판관들”을 삼키고 “왕들”을 쓰러트렸다. 『그들은 모두가 간음하는 자라, 빵 굽는 자에 의해 달구어진 화덕 같아서, 그가 반죽한 후에는 불을 일으키기를 그치니 반죽이 발효될 때까지만 하느니라... 그들이 엎드리어 기다릴 때에 그들의 마음을 화덕같이 준비하였으니, 그들의 빵 굽는 자는 밤새도록 자고 그것은 아침에 불꽃처럼 타는도다. 그들은 모두 화덕처럼 뜨거워져서 그들의 재판관들을 삼켰으며 그들의 모든 왕들은 쓰러졌으니, 그들 가운데 나를 부르는 자는 아무도 없도다』(호 7:4,6,7).<br/><br/>3) 『타국인들이 그의 힘을 삼켰으나 그는 그것을 알지 못하나니, 정녕, 백발이 그에게 여기저기 생겨도 그는 알지 못하는도다』(호 7:9). “백발”은 하나님의 도우심이 끊겨서 더 이상 힘을 쓸 수 없는 상태를 보여 주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은 여전히 하나님께서 그들을 돕고 계시는 줄로 착각하고 있다. 아직도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힘”이 자기들에게 있다고 오인하는 것이다. 이것은 “삼손”이, “데릴라”의 유혹으로 머리가 깎여서 힘이 사라졌는데도 여전히 자신에게 “강력한 힘”이 있다고 오판한 나머지, 자기를 잡으러 온 “필리스티아인들”을 향해 힘을 발휘하려 했던 것과 매한가지 모습이다. 이처럼 이 구절에서는 “흰머리,” 곧 “백발”이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는데,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전제 조건”이 따라붙는다. 『의의 길에서 얻게 된다면 흰머리는 영광의 면류관이니라』(잠 16:31). 다시 말해 “의의 길에서 얻는 흰머리만”이 영광이 되는 것이다.<br/><br/>“피터 럭크만” 목사는 이렇게 말했다. “한겨울의 매서운 눈보라와 폭풍에 맞서 있으면서도, 자신의 책무를 버리지 않고 충성스러운 보초병처럼, 자리를 지키는 ‘노인’보다 더 장엄하고 영광스러운 모습은 없다. 그는 바람을 직시한다. 그의 ‘노년’은 땅의 폭풍에 노출되어 있지만, 그는 끝까지 잃어버린 죄인들을 향해 ‘경계의 외침 소리’를 높였다. 그런 노인에게는, 눈 내린 머리 위에서 빛나는 ‘영원한 아침 빛’이 생명의 나무에서 만개되고 반사되는 ‘햇빛’과 같고, 특히 ‘영광의 면류관’이 저 강 너머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선지자 “호세아” 당시의 이스라엘은 이와 정반대의 모습이었으니, 얼굴에는 주름이 잡히고 흰 머리카락이 하나둘씩 생겨나지만, “의의 길에 서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오히려 시력을 잃은 흐릿한 눈 속에 정욕이 불타고 있었고, 더 이상 아무런 힘이 없었음에도 여전히 자만하고 완고한 마음으로 반역하고 있었으며, 자신의 의로 가득 차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의 악한 습관을 극복할 힘이 없었고, 의로움을 견지할 능력도 남아 있지 않았다. 심지어 “타국인들”이 그들의 힘을 삼켰음에도, 전혀 그것을 인지하지 못했으며, 더군다나 그런 모든 일을 당했어도 하나님께로 돌이키지 않았다.<br/><br/>4) 『에프라임은 또한 마음 없는 어리석은 비둘기 같으니 그들은 이집트를 부르며 그들은 앗시리아로 가는도다. 그들이 갈 때에 내가 내 그물을 그들 위에 쳐서 하늘의 새들처럼 잡아 내리고 그들의 회중이 들었던 바와 같이 내가 그들을 징계하리라』(호 7:11,12). 『마음 없는 어리석은 비둘기』의 모습은, “이스라엘 백성”이 그들의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지 않고, 너무 어리석게도 자기들이 보기에 ‘꽤나 힘이 있다’고 생각되는 주변 이방 민족이나 동맹국들에게로 가서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는 것을 보여 준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그물을 그들 위에 쳐서 하늘의 새들처럼 잡아 내리고... 그들을 징계하리라.』(12절)라고 경고하시는데, 이렇듯 “그물”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징계하시고 심판하시는 도구이다. 때로는 그들을 징계하시기 위해 “사냥꾼들”을 보내시기도 하는데,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독일”의 나치 친위대 소속의 “소총수들”이 보내졌고, 이들이 유럽 전역을 누비면서 닥치는 대로 “유대인들”을 사냥했다. 『주가 말하노라. 보라, 내가 많은 어부들을 보내리니 그 어부들이 그들을 낚을 것이며 그후에 내가 많은 사냥꾼들을 보내리니 그 포수들이 모든 산과 모든 작은 산과 바위 굴들에서 그들을 사냥하리라. 이는 내 눈이 그들의 모든 길들 위에 있음이니 그들이 내 얼굴로부터 숨지 못하며 그들의 죄악이 내 눈에서 감춰지지 못하리라. 먼저 내가 그들의 죄악과 그들의 죄를 배로 갚으리니 이는 그들이 내 땅을 더럽혔고 그들이 내 유업을 그들의 혐오스럽고 가증스러운 것들의 시체들로 채웠음이라』(렘 16:16-18). <br/><br/>5) 『그들이 돌아오나 지극히 높으신 분께로 가지 아니하는도다. 그들은 속이는 활과 같으니, 그들의 고관들은 그들의 혀의 사나움으로 인하여 칼에 쓰러지리로다. 이것이 이집트 땅에서 그들의 조롱거리가 되리라』(호 7:16). “속이는 활”은, 화살을 과녁을 향해 제대로 쏘지 않고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가게 만드는 활을 의미한다. 이것은 마치 쏘는 각도를 잘못 조정하거나, 풍향과 풍속을 제대로 읽지 않고 화살을 날리는 활과 같다. 한편 “속이는 활”은 죄에 대한 고전적인 정의이기도 하다. 『이는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다가』(롬 3:23). “죄”에 해당하는 헬라어 “하말티아”는 과녁에 이르지 못하거나 과녁에서 빗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과녁”은 “하나님의 의나 성품” 또는 “하나님의 뜻과 영광”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의와 성품, 뜻과 영광”에 이르지 못하거나 거기에서 빗나가는 것이 바로 “죄”인 것이다.<br/><br/>이상의 내용이 “호세아” 당대의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였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도저히 회복이 불가능해 보이는 그런 ‘황폐한 상태’에까지 이르렀으면, 이제는 돌아올 때가 되지 않았느냐!”라고 말씀하시며 “회개”를 촉구하신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돌아오지 않았다. 무언가 뉘우치는 것 같고, 또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것 같다가도 정작 하나님께로 돌아오지는 않는 것이다. 『그들이 그들의 침상에서 울부짖을 때에도 그들은 전심으로 내게 부르짖지 아니하였도다』(호 7:14). 현대 그리스도인들 중에도 이렇게 신세타령만 하고 진실로 회개하지도, 부르짖지도 않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자들은 결코 “하나님의 도움”을 얻지 못한다. 설령 돌아간다 해도 남편인 하나님께로 가지 않고 엉뚱한 곳으로 향하는데, 결국 그런 배교한 이스라엘에게는 “하나님의 심판”만 남아 있을 뿐이다. BB]]></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Tue, 24 Feb 2026 09:41:14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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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이방인들의 충만함 vs. 이방인의 충만한 수</title>
<link>https://biblemaster.co.kr/bb19/%EC%9D%B4%EB%B0%A9%EC%9D%B8%EB%93%A4%EC%9D%98-%EC%B6%A9%EB%A7%8C%ED%95%A8-vs-%EC%9D%B4%EB%B0%A9%EC%9D%B8%EC%9D%98-%EC%B6%A9%EB%A7%8C%ED%95%9C-%EC%88%98/</link>
<description><![CDATA[성경에는 “일곱 신비”(Seven Mysteries, 이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피터 럭크만” 박사의 저서 &lt;일곱으로 일하시는 하나님&gt;을 참고할 것)를 위시하여 “열다섯 개”의 서로 다른 『하나님의 신비들』(고전 4:1)이 기록되어 있다. 이 “신비들”을 “초림”부터 “재림”까지 경륜적인 순서에 따라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초림”과 관련하여, 1)『경건의 신비』(딤전 3:16)가 계시되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육신을 입고 나타나신 신비”로, “성육신의 신비,” 또는 “아버지의 신비”(골 2:2)로도 불린다.<br/><br/>그다음 “교회 시대”와 관련해서는 총 “여덟 개”의 신비가 계시되는데, 2) 먼저 『복음의 신비』(엡 6:19, cf. 고전 2:7)가 있다. 이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장사와 부활에 관한 신비”로서,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행 20:24) 그 자체이다. 3) 다음으로는 “성도들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신비”(골 1:26,27, cf. 갈 2:20)인데, 말 그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 하나님을 통해 각 그리스도인의 몸을 “성전”으로 삼고 그 안에 내주하시는 신비인 것이다. 그래서 간단하게 “내주하시는 신비”라고도 부른다. 4) 또한 『그리스도의 신비』(엡 3:4, 골 2:2; 4:3), 곧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이 한 몸을 이루는 신비”가 있다(엡 3:1-12, 골 4:3,4, cf. 롬 16:25,26). “그리스도의 몸”(유기체로서의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성도는 “유대인이든지, 이방인이든지,”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 이 『신비의 교제』(엡 3:9)에 참여하게 된다. 5) 다음으로 『믿음의 신비』(딤전 3:9)는 하나님의 말씀들을 “모두 있는 그대로 믿는 것”을 의미한다. 말하자면 “믿음 그 자체”를 신비라고 말씀하는 것인데, 이는 믿음으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이 “표적을 봐야 믿는 유대인들”과 달리 “보지 않고도 믿는 믿음”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우리를 세상 사람들은 물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유대인들”조차 도무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믿음”을 “신비”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6) 그다음은 『일곱 별과 일곱 금촛대의 신비』(계 1:20)이다. 이 신비는 “2천 년 ‘교회 시대’에 관한 진리”(계 2,3장)를 담고 있는 신비이다. 7) 그리고 물리적인 왕국에 관한 『천국의 신비들』(마 13:11)과, 8) 영적인 왕국과 연관된 『하나님의 나라의 신비(들)』(막 4:11, 눅 8:10)이 있는데, 전자는 “교회 시대”에 신비적인 형태로 감추어진 “천국”(Kingdom of Heaven)의 모습을 제시하고 있는 반면(마 13,18,20,22,25장), 후자는 “교회 시대”에 나타나는 영적인 “하나님의 나라”(Kingdom of God)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막 4:1-34, 눅 8:4-18; 13:18-21). 9) 그다음 교회 시대와 관련된 마지막 신비는 “교회의 휴거의 신비”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공중으로 오실 때 그리스도 안에서 잠든 그리스도인이든지, 살아 있는 그리스도인이든지, 모든 그리스도인이 예수님처럼 “변화된 몸”으로 공중으로 끌려 올라가는 것이다(고전 15:51-56, 살전 4:13-18, 요 11:25,26).<br/><br/><br/>308쪽 / 12,000원<br/>(eBook 8,400원)<br/><br/>“교회의 휴거” 이후로는 “환란 시대”가 펼쳐지는데, 환란 시대와 관련된 신비는 모두 “세 가지”이다. 10) 우선 『불법의 신비』(살후 2:7)가 있으며, 이것은 앞서 언급한 “경건의 신비”와 반대되는 신비로, “사탄이 적그리스도로 육화한 신비”이다(살후 2:2-8). 사도 “요한”은 이 신비를 가리켜 『짐승의 신비』(계 17:7)라고 명명했다. 11) 다음으로는 『신비라, 큰 바빌론이라, 땅의 창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계 17:5)라고 말씀하는 “큰 바빌론의 신비”가 있는데, 이것은 『큰 창녀』(계 17:1)인 “로마카톨릭”과 연관된 신비로서, 『여자의 신비』(계 17:7)라고도 불린다. 12) 또한 『위대한 신비』(엡 5:32)로 불리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신부인 교회의 신비”가 있는데(엡 5:23-32), 이것은 “환란 시대 끝”에 이루어질 『어린양의 혼인식』(계 19:7)과 연관이 있다(계 19:7-9; 21:9,10). 하지만 이 신비는 “불법의 신비”나 “큰 바빌론의 신비”와 다르게, 이곳 지상이 아닌, 저 셋째 하늘에서 이루어진다. 신비가 등장하는 “시대”만 일치할 뿐이다.<br/><br/>이후 환란 시대가 끝날 무렵,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재림하실 것인데, “재림”과 연관된 신비는 “두 가지”이다. 13) 먼저 『하나님의 신비』(계 10:7)는,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통치하시기 위해 재림하시는 신비”로,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재림 그 자체”를 가리켜 “하나님의 신비”라고 말씀하는 것이다(골 2:2, 계 11:15). 14) 그다음으로 “이스라엘의 회복의 신비”가 있는데, 일시적으로는 “메시아”를 거부했던 이스라엘이 완고한 상태로 완전히 버려지지만, 궁극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더불어 민족적으로 구원받고 회복된다는 점을 보여 주는 신비”이다(롬 11:25,26). 15) 마지막 신비는 “만물의 회복의 신비”이며, 이것은 “천년왕국”부터 시작해서 “영원 시대”로 넘어가는 기간에, 『때가 찬 경륜 안에서... 만물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함께』(엡 1:10) “모으신다”는 내용의 신비이다(엡 1:9,10, 행 3:19-21).<br/><br/>이상 “열다섯 가지 신비” 가운데 “열네 번째”인 “이스라엘의 회복의 신비”에 대해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씀한다.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는 체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이 신비를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이방인들의 충만함이 차기까지는 이스라엘의 일부가 완고하게 된 것이라.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 기록된 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와서 야곱[이스라엘]에게서 경건치 아니한 것을 제거하리라』(롬 11:25,26). 『이방인들의 충만함이 차기까지[until the fulness of the Gentiles be come in]』(25절)란 말씀은 『이방인들의 때가 찰 때까지[until the times of the Gentiles be fulfilled]』(눅 21:24)를 의미한다. 『이방인들의 때』는 『예루살렘』이 『이방인들에게』 “짓밟히는 기간”인데(눅 21:24), 이 기간의 문을 처음으로 열어젖힌 장본인은 “바빌론”의 “느부캇넷살왕”으로서, 그는 세계 최초로 전 세계적인 통치권을 위임받은 “이방인 왕”이었다. 『오 왕이여, 왕은 왕 중의 왕이시라. 하늘의 하나님께서 왕께 왕국과 권세와 능력과 영광을 주셨나이다. 또 사람의 자손들과 들의 짐승들과 하늘의 새들이 살고 있는 모든 곳들을 하나님께서 왕의 손에 주셔서 왕으로 그들 모두를 다스리는 자가 되게 하셨나니, 왕은 곧 이 금 머리니이다』(단 2:37,38).<br/><br/>“느부캇넷살왕” 이전에는, “여호수아”의 카나안 정복 전쟁 시절, “유다 자손”이 “예루살렘”을 차지한(판 1:8) 이래로 그 성읍이 짓밟힌 역사가 없었다. “앗시리아”의 “산헤립왕”이 “북왕국 이스라엘”을 멸망시키고 “남왕국 유다”(히스키야왕)를 위협했을 때조차도 “예루살렘”은 “짓밟히지” 않았다. 그러나 기원전 606년 “바빌론 제1차 침공”을 시작으로 “예루살렘이 짓밟히기” 시작하더니, 기원전 587년 마지막 제3차 침공 때는 급기야 “남왕국 유다”가 멸망하면서 “예루살렘”이 완전히 함락되고 말았다. 그 이후 “예루살렘이 유린당하는 역사”는 오늘날까지도 지속되고 있으며, 특히 그 “짓밟힘”은 “환란 시대”에 세상 전면에 등장할 “적그리스도”에 의해 최고조에 달할 것이다. 『그러나 성전 밖에 있는 뜰은 남겨 두고 측량하지 말라. 이는 그것을 이방인들에게 주었으며 그들이 마흔두 달[42개월, 3년 6개월, 1,260일] 동안 그 거룩한 도성[예루살렘]을 발 아래 짓밟을 것이기 때문이라』(계 11:2). 그러나 “적그리스도”에 의해 절정에 달할 『이방인들의 때』는 결국 끝나게 되어 있다. 『손으로 다듬지 아니한 돌』(단 2:34)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재림하시어 『모든 왕국들을 쳐부수고 멸하여』 “영원히” 『멸망하지 않는 한 왕국을』 “세우실” 것이기 때문이다(단 2:44).<br/>574쪽 / 30,000원<br/>(eBook 21,000원)<br/><br/>이처럼 『이방인들의 때』가 끝날 무렵, 곧 『이방인들의 때가 찰 때』, 『이방인들의 충만함』도 “차게” 된다. 왜냐하면 그들의 죄악이 “충만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로마서 11장에서 “25절의 전후 맥락”을 주목해 보라. 『참올리브 나무』와 『돌올리브 나무』가 나오는데(24절), 전자는 “이스라엘”을 의미하고, 후자는 “이방인”을 가리킨다. 우선 『참올리브 나무』인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대적하여 죄를 범했을 때, 주님은 그 『가지들 가운데 얼마』(17절)를 “꺾어” 버리시고, 『돌올리브 나무』인 “이방인”을 그 자리에 접붙이셨다(17절). 그 결과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구원 계획”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이방인들”이 마음이 높아져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20절) 죄를 짓게 되면, 그들을 꺾어 버리시고, 『본래의 가지』(24절)인 “이스라엘”이 접붙여질 것이라고 경고하신다. 『하나님께서 본래의 가지들[이스라엘]도 아끼지 아니하셨으니 너도 아끼지 아니하실까 주의하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선하심과 준엄하심을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준엄하시니 만일 네가 그분의 선하심에 머물면 그 선하심이 너에게 있을 것이나 그렇지 아니하면 너도 꺾이리라. 또 그들도 믿지 않는 가운데 계속 머물지 아니하면 접붙임을 받을 것이니라. 이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다시 접붙이실 수 있기 때문이라』(21-23절). 이처럼 “이스라엘”이 죄를 범하면 그들이 꺾인 자리에 “이방인”이 접붙여지고, “이방인”이 죄를 범하면 그들이 꺾인 자리에 “이스라엘”이 다시 접붙여진다는 내용이 “로마서 11장의 요지”이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이방인들의 충만함』은 “이방인들의 ‘죄’의 충만함”을 의미하게 된다. 실제로 하나님께서는 어떤 개인이나 민족 또는 국가가 행한 “죄악의 충만함”이 차면, 그러한 개인과 민족 및 국가에게 심판을 내리신다. 일례로, “카나안 땅”의 “아모리인들”이 그러했다. 『그러나 사 대 만에 그들이 이곳으로 다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인들의 죄악이 아직 다 차지 않았음이라[for the iniquity of the Amorites is not yet full].” 하시니라』(창 15:16).<br/><br/>그러나 이러한 진리에 무지한 “변개된 한글 성서들”은 로마서 11:25을 다음과 같이 왜곡시켰다. 「형제들아...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개역한글판성경). 「형제들아... 이 신비는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우둔하게 된 것이라」(개역개정판). 이렇게 “충만한 수”로 오역하면, 마치 “하나님께서 지옥으로부터 구원하실 ‘이방인들의 수’를 처음부터 예정해 놓으신 것”처럼 되기에, “극단적 칼빈주의”의 이단 교리를 지지하는 뜻이 되어 버린다. 한편 “직역 성경”의 의미를 오해한 “흠정역”과 “표준역”은 둘 다 똑같이 「이방인들의 충만함이 들어올 때까지」라고 번역함으로써 “아예 무슨 뜻인지조차 모르게” 만들어 버렸다. 이것은 헬라어 “에이세르코마이”(εἰσέρχομαι)에 해당하는 “come in”의 기본적인 뜻, 곧 “들어오다”에 대한 쓸데없는 집착의 결과이다. 이 표현은 단순히 “안으로 들어오다”는 의미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태(in)가 되다(come, become),” “성숙하다”(mature), “축적되다”(accrue)의 뜻도 지니고 있다. 그래서 “밀물이 안으로 들어와 차오른다는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우리말 “차다”는 “어떤 높이나 한도에 이르는 상태가 되다,” “정한 수량, 나이, 기간 따위가 다 되다”는 뜻을 갖고 있다. 이런 용례를 반영하여 정확하게 번역한 성경이 바로 &lt;한글킹제임스성경&gt;이다. 하나님께서 지혜를 안 주시면 결코 성경을 올바로 번역할 수 없는 것이다! BB]]></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Mon, 23 Feb 2026 18:13:45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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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마른 뼈들”도 살아날 수 있다</title>
<link>https://biblemaster.co.kr/bb19/%EB%A7%88%EB%A5%B8-%EB%BC%88%EB%93%A4%EB%8F%84-%EC%82%B4%EC%95%84%EB%82%A0-%EC%88%98-%EC%9E%88%EB%8B%A4/</link>
