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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장 럭크만 목사님의 주석에 열한 사도 관련해서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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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희철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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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크만 목사님의 사도행전 1장 주석을 읽다가 난해하여 깨닫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 문의드립니다.
*아래는 인용입니다.(2015년 개정판 주석서 66page)
[바울은 "달을 채우지 못하고 태어났다"(born out of due time, 고전 15:8). 이것이 그가 사도행전 1장에서
열두 번째 사도가 될 수 없는 이유이다. 그는 교회 시대 끝에 태어나는(계 12:4,5) 사내아이"(사 66:7-9)의 유형이다.]
질문 : 계 12:4,5의 사내아이가 교회 시대의 끝에 태어난다는 말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 아이는 사 66:7-9을 인용하신 것으로 봐선 사내아이란, 이스라엘을 가리켜서 하신 말씀 같은데,
그것이 사도 바울이 '달을 채우지 못하고 태어난 자 같다'는 것과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 사내아이도 달을 채우지 못하고 태어난다는 말씀을 하시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계 12:4,5).
*아래는 인용입니다.(2015년 개정판 주석서 66page)
[바울은 "달을 채우지 못하고 태어났다"(born out of due time, 고전 15:8). 이것이 그가 사도행전 1장에서
열두 번째 사도가 될 수 없는 이유이다. 그는 교회 시대 끝에 태어나는(계 12:4,5) 사내아이"(사 66:7-9)의 유형이다.]
질문 : 계 12:4,5의 사내아이가 교회 시대의 끝에 태어난다는 말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 아이는 사 66:7-9을 인용하신 것으로 봐선 사내아이란, 이스라엘을 가리켜서 하신 말씀 같은데,
그것이 사도 바울이 '달을 채우지 못하고 태어난 자 같다'는 것과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 사내아이도 달을 채우지 못하고 태어난다는 말씀을 하시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계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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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12장의 사내아이는 “역사적으로” 초림 때 태어나신 예수 그리스도로 해석되기도 하고, “예언적으로” 대환란 때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 지도자로 해석됩니다. 사내아이를 후자로 해석한다면 그 사내아이는 교회 시대 끝에 태어나야 합니다. 왜냐하면 아기로 태어나서 사내아이로 성장할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고, 그래야만 대환란의 후 3년 반 기간에 사내아이로 나타나서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사내아이와 관련해서 이사야 66:7-9을 인용한 것은, 그 구절들이 기본적으로 이스라엘 민족의 회복을 의미함에도 불구하고 7절의 “사내아이의 출생”이란 면에서 요한계시록 12장의 사내아이의 출생으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66:7의 사내아이는 그 구절을 보면 “그녀가 진통하기 전에” 또 “그녀에게 고통이 있기 전에” 낳는 사내아이입니다. 말 그대로 “달을 채우지 못하고” 태어나는 사내아이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 역시나 자신을 “달을 채우지 못하고 태어난” 사도라고 설명하는데, 이 점에 있어서 바울은 달을 채우지 못하고 태어나는 사내아이의 유형이 됩니다.
따라서 사도들의 수가 열둘에서 “열한” 사도로 줄어들었는데,
정상적으로 보면 사도 바울이 “열두” 번째 사도가 되어야 함에도 그렇지 못한 것은
예언적으로 의미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열두” 지파가 회복되는 것은 (교회 시대가 아닌) 바울이 예표하는 사내아이의 대환란 때의 사역이 있고나서야 이뤄지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열둘의 회복”은 교회 시대가 아닌 대환란 끝에 완성되는 것입니다.
이는 야곱의 열한 아들들에 “베냐민”이 더해져서 열둘이 된 것과 같이
“베냐민” 지파의 사도 바울이 예표하는 “사내아이”를 통해서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가 대환란 끝에 주님께로 회복되는 것을 예언적으로 말해 줍니다.
이 사내아이와 관련해서 이사야 66:7-9을 인용한 것은, 그 구절들이 기본적으로 이스라엘 민족의 회복을 의미함에도 불구하고 7절의 “사내아이의 출생”이란 면에서 요한계시록 12장의 사내아이의 출생으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66:7의 사내아이는 그 구절을 보면 “그녀가 진통하기 전에” 또 “그녀에게 고통이 있기 전에” 낳는 사내아이입니다. 말 그대로 “달을 채우지 못하고” 태어나는 사내아이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 역시나 자신을 “달을 채우지 못하고 태어난” 사도라고 설명하는데, 이 점에 있어서 바울은 달을 채우지 못하고 태어나는 사내아이의 유형이 됩니다.
따라서 사도들의 수가 열둘에서 “열한” 사도로 줄어들었는데,
정상적으로 보면 사도 바울이 “열두” 번째 사도가 되어야 함에도 그렇지 못한 것은
예언적으로 의미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열두” 지파가 회복되는 것은 (교회 시대가 아닌) 바울이 예표하는 사내아이의 대환란 때의 사역이 있고나서야 이뤄지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열둘의 회복”은 교회 시대가 아닌 대환란 끝에 완성되는 것입니다.
이는 야곱의 열한 아들들에 “베냐민”이 더해져서 열둘이 된 것과 같이
“베냐민” 지파의 사도 바울이 예표하는 “사내아이”를 통해서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가 대환란 끝에 주님께로 회복되는 것을 예언적으로 말해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