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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말씀보존학회 - 한글킹제임스성경 및 진리의 지식을 전파합니다 &amp;gt; 바이블마스터 &amp;gt; 지식뱅크 - 문제의 구절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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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테스트 버전 0.2 (2004-04-26)</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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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창세기 6:2의 “하나님의 아들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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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CDATA[창조주의 말씀인 “성경”은 인간 외에 다른 존재들이 창조되었음을 계시한다. 자신을 우주의 중심이라고 생각해 온 어리석은 인간들은 “외계의 존재”라는, 자신도 미심쩍어 하는 표현을 내세우며 미지의 우주를 탐험하려 하지만, 성경은 처음부터 “외계의 존재”를 계시해 왔다. 그 대표적인 구절이 “창세기 6:2”이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들의 딸들이 아름다운 것을 보고 그들이 택한 모든 자를 아내들로 삼으니라.』 이 말씀은 성경에서 “가장 난해한” 구절 중 하나로 여겨지는데, 사실 성경에는 그렇게 난해하다고 여겨질 만한 구절들은 많지 않다. 문제는 말씀을 보고도 믿지 않는 인간에게 있다. 즉 배운 사람이나 못 배운 사람이나 성경을 대하는 자세는 동일하다. 그들은 자신들이 믿기 어려워하기 때문에 성경을 난해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성경을 좀 공부했다고 하는 학자들이 써내려간 주석들을 보면 그들이 창세기 6:2을 “믿지 못해” 얼마나 난해하게 생각하는가를 알 수 있다. 한국 교회의 교인들이 많이 보는 &lt;톰슨주석성경&gt;은 창세기 6:2의 “하나님의 아들들”에 관해 다음과 같이 “난해한” 주석을 했다. 「논란이 많은 본 구절에 대한 견해를 대별하면 다음과 같다. 1 귀족의 자녀들과 천인의 딸들이라는 유대 랍비들의 전통적 견해 2 성경의 대체적 용례(욥 1:6; 2:1; 38:7, 단 3:25)와 대구적 표현이라는 점을 들어 천사들과 인간의 딸들이라는 견해 3 셋 계통의 경건한 자녀들과 카인 계통의 불경건한 자들이라고 보는 견해 등이다. 첫 번째 견해는 히브리어의 일반적 용례로 볼 때 비성경적인 주장이며, 두 번째의 견해 역시 본문이 인류의 타락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아니라 천사의 타락사가 되기 때문에 불합리하다. 따라서 언어학적 의미가 아니라 신학적 의미로 볼 때 세 번째 견해가 유력하다.」 즉 창세기 6:2의 “하나님의 아들들”은 “셋 계통의 경건한 자녀들”이라는 것이 &lt;톰슨주석성경&gt;의 설명이다.<br/><br/>한국 교회에서 애독하는 &lt;오픈성경&gt;도 창세기 6:2의 해석에 있어서 &lt;톰슨주석성경&gt;과 대동소이하다. 「이 구절은 난해구절에 속한다. 주석가들의 견해도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 견해는 유대의 외경과 초대 교부들의 기록에서 유추한 것으로 하나님의 아들들을 타락한 천사들이라고 해석하는 것이다. 유다서 6-7절이 아마 이 사건을 언급하고 있는 듯하다. 성경 여러 곳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이란 말을 천사들에게만 적용하고 있다(욥 1장; 38:7, 시 29:1; 89:7).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견해는 많은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오늘날의 대부분의 정통적인 주석가들은 다음과 같은 견해를 받아들인다. 하나님의 아들들은 경건한 셋의 계통이요, 사람의 딸들은 카인의 계통으로 본다.」<br/><br/>자, 믿음 없는 자들의 주석 따위는 옆으로 치워 버리고 “성경이 무엇이라고 말씀하는지”를 보도록 하자. 성경에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면 인간이 지어낸 “거짓말”이기 때문이다. “거짓말”을 진리로 알고 공부하는 것은 비극이다. <br/><br/>우선 창세기 6:2의 “하나님의 아들들”을 “셋의 경건한 자녀들”이라고 한 자들은 “아담이 타락했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다. 구약성경은 그 어떤 경건한 혈통의 인간일지라도 그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길은 하나님의 형상이신(히 1:3, 골 1:15, 고후 4:4)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해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구든지 그를 영접한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즉 그의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니라』(요 1:12). 이것이 성경에서 가르치는, “인간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길”이다. 성경은 아담의 타락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고 영이 죽은(엡 2:1) 채로 아담의 형상을 따라 태어나는(창 5:1-3) 인간에게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시지 않는다. 아무도 거듭나기 전에는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가 없고, 또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릴 수도 없기 때문이다.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셔서 우리로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불리게 하셨는가.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하나니, 이는 세상이 그분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라. 사랑하는 자들아, 이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우리가 어떻게 될 것인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이 되리라는 것을 아노니, 이는 우리가 그분 그대로 그분을 볼 것이기 때문이라』(요일 3:1,2). 이 구절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불리는 『우리』는 “거듭난 그리스도인들”(빌 2:15)이다. 만일 “셋 계통의 경건한 자녀들”(하나님의 아들들)과 “카인 계통의 불경건한 자들”(사람들의 딸들)이 결합하여 “거인들”이 태어났다면, 오늘날도 하나님의 아들들인 “경건한 그리스도인”과 “불경건한 죄인들”이 결합하면 “거인들”이 태어나야 한다는 논리인데, 이런 것을 진리라고 받아먹는 사람들은 얼마나 한심한 것인가? 『속지 말라, 하나님은 우롱당하지 아니하시느니라』(갈 6:7).<br/><br/>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욥 1:6; 2:1; 38:7)은 “천사들”을 지칭하는 표현이다. 따라서 문제의 “창세기 6:2”은 이 『하나님의 아들들』이 땅에 내려와 인류를 타락시킨 그 범죄가 노아의 홍수를 유발시킨 주요 원인이었음을 보여 준다. 그래서 이 “천사들”을 가리켜 베드로후서 2:4은 『죄를 지은 천사들』이라 하고, 유다서 1:6은 『자기들의 처음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신들의 처소를 떠난 천사들』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들이 떠난 『자신들의 처소』는 “셋째 하늘”이었으며, 그들은 사람들의 딸들을 아내로 삼기 위해서 천사적 본성을 인간적 본성과 바꿔 버렸다. 바로 이들이 시편 82:1에서 『신들』이라고 불리는 자들이며, 같은 시편의 6절에서 『지극히 높으신 분의 자손들』이라고 불린다. 말하자면 그들은 『지극히 높으신 분의』 곧 『하나님의』, 『자손들』 곧 『아들들』인 것인데, 이 『하나님의 아들들』은 셋째 하늘을 떠나 땅에 내려와 육체가 되었기에 사람들의 딸들과 결합할 수 있었다. <br/><br/>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천사들이 생식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성경에서 천사들은 “날개가 없는 남성”으로 등장하며(계 21:17, 갈 4:14, 행 1:10, 판 13:3-21, 창 19:1-15), 그들이 땅에 내려와 피를 취해 먹고 사람과 같이 됨으로써 사람들의 딸들과 생식했다. 이브가 “금지된”(창 2:17, 레 17:14, 민 6:3,4) 나무의 열매(포도 열매)를 “먹고” 『포도의 순수한 피』(신 32:14)의 영향을 받아 “물 순환 체계에서 피 순환 체계로 바뀐”(cf. 출 4:9, 요 2:7-9) 육체가 되었듯이, 천사들도 “피”를 취해 “먹으면” 육체가 되어 생식할 수 있다. 바로 이 타락한 천사들이 사람들의 딸들에게로 들어가 “거인들”을 낳았던 것이다(창 6:4). 타락한 천사들의 음행으로 창조 질서가 파괴되자(창 6:1-7), 하나님께서는 대홍수를 일으켜 쓸어 버리셨다. 시편 82:7에서 6절의 『지극히 높으신 분의 자손들』에게 『너희가 사람들처럼 죽게 될 것이며 통치자들 중의 하나같이 쓰러지리라.』라고 하신 것은, 그 『하나님의 아들들』이 천사적 본성을 버리고 『사람들처럼』 육체가 되었기 때문이다. 육체가 된 그들은 대홍수의 물에 빠져 죽었으며, 그 뒤 영원한 사슬에 묶여 큰 날의 “백보좌” 심판 때까지 흑암 속에 갇혀 있다(유 1:6). 신약 교회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여 『하나님의 아들들』의 자리를 채우게 된 그리스도인들은 장차 큰 백보좌 심판 때 그 타락한 천 사들을 심판할 것이다. 『너희는 우리가 천사들을 심판하리라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전 6:3) 이처럼 성경은 비뚤어진 것이나 왜곡된 것이 전혀 없기에 “믿음”으로 다가서면 해석이 쉽고 정확해지며, 그것을 깨닫는 사람에게는 알기 쉬운 진리가 된다(잠 8:8,9).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믿음”이다. BB]]></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Mon, 25 Aug 2025 17:24:11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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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히브리서 6:4-6의 “구원을 잃어버린 사람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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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CDATA[성경을 읽다 보면 깨닫기 어려운 구절들을 만나게 된다. 이러한 경험이 없다면, 성경을 진지하게 읽어 본 적이 없는 것이다. 특히 일반적으로 알려진 신약의 구원 교리와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 구절들을 접하면, 내가 믿고 있는 것이 옳은지 의심이 들기까지 한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존재들이 등장하면 “설마 이런 것이 있겠어?”라는 의문을 나타내기도 한다. 그렇기에 성경을 모순으로 가득한 책이나 신화를 담아 놓은 책으로 치부함으로써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아무런 유익도 얻지 못하는 것이다.<br/><br/>말하자면 성경에는 정말 어려운 구절들이 있지만, 읽는 이의 편견이나 선입견 때문에 난해하게 여겨지는 구절들도 있다.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을 한갓 흙으로 지음받은 피조물이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 아닌가.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주님께서 떠나가신 후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을 보내시어 우리를 “모든 진리”로 인도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요 16:13). 그뿐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의 지식”에 이르기를 원하시기에(딤전 2:4),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면 당연히 성령님의 조명을 받아 성경의 난해한 구절들을 깨닫는 특혜를 누릴 수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오직 “믿음”을 통해서만 사용할 수 있는 지당한 권리이다. 『믿음으로 우리는 세상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것을 깨닫나니 보이는 것들은 나타나는 것들로 된 것이 아니니라』(히 11:3).<br/><br/>자, 그럼 질문을 하나 하겠다. “지옥에 갈 죄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답은 그리 어렵지 않게도 “구원”이다. 성경을 읽다가 교회 시대의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과 상반된 말씀을 만나면 어리둥절하다 못해 당혹스럽고 두렵기까지 하다. “나는 이제껏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구원받는 줄 알았는데 이 구절은 그렇지 않다고 말씀하네?”라면서 마음이 심히 불편하고 복잡해지는 것이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히브리서 6:4-6”인데, 한번 세심하게 읽어 보도록 하라. 『한 번 깨우침을 받고 하늘의 선물을 맛보며, 성령의 동참자가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오는 세상의 능력을 맛본 자들이 만약 떨어져 나간다면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시킬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아 공개적으로 조롱함이라』(히 6:4-6). <br/><br/>자, 어떤가? “아니, 성령의 동참자가 된 구원받은 성도가 만일 떨어져 나간다면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시킬 수 없다고? 그러면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얘기 아닌가?”라는 생각이 절로 들지 않는가? 이어지는 히브리서 6:7,8은 더욱 적나라해서 본문의 “떨어져 나간 사람들”의 마지막이 “불사름”이 된다고까지 경고한다. 『이는 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 가는 자들에게 적합한 농작물을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으나, 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워서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기 때문이라.』 <br/>이처럼 한 번 구원받은 사람이 믿음에서 떨어져 나가면 불살라진다는 말씀은 많은 성도들을 구원 상실 가능성의 두려움으로 내몰았고, “믿음 없는” 학자들로 하여금 다음과 같은 “합리적인 해석”을 내놓게 했다. <br/><br/>“여기 타락은 일시적 범죄 정도가 아니라 배교하는 것을 가리킨다. 즉 강력한 성령의 외적 역사를 체험하고도 겉으로만 신앙고백을 하다가 끝내 내적으로 중생하지 않고 아예 고의로 진리를 거슬러 사탄의 무리에 속한 자들을 가리킨다”(톰슨Ⅱ 주석성경). “타락한 자들은 4,5절과 같은 은혜를 맛보고도 그리스도의 신적 사역을 믿지 않았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거부한 것이다”(오픈성경). “4,5절로 보아 이들은 분명히 하나님의 언약의 축복도 맛보고 어두움에서 빛으로 돌아서겠다고 고백도 하였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공공연하게 그리스도를 최종적으로 거부할 위험이 있었고, 만약 그럴 경우 그것은 그들이 거듭나지 못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NIV 주석성경). “히브리서 6:4,5은 구원받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구원받은 사람들 중에는 승리하지 못하고 패배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예를 들면 롯). 승리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은 7년 대환란의 후 3년 반을 적그리스도가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으로 가장하여 통치하기 직전에 휴거될 것이나 패배하는 사람들은 3년 반의 환란을 통해 정금같이 성화되어 나올 것이다. 다시 회개시킬 수 없다는 말은 그들은 이미 구원받은 자들이므로 회개하고 믿은 이상 다시 회개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 구절은 구원받은 사람 중 거룩한 삶을 살지 못하는 사람에게 해당되는 구절이며, 8절의 불사름은 지옥 불에서 형벌받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일한 것이 불타 버린다(고전 3:12-15)는 뜻이다”(윗트니리스리의 회복역성경).<br/><br/>보다시피 성경 해석이 모두 다 “자기 합리화” 수준이다. 히브리서 6:4-6은 단순한 “배교”에 관한 말씀이라든지, “그리스도의 신성을 거부한 타락한 사람들”의 이야기라든지, “원래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에 관한 말씀이라든지, “이미 회개하고 믿었기에 구원과 관련된 회개가 불가능한, 지옥에는 절대 가지 않으나 그들의 일한 것이 불타 버릴 구원받은 사람들”에 관한 구절이라고 해석하는 것이다.<br/><br/>하지만 그뿐이 아니다. 어떤 이들은 한걸음 더 나아가 본문의 “떨어져 나간 사람들”이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이지만 말씀을 지키며 끝까지 견디지 못했기에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떨어져 나가 구원을 잃어버리게 된 것이라며 단도직입적으로 “행위 구원”을 가르친다. 다른 부류는 히브리서 본문은 “가상의 상황”일 뿐이고, “‘만일’ 구원받은 사람이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면 그가 ‘다시’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것이 본문의 뜻인데, 그런 가상의 상황은 실제로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라고 가르친다. 이외에도 “그들은 ‘거의’ 구원받았을 뿐 ‘완전히’ 구원받은 것은 아니다,” “성령님과 어느 정도 협력은 했지만 실제로 구원받은 것은 아니다,” “겉으로만 신앙고백을 하면서 성령의 역사를 체험한 사람들로, 구원받은 사람들이 아니다” 등등 참으로 “사공이 많으니 배가 산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이 정도면 히브리서 본문에 관한 해석은 혼란의 도가니 그 자체이다. 무지한 그리스도인들에게서 구원의 영원한 보장에 관한 확신을 앗아가기에 충분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그토록 얼토당토않은 해석들로 배교한 기독교계를 구원 상실 가능성의 어둠으로 뒤덮어 버렸을까? 이유는 단 한 가지. 그들 자신이 읽고 있던 말씀들을 믿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그들은 영원히 멸망하지 않을 것이며, 또 아무도 나의 손에서 그들을 빼앗지 못할 것이니라. 그들을 나에게 주신 나의 아버지는 만유보다 더 위대하시니, 아무도 나의 아버지 손에서 그들을 빼앗아 갈 수 없느니라』(요 10:28,29).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현재의 일들이나 다가올 일들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어떤 다른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떼어 놓을 수 없으리라』(롬 8:38,39).<br/><br/>히브리서는 “교회 시대”에서 “대환란”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적인 책이다. 그 기록 대상은 재림 직전의 “히브리인들”로서, 그들은 『내가 또 한 번 땅뿐만 아니라 하늘까지도 뒤흔들리라.』(히 12:26)라는 “재림”의 말씀처럼 땅과 하늘을 뒤흔들고 민족들을 진동시키면서 오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학 2:6,7)과, 바로 그 주님께서 가져오실 『흔들릴 수 없는 왕국』(히 12:28), 곧 (초림 때 거부당하여 2천 년 뒤로 연기된) 『천국』(마 3:2)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인데, 문제의 히브리서 6:4-6은 그 “대환란 때의 히브리인들”이 “믿음과 행위”의 체계로 구원받게 됨을 말씀하고 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나서 율법의 “행위”로 끝까지 견뎌야 구원받는 대환란 시대의 교리를 다루고 있는 것이며, 요한계시록의 “대환란 구절들”이 그 점을 단단하게 지지해 주고 있다. 『그러자 그 용이 여인에게 분노하여 여인의 씨 가운데 남은 자들, 즉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키며[행위]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를 가진[믿음] 자들과 싸우려고 나가더라』(계 12:17). 『여기에 성도들의 인내가 있으며 여기에 하나님의 계명들[행위]과 예수의 믿음[믿음]을 지키는 자들이 있느니라』(계 14:12). 『그들이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행위]와 어린양의 노래[믿음]를 부르며 말하기를 “전능하신 주 하나님, 주의 행하신 일이 위대하고 놀라우니, 성도들의 왕이여, 주의 길은 의롭고도 진실하나이다』(계 15:3). <br/><br/>말하자면 현 교회 시대는 교회가 휴거될 때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속죄를 근거로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지만(엡 1:7; 2:8,9), 마태복음 24장의 『대환란』(마 24:21) 때는 끝까지 견뎌야만 구원을 받는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이는 그때에 대환란이 있으리니』(마 24:13,21). 대환란 때의 히브리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뿐만 아니라, 율법을 지키며 끝까지 견뎌야만(행위!) 구원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즉 대환란 때는 “한 번 깨우침을 받고 하늘의 선물을 맛보며, 성령의 동참자가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오는 세상의 능력을 맛보았다 할지라도” 짐승의 표를 받고 짐승에게 경배하면 구원을 상실하고 지옥에서 영원토록 불살라지는 것이다. 그 두려운 『불사름』(히 6:8)을 요한계시록 14:11은 『그 고통의 연기가 영원무궁토록 올라가리라.』라고 표현한다. BB]]></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Thu, 27 Feb 2025 17:17:07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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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왕을 요구한 백성을 정죄하신 하나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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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CDATA[질문<br/><br/>신명기 17장에서 왕의 제도에 관해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도리어 왕을 요구한 백성들을 정죄하셨는데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br/><br/>답변<br/><br/>문의하신 내용은 선지자 사무엘이 늙었을 때 그의 아들들을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재판관들로 삼으면서 비롯된 일입니다. 사무엘의 맏아들 요엘과 둘째 아들 아비야가 브엘세바에서 재판관이 되었을 때 그들이 아버지 사무엘의 법도대로 행하지 않고 돌이켜 이익을 따라 뇌물을 취하며 잘못된 재판을 함으로써 백성들의 불만이 증폭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모든 장로들이 모여 라마에 이르러 사무엘에게 와서 그에게 말하기를 “보소서, 당신은 늙고 당신의 아들들은 당신의 법도대로 행하지 아니하니, 이제 모든 민족들처럼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재판하게 하소서.” 하더라. 그러나 그들이 “우리를 재판할 왕을 우리에게 주소서.”라고 말한 그 일이 사무엘을 불쾌하게 한지라, 사무엘이 주께 기도하였더니 주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시기를 “백성이 네게 말하는 모든 일에 있어서 그들의 음성에 경청하라. 그들이 너를 거역함이 아니요, 나를 거역하여 나로 그들을 다스리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라. 내가 그들을 이집트에서 인도하여 낸 그 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행한 모든 일, 즉 그들이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던 것대로 네게도 그렇게 행하는도다. 그러므로 이제 그들의 음성에 경청하라. 그러나 아직은 그들에게 엄숙히 경고하고, 그들을 치리할 왕의 제도를 그들로 알게 하라.”고 하시니라』(삼상 8:4-9).<br/><br/>하나님께서 왕을 요구하는 백성들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신 점은, 질문자의 질문대로 신명기 17장의 말씀과 정반대가 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네가 주 너의 하나님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서 그 땅을 차지하고 그곳에 거하며 말하기를 “나도 내 주위에 있는 모든 민족같이 내 위에 왕을 세우리라.” 