<description><![CDATA[성경은 “문자적으로” 해석하고, “세 가지 방식,” 곧 “교리적으로,” “역사적으로,” “영적으로” 적용해야 한다. “문자적으로 해석한다는 것”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문자적인 언어, “있는 그대로의 의미”로 해석하고 이해한다는 의미이다. 『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이 말들을 기록하라. 내가 이 말들이 의미하는 그대로[after the tenor of these words] 너와 이스라엘과 더불어 언약을 맺었노라.” 하시니라』(출 34:27). 『이로 인하여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들의 말로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사실 그대로[as it is in truth]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음이니, 이 말씀이 믿는[받아들인 사실 그대로 믿는] 너희 가운데서도 효과적으로 역사하느니라』(살전 2:13). “문자적인 해석”은 “성경 해석의 대원칙”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문자적으로 해석해야 하는가?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확실하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분명한 언어”로 말씀들을 주셨기 때문이다. 모호하고 비밀스러운 언어나, 어떤 특정한 사람들만 이해하고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주신 게 아닌 것이다.<br/><br/>한편 말씀들을 적용할 때는 “세 가지”로 하되, 가장 먼저 “교리적”으로 적용해야 한다. 왜냐하면 성경이 기록된 첫 번째 목적은 “교리”이기 때문이다. “역사적인 내용”과 “영적인 교훈”은 “후순위”에 속한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어진 것으로 교리[최우선 순위]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훈육하기에[영적인 교훈] 유익하니』(딤후 3:16). “교리”(Doctrine)는 성도들이 직접 실행으로 옮겨야 할 명령이며, “신학적인 체계”를 올바르게 세워 준다. 현 “교회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교리들”은 “로마서”부터 “빌레몬서”까지 13권의 “바울 서신”에서 찾을 수 있기에, “바울 서신”을 토대로 “교회 시대의 교리들”을 정립해야 한다. “교회 시대의 교리들”은 39권의 “구약성경”으로 정립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전에 기록된 것은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롬 15:4)이지, “교리”를 위해 기록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사복음서”와 “사도행전”은 물론, “히브리서”를 위시한 8권의 “일반서신”이나 “요한계시록”을 통해서도 우리의 교리를 정립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하는 것은 번지수를 잘못 찾는 일이며, 특히 “온갖 교리적인 혼란”을 가중시키게 된다. 따라서 성경의 모든 말씀들과 관련하여 “교리적인 적용”을 먼저 함으로써 “올바른 교리”를 정립해야 한다.<br/><br/>선지자 “에스겔”은 주로 “표적”과 더불어 “환상”을 통해 예언했는데, 특히 “이스라엘의 회복”을 보여 주는 “마른 뼈들이 살아나는 환상”(겔 37:1-14)이 우리의 이목을 끈다. “문자적인 해석”과 “교리”에 대해 상당한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이 나라 “기독교계”는, 이 “환상”을 해석할 때 “문자적인 방법”을 거부하고 “영적인 방법”을 취한다. 이들은 성경 변개와 이단 교리의 온상지인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후예들로서,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그것이 의미하는 사실 그대로” 믿지 않고 “알레고리적인 방법”(비유적 ․ 우화적 ․ 풍유적 해석법)을 사용하여 해석한다. 본래 이것은 “그리스의 철학자들”이 그들의 “신화”(Mythology)를 더 이상 역사적인 사실로 믿지 않고, “어떤 교훈을 전달해 주는 내용”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데서 비롯되었다. 이러한 방식을, “플라톤”을 추종했던 배교한 유대인 “필로”가 “구약성경”을 해석하는 데 이용했고, 영지주의자 “판테누스”가 그 뒤를 따랐다. 또한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글들이 영감을 받았다고 주장한 “클레멘트”도 이 방법으로 성경을 우화적으로 풀었으며, 그러한 방식은 “성경 변개의 선봉”에 서 있던 “오리겐”에 이르러 절정을 이루었다.<br/><br/>이런 사실과 관련하여 &lt;세대적 진리&gt;의 저자 “클라렌스 라킨”은 그 책에서 이렇게 썼다. 「사도 시대의 교회[초대 교회]는 천년왕국 이전에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것[“전천년설”]을 믿었으며, 그 후에도 200년이 넘도록 어떠한 다른 견해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교부들의 저술들이 그 사실을 확실히 증명해 준다. 그러나 기원전 250년경 “오리겐”이 성경 말씀은 단지 진리의 알맹이를 숨겨 놓은 껍질에 불과하다는 착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성경을 은유적이고 영적으로 해석하기 시작했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성경을 은유적이고 영적으로 해석하는 자들의 학파”를 창설하였다. 그때부터 교회와 성경은 엄청난 곤욕을 겪게 되었다. 그리하여 교회들 대부분은 주님께서 재림하셔서 지상 왕국을 세우실 것이라는 것을 믿지 않게 되었다.」<br/><br/>이런 과정에서 “전천년주의에 대한 믿음”을 버리고 “후천년주의”와 “무천년주의”를 신봉하는 자들이 등장하게 된 것인데, 특히 이들은 “교회는 ‘영적인 이스라엘’로서 ‘유대인’의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고,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어진 ‘구약의 약속들’은 모두 ‘교회’에게로 넘어왔으며 ‘교회’를 통해 온전히 성취된다.”라고 거짓말한다. 사실 지상에서 가장 어리석고 가증스러운 “종교 집단”은, 자기들이 유대인인 “이스라엘”의 자리를 대신한다고 주장하는 무리이다. 일례로, “영국 - 이스라엘주의”(British Israelism)는 “미국”을 “므낫세 지파”로, “영국”을 “에프라임 지파”로 여기면서 소위 “잃어버린 열 지파”임을 자처하고 나서는데, 심지어 “다윗의 보좌”가 “영국”에 있다는 황당한 주장을 내놓기까지 한다. “여호와의 증인,” “하나님의 교회,” “신천지” 같은 사이비 집단들은, 요한계시록 7장에서 대환란 기간에 “이마에 표시된 인장”으로 선택받는 “144,000명의 유대인들”이 자기들이라고 거짓말하는데, 그들은 “당신은 어느 지파에 속합니까?”라고 물으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 “안식교”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표적”(겔 20:12,20)인 “안식일”을 지키느라 쓸데없이 애를 쓰지만, 날짜 변경선으로 인해 시간을 제대로 맞춰 지켜 본 적이 거의 없음에도 그들 가운데 돌에 맞아 죽은 사람(민 15:32-36)은 단 한 명도 없다. “이슬람교”는 “아브라함”이 제물로 바친 것은 “이삭”이 아니라, “이스마엘”이었다고 거짓말함으로써 “이삭”으로 이어지는 “아브라함의 언약”을 도둑질하려고 한다.<br/><br/>또한 “로마카톨릭”과 “개신교”는, 하나님께서 유대인과의 관계를 영원히 끊으셨고, 그 결과 교회가 “유대인”을 대신하게 되었으며,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진 구약의 모든 약속들이 교회에게로 넘어왔다고 억지를 부린다. 하지만 성경 어디에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영원히 버리셨고, 그들과 영원히 단절하셨다는 말씀”은 나오지 않는다. 다시 말해 이런 자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신 영원한 약속들”을 훔치려 하는 “강도들”인 것이다. 성경은 이들을 가리켜 “사탄의 회당”이라고 경고한다. 『내가 너의 행위와 환란과 궁핍을 아노라. (오히려 네가 부요한 자로다.) 자칭 유대인이라고 말하는 그들의 모독을 아노니 그들은 유대인이 아니요, 오히려 사탄의 회당이니라』(계 2:9). 『보라, 자칭 유대인이라고 하지만 아니요, 오히려 거짓말하는 자들을 내가 사탄의 회당에 속한 자들로 만들리니, 보라, 내가 그들을 오게 하여 너의 발 앞에 경배하게 하여서,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을 알게 하리라』(계 3:9).<br/><br/>에스겔 37장에 나오는 “마른 뼈들”은 “교회들”이 아니다! 횡령과 간음 등 여러 가지 불미스러운 일들에 연루되어 있어서 세상 사람들의 지탄이나 받고, 자정 기능을 상실해 버린 영적으로 죽어 있고 말라빠진 교회들의 실상에 관한 묘사가 아니다. 사회적인 책임을 감당해야 할 “외형적인 피부”도 없고, 교회의 내적 건강성을 유지해야 하는 “살”도 없으며, 복음의 능력을 붙잡는 굳센 “힘줄”도, 심지어 영적인 “생기”도 찾아보기 힘든 “숨”이 없는 교회들, 그래서 “회복”이 필요하고, 또 반드시 그렇게 “회복”이 되어 일어나게 될 “교회들”이 아닌 것이다. &lt;마른 뼈도 살아날 수 있다&gt;의 저자 “전병욱 목사”(홍대새교회)를 위시한 이 나라 대부분의 교회들은 에스겔 37장의 “마른 뼈들의 환상”이 갖고 있는 본래 의미, 특히 “교리적인 의미”에 대해 전혀 무지하다. 성경은 그런 자들을 향해 『먼저 이것을 알지니, 성경의 어떤 예언도 사사로운 해석에서 나온 것이 아니니』(벧후 1:20)라고 강력하게 경고한다.<br/><br/>성경은 성경 스스로 해석하고 있기에, 『사사로운 해석』은 불필요하다! 오히려 “성경의 진리와 그 말씀의 올바른 의미”를 깨닫는 데 거추장스럽고 방해만 된다. 성경은 “마른 뼈들”을 가리켜 “교회”나 “영적인 이스라엘”이 아니고, 문자 그대로 “이스라엘 집”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때에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니라. 인자야, 이 뼈들은 이스라엘의 온 집이라. 보라, 그들이 말하기를 “우리의 뼈들은 말랐고 우리의 소망은 사라졌으며 우리의 부분은 완전히 끊어졌도다.” 하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에게 예언하여 말하라. 주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오 내 백성[이스라엘]아, 내가 너희 무덤들을 열어서 너희로 너희의 무덤들로부터 나오게 하여 너희를 이스라엘 땅으로 데려오리라. 오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의 무덤들을 열어서 너희의 무덤들로부터 너희를 나오게 할 때 너희는 내가 주인 줄 알 것이며 내 영을 너희 안에 두리니 그리하면 너희가 살리라. 또 내가 너희를 너희의 본토[이스라엘 땅]에 두리니 그때에 너희는 나 주가 그것을 말하였고 수행한 줄 알리라. 주가 말하노라』(겔 37:11-14). “마른 뼈들의 환상”은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br/><br/>우선, 『이스라엘 땅』(12절)과 대비되는 표현, 곧 『무덤들』(12절)로 묘사되는 이방 나라들 가운데 흩어져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께서 “그들의 본토”로 돌아오게 하신다는 “민족적인 부활과 회복”으로 설명할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까지만 해도 “이스라엘”은 “마른 뼈들”처럼 아무런 소망도 없이 “세상 민족들”이라고 하는 “무덤들” 가운데 비참하게 흩어져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무덤들에서 데리고 나와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셔서 그들을 살리신다. “국가적으로” 회복시키시는 것인데, 『심히 큰 군대』(겔 37:10)로 회복시키시는 것이다. 사실 이 일은 부분적으로 성취되었다. 1948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이스라엘”이 “독립 국가”를 세움으로써 이뤄진 것이다. 지난 1900여 년 동안 나라가 없이 떠돌아다녔던 이스라엘은 1948년에 민족적으로, 또 국가적으로 다시 일어났다. “제1차 세계대전”이 유대인을 위해 “땅”이 준비되기 위한 전쟁이었다면, “제2차 세계대전”은 그 땅을 위해 “유대인”이 준비되는 전쟁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예언의 완전한 성취”가 아니다. 이는 그들이 여전히 회심하지 않았고, 또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영적으로” 아직 회복이 안 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겨우 돌아온 땅에서 “대환란 기간”에 “적그리스도의 대대적인 박해”로 인해 다시 한번 쫓겨나게 된다. 그런 다음 대환란이 끝나 갈 무렵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은 대대적인 회개를 할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 “그들의 땅”으로 돌아가 완전히 회복될 것이다. 『또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의 거민들 위에 은혜와 간구의 영을 부어 주리라. 그러면 그들은 그들이 찔렀던 나를 쳐다볼 것이며, 그들이 그를 위하여 애통하리니, 마치 어떤 사람이 자기 외아들을 위하여 애통함같이 할 것이요, 그들이 그를 위하여 비통에 잠기리니 마치 어떤 사람이 자기 첫아들을 위하여 비통에 잠기듯 하리라... 그 날에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의 거민들에게 죄와 불결을 씻는 샘이 열리리라.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그 땅에서 우상들의 이름들을 끊으리니, 그리하면 그들이 더 이상 기억되지 아니하리라. 내가 또한 선지자들과 더러운 영을 그 땅에서 떠나게 하리라』(슼 12:10; 13:1,2).<br/><br/>두 번째로, “마른 뼈들의 환상”은 “구약 시대의 유대인 성도들”이 환란 이후에 “몸”을 입고 부활하여 실제로 무덤들에서 나와 그들의 땅으로 돌아오는 것을 보여 준다. 물론 “초림” 당시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을 때 “구약 시대의 유대인 성도들”이 함께 부활했었다. 그들은 “몸”을 입고 “열린 무덤들”에서 나왔으며, “거룩한 도성”으로 들어가 많은 사람들에게 나타나기도 했다(마 27:50-53). 하지만 구약 시대의 “모든 성도들의 몸”이 일어난 것은 아니었고, 『많은 성도들의 몸』(마 27:52)이 일어났다. 즉 그 수는 많았어도 “전체”가 아닌 “일부”가 부활했던 것인데, 이것은 그 이후에 부활하게 될 “구약 성도들”이 더 남아 있다는 점을 시사해 준다. “마른 뼈들의 환상”이 바로 그 사실을 잘 보여 주고 있다. 『다시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기를 “이 뼈들에게 예언하여 그들에게 말하라. 오 너희 마른 뼈들아, 주의 말을 들으라. 주 하나님이 이 뼈들에게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숨이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리라. 또 내가 너희 위에 힘줄을 놓고 너희 위에 살을 자라게 하고 피부로 덮고 너희에게 숨을 넣으리니 너희가 살리라. 그리하면 너희는 내가 주인 줄 알리라.” 하시니라... 그러므로 그들에게 예언하여 말하라. 주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오 내 백성아, 내가 너희 무덤들을 열어서 너희로 너희의 무덤들로부터 나오게 하여 너희를 이스라엘 땅으로 데려오리라』(겔 37:4-6,12). “이사야”도 “이스라엘의 죽은 자들이 훗날 다시 살아날 것”에 관해 예언했다. 『주의 죽은 자들은 살아나리니 그들이 나의 죽은 몸과 함께 일어나리이다. 흙에 거하는 너희는 깨어서 노래하라. 주의 이슬은 수풀의 이슬 같으니 땅이 죽은 자들을 던져 버릴 것임이니이다』(사 26:19). 이처럼 재림 직전 “환란 후 휴거”가 일어날 때, “이스라엘”은 “욥”이 그러했던 것처럼(욥 42:12,13) “죽은 자들”을 되돌려 받게 될 것이다. 물론 그 시점이 정확히 언제인가는 확실치 않다.<br/><br/>언약의 백성인 “이스라엘”은 반드시 회복된다. 비록 지금은 “저주받은 무화과나무”처럼 『뿌리로부터 말라』(막 11:20) 버렸고, 『열린 골짜기에』 있는 『심히 많은 뼈』처럼 『심히 말랐』다 해도(겔 37:2) “살아날” 수 있는 것이다. 『보라, 내가 그들을 북쪽 지방에서 데려올 것이요, 땅의 지경들로부터 모으리니... 큰 무리가 그곳으로 돌아오리라... 이스라엘을 흩으셨던 이가 그를 모으시고 지키시리니 마치 목자가 양떼에게 하는 것같이 하시리라... 주가 말하노라. 만일 그러한 법칙들이 내 앞을 떠난다면 [물론 그렇게 될 리 없지만] 그때는 이스라엘의 씨도 내 앞에서 민족이 되는 것에서 영원히 끊어지리라』(렘 31:8,10,36).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정치적으로나 국가적으로 영원히 단절하신 것이 아니고, 반드시 회복시키신다. 그것도 “영원히” 회복시키실 것이다. BB]]></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Mon, 23 Feb 2026 17:51:41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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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소선지서 특강 - 호세아 (1) : 간음한 아내인 이스라엘의 심판과 회복</title>
<link>https://biblemaster.co.kr/bb19/%EC%86%8C%EC%84%A0%EC%A7%80%EC%84%9C-%ED%8A%B9%EA%B0%95-%ED%98%B8%EC%84%B8%EC%95%84-1-%EA%B0%84%EC%9D%8C%ED%95%9C-%EC%95%84%EB%82%B4%EC%9D%B8/</link>
<description><![CDATA[『브에리의 아들 호세아[Hosea]』는 “바빌론 포로기 이전”에 활동한[B.C. 785-725, “어셔”(Ussher) 주교의 연대표] 선지자로, 『유다[남왕국]의 왕들로는 웃시야, 요담, 아하스와 히스키야의 시대요, 이스라엘[북왕국] 왕으로는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의 시대에』(호 1:1) 예언을 했고, “이사야,” “아모스,” “미카”와 동시대에 사역했다. 『유다의 왕들, 곧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키야의 시대에 아모즈의 아들 이사야[Isaiah]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본 환상이라』(사 1:1). 『유다의 웃시야왕의 때요, 이스라엘의 요아스왕의 아들 여로보암의 때 지진이 나기 이 년 전에 트코아의 목동들 가운데 있었던 아모스[Amos]의 말씀들로, 그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본 것이라』(암 1:1). 『유다의 왕들,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키야의 날에 모라셋인 미카[Micah]에게 임한 주의 말씀으로 그가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본 것이라』(미 1:1).<br/><br/>“호세아”란 이름은 “구원,” 곧 “하나님은 구원이시다.”(오, 하나님 구원하소서!)라는 뜻이며, 이것은 “여호수아”에게 붙여진 이름이기도 했다. 『에프라임 지파에서는 눈의 아들 오세아[Oshea]요... 이것은 모세가 그 땅을 탐색하도록 보낸 사람들의 이름이라. 모세가 눈의 아들 오세아[Oshea]를 여호수아[Jehoshua]라 불렀더라』(민 13:8,16). 따라서 “히브리어”로 “호세아,” “오세아,” “여호수아,” 이상 “세 이름”은 모두 “여호와께서는 구원이시다.”(구원자이신 여호와)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특히 “여호수아”에 해당하는 “신약”의 “헬라어 이름”은 “예수”( ]Ihsou#v)인데, 그 이름의 뜻은 “여호수아”란 이름의 의미와 동일하다. 『그녀가 한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의 이름을 예수[JESUS]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들에서 구원할 것이기 때문이니라.”고 하니라』(마 1:21). 이런 점을 고려할 때, &lt;한글킹제임스성경&gt;이 “사도행전 7:45”과 “히브리서 4:8”에서 “여호수아”란 이름이 들어갈 자리에, 『예수[Jesus]』라는 이름으로 “음역”해 놓은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br/><br/>한편 “C.I. 스코필드”는 그의 역작 &lt;스코필드주석성경&gt;에서, “호세아의 예언은 비약적인 데가 있었고, 은유적이었으며, 또 비유적이었다.”라고 썼다. 물론 이 말은 “성경의 예언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지 않고 ‘비유적, 은유적, 영적으로’ 해석해야 된다거나 예언이 허구라는 뜻”은 아니다. 왜냐하면 우선 “비약적”이라는 말은 “연대기적인 순서에 따라 순차적으로, 논리적인 순서대로 예언하지 않았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서론 ․ 본론 ․ 결론” 등의 논리적인 순차적 방식이 아닌, 재림에 관한 예언을 말하다가 갑자기 초림에 대해 예언하는 방식으로, 이런저런 예언들을 순서에 관계없이 말했다는 것이다. 사실 “호세아”뿐 아니라 다른 소선지서의 내용들도 순차적인 방식으로 기록되지 않았다. 부분적으로는 연대기적인 순서에 따라 예언하기도 하지만, 전체적인 맥락에서는 그러한 순서를 따르고 있지 않다. 그리고 “은유적”이고 “비유적”이라는 말은, “호세아”가 예언할 때 종종 “비유”를 사용해서 예언했다는 의미이다. “호세아”의 인생 자체가 당시 이스라엘의 상황을 보여 주는 비유로 제시되면서 어떤 예언적인 진리를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이것 역시 “호세아”에서만 나타나는 특징은 아니며, 선지서 대부분이 갖고 있는 “공통적인 특징”이다.<br/><br/>“호세아”는 주로 “북왕국 이스라엘”을 향해 예언했다. 그래서 “북왕국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이름인 “에프라임”에 관한 언급이 “37회”로 자주 등장한다(호 4:17; 5:3; 7:1; 9:8; 11:3; 14:8 외). 북왕국의 수도였던 “사마리아”에 대한 언급도 “6회” 나온다. 물론 “남왕국 유다”에 관한 내용이 전혀 안 나오는 것은 아니다(호 1:7; 5:5; 6:4; 12:2 외). 그러나 “호세아”는 “북왕국 이스라엘”을 향해 매우 강도 높게 책망했고, 이에 반해 “남왕국 유다”에 대해서는 다소 “긍정적인 언급”도 하고 있다. 『에프라임은 거짓말로, 이스라엘 집은 기만으로 나를 에워싸나, 유다는 여전히 하나님과 함께 다스리며 그 성도들과 더불어 신실하도다』(호 11:12). 왜냐하면 당시 “남왕국 유다의 상황”이 아직까지는 “선한 왕들의 시대”(호 1:1)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호세아”가 “유다”에 대해 칭찬만 한 것은 아니다. 결국 “유다” 역시 죄짓고 “배교할” 것이기에 강력하게 책망도 했다(호 5:5,10,14; 6:4; 8:14 외). 『이스라엘의 교만이 그의 얼굴에 증거가 되나니, 그러므로 이스라엘과 에프라임은 그들의 죄악 가운데 패망할 것이요, 유다도 또한 그들과 더불어 패망하리라』(호 5:5).<br/><br/>그렇다면 “북왕국 이스라엘”이 패망하게 되는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인가? 당연히 “하나님을 대적하여 지은 죄” 때문이다. 『사마리아는 황폐하게 되리라. 이는 그녀가 그녀의 하나님을 대적하여 반역하였음이니, 그들은 칼에 쓰러질 것이며 그들의 아기들은 내던져져 산산조각날 것이요 그들의 아이를 밴 여자들은 찢겨지리라』(호 13:16). 다시 말해 “호세아”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간의 관계,” 곧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의 관계”를 제시하면서, 이스라엘이 그 관계를 무시하고 깨뜨린 결과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심판을 받고 버림받게 되는지를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그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의 이름을 로암미라 하라. 이는 너희가 내 백성이 아니요 내가 너희의 하나님이 되지 않을 것임이라』(호 1:9). 특히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관계”를 “남편과 아내의 관계”로 설정하는데, 이러한 관계는 동시대에 활동한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서도 잘 제시된다. 이런 사실은 다음 “두 구절”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너를 지으신 분이 네 남편이니 만군의 주가 그의 이름이며, 너의 구속주, 이스라엘의 거룩한 분이라. 그가 ‘온 땅의 하나님이라.’ 칭함을 받으리라』(사 54:5). 『너희 어미와 쟁론하고 쟁론하라. 이는 그녀가 내 아내가 아니고 나도 그녀의 남편이 아님이라. 그러므로 그녀로 그녀의 모습에서 음행을 지우게 하고 그녀의 가슴 사이로부터 간음을 지우게 하라』(호 2:2). 이상 두 구절에서 볼 수 있듯, “여호와 하나님의 신부”로 불리는 “이스라엘”은, “현재”(교회 시대) 그들의 죄로 인해 “버림받은 상태”라 해도, “나중에”(재림 때)는 반드시 “신부”이자, “아내”로 회복될 것이다.<br/><br/>신약의 “교회 시대 관점”에서 “신부”라고 하면, “아들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교회”를 말하지만, “구약 시대의 관점”에서는 “아버지 하나님”의 신부로서 “이스라엘”을 가리킨다. 그래서 오늘날 대부분의 신학자들과 목사들이 “호세아”를 가르칠 때 전자의 관점으로 섣불리 해석해 버린다. 물론 “영적으로”도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이는 거듭난 성도들 개개인이 “호세아”에 나오는 “음란한 여인”처럼 종종 죄를 지었다가도 다시 주님께로 회개하고 돌아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경적으로 해석하거나 “교리적으로” 적용할 때는 “교회”에 적용할 수 없다! 왜냐하면 “어린양의 신부”인 “교회,” 즉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유기체”로서의 “교회”는 “음란한 여인”이 아니라 항상 “순결한 처녀”이기 때문이다. 『이는 내가 경건한 질투로 너희에게 질투를 느낌이라. 내가 너희를 한 남편에게 정혼시켰나니 이는 한 순결한 처녀로 너희를 그리스도께 바치려는 것이라』(고후 11:2). 비록 “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성도 개개인”은 때때로 더럽고 추한 죄를 지었다가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기도 하지만,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그 자체”를 언급할 때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온전히 씻겼다는 의미”에서 “결코 타락할 수 없는 순결한 처녀”로 묘사된다. 처음에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불순종의 자녀들』(엡 5:6)의 상태에서 부름을 받았지만, 일단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안으로 들어와 택함을 받고 “하나의 진주”를 형성하게 된 이상, 절대 변질될 수 없고 타락할 수도 없는, 그리고 결코 버림받지 않는 “순결한 처녀”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교회”와 다르다! 이스라엘 민족은 택함을 받은 이후, “여호와 하나님의 신부요, 아내”가 되었다 해도, 죄를 짓고 타락하여 “버림받을” 수 있고, 또 그렇게 버림받았다가도 다시 회개하고 돌아와 회복될 수 있는 것이다(“택함” → “타락” → “회복”). 이에 반해 “아들 하나님의 신부요, 아내”인 “교회”는 한 번 택함을 받고 나면 결코 타락하여 “버림받을” 수 없고, “순결한 신부”의 위치를 계속 유지하게 된다(“택함” → “순결한 신부”).<br/><br/>이렇듯 성경에는 “두 신부” 또는 “두 아내”가 등장한다는 사실을 주의해야 한다. “아버지 하나님의 신부”인 “이스라엘”을, “아들 하나님의 신부”인 “교회”와 절대 혼동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성경 어디에도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간음한 아내”로 묘사하거나, 그렇게 “간음한 아내”가 다시 “회복된다”는 내용이 나오지 않는다. 