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가 죄가 되게 하는 저주
"그가 심판받을 때에 정죄받게 하시며 그의 기도가 죄가 되게 하소서." (시 109:7)
자신의 감정을 상하게 한 지체들을 전혀 용서하지 않으면서, 지금까지 자기가 저지른 수만 가지의 죄들을 용서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만큼 치사하고 비열한 짓도 없다. 기도가 응답되지 않고 자기가 지니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근본적인 원인”은 멀리 있는 게 아니다. 자신의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용서하지 않는 마음”이 문제다. 한번은 누군가를 용서하지 않는 것에 대해 전혀 양심에 가책을 느끼지 않고, 주님 앞에 뻔뻔스럽게 기도드리는 어떤 성도에 관해 “마틴 루터”가 이렇게 말했다. “용서하지 않는 것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전혀 느끼지 않고 기도하는 성도는 시편 109:7의 저주를 받아야 한다.” 말하자면 “기도가 죄가 되게 하는 저주”인 것이다. 자신의 형제자매를 용서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신분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일이라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받고 모든 죄를 용서받은 우리 모두는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우리 지체들의 죄와 잘못을 용서하고도 남을 만한, “하나님의 큰 자비”를 입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와 잘못을 기억하지 않으신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가려진 우리의 죄를 들추어 내지 않으신다. 그런데 왜 다른 성도의 죄와 잘못을 자신의 기억 속에 계속 소환시켜 그 성도를 정죄하고 그 성도와의 교제와 대화를 단절하겠다는 근거로 제시하는 것인가? 상대방의 죄와 잘못을 잊으라. 기억 속에서 지우라! 그것이 지체들에게 나타낼 수 있는 “위대하고 아름다운 사랑”이다.
인간에게는 친구들의 과실을 묻을 커다란 무덤이 필요하다(헨리 워드 비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