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론자들이 좋아하는 성경 구절들
"히스키야가 이사야에게 말하기를 “당신이 말씀하신 주의 말씀이 선하시도다.” 하고 또 그가 말하기를 “만일 나의 날에 화평과 진실이 있다면 좋지 않겠나이까?” 하더라." (왕하 20:19)
한 일간지에 위의 제목과 같은 기사 하나가 실렸다. ‘발레리 태리코’라는 미국인 심리학자가 무신론자들이 좋아하는 구절을 모은 것이다. 『판단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도 판단받지 않을 것이라』(마 7:1). 『유순한 대답은 진노를 삭이나, 과격한 말은 화를 일으키느니라』(잠 15:1). 『전도자가 말하노라.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 1:2). 『사랑은 오래 참고 친절하며 사랑은 시기하지 아니하고...』(고전 13:4) 등을 비롯해 12구절 정도를 모아놓았다. 그런데 그 구절들 가운데 그들에게 정작 필요한 구절은 단 한 구절도 없다. 성경 몇 구절을 좋아한다 해서 구원받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마귀도 성경을 알고 있으며, 마귀의 자식들도 성경을 읽을 수는 있다. 그러나 정작 자신에게 필요한 말씀을 만나면 메뚜기처럼 뛰어넘어 성경을 모르게 된다. 성령님의 인도하심 없이 자신의 욕망에 따라 성경을 대하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수 없는 것이다. 본문의 히스키야는 심판을 증거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을 듣고서도 마음을 찢지 않았고 재 가운데 앉지도 않았다. 말씀을 헛되이 들은 것이다. 성경은 듣고 흘려도 되는 죽은 책이 아니라 살아 있는 책이다(히 4:12). 주님께서는 성경을 읽고 상고하는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성경을 상고하라. 이는 너희가 성경에 영생이 있다고 생각함이니, 그 성경은 나에 관하여 증거하고 있음이라』(요 5:39). 성경은 영생을 주시는 책이다. 그것을 믿고 받아들일 자세가 아니라면, 성경을 수천 번을 읽어도 그저 책장만 넘기는 것이 된다.
성경에 감춰진 진귀한 보물들은 성경을 믿음으로 대하는 성도에게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