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강한 양심 대 약한 양심

"그러나 이 지식은 사람마다 있는 것이 아니기에 어떤 사람들은 우상에게 바쳐진 것으로 알고 지금까지 우상에 대한 양심을 가지고 먹으므로 그들의 약한 양심이 더러워졌느니라." (고전 8:7)

“약한 양심”은 “더러워질 수 있는 양심”이다. 왜냐하면 “약한 양심”은 악한 것들에 쉽게 노출되어 특정한 죄에 쉽게 휘말리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죄에 대해 민감하지 못한 양심”인 것이다. 또한 “성경적 가치관”을 굳게 정립하지 못한 채 세상을 바라보는 “성경적인 기준”을 너무 낮게 설정해 놓음으로써,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생의 자랑”을 너무 쉽게 허용하고 “구차한 변명”으로 “자신의 죄와 허물을 정당화하는 양심”이다. 이런 “약한 양심”을 가진 성도는 세상의 유치한 원리를 내세워 세상에 순응하고 세상과 타협하는 길을 선택한다. 이를테면, “남들도 다 하는데 어때?”라든지, “누가 보지 않으니 괜찮아. 성경에는 그렇게 하지 말라는 내용이 직접적으로 안 나오잖아. 이번 한 번만 하지 뭐! ‘죄’란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른 거야.” 등등의 유치한 원리들을 내세워 자기 죄들을 정당화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성경에 “죄”라고 분명하게 명시되지 않은 것들을 찾아 즐기려 하는데, 적당히 선을 넘지 않으면서 자기가 하고 싶고, 또 할 수 있는 것들을 “얼마나 자주, 얼마나 많이 할 수 있는지”에 관심을 둔다. 그러나 “강한 양심”을 가진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무엇을 포기할까? 주님을 위해 나 자신을 어떻게 부인할 수 있을까?”에 관심을 갖는다. 특히 “강한 양심”은 “죄에 대해 민감한 양심”이고 “성령님의 음성과 인도하심에도 매우 민감한 양심”이다. “어떤 폭력”으로도 억누를 수 없는 양심이며 “어떤 불의”에도 “침묵”할 수 없는 양심이다. 그러한 양심은 “진리의 말씀”에 온전히 묶여 있다.

성경에 입각한 양심에 어긋나는 행동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마틴 루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