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운즈빌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죠?"
펜사콜라에서 사역하고 있는 필자는 지난 2년 동안 성경강연회나 부흥회를 다니는 동안 이러한 질문을 수없이 받았다.
그렇다! 그곳에서는 분명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은사주의의 물결이 휩쓴 것이다. 그것은 참으로 은사주의자들의 광란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 책은 언론인들이나 호기심 많은 방문자들이 보는 관점으로 쓰여지지 않았다. 그 "부흥집회"를 이끌고, 또 참여했던 사람들이 쓴 책들을 면밀히 검토하고 직접 인용하면서, 성경적으로 철저히 비판해 놓았다.
이 책을 내면서 / 5
서문 / 8
제1장 마귀의 정죄 / 41
제2장 누구의 임재란 말인가? / 64
제3장 영적 파멸은 어디서 비롯되는가? / 93
제4장 “더러운” 영의 실체 / 129
제5장 우주선에 올라타고 우쭐대는 애숭이들의 정신착란증 / 152
제6장 브라운즈빌 철부지들의 “성경적” 신학이라는 것 / 199
제7장 강력히 부어지는 “더러운” 영 / 228
제8장 50만 명의 혼을 어떻게 다 “구원”했을까? / 263
제9장 치명적인 사탄의 생략행위 / 302
제10장 광대들의 십자군이 거둔 영적 열매들 / 332
제11장 거짓 사도들에 대한 후기 몇 가지 / 378
끝맺는 말 / 398
20세기 사상에 대하여 / 410
서문
“펜사콜라 시 브라운즈빌(Brownsville, Pensacola)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죠?”
성경 강연회(Bible Conference)다, 부흥회다 하는 집회에 불려 다니느라고 지난 이태 동안(1996-1997년) 여기 저기 수차례 여행하면서 이런 질문을 나는 한두 번 받은 게 아니었다. 성경대로 믿는 성도들을 이끌고 열심히 구령 활동을 하고 있는 어떤 침례교회 목사는 세 번에 걸쳐 같은 질문을 해 왔는데, 알고 보니 그는 오순절파에 물든 한 여인 때문에 골치를 앓고 있는 참이었다. 목사의 영향력을 이용하여 이 여인은 이미 구원받은 그 교회 침례교인들을 오순절파로 다시 “재생”시켜 놓으려고 갖은 애를 다 쓰고 있는 참이었다. 아프리카 흑인 후예의 한 사람인 세이머(W.J. Seymour)가 1906년 로스앤젤레스에서 성령 운동이랍시고 큰 바람을 일으켰던 일이 있었는데, 그 이후로 너도 나도 그 흉내를 내 왔던 얼간이들의 잠꼬대 같은 헛소리를 이 여인은 짬만 나면 다른 신자들 앞에서 끄집어 내는 것이었다. “하나님이 성령을 부어 주신다.”든가, “기름을 부어 주신다.”든가, “성령 안에서 죽임을 당한다.”든가, 요엘 2장에 나오는 “이른 비와 늦은 비”라든지, “큰 기적들과 표적들을 행하시는 하나님,” “온 땅을 휩쓸고 있는 성령 부흥” 어쩌구 저쩌구 하는 따위처럼, 1906년 로스앤젤레스 집회에서 쏟아냈던 온갖 비성경적 쓰레기 보따리들을 이 여인은 다시 끌러 놓는 것이었다.
