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 교리 분류
럭크만 에베소서 주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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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경호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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엡 3:18절 주석을 보고 있는데
박사님이 말하는 "너비와 길이와 깊이와 높이"가 한 마디로 뭐다라고
정의가 안 되있는거 같아서 질문드립니다
101쪽에는 심연이라고 나와있고 출 25~40장이 이것을 설명한다고 하는데
그럼 해석을 이 땅과 셋째하늘 간의 물리적 간격이라고
하면 될까요? 그렇다면 그것이 출애굽기와 어떤 관련이 있는건가요?
전 개인적으로
머리는 셋째하늘에 계신 예수님의 영적인 몸의 그 너비 길이 깊이 높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리스도의 몸의. 영적인 광대함 정도로 해석 할순 없는것인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샬롬~
박사님이 말하는 "너비와 길이와 깊이와 높이"가 한 마디로 뭐다라고
정의가 안 되있는거 같아서 질문드립니다
101쪽에는 심연이라고 나와있고 출 25~40장이 이것을 설명한다고 하는데
그럼 해석을 이 땅과 셋째하늘 간의 물리적 간격이라고
하면 될까요? 그렇다면 그것이 출애굽기와 어떤 관련이 있는건가요?
전 개인적으로
머리는 셋째하늘에 계신 예수님의 영적인 몸의 그 너비 길이 깊이 높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리스도의 몸의. 영적인 광대함 정도로 해석 할순 없는것인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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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제와 관련하여 월간 <성경대로믿는사람들> 275호에 게재했던 글이 있어서 올려 드립니다. 참고하시고 궁금증을 해소하시기 바랍니다.
<b>에베소서 3:18의 “그 너비와 길이와 깊이와 높이”</b>
『17 믿음으로 그리스도가 너희 마음속에 거하게 하시며 너희가 사랑 안에 뿌리를 내리고 터를 닦아 18 모든 성도들과 함께 그 너비와 길이와 깊이와 높이가 얼마인가를 깨달을 수 있게 해주시며 19 또 지식을 초월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너희가 하나님의 모든 충만으로 가득 차기를 구하노라』(엡 3:17-19).
에베소서 3:18은 『그 너비와 길이와 깊이와 높이』가 흔히 19절의 『그리스도의 사랑』의 “너비와 길이와 깊이와 높이”로 오인되고 있는 구절이다. 특히 17절의 『사랑』이라는 표현으로 “사랑”의 바탕을 깔고서 19절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이어지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지만, 사실 17절의 『사랑』은 성경에서 “사랑의 장”으로 알려진 고린도전서 13장의 사랑과 관련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그리스도의 사랑』이라고 규정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본문 17-19절에서 에베소 성도들을 위해 바울이 바라는 것은 “1) 너희가 고린도전서 13장의 사랑 안에서 뿌리를 내리고 터를 닦아 2) 모든 성도들과 함께 ‘어떤 것’의 너비와 길이와 깊이와 높이가 얼마인가를 깨닫도록 해주시며 3) 또 지식을 초월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너희가 하나님의 모든 충만으로 가득 차기를 주님께 구한다.”는 것이다. 바울의 간구는 이렇듯 총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변개된 성경들에는 이 기본적인 구도가 파괴되어 이 구절들에 관한 잘못된 해석을 낳았다. 한국 교회가 사용하는 한글개역성경만 보아도 그 점이 분명해진다. “17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18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19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보다시피 개역성경은 그 번역에 있어서 18절과 19절의 순서가 뒤바뀌어 있기 때문에 마치 바울이 그리스도의 사랑의 너비와 길이와 깊이와 높이를 이야기하는 것처럼 변개되어 있는 것이며, 그렇게 이해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바울이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것이 아니다. 영어 <킹제임스성경>에서도 이 부분은 18절과 19절이 세미콜론(;)과 And로 분리되어 있어 각각의 주안점이 다르다는 것을 강조한다. 『① <u>모든 성도들과 함께 그 너비와 길이와 깊이와 높이가 얼마인가를 깨달을 수 있게</u> 해주시며 ② 또 <u>지식을 초월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u>(May be able ① <u>to comprehend with all saints what is the breadth, and length, and depth, and height</u>; And ② <u>to know the love of Christ, which passeth knowledge)</u>』 말하자면 18절의 『그 너비와 길이와 깊이와 높이』는 『그리스도의 사랑』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해석이 원천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것인데, 변개된 영어 성경들은 이곳의 “세미콜론”과 “And”를 제거해 버려 마치 18절과 19절이 한 문장인 것처럼 만듦으로써 한글개역성경과 동일한 형편없는 번역을 해 놓은 것이다. <한글킹제임스성경>은 이 두 구절을 19절의 『또』로 분명하게 분리시켜 번역했다.
