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의 주석서 시리즈 소선지서 두 번째 책이다. 소선지서 1권에서는 호세아부터 나훔까지 다루었다. 본 소선지서 2권은 하박국부터 말라키까지 다룬다.
소선지서들의 주요 주제는 구약성경의 주요 주제이며 그러한 면에서 성경 전체의 주제가 되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다. 본서에서는 하박국에 있는 재림의 경로를 살펴 볼 것이며, 스파냐에 있는 재림의 부정적인 특성과 학개에 나와 있는 재림과 관련된 성전의 재건, 스카랴에 있는 재림의 마지막 전쟁, 그리고 말라키에 있는 재림에 앞선 경고들을 살펴볼 것이다.
소선지서들은 주요 선지서들(이사야부터 다니엘)과 구별되는데 내용이 아닌, 책의 크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히브리 성경에는 소선지서에 해당하는 열두 권 모두가 한 권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이 소선지서들은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이 쓴 어떤 예언서보다 결코 열등하지 않다. 『모든 성경』의 한 부분으로서의 소선지서는 하나님의 말씀의 다른 부분들과 마찬가지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훈육하기에 유익』(딤후 3:16)하다.
서 문 3
하박국
하박국 1장 12
하박국 2장 47
하박국 3장 96
스파냐
스파냐 1장 138
스파냐 2 장 162
스파냐 3장 178
학 개
학 개 1장 225
학 개 2장 250
스카랴
스카랴 1장 274
스카랴 2장 295
스카랴 3장 304
스카랴 4장 320
스카랴 5장 335
스카랴 6장 347
스카랴 7장 357
스카랴 8장 365
스카랴 9장 376
스카랴 10장 399
스카랴 11장 411
스카랴 12장 435
스카랴 13장 454
스카랴 14장 465
말라키
말라키 1장 497
말라키 2장 522
말라키 3장 561
말라키 4장 590
서문
이 책은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의 주석서 시리즈 소선지서 두 번째 책이다. 소선지서 1권에서는 호세아부터 나훔까지 다루었다. 본 소선지서 2권은 하박국부터 말라키까지 다룬다.
소선지서 1권은 1978년에 출판되었다. 2권 출판은 여러 이유들로 수년간 계속 미루어졌는데 그 이유들에 대해서는 1권 서문 5,6쪽에 나와 있다. 설명하기 어려운 구절이 많아서인데, 특히 스카랴서에 많다. 플로리다 펜사콜라에 있는 우리 성경침례교회 성도들이 마침내 다섯 권에 관하여 알고 있는 내용들을 제시해 주도록 나를 설득하였다. 비록 몇몇 부분에 대해서는 “이히 바이스 니히트.”(Ich weiss nicht. 독일어로, “나는 모르겠다.” <솔로몬의 노래> 주석 참고)라고 말할 수밖에 없지만 말이다.
나는 결코 성경의 모든 부분을 다 이해한다고 고백한 적이 없고 성경학자라고 주장한 적도 없다. 나는 성경을 공부하는 학생이며, 학생으로서 나는 여전히 많은 것을 배워 가고 있다.
주석하면서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구절을 만날 때는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할 것이다. 그런 구절에 대해서는 알고 있는 내용은 제시하겠지만, 다른 주석가들처럼 허세나 억지를 부리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알고 있지도 않은데 마치 내가 알고 있는 것처럼 사람들이 생각하게 하기 위해서 “히브리어 원어”나 <70인역>(Septuagint) 등으로 달려가지도 않을 것이다.
1권 서문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해석하기 힘든 어떤 구절이나 본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짓을 하지 않을 것이다.
1. 본문이 이해되도록 하기 위해 본문에 단어들을 첨가하지 않을 것이다.
2. 본분이 이해되도록 하기 위해 본문에서 단어들을 삭제하지 않을 것이다.
3. 우리가 어리석어, 하나님께서 <킹제임스성경>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헬라어나 히브리어를 가지고 <킹제임스성경> 본문을 고치지 않을 것이다.
4. 우리 자신의 어리석음을 감추기 위해, <킹제임스성경> 본문이 부패했다고 불평하지 않을 것이다.
