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서의 핵심 주제는 “전쟁”이다. 구약에서 여호수아서의 역사적 적용은 하나님께서 “실제적이고, 가시적이고, 물리적인 민족”에게 “실제적이고, 가시적이고, 물리적인 땅”을 약속으로 주셨다는 것이다. 따라서 여호수아서는 신약 그리스도인들에게 물리적으로 적용될 수는 없지만, 그리스도인의 영적 전쟁을 보여 주는 그림으로서 세상과 육신과 마귀에 대항하여 싸우는 영적 전쟁에 적용할 수 있는 중요한 영적 교훈들을 풍성하게 제시하고 있다. 피터 럭크만 박사의 여호수아 주석서는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가 예수 그리스도의 훌륭한 군사로서(딤후 2:3), 선한 싸움(딤전 1:18)을 싸워 나가는데 필요한 영적 진리들을 깨우치고 자라나가는 데 유익한 도움을 줄 것이다.
들어가는 말 / 5
여호수아 1장 / 21
여호수아 2장 / 62
여호수아 3장 / 83
여호수아 4장 / 102
여호수아 5장 / 124
여호수아 6장 / 145
여호수아 7장 / 181
여호수아 8장 / 211
여호수아 9장 / 252
여호수아 10장 / 291
여호수아 11장 / 342
여호수아 12장 / 372
여호수아 13장 / 381
여호수아 14장 / 401
여호수아 15장 / 424
여호수아 16장 / 443
여호수아 17장 / 448
여호수아 18장 / 462
여호수아 19장 / 471
여호수아 20장 / 492
여호수아 21장 / 504
여호수아 22장 / 514
여호수아 23장 / 533
여호수아 24장 / 552
그 림 / 584
서문
여호수아서는 성경의 여섯 번째 책이다. 유대인들의 구약성경 분류법에 따르면(눅 24:44), 여호수아서는 “선지서”에 포함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구약성경을 유대인들과 다르게 분류한다. 또 성경의 첫 다섯 권의 책을 “모세오경”이라고 부르는데, 간혹 어떤 이들은 여호수아서를 이 다섯에 더하여 “육경” 또는 “모세육경”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여호수아의 사역을 모세의 사역의 연장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통의 경우 여호수아서를 역사서로 분류하는 것이 더 일반적이다. 역사서는 여호수아서에서 에스더서까지이다.
여호수아서는 총 24장, 658절, (영어 <킹제임스성경>의 경우) 18,854개의 단어로 구성되어 있다. 어셔 주교는 여호수아서에 기록된 사건들의 연대를 B.C. 1451-1427년으로 잡고 있으나, 필자는 B.C. 1510-1486년으로 본다.
여호수아서의 저자는 물론 여호수아임이 분명하다. 일부 내용은 재판관들의 통치기에 기록되었을 수 있고, 어쩌면 사무엘이 일부를 기록했을 가능성도 있다. 여호수아는 여호수아서뿐 아니라 신명기의 일부도 기록했으며, 창세기 일부를 기록했을 가능성도 있다(수 24:26, cf. 창 14:14).
여호수아의 이름은 출애굽기 17:9에 처음 나온다. 처음부터 여호수아는 전투에 임한 군인으로 등장한다. 따라서 여호수아가 항상 군사령관으로서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즉 십계명을 받은 후 시내 산에서 내려오면서 모세와 여호수아는 금송아지 주변에서 벌어지는 “록 콘서트”의 소리를 들었다. 그때 여호수아는 그 소리를 듣고 『진영에 전쟁의 소리가 나나이다.』(출 32:17)라고 했었다. 물론 착각이었지만, 여기서 우리는 여호수아의 평소 마음가짐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여호수아는 에프라임 지파 출신이며, 카나안을 정탐하기 위해 선발된 열두 사람 중의 하나였다. 그중 여호수아와 칼렙 두 사람만이 이스라엘 민족이 그 땅의 거인들을 『능히 이길 수』 있다는 『복음』을 전파했다(히 4:2, cf. 민 13:30; 14:6-9). 여호수아의 전쟁 철학은 제2차 세계대전 때부터 전해 온 말로 요약할 수 있다. 곧 “주를 찬양하라! 그리고 탄약을 나르라!”이다. 여호수아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하라고 명령하신 일을 하고 있는 한은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여호수아의 생애는 이집트의 노예로 시작하여 약속의 땅을 정복하는 군사령관으로 끝맺음한다. 여호수아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영광의 위대한 그림인 것이다(빌 2:5-11).
여호수아서는 후기로서의 마지막 두 장을 제외하면,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1-12장은 카나안 정복을 다룬다. 13-21장은 카나안 땅의 분배를 다룬다. 22장은 요단 강 건너편 지파들인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가 자기들의 유업으로 돌아가는 내용을 다룬다. 후기인 23,24장은 여호수아의 마지막 날들을 다룬다.