그렇다면 바울은 에베소서 3:18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첫째, 이에 대한 참조 구절은 로마서 8:39이다. 『높음이나 깊음이나, 어떤 다른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떼어 놓을 수 없으리라』(롬 8:39). 로마서의 이 구절의 『높음』과 『깊음』은 에베소서의 『높이』와 『깊이』와 같은 말이다. 로마서 8:39의 『높음』과 『깊음』은 그 구절의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의 높이와 깊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의 물리적인 높이과 깊이를 말하는 것이다. 로마서 8:39의 『높음』과 『깊음』이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과 무관한 별개의 표현이듯, 에베소서 3:18의 『높이』와 『깊이』 역시 다음 19절의 『그리스도의 사랑』과 무관한 별개의 표현이다.
둘째, 에베소서 3:18의 『그 너비와 길이와 깊이와 높이』는 “지식”이며, 19절의 『그리스도의 사랑』은 지식을 초월하므로, 18절과 19절은 당연히 분리되어 해석되어야 한다. 『모든 성도들과 함께 그 너비와 길이와 깊이와 높이가 얼마인가를 깨달을 수 있게 해주시며 또 지식을 초월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너희가 하나님의 모든 충만으로 가득 차기를 구하노라』(엡 3:18,19).
셋째, 바울이 에베소서 전체에서 관심을 두고 강조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면 3:18의 『그 너비와 길이와 깊이와 높이』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다.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천상』(엡 1:3,20; 2:6; 3:10)과 『하늘에 있는 것들이나 땅에 있는 것들』(엡 1:10), 『하늘이나 땅』(엡 3:15), 『땅의 더 낮은 부분들로 먼저 내려가셨다... 모든 하늘들 위로 올라가신』(엡 4:9,10) 등과 같은 표현으로 천상과 하늘과 땅과 땅 아래, 곧 이 “우주”를 종횡무진으로 오가고 있다.
에베소서 3:18의 『그 너비와 길이와 깊이와 높이』는 바로 이 우주의 “치수”를 말하는 것으로, 사도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이 모든 성도들과 함께 우주의 치수를 깨닫고(지식), 『지식을 초월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들이 『하나님의 모든 충만으로 가득 차기를』 구했던 것이다(엡 3:19).
예수 그리스도는 “목수”이셨다. 목수는 자신이 다듬을 목재의 너비와 길이와 깊이와 높이를 재어 깎는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우주를 그 치수를 재어서, 즉 그 너비와 길이와 깊이와 높이를 재어서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우주에는 그 치수가 있으며, 그것을 예시하는 것이 우주를 예표하며 구조물의 규격이 주어진 구약의 “성막”이다(출 25-40장). 그리스도인들이 영원히 살게 될 새 예루살렘도 치수가 있다. 『그 도성은 네모가 반듯하며 <u>길이와 너비</u>가 같더라. 그러므로 그가 갈대로 그 도성을 측량하니 일만 이천 스타디온이요 <u>길이와 너비와 높이</u>가 같더라. 또 그가 그 성벽을 측량하니 일백사십사 큐빗이라. 이는 사람의 척도, 곧 천사의 척도라』(계 21:16,17). 바울은 고린도후서 12장에서 셋째 하늘에 다녀온 이후로 우주의 크기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 분명하며, 그러한 경이로운 지식조차도 고개를 떨구고 겸손할 수밖에 없는 『그리스도의 사랑』에 감복한 것이 틀림없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현재의 일들이나 다가올 일들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어떤 다른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떼어 놓을 수 없으리라』(롬 8:38,39). 모든 성도가 우주의 『그 너비와 길이와 깊이와 높이』를 깨달아야 하는 이유는 그 지고지대한 지식조차도 초월한 그리스도의 위대한 사랑을 알아서 하나님의 모든 충만으로 가득 차기 위함이다.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 모든 것들을 채우시는 분의 충만이니라』(엡 1:23).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교회 안에서 그분께 영광이 모든 시대들, 곧 끝없는 세상에 걸쳐 있을지어다. 아멘』(엡 3:21).
