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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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j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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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용국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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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제임스는 퓨리턴이 아니라 왕권신수설을 주장한자엿습니다. 핍박을심하게햇기에 퓨리턴들이 아메리카로 갓습니다.얼마나 핍박을 해댓으면 성경대로 믿는 퓨리턴들이 도망쳣겟습니가?네델란드 도이칠란트 머나먼 아메리카까지. 그는 영국왕관을 받고자 친어머니가 엘리자베스에의해 목이 잘려도 모른체햇습니다. 그런그가 kjv를 만든것이 순수한 의도엿나요? 7권의 외경은 왜 들어갓나요 그것은 가톨릭의 위경이 아니던가요? 제가알기로 킹제임스는 자신의 왕권을 지키고자만 평생 애썻던 자이고 그것도 친어머니가 죽어도 모른체할만큼. 그 아들 찰스은 그것을 본받아 못댄짓만하다가 목이 잘렷습니다. 예정은 성경 곳곳에 나오고 잇습니다. 에베소 첫장은 아에 직접적으로 구원받는자의 구원이 예정이라고 못박아 말하고 잇습니다. 성경대로 믿는다면서 왜 성경대로 믿지 안나요? 믿고픈것 보고픈것 듣고픈것만 믿나요? 세베투스는 삼위일체의 오류라는 책을 지어낼만큼 이단자엿고 그를 처형하기로한것은 제네바시의회엿으며 칼빈은 신학자문으로만 일햇습니다. 칼빈이 살인자인가요? 예정론이 비성경적인가요? 가슴이 터지는 심정으로 묻습니다. 예정론이 비성경이라면 성경에서 그토록 예정에대해서 말하고 주장하고 나오는데, 그러면 성경도 비성경인가요? 사람이 자기힘과 선택으로 자기가 태어나는 시대, 장소, 국적, 종교, 환경,부모, 유전자, 조건을 고를수잇나요? 심지어 자기 영원한 운명에대해서 결정적인 이요소들을요? 만일 그럴진대 구원을 받거나 거절하는것이 자유의지라는것도 인정하게습니다. 아담안에서 완전히 타락한 인간이 선악을 고른다? 그리스도를 선택하고 반역성을 없앤다? 레오파드가 반점을 없애거나 에티오피아인이 검은 피부색을 바꾸는 기적일겁니다. 우리가 고조선, 백제, 조선, 현대중 어느때 태어날것을 고를수잇다? 그럴진대 스스로 구원도 결정할수 잇을겁니다. 우리는 조건과 상황의 산물이고 우리를 둘러싼 이 조건들에 결정적 영향을 받고잇습니다. 심지어 구원마저도요. 지금 현대조차도...북한, 일본, 아프칸등에서 태어나는것은 구원의 기회가 거의 없는것입니다. 우리 인생에서 우리 선택으로 되는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세포안에는 dna가 잇어서 모든것이 프로그램대잇고 그것이 나타납니다. 작은 배아가 사람이 대듯이요. 계획이 없이 무조건 우연히 될대로 진행된다? 그리고 그것이 알고보니 작품이 대더라? 다윈과 그 패거리들과 같은 말이네요. 킹제임스바이블 자체가 잘못댄것은 없다는것은 인정하지만 예정론이 살인자 칼빈? 의 오류인가요? 그런가요? 칼빈은 살인자고 6800만을 죽인 가톨릭은 성인인가요? 장미십자회 루터는요? 자유의지만을 주장하고 마법을 믿엇던 웨슬리는요? 칼빈은 극악무도한 살인자에 이단자이고 그들은 성인이란 말인가요? 기가 막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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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갱신연구원(원장 이종윤 목사)이 지난 3월 30일부터 시작한 ‘한국교회의 갱신과 성장을 위한 제35학기 목회자 신학세미나’의 두 번째 시간에 초청된 새문안교회 이수영 목사가 ‘칼빈주의 5대 강령에 나타난 신학적 특성’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진행했다고 <아폴로기아>가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이수영 목사는 "칼빈의 5대 강령이란 한 마디로 말하면 칼빈의 예정론을 반대하는 세력의 주장을 정죄한 화란개혁교회의 신학적 입장을 압축 요약한 것”이라며, 소위 ‘칼빈주의 5대 강령’이라 일컬어지는 ‘전적 타락,’ ‘무조건적 선택,’ ‘제한적 구속,’ ‘불가항력적 은혜,’ ‘성도의 견인’ “이 다섯 가지 명제의 밑바닥에 깔려 있는 근본적인 세 가지 사고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 ‘구원에 있어서의 인간의 전적 무능력’, ‘오직 은혜로 인한 구원’ 세 가지”라고 설명하고, “이 다섯 가지 명제나 세 가지 근본적 사고는 모두 예정론을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근거들이다”고 전했다.

