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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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요약정보 및 구매

피터 S. 럭크만(Dr. Peter S. Ruckman) 저 / 편집부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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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일 : 2013년 10월 25일 재판1쇄
쪽수 : 152
무게 : 250g
크기 : 153*223*9mm 신국판 무선제본
ISBN : 9788992164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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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품 상세설명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저 하늘 유리바다를 건너 이 추악한 땅으로 내려와 나 같은 죄인을 위해 죽으셨다. 세상 어느 종교에서도 창시자가 그 추종자들을 위해 죽었다는 말은 없다. 하지만 성경은 우주의 창조주이신 그분께서 미천한 나를 위해 죽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하늘 아래 이보다 더 고결한 사랑은 없다. 이보다 더 위대한 사랑은 없다. 이 사랑 앞에서 세상의 모든 "사랑들"은 자취를 감추게 된다. 저자는 이 짧은 책을 통해, 성경에 나타난 사랑의 하나님의 모습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지금까지 사랑의 하나님이나 또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오해하고 있던 그리스도인들은 이 책을 통해 그분의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상품 정보 고시

  • 제 1 장
    잃어버린 것 / 11


    제 2 장
    사랑의 하나님 / 35


    제 3 장
    사랑이란 무엇인가? / 67


    제 4 장
    죽음의 입맞춤 / 99


    제 5 장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며 / 120 

  • 서문


      현대는 사랑에 대해 말하면서도 실상은 사랑이 없는 시대이다. 현대인들에게 사랑이라는 말은 육체적 향락이라는 말로 변해버렸다. 어디를 둘러봐도 “사랑”이라는 미명하에 벌어지는 죄악의 참상만을 볼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참한 현실은 단지 세상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교회 안에서, 소위 그리스도인들이라는 사람들 안에서도 이 “사랑”이라는 말은 엄청나게 오용되고 있다. 육신적인 사람들에게 사랑이란, 세상 사람들의 생각과 같이 감각적인 용어로 사용되지만, 또한 그렇지 않다 하는 사람들에게서도 이 사랑이란 용어는 인본주의적인 사랑의 의미로만 사용된다. 말로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사실은 사람들만을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라.』(요일 4:16)고 말한다. 따라서 “사랑”은 하나님의 귀한 성품 중 하나다. 반면 사람들은 “사랑은 하나님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사랑 자체에만 관심을 두고 있다. 주위를 둘러 보면 사람을 사랑하자는 모습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빈민을 사랑하기, 거리의 부랑자들을 사랑하기, 어린이를 사랑하기, 학대받는 사람들을 사랑하기, 의지할 데 없는 노인들을 사랑하기, 감옥에 있는 죄수들을 사랑하기, 헌혈 운동, 환경 사랑, 인권 운동, 여권 운동, 연합 운동 등의 형태로 나타나는 인간 사랑의 모습을 한 마디로 말하면 “인본주의”라 할 수 있는데, 이 인본주의의 물결이 어느덧 교회 안에도 깊숙히 뿌리를 내리고 만 것이다. 그들은 이웃을 사랑하기 이전에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첫째 계명을 던져 버린다. 오히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들에게는 하나님의 참 사랑의 모습이 상실되어 버린 것이다.


    성경은 사람들을 사랑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을까?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성품을 닮는 것이다. 사랑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것이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하나님께서 그를 사랑하시는 것만큼 사랑할 것이요, 우리가 무엇인가를 미워한다면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것만큼 미워하는 것이다. 이보다 더 할 필요도, 덜 할 필요도 없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따라서 우리도 희생적인 사랑으로 죄인들을 구령하는 일에 헌신해야 한다. 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을 위해서는 기도하시지도 않을 정도로 세상을 사랑하지 않으셨다. 따라서 우리도 세상과 세상에 속한 것들을 사랑하지 말고, 오히려 미워해야 한다.


    성경은 “사랑은 오래 참고, 친절하며, 시기하지 아니하고, 자랑하지 아니하며...”(고전 13:4)라고 말하고 있지만 동시에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를 기뻐하고”(고전 13:6)라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진정 사랑의 하나님의 성품을 닮는다면 죄를 미워해야 한다. 죄의 행위들을 우리 가운데서도 없애야 할 뿐아니라, 죄악을 범하는 세상의 죄인들에게서도 성별해야 한다. 그들을 사랑한다는 미명하에 그들의 죄에 동참한다거나 그들의 죄를 용납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다. 우리는 죄인들의 “상처”를 감싸주는데에 너무나 익숙한 나머지, 죄를 죄라 말하지 못할 때가 너무나 많다. 하지만 사랑의 하나님은 죄악을 범한 백성들을 멸망시키기까지 하신다.