로스앤젤레스 집회에서 쏟아져 나왔던 쓰레기들은 이런 것들만이 아니다. 온갖 못된 영화들은 말할 것도 없고 로드니 킹(Rodney King) 사건이라든가 오제이 심슨(O.J. Simpson) 사건, 그리고 “투나잇 쇼” 같은 것들도 다 그런 쓰레기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지금까지(1996년까지) 성경을 일백서른아홉 번 통독하고 보니, 나는 브라운즈빌에서 벌어지고 있는 짓거리 따위에는 조금도 흥미를 느끼지 않게 되었고, 뭐 좀 새로운 것이라도 있나 하고 기웃거리고 싶은 생각조차 전혀 들지 않았다. 나는 브라운즈빌에서 10마일도 채 안되는 곳에 살고 있는데도 말이다. 그러느니 차라리 하키를 하러 나간다든지, 숭어 낚시나 하러 가는 편이 훨씬 나았고, 여러 사람들이 보내 온 편지에 답장을 쓰는 일이 훨씬 더 내게는 중요한 일이었다. 나는 지난 40년 동안 오순절파나 성령운동파 목사들, “하나님의 교회”나 “하나님의 성회” 목사들, 그리고 나사렛 교파 목사들이나 웨슬리의 감리교 목사들과 이런 저런 일 때문에 간헐적으로 접촉하며 상대해 왔다. 천막 집회에도 여러 번 가 보았는데, 그 때마다 시끄러운 탬버린에 아프리카 정글 북을 요란하게 쳐 대며 배꼽춤까지 흔들어 대는 가운데 “치유자”가 펼치는 오락극 같은 막간 쇼들을 구경도 해 보았고 “성령의 불이 떨어져” 사람들이 기절해 쓰러지는 따위의 해괴한 광경들도 여러 번 보아 왔다. 이곳 브라운즈빌에서 벌어졌던 쇼에서도 1910년대나 20년대, 30년대, 40년대, 50년대, 60년대, 70년대, 그리고 80년대에 벌어졌던 것들과 무엇 하나 다를 것이 없었고, 지금도 마찬가지요, 앞으로도 달라질 게 하나도 없을 것이다(제11장에 소개한 사례들을 참조하기 바람).
나는 그 패거리들을 잘 알고 있다. 내가 학교 다닐 때, 오순절파라든가 “하나님의 교회”나 “하나님의 성회”에 속한 젊은이들과 함께 같은 학교에 다녔고, 그들과 함께 목사 안수를 받았으니 말이다. 그 학교가 바로 밥 존스 대학이었는데, 이 학교가 초교파주의라는 것은 다들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 학교는 겉으로만 “침례교”인 척 표방해 왔는데(1970-1990년), 그래야만 지역 독립 침례교회를 이끌 젊은이들을 배출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성령운동파” 목사들이나 선교사들도 잘 안다. 그들이 무엇을 배웠고 무엇을 전파하는지 훤하고, 무엇보다도 그들이 집회를 열고 가르치고 전파한 결과로 어떤 열매들을 거두고 있는지를 나는 40년이 넘도록 관찰해 왔다. “수천 명의 죄인들을 구원받게 했다.”고 그들이 말할 때, 어떤 부류의 “회심자들”을 두고 그렇게 말하는지 나는 똑똑히 보아 왔다. 이제까지 내가 목회하고 있던 교회(세 군데 교회들)의 회원들이나 내가 가르치던 학생들(지난 35년 간 펜사콜라 성경신학원에서) 가운데 누구 한 사람도 저들에게 넘어가거나 저들이 떠벌리는 “성령”의 “감화감동”이나 “기름부음”에 미혹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서 나는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이것은 내가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말이다.
저들의 “해외 선교지”에서 벌어졌다는 대부흥의 장면이랍시고 찍은 사진도 보았는데, 그것은 여러 장의 사진들을 이어 붙여 마치 한 장면을 찍은 한 장의 사진처럼 조작한 것으로, 이렇게 하면 겨우 1,000명밖에 안 모인 군중도 마치 10,000명 쯤으로 돼 보이기 마련이다. 그런가 하면 또 눈을 깜짝거리며 속임수를 쓰는 자들이 제단 앞으로 나아가 “예수 이름으로!” 치유되는 척하는 엉터리 가짜들도 보았고, 어떤 “마귀들린” 자가 땅바닥에 널부러져 “입에 거품을 물고 나뒹구는” 해괴한 광경도 보았는데, 이때 그 사람을 부축한답시고 곁에 서 있던 두 사내가 뒤에서 다리를 슬쩍 걸어 넘어뜨리는 것도 놓치지 않고 보았다. 이런 따위 광대들이 펼치는 서커스라면 나는 그 내막을 훤히 다 꿰뚫어보고 있다. 돈을 받고 고용된 배우들이 등장하여 한 번도 지팡이 짚고 걸을 필요가 없던 멀쩡한 자들 - 절뚝거리며 무대 위로 올라가 목발을 내팽개치고는 “기뻐 뛰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광경도 나는 보았다(제5장 참조). 진짜 절름발이들이 이 광경을 보고 그들도 소위 “믿음”을 가지도록 이런 짓을 자행하는 것이었다. 1997년 베니 힌(Benny Hinn)이 실토한 말을 들어 보라. 그는 자신이 누구를 진짜로 치유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다만 “그들에게 소망을 갖도록” 할 수 있을 따름이라고 털어놓지 않았던가. 연간 4천만 달러나 되는 돈을 긁어 모을 수 있다면 마음만 먹으면 나도 얼마든지 그런 짓을 할 수 있고, 위선자라면 누구라도 그런 행각을 버젓이 자행할 수 있을 것이다.