하거든 너는 반드시 주 너의 하나님께서 선정하실 사람을 네 위에 왕으로 세울 것이며 너는 네 형제들 가운데서 한 사람을 네 위에 왕으로 세울 것이니 네 형제가 아닌 타국인을 네 위에 세우지 말지니라』(신 17:14,15). 이 신명기의 말씀에 따르면,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의 요구를 미리 아시고서 왕을 세우실 것을 계획하고 계셨습니다. 심지어 백성들이 할 말까지도 미리 말씀하셨는데(『나도 내 주위에 있는 모든 민족같이 내 위에 왕을 세우리라.』 - 신 17:14), 이것은 사무엘 당시에 이스라엘의 모든 장로들이 라마에 있는 그에게 와서 했던 『보소서, 당신은 늙고 당신의 아들들은 당신의 법도대로 행하지 아니하니, 이제 모든 민족들처럼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재판하게 하소서.』(삼상 8:5)라는 말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그렇다면 왕을 구하는 백성들의 요구에는 아무런 잘못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데, 문제가 무엇이었을까요? <br/><br/>첫째, 백성들이 왕을 요구하는 “의도”가 잘못되어 있었습니다. 백성들은 실제로 왕이 필요했다기보다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다스리시는 것이 싫었습니다. 때마침 사무엘의 아들들의 비리가 빌미가 되어 왕을 요구한 것인데, 그 속내는 다른 곳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과거 출애굽 당시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김으로 하나님의 다스림에서 벗어나려 했듯이, 지금 또한 “하나님을 버리고” 인간 왕을 택함으로써 “하나님께서 그들을 다스리지 못하게” 하려고 했습니다. 이 점을 하나님께서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셨습니다. 『백성이 네게 말하는 모든 일에 있어서 그들의 음성에 경청하라. 그들이 너를 거역함이 아니요, 나를 거역하여 나로 그들을 다스리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라. 내가 그들을 이집트에서 인도하여 낸 그 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행한 모든 일, 즉 그들이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던 것대로 네게도 그렇게 행하는도다』(삼상 8:7,8). 이러한 죄에 대한 관점이 미스페에서 사울을 왕으로 선정할 때 다시 한번 더 강조됩니다. 『그때 사무엘이 백성들을 모두 주께로 불러 미스페에 모아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이스라엘의 주 하나님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인도하여 이집트인의 손과 모든 왕국들의 손과 너희를 압제하였던 자들로부터 너희를 구해 내었느니라.’ 하셨으나 너희는 너희의 모든 대적과 환난에서 친히 너희를 구원하신 너희 하나님을 오늘날 거절하고, 그분께 말하기를 ‘아니니이다. 우리를 다스릴 왕을 세우소서.’ 하였도다. 그러므로 이제 너희 지파 별로 천 명씩 주 앞에 나아오라.” 하더라』(삼상 10:17-19).<br/><br/>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을 요구한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직접적인 통치를 싫어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통치보다 인간 왕에 의한 통치가 더 낫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 민족이 보여 왔던 악한 습성대로 이방인들과 같이 되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제 모든 민족들처럼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재판하게 하소서』(삼상 8:5). “이제 모든 민족들처럼,” “이제 모든 민족들처럼,” 이 말이 귓전에 메아리치지 않습니까? 그들은 이방 민족들처럼 되고자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이방 민족들로부터 구별해 놓으셨고 율법을 지키는 독특하고 거룩한 민족으로 부르셨건만(출 19:4-6) 안타깝게도 주님의 백성은 그 점에 정말로 아무런 관심도 없었습니다. <br/><br/>둘째,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 위에 왕을 세우는 일에 있어서 주님을 찾지 않고 인간 사무엘을 찾아갔습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장로들이 라마에 있는 사무엘에게로 몰려가 요구했던 것은 그들이 당면한 문제에 대한 주님의 뜻을 묻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백성들이 왕을 세우고 싶어 하는데 주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를 묻지 않고 사무엘에게 직접 왕을 세워 달라고 요구한 것입니다. 『보소서, 당신은 늙고 당신의 아들들은 당신의 법도대로 행하지 아니하니, 이제 모든 민족들처럼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재판하게 하소서』(삼상 8:5). 사무엘에게 무슨 권한이 있습니까? 그는 다만 주님의 뜻을 전달하는 선지자에 불과합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장로들이 그와 같은 요구를 했다는 것은, 그들 가운데 단 한 사람도 하나님 앞에서 깨어 있지 않았다는 점을 보여 주며, 그들 가운데 단 한 사람도 율법에 관심이 없었다는 점을 보여 줍니다. 왜냐하면 율법의 말씀은, 인간이 선정할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선정하실 사람”을 백성 위에 왕으로 세우라고 명령하기 때문입니다. 『너는 반드시 주 너의 하나님께서 선정하실 사람을 네 위에 왕으로 세울 것이며 너는 네 형제들 가운데서 한 사람을 네 위에 왕으로 세울 것이니 네 형제가 아닌 타국인을 네 위에 세우지 말지니라』(신 17:15). <br/><br/>왕을 요구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께서 정죄하신 이유는 위와 같습니다. 그들은 사무엘의 아들들이 문제를 일으킨다고 해서 다짜고짜 인간 왕부터 요구할 일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 아들들의 문제를 그들의 아버지요 선지자요 재판관인 사무엘에게로 가져갔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본질은 뒷전에 두고 모든 장로들이 우르르 몰려가 기회는 이때다 싶은 것처럼 왕부터 요구했다는 점은, 그들이 평소에 품고 있던 하나님의 통치에 대한 불만이 사무엘의 아들들의 문제를 계기로 수면 위로 올라왔음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께 숨길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그들의 죄가 그들을 찾아내었다는(민 32:23) 점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BB]]></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Fri, 03 Jan 2025 08:24:33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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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참으로 입다의 딸은 번제로 바쳐졌는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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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CDATA[질문<br/><br/>성경에는 재판관 입다가 자신의 처녀 딸을 하나님께 번제로 바쳤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것이 참으로 사실인지 궁금합니다. <br/><br/><br/>답변<br/><br/>문의하신 내용은 재판관 입다가 암몬 자손을 대항하여 전쟁을 하러 나갈 때 드린 서원과 관련이 있습니다. 관계된 말씀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때 주의 영이 입다에게 임하시니 입다가 길르앗과 므낫세를 지나고, 길르앗의 미스페를 지나서, 길르앗의 미스페로부터 암몬 자손에게로 나아가니라. 입다가 주께 한 가지 서원을 하여 말하기를 “만일 주께서 틀림없이 암몬 자손을 내 손에 넘겨주시면 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에 나를 맞이하러 내 집 문에서 나오는 것은 무엇이든지 반드시 주의 것이 되리니 내가 그것을 번제로 바치리이다.” 하더라』(판 11:29-31). 이후로 입다는 주님께서 그에게 넘겨주신 암몬 자손과 싸워 그들을 이겼고, 아로엘에서부터 그들을 쳐서 민닛에 이르기까지 성읍 이십 개와 포도원들의 평지까지 큰 살육을 행합니다. 그리하여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 자손 앞에 항복하게 되었는데, 문제는 입다가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돌아왔을 때 벌어집니다. 『입다가 미스페로 그의 집에 오니, 보라, 그의 딸이 탬버린과 춤으로 그를 맞이하러 나오니 그녀는 그의 외동딸로 그에게 그 딸 외에는 아들이나 딸이 없더라. 그가 그녀를 보고 그의 옷을 찢으며 말하기를 “슬프다, 내 딸이여! 너는 나를 비참하게 하였으며, 너는 나를 괴롭히는 사람 중에 하나로다. 이는 내가 주께 입을 열었으니 돌이킬 수 없음이라.” 하니』(판 11:34,35).<br/><br/>이와 같은 입다의 난처한 상황에 대해서 해석은 둘로 나누어집니다. <br/>첫 번째 해석은 재판관 입다의 딸이 “처녀”로서 평생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 해석에 대한 근거로는 입다의 딸이 “자신의 처녀됨”을 애곡했다는 말씀을 듭니다. 『그녀가 자기의 아비에게 말하기를 “나를 위하여 이 일을 해주소서. 나를 두 달간만 홀로 두소서. 나와 내 동무들이 산을 오르내리며 나의 처녀됨을 애곡하리이다.” 하니 입다가 말하기를 “가라.” 하고 그가 그녀를 두 달간 보내니 그녀가 동료들과 함께 가서 산 위에서 그녀의 처녀됨을 애곡하더라』(판 11:37,38).<br/><br/>두 번째 해석은 입다가 “실제로” 자기 딸을 번제로 바쳤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근거는 『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에 나를 맞이하러 내 집 문에서 나오는 것은 무엇이든지 반드시 주의 것이 되리니 내가 그것을 번제로 바치리이다.』(판 11:31)라는 말씀과 『내가 주께 입을 열었으니 돌이킬 수 없음이라.』(판 11:35)라는 말씀에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입다의 서원이 어떻게 지켜졌는가를 “문자적으로” 깨달을 수 있습니다. 입다는 누군가를 “번제로 바치겠다”고 말한 서원을 “주께 입을 열었기 때문에 돌이킬 수 없다”고 한 것입니다. 입다의 딸 역시 『나의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주께 입을 여셨으면 아버지의 입에서 내신 대로 내게 행하소서.』(판 11:36)라고 했습니다. 이로써 입다는 자신의 처녀 딸이 두 달 동안 애곡한 후 『그가 서원한 그의 서원대로 그녀에게 행했』습니다(판 11:39). 즉 그녀를 주님께 “번제”(판 11:31)로 바쳤던 것입니다. <br/><br/>성경은 인신제사가 주님께 가증한 일이라고 여러 구절에서 말씀합니다. 『너는 네 씨 중의 누구도 몰렉에게 주어 불을 통과하게 하지 말 것이며 너는 너희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도 말지니라. 나는 주니라』(레 18:21). 『너는 주 너의 하나님께 그렇게 행하지 말지니라. 그들은 그분께서 미워하시는 주께 가증한 모든 일을 자기들의 신들에게 행하였으니, 심지어 자기들의 아들들과 딸들을 불에 태워 자기들의 신들에게 바쳤느니라』(신 12:31). 하나님께서는 자기 씨를 몰렉에게 바친 자를 반드시 죽이라고 하셨고(레 20:2-5), 그런 자들은 이스라엘 가운데서 보이지도 않게 하라고 하셨습니다(신 18:10,11). 심지어는 인신제사를 명령하지도 않았고 마음에 두신 적도 없다고 성경에 세 번이나 말씀하셨습니다. 『또 그들은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에 토펫의 높은 곳들을 지어 그들의 아들들과 딸들을 불태웠으니 그것은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것도 내 마음에 둔 것도 아니니라』(렘 7:31). 『그들은 또 바알의 산당들을 지어 자기들의 아들들을 바알에게 번제물로 주어 불로 사르게 하였으니 그것은 내가 명령한 것도, 말한 것도 아니며 내 마음에 둔 것도 아니니라』(렘 19:5). 『또 그들은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에 바알의 산당들을 지어서 그들의 아들들과 딸들을 몰렉에게로 불을 통과하게 하였느니라. 이것은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것도 아니요, 내 마음에 둔 것도 아니니 그들이 이 가증함을 행하여 유다로 죄를 짓게 한 것이라』(렘 32:35).<br/><br/>그렇다면 “입다의 문제”는 무엇이었을까요? 물론 입다는 자기 집에서 짐승이 나올 줄로 생각하고 그것을 번제로 바치겠다고 서원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누가 집에서 나올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결과를 고려하지도 않고 “하나님께” 경솔히 서원한 것이 입다의 첫 번째 문제였습니다. 『너는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하나님 앞에서 마음이 조급하게 되어 말을 내지 말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이라. 그러므로 네 말수를 거의 없게 할지어다』(전 5:2).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서원이 그대로 갚아질 것을 기대하는 분이시기 때문에 입다는 그의 서원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네가 하나님께 서원하면 갚는 것을 미루지 말라. 그는 어리석은 자들을 기뻐하지 않으시나니 네가 서원한 것을 갚으라』(전 5:4). 그렇다면 입다는 참으로 자기 딸을 번제로 바쳐야 했을까요?<br/><br/>입다의 두 번째 문제는 그의 잘못된 서원을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이 “율법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기 딸을 번제로 바치고 말았다는 데 있습니다. 레위기 5장에 따르면, 입다는 그의 서원을 이행할 경우 죄가 된다는 점을 자백한 후 속죄제물을 가져와서 잘못된 서원을 되돌릴 수도 있었습니다. 『또한 어떤 사람이 자기 입술로 악을 행하거나 선을 행하리라고 공언하여 맹세하였으면 그 사람이 맹세로 공언한 것이 어떤 것일지라도, 그리고 그것이 그로부터 감추어져 있을지라도, 그가 그것을 알게 되면 이것들 중 하나에 그는 죄가 있느니라. 그것들 중 하나가 그에게 죄가 될 때 그는 그 일에 죄를 지었다고 자백해야 할 것이요 그가 지은 자기 죄를 위하여 그는 주께 속건제물을 가져와야 하리니, 양떼나 염소떼에서 암컷으로 어린양이나 염소 새끼를 속죄제물로 드릴지니 제사장은 그의 죄에 관해 그를 위하여 속죄할지니라. 만일 그가 어린양을 가져올 형편이 못 되면 그때는 자기가 범한 허물을 인하여 산비둘기 두 마리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를 주께 가져와서, 하나는 속죄제물로 또 하나는 번제물로 삼을 것이라』(레 5:4-7). <br/><br/>입다는 성경을 공부하지 않았기에 말씀에 무지했던 것입니다(시 119:11). 입다가 위의 레위기 말씀만 알았어도 자신의 처녀 딸을 번제로 바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참으로 재판관기 시대는 율법책을 공부하는 사람이 없었고, 다만 “사람마다 자기 눈에 옳은 대로 행하는” 시대였습니다(판 17:6; 21:25). 성경 지식의 부족은 멸망을 가져옵니다(호 4:6). 성경의 진리를 안다면 해결될 문제를 무지 가운데 끌어안고 사는 일이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없어야겠습니다. BB]]></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Tue, 29 Oct 2024 12:57:10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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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요한일서 5:5-8의 “물과 피로 오신 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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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CDATA[『5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 외에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6 이분은 물과 피로 오신 분,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이 아니라 물과 피로니라. 증거하시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이시기 때문이라. 7 이는 하늘에서 증거하시는 이가 세 분이시니,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이시요, 이 세 분은 하나이심이라. 8 또 땅에서 증거하는 것도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요, 이 셋은 하나 안에서 일치하느니라』(요일 5:5-8).<br/><br/>요한일서의 이 말씀은 성경에서 삼위일체를 증거하는 가장 강력한 구절이다. 『이는 하늘에서 증거하시는 이가 세 분이시니,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이시요, 이 세 분은 하나이심이라.』는 7절 말씀은 삼위일체의 위대한 교리를 그 누구도 변명하지 못하게 증거한다.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이 말씀을 진실로 사랑하며 말씀 그대로 하나님께서 삼위일체이심을 믿고 증거한다.<br/><br/>그러나 7절은 신실한 성도들에게 사랑받는 만큼 진리의 대적들에게 증오를 받는 구절이기도 하다. 변개된 성경들에서는 삼위일체의 교리를 믿지 못하는 자들에 의해 7절이 삭제되고 6절의 뒷부분, 곧 『증거하시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이시기 때문이라.』에 해당하는 부분이 교묘히 7절의 자리에 넣어져 있다. 그렇게 되면 표면상으로는 삭제된 부분이 없이 6절에서 7,8절로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이것은 마귀의 속임수라고밖에는 달리 표현할 방도가 없다. 한국 교회에서 사용하는 한글개역성경이 그 속임수를 잘 보여 주고 있다. “6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자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7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8. 증거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이 합하여 하나이니라.” 이런 눈속임은 한글개역성경뿐 아니라 모든 변개된 성경들에서 유사하거나 동일하게 나타난다.<br/><br/>변개된 성경들에는 본문 7절이 완전히 삭제되어 있다. 삭제된 7절을 문맥적으로 살펴보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물과 피로 오신 분이라는 것을 하늘에 계신 삼위일체 하나님, 곧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께서 증거하신다는 것이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증거하신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물과 피로 오셨다는 것은 결코 부인되어서는 안 되는 진리가 아니겠는가?<br/><br/>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셋째 하늘에서 증거하시는 이 “물”과 “피”에 관한 진리는 그만큼 기독 신앙의 핵심적인 교리를 담고 있음이 분명하다. 일반적으로 “물”은 침례(세례)로, “피”는 십자가에서 흘려진 피로 가르치지만, 그것은 성경을 알지 못하는 이들이 자기편의적으로 내린 그릇된 해석일 뿐이다.<br/><br/>예수 그리스도께서 “물”로 오셨다는 것은 그분의 육신적 출생을 말한다. 요한복음 3:5에서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에게 말하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고 하셨을 때, 주님은 곧바로 6절에서 물로 태어나는 것이 육신으로 태어나는 것임을 설명해 주셨다. 『육신으로 난 것은 육이요, 또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라.』 따라서 주님이 물로 오셨다는 것은 그분의 “인간으로서의 본성,” 곧 “인성”을 말씀한 것이다.<br/><br/>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로 오셨다는 말씀은 그 피가 “누구의 피”인가로 해석되어야 한다. 사도행전 20:28은 그 피가 “하나님의 피”라고 말씀한다. 『그러므로 너희 자신을 조심하고 모든 양떼에게도 그리하라. 이들을 위하여 성령께서는 너희를 감독자들로 세우셨으며 하나님께서 자신의 피로 사신 하나님의 교회를 돌보게 하셨느니라.』 따라서 주님이 피로 오셨다는 것은 그분의 “하나님으로서의 본성,” 곧 “신성”을 말씀한 것이다.<br/><br/>지금으로부터 약 2천 년 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완벽한 사람으로서, 또 완벽한 하나님으로서 이 땅을 거니셨다. 주님께서 이 땅에서 최초로 행하신 공개적인 기적은 갈릴리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 “물”을 “피”를 상징하는(신 32:14) 포도주로 바꾸신 일이었다(요 2:7-9). 그것은 『그들에게 포도주가 없다.』(요 2:3)는 마리아의 말에 『여인이여, 내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나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4절)라고 하신 후 행하신 기적이었다. 여기서 『나의 때』란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실 때를 의미했다. 마리아가 “포도주”를 말했을 때 주님은 그것을 “피”로 받아들였고, 자신의 피흘리는 죽음으로 해석하신 것이다. 혼인 잔치에 포도주가 오가며 모두들 흥에 겨워할 때, 물과 피로 오신 분의 마음에는 그로부터 3년 반 뒤 자신이 십자가에서 흘려야 할 “피”만이 가득했던 것이다. “포도주”라고 하자 자동반사적으로 “피”가 떠올랐고, 자신이 지실 십자가를 생각하셨다. 물과 피로 오신 주님은 “하나님의 피”를 흘려 온 인류의 죄를 제거하셔야 한다는 사명을 결코 잊지 않으셨다. 시끌벅적한 잔칫집의 죄인들을 바라보셨을 때 그들을 불쌍히 여기며 그들을 위해 지셔야 할 십자가를 생각하셨을 것이다. 『그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즉 그들에게는 “주님의 피”가 없었다. 죄로 멸망할 그들은 “하나님의 피”가 필요했다.<br/><br/>성경은 하늘의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께서 물과 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시고, 『또 땅에서 증거하는 것도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요, 이 셋은 하나 안에서 일치하느니라.』(요일 5:8)고 말씀한다. 성령께서는 하늘에서도 증거하시고 땅에서도 증거하신다. 성령께서 땅에서 증거하시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이다. 『그러나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위로자,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가 나에 관하여 증거하시리라』(요 15:26). 성령께서 증거하시는 것은 인간 예수가 아니다. 인성과 신성 모두를 지니신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딤전 2:5)께서 인류의 『참 하나님이시며 영원한 생명』(요일 5:20)이심을 증거하신다. BB]]></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Fri, 14 Jun 2024 11:59:10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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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요한복음 3:5-7의 “거듭남과 하나님의 나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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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CDATA[『5 예수께서 대답하시기를 &#034;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에게 말하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6 육신으로 난 것은 육이요, 또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라. 7 내가 너에게 &#039;너희는 거듭나야만 한다.&#039;고 말한 것을 이상히 여기지 말라』(요 3:5-7).<br/><br/>요한복음의 이 말씀은 &#034;거듭남&#034;에 관한 어떤 진리를 담고 있다. 이 말씀에 따르면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034;하나님의 나라&#034;와 전적으로 무관한 생을 살게 된다. 세상 나라들과의 관계 속에서만 살고 하나님의 나라와 무관하게 산다면, 그 사람은 가장 무의미하고 가장 무가치한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이다.<br/><br/>주님께서는 인간이 관심을 가져야 할 &#034;하나님의 나라&#034;를 언급하시면서 &#034;거듭남&#034;을 강조하셨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나라는 아담의 이야기에서부터 시작된다. 인류의 첫 조상 아담에게는 영적인 하나님의 나라와 물리적인 천국의 두 왕관이 있었다. 그에게는 두 왕국을 다스릴 수 있는 왕권이 주어졌는데, 그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아내 이브와 선과 악의 지식의 나무에서 나는 열매를 먹었을 때 두 왕관을 모두 상실하게 되었다.