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잃어버린 마리아
"그가 열두 살 되었을 때에, 그들이 그 명절의 관례에 따라 예루살렘에 올라갔다가, 그 절기가 끝나서 돌아올 때, 아이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에 머물렀으나, 요셉과 주의 모친은 그것을 모르더라." (눅 2:42,43)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는 명절을 지키려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예수님”을 잃어버렸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도 “예수님”을 잃어버릴 수 있다. 물론 이것은 “구원”이 아니라, “주님과의 교제”의 측면에서 그럴 수 있다는 것이다. 오랜 기간 하나님과의 교제에서 벗어나면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주일에 예배드리는 일이 매우 어색하게 느껴진다. 주님이 매우 낯선 분처럼 여겨지는 상황에 직면하는 것이다. 한편 “마리아”가 “예수님”을 잃어버린 시점은 유월절에 행해지는 어떤 “종교적인 모임”에서였다. 술집이나 세상적인 장소가 아닌 “성전에서” 잃어버린 것이다. 주일 예배와 교회 행사에 꼬박꼬박 참석하지만, 그 자리에 몸만 와 있고 생각은 전혀 다른 곳에 가 있다면, 교회 안에 있으면서도 예수님을 잃어버린 사람이 된다. 이렇듯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잃어버리면 안 된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잃어버리면 안 된다. “진지하게 기도하는 시간”도 잃어버리면 안 된다.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한 간증”도, “그리스도 안에서 간직한 인생의 목표와 방향과 비전”도, “성령의 열매”도, “자신이 반드시 구령해야 할 혼들”도, “그리스도 안에서 가지는 용기와 담대함”도,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도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 몸의 빛은 눈이라고 했는데 그 “빛”을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 “성경적 성별”을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주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복된 소망”을 잃어버리면 안 된다. 항상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성도”가 돼라!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은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사실이다(요한 웨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