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딤후 2:15).
이송오 목사 설교 분류

가장 소중한 사역 [사도행전 8:2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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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로믿는사람들 <2009년 08월호>

남태평양에 있는 피지(Fiji) 섬을 방문한 영국의 한 후작이 그곳의 원주민 추장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후작은 불신자였고, 원주민 추장은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후작이 추장에게 “당신은 위대한 지도자이신데 저런 외국 선교사들에게 설득되다니 참으로 딱하군요. 저들의 목적은 당신을 이용해서 부를 얻으려는 것뿐입니다. 이제는 성경을 믿는 사람이 없어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인류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었다는 그런 케케묵은 이야기를 듣는 것에 싫증을 내고 있습니다. 저 선교사들은 현실이 그렇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그런 이야기를 받아들일 정도로 어리석다는 사실에 나는 안타까울 따름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있던 추장이 후작에게 답변을 할 때 추장의 눈이 번쩍였습니다. 추장이 저편에 있는 바위를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저기 있는 저 큰 바위가 보입니까? 저 바위 위에다 우리는 우리가 잡은 사람들의 머리를 부쉈고, 그 옆에 있는 석쇠 위에 그들을 구워먹고 즐거워했습니다. 당신이 말했던 저 선교사들이 이 섬에 오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서 구원받지 못했더라면, 우리 식인종들이 어떻게 그리스도인들로 변화되었겠습니까? 만일 저들이 오지 않았더라면 당신이 여기서 살아남을 수 있었겠습니까?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감사하십시오. 그래야 우리가 당신을 환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가르쳐 주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당신은 우리의 저녁거리가 되었을 것입니다.” 식인종들보다 못한 영국의 후작이었습니다. 선교사 존 페이튼(John Paton)은 피지에서 조금 떨어진 뉴 헤브리즈 섬(New Hebrides Island, 현 바누아투)의 식인종들에게 복음을 전해서 그들을 그리스도께로 이겨왔습니다.
마치 구원받지 못한 왕과 구원받은 거지와의 대조 같은 광경입니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그가 세상에서 얼마나 유명하든, 능력이 있고 공부를 잘 하든지 상관이 없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이 복음이 믿는 모든 사람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롬 1:16).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지 않았더라면 여러분도 저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며 저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이 부패하고, 신뢰할 수 없고, 사랑이 식어 버린 것은 교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소홀히 하면서 교회 흉내만 내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다른 종교들처럼 세상 안에서 기독교라는 종교를 전하면서 교회놀이를 하는 데 시간과 돈과 노력을 헛되이 썼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덮어 버리고 존 칼빈의 <기독교 강요>만 펼쳐놓고 있습니다. 칼빈의 <기독교강요>는 그 자신의 기독교에 관한 사상이요 철학일 뿐입니다. 성경보다 더 중요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려면 성경이 최종권위가 되어야 합니다. 그 사람의 믿음과 행위뿐만 아니라 모든 일에 있어서 최종권위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복음은 어떻게 전파되는가?
Ⅰ. 복음의 열정을 가진 사람들에 의하여 전파됩니다(26,27절).
주님의 죽으심과 장사되심과 삼 일 만에 살아나시어 사십 일 이상 지상에 계시면서 오백 명 이상의 사람들에게 보이셨고, 함께 먹고, 동행하며, 교제했고, 제자들에게 고기도 잡게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고기를 잡는 방법은 대부분 그물로 잡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성경적인 방법입니다. 복음을 전하러 갈 때에는 혼자가 아니라, 두세 사람씩 짝지어서 가는 것이 좋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후, 승천하기 직전에 사도 베드로를 만나서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 번이나 물으셨습니다. 사랑하면 양무리를 먹이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왜 그러셨습니까? 베드로가 주님을 세 번 부인했기 때문입니다. 양을 먹이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강단에서 쓸데없는 말을 하는 것은 사역이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여러 사람이 보는 가운데 몸소 들림을 받아 하늘로 올라가시면서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성령님과 지상사역의 임무교대를 하실 때, 『성령께서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능력을 받으리니 그러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게 증인이 되리라.』(행 1:8)고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성령님과 임무교대를 하지 않으셨다면, 예수님을 만난 사람만 구원을 받았을 것입니다.