여호수아서의 교리적 중요성은 여호수아가 재림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라는 점에 있다. 여호수아라는 이름은 “예수”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이름이다. 히브리서 4:8과 사도행전 7:45을 보라. 『만일 예수가 그들에게 안식을 주었더라면 하나님께서 그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히 4:8). 이 구절은 역사적으로 40년의 광야 생활 후에 이스라엘을 카나안 땅으로 데리고 들어간 여호수아에 대한 참조 구절이다(히 4:7, 시 95:7-11, 민 14:28-35).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민족을 카나안 땅으로 데리고 갈 수는 있었으나, 그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지는 못했다. 여호수아가 시작한 전쟁은 여호수아가 죽은 후 재판관기에서도 계속된다(판 1,2장).
그러나 그 문맥에서 히브리서 4:8이 어떻게 적용되는지 보라. 구약의 여호수아가 할 수 없었던 것을 신약의 “여호수아”께서는 이뤄 내셨던 것이다(히 4:9-16). 이 일은 영적으로는 교회 시대에 성취되었고, 실제적으로는 미래의 천년왕국에서 성취될 것이다. 『우리 조상이 또한 그것을 물려받아 하나님께서 우리 조상의 면전에서 쫓아내신 이방인들의 땅으로 예수와 함께 가지고 와서 다윗 때까지 이르니라』(행 7:45).
이 구절은 역사적으로는 여호수아서에서 이뤄졌고, 예언적으로는 재림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다시 성취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면, 적그리스도의 수하에 있는 UN의 군대를 전멸시키실 것인데, 성령님께서는 이 사건을 여호수아 10장에서의 전쟁으로 보여 주신 것이다(슼 14:3, cf. 수 10:14).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면, 여호수아가 할 수 없었던 것을 하실 것이며, 모든 전쟁을 끝내실 것이다(사 2:4). 이스라엘 민족은 마침내 하나님께서 창세기 15:18에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그 땅에 있게 될 것이다(겔 48장). 그러면 어떠한 민족도 창조주이신 왕께 대항할 수 없게 된다(슼 14:9,16-19).
만약 현대의 번역본들에서 히브리서 4:8과 사도행전 7:45을 찾아본다면, “예수”라는 이름이 “여호수아”로 바뀌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이것은 권위를 인정받은 <킹제임스성경> 속에서 성령님께서 주신 계시를 파괴하려는 마귀의 교묘한 시도이다. 알다시피, 현대의 번역본들이 히브리서 4:8과 사도행전 7:45에서 “여호수아”로 번역한 단어는 헬라어 단어 “예수스”(Ἰησοῦς)이다. 이 단어는 모든 영어 성경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예수”로 번역된 바로 그 단어이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4:8과 사도행전 7:45에서 “예수”를 “여호수아”로 바꾸는 것은 여호수아와 예수 그리스도를 연결하는 고리를 끊어 버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두 구절의 “예수”가 역사적으로는 “여호수아”라 할지라도, 성경의 저자께서 주신 계시를 파괴하지 않기 위하여, 우리는 하나님께서 존중하신 영어 본문을 바꾸지 않을 것이다.
사도행전 7:45을 예로 든다면, 이 구절은 여호수아에 대한 역사적인 언급일 뿐만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께 “문자적으로 적용된다.” 알다시피, 구약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육신 이전의 모습, 즉 주의 천사의 모습으로 나타나셨다(호 12:3,4). 여호수아 5:13-15에서 『주의 군대 대장』으로 여호수아에게 나타나신 분은 바로 주의 천사이셨다.
형제들이여, 이처럼 “예수”를 “여호수아”로 고치는 이런 변개는 무해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즉 킹제임스성경에 어떤 변화를 가한다는 것은 성령님께서 주신 계시를 상실하게 되는 결과만을 낳을 뿐이다. 따라서 필자는 킹제임스성경의 본문을 있는 그대로 해석하고, 있는 그대로 그 뜻을 밝힐 것이고, 있는 그대로 가르칠 것이다. 그러나 결코 킹제임스성경의 본문을 바꾸지 않을 것이다.
여호수아서의 핵심 주제는 “전쟁”이다. 성경의 모든 구절은 세 가지로 적용할 수 있다. 역사적 적용, 교리적 적용, 영적 적용이 그것이다. 구약에서 여호수아서의 역사적 적용은 하나님께서 “실제적이고, 가시적이고, 물리적인 민족”에게 “실제적이고, 가시적이고, 물리적인 땅”을 약속으로 주셨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여호수아의 전쟁도 물리적이다. 물리적인 칼들, 창들, 투구들, 방패들, 활들, 화살들을 가지고 싸웠던 것이다.
여호수아가 수행한 물리적인 전쟁에 대해 세상 사람들은 두 가지 방식으로 접근한다. 하나는 자유주의자들, 회의론자들, 무신론자들, 불가지론자들의 접근 방식으로, 여호수아가 수행한 전쟁이 “부당하다”고 비난하는 것이다. 여호수아 당시의 유대인들은 카나안 땅으로 쳐들어가서 모든 남자와 여자와 아이들을 죽이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다(신 20:16-18). “대량 학살”을 명령받은 것이다. 자, 분명 “구약의 하나님”은 결단코 신약의 “사랑의 하나님”(요일 4:8)이실 수가 없다. 어쨌든 “사랑의 하나님”이시라면 민족들 전체를 학살하는 데 찬성하실 리가 없지 않은가? 그렇지 않은가?!