그런 내용은 “이스라엘”에게 적용된다. 이처럼 “호세아”에서는 “음란한” 아내, 곧 “하나님을 버리고 간음한 이스라엘”의 상태를 보여 주면서, 그들을 책망하고 심판을 경고할 뿐 아니라, 동시에 “하나님께서 그런 타락한 이스라엘을 회복하신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br/><br/>특히 하나님께서는 “음란한 아내”인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를 보여 주시기 위해, 선지자 “호세아”에게 『너는 가서 음란한 아내를 얻어서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이는 그 땅이 주로부터 떠나 크게 행음하였음이니라.』(호 1:2)라고 말씀하신다. 물론 이러한 명령을 그대로 수행해야 했던 “호세아” 한 개인의 삶으로 보면 참으로 “슬프고 불행한 일”이다. 하지만 그의 삶을 하나의 “표적”으로 제시하시려는 하나님의 목적에 따라 “호세아”는 주님의 “어떤 명령”이라도 순종해야 했다. 이에 그는 “음란한 여인”인 “고멜”을 아내로 취했고(호 1:3), 그녀에게서 자녀들을 얻게 되는데, 그들의 이름은 각각 “이스르엘”(호 1:4)과 “로루하마”(호 1:6)와 “로암미”(호 1:9)였다.<br/><br/>이 이름들은 “이스라엘의 심판과 회복”을 잘 보여 주고 있는데, 우선 “이스르엘”이란 이름은 심판의 관점에서 “하나님께서 흩으시다”(호 1:4; 8:8)는 뜻과, 회복의 관점에서 “하나님께서 심으시다”(호 2:23)는 의미를 갖고 있고, “로루하마”는 “자비를 얻지 못하다” 혹은 “사랑과 동정을 받지 못하다”는 뜻의 이름이며, “로암미”는 “나의 백성이 아니다”라는 의미의 이름이다(참고로, 히브리어에서 “로”는 “not”의 의미임). 『그녀의 이름을 로루하마라 하라. 이는 내가 다시는 이스라엘 집에 자비를 베풀지 아니하고 그들을 완전히 제하여 버릴 것이기 때문이라』(호 1:6). 『그의 이름을 로암미라 하라. 이는 너희가 내 백성이 아니요』(호 1:9). 이렇듯 “자비를 얻지 못하고 버림받은 이스라엘,” 결국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이방인들 가운데로 흩어지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 다시 “회복되어” 그들의 땅에 “심겨질”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스라엘은 버림받은 것인가? “죄,” 특히 “우상 숭배의 죄” 때문이었는데, 바로 이 죄가 “호세아”에서 심각하게 다루어진다. BB]]></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Tue, 27 Jan 2026 17:49:14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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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재창조의 진리”를 혐오하는 한글 성서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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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CDATA[“피터 럭크만” 박사는, “존 칼빈” 이래로 500여 명 이상의 소위 유명하다는 “성경 주석가들”이 그들의 주석서에 범해 놓은 오류들을 일일이 지적하여 바로잡았고, 또 “&lt;킹제임스성경&gt;이 왜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참다운 하나님의 말씀인가”를 권위 있게 설명하고 증명했던 독보적인 학자였다. 한번은 그가 히브리어 “말레”(alem&#039;)와 관련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히브리어 ‘말레’의 뜻은 ‘채우다’이다. 그런데 영어 &lt;킹제임스성경&gt;은 이 단어를 ‘창세기 1:28’과 ‘창세기 9:1’에서 ‘다시 채우다’(replenish)로 번역했다. 한편 ‘알렉산드리아’의 이단 학자들은 이것을 ‘오류’라고 지적하면서, 그 단어는 ‘이미 채웠던 것을 비웠다가 다시 채우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잘못된 번역’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NASV, ASV, RSV, NRSV, RV, NIV 등은 ‘채우라’(fill)로 번역했고 ‘히브리어 사전과 어휘집’에도 그렇게 되어 있다. 이런 경우에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만약 당신이 배교한 ‘근본주의자’라면, ‘축자적으로 영감을 받은 원본’만이 오류 없는 ‘최종권위’라고 주장하는 ‘파괴적 비평가들의 추측’을 근거로 ‘성경’을 고치려 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참다운 성경 교사’라면 그 단어를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 놔두고 가르칠 것이다. 지구는 ‘두 번’에 걸쳐 ‘다시 채워졌다’(창 1:28; 9:1). 따라서 ‘채우다’라는 단어로는 그 뜻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올바르게 보존된 성경’을 지키고, ‘변개된 성서들’은 쓰레기통에 던져 버리라!”<br/><br/>앞에서 “성경 변개자들”이 “번역 오류”라고 문제를 제기하는 “창세기 두 본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다산하고 번성하며 땅을 다시 채우고[replenish] 그것을 정복하라. 그리고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에서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 1:28). 『하나님께서 노아와 그의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다산하고 번성하여 땅을 다시 채우라[replenish]』(창 9:1). 그런데 “개역한글판성경,” “개역개정판,” “표준새번역,” “쉬운성경” 등의 “한글 성서들”은 모두 “다시 채우라”는 단어를 “full”이나 “fill,” 곧 “충만하라, 충만하여라, 채워라”로 변개시켰다. 또한 &lt;한글킹제임스성경&gt;을 거짓으로 비방하고 “모조품 성경”인 “흠정역”을 만든 “정동수 목사”를 위시해서, 영어 &lt;킹제임스성경&gt;의 어휘의 의미를 왜곡하는 자들은 &lt;킹제임스성경&gt;의 “replenish”라는 번역은 옳지만, 그 “뜻”은 “다시 채우다”가 아니라, 단순히 “채우다”(fill) 또는 “충만하다”(full)의 의미라고 억지를 부린다. 말하자면 “replenish”가 “fill”과 “full”의 동의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틀렸다!<br/><br/>우선 히브리어 “말레”에는 “fill”(채우다)이나 “full”(충만하다)의 용례뿐 아니라, “replenish”(다시 채우다)의 의미도 분명하게 들어 있다. 그래서 영어 &lt;킹제임스성경&gt; 번역자들은, 250회 이상 나오는 히브리어 “말레”를 각 문맥과 용례에 맞게, “full”과 “fullness,” “fully,” “fill,” “fulfill,” “replenish”로 올바르게 구분해서 번역했다. 특히 “replenish”로 번역된 구절은 창세기 1:28; 9:1, 이사야 2:6; 23:2, 예레미야 31:25, 에스겔 26:2; 27:25, 이상 “일곱 개의 구절”이다. 한편 영어 단어 “replenish”는 “채우다” 또는 “충만하다”의 의미가 아니며, 1610년대부터 “다시 채우다, 이전의 양이나 상태로 복원하다”는 뜻으로 사용되어 지금에까지 이르고 있다. 실제로 &lt;Oxford English Dictionary&gt;에 수록된 “replenish”란 단어의 “9번 용례”를 보면 “to fill up again; to restore to the former amount or condition”이라고 쓰여 있다. 그뿐 아니라 이러한 의미로 사용된 사례가 1612년에 있었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 주고 있으며, 그 이후에도 1666년, 1748년, 1776년, 1832년, 1883년에 쓰인 여러 가지 사례들이 기록되어 있다. 특히 이러한 사례의 “선도적인 역할”을 했던 것이 1611년에 출간된 영어 &lt;킹제임스성경&gt;인데, 그 대표적인 구절이 바로 “창세기 1:28”이다.<br/><br/>사실 “다시 채우라”는 단어의 “번역 문제”는 “재창조의 진리를 믿느냐, 안 믿느냐”의 여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와 관련하여 베드로후서 3:3-6을 주목해 보자. 『[3절] 먼저 알 것은 이것이니 마지막 날들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그들의 정욕대로 행하며, [4절] 말하기를 “그가 온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잠든 이래로 만물은 창조의 시작부터 그대로 있다.” 하리니 [5절] 이는 그들이 이것을 고의로 잊으려 함이라. 즉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하늘들이 옛적부터 있었다는 것과, 땅도 물에서 나왔고 물 안에 있었다는 것이니 [6절] 이로써 이전에 있던 세상은 물이 범람해서 멸망하였느니라.』 4절에서 『창조의 시작』은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창 1:1)하신 “태초”를 가리킨다. 6절에서는 태초에 창조된 “처음 세상”을 가리켜 『이전에 있던 세상』이라고 말씀하고, 5절에서는 『옛적부터』 있었던 “하늘들과 땅”이라고 말씀한다.<br/><br/>“최초의 창조 때”(창 1:1)는 “인간”이 창조되지 않았다. 인간은 “두 번째 창조”인 “재창조 때”(창 1:3-2:25), 곧 “창세기 1:3 이후”에 창조된다. 따라서 “최초의 창조 때”는 “사람들”이 존재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아들들』(창 6:2,4, 욥 1:6; 2:1; 38:7)이라 불리는 “천사들,” 즉 “인간과 유사한 존재들”이 이 땅, 지구에 살면서 “그들의 문명”을 이룩하고 발전시켰다. 한때 이들은 “신들”로 불렸는데(요 10:34, 행 14:11), 이 “신들”이 재창조 이후에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지구”로 내려와, 『사람들의 딸들이 아름다운 것을 보고 그들이 택한 모든 자를 아내들로 삼...고... 사람의 딸들에게 들어와서』(창 6:2,4) “거인들”을 낳았고, 사람들의 범죄와 타락을 조장하기도 했다. 어쨌든 『이전에 있던 세상』(벧후 3:6)은 그렇게 시작되었고, 하나님께서는 이 “처음 세상”(창 1:1)을 “하나님의 아들들”을 통해 “채우시려고”(fill) 했었다.<br/><br/>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물이 범람』하게 해서 『이전에 있던 세상』을 『멸망』시키셨는데(벧후 3:6), 말하자면 “땅”(지구)뿐 아니라 “하늘들”까지 잠기게 만드는 “전 우주적인 홍수”가 일어나게 하신 것이다. 이에 관한 “역사적 진실”이 “창세기 1:1,2”에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지구]을 창조하셨느니라. 땅은 형체가 없고 공허하며 어두움이 깊음의 표면에 있으며 하나님의 영은 물들의 표면에서 거니시더라.』 우주 전체, 곧 “옛적부터 있었던 하늘들과 땅”이 물속에 잠겨 버린 것이다. 이 구절에서 『땅은 형체가 없고 공허하며』라는 말씀은 “땅”(지구)이 없다는 뜻이 아니고, “범람하는 물”에 완전히 잠겨 그 모양이 일그러지거나 변형된 모습, 즉 “물에 의한 우주적인 심판”으로 “지구가 황폐해진 상태”를 묘사해 주고 있다(cf. 렘 4:23-27). 다시 말해 태초에 창조된 “하늘들과 땅”이 모두 “물속”에 잠겼고, “베드로” 역시 이런 사실을 앞서 언급한 “베드로후서 3:5,6”에서 분명하게 적시해 둔 것이다. 『이는 그들이 이것을 고의로 잊으려 함이라. 즉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하늘들이 옛적부터 있었다는 것과, 땅도 물에서 나왔고 물 안에 있었다는 것이니 이로써 이전에 있던 세상[하늘들과 땅]은 물이 범람해서 멸망하였느니라.』<br/><br/>흔히들 오해하듯, 이 본문은 “노아의 대홍수”(창 7,8장)를 가리키는 말씀이 아니다. 왜냐하면 “노아의 대홍수”가 일어났을 때는 “물속”에 “땅”(지구)만 잠겼을 뿐 “하늘들”까지 잠기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물”이 범람해서 멸망한 『이전에 있던 세상』(벧후 3:6)은 문맥상(5절) “땅”은 물론, “하늘들”도 포함하고 있는데, 이런 사실은 바로 이어지는 문맥(7절)에서 잘 적시하고 있다. 『현재 있는 하늘들과 땅[창세기 1:2의 “물에 의한 우주적인 심판” 이후 “재창조된 세상”]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보존되어 있으되 경건치 아니한 자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에 불사르려고 간수되어진 것이니라』(벧후 3:7). 말하자면 “창세기 1:1”에서 태초에 창조된 “처음 세상,” 곧 “이전에 있던 세상”인 “하늘들과 땅”은 “창세기 1:2”에서 “물”로 멸망했고, 그 이후에 “재창조된 세상”인 “현재 있는 하늘들과 땅”은 장차 “백보좌 심판”이 일어나기 직전에 “불”로 멸망하게 되는 것이다(계 20:11-15).<br/><br/>그렇다면 “창세기 1:2,” 즉 “베드로후서 3:6”에서 『이전에 있던 세상』이 “물로 멸망한 이유”는 무엇인가? 당시에 교만해진 “루시퍼,” 곧 하나님보다 자신을 높이려 했던 “사탄”의 “반역”이 있었기 때문이다(사 14:12-15, 겔 28:12-19). 이로 인해 하나님께서는 “루시퍼”가 “왕”으로 다스리던 『이전에 있던 세상』을 “물”로 심판하셨고, 앞서 언급한 “하나님의 아들들,” 곧 이 땅, 지구에 문명을 구축하며 그 땅을 “채우고”(fill) 있던 “천사들”을 그들의 문명과 더불어 완전히 쓸어 버리셨다(창 1:2). 이 일이 있은 후 “창세기 1:3-2:25”에서, 하나님께서는 온 우주를 다시 창조하셨으니, 이것이 바로 “재창조”이다. 다시 창조하실 때 물속에 잠겨 있던 “하늘들”과 “땅”이 물 바깥으로 모습을 드러내며 나온 것인데(벧후 3:5), 특히 이 일은 “재창조 주간 둘째 날과 셋째 날”에 일어났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물들 가운데 창공이 있으라. 창공으로 물들에서 물들을 나누게 하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창공을 만드시고 창공 위에 있는 물들에서 창공 아래 있는 물들을 나누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께서 창공을 하늘이라 부르시니라. 저녁과 아침이 되니 둘째 날이더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늘 아래의 물들이 한 곳으로 함께 모이고 마른 곳이 드러나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께서 마른 곳을 땅이라 부르시고 물들이 함께 모인 곳을 바다들이라 부르시니라. 하나님께서 보시니 그것이 좋았더라... 저녁과 아침이 되니 셋째 날이더라』(창 1:6-10,13).<br/><br/>이제 하나님께서는 새롭게 “재창조된” 땅(지구)을, 친히 그분의 형상대로 지으신 “사람들”로 “다시 채우기”를 바라셨다. 그래서 “최초의 인간”인 “아담”에게 『다산하고 번성하며 땅을 다시 채우고(replenish) 그것을 정복하라.』(창 1:28)라고 명령하신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노아의 대홍수”로 이전의 사람들과 문명이 사라지고 텅 빈 “지구”를 “노아의 후손들”로 “다시 채우기”를 바라셨던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이렇게 명령하셨다. 『다산하고 번성하여 땅을 다시 채우라[replenish]』(창 9:1). “재창조”의 진리를 혐오하는 “한글 성서들”과 그 성서들을 쓰는 어리석은 군상들은 “성경의 진리”를 올바르게 깨달을 수 없다. 깨닫지 못하니, 감히 제멋대로 성경을 왜곡하여 변개시키기까지 하는 것이다. 이런 자들은 “다음의 질문”에 결코 답할 수 없다. “재창조”를 부인하면, 하나님께서는 “무언가가 존재하는 상태”(창 1:2)에서 “창조하신 것”이 되는데,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아니라 “유”(有)에서 “유”(有)를 만들어 내는 “조물주”란 말인가? 이보다 더 큰 “신성 모독”이 어디 있겠는가! “루시퍼”인 “사탄”은 언제 창조되었는가? “천사들,” “그룹들,” “정사들,” “권세들” 등은 언제 창조되었는가? 『땅... 어두움... 깊음... 물들』(창 1:2)은 언제 창조되었는가? 이쯤에서 “재창조의 진리”에 대한 혐오를 멈추기 바란다! BB]]></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Tue, 27 Jan 2026 17:42:00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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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한글킹제임스성경”을 손에 든 “제1야당 대표”</title>
<link>https://biblemaster.co.kr/bb19/%ED%95%9C%EA%B8%80%ED%82%B9%EC%A0%9C%EC%9E%84%EC%8A%A4%EC%84%B1%EA%B2%BD%EC%9D%84-%EC%86%90%EC%97%90-%EB%93%A0-%EC%A0%9C1%EC%95%BC%EB%8B%B9-%EB%8C%80%ED%91%9C/</link>
<description><![CDATA[지난해 12월 25일, “국민의힘”의 “장동혁” 당 대표가 “사랑의 교회”에서 열린 소위 “성탄 예배”에 참석하면서, 왼손에 &lt;한글킹제임스성경&gt;을 들고 들어가는 장면이 언론에 포착된 적이 있다. “충청남도 보령” 출신인 그는, 2001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2006년 2월부터 2020년 1월까지 “판사”를 역임했고, 2022년부터는 “제21대 국회의원”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정계”에 입문했으며, 그 이후로는 “국민의힘”의 “원내대변인” 및 “사무총장”의 직무를 수행해 오던 중 2025년 8월, “국민의힘” 당 대표가 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한편 그는 “장로교” 소속의 “개신교 목사”의 아들인데, “올바른 성경”과, 이 성경에 입각한 “올바른 교회”와 “올바른 교리”에 대해 “올바른 인식”이 정착되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그가 &lt;한글킹제임스성경&gt;을 들고 예배에 참석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물론 그가 “올바른 복음을 통해 제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았는지,” 그리고 “&lt;한글킹제임스성경&gt;을 믿음과 실행의 ‘최종권위’(Final Authority)로 올바르게 믿고 있는 것인지”는 필자도 잘 모른다. 다만 이 나라 “보수 우파”의 중심에 서 있는 “국민의힘”의 “당 대표”가 &lt;한글킹제임스성경&gt;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매우 주목할 만한 점이다.<br/><br/>한번은 “이송오” 목사가 그의 생전에(2015년), “박근혜 대통령께 드리는 공개 질의서”라는 제목으로 신문에 글을 기고한 적이 있다. 그 내용의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저는 박 대통령을 지지했던 ‘유권자’ 중 한 사람입니다. ‘대통령 직분’을 수행하시느라 얼마나 노고가 많으십니까?... 2002년 5월, ‘대통령’께서는 당시 ‘국회의원 자격’으로 ‘김정일’이 내준 전용기를 타고 ‘북한’을 방문하여 최고의 환대를 받으셨습니다. 대통령께서는 ‘김정일’에게 ‘평화 통일’을 위해 같이 힘을 합쳐 노력하자는 건의를 하면서 ‘내게 약속하셨죠?’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김정일’이 ‘약속합니다.’라고 말했다 해서, ‘그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는 지금 ‘평화 통일의 환상’을 가지고 ‘통일 대박’을 부르짖고 계신 것입니까? 이것이야말로 ‘비정상’이 아닙니까? 대통령께서는 ‘김정일의 연방제 통일’을 원하십니까? 통일이 남한만의 관심으로 이룩되는 것입니까? ‘대통령’께서는 ‘공산주의자들’을 ‘정상’이라고 보십니까? 그들은 1917년, ‘볼셰비키 혁명’ 때부터 ‘사탄’의 사주를 받은 ‘살인자들’이요, ‘거짓말쟁이들’입니다. ‘중국’의 ‘시진핑’이 ‘한반도 통일’에 어떤 방법으로 기여할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도 ‘공산주의자’입니다. 우리의 ‘우방’은 ‘미국’임을 기억하십시오.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여왕이었습니다. 그녀가 집권한 기간 동안 ‘대영제국’은 ‘해’가 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우리 ‘대통령’께서도 그와 같이 위로부터 지혜를 얻어 현명한 치리를 해 주시길 기원합니다. ‘취임식’ 때 선서하신 대로 역사에 길이 남을 대통령이 되십시오.”<br/><br/>여기에 언급된 “대영제국”의 “빅토리아” 여왕(1819-1901)은 정치인들과 정부 관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고 성경을 배포하도록 만든 “성경대로 믿는 통치자”였다. 그녀는 “차기 여왕”으로 내정되었을 당시, 곧바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는 성경을 펼친 뒤 “주 하나님, 제가 여왕이 되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통치할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라고 부르짖었다. 심지어 “한 나라의 국왕”으로서 “만왕의 왕”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간절히 기다리는 여인이었는데, “예수님께서 내 생전에 재림하시면 얼마나 좋겠는가! 왜냐하면 내 왕관을 벗어서 그분의 발 앞에 바치고 싶기 때문이다!”라고 고백할 정도였다. 오늘날 그 어떤 국가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왕이나 대통령이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한번은 어떤 왕이 “빅토리아” 여왕을 “접견한 자리”에서 이렇게 물었다. “지난날 자체적인 ‘식량 자급’조차 어려울 만큼 가난했던 ‘영국’이 오늘날 이와 같은 강력한 국력을 기를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입니까?” 이에 “빅토리아” 여왕은, “영국의 국민들이 성경을 사랑하고 성경대로 살기 위해 노력한 것 외에는 별다른 비결이 없었습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결국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위대한 국가”로서의 명성을 전 세계에 떨칠 수 있었다.<br/><br/>문제의 핵심은 “성경”에 있었다. 어떤 “성경”을 말하는 것인가? 바로 “필라델피아 교회 시대”(1500-1900)의 “위대한 개혁과 부흥”을 낳은 영어 &lt;킹제임스성경&gt;이다! 그리고 이 성경을 “한글”로 온전히 전수한 성경이 바로 &lt;한글킹제임스성경&gt;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이 “올바른 성경”을 사랑하고 존중하고 드높이는 “대통령”이나 “위정자들”이 없다. “대통령”이 되고 “국회의원 배지”를 달기 위해서는 수백만 명의 기독교인들의 “표”가 필요한데, 그들은 그러한 “표”를 얻기 위해 교회들과 교단 및 교단들의 연합회에 기웃거리고 교적부에 이름을 등록하면서 “종교 생활”만 할 뿐, 진정으로 구원받지 않았고, 또 성경을 진실한 마음으로 믿지도, 신뢰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성경”은 『의는 민족을 높이지만 죄는 모든 백성을 욕되게 하느니라.』(잠 14:34)라고 말씀한다. “민족들의 역사”는 “의의 역사”와 “죄의 역사”이다. 어떤 나라나 민족이든지, 그들의 역사를 보면 “영적이고 도덕적인 상태”가 “경제적이고 물질적인 부”와 밀접한 연관성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를 높이고 더욱 강성하고 위대한 국가로 만드는 유일한 방법은, 이 나라 국민들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존중하고 높이는 것이다. &lt;한글킹제임스성경&gt;이 “한글”을 모국어로 사용하는 모든 사람의 “믿음과 실행의 최종권위”로 정착될 때 그 꿈은 온전히 실현될 수 있다.<br/><br/>영국의 최전성기를 이끈 “빅토리아 여왕” 시대에 “네 차례의 총리”를 지내며, “해가 지지 않는 영국의 기틀”을 마련한 “윌리엄 글래드스톤”은 “국가의 불의는 국가를 몰락으로 이끄는 가장 정확한 길”이라 했고, 또 “때가 늦은 정의는 실현되지 못한 정의”라고 말했다. 오늘날 여전히 세계 최강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미국”의 제32대 대통령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공의와 정의”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공의와 정의를 실행하기 위해 두려움과 진정으로 맞서 싸울 때 당신은 ‘힘과 자신감’을 얻게 된다. 따라서 당신은 ‘두려움’ 때문에 ‘당신이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일,’ 곧 ‘공의와 정의’를 두려움에 맞서서 마땅히 실행으로 옮겨야 한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하나님과 성경 없이 세계를 올바르게 통치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 했고, 또 주님께 기도하기를, “하나님께서 이 나라 ‘미국’을 거룩하신 주님의 보호 아래 지켜 주십시오! ‘주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한 모습’을 본받지 않고서는 이 나라 ‘미국’이 절대 행복해질 수 없음을, 국민들로 하여금 깨닫게 해 주옵소서!”