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진리에 시큰둥한 교만한 죄인

"그러자 모든 헬라인이 회당장 소스데네를 붙들어다 재판석 앞에서 때리나 갈리오는 이 일에 전혀 상관하지 아니하더라." (행 18:17)

필자는 기독교사학인 대학에 다녔었다. 전공학과는 목사들의 자녀가 특례입학으로 들어오는 경우가 많아 과우들 가운데 교회 다니는 이들이 과반을 차지했다. 한번은 영문학 희곡 시간에 강의 내용과 관련하여 간단히 발표할 일이 생겼다. 별도의 준비 없이 즉석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강론하기 시작했는데, 물론 강의와 관련 있는 것이었고, 주목적은 과우들에게 복음을 전하려는 것이었다. 성경 말씀을 칠판에 적어가며 설명하자 일부 과우들 얼굴에 진지함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열심히 발표를 끝내고서 쳐다본 강사의 얼굴은 그들과 완전히 딴판이었다. “시큰둥” 그 자체였다. 그는 영 달갑지 않다는 얼굴로 강단에 올라섰다. 진리에 무관심한 그는 논평을 제대로 하지 못했고, 숙취가 덜 깬 얼굴로 강의를 이어갔다.


아카야의 총독 갈리오는 구약의 율법과 경배 문제에 관하여 “무관심”을 보였다. 『만일 그 문제가 말과 명칭과 너희의 율법에 관한 것이라면 너희 자신이 처리하라. 나는 이런 문제에는 재판관이 되고 싶지 아니하노라』(행 18:15). 갈리오는 그 일로 소스데네가 눈앞에서 얻어맞는데도 법집행자이면서 수수방관했다. 그는 진리에 전적으로 무관심한 자들의 전형이었다. 그러나 진리는 말과 명칭의 문제, 특정 종교의 경전 문제가 아니다. 이 세상 모든 인간의 삶과 죽음과 직결되는 문제이다. 자신이 뭐나 되는 듯 진리에 무관심한 것은 멸망에 앞선 교만이다. 성경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길만이 인간이 영생하는 유일한 길이다(요 5:39).

진리에 무관심한 자는 불의를 쉽게 포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