5. 우리는 어떤 사람이 <킹제임스성경> 본문을 믿지 않거나 의심할 때 그 사람이 말하는 구절이나 문맥에 대한 설명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 주석서 시리즈에서 취했던 입장을 고수할 것이다. “성경에서 한 가지를 말하고 학문이 그와 다른 것을 말한다면 그 학문은 정확하게 마귀를 향하는 것이다”(빌리 선데이, 1936). 우리는 어떤 학자(자유주의자든, 보수주의자든)를 지지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킹제임스성경>을 통해 말씀하신 것을 바꾸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입장은 성경(AV 1611)이 말하는 바로서, “기독교” 학문은 입을 다물고 배워야 한다. 이 주석 시리즈에서 심판받는 대상은 보수주의자들과 자유주의자들이지, “성경”(롬 1:2)이 심판 받는 것이 아니다.
소선지서 서론에 관해서는 자세한 공부를 위해 1권의 서론을 보라. 2권에 서는 다만 소선지서들을 예언한 선지자들이 참된 선지자들임을 강조한다. 즉 그들은 역사 안에서 일어날 미래의 일들을 예언한다.
소선지서들에 나오는 어떤 예언도 마호메트의 코란에 나오는 전체 114개 “수라”에서 찾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실제적인 예언을 제공할 것이다. 전투 결과에 대한 몇 가지 행운의 추측(50%의 확률로 맞을 것이다. 전쟁에서 이기거나 질 것이기 때문이다.)을 제외하고는 마호메트는 역사 가운데서 일어날 단 한 가지의 예언도 제시할 수 없다. “시간이 더 이상 없는” 때인(계 10:6) “마지막 심판”에서도 그럴 것이다. 이런 자가 알라의 “선지자”이다. 운수를 적은 쪽지가 든 과자에서 얻을 수 있는 예언이 더 많을 것이다.
소선지서들의 주요 주제는 구약성경의 주요 주제이며 그러한 면에서 성경 전체의 주제가 되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다. 본서에서는 하박국에 있는 재림의 경로를 살펴 볼 것이며, 스파냐에 있는 재림의 부정적인 특성과 학개에 나와 있는 재림과 관련된 성전의 재건, 스카랴에 있는 재림의 마지막 전쟁, 그리고 말라키에 있는 재림에 앞선 경고들을 살펴볼 것이다. 소선지서들은 주요 선지서들(이사야부터 다니엘)과 구별되는데 내용이 아닌, 책의 크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히브리 성경에는 소선지서에 해당하는 열두 권 모두가 한 권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이 소선지서들은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이 쓴 어떤 예언서보다 결코 열등하지 않다. 『모든 성경』의 한 부분으로서의 소선지서는 하나님의 말씀의 다른 부분들과 마찬가지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훈육하기에 유익』(딤후 3:16)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약성경의 마지막 다섯 권에 대해 설명할 때, 가볍게 대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그 책의 저자(벧후 1:21)께서 우리를 이끄시고 『진리로』(요 16:13) 인도하시도록 할 것이다. 항상 『하나님은 참되시나 사람은 모두 거짓말쟁이라.』(롬 3:4)라는 말씀에 유념할 것이다.
책 속으로
오늘날 비평을 일삼는 학자들의 기준으로는 하박국이 “비생산적인” 책으로 여겨진다. 유대인 백과사전을 만든 배교한 유대인들은 하박국의 주제를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시는 마음을 회복하심”이라고 말한다. 이와는 달리 하박국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완전한 묘사가 담겨 있는데 여호수아 10:12에서 일어났던 일이 반복되는 부분도 있다(합 3:11). 하박국 3장에서 유대 민족 전체가 자신들의 메시아를 통해 구원받는 내용이 나온다. 그 일을 행하시는 동안 창세기 3:15이 완전히 성취되는 것이다(합 3:13 참고). 그러나 어떤 랍비도 14,000쪽이나 되는 유대인 백과사전에서 자신들의 메시아가 오신다는 구절을, 그것이 초림에 관한 예언이든, 재림에 관한 예언이든, 단 하나도 찾아내지 못한다(합 1:5의 설명 참고). 이들은 하박국 3장을 율법을 받는(출 20장) 과거에 놓고, 『그 머리에 상처를 입히셨나이다.』(합 3:13)를 “넓적다리에서 목까지 벌거벗기셨나이다.”로 번역함으로 창세기 3:15에 대한 미래 예언을 없애 버린다(롬 16:20에 대한 설명 참고).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라고 해서 더 나을 것이 없다. 하박국 3장을 찬송가의 가사로 만들어 버림으로 어휘 하나 하나에 담긴 문자적 믿음을 저버렸다. 만일 학자들이 그 본문을 과거 역사로 다루지 않는다면, 비유적으로나 영적으로 다루어 예언의 의미를 없애 버린다.