라고 말했다. 당연히 그가 말한 성경은 다름 아닌 영어 &lt;킹제임스성경&gt;이었다.<br/><br/>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모든 국민”이 주목하는 한 “공당”(公黨)의 대표가, “카메라”를 전혀 의식하지 않은 채, 공개적으로 “그 이름”이 잘 보이도록 &lt;한글킹제임스성경&gt;을 들고, 그것도 &lt;한글킹제임스성경&gt;을 대적하고 그 성경을 출간한 “성경침례교회”를 “이단”으로 매도하고 있는 “사랑의교회” 안으로 들어갔다는 사실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필자는 “장동혁” 대표가 올바른 성경에 대한 올바른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고 두려워하는 정치인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 마지않는다. “빅토리아” 여왕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소신 있게 정치하고, “올바른 성경”인 &lt;한글킹제임스성경&gt;을 사랑하고 존경하고 드높이는 당 대표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렇게 될 수만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그에게 “복”을 주실 것이고, 이 나라를 “위대한 국가로 이끌 지도자”로 “장동혁” 대표를 높여 주실 것이다.<br/><br/>그런데 “진보 좌파” 진영의 “노영희” 변호사가 “장동혁” 대표의 왼손에 들려 있던 &lt;한글킹제임스성경&gt;을 가지고 때아닌 “이단 시비”를 걸었다. 그녀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인 “노영희TV”에서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가 발간한 “이단사이비 연구보고서”(2000-2001년)를 “근거 자료”로 제시하며, “장동혁 대표는 입만 열면 하나님 팔고 예수님 팔더니, ‘이단이 발행한 성경’을 들고 다닌다.”라고 딴지를 걸고 사람들을 오도했던 것이다. <br/><br/>어리석고 가련한 “여인”이여, “변호사”면 “변호사 일”이나 충실히 하라! “성경과 진리”에 관해 “문외한”인 자가 어찌 “성경”에 대해 함부로 “입”을 놀린단 말인가? 그대는 “이단이 무엇인지” 알고 떠드는 것인가? “어떤 성경이 올바른 성경이고, 어떤 성경이 변개된 성경인지” 올바르게 구분할 수 있기나 한 것인가?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가 맹목적으로 믿고 따르는 “개역한글판성경”과 “개역개정판”은 “신약성경에서만 2,200단어 이상 삭제되었고, 성경 전체에서 36,000군데 이상 틀려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인류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늘과 땅은 없어져도 내 말들은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 24:35, 막 13:31, 눅 21:33)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대가 “권위” 있게 여기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가 사용하는 성경들에는 “하나님의 말씀들이 사라진 증거를 분명하게 보여 주는 구절들, 곧 ‘(없음)’이란 구절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모르면 조용히 입을 다물고, 함부로 “이단이 발행한 성경”이니 하면서, 사람들의 “어그로”(aggro)를 끌기 위해 나발을 불지 말라!<br/><br/>“정통인가, 이단인가”에 관한 “논쟁과 시비”는, 지난 2천 년간의 교회 역사에서 끊임없이 있어 왔고, 지금도 “이단 시비”는 계속되고 있다. “이단들”끼리 서로를 “이단”이라고 헐뜯는가 하면,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처럼 “진짜 이단”인 자들이 “교단 세력과 교인 수, 교회 건물 및 헌금 액수의 규모”를 앞세워 &lt;한글킹제임스성경&gt;을 “참된 성경”으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을 자기 멋대로 “이단”이라 규정하기도 한다. 소위 “이단 전문가”나 “이단 감별사”로 자처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중 한 명이 “탁명환”인데, 지금은 “고인”이 되었고 그의 아들이 그 뒤를 잇고 있다. “탁명환”이 규정한 “이단의 정의”에 따르면, “사도신경”으로 신앙 고백을 하지 않는 교회들은 “이단”이 된다. “어떤 사람들”은 “주기도문”을 안 하는 교회들을 “이단”으로 매도하고, “어떤 이들”은 “교단”에 소속되어 있지 않거나, “에큐메니컬 연합”에 가담하지 않은 교회들을 “이단”으로 정죄해 버린다. 이런 자들은 마치 자기들이 “정통”인 양 행세하면서, “이단들”로부터 “기성 교회들”과 “교인들”을 지켜 낸 “진리의 수호자”로 자처하는가 하면, “이단들을 용서해 주었다”고 하면서 마치 “넓은 아량과 사랑”을 지닌 “평화의 사도”처럼 자기들을 그럴듯하게 포장하기도 한다.<br/><br/>이단은 성경에서 “이단 종파”(Sect)와 “이단 교리”(Heresy), 두 가지 용례로 사용된다. 『우리가 알고 보니 이 사람은 전염병자가 되어 세상에 있는 온 유대인 사이에 소요를 일으킨 자로서 나사렛 이단[sect]의 두목이며』(행 24:5). 이 구절에서는 “이단 종파”의 개념으로 사용되었는데, 특히 이것은 “로마”의 총독 “펠릭스” 앞에서, “온갖 듣기 좋은 말”로 “아첨”을 떤 변사 “터툴로”가 “바울”을 고소하며 했던 말이다. 이에 “바울”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요 14:6)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유대인들” 앞에서 자신을 변호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이것을 당신께 고백하오니 즉 그들이 이단[heresy]이라고 하는 그 도를 따라서 내가 내 조상들의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선지서들에 기록된 모든 것을 믿으며』(행 24:14). 여기서는 “이단 교리”의 의미로 쓰였다.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며 대적했던 자들이 “창세기”부터 “말라키”까지 “구약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을 믿는 “바울”을 “이단”으로 정죄한 것인데, 이처럼 “이단”이란 단어는, “유대교 집단”이나 “공회”와 같은 “거대한 종교 조직”이 “바울”을 위시한 소수의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을 비난하고 정죄할 때 처음 사용되었다. 그래서 그때 이후로 줄곧, “올바르게 보존된 성경을 거부하는 거대한 종교 집단”이, 예를 들어 “로마카톨릭,” “그리스정교,” “개신교회들,” “공회들,” “대한예수교장로회” 같은 “교단들” 등이, 소수의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 그룹들,” 곧 “사도들”을 위시하여 “노바티안,” “도나티스트,” “알비겐스,” “보고마일,” “폴리시안,” “왈덴시안,” “카타리,” “재침례교도들,” “바이블 빌리버들”(Bible Believers) 등을 “지난 2천 년간의 교회 역사” 속에서 “이단들”로 낙인찍고, 그들의 “무죄한 피”를 흘려 왔다.<br/><br/>그렇다면 “이단”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성경적인 진리에서 벗어난 교리, 또는 그런 교리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로 정의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성경 말씀”을, 첫째, 변개시키고, 둘째, 사사롭게 제멋대로 해석하며, 셋째, 앞뒤 문맥을 무시한 채, 특정 부분만 뽑아서 만든 비성경적인 가르침과, 그러한 가르침을 믿고 실행하는 집단이다. 이처럼 “이단”은 자기들의 비성경적인 교리들을 주장하기 위해 “성경을 왜곡시키는 사람들”이고, 자기들의 “교단 교리”를 정당화하기 위해 성경 구절을 “임의로 빼고 더하고 바꾸고 변개시키는 자들”이며, 또 그런 “변개된 성서들”을 쓰는 사람들이다. “이단” 연구자 “밥 라슨”(Bob Larson)은 “정통과 이단을 구분하는 기준”에 대해 말하기를, “이단의 ‘근본적인 특징’은 하나님을 격하시키고,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낮추며, 인간을 신격화하고, 죄들을 부인하며, 또 성경을 오염시키는 것이다.”라고 했다. 그의 말을 감안하면, “변개된 성경을 쓰는 사람”은 모두 “이단”이 되고, “대한예수교장로회”를 비롯한 “우리나라 교회들” 대부분은 “사탄이 뿌려 놓은 이단들”에 의해 완전히 장악되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냐하면 변개된 “개역한글판성경”과 “개역개정판,” “흠정역” 등을 쓰고 있고, 또 “성경 본문”을 “문자적 해석”이 아닌 “비유적인 방식”에 따라 “자의적으로, 사사롭게” 해석하고 있으며, 자기들의 “교단 교리에 맞게” 성경 구절들을 왜곡하고 억지로 끼워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br/><br/>“어떤 그리스도인”이 개별적으로 “하나님의 뜻”이 있어,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 되고, 또 “정치적인 일”에 개입하고 참여할 수 있다 해도, “교회”가 직접 발 벗고 나서서, 다시 말해 “담임목사”가 교회의 성도들을 총동원하여 “정당 정치”나 “정치적인 시위 및 집단행동”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교회”가 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참된 신약 지역 교회”는, “죄와 지옥의 심판과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설교하고, “하나님께서 진리를 반대하고 대적하는 사람들의 모든 계략을 분쇄해 주시도록 기도하는 것” 외에는, “당대의 사회적 ․ 정치적 이슈”에 개입해 본 적이 없다. 다만 “왕들과 권세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할 것”(딤전 2:1,2)을 성경이 명령하고 있기에 필자는 이렇게 기도할 뿐이다. “이 나라의 위정자들이 &lt;한글킹제임스성경&gt;을 사랑하고 드높이게 해 주소서!” BB]]></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Tue, 27 Jan 2026 17:37:22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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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당대 최고의 정예병인 “선지자들”</title>
<link>https://biblemaster.co.kr/bb19/%EB%8B%B9%EB%8C%80-%EC%B5%9C%EA%B3%A0%EC%9D%98-%EC%A0%95%EC%98%88%EB%B3%91%EC%9D%B8-%EC%84%A0%EC%A7%80%EC%9E%90%EB%93%A4/</link>
<description><![CDATA[성경에는 “선지자”라는 호칭이 “450회 이상” 나온다. “이름”이 언급된 선지자들의 수는 “약 49명”이며, 이 명칭이제일 처음 등장하는 성경 본문은 “창세기 20:7”이다. 『그러므로 이제 그 사람[아브라함]에게 그의 아내를 돌려주라.그는 선지자니,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여 네가 살 것이라. 그러나 네가 그녀를 돌려주지 않는다면, 너는 알지니, 네가분명히 죽을 것이며, 너와 네게 속한 모든 자들이 죽으리라.』 이처럼 “아브라함”은 “선지자”였다(B.C. 1898).하지만 “연대기적인 순서”에 따르면 최초의 선지자는 “에녹”이었다(B.C. 2952). 이는 “에녹”이 선지자의 기본적인임무, 곧 미래의 일을 “예언”했고, 또 죄에 대해 “책망”하면서 “심판”을 경고했기 때문이다. 『아담의 칠 대 손에녹도 이들에 대하여 예언하여 말하기를 “보라, 주께서 수만 성도들과 함께 오시나니[재림에 관한 예언] 이는 모든 사람을심판하시고 그들 가운데 있는 경건치 않은 모든 자가 경건치 않게 행한 모든 경건치 아니한 행위와 경건치 아니한 죄인들이주를 거슬러 말한 모든 거친 말에 대하여 정죄하시려는 것이라[죄에 대한 책망과 심판에 관한 경고].”고 하였느니라』(유1:14,15).<br/><br/>우선 “선지자”(prophet)는 “예언자”(prophet)이다. “미리 말하는 사람”인데, 물론 “자기 생각”에 따른것은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미래의 일”을 미리 말하는 사람인 것이다. 그래서 구약의 “율법 시대”에는,어떤 『선지자가』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하라고 명령하지 아니한 것을』 “주”의 『이름으로 감히 말하거나 다른 신들의이름으로 말한다면 그 선지자는』 결코 “죽음”을 면치 못했다(신 18:20). 이렇듯 하나님께서 세우신 “선지자”는주님께서 그의 『입에 넣어 주시는 말씀』(민 22:38)만 예언해야 했던 것인데, 그렇게 미리 말한 “예언들”이“이사야”부터 “말라키”까지 17권의 선지서 안에 가득 차 있다. 그러므로 “선지서”는 “예언서”이고, “선지자”는“예언자”이다!<br/><br/>한편 “선지자”는 소위 “대언자”가 아니다! 하지만 미국의 죽어 버린 “정통주의자들”이나 배교한 “근본주의자들”은선지자를 “대언자”로 부르기를 좋아한다. “대언자”는 “하나님을 대신해서 말하는 사람”으로, “어떻게 인간이 ‘예언’할수 있는가?”라는 “쓸데없는 의문”에서 비롯된 호칭이다. 말하자면 선지자는 “미리(fore) 말하는(tell)사람”(foreteller)이 아닌, 누군가를 대신하여 “앞쪽으로(forth) 말을 토해 내는(tell) 사람”으로,미래의 일을 예언하는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을 입에서 바깥으로 말해 내는 사람”이라고 우기고 있는 것이다. 그결과 이들은 “구약의 선지자들”이 “예언한 메시지”를, 자기들이 강단에서 제멋대로 떠벌리는 시답지 않은 메시지와 똑같은종류로 전락시켰다. 우리나라에서는 대표적인 경우가 “흠정역”을 출간한 “정동수 목사”인데, 그는 “선지자”를, “대신해서말해 주는 대변인” 정도로 생각한 나머지 모두 “대언자”로 변개시켰고, 또 “예언” 역시 “대언”으로 변개시켜 버렸다.이로써 “선지자”와 “예언”이 나오지 않는 사상 초유의 매우 “이상한 성서” 하나를 만들고 말았다.<br/><br/>그런데 “선지자”는 “예언”만 한 것이 아니고, 앞서 언급한 “에녹”처럼 예언 속에서 “죄”에 대한 “심판”을 경고하며강력하게 “책망”도 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소위 “자유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선지자들”을 당대의 죄가 만연한“사회 부조리”를 개혁한 “종교적 사회주의자”나 “사회 개혁가” 정도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들은 단순히도덕적인 죄악이나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에 대해 책망한 것이 아니라, “백성들이 ‘율법’을 어김으로써 하나님께 죄를 지은것”에 대해 책망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죄악이 만연한 곳에는 언제나 “선지자들”이 있었다. 이에 “밥 존스 시니어”는“구약 시대의 선지자들은 타락과 배교의 시대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었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선지자들”은“율법을 지키지 않는 사회 전반의 시류”를 거스르는 “영적인 관념과 도덕적인 관념”을 지닌 사람들로서, 언제나 “세상의풍조”에 휩쓸리지 않고 “하나님 편”에 굳건하게 서 있었다.<br/><br/>특히 세상을 향해 담대하게 “진리의 기치”를 높이 들고, 의분을 토하면서 그들의 죄를 책망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신“심판의 메시지”를 거침없이 선포했는데, 이 임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어떤 주저함이나 머뭇거림도 없었다. “사람들의 가려운귀”를 즐겁게 하거나 “사람들의 호감”을 사기 위해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식으로 변죽이나 울리며 이야기하지 않았다.죄 많은 세상을 향해 “그럴듯한 긍정적인 말”을 해 가면서 유유자적하지도 않았다. “나도 옳고, 너도 옳고!”라는 식의“입에 발린 거짓말”도 하지 않았다. 오늘날 배교한 목사들에게나 걸맞은 “신사다움”이나 “부드럽고 다정한 분위기”는 눈을씻고 찾아볼 수 없었다. “선지자들”이 예언하는 책망의 메시지를 듣고 있으면, 마치 “지옥에서나 느낄 수 있을 법한섬뜩함”이 느껴진다.<br/><br/>그러다 보니 선지자들은 왕과 고관들 그리고 백성들로부터 “고난과 고통,” “박해와 핍박”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선지자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러한 고난을 “인내”로 견뎌냈다. 이와 관련하여 성경은 『나의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을 고난과 인내의 본으로 삼으라.』(약5:10)라고 말씀한다. 선지자들은 “구약 시대 신정 통치”에 있어서 일종의 “특수 부대”나 “공수 부대,” 또는“해병대”에 소속된 사람들이었다. 이들의 “제복”에는 “특수 부대 요원”임을 보여 주는 “부대 마크와 표식”이 붙어있었다. 그만큼 선지자들에게는, “어떤 상황에서도 타협하지 않는 용맹성,” “죽음도 불사하는 각오,” “어떠한 거친장애물도 극복해 나갈 수 있다는 신념” 등 이런 “용기 있는 모습”이 있었던 것이다.<br/><br/>그런 고난 속에서 선지자들이 외친 “주된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 “죄로 가득 찬 인간의 타락한 마음이 세상의모든 ‘재앙’과 ‘화’와 ‘진노의 심판’의 원천”이라고 주장했다. 둘째, 선지자들은 결코 “긍정적인 사고”로 무장한“이상주의자”가 아니었다. “인간들의 힘으로 이 땅에 ‘유토피아’를 건설하겠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있는“무(후)천년주의자들”이 아닌 것이다. 셋째, 선지자들은 하나님께서 매 시대에 남겨 두신 “남은자들”(Remnants)에 대해서만 “희망”을 품었다. 넷째, 하나님께서 이방 민족들을 심판하실 것이라고 경고했다.다섯째, 선지자들이 전파한 메시지는 항상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했다. 여섯째, 선지자들은 이 땅의 유일한희망으로서 “모세오경의 예언들”을 성취하실 “메시아”를 제시했다. 일곱째, 선지자들은 “모든 종류의 통합”과 “인종혼혈”을 절대적으로 반대했다. 마지막 배교의 “교회 시대”를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선지자들”이 지녔던 것과 동일한수준의 담대함과 용기를 지녀야 한다. 배교의 흐름을 거스르고 진리의 기치를 드높이는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예언하고, 죄에 대해 강력하게 책망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하는 “선지자의 사명”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BB]]></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Tue, 23 Dec 2025 10:42:12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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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예수님의 승천을 “막아서는” 개역개정판</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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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CDATA[성경에는 이 땅, “지구”에서 머나먼 “하늘나라”로 “우주”를 여행한 몇몇 사람이 나온다. 우선 “에녹”이 그러한데,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이 땅에서 사라진 “매우 독특한 인물”로서 하나님께서 그를 옮기셨다(히 11:5). 그것도 “에녹”이 죽은 다음에 “혼”을 옮기신 것이 아니라, 그가 “살아 있는 상태”에서 “산 채”로 “몸”을 옮기셨다. 산소를 생성하여 공기를 순환시키고 음식과 음료를 공급하는 “생명유지시스템”을 장착한 “우주선”이나 “우주복” 없이도, “유인궤도비행”이나 “위성” 및 “전파탐지기”의 도움 없이도, 믿음의 사람 “에녹”은 “대류권, 성층권, 중간권, 열권, 외기권”을 지나, “태양계 및 우리 은하”를 아주 쉽게 벗어날 수 있었다. 다음으로 “엘리야” 역시 “살아서” 하늘로 옮겨진 사람인데, 성경은 『주께서 회오리바람으로 엘리야를 하늘로 들어올리려 하실 때... 불병거 한 대와 불말들이 나타나... 엘리야가 회오리바람을 타고 하늘로』(왕하 2:1,11) “올라갔다”고 말씀한다. 말하자면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하늘나라에서 보내 준 “특급 마차,” 곧 1분에 3천만 km에서 8천만 km의 속도로 여행할 수 있는 『불병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간 것이다.<br/><br/>세 번째로 “모세” 역시 “우주여행”을 했는데, 앞선 “에녹”이나 “엘리야”와 비교해 보면, 죽은 이후에 “부활한 몸”을 입고 하늘로 옮겨졌다는 점이 다르다. “모세”가 부활해서 “셋째 하늘”로 옮겨졌다는 사실은, &lt;한글킹제임스성경&gt;을 “최종권위”로 믿지 않는 배교한 교회들 및 목사들, 신학자들에게는 감추어진 진리이다. 하지만 &lt;한글킹제임스성경&gt;의 “신명기 34:6, 유다서 1:9, 마태복음 17:3, 요한계시록 11:5,6”은 그 사실을 명백하게 입증해 주고 있다. 신약 시대에는 “사도 바울”이 “셋째 하늘”의 “낙원”에 끌려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온 적이 있다. 『내가 십사 년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한 사람[“바울”의 “혼”]을 알았는데... 그 사람이 셋째 하늘로 끌려 올라갔느니라... 그가 낙원으로 끌려 올라가서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말을 들었는데 그것은 사람들에게 말하도록 허락되지 않은 것이로다』(고후 12:2,4). 앞선 세 사람과 차이가 있다면, “바울”은 그 “몸”이 돌에 맞아 “루스트라 성읍” 바깥에 죽은 채로 쓰러져 있었고(행 14:19), 그의 “혼”만 “낙원”으로의 “우주여행”을 경험했다는 점이 다르다.<br/><br/>또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예표하는 “요한”도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셋째 하늘”로 “영 안에서” 순식간에 끌려 올라갔는데(계 4:1,2), “천문학적인 기술”이나 “항공우주공학”에 관한 지식 없이도 초당 2천만 광년의 속도로 “우주여행”을 했고, 그 여행에서 보고, 듣고, 경험한 모든 내용을 요한계시록 4장부터 22장까지 무려 “열아홉 장”을 할애하여 기록해 놓았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초림 당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이후, 대략 40일의 기간 중에 그 “부활한 몸”으로 (행 1:3) “우주여행”을 “두 차례”나 하셨다. 요한복음 20:17과 마태복음 28:9 사이에서 셋째 하늘과 지구 사이를 “한 차례” 왕복하셨고, 사도행전 1:9,10에서는 셋째 하늘로의 “두 번째 우주여행”을 마치셨다. 그리고 장차 “재림 때”에 흰말을 타시고 지구를 향한 “우주여행”을 한 번 더 하실 것이다.<br/><br/>한편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시고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주께서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을 통하여 계명들을 주신 후 들려 올라가신 그 날까지의 모든 일』(행 1:1,2), 곧 『가장 확실히 믿게 되었던 일들의 실상에 관하여 정연하게』(눅 1:1) 기록한 “누가”는, 사도행전 1장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승천”에 관한 기사를 누가복음 24장에도 다음과 같이 축약해서 기록해 놓았다. 『주께서 그들을 베다니까지 데리고 나가시어 두 손을 들고 그들에게 축복하시더라. 주께서 그들에게 축복하실 때 그들에게서 떠나 하늘로 올라가시니라. 그들이 주를 경배하고 기쁨이 충만하여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계속 성전에 있으면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송축하더라. 아멘』(50-53절).<br/><br/>그러나 “독일”의 성경 비평가 “에버하트 네슬”(Eberhard Nestle, 1851-1913)이 “웨스트코트”와 “홀트”의 변개된 헬라어 성경을 근거로 펴낸 “네슬판 헬라어 원문”은, 1897년부터 1979년까지 무려 82년 동안, 51절에서 『하늘로 올라가시니라.』를 삭제했고, 52절에서는 『주를 경배하고』를 지웠으며, 53절에서는 『하나님을... 송축하더라. 아멘.』을 제거해 버렸다. 이러한 “삭제”는 기본적으로 “D사본”을 근거로 해서 이루어졌는데, 모든 “원문 학자들”과 “필사본 연구자들”은 이 “D사본”을 이단자인 “말시온”의 작품으로 간주하고 있다. 변개된 “개역개정판”과 “개역한글판성경” 역시 번역의 저본이 된 “네슬판 헬라어 원문”을 그대로 따랐으며, 각 구절을 다음과 같이 각각 변개시켰다.<br/><br/>&nbsp;51절 - 「축복하실 때에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려지시니]」(개역개정판) / 「축복하실 때에 저희를 떠나 [하늘로 올리우]시니」(개역한글판성경) → 변개된 한글 성서들은, “[ ]”(꺾쇠괄호)를 표시한 후 “난외주”에 “다른 고대 사본들에는 괄호 안의 본문이 없음”이란 설명을 달았는데, 사실상 이것은 “네슬판 헬라어 원문”처럼 “삭제한 것”이나 다름없는 조치이다.