    이수영 목사가 칼빈의 예정론의 정당성을 말하기 위해 제시한 위의 세 가지 사고는 겉만 보고는 그 옳고 그름을 쉽게 판별할 수 없다. 세상에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이 내면적 본질을 가린 표면적 구호만으로 대중을 그릇 인도하는 것을 볼 때, 영적인 일에 있어서 더더욱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칼빈주의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이라는 것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창조주 하나님으로서 그분이 만물에 대해 가지시는 주인된 전적인 권한과는 다른 개념이다. 칼빈이 말하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이란 한 인간의 혼을 복음에 대한 그의 의지적 믿음과는 관계없이 그분의 뜻에 따라 지옥에 보낼 수도, 하늘 나라에 보낼 수도 있는 전제 군주적 주권 개념에까지 미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그분의 주권에 따라 지옥에 보내려고 정해 놓으실 만큼 악한 분이 아니시다. 『주 하나님이 말하노라. 내가 살아 있는 한, 내가 악인의 죽음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의 길에서 돌이켜서 사는 것을 기뻐하노니 너희는 돌이키라. 너희는 너희 악한 길에서 돌이키라...』(겔 33:11).

    또 칼빈주의에서 말하는 ‘구원에 있어서의 인간의 전적 무능력’이란 단순히 인간이 자신을 구원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타락한 인간이 그의 자유의지까지 타락해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를 써서 스스로 영접할 수 없을 정도로 의지가 무능력해졌다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개인적으로 선택하여 부르시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회개할 수가 없어 지옥으로 예정된다는 것이다. (물론 그 부르심의 권한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속해 있다고 칼빈주의자들은 주장한다.) 구원에 있어서의 인간의 전적 무능력은 칼빈주의 5대 강령 중 ‘전적 타락’을 말하는 것인데, 이 ‘전적 타락’은 나머지 네 강령들의 기초를 이루는 가장 핵심적인 강령이다. 그러나 성경은 인간의 타락이 그의 자유의지까지 미쳐 그가 의지를 써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없는 무력한 상태라고 말씀하지 않는다. 주님은 『이 무지의 때에는 하나님께서 눈감아 주셨으나 이제는 어디에 살고 있는 어떤 사람에게도 회개하라고 명령하고 계시니라』(행 17:30)고 말씀하며 모든 이들에게 의지를 써서 죄를 떠나 하나님께로 돌이키라고 촉구하신다. 또 “누구든지” 예수님을 영접하면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고 말씀하며(요 1:12), 무력하게 가만히 있지 말고 “하나님을 찾으라!”고 말씀하신다(신 4:29, 렘 29:13, 행 17:26,27, 히 11:6).

    마지막으로 칼빈주의에서 말하는 ‘오직 은혜로 인한 구원’은 성경적인 은혜로 인한 구원(엡 2:8)과 다르다. 칼빈이 말하는 은혜는 ‘저항할 수 없는 은혜’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는 그분이 선택하신 죄인의 의지를 강제로 이끄셔서 그를 거듭나게 하신다는 것이다. ‘자유의지’를 행사할 수 없는 인간은 마치 꼭두각시와 같아서 끈을 원하는 방향으로 당겼다 놓았다 하시는 하나님께 저항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 인간의 자유의지는 칼빈주의자들의 주장처럼 오직 악만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선과 악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하나님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꼭두각시로 짓지 아니하셨다. 인간은 자신의 의지로 죄를 택할 수도 있고, 의를 택할 수도 있는 것이다.『너희가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너희가 순종하는 자의 종이 되어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든지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는 줄 알지 못하느냐?』(롬 6:16).

    존 칼빈이 로마카톨릭으로부터의 종교개혁에 기여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의 5대 강령이 성경적인 교리인 것은 아니다. 이수영 목사가 칼빈의 예정론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제시한 세 가지 사고는 진리를 찾는 이들의 눈길을 끌려는 캐치프레이즈일 뿐, 그 내면에 감춰진 이단 교리는 많은 사람을 구원의 확신으로부터 멀어지게 해왔다. 칼빈 탄생 500주년을 맞이하여 칼빈의 신학에 대한 관심을 일으키려는 노력들이 일고 있으나, 많은 사람들이 기념하고 세상이 주목한다 해서 칼빈의 교리가 성경적인 교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진리는 늘 소수에 의해서 믿고 실행되어 왔다. 진리는 곧 좁은 문인 것이다. 칼빈의 예정론은 진리의 지식이 없는 그가 자신이 해석할 수 없는 성경의 특정구절에 치중하여 그것을 왜곡한 것일 뿐, 성경은 예정론을 금하는 말씀들로 일관되어 있다.

    칼빈주의자들이 주의하고 각성해야 할 것은 칼빈 탄생 500주년 기념은 하나님과 무관한 일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성경 어디에서 인간을 기념하라 하셨는가? 『너희는 사람들 앞에서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 자들이지만 하나님께서는 너희의 마음을 아시느니라. 이는 사람들 가운데서 크게 높임을 받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는 가증스러움이니라』(눅 16:15). 칼빈을 추종하는 이들은 칼빈의 5대 강령을 억지로 끼워 맞추듯 변증적으로 홍보하기보다는, 그것이 과연 성경의 전체 진리와 일치하는지, 또 상식적인 판단에 있어서도 문제가 없는지를 먼저 검토하는 것이 옳은 일임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