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원문 · 번역 분류
갈 2:20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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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도진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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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있으나 그럼에도 나는 살아 있노라. 그러나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이라. 내가 이제 육신 안에서 사는 삶은 나를 사랑하시어 나를 위해 자신을 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이라.
갈 2:20 I am crucified with Christ: nevertheless I live; yet not I, but Christ liveth in me: and the life which I now live in the flesh I live by the faith of the Son of God, who loved me, and gave himself for me.
질문
the faith of the Son of God,
이 부분을 하나님의 아들의 믿음으로 번역해야 옳다고 하는 주장들이 있습니다.
실제로 흠킹과 표킹에서는 그렇게 번역을 하기도 했구요
어떤게 맞는 말인지 상세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갈 2:20 I am crucified with Christ: nevertheless I live; yet not I, but Christ liveth in me: and the life which I now live in the flesh I live by the faith of the Son of God, who loved me, and gave himself for me.
질문
the faith of the Son of God,
이 부분을 하나님의 아들의 믿음으로 번역해야 옳다고 하는 주장들이 있습니다.
실제로 흠킹과 표킹에서는 그렇게 번역을 하기도 했구요
어떤게 맞는 말인지 상세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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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the faith of the Son of God”에서 첫 번째 “of”의 번역에 관한 문제입니다. 일례로 the love of God는 두 가지로 해석이 가능합니다. 첫째, 하나님의 사랑, 둘째, 하나님을 향한 사랑인데, 후자의 경우엔 of 이하의 God가 love의 목적어가 됩니다. 로마서 1:30의 haters of God를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들”로 번역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문제의 the faith of the Son of God 역시 두 가지로 해석이 가능합니다. 첫째, 하나님의 아들의 믿음, 둘째,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인데, 후자의 경우가 첫 번째 of 이하를 목적어로 해석한 예입니다. 피터 럭크만 목사는 “믿음”을 “하나님의 선물”로 계시하는 에베소서 2:8에 따르면 “하나님의 아들의 믿음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can be)”고 설명하셨습니다. 말하자면 본문의 원래 의미는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인데, 부차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의 믿음”으로도 설명이 가능하다고 한 것입니다. <한글킹제임스성경>의 번역이 맞습니다.
거듭나기 이전에 우리는 우리 자신의 육신을 믿고(신뢰하고) 살았습니다. 사도 바울 역시 그러했습니다(빌 3:3,4). 그러나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지식을 알게 된 후로는 구원을 위한 의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빌 3:9) 얻었습니다. 그런데 이 점은 구원을 받은 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육신 안에 있던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을 믿음으로 의를 얻었다면, 여전히 육신 안에 살고 있는 지금 역시 하나님의 아들을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갈라디아서 2:20이 뜻하는 바입니다. <u>바울은 현재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일이 그분께로부터 의를 받은 일의 연장이라는 점을 다음 구절에서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u>. 하나님의 아들을 믿음으로 의를 얻었다면 그분을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인데, 다음의 두 구절을 연달아서 읽어 보면 의미가 분명히 들어옵니다. 참고로 21절이 구원받을 때이고("믿음으로" 의를 얻음) 20절이 구원받은 후의 삶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있으나 그럼에도 나는 살아 있노라. 그러나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이라. 내가 이제 육신 안에서 사는 삶은 나를 사랑하시어 나를 위해 자신을 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이라. 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릴 수 없나니, 만일 의가 율법으로 인하여 온 것이라면 그리스도께서는 헛되이 죽으신 것이라”(갈 2:20,21).