빌립은 예루살렘 교회의 집사였고, 열성 있는 설교자였습니다. 주님께서는 복음 전파에 열성을 가진 종들을 들어쓰시어 그 일을 하게 하십니다. 복음의 열정을 가진 사람은 직분을 맡은 사람도 아니며 어디서 무슨 학위를 취득한 사람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가 그분의 종인지 잘 알고 계십니다. 주님은 복음 전파에 열정을 가진 사람들을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구령의 열정을 지닌 성도들 안에 역사하십니다. 우리는 주님의 도구일 뿐입니다. 때로는 환경과 대상과 심지어 해야 할 말들까지도 마련해 주십니다.
이 때 복음을 전한다는 핑계로 다른 계산이 스며들면 성령님께서 그 능력을 거두어 가실 수 있습니다. 자기의 이름을 낸다든지, 사람을 자기 교회로 데려오려고 욕심을 부리든지, 역량이 있어 보이는 사람을 자기 교회로 데려오겠다는 발상이 그런 것들입니다. 그래서 돈을 챙기는 교회들은 복음을 무시하거나 사람들을 교회로 끌어오는 수단으로 써먹는 것입니다. 로마카톨릭이 복음 전하는 것을 보았습니까? 은사주의자들이나 이단 교파들은 복음을 전하지 않고 사람들을 미혹시키거나 세뇌시켜서 자기들의 종으로 삼으려 합니다.
그런 이단들 때문에 저는 복음을 전할 때, 일단 교회에 나오는 것은 생각하지 말라고 한 후에 전합니다. 왜냐하면 먼저 복음을 믿고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한데, 사람들이 교회에 나오라고 하는 줄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구원받고서 교회에 나가지 않으면 어디에 갈 수 있겠습니까? 구원받고서 교회에 나가지 않으면 고사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아무 교회에나 나가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이것이 교계의 현실입니다. 누가 이렇게 만들었습니까? 종교 사기꾼들이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기복신앙’은 무당이나 중들이 하는 짓입니다. 마귀의 사주를 받은 자들이 사기치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임하시면 성도는 누구나 성령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다만 그에게 구령의 열정이 있으며, 복음을 믿으면 영적 생명을 얻고 지옥에 가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저는 거리에서 설교할 때 가끔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목욕하는 것보다 쉽다고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받아들이는 것은 목욕하는 것보다 쉽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규례는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누구나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롬 10:13). 이 한 가지 조건이 무척 쉽게 보이지만 믿어야만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믿지 않고 이름만 불러서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교회가 그런 것을 모르기 때문에 사람들이 계속 “주여, 주여”만 외치고 다니는 것입니다.

복음은 어떻게 전파되는가?
Ⅱ. 성령님의 역사하심으로 전파됩니다(27b-36절).
영적 생명이 태어나는 일은 하나님의 개입이 없이는 이룩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그가 어떻게 마귀의 자식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났는지에 대한 간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그리스도인들로부터 구원 간증을 듣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설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구원 간증 설교입니다. 여러분은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어떻게 죄의 속박에서부터 건져내 주셨는가를 말하는 것입니다. 탈북자들이 어떻게 이북을 탈출해서 대한민국으로 들어오게 되었는지 생생한 증언을 내놓듯이, 그리스도인들도 마귀의 세력의 끈을 어떻게 끊고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왔는지 간증이 있어야 합니다. 이보다 더 재미있고, 신나고, 신실한 실화 소설이 있겠습니까? 극단적 칼빈주의자들, 장로교인, 남침례교인, 감리교인, 성결교인, 은사주의자들과 이단 교파들은 구원받지 않았기 때문에 구원 간증이 없습니다. 언제 구원받았느냐고 물으면 꼭 그 날짜와 시간을 말해야 하느냐고 반문합니다. 모태신앙이라고, 세례 받았다고, 제직이 있다고, 교회에 얼마나 오래 다녔다고 쓸데없는 소리만 내놓고 있습니다.