<br/><br/>아담은 그렇게 죄를 지음으로써 그의 영이 죽었고, 영적인 영역에 해당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다스릴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영적인 하나님의 나라의 왕관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되었다. 아담이 썼던 물리적이고 가시적인 천국의 왕관은 그를 패배시킨 마귀에게로 넘겨졌고, 마귀는 그때부터 물리적이고 가시적인 세상을 다스리는 왕이 되었다. 이것을 누가복음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또 마귀가 주를 높은 산으로 데리고 가서 잠깐 동안에 세상의 모든 나라들을 보여 주더라. 그리고 마귀가 주께 말하기를 &#034;내가 이 모든 권세와 그것들의 영광을 너에게 주리라. 그것이 나에게 넘겨졌으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줄 수 있느니라. 그러므로 네가 내게 경배하면, 모든 것이 너의 것이 되리라.&#034;고 하니』(눅 4:5-7). 가시적인 세상은 아담의 타락 때부터 지금까지 마귀의 통치 하에 있다.<br/><br/>그때 죄로 인해 영이 죽게 된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렸다. 그에게서 태어난 모든 인간은 그와 동일하게 영이 죽은 상태로 태어난다. 아담의 후손 가운데에는 하나님의 나라의 왕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이다. 이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사람은 이 가시적이고 물리적인 세상에서 그 통치자인 마귀의 지배를 받으며 『불순종의 자녀들 안에서 역사하는 영』(엡 2:2)을 따라 육신의 정욕들 가운데 살다가 지옥에 가게 될 뿐이다.<br/><br/>하나님께서는 아담이 타락했을 때 자신에게로 거두어들이신 그 나라를 다시 인간에게 회복시키기 위해 일하기 시작하셨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키시려고 사람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것이다. 그때 하신 말씀이 바로 요한복음 3:5이었다.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에게 말하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상실한 인간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034;물과 성령으로 태어나는 것&#034;이라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방법을 매우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셨다. 그것은 『육신으로 난 것은 육이요, 또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라.』(6절)는 말씀이다.<br/><br/>주님께서 여기서 &#034;물&#034;과 &#034;육신&#034;을 말씀하신 이유는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 3:3)는 말씀에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태어날 수 있나이까? 사람이 자기 어머니의 태에 두 번째 들어갔다가 태어날 수 있나이까?』(4절)라고 니코데모가 질문했기 때문이었다. 니코데모는 주님께서 말씀하신 &#034;거듭남&#034;을 &#034;① 어머니의 태에서 한 번 태어난 사람이 ② 어머니의 태에 다시 들어갔다가 태어나는 것&#034;으로 해석한 것인데, 주님은 ①번에 대해서는 『육신으로 난 것은 육』이라고 인정해 주신 반면, ②번에 대해서는 그것을 부인하시고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라.』고 바로잡아 주셨다(6절). 사람은 &#034;육체&#034;의 출생뿐 아니라, 그 뒤 성령으로 그의 &#034;영&#034;이 다시 태어나야 하나님의 나라와 관계 있는 생을 살게 되는데, 이 일이 각 사람에게 반드시 일어나야 한다고 주님은 강조하신 것이다. 『내가 너에게 &#039;너희는 거듭나야만 한다.&#039;고 말한 것을 이상히 여기지 말라』(요 3:7).<br/><br/>아담이 그의 영이 죽으면서 상실한 하나님의 형상은,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할 때 성령님께서 그의 죽은 영을 살려 주심으로써 회복되었고, 이로써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을 얻는 사람들이 생기게 되었다. 그들이 곧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하나님의 아들들, 즉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이다. 주님께서는 갈보리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먼저 회복하셨고, 재림하시면 물리적인 천국을 회복하실 것이다. 현 교회 시대는 마귀가 세상을 통치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된 성도들을 통해 영적인 하나님의 나라가 전파되고 있다. 주님께서 재림하시어 마귀에게 넘겨진 이 세상 나라들을 접수하시면(계 11:15), 세상은 『첫 사람 아담』이 타락하기 이전 상태로 회복되고(사 11:6-9; 35:1,2, 행 3:21), 『마지막 아담』(고전 15:45)께서 하나님의 나라와 천국의 두 왕관을 쓰시고 통치하실 것이다.<br/><br/>주님께서는 사람의 거듭남에 관해 말씀하시면서 하나님의 나라와 관련된 상이한 말씀을 하셨다.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에게 말하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 3:3).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에게 말하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 3:5). 그리스도인들은 현재 『성령 안에서 의와 화평과 기쁨』(롬 14:17)인 하나님의 나라에 영적으로 들어가 있다. 그러나 주님께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신 목적은, 하나님의 나라에 영적으로 들어갈 뿐만 아니라, 우리가 그 나라를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천년왕국에서 주님과 통치하게 되는 것이다.<br/><br/>눈에 보이는 세상 나라들에 관심을 두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를 눈으로 보게 될 그 날을 소망하라.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반드시 &#034;영&#034;이 &#034;거듭나야만&#034; 한다. 당신의 죽은 영이 성령에 의해 다시 태어나는 &#034;새로운 출생&#034;만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 주님과 영원히 통치할 수 있는 단 한 가지 길이다. 『내가 너에게 &#039;너희는 거듭나야만 한다.&#039;고 말한 것을 이상히 여기지 말라』(요 3:7). BB]]></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Fri, 14 Jun 2024 11:42:05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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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야고보서 2:24의 "믿음과 행위로 받는 구원"</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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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CDATA[『이제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이 행함으로써 의롭게 되는 것이요, 믿음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니라』(약 2:24).<br/><br/>야고보서의 이 구절은 야고보서 2:17과 함께 신약 그리스도인의 구원관에 혼선을 일으킬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와 같이 행함이 없으면 믿음만으로는 죽은 것이라』(약 2:17). 이와 같은 구절들이 혼란스러운 이유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오로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이다. 『행함이 없어도 불경건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그분을 믿는 사람에게는 그의 믿음이 의로 여겨지느니라』(롬 4:5). 『너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엡 2:8,9). 에베소서의 이 구절은 분명히 우리의 구원이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는데, 야고보서의 구절들은 행위가 없으면 믿음만으로는 죽은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br/><br/>그래서 야고보서의 그 구절들을 영적 유대인들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적용할 수 있다. 즉 &#034;이 교회 시대에는 믿음 하나로만 구원받지만, 그 믿음이 믿음 하나로만 존재하지는 않는다.&#034;는 것이다. 말하자면 참된 구원의 믿음에는 그에 걸맞는 행위가 뒤따르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034;행위가 믿음의 증거&#034;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해석은 그리스도인의 실제적인 믿음에 적용하는 데 아무런 무리가 없다. 신약성경 곳곳에서 성도다운 행위를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엡 5장, 갈 2:10; 6:9,10, 롬 12:10-21).<br/><br/>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고 명령하신다. 이 말씀에 따라 야고보서를 경륜적으로 나누어서 본다면 야고보서는 &#034;교리적으로&#034; 교회 시대를 위한 서신이 아니라 대환란 시대를 위한 것이다. 성경 66권을 각 시대별 경륜에 따라 나누어 해석해야 된다는 성경 자체의 해석 방법에 따라 야고보서 또한 그렇게 해석해야 한다. 구약 성도들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율법에 대한 행함이 있어야 의롭게 된다. 십자가 이후로 사도행전의 과도기를 거쳐 신약의 교회 시대에는 율법 없이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게 된다(갈 3:11). 교회 시대가 휴거와 더불어 끝나고 『야곱의 고난의 때』(렘 30:7)인 대환란이 시작되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에 행위가 더해져 그 믿음을 행위로 끝까지 지켜야만 구원받게 된다. 이것이 『대환란』(마 24:21)에 관하여 주님께서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마 24:13)고 하신 말씀의 의미이다.<br/><br/>대환란 때의 구원 방법에 대해서는 대환란에 대한 실제적인 묘사가 담겨 있는 요한계시록에 구체적으로 나와 있다. 『그러자 그 용이 여인에게 분노하여 여인의 씨 가운데 남은 자들, 즉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키며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를 가진 자들 과 싸우려고 나가더라』(계 12:17). 『여기에 성도들의 인내가 있으며 여기에 하나님의 계명들과 예수의 믿음을 지키는 자들 이 있느니라』(계 14:12).<br/><br/>위의 요한계시록 12:17에서 &#034;여인&#034;은 이스라엘이고, 여인의 씨 가운데 남은 자들은 144,000명의 유대인 환란성도들이다(계 7:4-8). 이들에 관해 요한계시록 14:12은 『성도들의 인내』를 말씀하고 있으며, 이것이 마태복음 24:13의 『끝까지 견디는』과 연결되는 부분이다. 이 환란성도들은 &#034;믿음&#034;(예수 그리스도의 증거)을 지니고 &#034;행위&#034;(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킴)로 끝까지 견뎌야 한다. 대환란 때의 &#034;유대인들&#034;은 짐승의 형상에게 경배하지 않고 짐승의 표를 받지 않은 채(계 14:11),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믿음) 율법을 지켜(행위) 자신의 구원을 유지해야 하는 것이다(계 14:12). 야고보서는 『널리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약 1:1), 곧 &#034;유대인들&#034;에게 쓰여졌다. 교리적으로 대환란 때의 그 유대인들에게 적용하여 읽지 않으면 구원에 관하여 교리적 혼선을 빚게 되는 것이다.<br/><br/>성경에서 모순처럼 보이는 구절들은 &#034;어느 시대&#034;의 &#034;누구&#034;를 대상으로 &#034;교리적&#034;인 적용을 할 것인가를 판단해야만 올바른 성경 지식을 얻을 수 있다. BB]]></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Fri, 14 Jun 2024 10:33:05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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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에베소서 3:18의 "그 너비와 길이와 깊이와 높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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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CDATA[『17 믿음으로 그리스도가 너희 마음속에 거하게 하시며 너희가 사랑 안에 뿌리를 내리고 터를 닦아 18 모든 성도들과 함께 그 너비와 길이와 깊이와 높이가 얼마인가를 깨달을 수 있게 해주시며 19 또 지식을 초월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너희가 하나님의 모든 충만으로 가득 차기를 구하노라』(엡 3:17-19).<br/><br/>에베소서 3:18은 『그 너비와 길이와 깊이와 높이』가 흔히 19절의 『그리스도의 사랑』의 &#034;너비와 길이와 깊이와 높이&#034;로 오인되고 있는 구절이다. 특히 17절의 『사랑』이라는 표현으로 &#034;사랑&#034;의 바탕을 깔고서 19절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이어지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지만, 사실 17절의 『사랑』은 성경에서 &#034;사랑의 장&#034;으로 알려진 고린도전서 13장의 사랑과 관련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그리스도의 사랑』이라고 규정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본문 17-19절에서 에베소 성도들을 위해 바울이 바라는 것은 &#034;1) 너희가 고린도전서 13장의 사랑 안에서 뿌리를 내리고 터를 닦아 2) 모든 성도들과 함께 &#039;어떤 것&#039;의 너비와 길이와 깊이와 높이가 얼마인가를 깨닫도록 해주시며 3) 또 지식을 초월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너희가 하나님의 모든 충만으로 가득 차기를 주님께 구한다.&#034;는 것이다. 바울의 간구는 이렇듯 총 &#034;세 부분&#034;으로 이루어져 있다.<br/><br/>변개된 성경들에는 이 기본적인 구도가 파괴되어 이 구절들에 관한 잘못된 해석을 낳았다. 한국 교회가 사용하는 한글개역성경만 보아도 그 점이 분명해진다. &#034;17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18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19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034; 보다시피 개역성경은 그 번역에 있어서 18절과 19절의 순서가 뒤바뀌어 있기 때문에 마치 바울이 그리스도의 사랑의 너비와 길이와 깊이와 높이를 이야기하는 것처럼 변개되어 있는 것이며, 그렇게 이해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br/><br/>그러나 바울이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것이 아니다. 영어 &lt;킹제임스성경&gt;에서도 이 부분은 18절과 19절이 세미콜론(;)과 And로 분리되어 있어 각각의 주안점이 다르다는 것을 강조한다. 『① 모든 성도들과 함께 그 너비와 길이와 깊이와 높이가 얼마인가를 깨달을 수 있게 해주시며 ② 또 지식을 초월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May be able ① to comprehend with all saints what is the breadth, and length, and depth, and height ; And ② to know the love of Christ, which passeth knowledge )』 말하자면 18절의 『그 너비와 길이와 깊이와 높이』는 『그리스도의 사랑』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해석이 원천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것인데, 변개된 영어 성경들은 이곳의 &#034;세미콜론&#034;과 &#034;And&#034;를 제거해 버려 마치 18절과 19절이 한 문장인 것처럼 만듦으로써 한글개역성경과 동일한 형편없는 번역을 해 놓은 것이다. &lt;한글킹제임스성경&gt;은 이 두 구절을 19절의 『또』로 분명하게 분리시켜 번역했다.<br/><br/>그렇다면 바울은 에베소서 3:18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br/><br/>첫째, 이에 대한 참조 구절은 로마서 8:39이다. 『높음이나 깊음이나, 어떤 다른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떼어 놓을 수 없으리라』(롬 8:39). 로마서의 이 구절의 『높음』과 『깊음』은 에베소서의 『높이』와 『깊이』와 같은 말이다. 로마서 8:39의 『높음』과 『깊음』은 그 구절의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의 높이와 깊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의 물리적인 높이과 깊이를 말하는 것이다. 로마서 8:39의 『높음』과 『깊음』이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과 무관한 별개의 표현이듯, 에베소서 3:18의 『높이』와 『깊이』 역시 다음 19절의 『그리스도의 사랑』과 무관한 별개의 표현이다.<br/><br/>둘째, 에베소서 3:18의 『그 너비와 길이와 깊이와 높이』는 &#034;지식&#034;이며, 19절의 『그리스도의 사랑』은 지식을 초월하므로, 18절과 19절은 당연히 분리되어 해석되어야 한다. 『모든 성도들과 함께 그 너비와 길이와 깊이와 높이가 얼마인가를 깨달을 수 있게 해주시며 또 지식을 초월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너희가 하나님의 모든 충만으로 가득 차기를 구하노라』(엡 3:18,19).<br/><br/>셋째, 바울이 에베소서 전체에서 관심을 두고 강조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면 3:18의 『그 너비와 길이와 깊이와 높이』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다.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천상』(엡 1:3,20; 2:6; 3:10)과 『하늘에 있는 것들이나 땅에 있는 것들』(엡 1:10), 『하늘이나 땅』(엡 3:15), 『땅의 더 낮은 부분들로 먼저 내려가셨다... 모든 하늘들 위로 올라가신』(엡 4:9,10) 등과 같은 표현으로 천상과 하늘과 땅과 땅 아래, 곧 이 &#034;우주&#034;를 종횡무진으로 오가고 있다.<br/><br/>에베소서 3:18의 『그 너비와 길이와 깊이와 높이』는 바로 이 우주의 &#034;치수&#034;를 말하는 것으로, 사도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이 모든 성도들과 함께 우주의 치수를 깨닫고(지식), 『지식을 초월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들이 『하나님의 모든 충만으로 가득 차기를』 구했던 것이다(엡 3:19).<br/><br/>예수 그리스도는 &#034;목수&#034;이셨다. 목수는 자신이 다듬을 목재의 너비와 길이와 깊이와 높이를 재어 깎는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우주를 그 치수를 재어서, 즉 그 너비와 길이와 깊이와 높이를 재어서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우주에는 그 치수가 있으며, 그것을 예시하는 것이 우주를 예표하며 구조물의 규격이 주어진 구약의 &#034;성막&#034;이다(출 25-40장). 그리스도인들이 영원히 살게 될 새 예루살렘도 치수가 있다. 『그 도성은 네모가 반듯하며 길이와 너비 가 같더라. 그러므로 그가 갈대로 그 도성을 측량하니 일만 이천 스타디온이요 길이와 너비와 높이 가 같더라. 또 그가 그 성벽을 측량하니 일백사십사 큐빗이라. 이는 사람의 척도, 곧 천사의 척도라』(계 21:16,17). 바울은 고린도후서 12장에서 셋째 하늘에 다녀온 이후로 우주의 크기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 분명하며, 그러한 경이로운 지식조차도 고개를 떨구고 겸손할 수밖에 없는 『그리스도의 사랑』에 감복한 것이 틀림없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현재의 일들이나 다가올 일들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어떤 다른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떼어 놓을 수 없으리라』(롬 8:38,39). 모든 성도가 우주의 『그 너비와 길이와 깊이와 높이』를 깨달아야 하는 이유는 그 지고지대한 지식조차도 초월한 그리스도의 위대한 사랑을 알아서 하나님의 모든 충만으로 가득 차기 위함이다.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 모든 것들을 채우시는 분의 충만이니라』(엡 1:23).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교회 안에서 그분께 영광이 모든 시대들, 곧 끝없는 세상에 걸쳐 있을지어다. 아멘』(엡 3:21). BB]]></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Fri, 14 Jun 2024 10:20:39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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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정죄받지 않는 거짓말도 있는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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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CDATA[Q<br/><br/>『출애굽기에 보면 히브리 산파들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들이 파라오에게 거짓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출애굽기는 거짓말을 금하는 &#034;십계명&#034;이 기록되어 있는 책인데, 어떻게 그런 책에서 거짓말이 버젓이 용인되어 산파들이 축복을 받게 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br/><br/>A<br/><br/>문의하신 질문은 출애굽기 1장에서 이집트 왕이 &#034;출산대 위에 있는 히브리인들의 사내 아이들을 죽이라.&#034;라고 산파들에게 명령했을 때 일어난 일에 관한 것입니다. 『이집트 왕이 히브리 산파들에게 말하니, 한 사람의 이름은 시프라이고, 또 한 사람의 이름은 푸아인데, 그가 말하기를 &#034;너희가 히브리 여인들에게 산파 일을 수행할 때 출산대 위에 있는 아이들을 살펴 아들이거든 죽이고 딸이거든 살려 주라.&#034; 하더라. 그러나 그 산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이집트 왕이 그들에게 명령한 대로 하지 않고 사내 아이들을 살려 주었더라. 이에 이집트 왕이 그 산파들을 불러 말하기를 &#034;너희가 어찌 이같이 행하여 사내 아이들을 살려 주었느냐?&#034; 하니, 그 산파들이 파라오에게 말하기를 &#034;히브리 여인들은 이집트 여인들과 같지 않고 건강하여 산파가 그들에게 도착하기 전에 해산하나이다.&#034; 하더라.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 산파들을 선히 대하셨으며, 백성들은 번성하고 매우 강성해지더라.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였으므로 그분께서 그들의 집안을 융성케 하셨더라』(출 1:15-21). 이 말씀을 읽어 보면 산파들이 실로 거짓말을 했음에도 하나님께 복을 받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출애굽기 20장에서 『너는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지니라.』(16절)라는 계명을 주신 분이신데, 이 산파들을 다루실 때는 그들의 거짓말과 관련해서 복을 주셨던 것입니다.<br/><br/>우선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들은 물론, 인간의 다양한 말들과 그들의 &#034;거짓말&#034;도 실려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진리의 책이지만, 그 진리를 제시함에 있어서 인간의 다양한 면들까지도 가감 없이 제시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의 첫 번째 책인 창세기만 보더라도 사람이 얼마나 거짓말을 잘 하는 존재인가가 드러나게 되는데, &#034;사람은 모두 거짓말쟁이라는 진리&#034;를 창세기에서 다음과 같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br/><br/>인류의 첫 조상인 아담의 아내 이브는 『참으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039;너희는 동산의 모든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지 말라.&#039; 하시더냐?』(창 3:1)라는 뱀의 질문에, 『우리가 동산 나무들의 열매는 먹을 수 있으나, 동산 가운데 있는 나무의 열매에 관해서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039;너희는 그것을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혹 죽을까 함이라.