흠정역과 표준역의 번역은 번역이 아니라 강의실과 주석서에서 가르칠 수 있는 부차적인 해석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고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이후에도 여전히 그 아들을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은 성경의 위대한 진리입니다. 그 점을 가려 버린 사악한 "변개"가 두 역본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다음의 요한일서 5:13을 조용히 묵상해 보면 무슨 말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런 것들을 씀은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며, <u>또한 너희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도록 하려 함이라</u>"(요일 5:13).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에게 주신 <한글킹제임스성경>에 대한 흠정역, 표준역의 공격은 <한글킹제임스성경> 번역자이신 이송오 목사님에 대한 개인적인 쓴 뿌리와 시기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저희는 그 점을 알고 있습니다. 지난 30년간 우리 민족에게 바른 성경과 바른 진리를 타협 없이 보급하고 전파하느라 애써 온 우리를 그들이 “왜” 공격하겠습니까? 진리를 전파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도대체 "왜" 공격하겠습니까? 그런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받아 양심이 살아난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이겠습니까? 쓴 뿌리를 가진 그들은 이송오 목사님과 그분의 사역에 복수를 하기 위해 인터넷상에서 악랄한 공격을 서슴지 않고 있습니다. 그 배후에 마귀가 있습니다. 현재 많은 성도들이 그들로 인해 혼란스러워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혼란의 창시자가 아니십니다(고전 14:33). 말씀에 대한 혼란을 야기하는 것은 마귀의 일임을 직시하고 흠정역과 표준역의 거짓 선동에 현혹되지 말아야 합니다.
문제의 the faith of the Son of God 역시 두 가지로 해석이 가능합니다. 첫째, 하나님의 아들의 믿음, 둘째,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인데, 후자의 경우가 첫 번째 of 이하를 목적어로 해석한 예입니다. 피터 럭크만 목사는 “믿음”을 “하나님의 선물”로 계시하는 에베소서 2:8에 따르면 “하나님의 아들의 믿음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can be)”고 설명하셨습니다. 말하자면 본문의 원래 의미는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인데, 부차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의 믿음”으로도 설명이 가능하다고 한 것입니다. <한글킹제임스성경>의 번역이 맞습니다.
거듭나기 이전에 우리는 우리 자신의 육신을 믿고(신뢰하고) 살았습니다. 사도 바울 역시 그러했습니다(빌 3:3,4). 그러나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지식을 알게 된 후로는 구원을 위한 의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빌 3:9) 얻었습니다. 그런데 이 점은 구원을 받은 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육신 안에 있던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을 믿음으로 의를 얻었다면, 여전히 육신 안에 살고 있는 지금 역시 하나님의 아들을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갈라디아서 2:20이 뜻하는 바입니다. <u>바울은 현재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일이 그분께로부터 의를 받은 일의 연장이라는 점을 다음 구절에서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u>. 하나님의 아들을 믿음으로 의를 얻었다면 그분을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인데, 다음의 두 구절을 연달아서 읽어 보면 의미가 분명히 들어옵니다. 참고로 21절이 구원받을 때이고("믿음으로" 의를 얻음) 20절이 구원받은 후의 삶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있으나 그럼에도 나는 살아 있노라. 그러나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이라. 내가 이제 육신 안에서 사는 삶은 나를 사랑하시어 나를 위해 자신을 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이라. 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릴 수 없나니, 만일 의가 율법으로 인하여 온 것이라면 그리스도께서는 헛되이 죽으신 것이라”(갈 2:20,21).
흠정역과 표준역의 번역은 번역이 아니라 강의실과 주석서에서 가르칠 수 있는 부차적인 해석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고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이후에도 여전히 그 아들을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은 성경의 위대한 진리입니다. 그 점을 가려 버린 사악한 "변개"가 두 역본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다음의 요한일서 5:13을 조용히 묵상해 보면 무슨 말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런 것들을 씀은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며, <u>또한 너희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도록 하려 함이라</u>"(요일 5:13).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에게 주신 <한글킹제임스성경>에 대한 흠정역, 표준역의 공격은 <한글킹제임스성경> 번역자이신 이송오 목사님에 대한 개인적인 쓴 뿌리와 시기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저희는 그 점을 알고 있습니다. 지난 30년간 우리 민족에게 바른 성경과 바른 진리를 타협 없이 보급하고 전파하느라 애써 온 우리를 그들이 “왜” 공격하겠습니까? 진리를 전파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도대체 "왜" 공격하겠습니까? 그런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받아 양심이 살아난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이겠습니까? 쓴 뿌리를 가진 그들은 이송오 목사님과 그분의 사역에 복수를 하기 위해 인터넷상에서 악랄한 공격을 서슴지 않고 있습니다. 그 배후에 마귀가 있습니다. 현재 많은 성도들이 그들로 인해 혼란스러워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혼란의 창시자가 아니십니다(고전 14:33). 말씀에 대한 혼란을 야기하는 것은 마귀의 일임을 직시하고 흠정역과 표준역의 거짓 선동에 현혹되지 말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