우리는 하박국에 다가서는 데 있어서 지금까지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의 주석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킹제임스성경>이 말하는 본문을 그대로 받아들일 것이다. 학자 연합에 속해 있는 그 어떤 사람의 의견에 아첨하기 위해 성경이 말하는 것을 단 한 단어도 바꾸지 않을 것이다.
(10p)
『선지자 하박국이 본 엄중한 말씀이라』(1절). 하박국은 나훔이 예언을 시작한 것과 같은 내용으로 예언을 시작하는데 그것은 『엄중한 말씀이라.』이다.
본문에서 말하는 엄중하다는 것은 무거운 짐을 말하는데 이는 “재앙적이거나 비참한 상태의 예언”(Easton’s Bible Dictionary)을 말하기도 하지만 또한 “어떤 종류의 부담스러운 짐,” “어려운 임무,” 혹은 “노력이 필요한 어려운 의무”로 정의될 수 있다. 올바른 성경 교리를 설교하는 사역자라면 이 세 가지 말의 진정한 의미를 알고 있다. 설교자가 강단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일(즉 죄를 드러내고 죄인을 회개하도록 부르는 일)을 하고 있다면 그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13p)
학개 1장은 역사적으로 성전을 재건축하는 내용을 다룬다. 이어지는 2장에서는 재림에 관련된 예언들을 다룬다. 1절에 나오는 『다리오』왕은 다니엘에 나오는(단 5:31-6:1) 메디아인 다리오가 아니다. 그 다리오는 코레스가 바빌론 제국을 정복하는 정복기의 마지막 즈음의 총독이다. 본문에 나오는 다리오는 페르시아인으로 훨씬 후에 등장한다.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에서 등장하는 이들 페르시아 왕들을 알기 위해 학자들은 온갖 추측들을 다 동원한다. 우리는 거기까지는 살펴보지 않을 것이다. 이 부분은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부분이다. [추천한다면 Floyd Nolen Jones가 쓴 <구약 연대기>(A Chronology of the Old Testament)를 추천하겠다.] 실제로 알아야 할 사실은 성경에 세 명의 다리오가 나온다는 사실이다. 다니엘에 나오는 메데인 다리오 외에 에스라 4:24에 있는 페르시아 왕이 한 명 있고, 느헤미야 12:22에도 또 한 사람이 나온다. 학개에 기록된 다리오는 에스라 4-6장에 나오는 페르시아 왕으로 에스라 4:21-23에서 아탁세르세스가 성전 건축을 중지시킨 후 다시 성전 건축을 시작하라고 명령한 왕이다.
스룹바벨은 1절에서 『유다의 총독』이지 팔레스타인의 총독이 아니다. 한 국가가 거기에 있었던 것이지, 모슬렘이나 팔레스티아인들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아브라함이 그 땅에 들어갔을 때 그 땅에는 각기 다른 열 개의 부족들이 있었다. 이들은 결코 하나로 뭉쳐 한 국가를 이루지 않았었다. 여호수아가 그 땅을 정복했을 때 31명의 왕들이 있었는데 “도시 국가들”로 알려진 이들은 각각 독립적인 왕국들이었다. “팔레스타인 국가” 같은 것은 없었다. 그후 천 년간 그 땅에 거주한 민족은 이스라엘 국가였다. 바빌론 통치하에서도, 페르시아와 그리스 통치하에서도 유다로 알려진 지방이 있었다. (유대인들이지, 팔레스티아인들이 아니다.) 앗시리아인들이 그 땅의 북쪽 지역을 사마리아라고 불렀다. 팔레스타인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팔레스타인이라는 말은 필리스티아 국가를 로마인들이 부르는 말이었다. 그 말은 예루살렘 멸망 이후에나 불려졌다.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계시는 동안 로마 지방은 『유대』와 『갈릴리』(눅 3:1), 『사마리아』(요 4:3,4), 『데카폴리』(마 4:25), 『이두메』(막 3:8), 베뢰아였는데 베뢰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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