<br/><br/>&nbsp;52절 - 「그들이 [그에게 경배하고]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가」(개역개정판) / 「저희가 [그에게 경배하고]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가」(개역한글판성경) → 여기에 표시된 “[ ]”(꺾쇠괄호) 역시 앞선 51절의 설명과 동일한 의미를 나타낸다.<br/><br/>&nbsp;53절 - 「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니라」(개역개정판) / 「늘 성전에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니라」(개역한글판성경) → 『송축하더라. 아멘.』을 삭제했다.<br/><br/>그러나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실제 몸”을 입고 셋째 하늘로 올라가신 것이 확실한데, 이런 사실은 “저자”가 “누가복음”과 동일인인 “사도행전”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주께서 이런 일들을 말씀하신 후에 그들이 보는 데서 위로 들려 올라가시니 구름이 그들의 시야에서 주를 가리더라. 주께서 올라가실 때에 그들이 하늘을 주시하고 있는데, 보라, 흰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말하기를 “너희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너희는 하늘을 쳐다보고 서 있느냐? 너희를 떠나 하늘로 들려 올라가신 바로 이 예수는 너희가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고 하더라』(행 1:9-11). “셋째 하늘”의 “하나님의 보좌”는 우주의 정북 방향, 곧 “위쪽”으로 올라가면 다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 성경은 그곳에 거하시는 “하나님”을 『영원에 거하시는 높고 우뚝 솟은 분』(사 57:15)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진리의 성경”을 믿지 않고 “과학”을 신뢰하는 “성경 변개자들”은 “하늘로 올라가신다”는 이 말씀을 도저히 수용할 수 없었기에 “누가복음 24:51”을 변개시켰다. 하지만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을 막아선다고 해서 막아지는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막아선다고 해서 막아지는 것이 아니다! 하늘로 올라가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반드시 『하늘로 들려 올라가신... 그대로』(행 1:11) 이 땅에 오실 것이다. “휴거” 때 “공중으로” 끌려 올라가게 될 “거듭난 그리스도인들”과 말이다! BB]]></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Tue, 23 Dec 2025 10:32:40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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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테러와 거짓 평화로 점철된 “이슬람교”</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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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CDATA[“사라”의 여종 “하갈”이 낳은 “이스마엘”은 “거친 광야”에서 거칠게 성장한 『거친 사람』(창 16:12)이었고, 도둑과 강도떼가 득실거리는 광야에서 살았기에 “칼” 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 “이스마엘”의 70대 손으로 추정되는 “마호메트”는 “아라비아”를 정복할 당시 많은 사람들과 무력으로 충돌하며 전쟁을 벌였는데, 오늘날까지도 그가 창시한 “이슬람교”는 “세계 평화 질서”를 무너트리고 있다. A.D. 610년경, “이슬람교”가 처음 만들어진 이래, 지난 1,400여 년간의 역사를 돌아보면, “모슬렘들”은 언제나 누군가를 저주하고 죽이고 암살했으며, 상해를 입히고 공격하고 감금하고 “자살 폭탄 테러”를 일삼아 왔다.<br/><br/>가장 최근 사례로, 지난 2023년 10월 7일, 팔레스타인의 “무장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향해 감행한 “대규모 기습 공격”을 들 수 있다. 이 사태는 “팔레스타인” 남서쪽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지역, 곧 “중동의 화약고”라 불리는 “가자 지구”(Gaza Strip)에서 시작되었다. “가자 지구”는 우리나라 “서울” 면적의 60%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약 230만 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어, 세계에서 “인구 밀도”가 가장 높은 곳이다. 당시 피해가 집중된 “이스라엘 남부 지역”의 집단 농장 “키부츠”에서는 신생아를 비롯한 “영유아 시신” 40구가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고, 그중 일부는 “하마스”에 의해 참수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스라엘 군대의 “이타이 베루브” 소장은 “엄마와 아빠, 어린 아기가 침실과 집안 ‘대피소’에서 살해되었다”며, “이것은 전쟁이 아니라 대학살”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또한 그는 “지금까지 40년 동안 군 복무하면서 ‘하마스’에 의해 어린 아기까지 참수당한 이런 참상은 처음 있는 일”이라고 했다. 영국 “로이터 통신”은 “거리에는 시체들이 널려 있고, 야외 농구장에는 ‘바디 백’으로 감싼 시신들이 즐비하며, ‘죽음의 냄새’로 거리가 가득 찼다”면서 “도시 전체가 ‘거대한 무덤’으로 변했다.”라고 보도했다.<br/><br/>한편 “하마스의 잔인함”은 “민간인들의 희생”에 관해서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있는데, 실제로 그들은 고의적으로 민간인들이 사는 건물에 무기나 탄약을 숨겨 놓고 민간인들을 방패 삼아 그곳에서 총을 쏘며 싸우는 잔인한 전술을 구사한다. 이것은 “하마스”뿐 아니라 모든 “이슬람 무장 세력들”이 즐겨 사용하는 전술이다. 그런 가운데 상대방의 공격으로 민간인 피해가 발생하면 그 책임과 비난을 상대방에게 뒤집어씌우고, 그로 인해 민간인들 사이에 분노가 일어나면 그들의 지지를 얻어 그들을 “새로운 조직원들”로 충원하게 된다. 실로 “가증하고 마귀적인 집단”인 것이다!<br/><br/>흔히들 많이 오해하고 있듯, “이슬람교”는 결코 “평화의 종교”가 아니다! “마호메트의 종교”는 오직 “피 뿌림”에 의해 확립되었는데, 일례로 “마호메트”는 114,000명의 모슬렘 군대를 키웠고, 이 군대는 “마호메트”의 계승자 “아부 바크르”의 지휘하에 싸웠으며, 특히 “이란”의 “사산 왕조”를 멸망시켰고, 15년 만에 시리아, 팔레스타인, 크레테, 사이프러스, 로데스, 아르메니아, 이집트 등을 점령했다. “모슬렘 칼잡이들”은 도저히 길들일 수 없을 정도로 거칠고 사나운 집단이었다. 이는 그들이 “전쟁 중에 죽으면, 지하 낙원으로 인도되어 수십 명의 ‘배꼽 댄서 처녀들’을 제공받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도록 마귀가 속였기 때문이다. 이런 미혹으로 인해 “모슬렘 칼잡이들”은 어떤 군대보다도 “사기”가 높았다고 한다. 또한 이들은 A.D. 679년에 “카르타고”를 멸망시켰고, 북아프리카의 “베르베르족”을 모슬렘들로 “개종”시켰다. 또한 “아프리카”에서 “지중해”를 건너 “스페인”을 공략했고, 그곳에 정착해 있던 “서고트 왕국”을 정복했다. 사실 모슬렘들은 “스페인 전역”을 거의 다 정복했지만, 결정적으로 A.D. 732년 “투르 전투”에서 “교황의 심부름꾼”이었던 “찰스 마르텔”에 의해 패배당하고 말았다. 이후 모슬렘들은 “시칠리아”와 “이탈리아”를 공격했고, A.D. 846년에는 “로마”를 공격했다. 심지어 “십자군 전쟁”을 통해 “로마카톨릭의 군대”와 맞붙기도 했다. 그들은 각기 “알라의 이름”과 “하나님의 이름”으로 싸웠지만, 사실상 그들 모두 “사탄의 이름”으로 싸운 것이었고, 그 결과는 양쪽 진영 모두 매우 비참했다.<br/><br/>잔인한 “마호메트”는 “군사 지휘관”이었다(수라 9:29). 특히 그는 “복수와 앙갚음”이 모든 모슬렘들에게 “옳은 행위”라고 가르쳤다. 한편 “이슬람교의 경전”인 &lt;코란, The Koran&gt;은 선지자로 자처하던 “마호메트”(A.D. 571-632)가 610년부터 그가 죽은 해인 632년까지 천사 “가브리엘”을 통해 “알라”로부터 받은 계시를 그의 추종자들이 집대성해서 기록한 책이다. 사실 “마호메트”는 글을 읽을 줄 모르는 “문맹자”였고, 자신의 정욕을 통제하지 못하는 상습적인 “간음자”였다. 또한 악질적인 “거짓말쟁이”였고, 자주 발작을 일으키는 “간질병 환자”였는데, 그가 소위 계시를 받을 때면 땅에 넘어져 구르고 뒹굴면서 땀을 흘리고 낙타처럼 입에 거품을 물고 &lt;코란&gt;의 내용을 읊었다고 한다. 이것은 “마귀들린 자들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마호메트”는 가정생활이나 사회생활 혹은 그의 교시와 가르침에 있어서 “지적인 영역”이든, “종교적 영역”이든, 어떤 면에서도 전혀 “영적인 면모”를 갖추지 못했다.<br/><br/>이와 관련하여 몇 가지 사례를 들면 다음과 같다. 1 마호메트는 9살짜리 여자아이와 결혼했고, 며느리와도 혼인했다. 2 14명의 아내들과 잠자리를 가졌으며, 17명의 여자 노예들을 데리고 놀았다. 3 밤에 사람들이 잘 때 사탄이 그의 코에서 잠을 잔다고 가르쳤다. 4 모든 “개”를 죽이라고 명령했다. 5 그의 등에 있는 큰 점이 그가 “선지자”라는 증거라고 가르쳤고, 추종자들에게는 그것이 “선지자들의 인장”이라고 했는데, 어리석은 추종자들은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6 천사 “가브리엘”의 날개는 600개이고, “아담”의 키는 27m라고 주장했다. 7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은 배 속에 7개의 장기를 지녔고, 태양이 지면 진흙탕 물에 들어간다고 가르쳤다. 8 자기가 읊어 준 &lt;코란&gt;의 내용들 가운데 어떤 부분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솔직하게 인정했다. 9 머리카락을 붉게 물들였으며, 그의 머리에는 이가 득실거렸다. 10 모슬렘들에게 낙타 오줌을 마시라고 명령했고, 기도할 때 졸면 사탄이 귀에 오줌을 눈다고 가르쳤다.<br/><br/>그런가 하면 “마호메트”는 잔인한 “살인마”였다. 1 그는 자기에 대해 불평하는 사람을 데려다가 그의 “혀”를 자르라고 명령했다. 2 모슬렘들이 유대인들과 싸워 그들을 완전히 진멸시켜야 “마지막 때”가 온다고 가르쳤다. 3 변절하는 모슬렘들을 죽이라고 명령했다. 4 &lt;코란&gt;에 의하면, “테러 행위”가 정당화되는데, 어디서든지 이교도들이 보이면 모든 전략을 동원하여 그들과 싸우고, 그들을 죽이며, 포로로 잡고 괴롭히며, 불신자들의 마음에 공포를 불어넣고, 그들의 목을 치고 손끝을 자르라고 명령한다. 그야말로 그는 “호전적인 군사 독재자”였던 것이다. 5 “알라”나 “마호메트”를 대적하여 전쟁하는 사람은 십자가형에 처하거나 발이나 손이 잘리고 추방당하게 된다. 6 이집트의 “알 샤라위”는 모슬렘들이 “그리스도인들의 교회들”을 공격하고 불태우며 “그리스도인 이교도들”을 죽여야 한다고 설교했다. 특히 &lt;코란&gt;에서는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을 전쟁에서 죽이지 않으면, 그 누구에게도 절대적인 구원의 확신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 다시 말해 소위 “성전”(聖戰)에 임하여 몸을 바쳐 죽어야만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있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없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이슬람교”가 “종교적인 관용과 평화로운 공존”을 추구하는 종교라고 거짓말한다. 하지만 “마호메트”는 어떤 개인이나 국가에게 “이슬람교”를 받아들이든지, 아니면 죽음을 택하든지, 둘 중 하나만을 선택하도록 강요했다. 또한 이들은 “평화”란 미명 아래 “전쟁”을 수행하는 집단이다! 그들은 상황이 불리할 때면 화평을 말하면서 평화의 조약을 체결하는 “협상 테이블”로 나아오지만, 사실상 그들의 속내는 “전쟁”을 염두에 두고 있다. 『나의 혼이 화평을 미워하는 자와 함께 오래 거하였도다. 나는 화평을 원하나 내가 말할 때 그들은 전쟁을 원하는도다』(시 120:6,7). 이처럼 &lt;코란&gt;은 전 세계 “20억 명의 모슬렘들”을 지옥으로 보내고 있으며, “잔인한 테러와 살상”을 통해 온 세상을 위협하고 있다.<br/><br/>특히 그들은 “자기들끼리”도 서로를 죽이고 살해한다. 이와 관련하여 “피터 럭크만” 목사는 이렇게 말했다.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진실은, 모슬렘들이 정복한 나라가 어디든지 간에, 모슬렘들이 ‘모슬렘이 아닌 사람들’을 죽이는 일보다 모슬렘들이 ‘다른 모슬렘들’을 죽이는 일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이다. ‘십자군 전쟁 기간’(A.D. 1095-1291)을 제외하고, ‘모슬렘들’은 지난 800년 동안 1년에 3천 명꼴로 ‘다른 모슬렘들’을 죽였다. ‘마호메트’가 죽자마자 그의 추종자들은 서로를 죽이기 시작했다. 1980년부터 1988년까지 ‘이란’에 있는 ‘독실한 모슬렘들’과 ‘이라크’에 있는 ‘독실한 모슬렘들’ 간에 서로를 죽이는 일이 일어났다. 사실 1948년 이래로 지금까지 1,100만 명의 살해된 모슬렘들 가운데 1,000만 명은 ‘다른 모슬렘들’의 손에 의해 죽은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스마엘’이다(창 16:12). 모든 ‘독실한 모슬렘들’은 ‘모든 정치적, 사회적, 종교적 문제들에 있어서 자신과 의견이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 모슬렘들은 독실한 모슬렘들일 수 없다’고 믿는다. 무엇보다도 ‘마호메트’는 모슬렘들이 73개의 분파로 나눠지고 그중 하나만이 낙원에 갈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래서 이들은 ‘자기들과 다른 분파들’을 ‘위선자들’로 여기면서 서로를 제거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이다.”<br/><br/>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했고, 문자 그대로 믿었던 “마틴 루터”는 “마호메트”를 “사탄의 장자”라고 불렀다. 그러나 “루터”는 “마호메트와 교황 중에 누가 더 형편없느냐?”라고 묻자, “교황이 훨씬 더 악하다.”라는 “지극히 성경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사실 “로마카톨릭”이나 “이슬람교”나 “사탄”에게서 나온 “사탄의 종교”인 것은 매한가지이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나와서 너희 아비의 정욕을 행하고자 하는도다. 그는 처음부터 살인자였으며 진리 가운데 거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자기 안에 진리가 없음이라. 그가 거짓말을 할 때는 자신에게서 우러나와 한 것이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또 거짓말의 아비이기 때문이라』(요 8:44). “마호메트”는 “전쟁은 기만, 곧 거짓이다.”라는 말을 남겼는데, 이것은 그가 만든 “이슬람교”가 “테러와 거짓 평화”로 점철된 “사탄의 종교”임을 잘 보여 준다. 절대 그들의 “기만과 거짓 평화와 거짓 약속”에 속지 말라! 『악인들과 죄악을 행하는 자들과 함께 나를 데려가지 마소서. 그들이 자기 이웃들에게 화평을 말하나 그들의 마음속에는 해악이 있나이다』(시 28:3). BB]]></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Tue, 23 Dec 2025 10:28:16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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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는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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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CDATA[복음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는 “gospel”인데, 이것은 “god”와 “spell”의 “합성어”이다. “고대 영어”에서는 “god”가 “good”(좋은)을 뜻하고, “spell”은 “word”(말, 이야기)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 “좋은 말,” “좋은 이야기,” 곧 “좋은 소식”(good news)이 “복음”인 것이다. 『먼 땅에서 오는 좋은 소식[good news]은 목마른 혼에게 냉수 같으니라』(잠 25:25). “먼 땅”은 “광활한 우주” 저 너머,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머나먼 『하늘나라[heavenly kingdom]』(딤후 4:18)를 가리키는데, 저 멀리 하늘나라에서 보내온 “훌륭한 전문”은 “인류의 구속에 관한 좋은 소식”이고, “목마른 죄인들”에게는 “냉수 같은 소식”이다.<br/><br/>“인간의 생존”을 위해서는 음식보다 “물”이 더 중요하며, 또한 “목”이 정말 마를 때는 다른 음료로는 갈증 해소가 안 되고 오직 “냉수 같은 물”만 갈증을 해소해 줄 수 있다. 그러나 어떤 물은 사막의 “신기루”나 사람을 죽이는 “독”이 될 수도 있는데, “가짜 교회들”과 “종교 사기꾼들”이 전파하는 “나쁜 소식”과 같은 물이 그렇다. 일례로, 하늘나라에 가기 위해서는 “선행”이 필요하다고 설교한다든지, “계명들”을 지키고 “의롭게” 살며, “산상설교와 황금률”을 지키고, “카톨릭 성사들”과 “각종 종교 행사,” “새벽 예배,” “금요 철야 예배” 등에 참여하고, “금식 기도,” “십일조,” “주일 성수” 등을 해야 구원받을 수 있다고 가르치는 것은, 성경에서 경고하는 “저주받을 다른 복음”이며, 지옥에서 올라온 “멸망과 저주의 소식”이자, 간교한 마귀가 보내 온 “가장 나쁜 소식”이다.<br/><br/>이에 반해 “가장 좋은 소식”은, “지옥에 가서 영원히 고통받을 수밖에 없는 죄인들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경대로’ 십자가에 못박혀 피흘려 죽으시고, 장사되셨다가 ‘성경대로’ 셋째 날에 다시 살아나셨다.”(고전 15:3,4)라고 하는 이 사실, “복음 그 자체”이다. 누구든지 이 “복음”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하면 구원받을 수 있다. 『네가 네 입으로 주 예수를 시인하고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이는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에 이르기 때문이라』(롬 10:9,10). 『그러나 누구든지 그를 영접한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즉 그의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니라』(요 1:12).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는 이 복음은 “셋째 하늘”에서 보내온 “시원한 냉수” 같은 “최고로 좋은 소식”이다. 『아, 너희 목마른 자들은 누구든지 물들로 나아오라』(사 55:1). 『목마른 자도 오게 하며 원하는 자는 누구든지 생명수를 값없이 마시게 할지어다』(계 22:17).<br/><br/>이런 이유로 인해 구원은 그 누구라도 쉽게 받을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성경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단순함』(고후 11:3)이라고 말씀한다. “피터 럭크만” 목사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모든 일을 어렵게 만든다. 특히 사람들은 무언가 감정으로 느끼기를 원하기 때문에 구원을 복잡하게 만든다. 한번은 ‘자신의 방에서 급행열차가 지나가는 것을 볼 때까지는 구원받지 못한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이렇게 말했다. ‘어젯밤에 나는 구원을 받았어. 내 침대 발밑에 주님이 서 계신 것을 보았지. 그런 다음 빛이 방 안에 가득했는데, 바로 그때 급행열차가 방 안을 지나 창밖으로 나가는 것을 봤어.’ 다시 말해 이 사람은 그의 침실에서 급행열차가 지나가는 것을 보기 위해 50년간이나 기다렸던 것이다. 하지만 당시에 그가 본 것이 어떤 섬광 속에서 방 안을 지나가던 ‘갈매기’였을지도 모른다는 소문도 있다. 또한 구원과 관련하여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다. ‘잘 들어 보세요. 성령께서 당신을 꽉 붙잡으실 때는 반드시 당신 머리를 곧추세워 쭈뼛거리는 느낌이 들게 하십니다.’ 나는 그 말을 들었을 때, ‘대머리들은 어떻게 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구원을 받는 것은 결코 “복잡한 일”이 아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롬 10:13).<br/><br/>복음이 “좋은 소식”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복음”이 다 “똑같은 복음”은 아니다. 이 점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한데, “시대”와 “대상”(유대인, 이방인, 교회, 고전 10:32)을 올바로 나누지 않고 무분별하게 “복음”을 적용하면 “저주받게 하는 복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교회들을 향해 『다른 복음』(고후 11:4)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나는 너희가 그리스도의 은혜 안으로 너희를 부르신 분으로부터 그렇게 빨리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게 됨을 이상히 여기노라.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너희를 교란시키는 어떤 사람들이 있어서 그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개시키려는 것이라. 그러나 우리뿐만 아니라 하늘에서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것 외에 어떤 다른 복음을 전한다면 그는 저주를 받으리라. 우리가 전에도 말한 것같이 지금도 내가 다시 말하노니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어떤 다른 복음을 전한다면 그는 저주를 받으리라』(갈 1:6-9).<br/>“신약성경”에는 다음과 같은 여러 가지 종류의 “복음”이 언급되는데, 이 “복음들”은 기본적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와 직간접적으로 연관을 맺고 있다.<br/><br/>1 “마태복음” : “왕,” 특히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복음이다.<br/><br/>2 “마가복음” : “종”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복음이다.<br/><br/>3 “누가복음” : “인자”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복음이다.<br/><br/>4 “요한복음” :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복음이다. 『다만 이것들을 기록한 것은 너희로 예수가 그리스도, 곧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하려는 것이요, 또 믿음으로써 그의 이름을 통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라』(요 20:31).<br/><br/>5 “아브라함에 따른 복음” : “이방인들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될 것”을 예표적으로 보여 준 복음이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하실 것을 미리 보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파하기를 “네 안에서 모든 민족이 복을 받으리라.”고 하였느니라』(갈 3:8). “구약 시대”에 “아브라함”이 구원받은 방법과 “교회 시대”에 “이방인들”이 구원받는 방법이 완전히 똑같지 않지만, “아브라함”이 “믿음을 통해 의로 여겨진 사건”(창 15:6)은 “이방인들의 구원”에도 적용할 수 있다. 『성경이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더니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이제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고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을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롭다고 여김을 받을 우리들 때문이기도 하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신 그분을 믿는 자들이라』(롬 4:3,23,24).<br/>여기서 주의할 점은, “아브라함”이 “믿음”을 통해 “의롭게 여겨졌다” 해도, 그가 “의롭게 된 것”은 “행위”에 기초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조상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렸을 때[이것은 “창세기 22장”의 시점으로, “창세기 15장”에서 믿음으로 의롭게 여겨진 지 “17년”이 지난 시점임], 그가 행함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아니하였느냐?... 