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제1장 성경적 기독교 신앙의 쇠퇴
제2장 신비의 말 탄 자 “X”
제3장 그리스도가 아닌 또 하나의 “그리스도”
제4장 이름, 지위, 일련 번호
제5장 남아 있는 일
맺음말
서문
모든 언론이 조작하듯이 과학과 철학과 교육과 종교가 하나로 연합하여 성경을 반대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며, 이 모든 것들이 로마 카톨릭과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방향으로 전개되는 글을 볼 때 어떤 사람들은 “그는 카톨릭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군”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편견이란 미리 조사해 보지도 않고 미리 가지고 있는 선입견으로 상대를 잘못 판단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필자가 카톨릭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은 절대로 편견이 아니다. 필자는 41년이라는 충분한 시간을 갖고서 (20년은 북침례교, 21년은 남침례교에서) 콜럼부스 기사단(The Knights of Columbus)의 모든 출판물들을 공부했고, 20 종류나 되는 카톨릭 신문들을 철저히 읽었으며, 카톨릭 신자들의 집을 방문하여 얼굴을 맞대고 토론하였고, 여섯 명의 신부와 무릎을 맞대고 두 시간이 넘게 교제하였다. 이 책은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쉰 일곱 번 읽으면서 신약의 모든 구절을 헬라어로 확인하고, 이 구절들을 다시 신부들이 사용하는 <림즈 듀웨이, Duay Reims> 카톨릭 공인 성경과 비교한 이후에야 쓰여진 것이다. 필자는 카톨릭 미사전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연구하였고, 성 미카엘(St. Michaels), 성 스티븐즈(St. Stevens), 성 프란시스(St. Francis) 수도원과 리틀 플라워(Little Flower) 교회[모빌(Mobile)과 펜사콜라(Pensacola)에 소재]의 문서 보관실에서 마흔 개의 카톨릭 소 논문을 조사해 보았으며, 카톨릭 역사가들을 포함해서 교회사의 훌륭한 작품들을 모두 섭렵하였다. 필자는 이 글에서 (카톨릭의 본질을 밝히는데 있어서) 모든 질문에 관련된 성경의 사실들에 대해서 충분하고도 정확하게, 또 상세하고도 철저하게, 그리고 성실하게 참조하지 않고 쓴 문장은 단 한 줄도 없다.
비평가들이 “어떤 사람도 자기가 20년 내지 50년쯤 카톨릭 신자가 되어보지 않고는 카톨릭을 진정으로 알지 못한다.”고 말한다면, 필자는 이렇게 대답하겠다. 누구도 알콜이 몸에 해로운 지를 알기 위해 5년 씩이나 만성 알콜 중독자로 있을 필요는 없으며, 주의를 기울여 운전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알기 위해 열 번 이상 자동차 사고를 낼 필요도 없고, 스컹크를 만지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기 위해 돋보기로 스컹크의 몸털 하나하나를 들여다 볼 필요도 없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저급하게 평가한 번역의 악취를 맡기 위해서 어느 누구도 히브리어나 헬라어를 알 필요가 없다. 사람들이 무엇을 말하는가를 알기 위해 양면을 충분히 아는 것과, 이미 변질되었음이 천 번쯤 입증된 어떤 자료를 쓸데없이 연구하느라고 일생을 헌신하는 것 사이에는 적잖은 차이가 있다. 로마 교회는 자신이 거룩하다는 것을 더 이상 설명할 수 없게 되면 항상 방향을 바꾸어서, 그가 50년 정도를 추기경 대학에서 좋은 점을 공부하면서 보내지 않았기 때문에 편견에 빠져 있다는 식으로 주장한다.
