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에 대한 찔림 vs. 죄책감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슬픔은 구원을 위한 회개에 이르게 하므로 후회할 것이 없느니라. 그러나 세상의 슬픔은 사망에 이르느니라." (고후 7:10)
“죄에 대한 찔림”과 “죄책감”은 분명히 다르다. “죄에 대한 찔림”은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지적하셔서 그것을 바로잡게 하시고자 주신다. 즉 목적이 “고치는 데” 있다. 반면 “죄책감”은 마귀가 당신이 하나님의 복을 받기에는 부족한 존재라고 비난하는 것이다. 죄를 자책하느라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만들고 슬픔에 잠겨 있게만 한다. 성경은 이를 가리켜서 “사망에 이르게 하는 세상의 슬픔”이라고 말씀하신다(고후 7:10). 유다 이스카리옷의 경우는, 예수 그리스도를 배반하고 팔아 버린 죄책감에 시달리다 자살을 택하고 말았다. 하지만 베드로의 경우는, 예수님을 저주하고 배반했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았으나, 그는 그 일을 계기로 자신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한 사람임을 인지하고 은혜의 보좌로 나아가 죄를 철저하게 자백함으로써 제자로서의 지위를 회복했다(요 21:19). 이처럼 죄에 대한 찔림의 목적에 맞게 회복된 성도는 같은 죄를 쉽게 반복하지 않는다. 거듭난 자녀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변함이 없다(롬 8:35,39). 하나님께서는 성도가 그 사랑을 발판으로 삼아 찔림을 받은 그 죄에서 돌이키고 다시는 죄를 짓지 않도록 결단하며 그 결심대로 실행하기를 원하신다. 마귀는 성도가 죄책감에 시달리다가 주저앉게 만들려고 한다. 그것이 마귀의 기쁨이요 마귀가 원하는 일이다. 하지만 기억하라. 하나님께서는 사랑에 변덕을 부리시지 않고 우리가 반드시 회복되어 그분과 정상적인 교제를 나누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빛이시다. 그분과의 교제가 단절될 때 우리는 어둠 속에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