이제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이 행함으로써 의롭게 되는 것이요, 믿음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니라』(약 2:21,24). 이에 반해 “교회 시대”의 “이방인들”은, “어떤 행위”가 없이, 오직 “믿음”만으로 “의롭게 여겨지고,” 또 동시에 “의롭게 된다.” 『행함이 없어도 불경건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그분을 믿는 사람에게는 그의 믿음이 의로 여겨지느니라』(롬 4:5).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이 율법의 행위들이 없이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단정하노라... 정녕 [교회 시대에] 할례자[유대인]도 믿음으로 인하여 의롭게 하고 무할례자[이방인]도 믿음으로 의롭게 하실 분은 하나님 한 분이시니라』(롬 3:28,30).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으니』(롬 5:1). 이처럼 “시대와 경륜”에 따라 “구원받는 방법”에 차이가 나기 때문에, “아브라함에 따른 복음”은 “교회 시대의 구원 방법”에 관한 “예표”라고 앞에서 설명한 것이다.<br/><br/>6 “칼렙과 여호수아에 따른 복음”(민 13,14장, 히 3,4장) : 이것은 일종의 “전쟁 승리의 복음”으로, “카데스바네아”에서 “카나안 땅”을 목전에 두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지금 당장 ‘카나안 땅’으로 올라가면, 그 땅의 거민들을 멸망시키고 쫓아낸 다음 그 땅을 차지할 수 있다.”라고 “칼렙”과 “여호수아”가 전파했던 복음이다. 그러나 당시의 백성들은 “믿음 없음”으로 인해 “카나안 땅”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이와 유사한 상황이 장차 “환란 기간”에 다시 한번 펼쳐질 것인데, 그때와 같이 “믿음 없음의 본”에 빠져 “안식의 땅”(천년왕국)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히브리서”의 저자인 사도 “바울”이 미래에 『마지막 날들』(히 1:2, “환란 시대”)을 살게 될 “히브리인들”에게 경고를 주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 안식에 들어가도록 힘써야 하리니 이는 아무도 똑같은 믿음 없음의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히 4:11).<br/><br/>7 “천국 복음” : “교회의 휴거” 이후, 이 땅에 도래할 “환란 시대”에 “유대인들”에게 전파될 복음으로, “물리적인 왕국인 ‘천국’(Kingdom of Heaven)이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 왕’으로 받아들이라는 내용의 복음”이다(마 3:2; 4:17,23; 9:35; 10:7; 24:14, 사 52:7). “초림 당시”에 전파되었지만, 당시의 유대인들이 거부한 관계로 이 땅에 “천국”이 세워지지 못하고 “재림 때”로 연기되었다.<br/><br/>8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 : 앞선 “천국 복음”과 같은 맥락에서 전파된 복음이다. 다만 “하나님의 나라”(Kingdom of God)가 “영적인 왕국”이라는 점이 “천국”과 다른 부분이다(자세한 내용은 “피터 럭크만”의 저서 &lt;하나님의 나라와 천국&gt;을 참고할 것). 『요한이 감옥에 갇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로 오셔서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시며, 말씀하시기를 “그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도다. 너희는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하시니라』(막 1:14,15).<br/><br/>9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 “교회 시대”에 전파되는 복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믿는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게 된다는 내용의 복음”이다(행 20:24, 엡 2:8,9). 여기에는 『영광스러운 복음』(고후 4:4)도 포함된다.<br/><br/>10 “영원한 복음” : “환란 시대”에 “천사”가 “이방인들”에게 전파하는 복음으로, “하나님의 ‘심판의 때’가 이르렀으니, ‘창조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경배를 드리라는 내용의 복음”이다(계 14:6,7).<br/><br/>이상 “열 가지 복음” 중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현 “교회 시대”에 전파해야 할 복음은, 9번에 언급된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한 가지뿐이다. 이 시대에 이 복음 이외에 “다른 복음”을 전파하면 “저주”를 받는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BB]]></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Tue, 23 Dec 2025 10:23:03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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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예언의 진수 “소선지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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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CDATA[“구약성경”을 크게 “둘”로 나누면, “율법”과 “선지서들”로 구분된다. 『모세[율법]와 모든 선지자들[선지서들]로부터 시작하여 자신에 관하여 모든 성경에 있는 것들을 그들에게 설명하시더라』(눅 24:27). 여기에 “시편”을 추가하면, “셋”으로도 구분할 수 있다. 『또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이런 것이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 말했던 바 모세의 율법과 선지서들과 시편에 나에 관하여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한다던 그 말이니라.”고 하시고』(눅 24:44). 따라서 “히브리어 구약성경,” 곧 &lt;마소라원문&gt; “24권”(현재 구약성경의 “39권”)은 다음과 같은 구분과 순서로 배열된다.<br/><br/>1. 율법(“토라,” Torah) - “모세오경”(5권).<br/>: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br/>2. 선지서(“나흐빔,” Nahbim) - 선지자들의 “활동 시기”에 따른 구분(8권).<br/>1) “전선지서”(4권) : 여호수아, 재판관기, 사무엘상하(1권), 열왕기상하(1권).<br/>2) “ 후선지서”(4권) :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소선지서”(1권)<br/>3. 시편(“케투빔,” Ketubim) - “성문서”(聖文書, 11권).<br/>1) “시가”(3권) : 시편, 잠언, 욥기.<br/>2) “두루마리”(“메길롯,” Megillot, 5권) : 솔로몬의 노래, 룻기, 예레미야 애가, 전도서, 에스더.<br/>3) “역사서”(3권) : 다니엘, 에스라 ․ 느헤미야(1권), “역대기상하”(1권).<br/><br/>위의 구분과 배열 순서를 감안하면, “히브리어 구약성경”은 “창세기”에서 시작하여 “역대기하”로 끝나게 된다(현재의 구약성경은 “말라키”로 끝남). 『그리하여 땅에 쏟아진 의로운 모든 피가 너희 위로 돌아오리니,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너희들이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죽인 바라키아의 아들 사카랴의 피까지니라』(마 23:35). 이 구절에서 『의인 아벨의 피』는 “창세기”(4장)에서 흘려졌고, 『바라키아의 아들 사카랴』는 제사장 “여호야다”(그는 “여호와께서 복을 주신 사람”으로, 이 의미에 해당하는 “히브리어”가 “바라키아”임)의 아들 “스카랴”로 “역대기하”(24장)에서 죽는다. 이로써 구약성경의 “정경의 범위”가 확정되는데, 물론 이것은 &lt;마소라원문&gt;에 따른 구분과 배열 순서이다. 이에 반해 A.D. 2세기경의 “초기 번역본”인 &lt;구라틴어역본&gt; 이후의 모든 번역본들은 1611년의 영어 &lt;킹제임스성경&gt;과 동일한 형태의 배열 순서를(“창세기”에서 “말라키”까지) 취하고 있다.<br/><br/>한편 &lt;마소라원문&gt;에서는 “소선지서”(12권 - 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댜, 요나, 미카, 나훔, 하박국, 스파냐, 학개, 스카랴, 말라키)가 “한 권의 책”으로 묶여 있고, 이를 12개의 “세다림”(Sedarim, 순서, 차례, 단원)으로 구분하고 있는데, 이후의 “번역 성경들”에서는 그것을 “열두 권의 책”으로 나누었다. 그리고 “소선지서”(Minor Prophets)를 “소선지서”라고 부르는 이유는, 소선지서를 기록한 선지자들이 “대선지서”(Major Prophets)를 기록한 선지자들보다도 “사역”에 있어서 열등했다거나, 주님께로부터 받은 “사명”을 수행하는 역량과 믿음과 자질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다. “임무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덜했기 때문도 아니다.<br/><br/>“대선지서”와 “소선지서”를 구분하는 “기준”은 매우 단순한데, 그것은 바로 “분량의 차이”이다. 다시 말해 “대선지서”는 분량이 많은1) 반면, “소선지서”는 상대적으로 분량이 적은2) 것이다. 물론 “예레미야 애가”는 “호세아,” “아모스,” “스카랴”보다 분량이 적지만, 대선지서 “예레미야”를 기록한 선지자가 함께 쓴 선지서이기 때문에 “대선지서”에 포함된다. 또한 “호세아”나 “스카랴”는 “14개 장”으로서, “12개 장”으로 구성된 “다니엘”보다 “장의 수”가 더 많지만, “다니엘”은 “구절 수”에 있어서 “호세아”보다 160구절이, “스카랴”보다 146구절이 더 많다. “단어 개수”도 현격한 차이를 보이는데, 영어 &lt;킹제임스성경&gt;을 기준으로, “다니엘”은 “호세아”보다 6,428단어가, “스카랴”보다 5,159단어가 더 많다.<br/><br/>“소선지서”가 다루는 “예언적인 주제들”은 “대선지서” 못지않게 다양하다. 다만 분량이 적기 때문에 “대선지서”처럼 “한 권” 안에 모든 주제를 다 담을 수 없고, “다양한 주제들”이 열두 권의 소선지서 안에 “각 책의 기록 목적과 특징”에 맞게 나누어져 있다. 그래서 “소선지서 열두 권”의 내용을 하나로 모으면,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같은 대선지서 한 권의 내용과 맞먹는 분량이 된다. 그만큼 “소선지서 각 책”은 어떤 특정 사건들에 관한 예언만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어서, “예언의 진수”를 그 안에 간직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편 “성경의 주제”는 “왕국”이고, “구약성경의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인데, 특히 “소선지서”가 재림에 관한 내용을 집중적으로 예언하고 있다. “초림에 관한 예언”도 일부 나오지만, “재림에 관한 예언”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예언과 관련하여 “각 책의 주제와 핵심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br/><br/>1) “호세아”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 있을 “이스라엘의 회개와 회복”을 예언하고 있다. “간음한 아내”로 예표되는 “이스라엘”이 심판을 받고 버림받았지만, 회개하고 돌이킴으로써 “하나님의 용서를 받고 회복되는 역사”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br/>2) “요엘”은 “그리스도의 재림” 때 있을 “아마겟돈 전쟁”과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를 강조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주의 날”에 임할 심판과 더불어 “이스라엘의 영적인 회복”을 다루고 있다.<br/>3) “아모스”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여정”과 예루살렘 주변 성읍들에 내려질 심판의 성격을 보여 준다. 또한 “우상 숭배”와 “종교적 형식주의”에 빠져 있는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를 책망하고 있으며, “대환란의 고통” 및 “아마겟돈 전쟁”과 더불어 “이스라엘의 궁극적인 회복”을 예언하고 있다.<br/>4) “오바댜”는 “천년왕국”에서 눈에 보이는 “지상 불못”의 위치가 “에돔”이라는 사실을 적시하고 있으며, 재림 때 “에돔”이 심판을 받고, “이스라엘”이 “에돔 지역”을 차지할 것에 관해 예언하고 있다.<br/>5) “요나”는 성경 전체에서 “이방인들”에게 말씀을 증거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환란 시대의 유대인”의 모습을 가장 잘 예표해 주고 있다. 특히 주목해야 할 사실은, 『고래 뱃속』(마 12:40)으로 삼켜진 “요나”가 죽은 후에 『삼 일 낮과 삼 일 밤을』(욘 1:17) 『지옥의 뱃속』(욘 2:2)에 있었던 사건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다음 『사흘 낮과 사흘 밤을 땅의 심장 속에』(마 12:40) 계셨다가 “부활하시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는 점이다.<br/>6) “미카”는 “초림”과 관련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실 장소가 “베들레헴”이라는 사실을 보여 줄 뿐 아니라, “재림”과 관련하여 “남은 자들”을 통해 회복될 이스라엘과 “메시아 왕국의 위대한 영광”을 예언하고 있다.<br/>7) “나훔”은 “바빌론”의 예표로서의 “니느웨”를 다루고 있으며 재림 때 나타날 상황들을 보여 주는데, 특히 “니느웨”(앗시리아)의 멸망을 통해 “적그리스도의 멸망”과 “아마겟돈 전쟁”을 예언하고 있다.<br/>8) “하박국”은 “재림의 행로”를 강조하고 있으며, 하나님을 대적하여 죄악을 범한 “유다의 멸망”과, 하나님의 백성을 공격한 “바빌론의 멸망,” 그리고 “믿는 의인들,” 곧 “남은 자들”을 통한 “이스라엘의 회복”을 다루고 있다.<br/>9) “스파냐”는 “주의 날”에 관한 “부정적인 성격”을 보여 주는 가운데, “이스라엘의 우상 숭배를 책망함”과 동시에 “아마겟돈의 심판”을 다루고 있다.<br/>10) “학개”는 향후 10-20년 안에 일어날 “성전 재건”을 예언하고 있는데, 특히 재림 때 세워질 “천년왕국 성전의 위대한 영광”에 그 초점이 맞춰져 있다.<br/>11) “스카랴”는 “초림”과 관련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은 삼십 개”에 팔리게 될 것을 보여 줄 뿐 아니라, “재림”과 관련하여 “아마겟돈 전쟁 이후”에 있을 상황에 대해 적시하고 있다. 또한 “다양한 환상들”을 통해 “유다의 심판과 회복”을 예언하고 있으며, 특히 “예루살렘 성읍의 회복”을 강조하고 있다.<br/>12) “말라키”는 『의의 태양』(말 4:2)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앞서 주어지는 “최후의 경고들”을 다루고 있으며, 특히 『주의 크고 무서운 날이 오기 전에』(말 4:5) 등장할 “엘리야의 사역”을 강조하고 있다.<br/><br/>이상 살펴보았듯이, “소선지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관련하여 “예언의 진수”를 모아 놓은 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교회들에서는 “소선지서”를 성경 66권 중에서 가장 소홀히 취급하고 있다. 이는 “소선지서” 각 책에 기록되어 있는 말씀들이 이해하기 어렵고, 또 지루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소선지서”를 어렵게 느끼는 이유가 무엇인가? 가장 큰 이유는 “예언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초림에 대한 예언”은 믿으면서도 “재림에 관한 예언”은 믿지 않는다. “재림에 관한 예언”이 “초림에 관한 예언”처럼 “문자 그대로 성취될 것”을 믿지 않는 것이다. 결국 “소선지서 대부분의 구절들”을 “영적(비유적)으로” 『사사로운 해석』(벧후 1:20)을 하고 『억지로 풀다가』(벧후 3:16) 성경의 “3분의 2 이상”을 지나쳐 버리게 된다.<br/><br/>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예언들이 “문자 그대로” 성취될 것을 확신하며 소망하는 성도에게는, “소선지서”가 까다롭다거나 이해하기 어렵거나 지루한 책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예언의 진수”를 대하면서 흥미진진한 기대 속에 읽게 된다. 한편 성경은 “선지서”를 통해 선포하는 “선지자들의 말”에 관하여 이렇게 말씀한다. 『오 유다와 너희 예루살렘 거민들아, 내게 들으라. 너희는 주 너희 하나님을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견고하게 되리라. 그의 선지자들을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성공하리라』(대하 20:20). 어떤 사람이 “성공적인 인생”을 살 수 있는가? “선지자들의 말”을 듣는 사람이다. 인생의 마지막 문턱에서 누가 “진정한 승리자”인가?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 주시는 말씀”을 믿는 사람이다. 따라서 우리는 “소선지서”를 통해 말하는 “선지자들의 말,” 특히 “예언의 말씀들”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러한 자세로 “소선지서”를 읽고 공부해 나간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소망”을 더욱 확고하게 다질 수 있을 것이다. BB<br/><br/><br/>각주<br/><br/>1)영어 &lt;킹제임스성경&gt;의 경우, “이사야”는 66장, 1,292절, 37,044단어로 되어 있고, “예레미야”는52장, 1,364절, 42,654단어, “예레미야 애가”는 5장, 154절, 3,400단어, “에스겔”은 48장,1,273절, 39,401단어, “다니엘”은 12장, 357절, 11,602단어로 되어 있다.<br/><br/>2) 영어 &lt;킹제임스성경&gt;의 경우, “호세아”는 14장, 197절, 5,174단어로 되어 있고, “요엘”은 3장,73절, 2,033단어, “아모스”는 9장, 146절, 4,216단어, “오바댜”는 1장, 21절, 669단어,“요나”는 4장, 48절, 1,321단어, “미카”는 7장, 105절, 3,152단어, “나훔”은 3장, 47절,1,284단어, “하박국”은 3장, 56절, 1,475단어, “스파냐”는 3장, 53절, 1,616단어, “학개”는2장, 38절, 1,130단어, “스카랴”는 14장, 211절, 6,443단어, “말라키”는 4장, 55절,1,781단어로 되어 있다.]]></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Tue, 25 Nov 2025 01:47:42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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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귀신”은 없고, “마귀”는 있다!</title>
<link>https://biblemaster.co.kr/bb19/%EA%B7%80%EC%8B%A0%EC%9D%80-%EC%97%86%EA%B3%A0-%EB%A7%88%EA%B7%80%EB%8A%94-%EC%9E%88%EB%8B%A4/</link>
<description><![CDATA[한번은 고(故) “조용기” 목사가, 2009년 12월 13일 “주일 설교”에서, “귀신을 쫓아내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이 설교한 적이 있다. “마귀와 귀신은 어디에서 생겨난 것입니까?... 원래 마귀는 ‘천사장’ 중에 하나였습니다. ‘계명성’이라는 이름을 가진 ‘천사장’이었습니다... ‘계명성’인 이 천사가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늘의 천사 ‘3분의 1’을 꾀어서 모반을 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로부터 쫓겨나서 ‘마귀’가 되고 ‘귀신들’이 된 것입니다.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도다 그러나 이제 네가 스올 곧 구덩이 맨 밑에 떨어짐을 당하리로다」(사 14:12-15, 개역개정판). 하나님의 보좌를 빼앗아 그 자리를 자기가 차지하려고, 하늘의 천사 ‘3분의 1’을 꾀어서 반역을 도모하다가 하나님께 쫓겨나서 지금은 ‘지옥의 귀신’이 되고 만 것입니다.”<br/><br/>이보다 더 “무지하고 비성경적인 설교”가 또 어디 있겠는가마는, 이것이 우리나라 기독교계의 현주소이고, 이 나라 목사들과 신학자들의 영적 수준이다. “주된 원인”은 “변개된 성서들” 때문인데, “사탄”이 자신의 정체를 철저하게 숨기고 가리기 위해 성경을 변개시킨 것이다. 성경은 그런 “사탄”에 대해 이렇게 경고하고 있다. 『그러한 자들은 거짓 사도들이요, 기만하는 일꾼들이요, 자신들을 그리스도의 사도들로 가장하는 자들이라. 이것은 놀랄 일이 아니니 이는 사탄도 자신을 빛의 천사[angel of light]로 가장하기 때문이라. 그러므로 사탄의 종들이 의의 종으로 가장한다 하더라도 큰 일이 아니니라. 그들의 종말은 그들의 행위대로 될 것이니라』(고후 11:13-15). 여기에서 “사탄”이 『빛의 천사』로 가장한다는 사실에 주목하라! 『빛』도 아니고, 『천사』도 아닌 자가 『빛의 천사』로 행세하고 있는 것이다.<br/><br/>우선 “사탄”은 『빛』이 아닌데 『빛』으로 가장한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이사야 14:12”이다. 『오 아침의 아들 루시퍼야, 네가 어찌 하늘에서 떨어졌느냐! 민족들을 연약하게 하였던 네가 어찌 땅으로 끊어져 내렸느냐!』 하나님의 섭리 속에 올바르게 보존된 &lt;한글킹제임스성경&gt;에 따르면, “사탄의 이름”은 『루시퍼[Lucifer]』이지, “계명성”(morning star, NIV)이 아니다. “루시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헬렐”은 “빛을 비추는 자” 또는 “빛을 전달하는 자”라는 뜻으로(“Lucifer”는 “헬렐”에 해당하는 라틴어 “Lux Fero”를 영어로 음역한 단어임), “빛” 그 자체를 의미하지 않는다! 특히 그 단어에는 “계명성,” 즉 “새벽별” 또는 “샛별”이라는 뜻이 전혀 없다. 구약에서 “별”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코캅”인데, 이 단어가 이사야 14:12에서는 사용되지 않았다. 그 어떤 히브리어 필사본도 “코캅”으로 기록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개역성경”이나 “개역개정판”을 위시한 변개된 성서들에 들어 있는 그 단어, “계명성”은 원문상의 근거도 없이 “첨가된 불순물”에 불과하다.<br/><br/>무엇보다도 “새벽별”을 지칭하는 “계명성”은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고유 이름”이다. 『나 예수는 교회들에 관한 이런 일을 너희에게 증거하기 위하여 나의 천사를 보내었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며, 또 빛나는 새벽별[morning star]이라.” 하시니라』(계 22:16). 하지만 변개된 성서들은 이사야 14:12에서 “사탄의 이름”을 제거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첨가함으로써, 마치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버지 하나님을 배반하고 천사들을 타락시켜 반역을 획책했다가, 하나님께로부터 쫓겨나 “지옥의 귀신”이 된 것처럼 만들어 버렸다. 사실 “사탄”이 자신의 이름인 “루시퍼”를 “계명성”으로 바꾼 것은 “금성”(Venus)에 관한 “고대 신화”에서 유래했는데, 그가 “고대 이교도들”을 속여서 자신을 “금성,” 즉 “샛별”(day star)이나 “새벽별”(morning star)과 결부시켜 생각하도록 만든 것이다. [주의할 사실은, “성경”에서 『샛별』(벧후 1:19)과 『새벽별』(계 22:16)은 “고대 신화”와 달리 “금성”이 아닌 『의의 태양』(말 4:2, “예수 그리스도”)을 가리킨다는 점이다.] 그래서 “뉴에이지”의 대모인 “블라바츠키”에서부터 “변개된 성서들”에 이르기까지 전 영역에 걸쳐, “새벽별”은 “루시퍼”의 “동의어”로 사용되어 왔다. “뉴에이지 신조”의 주요 원천으로 사용되고 있는 &lt;신지학(神智學) 용어 사전&gt;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구세주는, 요한계시록 22:16에서 자신에 관해 “나는 빛나는 새벽별이요, 금성, 즉 루시퍼이다.”라고 말한다. 기독교인들은 이것의 진짜 의미를 의심해 보지도 않고, “새벽별,” “금성,” “루시퍼”를 환영했다. 사실 “삼위일체”는 “태양”(성부)과 “금성”(성령)과 빛나는 “새벽별”이자 “그리스도”인 “루시퍼,” 이 “셋”으로 구성되어 있다. “말씀”(The Verbum - 라틴어)과 “루시퍼”는 하나이다.」<br/><br/>또한 “사탄”은 『천사』가 아닌데 『천사』로 가장한다. “사탄”은 본래 “그룹”으로 창조된 존재이지, “천사”로 창조되지 않았다. 『네가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어... 네 북들과 관악기들이 만들어짐이 네가 창조되던 날에 네 안에 예비되었도다. 너는 기름부음을 받은 덮는 그룹[cherub]이라. 내가 너를 그렇게 세웠더니 네가 하나님의 거룩한 산 위에 있었고 네가 불의 돌들 가운데를 위아래로 걸었도다』(겔 28:13,14). 