점잖게 성경을 끼고 다니면서 “방금 신유를 받았다.”고 떠벌리고 다닐 만한 말쑥한 젊은이들을 물색하느라 길거리를 어슬렁거리는 바람잡이들(그들은 이렇게 부르지는 않지만)도 나는 보았다. 플로리다 주 잭슨빌에 사는 캐롤 스티걸(Carrol Stegall)이라는 사람도 이런 바람잡이들 눈에 띄어 “출연 계약”을 맺고는 록 허드슨이 치유받지 못한 것처럼 자신도 전혀 치유받지 못했던 어떤 사람에게 그런 말을 함부로 떠벌리고 다니지 말도록 설득하는 임무를 맡았던 사람이다. 또 서너 시간 씩이나 되는 긴 예배순서 가운데 설교 시간은 고작 20분도 채 안되는 예배들도 나는 보았는데, 『하나님께서 (경련을 일으키며 씰룩거리고, 기절해 쓰러지고 괴성을 지르며 덩실덩실 춤추는가 하면 깔깔대고 웃거나 훌쩍훌쩍 우는 따위의 해괴한 짓거리가 아니라) 복음 전파의 어리석음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느니라.』(고전 1:21)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그자들은 이런 짓을 버젓이 자행하는 것이다. ...(후략)
책 속으로
지금까지 (앞으로도 항상 그럴 것이지만) 인간이 만든 종교나 어떤 인간적인 동기나 목적에서 만들어낸 것들, 그리고 이런 것들이 관련돼 있는 영적 영역에서 일어나는 모든 영적인 활동들에 대해서 성경은 아주 예리하고도 날카롭게 파헤쳐 왔으며(히 4:12), 또 지극히 부정적인 시각으로 비판을 가해왔다(히 4:13). “주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너희 마음 속에 생기는 일들을 일일이 아노라.”고 말씀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고, 사람의 속 마음이 의롭지 않으면 거짓말 하는 영으로 하여금 그 사람을 거짓 되게 인도하겠다고 약속하셨던(왕상 22:19-23, 겔 14:1-8) 분도 바로 하나님이시다. 사탄이 인간들을 속이고(겔 14장) 저주하는 것(살후 2:10-12)도 다 그것을 허용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분께 드리는 기도가 그분이 계시하신 뜻에 정면으로 배치될 때에도 그분은 그 기도에 응답하실 수 있는 분이시다. 다음을 주목해 보라.