다니엘서와 계시록의 종말에 대한 예언들과 직, 간접적으로 연결되는 오늘날 세계의 어떤 정치 이슈도, 이 두 책들에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정확하게 분석될 수 없다. 성경을 조사하는데 무관심하다면, 그 어떤 분석도 부분적인 분석일 뿐이고, 선입견이 전제된 편파적인 관점일 따름이다. 즉 바티칸을 이슈로 삼을 때 계시록과 다니엘의 예언들을 공부하지 않는다면 그것을 제대로 조사했다고 주장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짐승의 표”라는 주제를 다룰 때, 계시록을 연구함에 있어서 로마 카톨릭을 함께 연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것은 짐승과 적그리스도에 관한 성경의 모든 예언이 로마 카톨릭 교회를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어떤 개인의 영감에 찬 계시나, 어떤 절대 지식이나, 필적할 수 없는 권위나, 다른 사람들을 무색케 하는 교리나 이론을 조작하는 데에는 어떠한 지혜도 없음을 고백한다. 단지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이 주제에 관련된 사실들을 조사해서 본문에 그 내용을 기록했을 뿐이다. 개신교도들 중에 친카톨릭 성향을 가진 사람이 이 내용이 반카톨릭적이라고 해서 거부한다면, 포도쥬스와 종교개혁도 반카톨릭적이기는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싶다.
책 속으로
6장에는 우리가 주목해야 할 한 사람이 등장한다. 6:2에서 그는 면류관을 쓴 “정복자”로 나타난다. 『내가 보니, 보라, 흰 말 한 마리가 있는데, 그 위에 탄 자가 활을 가졌더라. 그에게 한 면류관이 주어졌고, 그는 나가서 정복하고 정복하려 하더라』(계 6:2). 성경에서 정복자로 나타나는 인물은 2인자 정도로 별 볼 일 없는 인물이 아니다. 느부캇넷살, 파라오, 코레스, 다리오, 카이사 등의 정복자들은 항상 당대에 가장 위대한 왕으로 등장하는 사람들인데, 요한계시록 6:2에 등장하는 사람이 바로 그 정복자의 모습으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성경이 그에 대해서 『정복하고 정복하려 하더라.』라고 말한 것을 보아 그는 매우 대단한 인물일 것이다. 마치 유명한 영화의 “스타”처럼 그는 사람들의 눈에 탁월하게 드러날 것이다.
우리가 앞에서 이미 다루었듯이 학자들의 어떠한 방해도 신경 쓰지 말고, 성경을 있는 그대로 보고, 있는 그대로 믿자. 성경의 최종적인 해석자는 저자이신 하나님 자신이시며, 그분의 해석 방법은 성경 구절을 성경 구절로 비교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어떠한 전통이나 해석 체계, 심지어 “헬라어 원본”을 참조하기에 앞서, 또 어떠한 학자나 주석가의 해석을 보기에 앞서 “성경이 어떻게 말하는가”를 보자.
『보라, 흰 말 한 마리가 있는데』(계 6:2).
우리는 같은 책에서 또 한 마리의 “흰 말”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요한계시록 19:11이다. 거기에는 흰 말과 더불어 그 말을 탄 또 다른 사람이 등장하는데, 그는 “신실과 진실”이라 불리고, 의로 심판하시며(계 19:11),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불린다(계 19:13, 요 1:1-3). 또한 그분의 이름은 “만왕의 왕”, “만주의 주”라 불리며(계 19:16), 그의 뒤를 따르는 하늘의 군대는 “성도들의 의”로 옷 입는다(계 19:8,14). 이분이 누구신가를 아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다. 이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기록된 대로 명백하다. 요한계시록 19장의 말 탄 분은 분명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런데 문제는 요한계시록 6:2에 등장하는 흰 말 탄 자다. 성경을 성경으로 비교해 볼 때, 6장과 19장에서 둘 다 흰 말이 등장하고 그 위에 탄 사람들이 둘 다 “정복자”라는 것을 보아 같은 인물일 것이라고 우리는 잠시 착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좀 더 자세히 관찰해 보면 이 두 사람이 전혀 다른 인물이라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그들은 거의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사실은 다른 사람이다.
