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끔씩 밧줄을 목에 두른 채 사다리 위에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것은 1660년대를 싸늘한 감방에 앉아 보내던 존 번연이, 자신은 교수형으로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그 기억을 후에 다시 떠올리며 했던 말이다.
천로역정으로 대변되는 존 번연의 삶은 그의 작품에서 나타난 주인공처럼 기나긴 영적 전쟁의 삶이었다. 그는 지나치리만큼 치열하게 일어나는 내적인 영적 전쟁뿐만아니라 복음 때문에 당해야 했던 수많은 고난과 박해를 승리로 견뎌 내며 천성문을 향해 산 순례자였던 것이다.
모든 성도들에게 나타날 수 있는 사탄과의 내면적인 영적 전쟁을 이처럼 진솔하게 표현할 수는 없으리라. 천로역정을 통해서 그의 삶을 우화적으로 그렸던 번연은, 이 책을 통하여 그 주인공인 자기 자신의 모습을 아주 솔직하게 그리고 있는 것이다.
존 번연에 대하여 / 5
제1장 나의 어린 시절 / 25
제2장 신앙에 대해 눈뜨고 / 33
제3장 혼의 첫 동요 / 47
제4장 죄와 사탄에게 고통받고 / 61
제5장 거세진 사탄의 공격들 / 83
제6장 하나님의 은혜와 사탄의 분노 / 101
제7장 마음과 정신의 고통 / 123
제8장 은혜의 승리 / 147
제9장 고통 가운데 피어나는 축복과 은혜 / 185
제10장 설교자로 그리스도를 섬기며 / 203
제11장 복음을 위한 죄수 / 231
결론 / 247
번연의 후기 / 251
제 4 장 죄와 사탄에게 고통받고
대략 이 시기에, 베드포드에 사는 이들의 영적 상태와 그들의 커다란 행복이 나에게는 환상처럼 느껴졌다. 그들은 어느 높은 산 양지 바른 기슭에 앉아 햇볕을 쬐며 그 따스함으로 심신을 개운케 하는 반면, 나는 흑암 같은 구름 아래서 서리와 눈더미에 파묻힌 채 추위에 오돌거리며 움츠러드는 것 같았다. 나는 그들과 나 사이를 가로막으며 그 산을 에워싸고 있는 한 벽을 떠올렸다. 순간, 내 혼은 이 벽을 뚫고 지나가기를 간절히 원했고, 나는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그들 한가운데로 비집고 들어가 그곳에서 그들의 태양의 열기를 쐬며 몸을 녹이고 위로를 얻으리라 다짐했다. 하여 나는 어디 벽을 통과할 수 있는 길이나 통로가 있지 않을까 하여 그것을 유심히 관찰하며 이 벽을 따라 걷고 또 걸으며 상상의 나래를 폈지만, 한동안 그런 것은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러다 마침내, 이를테면 벽에 나 있는 출입구 같은 좁은 틈새기를 발견하게 되었고, 그래서 그것으로 벽을 통과해 보려 했다. 그러나 그나마 발견한 통로가 너무도 협소한지라, 난 지쳐 아예 녹초가 돼 버릴 지경까지 안간힘을 쓰며 들어가려고 여러 번 발버둥쳐 봤지만, 쏟아부은 노력은 모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나는 무진 노력 끝에 머리부터 쑥 집어넣어 통과시킨 후 측면으로 비집고 들어가 양어깨를 넣고 몸 전체가 빠져나오는 일을 상상했다. 그러자 나는 기쁨에 어쩔 줄 몰라하며 그들 사이로 가 앉았고, 그들의 태양이 내리쬐는 빛과 열기를 쏘이며 위로를 누리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그 산과 벽이 나에게 상징했던 바는 다음과 같다. 산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를 의미했고, 그곳을 비추는 태양은 교회 안에 있는 이들에게 주님의 자비로운 얼굴이 비추는 편안한 위로의 빛이었다. 그리고 내 생각에 그 벽은 그리스도인을 세상으로부터 분리시키는 벽이었고, 벽에 난 틈새기는 하나님 아버지께로 갈 수 있는 길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셨다(요 14:6, 마 7:14). 그러나 너무도 좁은 탓에 막대한 곤욕을 치르며 겨우 통과할 수 있었던 나는, 그 통로가 그토록 눈에 띄게 협소한 한, 생명에 들어가려 막대한 노력을 기울이는 이들 말고는 아무도 통과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더군다나 여기엔 몸과 혼이 겨우 들어갈 수 있는 공간만 있어서 몸, 혼과 더불어 죄까지 다 수용할 수 없었기에, 사악한 세상을 등지고 오는 이들만 들어갈 수 있었다. 이러한 인상은 많은 날 동안 나를 떠나지 않았고, 그 사이 나는 황량한 슬픔 속에 내팽개쳐진 자신을 발견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자극을 받은 나는 양지에 앉아 있는 무리들 가운데 끼고 싶어하는 강렬한 허기와 욕망을 느꼈고, 그래서 현재 어디에 있든지, 즉 가족과 함께 있든지 저 멀리 떠나 있든지, 집안이든 들녘이든 장소를 불문하고 하나님께 자신의 마음을 들어올리며 기도를 드렸고, 비록 그 말씀들이 그때엔 어디서 오는지 알지 못했지만, 시편 51편에 있는『오 하나님이여, 주의 자애하심을 따라 나에게 자비를 베푸소서.』(시 51:1)라는 말씀을 종종 입버릇처럼 노래하기도 했다(pp.6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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