에디오피아 칸다케 여왕의 재정을 맡은 내시는 종교적인 사람이었기에 예루살렘으로 경배드리러 온 유대교 개종자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열정은 컸지만 성경적 절차를 알지 못한 채, 무조건 믿으려고만 했습니다. 열성은 있었지만 지식을 따르지 않은 종교인이었던 것입니다. 그 내시는 마차 안에서 이사야서를 읽고 있었는데,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은 빌립이 가자 광야로 가서 내시의 마차에 함께 타라 하시기에 타고 나서 그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이 읽고 있는 것을 이해하느뇨?” “나를 지도하는 이가 아무도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으리요?” 솔직한 대답은 늘 해결책을 가져다 줍니다. “언제 거듭났습니까?,” “언제 구원받았습니까?,”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영접한 적이 있습니까?” 정확한 대답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꼭 그 날짜와 시간을 말해야 합니까?” 그것은 솔직한 대답이 아니기에 해결책을 내놓을 수 없습니다. 부정직한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그 내시가 읽고 있었던 부분은 이사야 53:7,8이었습니다. 주님이 제물로 선정된 어린양처럼, 죄인들을 위한 희생제물이 되시기를 자청하셨으며, 인간으로서의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시면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완성하심을 보여 주신 것이었습니다. 그 제물은 구약에서 아담과 이브에게 옷을 입히기 위해 희생된 동물로 제시되었고, 아브라함이 모리야 산에서 이삭을 제물로 드리려고 했을 때 하나님께서 예비해 두신 숫양으로 제시되셨으며, 이스라엘의 출애굽 직전에 예비해 주신 유월절 양으로 제시되셨던 것입니다.
그 내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말씀하시기를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회심하지 아니하고, 또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 8:3). 예수님께서는 어린아이를 예로 들으셨습니다. 순수한 어린아이를 제시하신 것입니다. 그 내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고, 예수님을 구주로 믿음으로써 구원받았습니다. 그는 예수님과 함께 죽었고 장사되었다가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 부활의 생명을 지닌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 의식으로 침례에 순종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이 전파되는 전 과정입니다. 복잡할 것도 없고, 뜸들일 일도 없고, 다짐받을 필요도 없습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코 거듭날 수 없습니다. 순수하고 단순한 믿음으로만 구원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복음은 어떻게 전파되는가?
Ⅲ. 보라, 여기 물이 있도다(36-39절).
“내가 침례를 받는 데 무슨 거침이 있느뇨?” 빌립은 내시에게 복음을 정확히 설명했고, 내시는 정확히 알아들었고,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고백했던 것입니다. 복음은 단순성(simplicity)을 제시합니다. 믿고 안 믿고는 상대가 할 일입니다. 어떤 사람을 꼭 구원시켜야 한다는 구절은 없습니다. 우리는 복음을 제대로 전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 죄인을 구원시키고 안 시키고는 성령님의 몫입니다. 어떤 성도들은 구령한 것을 낚시한 것으로 비유하기도 합니다. 오늘 대어(大魚)를 낚았다고 말하기도 하고, 큰 고기를 거의 끌어왔다가 놓쳤다고도 말합니다. 그러나 도대체 누가 대어입니까? 돈 많은 사람입니까? 창조주요 구속주요 심판주이신 주님 앞에 어떤 인간이 대어란 말입니까? 인간은 모두 주님 앞에 죄인일 뿐입니다. 인간이 내세우는 업적, 선행 따위는 모두 다 하나님 보시기에 더러운 걸레와 같습니다.