    그리스도인들은 진리를 사랑해야 한다. 무엇이 진리인가? 아버지의 말씀이다(요 17:17).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그분의 말씀을 사랑해야 한다. 다윗은 주의 말씀으로 인해 밤잠도 잊었다(시 119:148). 욥은 주의 말씀을 음식보다 더 귀중히 여겼다(욥 23:12).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여, 그 말씀을 묵상할 때, 우리는 세상 어디에서도 발견하지 못할 하나님의 위대하신 사랑을 발견할 수 있다. 그분은 저 하늘 유리바다를 건너 이 추악한 땅으로 내려와 나같은 죄인을 위해 죽으신 것이다. 세상 어느 종교에서도 그 창시자가 그 추종자들을 위해 죽었다는 말은 없다. 하지만 오직 성경은 우주의 창조주이신 그분께서 미천한 나를 위해 죽으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하늘 아래 이보다 더 고결한 사랑은 없다. 이보다 더 위대한 사랑은 없다. 이 사랑 앞에서 세상의 모든 정욕적인 사랑은 자취를 감추게 된다. 이 사랑 앞에서 세상의 모든 인본주의적인 사랑도 자취를 감추게 된다. 누가 감히 그분 앞에서 “사랑”에 대해 말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이제 하나님의 사랑의 참된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저자 피터 럭크만(Peter S. Ruckman) 목사님은 이 짧은 책을 통해, 성경에 나타난 사랑의 하나님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지금까지 사랑의 하나님이나 또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오해하고 있던 그리스도인들은 이 책을 통해 그분의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감상적인 사랑에 젖어 있던 사람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가 해야 할 진정한 사랑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 사랑의 깊이를 깨달을 때, 우리가 그분을 찬양해 부르던 수많은 노래들의 진정한 의미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사랑을 느낄 때 우리의 입술에서는 그분을 찬양하는 언어와 노래들이 그치지 않을 것이다.


    책 속으로


    제 2 장 사랑의 하나님 


     
    날 때부터 무신론자인 사람은 없다(요 1:9). 그들의 무신론은 후천적이다. 무신론자들은 솔로몬이 전도서에서 했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무신론을 붙든 자들이다(전 2:17, 9:3-7). 그들은 “해 아래서” 행해지는 일들을 유심히 관찰한 후 최종적으로 “하나님은 없다.”라는 결론을 내린다(시편 14:1).


    현대(1990년 대)에 들어와서 무신론을 대체한 새로운 용어는 인본주의다. 공산주의자들과 무신론자들은 이 용어의 의미를 “인류를 향한 사랑”이라고 정의 내린다. 인본주의는 성경 증오자들과 성경을 혐오하는 죄인들 모두 즐겨 쓰는 말이다. 이 “근본주의자들”의 교리는 “인간은 만물의 척도이다”라는 것이다. 인본주의와 진화론(다윈설 혹은 신다윈설)을 합하면, 정령신앙 같은 영적인 요소를 모두 뺀 B.C. 3000년 즈음해서 밀림에 존재하던 원시 이방 종교가 나온다. 인본주의에다가 ‘인간은 우연히 생겨나서 아무 목적없이 존재하다 사라진다.’는 진화론을 섞으면 도덕이 존재하지 않는 난폭한 야수들의 정글이 된다. “맹수”들이 활보하고 다니는 정글, 우열한 종자만이 살아남는다는 정글 말이다.


    이것은 20세기에 일어난 “과학적 진보”에 대해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 내놓을 수 있는 근사한 설명이다. 혹자는 20세기를 ‘격정의 세기’라고 이름붙였다(Ballantine Books). 그 책(Ballantine Books)에는 1900년 대 이후의 군부의 역사가 상세히 기술되어 있다. UN이 창설된 이래 50년 동안 84차례의 전쟁이 일어났다. 이들 전쟁에서 발생한 사상자의 수는 95,000,000명에 달하고 그 중에서 59,000,000명 가량은 자신들의 정부가 획책한 집단 학살 계획의 마수에 희생된 자들이었다. 이러한 집단 학살을 수행하기 전에, 그들은 늘 공상적인 사회 개량가들을 내세워 “이 세상을 좀 더 살기 좋게 만들기 위해” 또 “평화를 유지하고” “범죄를 억제시키기 위해서” 라는 명분을 내걸고 “총기 규제 법안”을 통과시키게 했다.