&#039; 하셨느니라.』(창 3:2,3)라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여기 2절에서 이브는 『마음대로』라는 말씀을 삭제했고, 3절에서는 『만지지도 말라.』라는 말을 첨가했으며 『반드시 죽으리라.』라는 말씀도 『혹 죽을까 함이라.』로 약화시켜 버렸습니다(창 2:16,17과 비교). 인간의 거짓말은 하나님의 말씀을 삭제하고 변개시킨 데서 시작된 것입니다.<br/><br/>이뿐 아니라 아브라함은 사라에게 이집트인들 앞에서 아내가 아닌 누이라고 말하라며 거짓말을 부추겼고(창 12:12,13), 사라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보라, 네 아내 사라가 아들을 가질 것이니라.』(창 18:10)라고 말씀하셨을 때 여자의 관례가 끝나 버린 자신에게 더 이상 임신이 안 될 것으로 알고 속으로 웃었으면서도, 주님께서 『어찌하여 사라가 웃으며 말하기를 &#039;늙은 내가 확실히 아이를 낳을 수 있겠는가?&#039; 하느냐?』(창 18:13)라고 하셨을 때 『내가 웃지 않았나이다.』(창 18:15)라고 주님께 거짓말을 했습니다. 이삭 역시 그랄인들에게 아내에 관해 말할 때 그의 아버지 아브라함처럼 『그녀는 나의 누이라.』(창 26:7)라고 거짓말했으며, 야곱도 자기가 형 에서인 것처럼 거짓으로 분장하더니 아버지 이삭에게서 축복을 받아 냈습니다(창 27:18-29). 야곱의 삼촌 라반은 라헬을 주겠다고 약속하면서 그에게 7년을 봉사하라 해 놓고서는 그 7년이 다 찼을 때 라헬 대신 레아를 줘 버리는 거짓말을 했습니다(창 29:18-25). 라헬은 남편 야곱과 야반도주했을 당시 아버지 라반이 자기가 섬기는 형상들을 찾으러 장막 안으로 들어왔을 때 여자의 관행이 없었으면서도 있는 척함으로써 상황을 모면했습니다(창 31:35). 야곱의 아들들은 여동생 디나가 세켐에 의해 더럽혀졌을 때 히위인들과 상호 종족 간에 혼인할 의향이 전혀 없었으면서도 오직 그들에게 복수할 목적으로 할례를 요구했고, 히위인들이 할례를 받고 가장 아팠을 때 시므온과 레위가 칼을 들고 성읍으로 가서 모든 남자들을 죽였습니다(창 34:1-26). 이뿐 아니라 야곱의 아들들은 요셉을 시기하여 그를 미디안 상인들에게 팔아넘겼으면서도 아버지 야곱에게는 염소 새끼의 피 묻은 채색옷을 가져가 마치 요셉이 짐승에게 찢겨 죽은 것처럼 거짓말했습니다(창 37:28-34). 유다는 그의 맏아들 엘과 둘째 오난이 죽자, 며느리 타말에게 셀라가 장성하면 그녀와 혼인하도록 해 주겠다고 약속하고서는 이를 어겼습니다(창 38:6-14).<br/><br/>이처럼 창세기만 보아도 인간에게는 타고난 거짓말의 성향이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성경에는 인간의 거짓말도 기록되어 있는 것인데, 그렇다고 모든 거짓말이 진리이며 정당하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이런 내용들을 보면서 깨달아야 할 것은 『실로, 하나님은 참되시나 사람은 모두 거짓말쟁이라.』(롬 3:4)라는 말씀이 진리라는 사실입니다.<br/><br/>그렇다면 출애굽기 1장의 히브리 산파들의 거짓말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거짓말을 한 산파들을 하나님께서 심히 복 주신 것을 보면 그들의 거짓말은 『실로, 하나님은 참되시나 사람은 모두 거짓말쟁이라.』라는 말씀을 입증하기보다는 어떤 예외적인 면을 담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말하자면 &#034;어떤 동기&#034;로, 그리고 &#034;누구를 위해서&#034; 거짓말을 했느냐가 정죄와 복을 결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br/><br/>출애굽기 본문에서 해답을 찾자면 1:17이 그 핵심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산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이집트 왕이 그들에게 명령한 대로 하지 않고 사내 아이들을 살려 주었더라.』 히브리 산파들이 거짓말을 한 &#034;동기&#034;는 그들이 &#034;하나님을 두려워한 것&#034;에 있었고, 그 목적에 따른 대상은 &#034;죄 없는 히브리 사내 아이들&#034;이었습니다. 쉽게 말해서 &#034;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무죄한 유대인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034; 거짓말을 했다면, 그 거짓말은 하나님께 100% 용인되고 큰 복의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 산파들을 선히 대하셨으며, 백성들은 번성하고 매우 강성해지더라.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였으므로 그분께서 그들의 집안을 융성케 하셨더라』(출 1:20,21).<br/><br/>&#034;무죄한 유대인&#034;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했던 거짓말로 복을 받은 경우는 히브리 산파들 외에 또 있습니다. 여호수아 2장의 창녀 라합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이스라엘의 정탐꾼들을 살려 주고자 거짓말했는데, 이것으로 인해 하나님께 복을 받은 것입니다. 『그 여자가 두 사람을 데려다가 숨겨 놓고 이렇게 말하더라. &#034;사람들이 내게 왔었으나 나는 그들이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였으며 어두워지자 성문이 닫힐 때쯤 되어 그 사람들이 나갔으니 그 사람들이 어디로 갔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속히 그들을 쫓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그 사람들을 따라잡으리라.&#034; 하더라. 한편 그녀는 그 사람들을 지붕 위로 데리고 가서 그녀가 지붕 위에 가지런히 쌓아 둔 삼대로 숨겼더라』(수 2:4-6). 라합은 여호수아가 보낸 정탐꾼들에 관하여 거짓말을 함으로써 여리코 왕이 보낸 사람들로 하여금 &#034;헛수고&#034;만 하고 돌아가게 만들었습니다. 그 뒤 라합은 주님께서 여리코를 완전히 진멸하실 때 그녀와 그녀의 가족이 살아남게 되는 복을 누리게 됩니다. 물론 이것은 라합이 정탐꾼들과 맺은 약속에 근거한 것이지만(수 2:12,13), 전반적인 상황은 &#034;유대인들의 생명을 살려 준 거짓말&#034;과 결부되어 있기 때문에, 성경에서 거짓말이 정죄받지 않고 복을 누리게 한 또 하나의 사례가 된 것입니다.<br/><br/>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십계명에 『너는 살인하지 말지니라.』(출 20:13)와 『너는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지니라.』(출 20:16)라는 계명들을 두셨습니다. 그런데 상황이 &#034;무죄한 유대인&#034;의 생명과 관련될 때에는 『너는 살인하지 말지니라.』(출 20:13)라는 말씀에 따라 거짓말을 용인해 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의 조상인 아브라함에게 『너를 축복하는 자들에게 내가 복을 주고 너를 저주하는 자를 저주하리라.』(창 12:3)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에 대한 이 약속이 유대인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거짓말에도 적용되어 거짓말한 당사자들은 복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죄나 그 죄의 결과를 감추려고 하는 거짓말에 대해서는 간과하시지 않지만, 아브라함의 후손인 유대인을 살리기 위한 경우와 관련해서는 절대적인 예외를 두셨던 것입니다. BB]]></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Tue, 21 May 2024 16:18:34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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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약속의 땅에서 "그림들"을 파괴하라는 명령</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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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CDATA[질문<br/><br/>『민수기 33:52에 보면, 카나안 땅에 들어가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그 땅에 들어가면 모든 &#034;그림들&#034;을 파괴하라는 명령이 나옵니다. 도대체 &#034;그림들&#034;에 무슨 죄가 있어서 그런 명령을 주신 것인지 궁금합니다.』<br/><br/>답변<br/><br/>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이 광야에서의 여정을 끝낸 후 북진하여 요단 강 동편에 이르렀을 때, 그들이 들어가게 될 약속의 땅에서 반드시 해야 할 일을 다음과 같이 명령하셨습니다. 『주께서 여리코 근처 요단 옆 모압 평지에서 모세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034;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그들에게 말하라. &#039;너희가 요단을 건너 카나안 땅으로 들어가거든, 그 땅 거민을 너희 앞에서 다 몰아내고 그들의 모든 그림들을 파괴하고 모든 부어 만든 형상들을 다 파괴하며 산당들을 다 뽑아 낼 것이며 너희는 그 땅의 거민을 다 쫓아내고 그곳에 거하라. 이는 내가 그 땅을 너희에게 주어 소유케 하였음이라... 그러나 만일 너희가 너희 앞에서 그 땅 거민을 몰아내지 아니하면, 너희가 남겨 둔 그들이 너희 눈에 찔림이 되고 너희 옆구리에 가시가 되어, 너희가 거하는 땅에서 너희를 괴롭힐 것이요, 더욱이 내가 그들에게 행하기로 생각했던 것을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라.&#039;&#034; 하시니라』(민 33:50-53,55,56).<br/><br/>주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신 명령들 중에, 그 땅의 우상 숭배자들을 몰아내고 형상들을 파괴하고 산당들을 다 뽑아내야 한다는 명령은 일반적으로 이해하기가 어렵지 않지만, &#034;그림들&#034;을 파괴해야 한다는 명령에는 간혹 의문을 제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대부분은 거실이나 화랑에 걸어 놓은 작품들을 떠올리면서 그런 의문을 품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약속의 땅에 들어갈 이스라엘 자손에게 그러한 명령을 주셨다면, 그 그림들을 형상들이나 산당들과 동일 선상에서 취급하고 계신 것이 분명합니다. 있는 그대로 놔두고 감상해도 된다면 굳이 형상들과 산당들처럼 파괴하라는 명령을 주셨겠습니까? 이스라엘 자손이 광야의 방황을 끝내고 카나안 땅으로 들어갈 무렵, 그 땅은 우상 숭배자들의 죄가 극에 달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육적인 후손이 자기 땅이 아닌 곳(이집트)에서 사백 년 동안 괴로움을 당하다가 사 대 만에 거기서 나와 카나안 땅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창 15:13-16), 굳이 &#034;사 대&#034; 만에 돌아와야 했던 이유는 &#034;아모리인들의 죄악이 아직 다 차지 않았기 때문&#034;이었습니다(창 15:16). 따라서 아브라함의 후손이 바야흐로 카나안 땅에 진입했을 시점에는 그 땅에 죄악이 가득 찼다는 얘기가 됩니다. 그리고 바로 여기서 &#034;그림들&#034;이 문제로 제기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민수기 33:52의 그림들과 형상들과 산당들은 그 땅의 죄인들의 죄악이 극에 달했음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상징물들로서, 하나님께서 그곳 거민들을 모두 쫓아내고 그들이 만들어 놓은 모든 우상 숭배의 도구들을 파괴하라고 명령하셨으니, 그 &#034;그림들&#034;에는 어떤 치명적인 죄가 담겨 있었음이 확실합니다.<br/><br/>오늘날에도 우상을 숭배하는 종교들은 그들의 사원에 그들의 종교와 관련된 그림들을 그려 놓습니다. 우리나라의 불교는 흔히 &#034;탱화&#034;(幀畵)라고 해서 천이나 종이에 부처와 보살 같은 것들을 그려서 벽에 걸어 놓습니다. &lt;삼국유사&gt;에 의하면 이미 삼국 시대부터 &#034;불화&#034;(佛畵)를 그렸다고 하니, 우리 민족의 우상 숭배는 그 뿌리가 매우 깊게 내려진 것이고, 세대를 넘고 넘는 불교의 전승 속에서 &#034;불화&#034;가 한몫 단단히 했던 것입니다. 불교의 형상과 절간과 그림 같은 것들이 어떤 선지자적인 인물에 의해 모조리 파괴되었더라면, 오늘날 불교는 우리 민족을 향해 얼굴을 들이밀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br/><br/>이처럼 그림은 우상 숭배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기에, 주님께서는 성경의 다른 구절들에서도 그림에 대해 강력히 경고하셨습니다. 『그녀가 그녀의 음란을 더했으니 그녀가 벽에 그려진 사람들, 즉 주홍색으로 그린 칼데아인의 형상들을 보았는데 그들은 허리를 띠로 둘렀고 머리는 물들인 긴 천으로 쌌으며 그들 모든 고관들은 그들의 고향 칼데아의 바빌론인들과 닮아 보이더라. 그녀가 자기의 눈으로 그들을 보자 그들에게 홀딱 빠져서 칼데아로 그들에게 사자들을 보내자 바빌론인들이 사랑의 침상으로 그녀에게 와서 그들의 음란으로 그녀를 더럽히니 그녀가 그들로 더불어 더럽혀지고 그녀의 마음이 그들로부터 멀어졌느니라. 그녀가 그처럼 자기의 음란함을 드러내고 자기의 벌거벗음을 드러냈으니 그때에 내 마음이 그녀의 언니로부터 멀어졌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녀에게서 멀어졌느니라. 그래도 그녀는 자기의 음란한 짓을 더하여 이집트 땅에서 창녀짓하였던 그녀의 젊은 시절을 기억해 내었도다』(겔 23:14-19). 이 본문은 멸망하기 이전의 이스라엘에 관한 말씀인데, 특히 &#034;아홀리바&#034;라 불리는 예루살렘으로(겔 23:4,11) 대변되는 &#034;유다의 죄&#034;에 관한 내용입니다. 남왕국 유다는 벽에 그려진 칼데아인의 형상들을 &#034;눈으로 보고&#034; 홀딱 빠져서 칼데아로 사자들을 보내어 그 바빌론인들을 데려와 음행을 저지른 것입니다. 우상 숭배자들의 그림을 눈으로 보았더니 적극적인 악한 행동이 뒤따랐음을 알 수 있습니다.<br/><br/>오늘날 성도의 눈을 현혹하여 세상과 음행을 저지르게 하는 &#034;그림들&#034;은 절간의 &#034;탱화들&#034;이 아닙니다. 성도가 마땅히 행해야 할 일들에서 관심이 멀어지게 하고 그를 영적으로 잠들게 하는 것은 일상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TV나 컴퓨터의 &#034;모니터&#034;와 영화 &#034;스크린&#034; 같은 것들입니다. 바로 그런 것들이 우리의 눈을 사로잡음으로써 우리를 &#034;죄&#034;에게로 사로잡아가는 &#034;마귀의 그림들&#034;인 것입니다. 페리 록우드 목사는 &#034;텔레비전으로 위장한 데블비전(Devil-Vision)&#034;이라는 글에서 TV 모니터의 &#034;그림들&#034;이 성도에게 미치는 현실적인 폐해를 다음과 같이 기술했습니다.<br/><br/>『어느 조용한 가정에 둘러앉은 몇몇 집사들을 만나 보았더니, 다들 입을 모아 하는 소리가, 안방에 TV를 들여놓은 이후로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와 주일학교에서의 섬김을 등한시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사생활도 영적으로 냉랭해져 버렸다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TV가 그들을 &#034;영적 수면&#034;에 빠뜨린 것이다. 또 다른 집사는 말하기를, 집 안에 TV를 들여놓은 이후로 혼들에 대한 열정을 상실했고, 또한 죄인들을 찾아 집 밖으로 나가고자 하는 열망을 &#034;TV 수면&#034;에 빠지기 전만큼 가질 수 없었는데, 그러다가 1년 후 출석하는 교회에서 간증을 마치고 곧장 집으로 가서 TV를 치웠더니 혼들에 대해 품었던 그 옛날의 열정이 되살아나더라는 것이었다. 또한 그는 자신의 가정생활이 이전의 영적 상태로 되돌아왔다는 간증을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목사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내게 털어놓기를, 그들의 성도들의 가정에 TV가 들어앉은 이후로 수요기도회와 주일 저녁예배에 대한 관심이 예전만 못하다고들 한다. 그런데 알고 있는가? 내가 아는 대부분의 목사들은 그들의 안방에도 버젓이 TV를 모셔 두고 있다는 걸 말이다. 정확히 10년 전만 해도 그들은 할리우드의 쇼 프로그램들과 그것들이 끼치는 악영향에 대해 완강한 자세를 취했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그들의 안방에서도 그 동일한 쇼가 방영됨으로 인해 그들의 입에다 재갈을 물리고 유구무언하고 있는 실정인 것이다.』<br/><br/>누가 되었든지 자기 집 안으로 TV를 들여놓는다면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들』(엡 5:11)도 덩달아 들여오게 됩니다. 이 점은 불가피한 일이므로 아주 민감하게 경계해야 합니다. 분별력 있는 성도라면 자신에게 꼭 필요한 것만 보고 TV를 끌 테지만, 대부분은 일과가 끝나면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은 후 TV 채널을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다가, 기도는 하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잠이 드는 실정입니다. 이것이 마지막 때에 그리스도인이라는 사람들의 현실입니다. 교회 시대의 끝을 장식하는 라오디케아인들의 교회 시대는 로마카톨릭의 박해가 아닌 &#034;모니터&#034;의 공격이 신앙의 주된 위험 요소로 자리 잡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눈을 사로잡는 TV에는 마음과 시간을 뺏는 &#034;마력&#034;(魔力)이 있습니다. 성도들 중에 TV가 자신의 영적 생활을 향상시켜 준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자기 안방이나 거실에서 가족들과 함께 저질스럽고 상스러운 언어와 행위가 방영되는 프로그램을 보면서도 그리스도인으로 자처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그리스도인의 탈을 쓴 &#034;철면피&#034;입니다. 음주, 흡연, 간접 성행위, 간통, 욕설, 살인, 강도, 선정적인 춤, 도박, 강간 그리고 온갖 속된 것들을 거리낌 없이 즐기면서도 스스로를 그리스도인이라고 한다면, 그 사람은 자신을 속이고 하나님을 속이려 드는 위선자인 것입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자신의 소중한 믿음을 해치는 &#034;그림들&#034;을 거부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에 온 마음을 두는, 곧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BB]]></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Mon, 13 May 2024 17:41:26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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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바알프올과 "이세벨"</title>
<link>https://biblemaster.co.kr/bb3/%EB%B0%94%EC%95%8C%ED%94%84%EC%98%AC%EA%B3%BC-%EC%9D%B4%EC%84%B8%EB%B2%A8-1/</link>
<description><![CDATA[질문 :『민수기 25장에는 바알프올에게 가담한 자들을 주님께서 24,000명을 죽이셨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고린도전서 10장에는 23,000명이 죽임을 당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죽은 자들의 수에 있어서 이처럼 차이가 나는 이유가 무엇이며, 또한 &#034;바알프올에게 가담했다&#034;는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br/><br/>답변 :문의하신 질문은 이스라엘이 40년간의 광야 생활을 거의 끝낸 시점에서 일어난 비극과 관련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북진하여 요단 강 동편 싯팀에 이르렀을 때 발락은 발라암에게 이스라엘을 저주하는 대가로 &#034;불의의 삯&#034;을 약속했는데, 이 삯을 사랑한 발라암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직접 치실 수밖에 없는 계략을 꾸민 것입니다. 『보라, 이들이 발라암의 계략을 통하여, 이스라엘 자손으로 프올의 사건 때에 주를 거역하여 범죄하게 하여, 주의 회중에 역병이 있었느니라』(민 31:16). 발라암은 성경에서 &#034;발라암의 계략&#034;이라 불리는 것을 꾸며 이스라엘을 모압인들의 우상 숭배에 가담하게 했고,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 이스라엘을 직접 치셔야 했습니다. 그 일의 실상이 민수기 25장에 계시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싯팀에 거하였는데, 그 백성이 모압의 딸들과 더불어 음행하기 시작하였더라. 그들이 자기 신들의 희생제에 백성을 부르니, 그 백성이 먹고 그들의 신들에게 절하였더라. 이스라엘이 바알프올에게 가담하였으니, 주의 진노가 이스라엘에 대하여 일어나더라』(1-3절). 이에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공의로우신 성품에 따라 모세에게 명령하셨습니다. 『백성의 모든 우두머리들을 잡아다가, 태양을 향하여 주 앞에 그들을 목매어 달라. 그리하면 주의 맹렬한 진노가 이스라엘로부터 사라지리라』(4절). 그리고 모세는 이스라엘의 재판관들에게 『너희는 각기 바알프올에게 가담하였던 자기 남자들을 죽이라.』(5절)라고 명령했는데, 『그 재앙으로 죽은 자들이 이만 사천 명』(9절)이었던 것입니다.<br/><br/>민수기 25장에서는 그 재앙으로 죽은 자들이 24,000명이라 하고, 고린도전서 10장에서는 23,000명이라 하는데, 이것은 모순이 아니며 관련 구절들을 면밀히 살펴보면 쉽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 중 어떤 사람들이 행한 것처럼 음행하지 말자. 그들은 그러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느니라』(고전 10:8). 즉 이 구절을 민수기 25:9과 비교해 보면 재앙으로 죽은 사람의 총계가 24,000명이고, &#034;하루에&#034; 죽은 사람이 23,000명임을(고전 10:8) 알 수 있는 것입니다.<br/><br/>이제 우리에게 남겨진 것은 &#034;바알프올에게 가담했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034; 하는 부분입니다. 먼저 바알에 대해서 알아야 하는데, 바알은 &#034;주&#034;라는 뜻을 지닌 우상으로, 고대 농경 사회의 특성에 따라 풍요와 다산의 신으로 숭배를 받던 풍요와 폭풍우의 남신(男神)이었습니다. 바알은 이집트와 고대 메소포타미아 전역에 걸쳐서 숭배되었던 신인데, 그 숭배 의식에 여사제들과의 &#034;음행&#034;이 들어 있었습니다. &#034;풍요와 다산&#034;의 신인 바알을 위해 &#034;번식&#034;의 상징인 &#034;성관계&#034;를 종교적 제의로서 행했던 것입니다. 농사가 잘되기를 기원하면서 그 상징적 의미로 집단적인 성행위를 했던 것인데, 이 음란한 의식의 실상이 민수기 25장에서 드러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싯팀에 거하였는데, 그 백성이 모압의 딸들과 더불어 음행하기 시작하였더라. 그들이 자기 신들의 희생제에 백성을 부르니, 그 백성이 먹고 그들의 신들에게 절하였더라』(1,2절). 즉 이스라엘은 발라암의 계략에 말려들어 바알 숭배 의식 가운데 하나인 음행을 저질렀을 뿐 아니라 그 의식의 일환으로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도 먹고 모압인들의 신들에게 절도 했던 것입니다. 성경은 이 점을 두고 &#034;이스라엘이 바알프올에게 가담하였다.&#034;라고 말씀합니다. 바알프올에서 &#034;프올&#034;은 모압 땅에 위치한 산의 이름이며(민 23:28) 그 이름의 뜻은 &#034;개방&#034;(opening)입니다. 그래서 바알프올은 &#034;프올에서 섬기는 바알&#034;이란 의미로 볼 수도 있고, 그 이름들의 뜻을 조합하여 &#034;개방의 주&#034;라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br/><br/>이 바알프올에게 가담한 죄에 대한 기억은 호세아서에 반영되어 있습니다. 『내가 광야에서의 포도처럼 이스라엘을 만났으며 내가 무화과나무에서 처음 익은 첫열매같이 너희 조상들을 보았도다. 그러나 그들이 바알프올로 가서 그 수치에다 자기 몸을 구별하여 드렸으니, 그들의 가증함은 그들이 사랑했던 것과 같이 되었도다』(호 9:10).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사랑했던 바알프올이 가증한 것처럼 그 이스라엘 또한 가증하게 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우상을 숭배하는 자는 그 우상과 동일하게 더럽게 여겨지는 것입니다. 바알프올에게 가담한 죄가 이토록 심각하기 때문에 이 죄는 성경의 다른 부분들에서도 반복적으로 언급됩니다. 『주께서 바알프올 때문에 행하셨던 것을 너희 눈으로 보았나니, 바알프올을 따랐던 모든 사람들을 주 너의 하나님께서 너희 가운데서 진멸하셨느니라』(신 4:3). 『프올의 죄악이 우리에게 너무 작은 것이냐? 주의 회중에 재앙이 있었지만 우리는 오늘까지도 그 죄에서 정결케 되지 못하였도다』(수 22:17). 『그들이 또 바알프올에게 연합하여 죽은 자들에게 바친 희생제물들을 먹음으로 그들의 행위로 그를 격노케 하니 재앙이 그들 가운데 퍼졌도다』(시 106:28,29).<br/><br/>신약성경에서는 바알프올에게 가담한 행위를 &#034;발라암의 교리&#034;라고 부르는데, 이 교리가 교회 내로 들어왔다고 지적합니다. 그것이 요한계시록 2:14의 퍼가모 교회에게 주시는 말씀에 언급됩니다. 『그러나 내가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이는 네게 발라암의 교리를 지키는 자들이 있음이라. 그가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거치는 것을 놓게 하며, 우상에게 바친 제물을 먹게 하고 또 음행하도록 하였느니라 』(계 2:14). 밑줄 친 부분이 민수기 25장에 그대로 나타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싯팀에 거하였는데, 그 백성이 모압의 딸들과 더불어 음행하기 시작하였더라 . 그들이 자기 신들의 희생제에 백성을 부르니, 그 백성이 먹고 그들의 신들에게 절하였더라』(1,2절). 요한계시록 2장의 퍼가모 교회는 A.D. 325년에서 500년까지의 교회사 기간으로 그때 &#034;로마카톨릭&#034;이 본격적으로 등장합니다. &#034;퍼가모&#034; 교회는 그 이름의 뜻처럼 세상과 &#034;숱한 결혼&#034;(숱한 음행)을 한 교회인데, 이 퍼가모 교회에서 발라암의 교리인 &#034;음행&#034;과 &#034;우상에게 바친 제물을 먹는 의식&#034;이 교회의 예배 중에 행해졌고, 성직자가 평신도들을 지배하는 &#034;니콜라파의 교리&#034;도 실행되었습니다(계 2:14,15). 