<b>에베소서 3:18의 “그 너비와 길이와 깊이와 높이”</b>
『17 믿음으로 그리스도가 너희 마음속에 거하게 하시며 너희가 사랑 안에 뿌리를 내리고 터를 닦아 18 모든 성도들과 함께 그 너비와 길이와 깊이와 높이가 얼마인가를 깨달을 수 있게 해주시며 19 또 지식을 초월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너희가 하나님의 모든 충만으로 가득 차기를 구하노라』(엡 3:17-19).
에베소서 3:18은 『그 너비와 길이와 깊이와 높이』가 흔히 19절의 『그리스도의 사랑』의 “너비와 길이와 깊이와 높이”로 오인되고 있는 구절이다. 특히 17절의 『사랑』이라는 표현으로 “사랑”의 바탕을 깔고서 19절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이어지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지만, 사실 17절의 『사랑』은 성경에서 “사랑의 장”으로 알려진 고린도전서 13장의 사랑과 관련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그리스도의 사랑』이라고 규정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본문 17-19절에서 에베소 성도들을 위해 바울이 바라는 것은 “1) 너희가 고린도전서 13장의 사랑 안에서 뿌리를 내리고 터를 닦아 2) 모든 성도들과 함께 ‘어떤 것’의 너비와 길이와 깊이와 높이가 얼마인가를 깨닫도록 해주시며 3) 또 지식을 초월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너희가 하나님의 모든 충만으로 가득 차기를 주님께 구한다.”는 것이다. 바울의 간구는 이렇듯 총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변개된 성경들에는 이 기본적인 구도가 파괴되어 이 구절들에 관한 잘못된 해석을 낳았다. 한국 교회가 사용하는 한글개역성경만 보아도 그 점이 분명해진다. “17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18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19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보다시피 개역성경은 그 번역에 있어서 18절과 19절의 순서가 뒤바뀌어 있기 때문에 마치 바울이 그리스도의 사랑의 너비와 길이와 깊이와 높이를 이야기하는 것처럼 변개되어 있는 것이며, 그렇게 이해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바울이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것이 아니다. 영어 <킹제임스성경>에서도 이 부분은 18절과 19절이 세미콜론(;)과 And로 분리되어 있어 각각의 주안점이 다르다는 것을 강조한다. 『① <u>모든 성도들과 함께 그 너비와 길이와 깊이와 높이가 얼마인가를 깨달을 수 있게</u> 해주시며 ② 또 <u>지식을 초월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u>(May be able ① <u>to comprehend with all saints what is the breadth, and length, and depth, and height</u>; And ② <u>to know the love of Christ, which passeth knowledge)</u>』 말하자면 18절의 『그 너비와 길이와 깊이와 높이』는 『그리스도의 사랑』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해석이 원천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것인데, 변개된 영어 성경들은 이곳의 “세미콜론”과 “And”를 제거해 버려 마치 18절과 19절이 한 문장인 것처럼 만듦으로써 한글개역성경과 동일한 형편없는 번역을 해 놓은 것이다. <한글킹제임스성경>은 이 두 구절을 19절의 『또』로 분명하게 분리시켜 번역했다.