    이 모든 일이 진행되는 동안 “하나님”은 어디에 계셨더란 말인가? “하나님”은 이런 난리법석을 모르고 계셨더란 말인가? 만일 그분이 이러한 일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더라면 당장 멈추게 하실 수도 있었을 텐데, 왜 수수방관하고 계셨더란 말인가? 이러한 질문들이 바로 무신론자들이 태어난 고향이다.


    자, 여기 남부 어느 주에 사는 꼬마 아이가 있다. 그 아이는 “축복을 간구”할 때 이렇게 기도한다. “하나님은 위대하시고, 선하십니다. 우리를 축복해 주신 주님 감사합니다.” 성경은 여기에 몇 가지를 덧붙인다. 하나님은 『자비롭고 은혜로우며, 오래 참고 선함과 진리가 풍성한 주 하나님이로다』(출 34:6).


    남자, 여자, 어린 아이, 그리고 아기들까지 모두 오천 구백 만이 죽었다. 이 오천 구백 만은 세계 2차 대전에서 사망한 군인의 숫자 22,000,000과 세계 1차 대전에서 사망한 14,000,000을 제외시킨 숫자이다. 『자비롭고 은혜로우며, 오래 참고 선함과 진리가 풍성 한 주 하나님...』(출 34:6). 구천 오백 만의 인명이 살상당했다. “인간은 모든 것의 척도이다.”


    예레미야는 『그의 긍휼히 여기심이 사라지지 아니하였음이니이다.』(애 3:22)라고 했다. 예레미야가 언제 그 말을 했는지 아는가? 그때는 바빌론인들이 예루살렘을 파괴시키고, 어른들의 목을 메달고, 여인들을 욕보이고, 아이들은 노예로 쓰기 위해 타국으로 끌고 간 뒤였고, 예레미야는 검게 그을린 예루살렘 거리의 흙 위에 앉아 있었다. 예레미야가 『그의(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심이 사라지지 아니하였음이니이다. 그것들이 매일 아침 새로워지니 주의 신실하심이 크나이다.』(애 3:22-23)라고 기록할 당시에 어떤 어머니들은 자신의 자식을 잡아 먹기도 했다.


    『긍휼』과 『신실』이라는 말과 예루살렘의 훼파라는 현실이 어떻게 서로 어울릴 수 있단 말인가?


    신명기 7:13에서는 『주께서는 너를 사랑하시고』라고 했는데, 그 뒤로 이어지는 구절들에는 강탈, 살인, 비명, 죽어가는 자의 신음 소리, 고문, 고통, 그리고 노예 제도가 등장한다. 그가 사랑하리라고 하신 신명기 7:13절의 사람들은 예레미야가 말씀을 전했던 바로 그 민족이었다. 7:13을 기록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모세는 또 이렇게 덧붙인다. 『주께서 너희를 멸하시며 너희를 망하게 하시기를 기뻐하시리라...』(신 28:63). [그들의 원수들이 그들의 집을 부수고, 가축을 약탈하고, 땅을 빼았고, 어린아이들을 끌고 가고, 그들은 또 지독한 병에 걸리게 하시는 그 때를 가리킨다(신 28:40-65).]


    시편 136편에는 『그의 자비가 영원히 지속됨이라』는 구절이 반복되는데, 이집트에서 모든 첫태생을 죽이신 일(시 136:10)과, 왕들을 죽이신 사건이 그 증거로 제시된다(시 136:17-20). 호세아 1:6에서 『내가 다시는 이스라엘 집에 자비를 베풀지 아니하고』 하는 말씀을 하신 분과 이사야 14:1에서 『이는 주가 야곱에게 자비를 베풀고 이스라엘을 여전히 택하여』 하는 말씀을 하신 분은 서로 다른 분이 아니다.


    이것이 바로 교육받은 인본주의자들과 무신론적 진화론자들이 성경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이유이다. 그들은 성경을 공부해서 이해하느니 차라리 지옥에 가는 편을 택한다. 그런 까닭에 그들은 절대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다. 그들은 그저 그 증오의 책을 덮어 두고서, “이 책은 모순 투성이야!”하는 말만 뇌까린다.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는 생전에 테이블 위에 성경을 한 권 올려뒀었는데, 그가 죽고 난 뒤에 가구들을 경매붙일 때, 그 테이블과 성경은 경매에서 제외시켰다. 그 증오의 책은 너무 오랫 동안 같은 자리에 놓여 있었던 탓에 책 표지가 테이블에 칠한 유약에 들어붙어 버렸던 것이다. 조지는 죽기 전에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이 책만 보면 속이 뒤집힌다. 내 꼭 이 책을 세상에서 제거하고 말리라.”(pp.3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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