요한계시록 19장의 말 탄 자는 많은 왕관을 썼지만(19:12), 6장의 말 탄 자는 하나의 면류관만을 썼다(6:2). 요한계시록 19장의 말 탄 자는 칼을 가졌고 활은 갖고 있지 않지만(19:15), 6장의 말 탄 자는 칼대신 활을 갖고 있다(6:2). 요한계시록 19장의 말 탄 자의 뒤에는 하늘의 군대들과(19:14) 천 년의 평화가 뒤따르지만(20:1-6), 6장의 말 탄 자의 뒤에는 전쟁과 기근과 사망과 지옥이 뒤따른다(6:3-8).
결론적으로 말해 말 탄 두 사람은 같은 인물이 아니다.
그러나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의 해석”과는 반대로 교단이나 교회의 전통에 따라 해석한다든지, 어떤 학자의 해석을 의지한다든지, 비유적, 묵시적으로만 해석한다면, 흰 말 탄 자에 대해 이와 같은 명쾌한 답변은 얻을 수 없을 것이다.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항상 성경보다 학자들이나 교단의 교리에 의존한다. 이때 더 많이 공부한 학자나 더 교세가 센 교단의 해석이 우위를 차지하기 마련이다. 이 모든 것을 무시하고 오직 성경을 성경으로만 해석하려고 하면, “우둔한 직역주의자”라든지 “성경광신자”라든지 하는 비난을 받게 된다.
“면류관이나 왕관들,” “활이나 칼,” 이러한 것들이 무엇이 문제인가? 결국 모든 것들은 상징이 아닌가? 요한계시록은 고도로 비유적이고 묵시적인 표현으로 가득 차 있지 않은가?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독자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모두 “누룩을 퍼뜨린 여인”(마 13:33)이 퍼뜨린 생각일 뿐이다. 하나님께서는 요한계시록을 결코 “고도로 비유적인” 책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렇게 해석하는 이상 결코 요한계시록 6장의 흰 말이나 17,18장의 여인의 정체는 파악될 길이 없다.
어떤 성경들은 관주를 붙일 때 요한계시록 6:2에다가 19:11과 같은 관주를 붙인다. 성경에다 이렇게 관주를 붙임으로 독자들은 자연스럽게 이 둘이 같은 존재라고 인식하게 된다. 6장의 흰 말 탄 자를 19장의 흰 말 탄 자와 동일하게 해석할 때 이것은 “복음의 점진적인 확산”을 의미하게 되며, 그렇게 되면 후천년주의, 또는 무천년주의 해석 체계로 발전하게 된다. 사탄은 자기의 정체를 가리고 진리를 가려버리기 위해 성경에 잘못된 관주를 넣게 하거나, 심지어 성경을 변개시키면서까지 잘못된 해석을 하게 만드는 교묘한 속임수를 쓰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두 말 탄 자는 너무 비슷하다. 바로 이것이 지난 1,500년 이상 사탄이 사람들을 속여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믿게 만든 것이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복사품”이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완벽한 모조품”이다. 사탄이 얼마나 예수 그리스도와 닮았는지 로마카톨릭은 고사하고 성공회, 그리스정교회, 루터교, 감리교, 장로교 등 기독교의 주요 교단에 속한 학자들과 지도자들로 하여금 자기를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취급하도록 만들고 말았다. 그것도 아주 성공적으로. 그는 지난 1,500년 동안 사람들에게 자신을 주님으로 속일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둘의 차이점을 찾아내지 못했다. 예수 그리스도와 너무도 닮은 인물, 그래서 우리는 그를 “신비의 미스터 X”라고 부른다.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가장 닮은 인물은 모세도 엘리야도 바울도 다윗도 요셉도 아닌, 바로 사탄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와 여러 모로 닮았다.
1.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시다(계 19:16). 사탄은 “모든 교만한 자손의 왕”이다(욥 41:34).
2. 예수님은 “하나님의 천사”이다(갈 4:14). 사탄은 “빛의 천사”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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