빌립은 오직 복음만을 단순하고 간결하게 전했습니다. 이것이 성도의 임무로서 끝입니다. 복음을 받아들인 그 내시의 반응을 보십시오. “보라, 여기 물이 있도다. 내가 침례를 받는 데 무슨 거침이 있느뇨?” 얼마나 순수합니까? 성경으로 가르쳤다면 정말 잘 가르친 것입니다. 만일 세례가 옳다면 이런 말이 나왔겠습니까? 사막을 여행하는 사람은 누구나 물병을 가지고 다닌다는 것은 상식입니다. 만일 세례가 옳다면, 내시가 이렇게 말하지 않았겠습니까? “보라! 여기 가죽부대가 있도다. 내가 세례 받는 데 무슨 거침이 있느뇨?” 성경 변개자들이 누구입니까? 거짓 성경을 들고 설교하는 자들이 누구입니까? 성경의 교리를 교단 교리로 바꿔가면서 복음의 능력을 약화시키는 자들이 누구입니까? 바로 마귀의 자식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종으로 가장하는 “거짓 선지자들”입니다(마 7:15-22).
38,39절에서 『그리고 나서 그가 마차를 세우라고 명한 다음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로 내려가서 빌립이 그에게 침례를 주니라. 그들이 물 속에서 올라오자...』 성경에서는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것입니다. 빌립은 오아시스에 내려가서 내시에게 침례를 줬던 것입니다. 세례를 주는 자들이 뭐라고 할 것인지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침례를 죄사함의 수단으로 써먹는 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몰몬교, 여호와의 증인들, 안식교인들, 은사주의자들, 그리스도의 교회들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인하여 이제 우리를 구원하는 모형이니, 곧 침례라. (이것은 육체의 더러움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응답이라.)』(벧전 3:21).
침례에 앞서 선행되어야 할 것은 구원받는 것입니다. 구원받지 않았는데 침례를 받았다면 비누칠하지 않은 채 엉터리 목욕을 하는 셈입니다. 그런 자들이 마귀의 종들이라는 증거는,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성도의 신앙고백을 삭제시켰다는 점으로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누구입니까? <킹제임스성경>을 배격하고 변개된 <개역성경>을 붙잡는 자들입니다. <개역성경>뿐만 아니라 <킹제임스성경>을 제외한 세상에 출간된 모든 성경에는 물론 이외에도 많이 삭제되고 변개되었지만, 사도행전 8:37과 요한일서 5:7이 삭제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누구입니까? 구령하지 않고 전도만 하는 자들입니다. 사람들을 구원시키지 않은 채 교회로 데리고 와서 교회놀이만 하다가 죽으면 지옥으로 보내는 자들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일입니까? 하나님의 교회가 하는 일입니까? 하나님의 종이라는 자들이 밥 먹고 하는 짓입니까? 칼빈주의, 알미니안주의, 보수주의, 정통주의, 근본주의만 자랑하는 자들입니다. 순복음교회, 새벽기도하는 교회, 대형교회, 돈버는 교회들을 부러워하는 가짜 목사들입니다.

결론적으로
복음을 믿고 구원받은 성도들, 즉 영생과 부활의 소망을 지니고 기뻐하는 성도들이 모여들 때 강성한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만이 열매를 맺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쭉정이는 쭉정이를 내고, 독보리는 독보리만 냅니다.
1857년 10월 허드슨 테일러(Hudson Taylor)가 중국 닝보에서 한 사람에게 복음을 전했더니 그가 믿고 영접한 후 테일러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의 나라 영국은 이 복음을 안 지 얼마나 되었습니까? 당신은 이 복음을 안 지 얼마나 되었습니까? 당신은 그래서 이 복음을 전하려고 이억만리까지 왔습니까? 왜 좀더 일찍 오지 않았습니까? 좀더 일찍 왔더라면 우리 아버지도 복음을 듣고 구원받았을 텐데 말입니다.” 이런 질문이야말로 구원받은 사람들의 관심사가 아니겠습니까? 복음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질문이 있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복음의 소중함을 아십니까? 그렇다면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BB


여기에 실린 “이 달의 설교”는 요약된 것입니다. 이 설교의 전문을 포함해서 이송오 목사님의 매주일 설교를 성경침례교회 홈페이지(www.kjv1611.or.kr)에서 직접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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