이와 같은 자들이 바로 &#034;로마카톨릭&#034;입니다. 성직자 계급이 평신도들을 지배하는 그들이 지금까지 보여 준 음행(사제와 수녀의 음행, 사제와 여신도의 간음, 동성애, 소아성애)과 매주 미사 때마다 먹는 빵과 포도주가 그들이 퍼가모 교회의 실체임을 증명합니다.<br/><br/>퍼가모 교회는 세속화된 가짜 교회인 로마카톨릭이 준비되고 형성되는 시대이며, 이 기간을 뒤이은 두아티라 교회 기간(A.D. 500-1000)에도 동일한 교리가 &#034;자칭 여선지자인 이세벨&#034;에 의해서 교회 내에 가르쳐졌습니다.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이는 네가 자칭 여선지자 이세벨이란 여자를 용납함으로 그녀가 내 종들을 가르치고 유혹하여 행음하게 하고 우상에게 바친 제물을 먹게 하기 때문이라 』(계 2:20). 역사적으로 보면 발라암은 이스라엘을 모압인들의 바알 숭배에 가담케 했고(민 25:1-3), 이세벨은 이스라엘에 바알 숭배를 가져왔습니다(왕상 16:30-33). 발라암과 이세벨은 둘 다 바알 숭배자인데, 그들의 교리가 신약 교회 시대에 교회로 유입되어 퍼가모 교회에서 두아티라 교회로 그 맥이 이어졌던 것입니다. 이 두 교회 기간을 특징짓는 것이 바로 &#034;로마카톨릭&#034;의 등장과 그들이 그리스도인들에게 가한 박해라는 사실을 아십니까?<br/><br/>로마카톨릭은 &#034;하늘의 여왕 마리아&#034;를 섬기는 이교도이며, 그 맥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전직 예수회 사제였던 알베르토 리베라 박사는 &lt;알베르토 시리즈&gt;에서 로마카톨릭의 사악한 실체를 밝혀 놓았습니다. 두아티라 교회의 &#034;이세벨&#034;은 요한계시록 17장의 큰 창녀, 곧 로마카톨릭을 가리킵니다. 이 종교는 &#034;이세벨,&#034; &#034;큰 창녀,&#034; &#034;하늘의 여왕 마리아&#034;로 특징지어지는 여신 숭배 집단이지만 그리스도인은 여신을 숭배하지 않습니다. 성경에는 성도들이 섬기는 여신이 없습니다. 교황, 추기경, 사제, 수녀, 묵주, 수도원, 성찬용 빵과 술도 없습니다. 로마카톨릭은 성경적인 면이 단 한 가지도 없는 것입니다! 바로 그들이 미사에 참여하지 않고 마리아를 숭배하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고 죽였던 것입니다. 구약 시대의 이세벨이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듯이(왕상 18:4), 신약 시대의 &#034;이세벨&#034; 또한 주의 종들을 죽였습니다. 그들은 아버지 하나님도 모르고, 그분께서 보내신 예수님도 모르기에 그런 일을 저질렀던 것입니다(요 16:2,3). 하나님을 모르는 그런 &#034;현대판 바알 숭배자들&#034;에게 가담하는 것은 바알프올에게 가담한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죄지은 이스라엘을 재앙으로 치셨듯이, 로마카톨릭과 그들과 손잡은 교회들을 대환란의 재앙에 던지실 것입니다(계 2:22). 휴거되지 못하고 대환란에 들어가는 것이 이 배교한 라오디케아인들의 교회 시대의 현주소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BB]]></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Tue, 30 Apr 2024 17:39:42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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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시스라를 살해한” 야엘을 칭송한 드보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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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CDATA[질문<br/><br/><br/>재판관기에 보면 켄인 헤벨의 아내 야엘이 자기 장막으로 피신해 들어온 시스라를 장막 못으로 잔인하게 살해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드보라는 이 잔혹한 살인 사건을 책망하기는커녕 칭송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지 성경적으로 답변해 주십시오.<br/><br/><br/>답변<br/><br/><br/>문의하신 내용은 성경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야엘이 시스라를 맞으러 나가서 그에게 말하기를 “내 주여, 들어오소서. 내게로 들어오시고 두려워하지 마소서.” 하니 그가 장막 안으로 들어가 그녀에게로 오니 그녀가 그를 이불로 덮더라. 그가 그녀에게 말하기를 “청하노니, 마실 물을 좀 달라. 내가 목마르도다.” 하니 그녀가 젖부대를 열어 그에게 마실 것을 주고 그를 덮으니라. 다시 그가 그녀에게 말하기를 “장막 문에 서 있다가 어떤 사람이 와서 네게 물어 말하기를 ‘여기 누가 있느냐?’고 하거든, 없다고 말할지니라.” 하니 헤벨의 아내 야엘이 장막의 못을 갖고 그녀의 손에 망치를 들고 가만히 그에게 들어가서 그 못을 관자놀이에 대고 박아 땅에 꽂으니 이는 그가 쉬 잠들어 있었으며 피곤하였음이라. 이에 그가 죽으니라』(판 4:18-21). 주님께서 바락 앞에서 칼날로 시스라와 그의 모든 병거와 군대를 패주시키시자, 시스라는 병거에서 내려 도보로 도망쳤습니다. 그러나 바락은 그의 병거들과 군대를 추격하여 이방인들의 하로셋에 이르렀고, 시스라의 모든 군대가 이스라엘 군대의 칼날에 쓰러져 남은 자가 한 명도 없었습니다. 이에 도보로 도망한 시스라는 켄인 헤벨의 아내인 야엘의 장막에 찾아갔습니다. 이유는 시스라가 섬기는 하솔 왕 야빈과 켄인 헤벨의 가문 사이에 화평이 있었기 때문입니다(판 4:15-17).<br/><br/>하지만 시스라를 맞이한 야엘은 그를 죽일 계획이었습니다. 시스라는 이를 알아차리지 못한 채 야엘의 장막으로 들어갔습니다. 야엘이 왜 시스라를 죽이려고 했는지는 성경에 나오지 않지만 어쨌든 그녀는 이스라엘에 충성했습니다. 드보라는 야엘의 이 충성을 칭송했습니다. 『켄인 헤벨의 아내 야엘은 여인들보다 복받을지니 그녀는 장막에 있는 여인들보다 복받을지니라. 그가 물을 구했으나 그녀가 젖을 주었으며, 귀한 그릇에 버터를 내왔도다. 그녀가 손에 못을 잡고 오른손에 일꾼의 큰 망치를 들고 그 망치로 시스라를 쳤으니, 그의 머리를 쳐서 그의 관자놀이를 뚫었도다. 그가 그녀의 발 앞에 구부러지고 쓰러져 누웠도다. 그녀의 발 앞에 구부러지고 쓰러졌으며 그가 구부러진 곳에서 쓰러져 죽었도다』(판 5:24-27).<br/><br/>우리가 한 가지 알 수 있는 것은 시스라가 베두인족의 관습상 매우 무례한 행동을 했다는 것입니다. 외간남자가 베두인 여인이 홀로 있는 장막에 들어가는 일은 당사자의 죽음을 가져올 수 있었습니다. 베두인은 그런 일을 금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시스라는 누가 묻거든 야엘의 장막에 들어온 사람이 없다 하라고 부탁했는데, 이 역시 베두인의 윤리를 위반한 조치입니다. 사실상 그는 베두인 여인의 침실에 들어가 있었던 것이고, 이 사실을 감춰 달라고 했으니, 만약 이 점이 들통이 난다면 야엘 자신이 외간남자와 간음한 혐의로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베두인의 법에 따르면, 시스라는 죽어 마땅한 일을 범한 것인데, 물 대신 젖을 가져다 준 야엘은 피곤하여 쉽게 잠든 시스라를 장막의 못과 망치를 가져다 그 못을 관자놀이에 대고 박아 땅에 꽂음으로써 시스라를 죽였습니다.<br/><br/>드보라가 야엘의 살인 행위를 칭송한 것은 야엘이 전쟁 중에 있는 이스라엘의 원수를 죽였기 때문입니다. 전시 상황에 있는 이스라엘을 위해서 적군의 수장을 죽여 준 야엘은 이스라엘의 입장에서는 포상이라도 해 주어야 할 대상이었습니다. 야엘이 이스라엘의 군대 편이었다는 점은 그녀가 시스라를 찾는 바락에게 한 말에서 드러납니다. 『보라, 바락이 시스라를 찾을 때 야엘이 나와 그를 맞이하여 그에게 말하기를 “오소서. 내가 당신에게 당신이 찾던 그 사람을 보여 주리이다.” 하더라. 그리하여 그가 그녀의 장막에 들어오니, 보라, 시스라가 죽은 채 누워 있고 그의 관자놀이에 못이 있더라.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그 날로 카나안 왕 야빈을 이스라엘 자손 앞에 굴복시키셨더라』(판 4:22,23). 이처럼 켄인 헤벨의 아내 야엘이 이스라엘 군대 대장인 바락을 대신하여 시스라를 죽이는 영예를 차지한 일은 드보라의 예언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그녀가 말하기를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가리라. 그렇지만 네가 취한 여정이 너의 영예는 되지 아니하리니 이는 주께서 시스라를 여인의 손에 파실 것임이라.” 하고 드보라가 일어나서 바락과 함께 케데스로 가니라』(판 4:9). 이스라엘 민족의 군대 지휘관이 자기 민족의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여인”인 드보라에게 의존하자 하나님께서는 시스라를 죽이는 영예를 “여인”에게로 돌리셨습니다. 드보라의 그 예언은 다름 아닌 “야엘”에게 성취되었던 것입니다.<br/><br/>야엘이 시스라를 죽인 방법은 잔인하지만, 전쟁 중에는 더 잔인한 살인도 벌어집니다. 『다윗이 그 성읍 안에 있는 백성을 끌어내어 톱질과 쇠 써레질과 도끼질을 하고 벽돌 굽는 가마로 지나가게 하였으며, 그가 암몬 자손의 모든 성읍들에 그같이 하더라. 그리하여 다윗과 모든 백성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니라』(삼하 12:31). 전쟁이란 원래 잔인합니다. 적군을 죽이는 일에 자비가 없습니다. 시스라가 이스라엘 군대에게 죽었더라면 그는 더욱 잔인하게 죽었을 수도 있습니다.<br/><br/>야엘이 “시스라”의 머리에 치명상을 입혀 죽인 사건은 장차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셔서 “적그리스도”를 심판하실 사건의 모형이 됩니다. 이 일을 최초로 언급하신 말씀이 “창세기 3:15”입니다. 『내가 너와 여자 사이에, 또 네 씨와 그녀의 씨 사이에 적의를 두리니, 그녀의 씨는 너의 머리를 부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부술 것이라.』 이 말씀은 여자의 씨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뱀의 씨인 “적그리스도”의 머리를 부수실 것이라는 예언으로, 성경의 다른 구절들에서도 언급되고 있습니다. 『주께서는 주의 백성의 구원을 위하여, 곧 주의 기름부음받은 자와 함께하는 구원을 위하여 나가시어 그 기초를 끝까지 드러내심으로써 악인의 집에서 그 머리에 상처를 입히셨나이다. 셀라』(합 3:13, cf. 시 68:21; 110:5,6). 『평강의 하나님께서 사탄을 속히 너희의 발 아래서 부수실 것이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롬 16:20). 성경에 나오는 적그리스도 모형들 가운데는 머리에 상처를 입고 죽는 모형이 세 명 나오는데, 여인이 던진 맷돌 한 짝에 두개골이 깨져 죽은 “아비멜렉”(판 9:53)과 다윗이 던진 물맷돌이 이마에 박혀 죽은 “골리앗”(삼상 17:49), 또 야엘의 장막 못에 머리가 꿰뚫려서 죽은 “시스라”가 그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면 사탄이 육화되어 나타난 적그리스도의 머리를 부수실 것이며,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괴롭힌 그 악인을 심판하신 일로 인해 영원무궁토록 찬양받으실 것입니다. 전쟁 중에 있는 이스라엘 편에 서서 그 위대한 사건을 모형적으로 보여 준 야엘의 행위는 드보라가 칭송하기에 마땅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시편 122:6에서 『예루살렘의 화평을 위하여 기도하라. 너를 사랑하는 자들은 번성하리로다.』라고 하셨습니다. 『켄인 헤벨의 아내 야엘은 여인들보다 복받을지니 그녀는 장막에 있는 여인들보다 복받을지니라.』(판 5:24)라는 드보라의 노래는 바로 그 점을 보여 줍니다. BB]]></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Tue, 30 Apr 2024 14:50:31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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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왜 아칸의 죄로 가족까지 죽어야 했는가?</title>
<link>https://biblemaster.co.kr/bb3/%EC%99%9C-%EC%95%84%EC%B9%B8%EC%9D%98-%EC%A3%84%EB%A1%9C-%EA%B0%80%EC%A1%B1%EA%B9%8C%EC%A7%80-%EC%A3%BD%EC%96%B4%EC%95%BC-%ED%96%88%EB%8A%94%EA%B0%80/</link>
<description><![CDATA[한승용 / 말씀보존학회 성경연구원<br/><br/><br/><br/>질문<br/><br/>「성경에는 아칸 한 사람이 범죄했는데 그의 가족까지 함께 처형당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칸이 범한 죄 때문에 왜 무고한 사람들까지 죽어야 했는지 궁금합니다.」<br/><br/><br/>답변 <br/><br/>문의하신 내용은 성경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하여 여호수아가 사자들을 보내더라. 그들이 그 장막으로 달려갔더니, 보라, 약탈물이 장막에 감춰져 있고 은이 그 밑에 있더라. 그들이 장막 가운데서 그것들을 꺼내어 여호수아와 모든 이스라엘 자손들에게로 가져와서 주 앞에 놓으니라. 여호수아가 모든 이스라엘과 더불어 세라의 자손 아칸과 은과 의복과 금덩이와 그의 아들들과 딸들과 소들과 나귀들과 양들과 장막과 그가 소유한 모든 것을 데리고 아콜 골짜기로 가져왔더라. 여호수아가 말하기를 “어찌하여 네가 우리를 괴롭게 하였느냐? 주께서 오늘 너를 괴롭게 하시리라.” 하고, 모든 이스라엘이 그를 돌로 치고 또 그들을 돌로 친 후에 불로 태우니라. 그들이 그 위에 큰 돌무더기를 쌓았더니 오늘까지 있더라. 그리하여 주께서는 그의 분노의 열화에서 돌이키시니라. 그러므로 그곳의 이름을 오늘까지 아콜 골짜기라 부르니라』(수 7:22-26). “아콜 골짜기”라는 이름의 유래를 보여 주는 아칸의 범죄 사건은 결국 그의 가족과 그가 소유한 모든 것의 파멸로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br/><br/>아칸의 범죄에 따른 심판과 관련해서는 몇 가지 해석이 있는데, 그 첫째가 아칸의 자녀들은 사형을 당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범죄의 결과를 지켜보게 하려고 심판의 현장에 있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해석은 25절의 『그를 돌로 치고 또 그들을 돌로 친 후에 불로 태우니라.』라는 말씀에서 “그들”(them)은 “은과 의복과 금덩이”(24절)라는 것입니다. 세 번째 해석은 아칸의 범죄 때문에 그의 가족이 몰살당한 것은 『범죄하는 혼은 죽으리라. 아들이 아비의 죄악을 지지 아니할 것이며 아비도 아들의 죄악을 지지 아니할 것이니 의인의 의는 그에게 있고 악인의 악도 그에게 있으리라.』(겔 18:20)라는 말씀에 위배되기 때문에 아칸의 가족이 죽었을 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해석들은 아칸 한 사람의 범죄로 인한 가족의 죽음이 이성적으로 이해가 안 되기 때문에 해석자들 스스로 “피할 길”을 마련해 보려 한 것에 불과합니다. <br/><br/><br/>아칸의 가족의 죽음과 관련된 또 한 가지 해석은 아칸의 가족이 그와 “공모”했기 때문에 죽임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아칸의 죄가 아닌 그들 자신의 죄로 인해 불태워졌다는 다소 일리 있는 해석입니다. 아칸이 여리코 성에서 가져온 바빌론제 옷 한 벌과 은 이백 세켈과 오십 세켈 무게의 금덩이를 그의 장막에 숨겼을 때 그의 가족이 몰랐을 리가 없기 때문에 그의 가족이 범죄에 연루되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가족이 몰랐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심지어는 아칸이 없는 가족을 누가 보살필까를 염려하신 하나님께서 그의 가족의 생명도 함께 취해 가시는 자비를 보이셨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br/><br/><br/><br/>우리가 위와 같은 해석을 접할 때 주의할 점은 과연 성경이 그 점을 말씀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아칸의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판결은 단순했습니다. 『주께서 택한 가족은 남자를 각각 불러낼지니라. 저주받은 물건과 함께 뽑힌 자는 그와 그가 소유한 모든 것을 불로 태울지니 이는 그가 주의 언약을 어기고 이스라엘에서 어리석은 짓을 행하였기 때문이라』(수 7:14,15). 주님께서는 그분께서 택하신 가족과 그 가족의 성인 남자를 강조하셨고, 그 남자와 그가 소유한 모든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그 남자로 인한 그의 가족의 죽음을 명하신 것인데, 이 점에 대해서는 아무런 이의를 달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그 남자(아칸)가 소유한 모든 것에 그의 가족을 포함시키셨고, 실제로 사형을 집행할 때에도 『세라의 자손 아칸과 은과 의복과 금덩이와 그의 아들들과 딸들과 소들과 나귀들과 양들과 장막과 그가 소유한 모든 것』(24절)을 아콜 골짜기로 데려왔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문맥이 이러하다면 우리는 아칸과 그의 가족의 처형을 다른 관점, 곧 죄와 관련된 “성경적인” 관점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br/><br/>성경에는 어떤 사람의 죄가 그 죄와 무관한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내용이 있습니다. <br/><br/>첫째, 아브라함이 잠시 그랄에 머무를 때의 일입니다(창 20:1). 그때 그랄 왕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그녀가 아브라함의 아내인 줄도 모르고 자신에게 데려갔는데, 하나님께서는 그 죄로 말미암아 아비멜렉은 물론, 그에게 속한 모든 자들이 죽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창 20:3). 아비멜렉이 데려온 사라는 분명 남의 아내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한 채 마음의 온전함과 손의 무죄함으로 그 일을 행했고, 하나님께서도 그 점을 인정하셨습니다(창 20:5,6).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의 아내를 모르고 데려온 일을 죄로 보신 것입니다. 아비멜렉은 자신을 속인 아브라함을 책망할 때 『내가 네게 무슨 죄를 지었기에, 네가 나와 내 왕국에 큰 죄를 가져왔느냐?』(창 20:9)라고 했는데, 이 점은 “간음에 근접한 것”도 큰 죄임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께서 아비멜렉의 죄로 인해 그에게 속한 자들까지도 죽이실 것이라고 하신 것은, 죄가 무고한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보여 줍니다.<br/><br/>둘째, 다윗의 자식들도 아비 다윗의 죄에 영향을 받아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다윗이 힛인 우리야의 아내인 밧세바와 간음하고 그녀의 남편 우리야를 죽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다윗 집안에 칼이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네가 힛인 우리야를 칼로 죽이고, 그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으며 암몬 자손의 칼에 그를 죽게 하였도다... 그러므로 이제 칼이 네 집에서 결코 떠나지 아니하리라... 내가 네 눈 앞에서 네 아내들을 취하여 네 이웃에게 주리니, 그가 대낮에 네 아내들과 더불어 동침하리라』(삼하 12:9-11). 우리는 이후 다윗 집안에 일어난 비극을 알고 있습니다. 암논이 압살롬의 누이 타말을 범한 일과 그 암논을 살해한 압살롬, 바로 그 압살롬이 아비인 다윗을 대적해서 일으킨 반역, 또 압살롬의 비극적 죽음 등 그 모든 것이 다윗 한 사람의 죄로 인해 일어났습니다. <br/><br/>위와 같은 경우들 외에도 아합 한 사람으로 인해 망해 버린 그의 집안사람들(왕상 21:21,22)과 바빌론 왕에게 항거한 시드키야의 죄로 죽임당한 그의 아들들과 유다의 고관들(렘 52:10), 다니엘을 고소했던 자들 때문에 함께 사자굴에 던져진 그들의 자녀들과 아내들(단 6:24) 등 성경에는 특정 인물의 죄가 그 죄와 아무런 관련도 없는 제삼자들에게 영향을 준 사건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아담 한 사람의 범죄로 인해 그 이후로 태어나는 모든 사람이 죄인으로 태어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롬 5:12). <br/><br/>성경에서 말씀하는 죄의 특별한 영향력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잘못으로 무고한 이들이 희생되는 일은 일상에서도 종종 목격됩니다. 일례로 택시 운전사나 열차 기관사의 잘못으로 사고가 나면 탑승객들이 다치거나 죽습니다. 자전거 경주에서 한 경주자의 탐욕으로 경주의 흐름이 끊어지자 함께 달리던 경주자들이 넘어져서 고통 속에 신음합니다. 평소 제방 관리를 허술하게 한 자들의 잘못으로 여름 장마에 둑이 무너지면 사망자와 이재민이 발생합니다. 도박에 빠진 가장 때문에 가족 전체가 거리에 나앉기도 하고, 누군가가 무단으로 투기한 음식물 쓰레기에 파리가 들끓어 이웃 주민들이 난데없는 파리떼의 습격(?)을 받기도 합니다.<br/><br/>『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군림하였으니 아담은 오실 분의 모형이라. 그 범죄와는 다르지만 그 값없는 선물도 그러하도다. 만일 한 사람의 범죄로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다면 더욱더 하나님의 은혜와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이 많은 사람에게 풍성하였느니라』(롬 5:14,15). 성경은 아담 한 사람의 죄가 그의 모든 후손을 죄의 노예로 만들었다고 강조합니다.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그 자신의 선택은 아닐지라도 일단 태어나면 한 사람 아담의 죄의 영향하에 놓이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한 사람의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선물이 많은 사람에게 풍성하였다는 데 희망이 있습니다. 온 인류를 사망에 빠뜨린 죄로부터 인류를 건져내 주실 “한 사람”이 계시는 것입니다. 그 “한 사람”의 영향력으로 온 인류가 살 수 있다면 세상은 바로 그 “한 사람”을 찾아야 합니다. 그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한 사람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심판이 모든 사람에게 임하여 정죄에 이른 것같이, 예수 그리스도 한 사람의 의로 말미암아 값없는 선물이 모든 사람에게 임하여 생명의 의롭다 하심에 이르렀다는(롬 5:18)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BB]]></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Thu, 15 Feb 2024 17:33:56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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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아브라함의 언약은 조건적인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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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CDATA[한승용 / 말씀보존학회 성경연구원<br/><br/><br/><br/><br/>질문<br/><br/><br/>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땅”을 주시겠다고 하신 약속은 무조건적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모세와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대적해서 죄를 지으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땅에서 “쫓아내실”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이 때문에 약속의 땅에 관한 아브라함의 언약이 정말로 무조건적인지 의문이 듭니다. 아브라함의 언약에 관해 성경적으로 자세하게 설명해 주십시오. <br/><br/><br/>답변<br/><br/><br/>문의하신 내용은 아브라함의 언약과 팔레스타인의 언약 사이에서 균형을 잡지 못해 일어나는 의문입니다. 우선 “아브라함의 언약”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조건 없이” 일방적으로 체결하신 언약임을 알아야 합니다. 『주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는데 “너는 네 고향과 네 친족과 네 아비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할 것이며 네게 복을 주고 네 이름을 위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되리라. 너를 축복하는 자들에게 내가 복을 주고 너를 저주하는 자를 저주하리라. 네 안에서 땅의 모든 족속들이 복을 받을 것이라.” 하셨더라』(창 12:1-3). 아브라함의 언약은 “너는 네 고향과 네 친족과 네 아비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라는 말씀으로 시작됩니다. 언약을 체결하시는 하나님의 첫 번째 관심사는 아브라함에게 보여 주실 “땅”에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큰 민족을 이룬다거나 복과 저주에 관한 내용은 이차적인 관심사입니다. 아브라함의 언약은 “땅”에 관한 것이며, 그가 그 땅에 도착했을 때도 주님께서는 여전히 “땅”에 관심을 보이셨습니다. 『아브람이 그 땅을 통과하여 세켐 땅 모레의 평지에 이르니, 그때에 카나안인들이 그 땅에 있더라. 주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시어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 땅을 네 씨에게 주리라.” 하시니, 그가 그곳에다 자기에게 나타나신 주께 제단을 쌓았더라』(창 12:6,7). “땅”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창세기 15장에서도 나타납니다. <br/><br/><br/><br/>『그날에 주께서 아브람에게 언약을 세워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 땅을 이집트 강에서부터 큰 강 유프라테스까지 네 씨에게 주었으니, 켄인들과 크니스인들과 캇몬인들과 힛인들과 프리스인들과 르파인들과 아모리인들과 카나안인들과 기르가스인들과 여부스인들의 땅이니라.” 