구약의 하나님은 원시적이고 불평등하다고 생각하는 관념은 두 가지 중요한 사항을 무시한 것이다. 첫째, 하나님의 “고유의 속성” 자체를 무시한 것이다. 즉 성경의 하나님께서는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절대적으로 “거룩하고” “의로우신” 하나님이시기도 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죄를 영원히 참으시지는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자비와 오래 참으심 속에서 인간이 돌이키기를 바라시면서 오랜 기간을 기다려 주신다(창 6:3). 그러나 마침내 하나님께서 도끼로 내려치실 때는, 죄인들은 자기 자신 외에는 누구도 비난할 수 없게 된다. 하나님께서 회개하고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를 여러 번 연장해 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멸절시키라고 말씀하신 힛인들, 아모리인들, 카나안인들, 프리스인들, 히위인들, 기르가스인들, 여부스인들이 바로 그 예이다. 주님께서는 그 민족들에게 돌이킬 수 있는 시간을 400년이나 허락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돌이켜서 스스로를 바로잡지 않았다(창 15:13-16). 그 후에 하나님께서 그분의 택함받은 백성을 그들에게 보내시어 그들을 멸절하게 하신 것이다. 『죄악』이 마침내 『다 차』 버린 일곱 족속을 멸절하라고 하신 것이다. 카나안 땅의 족속들은 단지 우상 숭배만을 행했던 것이 아니다. 그들은 죄인이 행할 수 있는 가장 부패한 행위들을 행하고 있었다(레 18:3). 그들은 근친상간, 자녀를 희생제물로 바치는 것, 성도착, 수간 등을 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죄들을 미국 정부는 현재 공교육 체계 속에서 어린 학생들에게 무해한 것처럼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그런 종류의 가증한 짓들이 그 국가는 물론 그 땅까지도 더럽힌다고 말씀하셨다(레 18:24,25). 미국이 지난 30년간 행한 이런 가증한 짓들을 행하는 국가는 어느 국가든지 동일한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 『그 땅도 스스로 그 거주자들을 토해 내느니라』(레 18:25). 유대인들이 레위기 18장에 나오는 가증한 짓들을 행하기 시작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분이 카나안 땅의 거주민들을 쫓아내셨듯이 유대인들도 동일하게 조치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레 18:27,28 cf. 왕하 17:20-23). 유대인들이 그 땅의 이전 거주자들과는 달리 완전히 멸절되는 것에서 피할 수 있었던 이유는 오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 덕분이었다(롬 11:28).
...(중략)...
여호수아서의 본문을 다루기 전에,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여호수아서의 위대한 교리적 교훈에 주목해야 한다. 이스라엘 민족을 약속의 땅으로 데리고 들어간 것은 모세가 아니라 여호수아였다는 것이다. 입법자는 유대인들을 약속의 땅으로 데리고 들어가지 못했다. 입법자 자신도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했다.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해 주시는 분은 바로 『예수』이시다(행 7:45).
신약의 그리스도인을 위한 교훈은 분명하다. 만약 혹자가 “약속의 땅”(하늘 또는 새 예루살렘, 히 12:22)에 들어가고자 한다면, 모세(율법)는 그를 위해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다.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데는 신약의 “여호수아,” 곧 예수님이 필요한 것이다. 『율법은 모세를 통하여 받았지만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온 것이라』(요 1:17). 『너희가 모세의 율법으로는 의롭게 되지 못하였던 그 모든 일에 있어서도 믿는 자는 모두 그분을 통하여 의롭게 된다는 것이니라』(행 13:39).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위대한 성경적 진리들을 가지고, 전쟁사에서 가장 위대한 장군들 중의 하나였던 여호수아의 책을 깊이 탐구해 보도록 하자. 여호수아는 자신이 직접 진두지휘한 전투에서는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는 세 명의 사령관 중 한 사람이다. 나머지 둘은 다윗과 올리버 크롬웰이다.
피터 럭크만의 주석서 시리즈의 모든 주석서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킹제임스성경의 본문을 있는 그대로 믿을 것이다. 학계나 “과학”이나 교계의 권위에 맞추어 본문의 한 단어라도 바꾸는 짓은 결단코 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킹제임스성경을 우리의 총사령관께서 우리에게 주신 위대한 『성령의 칼』(엡 6:17)로 여긴다. 우리의 총사령관은 신약의 “여호수아,” 곧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히 2:10). 우리는 우리가 성경을 믿고 따른다면 성경이 매 순간 그 막강한 위력을 발휘할 것이라는 진리를 확고부동하게 믿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여호수아, 주 예수 그리스도 만세!
권위를 인정받은 <킹제임스성경> 만세!
책 속으로
1:6 강건하고 담대하라. 이는 내가 이 백성에게 주기로 네 조상들에게 약속한 그 땅을, 네가 그들에게 유업으로 나눠 줄 것임이라.
7 너는 오직 강건하고 아주 담대하여 내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모든 율법대로 지켜 행하고 그로부터 오른편이나 왼편으로 돌이키지 말라. 그리하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번영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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