그는 “천사”가 아니기에 “천사장”도 아니었다. 분명 “그룹”이었기에 “천사들”과 달리 “날개”를 가지고 있다(“천사”는 “날개”가 없다! 더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다면, 본지 2019년 5월 호에 게재된 글, “날개 없는 천사, 날개 달린 마귀”를 참고할 것).<br/><br/>이렇듯 성경이 “변개되어” 있으면, “사탄의 정체”를 정확하게 알 수 없는 것은 물론, 사탄의 하수인들인 “마귀들”에 대해서도 올바르게 깨달을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이 나라 기독교계가 과거 “TV 프로그램” 중 하나인 “전설의 고향”처럼 “귀신 놀이”나 하고 있는 것이다. “마귀”에 대해 완전히 무지했던 “조용기” 목사는 앞서 언급한 설교에서 이렇게 말했다. “귀신이 늘 같이 따라다닌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저는 매일같이 ‘귀신’을 쫓아냅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제일 먼저 고개를 숙이고는 ‘주님, 편안히 잔 것을 감사합니다. 오늘도 귀신이 나를 훼방하지 못하게 하소서.’라고 기도합니다.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내 곁에 있는 귀신은 물러가라! 내게 붙어 다니는 귀신은 물러가라! 우리 가정에서 물러가라! 우리 가족에게서 물러가라! ‘귀신’을 쫓아내고 하루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잠자리에 들어가기 전에도 귀신을 쫓아냅니다. 귀신을 몸에서 털어 버립니다. 귀신은 먼지와 같기 때문에 집에 들어가기 전에 털어 내 버리고 옷을 입을 때도 털어야 되는 것입니다. 때를 샤워해서 씻어 버리는 것처럼 매일같이 귀신은 샤워해서 쫓아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항상 쫓아내고, ‘귀신’에게서 해방과 자유를 얻고 사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br/><br/>중요한 점은, “마귀”와 “마귀들”은 있어도, “귀신”은 없다는 사실이다. 사실 “귀신”은 “마귀”가 “자신의 정체”를 감추기 위해 만들어 낸 “실존하지 않는 허상”이다. 성경에서 “마귀”(devil)라는 단어는 모두 “118회” 나오는데, 이 중 “사탄”을 지칭하는 “마귀”(단수)는 “35회”이고, 나머지 “83회”는 “사탄”인 “마귀”의 일을 수행하는 “마귀들”(더러운 영들, 악한 영들)을 가리킨다. 하지만 변개된 한글 성서들은 하나같이 “마귀”라는 단어를 삭제하고 “귀신”이라는 단어로 대체함으로써 심각한 “성경 변개”를 자행했다. “귀신”(鬼神)은 “사전적 정의”로 “사람이 죽은 뒤에 남는다는 넋(영혼)”을 의미한다. 하지만 “귀신”은 “샤머니즘”이나 “무속 신앙”에 따른 허구적인 개념일 뿐, 실제로 존재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사람이 죽을 때, “몸”은 흙에서 왔기에 흙으로 다시 돌아가고(전 3:20), “영”은 위로 올라가되(전 3:21), 그것을 주셨던 하나님께로 돌아가며(전 12:7), “혼”은 “하늘나라”(딤후 4:18) 또는 “지옥”(눅 16:19-31)으로 가기 때문이다. “몸”이 죽은 인간의 “혼”은 결코 이 세상을 떠돌지 않는다. 혹은 다른 사람 안으로 들어가 괴롭히거나 도움을 주지 않는다.<br/><br/>한편 “신약성경”에서 “마귀”(devil)에 해당하는 헬라어 단어는 “디아볼로스”(dia;bolov)와 “다이몬” (dai;mwn), 두 가지가 있는데, 이 중 “디아볼로스”는 총 “35회” 언급되며, 모두 “사탄”(Satan)을 지칭하는 “마귀”(the devil)로 번역된다. 하지만 “개역성경”과 “개역개정판”은 『그리고 마귀가 주께 말하기를 “내가 이 모든 권세와 그것들의 영광을 너에게 주리라. 그것이 나에게 넘겨졌으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줄 수 있느니라.』(눅 4:6)라는 말씀에서 “NIV”처럼 “마귀”라는 단어를 삭제했고, 『마귀의 뜻대로 그에게 사로잡혔던 그들이 마귀의 올무에서 깨어 나올까 함이라.』(딤후 2:26)라는 구절에서는 “마귀”를 삭제하고 다음과 같이 “하나님”을 첨가함으로써, “본래의 의미”와 “정반대의 뜻”으로 변개시켜 버렸다. 「저희로 깨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잡힌바 되어 그 뜻을 좇게 하실까 함이라」(개역성경). 「그들로 깨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잡힌 바 되어 그 뜻을 따르게 하실까 함이라」(개역개정판).<br/><br/>한편 “다이몬”은, “신약성경”에서 “다이몬”(dai;mwn), “다이모니온”(daimo;nion), “다이모니조마이”(daimoni;;zomai) 등으로 총 “79회” 나오는데, 모두 다 “사탄”인 “마귀”의 사역을 수행하는 “마귀들”(devils)을 지칭한다. 하지만 변개된 한글 성서들은, 전체 “79회” 가운데 “78회”에서 “귀신”으로 변개시켰고, 나머지 하나인 “마가복음 5:12”에서는 아예 삭제해 버렸다. 그리고 “구약성경”에서 “4회” 언급되고 있는(레 17:7, 신 32:17, 대하 11:15, 시 106:37) “마귀들”(devils)의 경우, 신명기 32:17에서 “개역성경”은 복수 표현 “마귀들”을 단수 표현인 “마귀”로 오역했으며, “개역개정판”은 아예 “귀신들”로 변개시켰다. 나머지 “세 구절”에서는 “마귀들”이라는 단어를 삭제해 버리고, 각각 “수염소”와 “숫염소”(레 17:7), “수염소 우상”과 “숫염소 우상”(대하 11:15), “사신”(邪神)과 “악귀들”(시 106:37)로 변개함으로써, “마귀들의 실체”를 올바로 분별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br/><br/>그야말로 혼란에 혼란을 가중시킨 형국이 되었으니,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혼미한 영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롬 11:8) 주신 것이며, 또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강력한 미혹을 보내시어 거짓말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살후 2:11,12) 하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섭리로 보존해 주신 &lt;한글킹제임스성경&gt;은 “헬라어 표준원문”과 영어 &lt;킹제임스성경&gt;의 정확한 표현에 따라 “마귀”와 “마귀들”로 정확하고 일관성 있게 번역했다. 오직 올바르게 보존된 성경만이 “성경적으로 정확한 교리”를 깨닫게 할 수 있으며, “사탄”과 “마귀들”의 정체를 올바르게 제시하여 영적인 전쟁에서 승리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기 바란다. BB]]></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Tue, 25 Nov 2025 01:03:45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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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7천 명을 모집합니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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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CDATA[17세기 초반, “미국”의 “청교도들”은 “크리스마스”(12월 25일)에 “선물”을 주고받거나 좋은 옷을 입고 맛있는 음식을 차려 먹는 행위를 “사탄의 관습”으로 간주했다. 왜냐하면 그날은 “바빌론”의 “태양신,” 곧 “바알”의 “생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 청교도들은 그런 “마귀적인 관습”을 법적으로 금지시켰고 이를 위반할 경우 “5실링의 벌금”을 물게 했는데, 특히 “매사추세츠주” 법원에서는 “크리스마스를 지키는 사람들”을 “형사법”으로 처벌하겠다는 법률을 공포하기까지 했다. 사실 3,4세기 이전, “교회 시대 초기”까지만 해도 “크리스마스”를 지킨 교회가 단 한 곳도 없었다. 하지만 “니케아 공회”(A.D. 325년) 이후 서서히 자리를 잡아 가던 “로마카톨릭”이 이교도들을 회유하고 교회에 출석하는 교인들의 수를 늘릴 목적으로 “바알의 생일”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신 날”로 둔갑시켜 “크리스마스”를 만들어 냈다.<br/><br/>당시에는 이런 방식의 “상술”(商術)이 비일비재했으니, 예를 들어 이교도들 가운데서 기독교로 개종하는 자들에게 “금화 20개”와 “흰옷 한 벌”을 선물로 주겠다고 약속했던 것이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인데 “할아버지, 할머니”를 대상으로 “주일 예배”에 참석할 경우 “현금”을 주는 교회들이 있는가 하면, 어떤 교회들은 “선물”을 준다. (지금도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28년 전 필자가 군에 입대하여 “신병 교육대”에서 훈련받았을 당시, 군인들에게 소위 “세례”를 주는 “진중세례”라는 것이 있었는데, 이것은 “복음을 믿고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가 아닌, 그저 “교회에만 왔다 갔다 하는 교인”이 되겠다고 손을 든 군인들을 집단적으로 모아 놓고 물을 뿌려 주는 “연례행사” 같은 것이었다. 사실 군인들 대부분은 “초코파이” 하나 더 받아먹기 위해 “세례”를 받았다. 그래서 “신병들”은 “일요일 종교 행사”가 있을 때마다 “초코파이”를 먹기 위해 “교회”로 몰려들었다. 종종 다른 일요일에는 “절간”으로 몰려들곤 했는데, 마침 “절”에서 “절편과 꿀떡이 나오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한번은 “성당”으로 몰려든 날도 있었으니, 값싼 “초코파이”보다 더 고급스럽고 달짝지근한 “던킨 도넛”이 나와서 그랬던 것이다.<br/><br/>3세기 초반, “터툴리안”은 자신이 쓴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때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생소했던 ‘이교도의 축제일들’이 이제는 교회들 안에서 공공연하게 지켜지고 있다. 선물들이 오가고, 새해 첫날이면 요란스럽게 선물을 만들어 대며, 운동 경기와 연회들이 소란스럽게 열리고 있다. ‘이교도들’은 우리보다 훨씬 더 ‘자기들의 종교’에 신실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에게 ‘그리스도인의 경건’은 좀처럼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다시 말해 당시의 “이교도들”은 “기독교”에 물들지 않기 위해 자기들 나름대로 소위 “성별”을 지키고, 타협하지 않으려고 노력한 반면, 오히려 “교회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성별의 위치”를 저버린 채, “이교도들의 관습”을 무분별하게 수용했던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크리스마스트리”와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바알의 생일”인 “크리스마스”를 지키는 교회들은, 사실상 “바알”에게 무릎을 꿇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존재들이다.<br/><br/>일찍이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엘리야”에게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의 형상에 무릎을 꿇지 아니한 칠천 명을 남겨 두었노라.』(롬 11:4)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엘리야”는 “북왕국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사악했던 왕 “아합”이 통치하던 시기에 활동한 선지자였다. “아합”은 『주의 목전에서 자기 앞에 있던 모든 사람보다 더 악을』(왕상 16:30) 행했던 “왕”으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들을 행하는 것이 그에게는 마치 가벼운 것 같았으니』(왕상 16:31), “금송아지 숭배”도 모자라서 “바알 숭배”까지 조장했던 것이다. 그래서 “아합”은 “북왕국 이스라엘”의 수도인 “사마리아”에 “바알 신전”을 건축했고 “바알을 위한 제단”도 쌓았다.<br/><br/>이처럼 “배교”로 가득 찬 시대에 “엘리야”가 사역했던 것인데, 특히 그는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하였더니 삼 년 육 개월이나 땅에 비가 오지 않았고, 다시 기도하였더니 하늘이 비를 내려 땅이 열매를』(약 5:17,18) 내게 한 “위대한 기도의 사람”이었으며, 또 “칼멜 산”에서 혈혈단신으로 “바알의 선지자” 400명과 “아세라의 선지자” 450명, 도합 “850명의 적들”에 맞서 싸워 하나님의 능력으로 물리치고 위대한 승리를 거둔 “믿음의 용사”였다. 하지만 “엘리야” 역시 『우리와 같은 성정에 속한 사람』(약 5:17)이었기에, 고작 “이세벨”이라는 “여자 한 사람,” 곧 그를 죽이겠다고 겁박했던 한 여인의 위협에 겁을 집어먹더니, “광야”로 도망가 자신을 죽여 달라고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이렇게 간구했다. 『이것으로 족하오니, 오 주여, 이제 내 생명을 취하소서. 내가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나이다』(왕상 19:4). 그런 가운데 “엘리야”는 하나님 앞에 서서 이렇게 하소연했다. 『내가 만군의 주 하나님으로 인하여 심히 질투하였사오니, 이는 이스라엘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었으며 주의 선지자들을 칼로 죽였음이니이다. 나, 오직 나만이 남았는데 그들이 내 생명도 앗아가려고 찾고 있나이다』(왕상 19:14). 이에 주님께서는 “엘리야”에게 “새로운 사명”(왕상 19:15-17)을 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에 아직 칠천 명을 남겨 두었나니, 곧 바알에게 꿇지 아니한 모든 무릎과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모든 입이라』(왕상 19:18).<br/><br/>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엘리야” 혼자만 남은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이세벨이 주의 선지자들을 멸했을 때 오바댜가... 데려다가 한 굴에 오십 명씩 숨기고 빵과 물로』(왕상 18:4) 먹인 “일백 명의 선지자”가 있었고, “엘리야”를 대신할 선지자 “엘리사”가 준비되어 있었으며(왕상 19:16,17), 무엇보다도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7천 명”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왕상 19:18). 오늘날 “배교의 시대”도 마찬가지다. 지금으로부터 약 33년 전 1992년 4월 12일, 복음과 진리의 불모지인 이 땅에, 참된 신약 지역 교회인 “성경침례교회”가 하나님의 섭리로 보존된 성경의 기반 위에 창립된 이래로,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7천 명과 같은 성도들”이 계속해서 이 교회로 모여들고 있다. 물론 전체 규모로 보면, 이 땅의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Bible Believers)은 “다수”가 아니라 “소수”다! 2천여 년간의 교회 역사가 증명하듯, 진리의 편에 서서 진리를 지키고 실행하며 진리의 기치를 높이 들고 진리를 위해 싸웠던 사람은 언제나 “소수”였다. 하지만 분명 “소수”였을 뿐, 절대 “혼자”는 아니었다. 지금도 우리 “성경침례교회”를 위시하여, 전국에 17개의 “성경대로 믿고 실행하는 지역 교회들”(강릉, 광주, 대구, 대전, 부산, 순천, 안동, 양산, 원주, 인천, 전주, 제주, 철원, 청주, 춘천, 포항)이 세워져 있으며, 울산 등지에서도 “성경대로 믿는 교회”로 모이기 위한 움직임이 세차게 일어나고 있다.<br/><br/>이 땅에서 “교통 상황”과 “지리적인 요건”을 고려했을 때, “성경대로 믿고 실행하는 교회들”이 최소 30개는 세워져야 한다. 물론 더 많이 세워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다! 하지만 최소 30개의 지역 교회만 세워져도 이 땅을 “복음화”시킬 수 있는 “최소한의 동력”을 갖출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7천 명과 같은 성도들”이 &lt;한글킹제임스성경&gt;과 “진리의 기치”를 높이 들고 일어서야 한다. 특히 대도시는 물론, 산간 마을, 농촌, 어촌, 섬마을 등 우리나라 구석구석까지 들어가서, 열정적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며 전국을 휩쓸고 다닐 “1천 명의 복음 전파자”가 일어나야 한다. 필자는 &lt;한글킹제임스성경&gt;을 “믿음과 실행의 최종권위(Final Authority)”로 믿는 성도이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설교자요, 성경 교사요, “성경침례교회”의 담임목사로서, 전능하신 주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는 “기도 제목”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이 땅에서는 최소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게 해 달라는 기도이고, 또 최소 &lt;한글킹제임스성경&gt;을 모르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게 해 달라는 기도이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의 복음”과 &lt;한글킹제임스성경&gt;이 우리나라 5천만 국민들 각 가정 안으로 들어가게 해야 하고, 이 땅의 8만 개의 교회들 안으로 “성경적 교리”와 “진리의 지식”과 &lt;한글킹제임스성경&gt;이 들어가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바로 이 “위대하고 가장 의미 있는 일”을 위해,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7천 명의 성도들”이 분연히 일어나 &lt;한글킹제임스성경&gt;을 중심으로 함께 모여야 한다.<br/><br/>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세상 앞에 무릎을 꿇지 않은 7천 명의 성도들이 함께 모여야 한다. 20세기 미국의 복음주의 목사였던 “A.W. 토저”는 그의 저서, &lt;Tozer Speaks to Students, “토저”가 학생들에게 말하다&gt;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리스도인들이여, 세상에 굴복한 채로 세상을 흉내 내지 말라!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면서 편히 살고 있는가? 하나님께서는 그런 편한 길을 철저히 반대하신다! 세상과는 절대 화합하지 말라. 사이좋게 지내지도 말라. 겁먹지 말고 당당히 맞서라!... 지금의 교회는 ‘제발, 우리를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하지 마세요.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다른 모든 면에서 당신들과 똑같습니다.’라고 말한다... ‘십자가를 통해 구속받은 교회’는 세상의 비위나 맞추려고 아첨하지 않는다는 점을 명심하라... 교회는 성경적 원리 위에 우뚝 서서 세상을 향해 ‘성령 하나님의 경고’를 들려주어야 한다.”<br/><br/>『악인 앞에 굴복하는 의로운 사람은 불결한 샘과 오염된 샘물 같으니라』(잠 25:26). 설교자 “헤브너”는 “믿음을 세상과 타협하는 일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일임을 알아야 한다.”라고 말했으며, “아인 랜드”는 “음식과 독극물 사이의 타협에서 이길 수 있는 것은 오직 ‘죽음’뿐이다. ‘선’과 ‘악’ 사이에서 타협을 통해 이득을 얻는 것은 오직 ‘악’뿐이다.”라고 말했다. 하나님께서는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마귀와 세상과 육신과 타협하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주님의 방법”대로 일하시며, 우리가 주님의 방법과 주님의 말씀을 신뢰하기를 원하신다. 악한 현 세상과 이 세상의 통치자인 마귀와 타협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가장 안전한 길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신실하고 용기 있는 성도, 세상에 굴복하지 않고, 오히려 세상에 정면으로 충돌하여 싸워 이기는 담대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br/><br/>또한 변개된 성서들을 쓰는 배교한 교회들과 타협하지 않고 배교한 교회들 앞에 무릎을 꿇지 않은 7천 명의 성도들이 함께 모여야 한다. “제도권 교회들” 안에 “남아 있지” 말고, &lt;한글킹제임스성경&gt;을 중심으로 “성경적 성별”을 온전히 이루어야 하는 것이다. 『마음이 부패하고, 진리를 상실하며, 이익이 경건이라 생각하는 사람들 사이에 무익한 논쟁이 일어나느니라. 그런 데서 네 자신은 빠져 나오라』(딤전 6:5). 『너희가 배운 교리에 역행하여 분열을 일으키고 공박하는 자들을 주의하고 그들에게서 떠나라』(롬 16:17). “성경적인 교리”에 역행하는 어떤 교회와도 함께 손을 잡아서는 안 된다. “성경 전체”에서 36,000군데 이상 변개되었고, “신약성경”에서만 2,200군데 이상 삭제된 “개역성경”과 “개역개정판”을 사용하는 제도권 교회들과 어떻게 함께할 수 있겠는가? 또한 &lt;한글킹제임스성경&gt;을 흉내 내면서 “최종권위”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정동수”의 “흠정역”과 “윤경원”의 유치한 “표준역” 같은 “짝퉁들”을 쓰는 교회들과 함께할 수 없다.<br/><br/>“물 뿌리는 세례와 유아 세례”를 실행하는 교회, 그리고 “물 침례를 통한 구원”이나 “교회와 국가가 결합한 형태의 교회 국가,” “교회의 정치 참여,” “행위 구원,” “구원의 영원한 보장을 믿지 않는 것,” “죽을 때까지 구원받았는지의 여부를 알 수 없다는 거짓말,” “소위 성만찬에서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변한다고 믿거나, ‘빵과 포도주’를 신성시하는 행위,”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천년왕국을 문자 그대로 믿지 않는 무(후)천년주의,” “크리스마스, 부활절, 사순절 등의 각종 절기들을 지키는 일,” “사도신경,” “주기도문,” “교독문 낭독,” “축도,” “성직자와 평신도를 구분하는 행위,” “극단적인 칼빈주의,” “알미니안주의,” “은사주의” 등으로 점철된 “비성경적인 교회들”과 결코 함께할 수 없다. “그리스도인의 정직한 양심”으로 도저히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이다!<br/><br/>마지막으로 비진리와 타협하지 않고 비진리 앞에 무릎을 꿇지 않은 7천 명의 성도들이 함께 모여야 한다. 마귀의 하수인인 “교황”과 “로마카톨릭”의 “비진리”에 맞서 싸우다가 화형당해 죽은 순교자 “존 후스”는 이렇게 외쳤다.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여, 진리를 찾아라! 진리를 들어라! 진리를 배우라! 진리를 사랑하라! 진리를 말하라! 진리를 지켜 내라! 죽기까지 진리를 수호하라! 왜냐하면 진리가 우리를 ‘죄와 마귀와 죽음과 영원한 지옥의 형벌’로부터 자유롭게 해 주기 때문이다!” 구원받은 성도는 오직 “진리”만 믿어야 하고, “진리”만 바라보아야 하며, “진리”로 마음을 가득 채워야 하고, 항상 “진리”를 증거해야 한다. “진리”가 아닌 것은 어떤 말도 우리 입 밖으로 꺼내지 말아야 하고, 오직 “진리”에 의해서만 우리의 모든 인생길을 인도받아야 한다. “존 위클리프”는 이렇게 말했다. “성경에 있는 모든 단어가 참되며, 성경에 근거하지 않는 것은 그 어떤 것도 믿을 필요가 없다... 성경에 일치하는 것은 그 어떤 것도 옳은 것이지만, 성경과 반대되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거짓이다.” 오직 “진리”만을 위해 살았던 “바울”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진리를 거슬러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진리를 위해서만 할 수 있느니라』(고후 13:8).<br/><br/>이처럼 우리는 이 땅에서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7천 명”을 찾고 있다! &lt;한글킹제임스성경&gt;을, 하나님께서 한글을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믿음과 실행의 최종권위”로 믿고 있는 성도가 있는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고 있거나, “구령의 열정”을 갖기 원하는 성도가 있는가?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성경대로 믿고 실행하는 교회”를 찾고 있고, 또 그러한 교회가 세워지기 원하는 성도가 있는가? 그렇다면 지금 바로 우리 “성경침례교회”로 연락을 주기 바란다!(연락처 : 02 - 2665 - 3743) 우리는 지금 우선적으로 거제, 경주, 군산, 남양주, 목포, 사천, 성남, 수원, 안양, 용인, 울산, 진주, 창원, 천안 등지에 “지역 교회”를 세워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다. 최소 30개의 지역 교회가 이 땅에 세워지면 “해외 선교사”를 파송할 것이다. “진리의 깃발”이 휘날리고 있는 이곳으로 오라! 지체하지 말고 지금 바로 함께 모이라! BB]]></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Tue, 25 Nov 2025 00:31:55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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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흙”은 언제 창조되었는가?</title>