하시니라』(창 15:18-21). 이 약속은 아브라함의 씨인 이스라엘 민족이 “자기 땅이 아닌” 이집트에서 타국인으로서 사백 년 동안 이집트인들을 섬긴 뒤에 하나님께서 그 이집트인들을 심판하시면(출애굽 열 재앙을 통한 심판) 큰 재물을 가지고 나와(창 15:13,14) “이집트 강에서부터 큰 강 유프라테스까지”의 비옥한 초승달 지역을 소유하게 될 것을 보여 줍니다. 여기에는 아무런 조건도 달려 있지 않았고, 다만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출애굽의 위대한 역사가 예언적으로 언급되어 있을 따름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출애굽 후 비옥한 초승달 지역이라는 거대한 땅을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하여 소유할 수도 있었지만 그들의 죄 때문에 역사적으로 지금까지 지연되고 있을 뿐입니다.<br/><br/><br/>독자께서 제기하신 의문점은 아브라함의 언약이 “진정으로 무조건적인가”에 있습니다. 그러한 의문은 다음과 같은 구절들에서 기인했습니다. 『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보라, 네가 네 조상들과 함께 자려니와 이 백성은 그들이 가서 그 가운데 거할 그 땅의 이방 신들을 쫓아 음란한 짓을 하러 가리니 나를 버리고 내가 그들과 맺었던 내 언약을 어길 것이니라. 그러면 그 날에 그들에 대한 내 분노가 일어나리니 내가 그들을 버릴 것이며 그들에게서 내 얼굴을 감출 것이요, 그들은 삼킴을 당하고 많은 재앙과 고난이 그들에게 미칠 것이며, 그 날에 그들이 말하기를 ‘우리의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거하지 않으시기에 이러한 재앙이 우리에게 임한 것이 아니냐?’ 하리라』(신 31:16,17). 『너희가 주 너희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명하신 그의 언약을 범하고 가서 다른 신들을 섬겨 절하면 주의 분노가 너희를 향하여 일어나리니, 그리하면 너희는 그가 너희에게 주신 그 좋은 땅에서 속히 멸망하리라』(수 23:16). 이와 같은 말씀들은 약속의 땅에서 죄지은 유대인들의 멸망을 뜻하는 것이지 “이스라엘”이라는 민족 자체의 소멸을 뜻하지 않습니다. 광야의 가시덤불이 불에 타면서도 소멸되지 않았듯이(출 3:2), 이스라엘 민족은 불길 같은 고난 속에서도 결코 소멸되지 않습니다. 『나는 주이므로 변경하지 아니하노라. 그러므로 너희 야곱의 아들들은 소멸되지 아니하느니라』(말 3:6).<br/><br/><br/>대부분의 학자들은 아브라함의 언약을 영적으로 해석하여 신약 시대의 교회에 적용하는 우를 범합니다. 즉 아브라함의 언약은 문자적인 이스라엘에게 성취되지 않으며 영적 이스라엘인 교회에게 성취된다는 것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이스라엘은 올리브 나무에서 꺾였다(롬 11:17,19).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언약을 신약 성도들에게 성취하실 것이다.”라는 식인데, 그들이 모르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결코”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끊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났으며 베냐민 지파라. 하나님께서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느니라』(롬 11:1,2).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이방인들의 죄가 충만하게 차기까지 이스라엘의 일부가 완고하게 된 것일 뿐이며,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다시 오실 때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주님께서는 구약성경에서 『구속주가 시온에게, 야곱 안에서 허물로부터 떠난 자들에게 오시리라. 주가 말하노라. 나에게는, 이것이 그들과 함께한 나의 언약이라. 주가 말하노라. 네 위에 있는 나의 영과 네 입에 둔 내 말들이 네 입에서와 네 씨의 입에서와 네 씨의 씨의 입에서 이제부터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리라. 주가 말하노라.』(사 59:20,21)라고 예언하셨고, 사도 바울은 그 예언을 신약성경에 인용하여(『기록된 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와서 야곱에게서 경건치 아니한 것을 제거하리라. 이는 내가 그들의 죄들을 없앨 때 그들에 대한 나의 언약이 이것임이니라.” 함과 같으니라.』 - 롬 11:26,27), “이스라엘의 구원과 회복”에 관한 구약의 예언이 신약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함을 분명히 했습니다. 즉 복음에 관하여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지만 선택에 있어서는 그들의 조상으로 인하여 사랑받고 있다는 것입니다(롬 11:28). 비록 이스라엘 민족이 그들의 메시아를 거부하고 십자가에 처형한 죄가 있다 해도 하나님께서는 그 민족을 선택하신 일을 결코 후회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가 없으심이니라.』(롬 11:29)라는 말씀이 바로 그런 뜻입니다.<br/><br/>모세의 언약은 조건적이지만(출 19:5,6), 아브라함의 언약은 무조건적입니다. 아브라함과 그의 씨에게 약속의 땅을 주시겠다는 이 언약은 무조건적인 것을 넘어서 “영원하기”까지 합니다! 『이는 네가 보는 모든 땅을 내가 네게 줄 것이며, 네 씨에게 영원히 주고』(창 13:15). 『내가 나와 너와 네 뒤에 올 네 씨 사이에 대대로 내 언약을 세우리니,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씨의 하나님이 되리라. 내가 너와 네 뒤에 올 네 씨에게 네가 타국인으로 있는 땅, 즉 카나안의 모든 땅을 주어 영원한 소유가 되게 하며,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하시니라』(창 17:7,8). 『네 집에서 태어난 자든지 네 돈으로 산 자든지 할례를 받아야만 하리니, 내 언약이 영원한 언약이 되어 너희 살에 있을 것이라』(창 17:13). <br/><br/>이처럼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영원한” 언약에 근거하여 아브라함의 육적 씨인 이스라엘은 그 약속의 땅을 “영원히” 소유해야 합니다. 한 가지 문제는 역사적으로 확인된바 그들이 그 땅에서 죄를 지으면 쫓겨난다는 것인데, 땅에 대한 소유권을 영원히 박탈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징계를 통해서 바로잡아 그 땅으로 회복시키신다는 것이며, 이 부분이 “팔레스타인의 언약”의 결론에 해당됩니다. 『내가 네 앞에 둔 복과 저주, 즉 이 모든 것이 네게 임하므로 네가 주 너의 하나님께서 너를 쫓아내셨던 모든 민족들 가운데서 그것들이 마음에 생각나서 주 너의 하나님께 돌아와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모든 것대로 너와 네 자손이 네 마음을 다하고 네 혼을 다하여 그분의 음성에 복종하면 그때는 주 너의 하나님께서 네 사로잡힘을 돌이키시고 너를 긍휼히 여기시어 주 너희 하나님께서 너를 흩으셨던 모든 민족들로부터 너를 돌이켜 모으시리라』(신 30:1-3). 약속의 땅에서의 복과 저주를 다루는 팔레스타인의 언약(신 28-30장)은 결국 아브라함의 언약을 이루기 위한 언약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약속의 땅에서 쫓아내어 고난 속에 넣는 징계를 통해서라도 그 민족을 약속의 땅을 소유하기에 적합한 민족으로 만들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그 일을 『야곱의 고난의 때』(렘 30:7), 곧 『대환란』(마 24:21)을 통해서 이루실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대환란이라는 전무후무한 대재앙의 “징계”를 통과해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거룩한 민족이 되어 약속의 땅을 영원히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BB]]></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Thu, 15 Feb 2024 14:16:39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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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여리코 성을 진멸하신 “사랑의 하나님”</title>
<link>https://biblemaster.co.kr/bb3/%EC%97%AC%EB%A6%AC%EC%BD%94-%EC%84%B1%EC%9D%84-%EC%A7%84%EB%A9%B8%ED%95%98%EC%8B%A0-%EC%82%AC%EB%9E%91%EC%9D%98-%ED%95%98%EB%82%98%EB%8B%98/</link>
<description><![CDATA[한승용 / 말씀보존학회 성경연구원<br/><br/>질문<br/><br/>「하나님을 흔히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하지만 성경에는 그 점을 의심케 하는 내용들이 있습니다. 특히 여리코 성을 무너뜨리고 그곳 사람들과 짐승들을 모두 멸한 사건이 그렇습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다 죽이고 재산을 어찌 그리 무자비하게 파괴한 것인지, 그 일이 과연 사랑의 하나님과 어울리는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<br/><br/>답변<br/><br/>문의하신 내용은 성경에 다음처럼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하여 제사장들이 나팔을 부니 백성들이 소리질렀더라. 백성들이 나팔 소리를 듣자 큰 소리로 소리를 지르니 성벽이 완전히 무너져 내린지라. 백성들이 각자 자기 앞으로 곧장 성읍으로 들어가서 그 성읍을 취하니라. 그들은 칼날로 성읍에 있는 모든 것을 완전히 멸하였으니 남녀노소와 소와 양과 나귀라』(수 6:20,21). 여호수아가 이끄는 이스라엘 군대가 이처럼 잔인한 파괴를 행한 것은 아래와 같은 명령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주 너의 하나님께서 네게 유업으로 주시는 이 백성들의 성읍들에서는 호흡이 있는 것들은 아무것도 살려 두지 말지니, 즉 힛인들과 아모리인들과 카나안인들과 프리스인들과 히위인들과 여부스인들이라. 주 너의 하나님께서 네게 명령하신 대로 너는 그들을 완전히 멸할지니, 이는 그들이 그들의 신들에게 행했던 그들의 가증한 것들을 행하도록 너희를 가르치지 않게 하여, 너희가 주 너희 하나님께 대하여 그처럼 죄를 짓지 않게 하려 함이라』(신 20:16-18).<br/><br/>&nbsp;<br/><br/>신명기의 이 말씀은 주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이 기나긴 광야 생활을 끝내고 모압 땅에 도착했을 때 주어진 것으로, 이스라엘이 카나안 땅에 들어가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 담겨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군대 대장으로 세움 받은 여호수아의 지휘 하에 카나안 땅 정복전쟁을 치러야 했는데, 『네게 유업으로 주시는 이 백성들의 성읍들』에 대해서는 매우 잔인한 심판을 내려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의 유업인 카나안 땅은 그 경계선 밖의 이방인 지역과 달리 이스라엘 고유의 영토가 될 것이므로 그 땅 안에는 하나님의 백성을 죄로 더럽히는 그 어떤 것도 남아 있어서는 안 되었기 때문입니다. 위의 말씀에서 『주 너의 하나님』과 『주 너희 하나님』이라는 말씀에 주목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오직 이스라엘 민족과만 관계를 맺으신 분이십니다.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출 24:10)이시지 다른 이방 민족의 하나님이 아니신 것입니다.<br/><br/>하나님께서는 그분 자신이 친히 출애굽시키신 백성이 카나안 땅에 들어간 뒤 죄로 더럽혀지는 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그 땅의 이교도들이 자신들의 신들에게 행하던 가증한 짓들을 이스라엘이 배워 주님께 죄 짓는 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그렇기에 그 땅의 이교도들을 “완전히” 멸하여 그들의 씨와 우상 숭배의 흔적까지도 다 없애 버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주께서 여리코 근처 요단 옆 모압 평지에서 모세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그들에게 말하라. ‘너희가 요단을 건너 카나안 땅으로 들어가거든, 그 땅 거민을 너희 앞에서 다 몰아내고 그들의 모든 그림들을 파괴하고 모든 부어 만든 형상들을 다 파괴하며 산당들을 다 뽑아 낼 것이며 너희는 그 땅의 거민을 다 쫓아내고 그곳에 거하라. 이는 내가 그 땅을 너희에게 주어 소유케 하였음이라』(민 33:50-53).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들어가야 할 카나안 땅은 영적으로 깨끗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약속의 땅에 데려오신 시점은 “그 땅의 죄악이 가득 차서” 더 이상 참을 수 없으신 때였습니다. 이 점을 알 수 있게 하는 것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입니다. “그 땅의 죄악이 가득 차면” 아브라함의 후손(이스라엘)을 이집트의 압제에서 벗어나게 하여 카나안 땅에 돌아오게 하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주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분명히 알지니 네 씨가 자기 땅이 아닌 곳에서 타국인이 되어 그들을 섬길 것이요, 그들이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겠고 그들이 섬길 그 민족을 내가 또한 심판하리니, 그 후에 그들이 큰 재물을 가지고 나오리라. 너는 평안히 네 조상들에게로 갈 것이며, 너는 충분히 늙은 나이에 장사될 것이라. 그러나 사 대 만에 그들이 이곳으로 다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인들의 죄악이 아직 다 차지 않았음이라.” 하시니라』(창 15:13-16).<br/><br/>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이 카나안 땅에 들어올 시점에 자행되고 있던 그곳 이교도들의 죄악은 레위기 18장에 계시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것을 『카나안 땅의 행실』(3절)이라고 하셨으며, 다양한 “근친상간”과 “간음”이 주를 이루고(6-20절), “자식을 몰렉에게 불태워 바치는 일”(21절)과 “동성연애”(22절), “짐승과의 교접”(23절)이 더해집니다. 이것은 상식적인 눈으로 봐도 매우 가증스럽고 추악한 죄들입니다. 주님께서는 그와 관련하여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이런 것들 중 어떤 것으로도 자신들을 더럽히지 말지니라. 이는 내가 너희 앞에서 쫓아내는 민족들이 이런 모든 일들로 더럽혀졌으며 그 땅도 더럽혀졌음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 위에 있는 죄악을 벌하고 그 땅도 스스로 그 거주자들을 토해 내느니라.』(24,25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라합과 그녀의 가족을 제외한 여리코 성의 모든 것을 진멸케 하신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입니다. 여리코 사람들의 어린 자녀들까지도 멸해 버리신 것은 그 우상 숭배자들의 씨들이 성장하면 하나님의 백성에게 영향을 주어 주님께 죄를 짓게 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약속의 땅에 있는 악의 씨 또한 하나님께서 진멸하실 대상이었습니다.<br/><br/>문제의 여리코는 “저주받은 성읍”이라 불립니다. 『이 성읍, 즉 성읍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주께 저주받을 것이라』(수 6:17). 이어지는 구절에서는 『너희는 어찌하든 저주받은 물건으로부터 스스로 주의하여 저주받은 물건을 취해서 너희 자신도 저주받지 않도록 하고 이스라엘의 진영으로 저주를 받거나 고통을 당하지 않도록 하라.』(18절)라고 경고합니다. “저주받은 성읍”의 “저주받은 물건”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멸망하게 될 저주받은 성읍, 곧 “큰 바빌론”과 그것의 “저주받은 물건”을 떠오르게 합니다. 『마귀들의 거처가 되었고 온갖 더러운 영의 소굴이요, 모든 더럽고 가증한 새의 소굴』인 『큰 바빌론』(계 18:2)에게는 땅의 상인들이 그녀와 거래한 상품들이 있었습니다. 그 “저주받은 상품”은 금, 은, 보석에서 시작하여 진주, 세마포, 자주색 옷감, 비단, 주홍색 옷감 등으로 이어지다가 맨 끝에 가면 심지어 “사람들의 혼들”까지도 포함합니다(12,13절). 여기서 큰 바빌론은 로마카톨릭을 뜻하는데, 이처럼 그들은 사람들의 혼들까지도 돈을 버는 데 이용합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니』(딤전 6:10). 로마카톨릭은 그 모든 악의 뿌리가 견고히 내린 종교 집단인 것입니다. 인간의 혼을 상품화한 그들은 “혼들”을 “돈”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 바빌론 종교 안으로 흘러들어가서 저주받은 행위 구원 교리를 받아들인 혼들과 그 종교를 수용하고 타협한 세상의 모든 혼들은 요한계시록 18장의 “저주받은 상품들”인 셈입니다. 그들은 로마카톨릭에 동조했기에 이용당한 것입니다. 그 저주받은 혼들은 지옥에 가게 됩니다. 우리는 바티칸의 교황이 전 세계인을 향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추기경과 사제, 수녀들 입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지 않으면 당신은 지옥에 갈 것입니다!”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매주 미사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변했다는 발효된 포도주에 취하고, 중들처럼 염주나 돌리고 있는 그들이 말하는 것은 세계 평화와 아기 예수, 성모 마리아뿐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대신 마리아를 택한 그들은 이미 정죄받았음을 알아야 합니다(요 3:36). [본 글 뒤에 나오는 「영원히 보존하신 말씀」, 「핼러윈 진단」, 「기자 논단」 코너에서 로마카톨릭의 이단적 실행을 또한 다루고 있으니 참고하기 바랍니다 - 편집자 주.]<br/><br/>“하나님의 사랑”은 갈보리 십자가에서 “죄에 대한 심판”으로 나타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아들께 우리의 죄를 옮기시고 그 아들을 우리 대신 심판하셨습니다. “사랑의 하나님”을 오해하지 마십시오. 사랑의 하나님은 결코 죄를 묵과하는 분이 아니십니다! 여리코 성의 죄를 묵과하지 않으신 것처럼, 다른 모든 사람들의 죄 또한 묵과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과거에 죄로 저주받은 혼들이었지만 예수님의 피의 공로를 힘입어 그 저주에서 벗어났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가 되셔서 율법의 저주로부터 우리를 구속하셨으니 기록되기를 “나무에 매달린 자는 누구나 저주받은 자라.”고 하였도다』(갈 3:13). 그러므로 우리는 더 이상 저주받은 혼들이 아닙니다. 그러나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혹시 내게 죄로 저주받은 것이 없는지 살펴야 합니다. 죄 때문에 지옥에 가지는 않아도 죄로 인해 육신의 생명이 짧아질 수 있습니다(고전 11:29,30). 육신을 따라 살면 죽고(롬 8:13), 하나님의 성전인 자신의 몸을 죄로 더럽히면 하나님께서 멸하실 수 있습니다(고전 3:17). 죄의 저주에서 벗어난 그리스도인은 “저주받은 죄”를 안고 살아서는 안 됩니다. BB]]></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Tue, 07 Feb 2023 17:06:45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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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하나님께 가증한 옷차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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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CDATA[질문<br/><br/>｢신명기 22:5에는 하나님께서 가증하게 여기시는 옷차림이 나옵니다. 사실 “옷차림”이라는 것은 개인의 기호 또는 문화적인 선호의 문제 아닐까요? 하나님께서 인간의 옷차림까지 규제하시는 것은 인간에게 자유 의지를 주신 창조주께서 지나치게 간섭하시는 것으로 보입니다.｣<br/><br/>답변<br/><br/>먼저 위에서 문제의 구절로 제시한 신명기 22:5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자는 남자에게 속한 옷을 입지 말 것이며 남자도 여자의 의복을 입지 말지니 이는 그렇게 행하는 모든 자는 주 너의 하나님께 가증함이니라.』 남녀 간의 “옷의 구분”은 기본적으로 하나님께서 “분리의 하나님”이심을 보여 주는데, 이 점은 같은 장 9-11절에서 다른 유형으로도 강조되고 있습니다. 『너는 네 포도원에 여러 가지 씨앗을 함께 뿌리지 말지니 네가 뿌린 네 씨앗의 열매와 네 포도원의 열매가 더럽혀지지 않게 하려는 것이니라. 너는 수소와 나귀를 함께하여 밭을 갈지 말지니라. 너는 양털과 베실로 함께 짠 것같이 여러 가지로 섞어 짠 옷을 입지 말지니라.』 하나님께서는 인류도 “세 인종”으로 나누셨듯이(창 9:18,19) 기본적으로 분리를 좋아하는 분이신데, 유대인들에게 주신 이 율법 안에도 작물과 짐승과 옷감과 연관된 “분리 명령”이 제시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에게 이런 엄격한 규정을 주신 것은 그처럼 분리를 생활화함으로써 유대인이 이방인으로부터 분리되어야 한다는 진리를 체득하게 하시려는 데 목적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는 먹을 수 있는 “정결한 짐승”과 먹을 수 없는 “불결한 짐승”을 나누심으로써(레 11장) 유대인들이 식생활에서도 분리의 정신을 배우도록 하셨습니다.<br/><br/>&nbsp; 한편 문제로 제시된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명령으로 주신 신명기 22:5의 규정은 “분리와 관련된 다른 율법들”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씨를 섞어서 뿌리거나 소와 나귀를 함께하여 밭을 가는 것을 금하는 차원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을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그것은 인간의 옷차림과 인간의 본성이 갖는 관계를 다루는 율법인 것입니다. 남자의 몸에는 남자 옷을 걸쳐야 하고 여자의 몸에는 여자 옷을 걸쳐야 한다는 것은 천성적으로 누구나 인지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옷차림은 인간 자신의 본성으로 깨닫고 택할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도 남녀의 옷차림에 관해 그것이 어떠어떠해야 한다고 일일이 기준을 제시하시지 않고, 다만 여자는 남자에게 속한 옷을 입어서는 안 되고 남자는 여자에게 속한 옷을 입어서는 안 된다고만 하셨습니다. 어떤 것이 남자 옷이고 어떤 것이 여자 옷인가는 너무나 빤한 사실이므로, 서로 다른 성에 속한 옷인 줄 알면서도 고의로 착용하는 것에 대해서만 금지하신 것입니다.<br/><br/>&nbsp; 인간 상호 간의 관계는 “성의 구분”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남자와 여자로 구분된 두 성이 만남으로써 가정이 형성되고 사회가 구성되어 인류의 역사가 진행되어 왔습니다. 창조주께서 남녀의 역할에 대해 분명한 선을 그어 주셨기 때문에(창 3:16-19), 옷차림에서 오는 혼란은 두 성의 만남으로 이뤄지는 역할 관계에 대혼란을 가져오게 됩니다. 남자가 여자에게서 느껴야 할 성적 매력을 여장 남자에게서 느끼고, 여자가 남자에게서 느껴야 할 성적 매력을 남장 여자에게서 느끼게 되면, 음란한 “사회적 동성애 분위기”에 불을 지피는 결과를 초래할 것입니다.<br/><br/>&nbsp; 요점은 주님께서 남녀가 서로의 옷으로 바꿔 입는 것을 가증하다고 말씀하신 데는 “본성을 거스르는 성적 범죄”가 자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본성을 거슬러 육신을 치장할 때는 반드시 성적인 문제가 결부되어 있습니다. 이 점을 신약성경에서도 정확히 지적하고 있는데, 사도 바울은 그것을 “헤어스타일”의 관점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또 남자가 긴 머리를 하고 있다면 그것이 자신에게 수치가 된다는 것을 본성 그 자체까지도 너희에게 가르치고 있지 아니하느냐?』(고전 11:14) 이 구절은 “남자의 머리” 문제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남자가 긴 머리를 하고 있을 때 그것이 남자 자신에게 수치가 된다는 것이 “본성”조차 그에게 가르치고 있다는 말씀은, 남자의 머리 문제에 관한 한 굳이 성경을 펼쳐 보지 않아도 본성적으로 알 수 있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남자가 긴 머리를 할 때 그의 본성이 그 자신에게 경고음을 발할 것인데, 이 본성의 경고를 무시하고 머리를 여자처럼 하고 다닌다면 그다음 순서 역시 본성을 거스르는 성적 문란이 따라올 것입니다. 본성을 거슬러 머리를 여자처럼 하고 다니는 남자들은 필경 성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br/><br/>바울은 그 점을 다음과 같이 지적했습니다. 『그들은... 썩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의 형상과 새들과 네 발 달린 짐승들과 기어다니는 것들과 같은 형상으로 바꾸었도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도 그들을 자기들의 마음의 정욕에 따른 더러움에 내버려 두시어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도록 하셨으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말로 바꾸어 피조물을 창조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겼음이라... 이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그들을 수치스러운 욕정에 내버려 두셨으니 심지어 그들의 여자들까지도 본래대로 쓰는 것에서 본성을 거역하는 것으로 바꾸었음이라. 