그렇다면 바울은 에베소서 3:18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첫째, 이에 대한 참조 구절은 로마서 8:39이다. 『높음이나 깊음이나, 어떤 다른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떼어 놓을 수 없으리라』(롬 8:39). 로마서의 이 구절의 『높음』과 『깊음』은 에베소서의 『높이』와 『깊이』와 같은 말이다. 로마서 8:39의 『높음』과 『깊음』은 그 구절의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의 높이와 깊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의 물리적인 높이과 깊이를 말하는 것이다. 로마서 8:39의 『높음』과 『깊음』이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과 무관한 별개의 표현이듯, 에베소서 3:18의 『높이』와 『깊이』 역시 다음 19절의 『그리스도의 사랑』과 무관한 별개의 표현이다.
둘째, 에베소서 3:18의 『그 너비와 길이와 깊이와 높이』는 “지식”이며, 19절의 『그리스도의 사랑』은 지식을 초월하므로, 18절과 19절은 당연히 분리되어 해석되어야 한다. 『모든 성도들과 함께 그 너비와 길이와 깊이와 높이가 얼마인가를 깨달을 수 있게 해주시며 또 지식을 초월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너희가 하나님의 모든 충만으로 가득 차기를 구하노라』(엡 3:18,19).
셋째, 바울이 에베소서 전체에서 관심을 두고 강조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면 3:18의 『그 너비와 길이와 깊이와 높이』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다.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천상』(엡 1:3,20; 2:6; 3:10)과 『하늘에 있는 것들이나 땅에 있는 것들』(엡 1:10), 『하늘이나 땅』(엡 3:15), 『땅의 더 낮은 부분들로 먼저 내려가셨다... 모든 하늘들 위로 올라가신』(엡 4:9,10) 등과 같은 표현으로 천상과 하늘과 땅과 땅 아래, 곧 이 “우주”를 종횡무진으로 오가고 있다.
에베소서 3:18의 『그 너비와 길이와 깊이와 높이』는 바로 이 우주의 “치수”를 말하는 것으로, 사도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이 모든 성도들과 함께 우주의 치수를 깨닫고(지식), 『지식을 초월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들이 『하나님의 모든 충만으로 가득 차기를』 구했던 것이다(엡 3:19).
예수 그리스도는 “목수”이셨다. 목수는 자신이 다듬을 목재의 너비와 길이와 깊이와 높이를 재어 깎는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우주를 그 치수를 재어서, 즉 그 너비와 길이와 깊이와 높이를 재어서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우주에는 그 치수가 있으며, 그것을 예시하는 것이 우주를 예표하며 구조물의 규격이 주어진 구약의 “성막”이다(출 25-40장). 그리스도인들이 영원히 살게 될 새 예루살렘도 치수가 있다. 『그 도성은 네모가 반듯하며 <u>길이와 너비</u>가 같더라. 그러므로 그가 갈대로 그 도성을 측량하니 일만 이천 스타디온이요 <u>길이와 너비와 높이</u>가 같더라. 또 그가 그 성벽을 측량하니 일백사십사 큐빗이라. 이는 사람의 척도, 곧 천사의 척도라』(계 21:16,17). 바울은 고린도후서 12장에서 셋째 하늘에 다녀온 이후로 우주의 크기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 분명하며, 그러한 경이로운 지식조차도 고개를 떨구고 겸손할 수밖에 없는 『그리스도의 사랑』에 감복한 것이 틀림없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현재의 일들이나 다가올 일들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어떤 다른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떼어 놓을 수 없으리라』(롬 8:38,39). 모든 성도가 우주의 『그 너비와 길이와 깊이와 높이』를 깨달아야 하는 이유는 그 지고지대한 지식조차도 초월한 그리스도의 위대한 사랑을 알아서 하나님의 모든 충만으로 가득 차기 위함이다.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 모든 것들을 채우시는 분의 충만이니라』(엡 1:23).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교회 안에서 그분께 영광이 모든 시대들, 곧 끝없는 세상에 걸쳐 있을지어다. 아멘』(엡 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