시편 106:13-15 『그들이 곧 그의 행사를 잊어버리고 그의 조언을 기다리지 아니하며 오히려 광야에서 심히 욕심을 부려 사막에서 하나님을 시험하였으니 주께서 그들의 요구대로 그들에게 주셨으나 그들의 혼 속으로 메마름을 보내셨도다.』
민수기 11:18-20,33 『“또 너는 백성에게 말하라. ‘내일까지 너희 자신을 성결케 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고기를 먹으리라. 이는 너희가 주의 귀에 대고 울며 말하기를,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리요? 우리가 이집트에 있었을 때가 나았도다 함이니, 그러므로 주께서 너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실 것이라. 너희가 하루만 먹을 것이 아니요, 이틀도 아니요, 닷새도 아니고 열흘도 아니고 이십 일도 아니고 한 달 동안이나 너희 코에서 넘쳐서 싫증이 날 때까지니, 이는 너희가 너희 가운데 계신 주를 멸시하고 그분 앞에서 울며 말하기를, 우리가 어찌하여 이집트에서 나왔던가 했음이라.’” 하시니라... 그 고기가 아직 그들의 이빨 사이에 있어 씹히기 전에, 주의 진노가 그 백성에게 대하여 격발하였으니, 주께서 심히 큰 재앙으로 그 백성을 치셨더라.』
힐과 킬패트릭과 브라운은(그리고 19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아주사 패거리들과 똑같은 모든 자들이) 하나님께서 기도를 통한 요청을 어떻게 다루시는지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그들뿐만 아니라 그들과 한 패거리가 된 자들이나 그들의 후원자들이나 그들과 관계하고 있는 모든 자들은 성경을 제대로 다룰 수 있는 영적 분별력이 조금도 없는 자들이다.
요기들이나 무당들이나 신유자들이나 금욕주의 수도승들이나 마귀 숭배자들이나 마법사들이나 불교의 중들은 “신으로부터 무엇인가를 얻으려고” 나흘이나 닷새 동안 그냥 “부복하고 앉아 있는” 데에 머물지 않고 그 이상으로 무슨 짓인가를 일삼아 왔다. 카톨릭 수도승들은 “영적으로” 되기 위해서나 “축복을 받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몸에 상해를 입히면서까지 고행을 일삼아 왔다(럭크만, <신약교회사, The History of New Testament Church>, 말씀보존학회, 1995, 1998). 마리아를 숭배하는 자들(그리고 바알을 섬기는 이교도들) 역시 오랜 시간 동안 신을 향하여 울부짖으며 어찌나 열심히 신을 찾아댔던지 그중 어떤 자들은 손이나 발에 상처를 내어 “성흔”(stigmata)을 흉내낸 생채기를 내기도 하는가 하면, 또 어떤 자들은 칼과 꼬챙이로 몸을 베거나 찔러서 온몸에 피가 흥건해질 때까지 그랬던 것으로 알려져 왔다(왕상 18:28).
이 보게나, 그대는 지금 열심으로 드리는 기도 어쩌구 저쩌구 하고 있네 그려.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들의 기도가 응답되기를 바라는 욕심에서 어린이들까지 산채로 불에 태워 제물로 드리기를 마다하지 않았다네(왕하 16:3, 렘 7:31).
이교도들이 “신을 찾아” 기도하는 것을 보면, 항상 그 열성과 노력에 있어서는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을 정도다.
문제는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브라운즈빌의 철부지들에게 던지실 질문이 무엇이겠느냐 하는 점이다. 그분은 이렇게 추궁하실 것이다. “너는 어찌하여 나의 구속과 나의 성령과 새로 거듭남에 대한 나의 가르침과 믿는 자들 속에 있는 두 가지 본성에 대한 나의 가르침을 흉내낸 가짜 모조품들을 만들어 놓고 그것들이 마치 내게서 나온 것처럼 받아들였느냐?” 그리고 또 이렇게 힐난하실 것이다. “너는 어찌하여 네가 ‘구원받게 했다는 자들’이 이미 내 아들 속에 들어와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접근하여 그들에게 전도한답시고 그들로 하여금 이미 얻은 구원을 의심하게 만드는 짓을 자행하는데도 그것을 내버려 두었느냐?”