마찬가지로 남자들도 여자들을 본래대로 쓰는 것에서 벗어나 서로 음욕이 불일 듯하니 남자들이 남자들과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자기 자신들에게 받았느니라. 뿐만 아니라 그들은 자기들의 지식 가운데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니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림받은 마음에 내버려 두시어 온당치 아니한 일을 하게 하셨도다』(롬 1:22-28).<br/><br/>&nbsp; 위 말씀을 문맥적으로 보면, 동성애 같은 성적 범죄, 곧 본성을 거스르는 성적인 죄악은 피조물을 창조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긴 죄인들에게 주어진 보응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 버릴 피조물”의 형상으로 바꾸었더니, 하나님께서도 그 마음의 더러운 정욕에 그들을 내버려 두시어 남녀가 본성을 거슬러서 동성애의 죄에 빠지도록 내버려 두신 것입니다. 그들은 수치스러운 욕정에 내버려졌고, 같은 성끼리 부끄러운 일을 행함으로써 AIDS와 같은 질병으로 상당한 보응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자들의 마음을 “버림받은 마음”이라고 말씀하셨는데, 하나님께서 버리신 마음이라면 그것은 쓰레기통에 버려진 쓰레기와 같아서 그런 마음의 소유자는 마땅히 혼들의 소각장인 “지옥 불” 속으로 던져져야 합니다.<br/><br/>&nbsp; “본성”이란 하나님께서 설정해 놓으신 자연의 순리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순리를 거슬러 다른 성을 따라 옷을 입거나 여자처럼 머리를 기른 남자들은 자연의 순리를 거역한 소위 “성적 변태들”입니다. 성경에서 “죄인”이란 단어가 최초로 언급되는 곳은 창세기 13:13인데, 거기에서 “소돔의 동성애자들”을 “죄인들”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소돔인들은 사악하였고 주 앞에 극심한 죄인들이었더라.』 우리는 인간 본연의 성적 본성을 거슬러서 동성애에 빠진 자들을 단순히 “죄인”이라 하시지 않고 “사악한 죄인,” 곧 “주님 앞에 극심한 죄인”이라고 부르시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인간이 자신의 본성을 거슬러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영원한 정죄를 받아 마땅한 “극악한 죄”라는 것입니다.<br/><br/>&nbsp; 그처럼 본성을 거스르는 죄악은 아담의 타락으로 인해 이 땅에 있게 되었고, 그것은 인류 역사 6천 년을 관통해 왔습니다. 그 죄는 대환란 때까지 그치지 않고 갈수록 심해질 것입니다. “적그리스도” 역시 동성애자일 것이라는 사실이 성경에 예언되어 있는데(『그는... 여자들의 원하는 바를 개의치 않으며』, 단 11:37), 그를 숭배하는 죄인들은 동성애에 대해 얼마나 더 열광하겠습니까? 자신들의 세계 지도자가 공공연한 동성애자라면 그 동성애자를 숭배하는 세상 역시 동성애자 천지가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입니다. 재림을 앞둔 그리스도인이 무엇보다도 관심을 가져야 할 구절은 갈라디아서 5:19-21인데, 거기서 가장 먼저 제시하는 육신의 일들 가운데 “첫 네 가지”가 모두 성적 범죄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큽니다. 『이제 육신의 일들은 분명히 나타나나니 곧 간음과 음행과 더러운 것과 음욕과』(19절). 이러한 성적인 범죄들은 문맥상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하게 하는 죄들 가운데 최선두에 제시되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6:9,10에서는 “여자처럼 행세하는 자들”도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불의한 자는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한다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간음하는 자들이나 여자처럼 행세하는 자들이나 남자 동성 연애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하리라.』 옷차림의 분리는 신약 교회 시대에도 유효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천년왕국에서 통치할 땅을 유업으로 받느냐 못 받느냐가 남자는 남자답게 행하고 여자가 여자답게 행하는 것과도 관련 있다는 것은 반드시 주목해야 할 매우 흥미로운 진리인 것입니다.&nbsp; BB]]></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Fri, 05 Aug 2022 16:34:42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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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동성애에 관한 그리스도인의 관점</title>
<link>https://biblemaster.co.kr/bb3/%EB%8F%99%EC%84%B1%EC%95%A0%EC%97%90-%EA%B4%80%ED%95%9C-%EA%B7%B8%EB%A6%AC%EC%8A%A4%EB%8F%84%EC%9D%B8%EC%9D%98-%EA%B4%80%EC%A0%90/</link>
<description><![CDATA[질문<br/><br/>&nbsp; ｢매년 전 세계적으로 동성애 축제가 활발히 벌어집니다. 기독교계는 동성애를 찬성하는 교회들과 반대하는 교회들로 나누어져 있는데, 동성애가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 속에서 교회들도 편승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성도로서 무엇을 택해야 할까요?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가져야 할 동성애에 관한 성경적인 관점을 알려 주십시오.｣<br/><br/>답변<br/><br/>&nbsp; 동성애에 관한 이슈는 사회적으로뿐만 아니라 교회들 안에서도 아주 오래전부터 찬반양론이 있어 왔습니다. 인간이 자기 본성을 거슬러서 자기 몸을 순리대로 사용하지 않는 것은 양심이 죽어 있다는 증거일 뿐 아니라 지켜보는 이들에게 역겨움을 일으키기에 충분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도 그들을 자기들의 마음의 정욕에 따른 더러움에 내버려 두시어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도록 하셨으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말로 바꾸어 피조물을 창조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겼음이라. 하나님은 영원토록 찬양받으실 분이로다. 아멘. 이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그들을 수치스러운 욕정에 내버려 두셨으니 심지어 그들의 여자들까지도 본래대로 쓰는 것에서 본성을 거역하는 것으로 바꾸었음이라. 마찬가지로 남자들도 여자들을 본래대로 쓰는 것에서 벗어나 서로 음욕이 불일 듯하니』(롬 1:24-27), 이 부끄러운 짓은 역겹기 그지없는 더러움 그 자체인 것입니다.<br/><br/>&nbsp; 최근에 영국에서 개최된 프라이드 퍼레이드(Pride Parade) 50주년 기념행사는 지난 2년간 코로나로 인해 중단되었다가 열린 매우 큰 대회였습니다. 7월 3일에 런던 거리가 무지개색으로 도배되었는데, 운집 인원만 100만 명이 넘는 역사상 최대 규모의 대회였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lt;킹제임스성경&gt;의 나라인 영국이 미쳐 버린 것입니다. 원래 영국은 1861년까지는 “동성애자를 사형”시킬 수 있는 법률을 유지하고, 동성애 죄수를 대상으로 한 마지막 교수형이 1835년에 집행된 나라였습니다. 그러던 영국이 1967년에 잉글랜드와 웨일스가 먼저 21세 이상 성인의 동성애와 양성애를 합법화했고, 그 뒤 스코틀랜드(1980년)와 북아일랜드(1982년)가 성 소수자라는 자들을 법적으로 인정했습니다. 올 1월에는 합의된 동성 간의 성행위로 과거에 유죄 판결을 받았던 남성들을 영국 정부가 일괄 사면하고 그 전과 기록을 삭제하기로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러더니 지난 7월 3일 무려 100만 명이나 운집한 대규모 동성애 기념행사가 개최되어 런던이 무지갯빛 쑥대밭이 되었던 것입니다.<br/><br/>&nbsp; 그날 행사는 1967년에 동성애가 합법화되고 1972년에 수백 명의 동성애자들이 처음 시작한 “게이 퍼레이드”를 그로부터 50년째 되는 2022년에 기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날 “LGBTQ” 단체 600여 개가 참가해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즐겼다고 하는데, 이 LGBTQ라는 용어가 기가 찹니다. 왜냐하면 레즈비언(lesbian, 여성 동성애자), 게이(gay, 남성 동성애자), 바이섹슈얼(bisexual, 양성애자), 트랜스젠더(transgender, 성전환자), 퀴어(queer, 성 소수자 전반) 혹은 퀘스처닝(questioning, 성 정체성에 관해 갈등하는 사람)을 통칭해서 그 이니셜을 따 LGBTQ라고 부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동성애자를 비롯한 모든 성적 변태들이 LGBTQ라는 이름으로 뭉쳤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죄는 다른 죄를 끌어들여 번식하기 마련입니다. 그러한 성적 변태들의 단체가 600개나 동원되고, 군인, 구급대, 대학 조직과 단체들도 동참했을 뿐만 아니라 정치인들과 유명 연예인들도 대거 모습을 비친 것이 지난 7월 3일의 런던 행사였습니다. 당시 영국 총리였던 보리스 존슨은 “누구든 사랑할 수 있고, 어떤 사람이든 될 수 있는 나라를 이끄는 것이 자랑스럽다.”라고 했는데, 이 사람이 그 뒤에 어떻게 된 줄 아십니까? 앞선 6월 30일에 남성 2명을 성추행한 크리스토퍼 핀처 하원의원을, 지난 2019년에도 성 비위가 있었던 그 인물을 보수당 원내부총무로 임명한 것이 화근이 되어 총리직을 내려놔야 했던 것입니다. 그는 2019년의 그 사건을 몰랐다고 발뺌했지만 그것이 거짓말임이 들통 났고 그런 총리를 신뢰할 수 없다며 장관들이 줄사표를 내는 바람에 존슨이 직접 자신의 거짓 해명을 시인하고 사퇴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존슨을 실각케 한 거짓말은 다른 데 있었습니다. 즉 영국이 “누구든 사랑할 수 있고, 어떤 사람이든 될 수 있는 나라”라는 거짓말이 그것입니다. 영국은 동성애자를 사형시켰던 &lt;킹제임스성경&gt;의 나라이지 인간이 자기 본성을 거슬러서 누구와도 성관계를 할 수 있고 LGBTQ 중 어떤 사람이든 될 수 있는 나라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보리스 존슨은 동성애자들과 관련된 거짓말을 두 번이나 했고, 따라서 스스로 사임해야 했습니다.<br/><br/>&nbsp; 지난 7월 16일에는 대한민국의 서울에서도 동성애 축제가 있었는데, 원래 동성애자들의 축제는 매년 6월 전 세계적으로 개최됩니다. 코로나로 중단되었다가 올 7월에 다시 열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날 필립 골드버그 신임 주한 미국 대사가 연단에 올라 성소수자 지지 연설을 했는가 하면, 그를 포함한 네덜란드, 뉴질랜드, 노르웨이, 덴마크, 독일, 스웨덴, 아일랜드, 영국, 캐나다, 핀란드, 호주 등 총 12명의 대사가 무대에 올라 차례로 성소수자 인권 지지 연설을 했습니다. 이제 정치와 동성애는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br/><br/>&nbsp; 동성애는 성경에서 최초로 “죄인”이라 언급되는 자들의 대표적인 죄였습니다. 『그러나 소돔인들은 사악하였고 주 앞에 극심한 죄인들이었더라』(창 13:13). 이 소돔인들은 창세기 19장에서 두 천사가 롯의 집에 머물렀을 때 롯을 불러서 말하기를 『오늘 밤 네게 온 사람들이 어디 있느냐? 그들을 우리에게로 데려오라. 우리가 그들을 알고자 함이라.』(창 19:5)라고 했던 자들입니다. 사실 아담도 죄를 짓고 카인도 살인죄를 범했지만 특히 “소돔의 동성애자들”을 가리켜서 『주 앞에 극심한 죄인들』이라고 말씀하고 계시는데 우리는 이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러므로 남자가 자기 아버지와 자기 어머니를 떠나서 자기 아내와 결합하리니, 그들이 한 몸이 될 것임이니라.』(창 2:24)라는 원래의 명령에서 벗어나 남자와 남자, 여자와 여자가 성적으로 결합하는 자들을 가리켜서 『주 앞에 극심한 죄인들』이라고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br/><br/>&nbsp; 구약성경에서는 남색자를 “소도마이트(sodomite)”라고 하는데(신 23:17, 왕상 14:24; 15:12; 22:46, 왕하 23:7), 이는 남색(男色)이 소돔인들의 상징적인 죄임을 보여 줍니다. 소돔인들이 『주 앞에 극심한 죄인들』이었다면 그들의 남색(sodomy)은 『주 앞에 극심한』 “죄”인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 극심한 죄에 대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을 사람이 금지한다.”라고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성 소수자의 성적 정체성도 하나님이 한 사람에게 주신 원래 그대로의 모습이다. 특정 성적 지향에 대한 배제와 차별의 선을 인간이 그을 수 없다.”라는 궤변을 늘어놓으며 동성애를 공공연히 지지하는데, 동성애를 그렇게 좋게 여기며 동조하는 자들(롬 1:32) 역시나 『주 앞에 극심한 죄인들』일 뿐입니다. 죄를 죄로 보지 않는 자들은 동성애가 하나님께서 구약의 이스라엘에게 사형을 선고하실 정도로 극심한 죄라는 점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너는 여자와 함께 하듯 남자와 동침하지 말라. 그것은 가증함이니라... 이러한 가증함들 중 어느 것을 범하는 누구라도 그것을 범하는 혼들은 자기 백성 가운데서 끊어지리라』(레 18:22,29). 『어떤 남자가 여자와 동침하듯 남자와 동침하면 그들은 가증한 짓을 행한 것이니 그들을 반드시 죽일 것이며 그들의 피가 그들 위에 있으리라』(레 20:13).<br/><br/>&nbsp; 하나님께서는 결코 동성애를 허락하신 적이 없습니다. 동성애에 대한 “사형 선고”는 신약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데, 수치스러운 욕정에 내버려진 자들이 자신의 본성을 거역하여 서로 음욕이 불일 듯함으로 부끄러운 일을 행한다는 점에 관해서 『이 같은 일을 행하는 자들이 마땅히 죽음에 처해져야 한다는 하나님의 심판』을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롬 1:26,27,32). 동성애에 대한 심판은 육체적 죽음에서 머물지 않고 사후에 지옥에서 영원히 불타는 형벌로 귀결됩니다. 왜냐하면 죄의 삯은 사망이고(롬 6:23) 그 뒤에 심판이 정해져 있으며(히 9:27), 그 심판은 악인과, 하나님을 잊어버린 모든 민족들까지도 지옥에 던져 넣는 심판이기 때문입니다(시 9:17). 과거 영국이 동성애자들에게 사형을 집행했던 역사적 사실을 친동성애자들은 반인권적인 문제로 보지만, 성경적으로 보면 영국의 그러한 법집행은 지극히 성경적인 심판이었습니다.<br/><br/>&nbsp;동성애는 소위 교회라는 곳들에서도 오래전부터 논쟁의 도마에 올라 있습니다. 교회라 해서 특별한 것이 아니라, 바른 말씀과 바른 진리의 지식을 거부한 곳은 교회라는 종교적 형식만 갖췄을 뿐 세상과 다를 바 없습니다. 현 세상이 친동성애와 반동성애로 나뉘듯이, 교회라는 곳들도 양분되어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멋모르고 그러한 곳들에 가 앉아 있는 사람들은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동성애자이거나 그와 유사한 성적 변태에 속할 시에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실 상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불의한 자는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한다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속지 말라. 음행하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하는 자들이나 간음하는 자들이나 여자처럼 행세하는 자들이나 남자 동성 연애자들이나 도둑질하는 자들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들이나 주정뱅이들이나 욕설하는 자들이나 착취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하리라』(고전 6:9,10). 성경에서 “상속”은 땅을 유업으로 받는 것을 말하는데, 그리스도인이라는 남자가 여자 옷을 입고 여자처럼 행세하거나 동성애를 저지른다면, 또 앞서 언급한 LGBTQ 중 어느 한 가지 성적 성향에 속한다면 주님께서는 그에게 천년왕국에서 통치할 땅을 상속해 주지 않으실 것입니다. <br/><br/>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했다면 구원이 영원히 보장되어 죄를 지어도 구원을 잃어버리지는 않겠지만, 교회가 휴거되어 그리스도인 각자가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으로 불려나갔을 때 각인이 처할 상황이 달라질 것입니다. 즉 지상에서 성령께서 거하시는 성도 자신의 몸, 곧 『하나님의 성전』(고전 3:16)을 동성애와 같은 음행을 위해 쓴 자에게는 심판석에 앉아 계신 그리스도께로부터 두렵고도 강한 책망이 주어질 것이고, 그에게는 어떤 유업도 주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br/><br/>&nbsp; 동성애를 찬성하는 교회들은 당연히 거듭나지 못한 자들로 채워진 교회이며, 바른 말씀으로 가르쳐 주는 진리의 지식을 거부하고 죄를 붙잡은 그들은 분명히 그리스도인들이 휴거될 때 함께 휴거되지 못할 것입니다. 휴거되지 못하면 적그리스도가 통치하는 대환란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바로 이 적그리스도가 또한 동성애자입니다. 『또 그는 자기 조상들의 하나님이나 여자들의 원하는 바를 개의치 않으며 또 아무 신도 개의치 아니할 것이니, 이는 그가 모든 것보다 자신을 높일 것임이라』(단 11:37). 『자기 조상들의 하나님』이라는 말씀은 적그리스도가 “유대인”이라는 점을 보여 주며, 이 유대인은 특히 『여자들의 원하는 바를 개의치 않』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br/><br/>그런데 “여자들의 원하는 바를 개의치 않는다”는 말이 무슨 뜻일까요? 그것은 적그리스도가 여자들의 성적 요구에 무관심한 “남색자”라는 점을 보여 줍니다. 휴거되지 못한 교회들은 이 동성애자의 통치 아래로 들어가서 그를 하나님으로 숭배하며 전무후무한 대환란을 겪다가 지옥에 던져질 것입니다. 동성애는 간음(레 20:10)과 수간(獸姦, 레 18:22,23,29)과 더불어 “사형죄”로 분류되는 극악한 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로 망가진 인간의 변태적 성행위를 “사형에 처할 정도로 가증하게” 여기십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과 동일한 관점으로 동성애를 대하고 그 멸망의 가증한 죄를 완전히 배격해야 합니다.&nbsp; BB]]></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Fri, 29 Jul 2022 09:47:42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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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대량 학살을 명령하신 하나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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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CDATA[질문<br/><br/><br/>｢하나님께서는 성경에서 대량 학살을 명하고 계십니다. 사람을 창조하신 분께서 어떻게 그런 살육을 명하실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br/><br/><br/>답변<br/><br/><br/>먼저 우리는 하나님께서 죄를 미워하시고 죄에 대해 사망을 선고하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는 죄의 삯은 사망이요』(롬 6:23). 『보라, 모든 혼들은 내 것이라. 아비의 혼이 그렇듯이 자식의 혼도 내 것이라. 범죄하는 혼은 죽으리라』(겔 18:4). 또한 성경은 『죄를 짓는 자마다 또한 율법도 범하는 것이니, 죄는 곧 율법을 범하는 것이라.』(요일 3:4)라고 말씀하는데, 죄는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난 것”을 가리킵니다. <br/><br/>처음부터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첫 조상에게 그분의 뜻을 어길 시 죽을 것이라고 선고하셨는데, 즉 『동산의 모든 나무에서 나는 것을 네가 마음대로 먹을 수 있으나 선과 악의 지식의 나무에서 나는 것은 먹지 말라. 네가 거기서 나는 것을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창 2:16,17)라고 경고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죄에 대해 사형을 선고하셨습니다. 하지만 마귀는 이와는 정반대로 『너희가 반드시 죽지는 아니하리라.』(창 3:4)라고 함으로써, “하나님의 심판”을 가리는 존재가 누구인가를 보여 주었습니다. 마귀는 ‘사랑의 하나님이 어떻게 사람을 지옥에 보내실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주입함으로써, 죄인인 인간들이 “죄에 대한 심판” 같은 것은 없다는 착각 속에 살다가 지옥으로 떨어지게 하고 있습니다. <br/><br/><br/>이와 관련하여 럭크만 목사님께서 소개한 흥미로운 예화가 있습니다. 한 스위스 간호사가 미국 펜사콜라에 와서 죽음에 대해 강의했는데, 자신이 “임종 침상”에서 경험한 것들을 미국 간호사들에게 가르쳤습니다. 즉 누군가가 죽을 때 몸과 같이 생긴 혼이 그 사람의 죽은 육신에서 빠져나오는 것을 보았는데, 그녀가 보기에 그들은 모두 다 어디론가 좋은 곳으로 가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강의를 경청하던 미국 간호사들에게 궁금한 점이 있으면 질문하라고 했더니 한 간호사가 일어서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간호사들은 지옥에 관해 뭐라고 말해야 합니까?” 그러자 그 스위스 간호사가 마이크에 대고 소리쳤습니다. “그것은 사실이 아니에요! 지옥 같은 것은 없어요! 지옥 같은 건 없다고요!” 그녀가 이렇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자 청중 가운데 거의 절반이 갈채를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왜 박수했을까요? 이는 그들이 “지옥을 향해 가고 있는” 구원받지 않은 간호사들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거짓말을 하는 사람에게 환호의 박수를 보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말만 믿고 하나님께서 누군가를 지옥에 보내실 것이라고는 믿지 않았기에 그런 사악한 거짓말에 귀를 내주었던 것입니다.<br/><br/><br/>구원받지 않은 죄인들은 거룩하신 하나님, 곧 죄에 대해 진노하시는 하나님을 견딜 수 없어 합니다. 의를 사랑함과 동시에 악도 사랑하는 신은 “종교적 괴물”에 불과한데도 그들은 그런 왜곡된 신을 원합니다. 다시 말해 그들 멋대로 하면서 살아도 지옥에 보내지 않는 신을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기에 죄인들을 죽이시고 지옥에 보내시는데, 이런 이유로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대량으로” 학살하셨다는 기록이 여러 차례 언급되고 있습니다.<br/><br/><br/>첫째, 하나님께서는 “노아의 때”에 그의 가족을 제외한 전 인류를 죽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말씀하시기를 “모든 육체의 종말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이는 땅이 그들로 인하여 폭력으로 가득 찼음이라. 보라,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망시키리라』(창 6:13). <br/><br/><br/><br/>둘째, 하나님께서는 “롯의 때”에 소돔과 고모라를 전멸시키셨습니다. 『그 때에 주께서 하늘에서 주께로부터 소돔과 고모라 위에 유황과 불을 비처럼 내리셨고 그 성읍들과 모든 평지와 성읍들의 모든 거민들과 땅에 자라는 것들을 뒤엎으셨더라』(창 19:24,25). <br/><br/><br/><br/>셋째, 하나님께서는 “출애굽 때”에 이집트의 첫태생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죽이셨습니다. 『한밤중에 주께서 이집트 땅에 있는 모든 첫태생들을 치셨는데 자기 보좌에 앉은 파라오의 첫태생부터 지하감옥에 갇힌 자의 첫태생까지며 가축의 모든 첫태생까지더라. 파라오가 밤중에 일어났으니, 곧 그와 그의 모든 신하들과 모든 이집트인들이라. 이집트에 큰 울부짖음이 있었으니 이는 사람이 죽지 않은 집이 하나도 없음이더라』(출 12:29,30). <br/><br/><br/><br/>넷째,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여호수아에게 “카나안 땅의 이교도들”을 대량 학살하라고 명령하셨으며 그들은 그 명령을 실행했습니다(민 21:2,3, 신 20:16-18, 수 6:17,21 등). <br/><br/><br/><br/>다섯째, 하나님께서는 사울 왕에게 『이제 가서 아말렉을 치되, 그들이 소유한 모든 것을 완전히 멸하여 그들을 남겨 두지 말지니, 남자와 여자, 아기와 젖먹이, 소와 양, 낙타와 나귀를 다 죽이라.』(삼상 15:3)라고 하심으로써 “아말렉인들”에 대한 대량 학살을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이 명령에 불순종함으로써 하나님께 완전히 버림받고 말았습니다.<br/><br/><br/>이처럼 죄인들에 대한 대량 학살은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산더미 같은 쓰레기를 소각로에서 한꺼번에 태워 없애듯이, 하나님께서도 쓸모없는 죄인들을 한 번에 완전히 없애시는 것입니다. 특히 앞서 언급한 내용 중 “신명기 20장”의 명령 안에는 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대량 학살을 명령하셨는지에 대한 이유가 담겨 있습니다. 즉 택함을 받은 그분의 백성이 카나안 땅의 이교도들의 죄로 오염되는 것을 막기 위해 그런 무서운 명령을 내리신 것입니다. 『그러나 주 너의 하나님께서 네게 유업으로 주시는 이 백성들의 성읍들에서는 호흡이 있는 것들은 아무것도 살려 두지 말지니, 즉 힛인들과 아모리인들과 카나안인들과 프리스인들과 히위인들과 여부스인들이라. 주 너의 하나님께서 네게 명령하신 대로 너는 그들을 완전히 멸할지니, 이는 그들이 그들의 신들에게 행했던 그들의 가증한 것들을 행하도록 너희를 가르치지 않게 하여, 너희가 주 너희 하나님께 대하여 그처럼 죄를 짓지 않게 하려 함이라』(신 20:16-18). 