<link>https://biblemaster.co.kr/bb19/%ED%9D%99%EC%9D%80-%EC%96%B8%EC%A0%9C-%EC%B0%BD%EC%A1%B0%EB%90%98%EC%97%88%EB%8A%94%EA%B0%80/</link>
<description><![CDATA[어리석은 철학자 “아낙시만드로스”(Anaximander, B.C. 610-546)는 이른바 “물질을 구성하는 4대 기본 원소”인 “불,” “공기,” “물,” “흙” 중에서 “흙”이 가장 무겁고 “불”이 가장 가볍다고 생각했다. 이에 그는 가장 무거운 “흙”이 우주의 중심이 되는 “땅”을 이루고, 가장 가벼운 “불”이 “천체”를 이룬다고 보았다. 또한 “태초”란 단어를 “최초의 물질”이란 뜻으로 처음 사용했고, 그가 생각했던 “신들”은 모두 포용적이고 지배적인 불멸하는 “중성,” 곧 “성의 구별이 없는 어떤 힘”이었다. “불”과 “공기”가 “자동적으로” 하늘을 형성하고, “공중의 기둥”이 땅을 떠받치고 있다고 주장했으며, 인간은 “흙”에서 “자동적으로” 태어났다고 생각했다. “아낙시만드로스”는 “자동적으로”라는 말을 자주 “반복해서” 사용했는데, 이는 그가 철학자들 대부분이 그러하듯, “창조주 하나님”의 “위대한 창조”를 거부하고, 모든 만물이 “우연히” 생성되었다고 맹신하는 “미신적인 진화론자”였기 때문이다.<br/><br/>특히 그는 “진흙”에서 생명을 창조한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태양열”이라 믿었고, 남자와 여자는 본래 “물고기 같은 피조물”에서 파생되었는데, “어린아이”로 나오면 스스로를 돌볼 수 없기에 “어른 상태”로 나오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첫 번째 동물은 본래 바다에서 살았으니, 곧 ‘습기’에서 태어난 것이다. 또한 ‘가시 돋친 외피로 둘러싸인 물고기 형태’를 하고 있었는데, 이들이 땅 위로 올라오면서 태양의 온기로 인해 ‘습기’가 증발했고, 그런 가운데 외피가 벗겨지면서 ‘성년’이 된, 다시 말해 ‘살아남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이 나왔다.” 그러나 성경은 “인류의 기원”과 관련하여 “창조주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직접 “흙”으로 만드셨다고 말씀한다. 『주 하나님께서 땅의 흙[dust of the ground]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의 콧구멍에다 생명의 호흡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살아 있는 혼이 되었더라』(창 2:7). 『너는 흙[dust]이니 너는 흙[dust]으로 돌아갈 것이니라』(창 3:19). 『모두가 흙[dust]에서 왔고 모두가 흙[dust]으로 다시 돌아가도다』(전 3:20).<br/><br/>그렇다면 “흙”은 “언제” 만들어졌는가? 우선 성경은 “흙이 없었던 때”가 있었다고 말씀한다. 『주께서 태초에 일하실 때에, 옛적에 그의 일을 시작하시기 전에 나[지혜, 잠 8:12]를 소유하셨느니라. 영원부터, 태초부터, 땅이 있기 전부터 내가 세움을 받았느니라. 깊은 곳들이 없었을 때 내가 나왔으니, 물이 솟는 샘들이 없었을 때라. 산들이 세워지기 전에, 작은 산들이 있기 전에 내가 나왔으니 그가 아직 땅도, 들도, 세상의 가장 높은 곳의 흙도 짓지 아니하셨을 때라. 그가 하늘들을 마련하실 때 내가 거기 있었으며, 그가 깊은 곳의 표면 위에 범위를 정하실 때에도 내가 거기 있었느니라』(잠 8:22-27). 이 구절들에서 『세상의 가장 높은 곳』(잠 8:26)에도 “흙”이 있음을 주목하라. 20세기 영국의 원예가이자 소설가인 “에드워드 하이암스”(Edward Hyams)의 저서 &lt;토양과 문명, Soil & Civilization&gt;에 나오는 것처럼 “흙”은 “지렁이 똥”이 아니다! 특히 “진화론의 산물”은 더더욱 아니다!<br/><br/>창세기 1:3-2:3에 나오는 “7일간의 창조 주간” 중에서, “최초의 사람”은 “여섯째 날” 창조되었는데, 사람을 만드는 데 사용된 “흙”은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흙”은 언제 만들어진 것인가? “다섯째 날”에도, “넷째 날”에도, “셋째 날”에도, “둘째 날”에도, “첫째 날”에도 “흙”이 창조되었다는 내용은 언급되지 않는다. 물론 “셋째 날”에 “흙”의 출처인 “땅”에 관한 언급이 나오긴 한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늘 아래의 물들이 한 곳으로 함께 모이고 마른 곳이 드러나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께서 마른 곳을 땅[Earth]이라 부르시고 물들이 함께 모인 곳을 바다들이라 부르시니라. 하나님께서 보시니 그것이 좋았더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땅[earth]은 땅[earth] 위에 풀과 씨를 맺는 채소와 그 종류대로 열매 맺는 씨를 가진 과실수를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땅[earth]이 풀과 그 종류대로 씨를 맺는 채소와 그 종류대로 열매 맺는 씨를 가진 나무를 내더라. 하나님께서 보시니 그것이 좋았더라. 저녁과 아침이 되니 셋째 날이더라』(창 1:9-13).<br/><br/>그러나 “셋째 날”에도 “땅”이 창조된 것은 아니며, 다만 “땅”을 덮고 있던 물들이 한 곳으로 함께 모이면서 그 모습을 드러냈을 뿐이다. 다시 말해 “땅”은 이미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땅”은 언제 창조되었는가? “창세기 1:1”에서 창조되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earth]을 창조하셨느니라.』 주 하나님께서는 “창조된 땅”과 관련하여 “욥”에게 이렇게 물으셨다. 『내가 땅의 기초들을 놓을 때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게 명철이 있다면 분명히 밝히라. 누가 그 치수를 재었는지 네가 아느냐? 누가 그 위에 측량줄을 띄웠느냐?』(욥 38:4,5) 실제로 “측량줄”을 띄워 보니, 이 땅 “지구”는 “지름”이 약 12,756km이고, “둘레”는 40,000km 정도 되며, “면적”은 약 5억 km2이고, “무게”는 6×1024kg 정도 된다. 과연 누가 이런 치수를 정확히 측량해서 “허공”에 매달아 고정시켜 놓은 것인가? 『그 기초들은 무엇 위에다 고정시켰으며 모퉁잇돌은 누가 놓았느냐?』(욥 38:6) 또한 “지구”가 1초에 약 465m의 속도로 “자전해야” 하고, 30km 정도의 속도로 “태양의 주위를 공전해야” 한다고 누가 정해 놓은 것인가? 참으로 경이롭고 놀라우신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인데, 그래서 “하늘과 땅”이 창조되던 날, 『새벽별들이 함께 노래』하고 『하나님의 아들들[하늘의 천사들]이 모두 기뻐서 소리』쳤던(욥 38:7) 것이다.<br/><br/>이처럼 “흙”은 “땅”이 창조되면서 함께 만들어졌다. 그런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 없지만, “창세기 1:2”에서 “하늘과 땅”은 “물”에 잠기는 “대격변”을 겪게 된다. 『땅[earth]은 형체가 없고 공허하며 어두움이 깊음의 표면에 있으며 하나님의 영은 물들의 표면에서 거니시더라.』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심판하신 것인데, 이는 “사탄”이 타락해서 반역하고 범죄했기 때문이다. 『오 아침의 아들 루시퍼야, 네가 어찌 하늘에서 떨어졌느냐! 민족들을 연약하게 하였던 네가 어찌 땅으로 끊어져 내렸느냐! 이는 네가 네 마음속에 말하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가서 내가 내 보좌를 하나님의 별들보다 높일 것이요, 내가 또한 북편에 있는 회중의 산 위에 앉으리라. 내가 구름들의 높은 곳들 위로 올라가, 내가 지극히 높으신 분같이 되리라.” 하였음이라』(사 14:12-14). 『네가 창조된 날로부터 죄악이 네게서 발견되기까지 너는 네 길에 완벽하였도다. 네 상품이 풍부함으로 그들이 폭력으로 네 가운데를 채워서 네가 죄를 지었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너를 더럽게 여겨 하나님의 산에서 쫓아내리라. 오 덮는 그룹아, 내가 불의 돌들 가운데로부터 너를 멸하리라. 네 마음이 너의 아름다움으로 인하여 높아졌고 너는 네 지혜를 네 찬란함으로 인하여 변질시켰도다. 내가 너를 땅에다 던질 것이며 내가 너를 왕들 앞에 두어 그들로 너를 보게 하리라. 너는 네 죄악이 많음으로 인하여, 즉 네 거래의 죄악으로 인하여 네 성소들을 더럽혔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네 가운데로부터 불을 일으키리니 그 불이 너를 삼킬 것이요, 내가 너를 보는 모든 자들의 목전에서 너를 땅 위에 재가 되게 하리라』(겔 28:15-18).<br/><br/>주목할 사실은, “창세기 1:1”의 “창조”와 “창세기 1:3-2:3”의 “7일간의 창조”는 서로 다른 사건이라는 점이다. “전자”와 구분하여 “후자”를 “재창조”라고 부른다. 때때로 이것은 “간격 이론”(Gap Theory)이라는 다소 잘못된 명칭으로 불리지만, 이 역사적인 “두 번의 창조 사건”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진리”이지, 어떤 “이론”이 아니다! 단언컨대 “하늘과 땅”은 “노아의 홍수”가 발생하기 훨씬 전에 한 번 파괴된 적이 있었다. 『먼저 알 것은 이것이니 마지막 날들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그들의 정욕대로 행하며, 말하기를 “그가 온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잠든 이래로 만물은 창조의 시작부터 그대로 있다.” 하리니 이는 그들이 이것을 고의로 잊으려 함이라. 즉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하늘들이 옛적부터 있었다는 것과, 땅도 물에서 나왔고 물 안에 있었다는 것이니 이로써 이전에 있던 세상은 물이 범람해서 멸망하였느니라』(벧후 3:3-6).<br/><br/>이것은 “노아의 대홍수”를 가리키는 본문이 아니다. 왜냐하면 “노아의 대홍수 때”는 “땅,” 곧 “지구”만 물에 잠겼을 뿐 “하늘들”이 잠기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땅도 물에서 나왔고 물 안에 있었다』(벧후 3:5)는 말씀에 유념하라. 『땅도』라는 표현은 “하늘들”이 물 안에 잠겼다는 사실을 전제로 두고 있다. 다시 말해 『물이 범람해서』 멸망한 『이전에 있던 세상』(벧후 3:6)은 땅과 하늘들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땅”은 물론 “하늘들”까지 물에 잠긴 “우주적인 대홍수”가 있었던 것인데, 이러한 사실을 “창세기 1:2”에서 잘 보여 주고 있다.<br/><br/>이후 하나님께서는 우주를 “재창조”하셨는데, 이때 물 안에 있던 하늘들과 땅이 “물 바깥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이 일은 “재창조 주간”의 “둘째 날”과 “셋째 날”에 이루어졌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물들 가운데 창공이 있으라. 창공으로 물들에서 물들을 나누게 하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창공을 만드시고... 창공을 하늘이라 부르시니라. 저녁과 아침이 되니 둘째 날이더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늘 아래의 물들이 한 곳으로 함께 모이고 마른 곳이 드러나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께서 마른 곳을 땅이라 부르시고... 저녁과 아침이 되니 셋째 날이더라』(창 1:6-10,13). 이렇게 해서 “현재 있는 하늘들과 땅”이 형성되었고, 그렇게 형성된 하늘들과 땅은 지난 6천여 년간의 인류 역사를 지나 오늘날까지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있는 하늘들과 땅” 역시 “불”에 타서 멸망할 것인데, “전 우주”가 불타 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있는 하늘들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보존되어 있으되 경건치 아니한 자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에 불사르려고 간수되어진 것이니라』(벧후 3:7).<br/><br/>이렇듯 “재창조”는 분명한 “성경적 진리”이다. 그러나 만일 “재창조”를 고의로 잊으려 하거나 애써 부인한다면, 다음 “다섯 가지 질문”에 대해 답을 못하게 된다.<br/><br/>1 하나님께서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지 않고, 무질서한 “혼돈의 우주”(창 1:2)를 바로잡기만 하신 “무능력한 하나님”이신가?<br/>2 “사탄”은 언제 창조되었는가?<br/>3 “천사들”과 “그룹들,” “정사들,” “권세들” 등은 언제 창조되었는가?<br/>4 “물”은 언제 창조되었는가?<br/>5 “흙”은 언제 창조되었는가?<br/>『조롱하는 자는 지혜를 구하여도 얻지 못하나, 깨닫는 자에게는 지식이 쉬우니라』(잠 14:6). BB]]></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Thu, 23 Oct 2025 16:47:17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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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당신의 성경에는 “유니콘”이 있는가?</title>
<link>https://biblemaster.co.kr/bb19/%EB%8B%B9%EC%8B%A0%EC%9D%98-%EC%84%B1%EA%B2%BD%EC%97%90%EB%8A%94-%EC%9C%A0%EB%8B%88%EC%BD%98%EC%9D%B4-%EC%9E%88%EB%8A%94%EA%B0%80/</link>
<description><![CDATA[“유니콘”(unicorn)은 이마에 “외뿔”을 가진 “실제적인 짐승”으로, “천상의 동물”이지만, “상상 속의 동물”은 아니며, 성경에서 모두 “아홉 차례” 등장한다(민 23:22; 24:8, 신 33:17, 욥 39:9,10, 시 22:21; 29:6; 92:10, 사 34:7). 『하나님께서 그를 이집트에서 데리고 나오셨으니, 그의 힘이 마치 유니콘과 같도다. 그는 그의 원수 된 민족들을 삼키며 그들의 뼈를 꺾고 그의 화살들로 꿰뚫으리로다』(민 24:8). 『유니콘이 너를 즐겨 섬기겠으며 네 외양간에 머물겠느냐? 네가 유니콘을 줄로 매어 고랑을 갈게 할 수 있느냐? 그가 너를 따라 골짜기를 써레질하겠느냐?』(욥 39:9,10) 『그가 또 그것들을 송아지같이 레바논과 시리온을 어린 유니콘같이 뛰게 하시는도다』(시 29:6). 『유니콘들이 그들과 더불어 내려오며, 수송아지들이 수소들과 함께 내려오리니 그들의 땅이 피로 흠뻑 젖게 될 것이며, 그들의 흙이 기름으로 윤택해지리로다』(사 34:7).<br/><br/>“셋째 하늘”에서 이 땅으로 재림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스라에서 희생을 내시며 이두메 땅에서 큰 살육』(사 34:6)을 “행하실” 때, “유니콘들”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에(사 34:7) 주목하라! 이것은 일종의 “UFO”(“미확인 비행 물체”)인 셈인데, 사실 흔히들 목격했다고 하는 소위 “UFO”는 지구 바깥, 곧 우주에서 내려오지 않는다. 이는 성경 어느 곳에서도 지구 외에는 “고도로 발달된 지적 문명이나 생명체가 존재하는 행성”에 관한 언급이 없기 때문이다. 온 우주에서 “생명체가 거주하는 행성”으로는 “지구”가 유일하다. 이런 사실은 성경에서 “하나님의 관심”이 “유독 지구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을 통해서도 확인이 된다.<br/><br/>1 우선 “지구”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첫 번째 행성”으로(창 1:1), 태양, 달, 별들(창 1:16)보다 먼저 창조되었다.<br/><br/>2 우주에 떠 있는 모든 군상은 “지구”를 위해 만들어졌다(창 1:14-19).<br/><br/>3 하나님께서는 인류가 사는 행성에 “지구”(Earth - 땅, 창 1:10)라는 이름을 특별하게 붙여 주셨고, 특히 성경에는 “earth”란 단어가 무려 900회 이상 언급된다.<br/><br/>4 “지구”는 하나님의 의도 속에서 사람들을 거주시킬 목적으로 “창조된 행성”이지, 결코 “우연과 진화의 산물”이 아니다. 『하늘들을 창조한... 하나님은 스스로 땅을 조성하고 만들었으며, 그는 그것을 견고히 세우되 헛되이 창조하지 아니하셨으니 사람이 거주하도록 조성하였느니라. 나는 주라. 아무도 다른 이가 없느니라』(사 45:18).<br/><br/>&nbsp;5 “지구”는 하나님의 “영원한 왕국의 기반”으로, “천년왕국”이 바로 이 “지구” 위에 세워질 것이고(단 2:44), 또 “영원 시대”에서는 “새 예루살렘”이 “지구” 쪽으로 내려올 것이며(계 21:2,3), 구원받은 민족들이 “지구”를 중심으로 “전 우주”를 향해 뻗어 나갈 것이다.<br/><br/>이처럼 “지구”만이 “생명체가 사는 유일한 행성”이다. 사실 “인간과 같은 형태의 생명체”가 우주의 다른 행성들에서 출발하여 “비행접시”를 타고 지구를 방문할 것이라는 생각은 “할리우드 공상 과학 영화”나 “다윈의 생물학적 진화론”의 산물일 뿐이다! 다시 말해 우주 어딘가에 지구에서 살고 있는 인류보다 훨씬 더 “진화된 생명체”가 있을 것이라고 믿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소위 “UFO 탑승자들”인 “외계인들”은 다른 행성에서 진화한 존재들이 결코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물론 지구의 대기권 너머 저 우주에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영적인 존재들”이 활동하고 있다. 『미카야가 말하기를 “그러므로 왕은 주의 말씀을 들으소서. 내가 보니 주께서 그의 보좌에 앉아 계시고 하늘의 모든 군대가 그의 오른편과 왼편에 서 있는데』(왕상 22:19). 말하자면 그룹들, 스랍들, 천사들, 타락한 영적 존재들인 사탄, 마귀들, 정사들, 권세들 등, 인간보다 더 지적이고 능력도 뛰어난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생명체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유니콘” 같은 “천상의 동물들”도 있다.<br/><br/>“브라질”의 한 농장에서는 이마 한가운데 커다란 뿔 하나가 달린 황소가 발견되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2015년). 이른바 “불니콘”이란 별칭으로 불리는 이 황소는 SNS를 통해 처음 공개되었을 때, “희귀한 모습” 때문인지 “다이아몬드”로 명명되었고, 그 황소의 “외뿔”은 “선천적인 것”이라고 한다. 한편 미국의 생물학자 “윌리엄 도브”(William Dove) 박사가 “유전자 조작”을 통해 “유니콘 젖소”를 만든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 젖소는 약 3년밖에 살지 못했다. 그리고 1992년에는 “베트남 산림부”와 “세계자연보호기금”(WWF)이 “베트남과 라오스” 국경에서 “긴 뿔을 가진 독특한 동물” 하나를 발견했는데, “사올라”로 명명된 “야생 소”였다. “두 개의 길고 뾰족한 뿔”이 “영양”처럼 생겼지만 유전자 분석 결과로는 “소의 일종”으로 밝혀졌다. 뿔이 “유니콘의 뿔”을 닮았다 해서 “아시아의 유니콘”으로 불리기도 한다. 2010년에는 동일한 지역에서 주민들이 “사올라” 한 마리를 생포했지만 며칠 만에 죽어 버렸다.<br/><br/>1933년에는 “송아지의 뿔들”을 자르고 다듬어서 “두개골 중앙”에 하나로 이식하여 “유니콘 황소”를 만들었다. 1980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멘도시노”에서는 한 부부가 “유니콘 염소”의 사진을 찍기도 했는데, 이 “염소”는 “터키”에서 사육되는 “염소 품종”인 한 쌍의 “앙고라 염소”에게서 태어났고, 어릴 때 뿔을 이마에 이식했다고 한다. “오델 쉐퍼드”의 저서 &lt;유니콘의 전설, Lore of the Unicorn&gt;에는 “유니콘들을 목격한 증인들”이 열거되어 있으며, “조브 루돌푸스” 역시 그의 책 &lt;에티오피아의 새로운 역사, The New History of Ethiopia&gt;에서 “유니콘들”에 관해 이야기했다. 아프리카의 선교자이자 탐험가였던 “데이비드 리빙스턴”도 “유니콘의 존재”를 믿었다. <br/><br/>1860년 12월 22일자, &lt;아테네움, Atheneum&gt;지에서는 &lt;자연 역사의 로맨스, The Romance of Natural History&gt;를 평가하면서, “유니콘을 우화로 여겨서는 안 된다.”라고 썼다. “아프리카”를 여행한 과학자 “윌리엄 블레이키” 박사는 그의 “1862년 8월 16일자 일기”에서 “유니콘”에 관해 썼다. 1801년 “사무엘 터너” 대위는 “인도” 북동쪽에 위치한 “부탄”의 “수장”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그의 말에 따르면 그 수장은 “유니콘 한 마리”를 소유하고 있었다고 한다. 1503년 “이탈리아” 출신의 여행가 “루도비코 바르데마”는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에서 “두 마리의 유니콘”을 봤다고 했는데, “에티오피아”의 “왕”이 그 도시의 “술탄”에게 선물한 것이었다고 한다. 1993년 “베트남 하노이”에서는 뿔이 하나 달린 “자바코뿔소” 열두 마리가 발견되었는데, “마지막 한 마리”가 “사이공”의 북동쪽 200km 지점에서 죽었을 때 멸종되었다고 여겨진 동물이었다. “원주민들”은 “자바코뿔소”의 “가죽”을 뱀의 독을 치료하는 “해독제”로 썼으며, “뿔을 갈아서 만든 가루”는 “해열제”로 썼다고 한다(&lt;럭크만 주석성경&gt; 부록 55, “유니콘과 용” 참조).<br/><br/>“유니콘”의 존재는 “성경적으로”든, “목격자들의 증언”으로든 너무나 명백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 “믿지 못할 이유”가 없다. “유니콘의 존재”에 대한 불신은 “유니콘”이란 이름을 기록하고 있는 “성경”을 믿지 못하는 불신과 별반 다르지 않다. “유니콘”이란 이름을 올바르게 보존하고 있는 “성경”을 “신화적인 책”으로 여기는 것과 매한가지 태도인 것이다. 여러분이 가진 성경에는 “유니콘”이 있는가? 부패한 “개역개정판”과 “개역한글판성경”은 그 존재를 믿지 못하겠다는 이유로, “유니콘”이란 단어를 모두 삭제해 버리고 “들소”와 “들송아지”로 변개시켰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인류의 역사책”인 성경에 분명하게 언급되고 있는 “유니콘”은 “신화적인 동물”로 치부하면서도, “고생물학자들”이 “뼈들”을 발견했다고 하면서 지어 내는 “공룡들”의 이름들은 맹목적으로 믿고 있으니 말이다! 딜로포사우루스, 스테노니코사우루스, 스피노사우루스, 아르케옵테릭스, 아크로칸토사우루스, 알렉트로사우루스, 알로사우르스, 케라토사우루스, 오비랍토르, 트로오돈, 티라노사우르스, 브라키오사우루스, 센트로사우루스, 안킬로사우루스, 켄트로사우루스, 트리케라톱스 등, 이름을 기억하기조차 어려운 “공룡들의 존재”에 대해서는 철석같이 믿고 있는 것이다.<br/><br/>여러분에게 “공룡들의 존재”를 믿을 수 있는 믿음이 있다면, “유니콘”은 물론이거니와, 다음의 “괴물 같은 모습의 메뚜기들의 존재”도 믿지 못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가 끝없이 깊은 구렁을 여니, 큰 용광로의 연기 같은 연기가 구렁에서 올라오는데 해와 공기가 그 구렁의 연기로 말미암아 어두워지더라. 또 그 연기에서 메뚜기들이 땅 위로 나왔는데 땅의 전갈들이 지닌 권세와 같은 권세를 받더라. 그들에게 명령이 내려지기를 땅의 풀이나 또 어떤 푸른 것이나 어떤 나무도 해치지 말고 다만 그들의 이마에 하나님의 인장으로 표시받지 아니한 사람들만 해치라고 하더라. 또 그들에게 명령이 내려지기를 그 사람들을 죽이지는 말고 오직 다섯 달 동안 고통만 주라고 하는데, 그 고통은 마치 전갈이 사람을 쏠 때의 고통과 같은 것이라. 그 날들에는 사람들이 죽음을 구하여도 찾지 못할 것이요 또 죽으려고 애를 써도 죽음이 그들을 피하리라. 또 그 메뚜기들의 모양은 전쟁을 위하여 준비한 말들 같고, 그 머리에는 금 면류관 같은 것을 썼으며, 그 얼굴은 사람들의 얼굴과 같고 그들의 머리카락은 여인들의 머리카락 같았으며, 그 이빨은 사자들의 이빨 같더라. 또 그들의 흉배는 철흉배 같았으며, 날개 소리는 전쟁터로 달려가는 많은 말들이 끄는 병거 소리 같더라. 그들에게는 전갈과 같은 꼬리가 있고, 그들의 꼬리에는 쏘는 침이 있으며 다섯 달 동안이나 사람들을 해치게 하는 권세가 있더라. 또 그들에게는 자기들을 다스리는 왕이 있으니 끝없이 깊은 구렁의 천사요, 그의 이름은 히브리어로 아바돈이며 헬라어로 그의 이름은 아폴루온이더라』(계 9:2-11). <br/><br/>여기에서 “그들”은 “절반”은 “동물”이고 “절반”은 “사람”인 존재들, 곧 “남자”와 “여자”와 “전갈”과 “사자”를 합성한 존재들로, 장차 “대환란 기간”에 땅 밑, “지구 중심”에서 올라올 것이다.<br/><br/>그렇다면 “절반”은 “염소”이고, “절반”은 “사람”의 모습을 한 “사티로스”(satyrs)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대신 사막의 들짐승들이 거기에 엎드리며, 그들의 집들에는 울부짖는 짐승들로 가득 찰 것이요, 또 올빼미들이 거기에 살며 사티로스가 거기서 춤을 추리라』(사 13:21). 『광야의 들짐승들도 섬의 들짐승들과 만날 것이며, 사티로스가 자기 동료를 부르고, 헛간 올빼미도 거기서 쉬며 자신의 안식처를 찾을 것이라』(사 34:14). “사티로스”의 존재를 도저히 믿지 못하겠는가? “사티로스”를 기록하고 있는 성경이 “신화적인 책”처럼 여겨지는가? 그래서 성경을 믿지 않는 “성경 변개자들”은 “사티로스”를 제거하고 “들양이”와 “숫염소”로 변개시켜 버렸다. 그러나 성경에서 “사티로스”는 “신화적인 동물”이 아니며, “염소”처럼 생긴 “마귀들”을 지칭하는 “실제 동물의 이름”이다. 믿지 않으면 아무것도 깨달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기 바란다. BB]]></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Thu, 23 Oct 2025 15:58:59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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