이 집회에서도 아닌게 아니라 몇몇은 진짜로 구원받게 된 사람들이 있겠지만, 이들을 차치하고라도 나는 지난 40년 동안 매년 수백 명의 진짜 처음으로 거듭난 사람들을 보아왔다. 일시적으로 깨끗이 몸을 씻는 돼지들이나 개들(벧후 2:18-22)과 일시적으로 더러운 영들을 쫓아내고는(마 12:43-44) 다른 사람들이 볼 때 마치 자신들이 양들인 것처럼 행세하는 그런 자들 말고 말이다. 그런 자들이 상대하고 있던 그 영(그게 어떤 종류의 영이건 간에 그것은 하늘에 뚫린 구멍으로부터 쏟아 부어진 영이었다)은 이들을 도대체 어떻게 지도하고 있었을까? 온 나라를 뒤흔들 것이라 운운하던 그 거대하게 치솟는 불길 같은 “성령”이 휩쓸고 지나가는 부흥회를 개막하면서 이 친구가 연출한 “어릿광대짓”을 한 번 살펴 보자.
바울은 “모든 것을 시험하여” 보라고 말했다. 그런데 하물며 왜곡된 성경이 뒤를 받쳐 주지 않으면 꼼짝도 못하는 어떤 영을 어찌 시험해 보지 않겠는가? 이 영을 시험해 볼 수 있는 성경이 우리 손에 쥐어져 있다. 우리는 “그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는지 시험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광대촌의 영을 시험대에 한 번 올려 놓을 참이다.
A. 우선, 브라운즈빌의 부흥회를 시작한 그 영은 어리석기 짝없을 뿐만 아니라 극도로 몰인정한 자였다. 중국과 인도에는 거의 20억에 가까운 죄인들이 구원을 받지 못한 채 살고 있는데도(홍콩, 상하이, 북경, 봄베이, 델리, 캘커타, 마드라스, 남경 및 광동 같은 도시에는 각기 5백만 명 이상의 이런 죄인들이 살고 있는데도) 이 수줍고 겁이 많고 소심한 못난이 “영”은 이런 곳들 보다도 플로리다 펜사콜라가 더 시급한 곳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이 “부흥의 영”이 어쩌다가 인구가 고작 십만 명밖에 안되는 데다가 그 중 2만 명은 이미 그리스도인들인 미국 남부의 한 작은 동네를 점찍게 되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 영은 이 정도밖에 안되는 절름발이 무능력자였단 말인가? “하나님의 강이 철철 흘러내리는 그 강력한 능력”이라든가, “광풍 같은 기름부음이 눈 앞에 펼쳐지는 대부흥의 불길”을 과시하겠다고 큰소리 치더니 그게 고작 이 작은 마을에서였단 말인가?
조용기 목사와 존 킬패트릭은 두 사람 다 동일한 영을 소유하고 있었다. 이 두 사람은 다 자기네 마을에서 “자극”을 받았던 것이다. 두 사람이 똑같이 자기 동네에 「펜사콜라성경신학원」이라는 간판이 걸려 있는 도시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 이 간판은 그들에게 큰 자극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도 바울은 다른 사람의 기초 위에다 집을 지을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롬 15:20-21). 이런 바울이 킬패트릭을 인도하고 있는 영과 동일한 영에 이끌리고 있었다고 생각되는가? 킬패트릭을 인도하던 영은 조용기 목사를 경유하여 들어온 영이었다.
유럽과 아프리카에만도 10억이 넘는 죄인들이 잃어버린 양인 채로 그대로 남아 있거늘(베를린, 런던, 파리, 로마, 마드리드, 부다페스트, 바르셀로나, 나폴리, 아테네, 더블린, 에딘버그, 카이로, 카사블랑카, 아디스 아바바, 케이프타운, 알지에 및 튜니스 같은 도시들은 각기 백만 명 이상의 죄인들이 구원을 못 받은 채 살고 있는 곳이다), 이 몰지각한 “영”은 이런 곳을 찾아내기 위해 지도도 한 번 들여다 보지 않았던지, 하필이면 펜사콜라를 택해서 거기에 모든 것을 걸고 덤벼들었는데, 한 도시에 가장 많은 그리스도인이 밀집해 있는 곳이 어디냐고 물으면, 누구라도 금방 알아맞힐 수 있는 곳이 바로 여기 펜사콜라다. 그는 결코 “강”이 될 만한 위인이 아니었다. 그는 단지 물에 푹젖은 한 장의 담요였을 뿐이었다(pp.13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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