하나님께서는 이제 곧 있으면 광야 생활을 끝내고 약속의 땅으로 들어갈 이스라엘 백성이 그 땅의 이교도들로부터 가증한 우상 숭배를 배우지 못하게 하시려고 그 죄인들을 단 한 명도 남기지 말고 멸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 첫 단추가 카나안 땅에서의 첫 번째 정복 전쟁인 여리코 성 전투에서 꿰어졌으니, 여호수아와 그의 백성들이 그들의 칼날로 여리코 성읍에 있던 남녀노소, 소, 양, 나귀 등 모든 것을 완전히 멸한 것입니다(수 6:21). <br/><br/><br/>여리코 성 전투에서 대량 학살로 그 첫걸음을 뗀 여호수아 정복 전쟁은 미래에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행하실 정복 전쟁을 예표합니다. 그렇다면 다가올 정복 전쟁에서도 대량 학살이 이뤄져야 함은 예표적으로 자명한 이치가 됩니다. 실제로 성경은 주님의 지상 재림 때 있을 대살육을 예언하고 있는데, 히브리어로 아마겟돈이라고 하는 곳에 모인(계 16:16) 2억 명의 UN 군대를(계 9:16) 그 수장인 적그리스도와 함께 타작마당의 곡식단처럼 모아(미 4:11,12) 단 한 번에 괴멸시켜 버리시는 것입니다(슾 3:8, 계 19:11-21). 또한 지상 재림 이후에는 천년왕국이 세워지고 그 끝에 가면 끝없이 깊은 구렁에 갇혀 있던 사탄이 잠시 풀려나게 되는데, 바로 그때 천년왕국 기간에 주님의 철권통치 독재에 불만을 품고 있던 죄인들이(시 110:2) 다시 한번 사탄에게 “바다의 모래처럼” 몰려들어 성도들의 진영과 예루살렘을 포위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들 역시 주님께로부터 내려온 불에 삼켜져서 대량으로 살육당하게 됩니다(계 20:9). 죄인들은 이러한 하나님을 싫어하지만, 공의의 하나님께서는 문자 그대로 “대량 학살”하는 분이십니다. 그분의 공의로운 성품으로 인해 그렇게 해 오셨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행하실 것입니다. 따라서 여기서 우리가 깨우쳐야 할 것은 “하나님의 두려우심”입니다. 두려우신 주님께서는 우리의 외모를 보시지 않고 우리가 행한 대로 심판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곳 나그네 시절을 두려움 가운데 신중하게 보내야 합니다(벧전 1:17).<br/><br/>그리스도인들은 갈보리 십자가의 “이중적인 측면”을 잘 알고 있습니다. 거기에서 한 번 나타난 죄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요 3:16)과 그 사랑을 거부한 죄인들을 죽이시어 가차 없이 지옥에 던져 넣으시는 “공의”가 바로 그것입니다. 『주 예수께서 그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을 불길 가운데서 벌하시리니 이런 자들은 주의 임재와 그의 능력의 영광으로부터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게 될 것이라』(살후 1:7-9).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지만, 그 아들을 믿지 않는 자는 생명을 보지 못하고 하나님의 진노가 그 사람 위에 머물러 있습니다(요 3:36). 이로써 악인은 지옥으로 돌려질 것인데, 하나님께서는 “민족들” 전체라도 그렇게 하시기를 주저하지 않으실 것입니다(시 9:17).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뜻에서 벗어난 자들에게는 참으로 두려운 분이십니다. 이렇듯 “대량 학살”은 지극히 성경적인 방법이며, 공의를 실행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BB]]></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Tue, 31 Aug 2021 13:35:40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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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모세와 같은 한 선지자</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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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CDATA[질문<br/><br/><br/>「이슬람교도들은 그들의 코란을 근거로 해서 신명기 18:15,18에 예언된 “선지자”를 “마호메트”라고 주장하는데, 이에 관한 성경적인 답변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br/><br/><br/>답변<br/><br/>코란을 근거로 주장하는 이슬람교도들은 마호메트와 관련하여 커다란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인데, 하나님께서 영감으로 기록하신 신명기 18장 말씀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 너의 하나님께서 네 가운데로부터 네 형제들 가운데서 나와 같은 한 선지자를 네게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에게 경청할지니라. 네가 집회의 날에 호렙에서 주 너의 하나님께 바랐던 모든 것에 따라 말하기를 “나로 하여금 주 나의 하나님의 음성을 다시 듣지 않게 하시고, 나로 더 이상 이 큰 불을 보지 않게 하소서. 그래야 내가 죽지 않겠나이다.” 하였더니,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기를 “그들이 말한 것은 잘한 것이라. 내가 그들의 형제들 가운데서 너와 같은 한 선지자를 그들에게 일으켜서 내 말들을 그의 입에 두리라. 그리하면 그는 내가 그에게 명령할 모든 것을 그들에게 말하리라. 그가 내 이름으로 말할 내 말들에 경청하지 않는 자는 누구라도 내가 그에게 그것을 요구하리라』(15-19절).<br/><br/><br/>코란을 따르는 이슬람교도들은, 모세가 『나와 같은 한 선지자』(15절)라고 말했고 주님께서 모세와 비교하시면서 『너와 같은 한 선지자』(18절)라고 말씀하신 그 선지자를 “마호메트”라고 주장하는데, 그들은 성경을 해석할 수 있는 기본적인 자격도 갖추지 않았으면서 성경을 들먹이며 자신들의 거짓 교리를 입증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런 망상적인 작태가 어리석은 이유는, 성경을 해석하려면 반드시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성령님께서 죽은 영을 살려 주신 그리스도인이 아니고서는 성경의 저자이신 성령님으로부터 조명을 받아 성경을 해석할 수 없습니다. 이슬람교도들은 코란에 쓰여 있는 것을 근거로 성경마저 그들 멋대로 해석하고 주무르려 하는데, 그것은 사탄에게서 비롯된 “마귀적인 행동”이지 성령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순수한 지혜”가 아닙니다. 성경은 성경 이외에 다른 종교 경전들을 뒤적여 가면서 해석하는 책이 아니라, 성경 안의 구절들을 상호 비교할 때 스스로 해석해 주는 하나님의 책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값없이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또한 우리가 그것들을 말하되 인간의 지혜가 가르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성령께서 가르치시는 말로 하나니 영적인 일들을 영적으로 비교하여 말하느니라』(고전 2:12,13).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스스로 해석하는 책”입니다. 성령께서 가르치시는 그 말씀들을 서로 비교하면 그 의미가 선명하게 부각되는 책인 것입니다.<br/><br/>따라서 신명기 18:15,18의 문제를 다룰 때는 창세기 22:2과 비교하여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 아들, 곧 네가 사랑하는 네 독자 이삭을 이제 데리고 모리야 땅으로 가서, 산들 중에서 내가 네게 알려 줄 한 산에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하시더라』(창 22:2). 이 구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삭”을 아브라함의 “독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당시 아브라함에게는 이삭 말고도 “이스마엘”이라는 아들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창 16:15). 엄연히 두 아들이 있었음에도 왜 이삭만을 가리켜서 “독자 이삭”이라고 하셨을까요? 이에 대한 정답은, “이삭”이 이스마엘과 달리 “약속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람이 주의 면전에 엎드리더라. 하나님께서 그와 더불어 이야기하셨으니 말씀하시기를 “보라, 내가 너와 더불어 내 언약을 세우노니, 너는 많은 민족들의 아비가 되리라... 내가 나와 너와 네 뒤에 올 네 씨 사이에 대대로 내 언약을 세우리니,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씨의 하나님이 되리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 아내 사라가 참으로 네게 한 아들을 낳을 것이라. 너는 그의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그의 뒤에 올 그의 씨에게 내 언약을 세우리니,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창 17:3,4,7,19).<br/><br/><br/>이처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에게서 나온 “씨”와 영원한 언약을 세우셨을 때(창 17:4-8), 그 영원한 언약을 세우신 아브라함의 씨는 이스마엘이 아닌 “이삭”이었습니다(창 17:19-21).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아브라함의 “합법적인 아들”은 오직 “이삭”뿐이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 부분을 같은 문맥에서 이삭과 이스마엘을 대조시키심으로써 확증해 주셨습니다. 『이스마엘에 대해서도 내가 너를 들었나니, 보라, 내가 그에게 복을 주었으니, 내가 그를 다산케 하며 심히 번성케 하리라. 그가 열두 통치자를 낳으리니, 내가 그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그러나 나는 나의 언약을 사라가 내년 이맘 때 네게 낳아 줄 이삭과 더불어 세우리라.” 하시더라』(창 17:20,21). 하나님께서는 이삭과 이스마엘을 분명하게 분리시키셨고, 오직 이삭과만 그분의 언약을 세우시겠다고 천명하셨습니다. 따라서 아브라함의 씨는 마호메트가 주장하는 이스마엘이 아닌 “이삭”으로부터 시작하여 야곱과 야곱의 후손인 이스라엘 민족에게로 이어지게 됩니다.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이 씨에 관한 하나님의 약속을(창 12:7; 13:15; 15:3) 등한시하고 아내 사라의 말에 귀를 내줌으로써(창 16:1,2) 이집트인 여종 하갈을 통해 낳은 “불법적인 아들”이었습니다(창 16:15). 주님께서 보실 때 이스마엘은 “씨”와 관련된 약속과 무관하게 태어난 아들이기에 아브라함의 적법한 자녀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삭을 아브라함의 “독자”라고 하신 데는 이와 같은 이유가 있었던 것입니다. <br/><br/><br/>다시 신명기 18장으로 돌아가면, 하나님께서 『내가 그들의 형제들 가운데서 너와 같은 한 선지자를 그들에게 일으켜서 내 말들을 그의 입에 두리라.』(18절)라고 모세에게 말씀하셨을 때, 모세와 같은 한 선지자가 나오게 될 “그들의 형제들”은 아브라함에서 이삭을 거쳐 야곱에게로 이어져 온 “유대인들”을 뜻합니다. 왜냐하면 같은 장 16절에서 “그들의 형제들”이 누구인가를 알려 주기 때문입니다. 사건을 전체적인 맥락에서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네가 집회의 날에 호렙에서 주 너의 하나님께 바랐던 모든 것에 따라 말하기를 “나로 하여금 주 나의 하나님의 음성을 다시 듣지 않게 하시고, 나로 더 이상 이 큰 불을 보지 않게 하소서. 그래야 내가 죽지 않겠나이다.” 하였더니[16절],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기를 “그들이 말한 것은 잘한 것이라. 내가 그들의 형제들 가운데서 너와 같은 한 선지자를 그들에게 일으켜서 내 말들을 그의 입에 두리라. 그리하면 그는 내가 그에게 명령할 모든 것을 그들에게 말하리라』(16-18절).<br/><br/><br/>보다시피 “그들”은 주님께서 시내산에 강림하시는 무서운 모습을 보고서 모세에게 하나님의 음성을 다시 듣지 않게 해 달라고 간청했던 “유대인들”을 가리킵니다. 주님께서는 바로 그 유대인들의 형제들 가운데서 모세와 같은 한 선지자를 일으키겠다고 예언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시내산 강림의 현장에 있었던 “유대인들” 가운데서 한 선지자를 일으키겠다고 하셨지, 현장에 있지도 않던 이스마엘의 후손들 가운데서 일으키겠다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이스마엘의 후손인 마호메트는 절대로 모세와 같은 한 선지자가 될 수 없습니다. <br/><br/><br/>무엇보다도 마호메트는 아랍인이지 유대인이 아닙니다. 그는 유대인을 증오했고 유대인을 죽일 것을 명령했습니다. 역사적으로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자행했던 이슬람 세력의 테러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은 팔레스타인 땅이 이슬람교도들의 것이라고 “알라”가 명령했다면서 유대인들을 공격한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와 같은 한 선지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그 “유대인”으로 오셨습니다. 이런 점은 주님께 『유대인인 당신이 어떻게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마실 물을 달라.’고 하시나이까?』(요 4:9)라고 여쭈었던 사마리아 여인도 알아봤던 바입니다(요 4:19). “모세와 같은 한 선지자”라면 당연히 모세처럼 유대인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랍인은 신명기 18장에 예언된 그 선지자가 될 수 없습니다. 말하자면 소위 사마리아의 창녀보다도 못한 자들의 종교가 바로 이슬람교인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이라고 가르치면서(수라 43:59) 그분을 하나님으로(딤전 3:16) 믿는 자들에게 지옥 불이 기다리고 있다고 위협하고 있습니다(수라 5:72). 그뿐만 아니라 그들은 거짓 선지자인 마호메트가 간질병으로 발작을 일으키면서 지껄여 놓은 것을 알라의 계시로 믿고 따르고 있습니다. 알라는 “마귀”이지 절대로 하나님이 아닙니다. 상식 이하의 종교가 가르치는 것은 거짓말이지 진리가 아닙니다. 그런 거짓말에 단 1초도 시간을 낭비해야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BB]]></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Mon, 31 May 2021 11:01:59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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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답변 거짓 선지자를 분별하려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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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CDATA[질문<br/><br/><br/>｢성경에는 하나님께 부름을 받은 선지자들도 나오지만, 그렇지 않은 거짓 선지자들에 관한 말씀도 나옵니다. 이 교회 시대에 참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를 구별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알고 싶습니다.｣<br/><br/><br/>답변<br/><br/><br/>거짓 선지자들은 하나님께서 구약 시대부터 경고하신 존재들입니다. 『어떤 선지자가 주의 이름으로 말하는데 그런 일이 일어나지도 않고 성취되지도 않았으면 그것은 주께서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그 선지자가 주제넘게 말한 것이니 너는 그를 무서워 말지니라』(신 18:22). 이 경고는 하나님의 종인 모세가 “자기와 같은 한 선지자”이신 메시아에 관해 예언하는 과정에서 주어졌습니다. 『주 너의 하나님께서 네 가운데로부터 네 형제들 가운데서 나와 같은 한 선지자를 네게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에게 경청할지니라』(신 18:15). 하나님께서 일으켜 세우신 선지자는 참된 것을 말하기에 백성들이 그에게 경청해야 하지만, 거짓 선지자는 비록 그가 주의 이름으로 말한다 해도 그 일은 악령에게서 비롯된 거짓이기에 일어나지도 않고 성취되지도 않습니다. 백성들은 주제넘게 주의 이름으로 예언하는 자들을 조금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성경은 경고하는 것입니다.<br/><br/><br/>구약에서 예언된 참 선지자이신 예수님께서도 거짓 선지자에 관해 다음과 같이 경고하셨는데, 참 선지자만이 그렇게 할 자격이 있습니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이는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넓고 그 길이 광대하여 그리로 들어가는 사람이 많으나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그 길이 협소하여 그것을 찾는 자가 적음이니라. 거짓 선지자들을 조심하라. 그들은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은 약탈하는 이리들이라』(마 7:13-15). 거짓 선지자들의 특징은 그들이 제시하는 종교의 문이 넓고 그 길이 광대하다는 것인데, 많은 사람이 그 문과 길을 찾는 이유는 그 거짓 선지자들의 말이 그들의 가려운 귀를 즐겁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이 건전한 교리를 견디지 못하고, 그들 자신의 정욕에 따라 가려운 귀를 즐겁게 해줄 선생들을 많이 두리라. 또한 그들이 그들의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꾸며 낸 이야기로 돌리리라』(딤후 4:3,4). 거짓 선지자들이 내뱉는 말들은 듣는 이들의 육신의 정욕을 자극하여 즐겁게 해 주므로, 진리에 관심이 없는 세상 교회들이 자연스럽게 그들의 추종자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구약 시대에 거짓 선지자들에 관해 경고하신 문맥을 살펴보면 그러한 “정중한 사기꾼들”(롬 16:18)에게 귀를 내주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위험한가를 알 수 있습니다.<br/><br/><br/>『네가 주 너의 하나님께서 네게 주시는 땅으로 들어가거든 너는 그들 민족들의 가증함을 따라 행하는 것을 배우지 말 것이요, 자기 아들이나 자기 딸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는 자나 점치는 자나 때를 살피는 자나 마법사나 무당이나 마술사나 부리는 영들에게 묻는 자나 마법사나 강신술사를 너희 가운데서 보이지 않게 할지니라. 이는 이러한 일들을 행하는 모든 자들이 주께 가증함이 됨이니, 이러한 가증한 것들 때문에 주 너의 하나님께서 네 앞에서부터 그들을 쫓아내시느니라』(신 18:9-12). 모세와 같은 한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가 대조되는 문맥에서 “점치는 자,” “때를 살피는 자,” “마법사,” “무당,” “마술사,” “부리는 영들에게 묻는 자,” “강신술사” 등을 언급했다면, 그것은 광야의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만나게 될 거짓 선지자들이 마법사와 무당, 강신술사와 연관되어 있다는 뜻이 됩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실제로 그 안에 마귀가 들어간 자들이며, 그들에게 묻고 듣는 것은 무당에게 묻고 듣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br/><br/><br/>오늘날에는 사도들의 시대를 끝으로 중단된 표적을 흉내 내며 성령의 은사를 가장하는 은사주의자들이 대표적인 거짓 선지자들인데, 그들은 악령으로 충만한 가운데 “주의 이름으로” 예언도 하고 질병도 치유한다고 하므로 그들이야말로 기독교의 탈을 쓴 “강신술사들”이라는 점에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 날에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예언하지 아니하였으며, 주의 이름으로 마귀들을 쫓아내지 아니하였으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경이로운 일들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라고 말하리니, 그때 내가 그들에게 분명히 말하되 ‘나는 너희를 전혀 알지 못하니, 너희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고 하리라』(마 7:22,23). 예수님께서 『거짓 선지자들을 조심하라.』(마 7:15)라고 말씀하신 뒤에 위와 같이 말씀하셨으므로, 거짓 선지자들의 특징이 “주여, 주여” 하며 주의 이름으로 예언도 하고 마귀들도 쫓아내며 많은 경이로운 일들을 행한다는 면에서 그들은 영락없는 은사주의자들인 것입니다. 악령의 힘을 빌려서 그 일들을 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속임수든 어떤 초자연적인 역사든 그것은 주님과 전혀 무관한 일입니다. 주님께서 보실 때 은사주의자들의 종교적 행위는 “불법”입니다. 따라서 사도들의 표적을 흉내 내는 마귀의 종들이 가야 할 곳은 지옥밖에 없습니다.<br/><br/><br/>이 시대의 거짓 선지자는 은사주의자들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거짓 선지자들에게는 그들만의 표식이 있는데, 사도 요한은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 오신 것을 시인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모든 영을 다 믿지 말고 그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는지 시험하라. 이는 많은 거짓 선지자들이 세상에 나왔음이니라. 하나님의 영을 너희가 이렇게 알지니,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모든 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 오신 것을 시인하지 아니하는 모든 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요일 4:1-3).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영을 너희가 이렇게 알지니』라는 말씀인데, 이는 『하나님의 영』, 곧 성령 하나님에 의하지 않고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 오신 것을 시인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이 없는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 오신 것을 부인한다는 뜻이지만, 여기에는 우리가 숙고해야 할 몇 가지 진리가 더 담겨 있습니다.<br/><br/><br/>첫째,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 오셨다는 것은 그분께서 “육신으로 나타나신 하나님”이시라는 뜻입니다. 『경건의 신비는 논쟁의 여지없이 위대하도다. 하나님께서는 육신으로 나타나셨고 성령으로 의롭게 되셨으며, 천사들에게 보이셨고 이방인들에게 전파되셨으며, 세상에서 믿은 바 되셨고 영광 가운데로 들려 올라가셨음이라』(딤전 3:16). 한글개역성경은 『하나님께서는 육신으로 나타나셨고』가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로 변개되어, 하나님께서 육신으로 나타나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한글개역성경과 같은 변개된 성경을 추천하는 자들은 “백 퍼센트” 거짓 선지자들인 것입니다.<br/><br/><br/>둘째,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 오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은 그분의 피가 “하나님의 피”라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이들을 위하여 성령께서는 너희를 감독자들로 세우셨으며 하나님께서 자신의 피로 사신 하나님의 교회를 돌보게 하셨느니라』(행 20:28). 태아의 피는 어머니의 난자가 아닌 아버지의 정자와 관련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결합하지 않은 상태에서 성령님에 의해 잉태되셨기 때문에, 예수님의 피의 근원은 “성령님”이십니다. 예수님의 피는 하나님의 영의 역사로 된 것이기에 그분께서 갈보리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는 다름 아닌 “하나님의 피”였습니다. 이 사실을 부인하면 그 사람은 분명 거짓 선지자입니다.<br/><br/><br/>셋째, 하나님의 피인 예수님의 피가 “무제한적인 속죄”의 피임을 가르쳐야 참 선지자입니다. 『그는 우리의 죄들을 위한 화목제물이시니, 우리뿐만 아니라 온 세상의 죄들을 위한 것이니라』(요일 2:2). 예수님의 피가 창세전에 구원으로 예정되었다는 자들만을 위해 제한적으로 흘려졌다는 칼빈의 “제한적 속죄”의 교리는 거짓 교리입니다. 지난 2천 년간의 신약 교회사에서 가장 많은 거짓 선지자들을 배출한 신학이 바로 “칼빈주의”입니다. 존 칼빈은 유명한 거짓 선지자였습니다.<br/><br/><br/>넷째, 무제한적인 속죄를 이루시는 예수님의 피로 모든 죄가 사해졌기에, 속죄에 관한 한 인간의 행위가 불필요하다는 것을 가르쳐야 참 선지자입니다. 『이제 성령께서 분명히 말씀하시나니, 마지막 때에 어떤 자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들과 마귀들의 교리들을 따르리라. 그들 자신의 양심이 화인을 맞아 위선으로 거짓을 말하리라. 혼인을 금하고 음식을 삼가라고 명하리니...』(딤전 4:1-3). 거짓 선지자들의 으뜸가는 특징은 그들이 하나같이 행위 구원을 가르친다는 데 있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는(엡 2:8,9) 단순한 진리를 거부하고 행위 구원을 가르치면 그 사람도 존 칼빈 못지않은 거짓 선지자입니다.<br/>이상 네 가지는 이 시대에 거짓 선지자들을 분별하는 최소한의 기준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성경을 열심히 공부하여 어떤 교묘한 속임수에도 넘어가지 않을 막강한 실력을 갖춰야 합니다. BB]]></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Tue, 23 Feb 2021 17:47:20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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